릴로

강동구 현장은 소음이 많았다.

순찰차 사이렌, 법의학팀의 무전음, 유족들의 울음소리가 밤 공기를 갈기갈기 찢었다. 이준호는 노란 테이프 안쪽에 서 있었는데, 자신이 언제 도착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택시에서 내렸던 것까지만 선명했다. 그 다음은 공백이었다.

"준호, 괜찮아?"

박철수 부서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이준호의 옆에 있었다. 언제부터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네."

대답이 자동으로 나왔다. 거짓이었다.

"현장 첫 인상?"

박철수가 물었다. 이준호는 입을 열었다가 다시 닫았다. 처음 인상을 말하려면 자신이 현장을 제대로 봤다는 걸 증명해야 했다. 하지만 자신이 뭘 봤는지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다. 눈앞에 보이는 것들—시체, 혈흔, 뒤척여진 침구류—이 모두 남의 것처럼 느껴졌다.

"피해자 신원 확인됐어?"

이준호가 물었다. 화제를 돌리는 거였다.

"이지은, 스물여섯. 강남 직장에 다니던 여자야. 세 명이랑 정확히 같은 방식이야. 목 졸림, 그리고 얼굴에 칼집." 박철수가 시체 쪽을 턱으로 가리켰다. "넌 뭘 봤어?"

"아직 기억복원을 안 했어요."

"그래, 해봐. 시간이 없어."

박철수의 얼굴에 피로가 내려앉아 있었다. 한 달 전만 해도 부서장은 전투적이고 날카로웠다. 지금의 그는 도박판에서 마지막 칩을 밀어 올리는 남자의 표정이었다. 이준호는 그것을 알았다. 박철수가 자신에게 쏟아붓는 모든 압박과 기대가 무엇인지. 경찰청 내에서 특수수사팀의 입지를 지키려면, 그림자 사건을 반드시 종결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의 능력에 달려 있다.

자신의 능력. 이준호는 웃음이 나올 뻔했다.

"좋아요. 해보겠습니다."

이준호가 피해자에게 다가갔다. 시신의 손을 잡았다. 손가락이 차가웠다. 생명이 없는 손. 그 안에는 마지막 순간의 기억이 담겨 있었다. 범인의 얼굴, 손가락의 감촉, 질식하는 공포감. 모든 것이.

눈을 감았다.

기억복원 능력이 발동했다.

시야가 하얀 빛으로 채워졌다. 그리고 천천히 이미지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침실. 저녁 햇빛이 창문으로 들어오고 있다. 여자가 침대에 누워 있다. 휴대폰을 보고 있다. 그때 문이 열렸다. 남자가 들어온다. 여자가 고개를 든다.

남자의 얼굴이 보인다.

자신의 얼굴이었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그 남자—자신의 얼굴을 한 그 남자는 느릿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마치 이지은을 보고 있는 게 아니라 누군가 다른 사람을 보는 것처럼. 그 눈빛은 차갑고 계산적이었다. 손가락이 움직였다. 약지부터 차례대로 구부러졌다. 그 손가락들이 여자의 목으로 향했다. 손가락이 피부에 닿는 순간, 여자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비명은 곧 끊겼다. 목이 조여 들었다.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커졌다. 그리고 그 와중에도 자신의 얼굴을 한 그 남자는 계속 웃고 있었다. 광기에 가득 찬 웃음으로.

이준호의 눈이 벌렁 떠졌다.

손에서 피해자의 손이 떨어져 나갔다. 몸이 휘청거렸다. 누군가 자신을 잡았다. 한지은이었다.

"준호?"

그녀의 목소리가 머나먼 곳에서 들렸다. 이준호는 주변이 회전하는 것을 느꼈다. 현장이 빙글빙글 돈다. 경찰관들의 얼굴들이 스쳐 지나간다. 빨간 불빛. 노란 테이프. 시체의 얼굴. 그리고 거울처럼 반사된 자신의 얼굴. 하지만 그것은 자신의 얼굴이 아니었다.

"앉아. 진정해."

한지은이 자신을 바닥에 앉혔다. 이준호는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심박이 제어 불능이었다. 손가락이 떨렸다. 약지부터 구부러졌다. 그것을 멈추려고 했지만 손가락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움직였다.

"괜찮아?"

"응, 응. 괜찮아."

거짓이었다. 시야가 흐렸다. 마치 물속에 있는 것처럼 주변 소리가 둔하게 들렸다.

"기억이 어떻게 됐어?"

박철수가 물었다. 이준호는 입을 열 수 없었다. 만약 자신이 피해자의 기억 속에서 본 것이 현실이라면, 지금 자신이 거짓말을 하는 순간도 현실이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거짓이고 언제부터 현실인가?

"기억 손상이 심했어요. 복원이 안 됐습니다."

거짓말이 나왔다. 자신의 목소리인데, 누군가 다른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

박철수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의 시선이 이준호의 얼굴을 훑었다. 부서장은 뭔가를 알아챘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대신 돌아섰다.

"다시 해봐. 차라리 혼탁한 기억이라도 힌트가 될 수 있어."

이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손가락이 자꾸 약지부터 구부러졌다. 그것은 자신의 습관이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약지부터 구부리는 습관. 그리고 기억 속 범인도 같은 방식으로 손가락을 구부리고 있었다.

한지은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눈빛이 달랐다. 이전의 따뜻함이 사라지고, 뭔가 다른 감정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의심이었다. 프로파일러로서의 예리한 감각이 그녀의 눈동자에 떠올라 있었다.

"당신, 기억복원할 때 신체 반응이 평소와 달라요."

한지은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것은 질문이 아니라 진단이었다.

"피로일 겁니다."

이준호가 대답했다.

"피로? 당신은 지금 공포 상태입니다. 심박 상승, 호흡 불안정, 동공 산대. 그리고 손가락 움직임이 반복적이에요. 무의식적 자해 신호죠."

한지은의 말이 정확했다. 그녀는 자신의 심리 상태를 꿰뚫고 있었다.

"그건... 기억복원의 부작용입니다."

이준호가 말했다. 그것도 거짓이었다.

"부작용이라고요?" 한지은이 한 발 더 다가섰다. "당신의 신체 반응은 공포가 아니라 자기기만입니다. 뭔가를 알고 있으면서 모르는 척하는 사람의 반응이에요. 프로파일러로서 수백 번 봤어요. 그 반응."

이준호는 그녀를 직시할 수 없었다. 한지은의 눈은 자신 안의 모든 것을 꿰뚫고 있었다.

경찰청으로 돌아온 시간은 새벽 세 시였다. 이준호는 사무실에 혼자 앉아 있었다. 형광등이 희끄무레한 빛을 쏟아내고 있었다. 시간이 몇 시인지 몰랐다. 시계를 봐도 숫자가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다.

휴대폰을 꺼냈다. 카메라 앨범을 열었다.

사진들이 떴다. 모두 최근에 찍은 사진들이었다. 강남역 모텔 천장. 박지현의 팔. 임수현의 침대 시트. 그리고 오늘 강동구 현장의 침실 전경.

이준호가 이 사진들을 찍었나?

자신은 사진을 찍은 기억이 없었다. 기억이 없는데 휴대폰에는 사진이 있었다. 자신이 찍지 않았다면 누가 찍었을까?

아니다. 사진의 각도가 이상했다. 마치 범행 현장 지도를 그리는 것처럼 촬영되어 있었다. 피해자의 얼굴, 살상 도구, 혈흔의 위치. 모든 것이 체계적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이것은 자신이 범행을 기록한 것이 아닌가?

이준호의 손이 떨렸다. 휴대폰을 떨어뜨릴 뻔했다. 심호흡을 했다.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었다. 하나, 둘, 셋. 하지만 심박은 가라앉지 않았다. 오히려 더 빨라졌다. 가슴이 철렁거렸다. 마치 누군가 자신의 가슴팍을 파고드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휴대폰을 다시 확인했다. 사진의 타임스탬프를 보니 자신이 기억복원을 사용한 시간과 정확히 일치했다. 그리고 그 사진들 사이사이에는 자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시간들이 있었다. 5분, 10분, 때로는 20분이 넘는 공백들. 그 공백 동안 자신은 무엇을 했을까?

사무실 창밖을 봤다. 서울의 야경이 펼쳐져 있었다. 불빛들이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깜빡거리고 있었다. 이준호는 그 불빛들을 바라보면서 생각했다. 저 불빛 아래에 얼마나 많은 거짓말이 숨어 있을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진실을 감추고 있을까?

그리고 자신은?

책상 서랍을 열었다. 노트북이 있었다. 이준호는 그 노트북을 집어 들었다. 손가락이 표지에서 떨렸다. 마치 그것을 열면 자신이 돌이킬 수 없는 지점을 넘을 것 같은 두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열었다.

자신의 필체로 적힌 글씨들이 나타났다.

'12월 12일 오후 6시 30분 — 강남역 모텔. 검은 장갑. 향수 냄새.'

'12월 15일 오후 8시 — 서초구 아파트. 칼. 침대 시트.'

'12월 18일 오후 7시 — 송파구 주택. 다중 외상. 욕실 타일.'

'12월 22일 오후 9시 — 강동구 빌라. 목 졸림. 침실.'

자신의 필체로 쓰인 자신의 범행 기록이었다.

손가락이 떨렸다. 페이지를 넘기려고 했지만 손가락이 말을 듣지 않았다. 노트북을 내려놨다가 다시 집어 들었다. 글씨를 따라 손가락을 움직여봤다. 필압, 획의 흐름, 글자의 각도. 모두 자신의 것이었다.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이것은 자신이 쓴 글씨였다.

이준호는 노트북을 내팽개쳤다. 팔을 책상에 얹고 얼굴을 묻었다. 호흡이 불규칙해졌다. 눈이 따끔거렸다. 눈물이 나오려고 했다. 하지만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대신 무언가 더 끔찍한 것이 자신 안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부정. 거부.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관통하는 차가운 깨달음.

거울이 필요했다.

화장실로 갔다. 벽에 붙은 거울 앞에 섰다. 자신의 얼굴이 비쳤다. 피곤해 보였다. 눈 밑에 검은 자국이 있었다. 입술은 창백했다. 이것이 자신의 얼굴인가?

그때 거울 속의 남자가 움직였다.

이준호가 움직이지 않았는데, 거울 속의 남자는 입꼬리를 올렸다. 천천히, 그리고 명확하게. 입꼬리가 올라가 있었다. 눈이 반짝이고 있었다. 그 눈빛은 이준호가 본 적 없는 광기로 가득 찼다. 거울 속의 남자는 자신을 보고 있었다. 아니, 자신을 심판하고 있었다.

이준호가 한 발 물러섰다. 거울 속의 남자도 물러섰다. 같은 속도로, 같은 거리로. 하지만 그 웃음은 멈추지 않았다.

그것은 거울이었다. 당연히 거울이었다. 자신의 움직임을 반사하는 거울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 눈빛은 자신의 눈빛이 아니었다.

이준호가 거울에 손을 댔다. 유리는 차갑고 단단했다. 거울 속의 남자도 손을 올렸다. 정확히 같은 위치에. 손가락이 맞닿는 순간, 이준호는 확인했다. 그것은 자신의 손이 아니었다. 거울 속의 손은 웃음을 멈추지 않고 있었다. 오히려 웃음이 더 커지고 있었다. 입이 귀까지 찢어질 듯이.

이준호는 거울에서 돌아섰다. 손이 떨렸다. 호흡이 끊길 것 같았다. 화장실 거울을 피해 사무실로 돌아왔다.

시계를 봤다. 새벽 4시 47분이었다. 이준호는 책상에 앉아서 시간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노트에 자신이 기억하는 시간들을 적었다. 경찰청에 도착한 시간, 사무실에 온 시간, 화장실에 간 시간. 모든 시간을 기록했다. 마치 자신이 어디에 있었는지 증명하듯이.

그런데 기록을 끝내고 보니 이상한 점이 있었다. 새벽 4시 47분에서 새벽 5시 12분 사이의 시간이 기억나지 않았다. 25분이 통째로 사라져 있었다. 자신은 무엇을 했을까? 어디에 있었을까?

그 25분은 기억복원 능력을 사용한 직후였다. 강동구 현장에서 능력을 발동했을 때부터 시작된 공백이었다. 매번 기억복원을 쓸 때마다 대가가 있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과거의 기억이 아니라 현재의 시간이 사라지고 있었다. 능력의 대가가 급증하고 있었다.

휴대폰을 다시 켰다. 카메라 갤러리를 확인했다. 새벽 5시 3분에 촬영된 사진이 있었다. 자신의 책상이 찍혀 있었다. 각도가 이상했다. 마치 누군가 자신의 어깨 너머에서 찍은 것처럼. 하지만 그 사진을 찍은 사람은 자신 외에 없었다. 사무실에는 자신만 있었다.

그렇다면 자신이 찍은 건가? 자신이 스스로를 촬영한 건가?

사무실 문이 열렸다. 김민준이 들어왔다. 그는 처음에 이준호를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야, 밤새웠어?"

"네."

"기억복원 분석?"

"응."

김민준이 이준호의 책상 근처에 섰다. 그의 시선이 노트에 머물렀다. 이준호는 서둘러 노트를 덮었다. 하지만 너무 늦었다. 김민준은 이미 무언가를 본 것 같았다.

"넌 뭘 하고 있어?"

"사건 분석."

"거짓말하지 마. 내가 계속 말했잖아. 기억복원 능력이 피해자의 기억을 왜곡할 수 있다고. 목격자의 기억은 늘 불완전해. 극한의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고."

김민준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었다. 그는 이준호의 능력을 의심해왔다. 처음부터, 계속해서, 집요하게. 그리고 이제 그의 의심이 어느 정도 옳다는 것을 이준호는 알고 있었다.

"기억복원은 신뢰할 수 있는 수사 방법입니다."

이준호가 대답했다. 자동으로 나오는 말이었다. 자신도 더 이상 그 말을 믿지 않으면서도.

"신뢰할 수 있다고? 넌 지난 20건 사건의 범인들이 모두 같은 신체 특징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아? 다 다른 사건인데, 피해자들의 기억 속 범인이 죄다 비슷해. 얼굴, 손가락, 심지어 향수 냄새까지. 이게 우연일까?"

이준호의 심장이 멈췄다. 그 말은 자신의 노트북에 적힌 기록들과 정확히 일치했다. 검은 장갑, 향수 냄새, 손가락 습관. 모든 것이.

"그게... 뭐라고?"

"생각해봤어. 혹시 넌 기억복원할 때마다 피해자의 기억에 자신의 이미지를 남기는 건 아닐까? 무의식적으로? 피해자들의 기억이 오염되는 거지. 그래서 범인의 얼굴이 자꾸 비슷해 보이는 거 아닐까?"

그 말이 맞을 수도, 틀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준호는 알고 있었다. 자신의 노트북에 적힌 기록들은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자신의 손가락 습관이 기억 속 범인과 같다는 것을. 거울 속의 남자가 자신을 보고 웃었다는 것을.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이 그 25분 동안 무엇을 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을.

"그럴 리가 없습니다."

하지만 손이 떨렸다. 손가락이 약지부터 구부러졌다. 김민준은 그것을 봤다. 그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는 이준호의 손을 바라봤다. 마치 그것이 증거인 것처럼.

"너... 정말 괜찮아?"

그 말은 이준호를 타격했다. 왜냐하면 그것은 자신에게 한지은이 던진 같은 질문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은 그 질문에 거짓으로 대답했었다.

휴대폰이 울렸다. 박철수였다.

"준호, 들어와. 지금."

박철수의 목소리가 딱딱했다. 이전의 부드러움이 사라졌다. 이준호는 휴대폰을 내려놨다. 사무실을 나갔다. 복도를 걸었다. 자신이 걷고 있다는 것이 현실인지 확실하지 않았다.

박철수의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

"들어와."

이준호가 들어갔다. 박철수는 책상 위에 무언가를 펼쳐 놓고 있었다. 사진들이었다. 피해자들의 사진. 그리고 그 옆에 또 다른 사진이 있었다. 자신의 신분증 사진이었다.

"이거 뭐야?"

박철수가 물었다. 그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모르겠습니다."

"모른다고? 이건 강동구 현장의 CCTV 영상 분석 결과야. 현장에 들어가기 전 30분, 그리고 나오는 동안 주변 CCTV에는 아무것도 안 나왔어."

박철수가 모니터를 켜 보여줬다. 화면에는 강동구 빌라 입구의 CCTV 영상이 떴다. 타임스탬프가 표시되어 있었다. 오후 8시 45분부터 오후 9시 15분까지. 30분 동안 아무도 출입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준호는 거기 있었다. 자신은 분명히 거기 있었다.

"그 시간대에 넌 어디 있었어?"

박철수의 질문에 이준호의 몸이 경직됐다. 메스꺼움이 올라왔다. 자신이 그 30분 동안 무엇을 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기억복원 능력을 쓸 때마다 대가가 커지고 있었고, 이제 현재의 시간까지 사라지고 있었다.

"제가..."

말을 잇지 못했다. 자신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넌 뭘 숨기고 있어?"

박철수가 일어섰다. 그의 얼굴이 이준호의 가까이 왔다. 부서장의 눈에는 분노가 아니라 절망이 있었다.

"기억이 자꾸만 끊깁니다. 능력을 쓸 때마다 대가가 생기는데, 이번엔... 현재 기억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점점 더 빠르게."

이준호의 목소리가 떨렸다.

"현재 기억이 사라진다고?"

"제 휴대폰에... 제가 찍은 것 같은 사진이 있습니다. 범행 현장의 사진들이. 그런데 제가 찍은 기억이 없어요. 그리고 제 과거에도... 10년 전 교통사고 이후로 기억이 자주 끊겼습니다. 의사는 외상후 해리성 정체감 장애라고 했는데..."

이준호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자신이 말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도 믿기 어려웠다.

박철수가 움직이지 않았다. 그의 얼굴이 서서히 창백해졌다.

"뭐라고? 해리성 정체감 장애?"

"네. 그래서 기억 공백이 있고... 때때로 제가 제 행동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능력을 쓸 때마다 그게 더 심해지는 것 같습니다. 마치 능력의 대가로 현재의 시간이 삭제되는 것처럼."

박철수가 자신의 책상에 앉았다. 그는 이준호를 바라봤다. 부서장의 눈에는 여러 감정이 뒤섞여 있었다. 분노, 실망, 그리고 두려움.

"그럼 넌... 혹시..."

박철수가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그 말은 끝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준호는 알고 있었다. 그 말이 무엇일 것인지.

"저도 모릅니다."

이준호가 말했다. 그것이 진실이었다.

박철수는 책상 위의 사진들을 다시 봤다. 강동구 현장에서 찍은 이지은의 시체 사진. 사진의 배경에는 거울이 비쳐 있었다. 거울 속에 누군가의 얼굴이 반사되어 있었다. 이준호의 얼굴이었다. 하지만 그 표정은 이준호가 본 적 없는 표정이었다. 광기에 가득 찬 웃음. 입이 귀까지 찢어질 듯이 벌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눈빛은—차갑고, 계산적이고, 광기로 가득 찬—거울 속의 남자의 눈빛이었다.

박철수가 사진을 내려놨다. 그의 손가락이 떨렸다. 그는 이준호를 바라봤다. 그 시선에는 확신이 있었다. 끔찍한 확신.

"정신과 의사를 만나야 해. 지금 당장."

박철수의 목소리는 명령이었다. 그것은 상관의 지시가 아니라 절박한 호소처럼 들렸다.

"네."

이준호가 대답했다.

그 순간 이준호의 무전기가 울렸다. 긴급 신고였다. 새로운 피해자가 발견됐다는 것이었다. 서초구 아파트. 다섯 번째 피해자.

박철수와 이준호는 서로를 바라봤다. 박철수의 눈에는 질문이 있었다. 하지만 이준호는 대답할 수 없었다. 자신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가자."

박철수가 말했다.

현장으로 가는 차 안에서 이준호는 다시 기억복원을 사용해야 한다는 생각이 자꾸만 밀려왔다. 다섯 번째 피해자의 기억 속에서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하지만 동시에 그것을 하고 싶지 않았다. 능력을 쓸 때마다 현재의 기억이 더 빠르게 사라지고 있었다.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를 정도로.

"하면 안 된다."

박철수가 옆에서 말했다. 마치 이준호의 생각을 읽은 것처럼.

"무슨..."

"기억복원. 하면 안 돼. 더 이상."

박철수의 목소리에는 절박함이 있었다.

"하지만 현장에서..."

"상관없어. 의사를 먼저 만나. 뭐가 일어나고 있는지 알아야 해."

이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자신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현장에 도착했을 때 자신이 어떻게 행동할지. 그 다섯 번째 피해자의 손을 잡지 않을 수 있을지. 아니면 자신이 또 다른 기억을 보게 될지. 그리고 그 기억 속에서 자신의 얼굴을 한 그 남자가 또 다시 웃고 있을지.

차는 서초구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준호의 머릿속에서는 거울 속의 남자가 여전히 웃음을 멈추지 않고 있었다. 그 웃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조롱인지, 경고인지, 아니면 초대인지—이준호는 알 수 없었다. 오직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 웃음이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뿐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가장 끔찍한 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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