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2시 43분, 요양원의 복도는 형광등 불빛 아래 고요했다.
지은은 침대에서 눈을 떴다. 엄마의 침대 위 모니터링 시스템이 울렸다. 이상 신호. 지은은 벌떡 일어나 슬리퍼를 신고 복도로 나갔다. 엄마의 방에 들어가자 침대가 비어 있었다.
화장실 불이 꺼져 있었다.
"엄마?"
지은은 복도로 나갔다. 밤의 요양원은 다른 공간이었다. 낮에 보던 밝은 로비와 복도가 어둠 속에서 미로처럼 변했다. 불안감이 등을 타고 올라왔다.
"여기가 어디야?"
엄마의 목소리가 복도 끝에서 들렸다. 지은은 달려갔다. 흰 잠옷을 입은 엄마가 복도 중간에 서 있었다.
"엄마, 나야. 지은이야."
"어? 지은아?"
엄마의 눈동자가 초점을 찾으려 애썼다. 하지만 그 초점은 지은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마치 자신의 딸을 인식하려 몸부림치는 낯선 사람을 보는 듯한 표정이었다.
지은은 엄마의 팔을 잡았다. 손가락으로 엄마의 맥박을 확인했다. 규칙적이고 안정적이었다.
"화장실 다녀왔어? 자, 이리 와."
지은은 엄마를 침대로 이끌었다. 엄마는 마치 처음 가는 길처럼 천천히 걸었다. 침대 모서리에 앉혔다. 엄마는 여전히 지은을 명확하게 알아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지은의 손을 놓지 않았다.
"자, 누워. 이제 자야지."
엄마가 누웠다. 지은은 이불을 덮어주었다. 엄마의 눈이 감기려 하고 있었다. 천천히, 매우 천천히.
이 순간이 기회라고 생각했다. 지은은 엄마의 이마에 손을 올렸다.
손이 떨렸다.
지은은 눈을 감았다. 집중했다. 다섯 년 전부터 해온 것처럼, 손가락 끝에 모여드는 그것을. 대상자의 기억에 닿으려는 그것을. 하지만 손은 멈추지 않았다.
떨렸다.
마치 누군가 지은의 손목을 흔들고 있는 것처럼. 마치 지은 자신이 거부하고 있는 것처럼.
"뭐 해? 넌 자꾸 날 만지려고 하는데, 뭘 하려는 거야?"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순진했다. 마치 어린 딸의 손길을 받는 엄마의 목소리. 아직도 지은을 딸로 인식하지 못하면서도, 그 손길 자체는 받아주려는 목소리였다.
지은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손을 내렸다.
엄마가 지은의 손을 잡았다. 손가락이 엄마의 뺨에 비쳤다. 엄마의 뺨은 따뜻했다. 지은은 그 온기를 더 깊이 느끼려 손가락을 더 세게 눌렀다.
지은은 엄마를 끌어안았다.
"아무것도 아니야, 엄마."
거짓말이었다. 가장 큰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엄마는 지은을 안아주었다. 기억이 흐릿해진 엄마는 오직 이 순간만 명확했다. 딸을 안는 모성애는 치매가 지울 수 없는 것이었다.
그제야 지은은 깨달았다.
엄마를 잊게 하는 것이 사랑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을 빼앗는 것이 고통을 덜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견디는 것이 사랑이라는 것을.
엄마를 지우면 지은도 함께 사라진다는 것을.
밤새 지은은 엄마 곁에 앉아 있었다. 엄마는 몇 시간 후 다시 깼다가, 지은을 모르는 사람처럼 보고, 그다음 다시 알아보고, 또 잊었다. 매번 지은의 심장이 쪼개졌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게 쪼개졌다. 고통을 없애려는 욕망으로 쪼개지는 것이 아니라, 함께 견디려는 결심으로 쪼개졌다.
새벽 3시경, 엄마가 다시 눈을 떴다. 이번엔 공포가 섞여 있었다.
"여기가... 어디야?"
목소리가 떨렸다. 지은은 벌떡 일어났다.
"엄마, 나야. 지은이야."
"지은이?"
엄마의 눈이 지은을 향했지만, 초점이 맞지 않았다. 뭔가를 찾듯이 흔들리는 눈동자.
지은은 엄마의 팔을 잡았다. 이번엔 엄마의 피부가 전보다 차갑게 느껴졌다. 지은은 더 세게 잡았다.
"화장실 가고 싶어?"
엄마가 끄덕였다. 기억이 없어도 몸은 기억하고 있었다.
지은은 엄마를 일으켜 세웠다. 요양원의 방은 어둠 속에 있었다. 야간 조명만 희미하게 켜져 있었다. 엄마는 지은을 의지하며 한 발씩 내디뎠다.
복도로 나가며 엄마가 또 중얼거렸다.
"여기가... 어디야?"
시간이 조각나고 있었다. 매 순간이 새로운 깨어남이고, 매 순간이 새로운 혼란이었다.
"병원이야. 요양원. 안전한 곳이야."
지은은 엄마를 화장실로 데려갔다. 엄마가 용변을 본 후, 다시 복도로 나왔을 때였다.
엄마가 멈춰 섰다.
"이 길이... 어디로 가는 길이야?"
지은의 목이 메어왔다. 엄마가 방향 감각을 잃고 있었다.
"우리 방이야. 자는 곳."
지은이 엄마의 팔을 더 단단히 잡았다. 엄마는 지은을 의지했다. 신뢰했다. 아직도 신뢰했다. 기억이 없어도 그 신뢰는 있었다.
복도를 다시 걸었다. 불이 켜진 표지판들이 흐릿하게 보였다. 엄마는 지은의 옆에서 자신의 발을 집중해서 봤다. 마치 한 발 한 발이 생사의 문제인 것처럼.
방에 들어갔다. 엄마가 침대에 누웠다.
"고마워... 누구세요?"
"엄마, 나야."
"아, 그래... 미안해. 잠깐 헷갈렸어."
그 말이 가장 무서웠다. 헷갈렸다. 아직도 헷갈릴 수 있는 정도라는 뜻이었다. 완전히 잃지는 않았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언제 완전히 잃을지는 모른다는 뜻이었다.
지은은 엄마의 손을 잡았다.
"괜찮아. 내가 여기 있어."
"응... 고마워."
엄마의 눈이 감기려 하고 있었다. 천천히, 매우 천천히. 마치 깊은 물속으로 빠져들어가는 것처럼.
지은은 엄마의 이마를 바라봤다.
손가락이 저절로 올라갔다. 엄마의 이마에 닿으려 했다. 한 번의 터치. 그것이면 충분했다. 엄마의 기억들이 흩어질 것이다. 치매의 고통도, 불안감도 모두 사라질 것이다. 엄마는 아무것도 모르는 백지 같은 상태로 남겨질 것이다.
그게 자비일까? 아니면 학대일까?
손이 떨렸다.
지은은 눈을 감았다. 집중했다. 다섯 년 전부터 해온 것처럼, 손가락 끝에 모여드는 그것을. 대상자의 기억에 닿으려는 그것을.
손가락 끝에 따끔거림이 흐르기 시작했다. 뇌를 스치는 듯한 통증. 마치 누군가 지은의 관자놀이를 안쪽에서 누르고 있는 것처럼. 지은은 이를 깨물었다.
하지만 손은 멈추지 않았다.
떨렸다.
마치 누군가 지은의 손목을 흔들고 있는 것처럼. 마치 지은 자신이 거부하고 있는 것처럼.
"뭐 해? 넌 자꾸 날 만지려고 하는데, 뭘 하려는 거야?"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질문이 아니라 관찰이었다. 마치 어린 딸이 자신을 자꾸 건드리는 이유를 궁금해하는 엄마의 목소리. 아직도 지은을 딸로 인식하지 못하면서도, 그 손길 자체는 받아주려는 목소리였다.
지은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손을 내렸다.
"아무것도 아니야."
엄마가 지은의 손을 잡았다. 손가락이 엄마의 뺨에 비쳤다. 엄마의 뺨은 따뜻했다. 지은은 손가락을 더 천천히 움직여 그 온기를 더 오래 느꼈다.
지은은 엄마를 끌어안았다.
"엄마..."
목이 메어서 더 이상 말이 나오지 않았다. 엄마가 지은의 등을 토닥였다. 리듬이 있는 토닥임. 천천하고 깊은 호흡처럼. 마치 아기를 재우듯이.
"괜찮아. 괜찮아."
엄마가 속삭였다. 기억이 없어도 그 위로의 말은 있었다. 아마도 엄마는 지은이 누구인지 완전히 모를지도 몰랐다. 하지만 누군가 자신 앞에서 우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새벽 5시경, 지은의 핸드폰이 울렸다.
화면을 켰다. 강태현의 메시지였다.
[새 의뢰 들어왔어. 이번엔 좀 더 무거운 거야. 남자. 아내가 모르는 5년간의 외도 기억. 전부 지워야 해. 오늘 정오까지 연락해.]
지은은 메시지를 읽었다. 다시 읽었다. 손가락이 화면 위에서 떨렸다.
[엄마 때문에 일을 거르지 말고. 우린 거래했잖아.]
거래했다. 맞다. 지은은 거래를 했다. 능력을 제공하고, 대가로 엄마를 보호받기로 했다. 하지만 거래라는 것은 양쪽 모두가 동의해야 하는 것이었다. 강태현은 동의를 구하지 않았다. 그냥 일방적으로 강요했다.
지은은 핸드폰을 내려놨다.
엄마를 바라봤다. 엄마는 다시 자고 있었다. 얼굴이 편해 보였다. 꿈을 꾸는 중일까? 아니면 꿈도 없는 깊은 잠에 빠져 있을까?
새벽 6시, 지은은 침대에서 일어났다. 엄마의 손을 조심스럽게 내려놨다.
화장실로 들어갔다.
거울을 봤다.
눈 밑에 짙은 다크서클이 생겨 있었다. 어제는 없던 것이다. 어제 밤 사이에 생겼다. 얼굴이 붓지는 않았지만, 마치 누군가 지은의 눈 아래를 검은 펜으로 그어놓은 것 같았다.
이마를 만졌다.
작은 상처가 있었다. 마치 자신이 무의식 중에 손톱으로 긁은 것처럼. 피가 맺혀 있었다. 선홍색이었다. 지은은 그렇게 한 기억이 없었다. 하지만 상처는 분명히 있었다.
손가락 끝을 들었다.
희미한 빛이 맺혀 있었다.
다섯 년 전 사고 이후 처음 본 그 빛이 아니었다. 처음의 빛은 은은했다. 손가락 끝에 작은 별 하나가 깃든 것처럼. 하지만 지금의 빛은 다르게 보였다.
더 짙었다.
마치 누군가 지은의 손가락에 불을 붙인 것처럼. 아니, 마치 지은 자신이 내부에서 타고 있는 것처럼.
지은은 손가락을 움켜쥐었다.
빛이 꺼졌다. 하지만 손은 여전히 떨렸다. 손가락 관절이 경직되어 있었다.
거울에 비친 자신을 바라봤다.
낯선 얼굴이었다. 눈동자의 초점이 흐릿해 있었다. 마치 누군가 다른 사람의 기억을 너무 많이 지워서, 그 기억들의 무게가 지은 자신의 얼굴을 깎아내리고 있는 것처럼.
핸드폰이 다시 울렸다.
강태현의 음성 메시지가 도착했다.
[정오. 잊지 말고. 그리고 지은아, 이번 의뢰는 특별해. 의뢰인이 자네 엄마 요양원의 후원자야. 만약 자네가 거부한다면... 글쎄, 요양원의 환경이 크게 바뀔 수도 있겠지. 알겠지?]
음성 메시지가 끝났다.
지은의 손이 떨렸다. 이번엔 거부의 떨림이 아니었다. 공포의 떨림이었다.
화장실의 거울 안에서 자신을 바라봤다. 그 거울 속의 여자는 더 이상 자신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마치 이미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지워진 사람처럼.
방으로 돌아갔다.
엄마가 깨어나 있었다. 지은을 보고 미소 지었다.
"안녕하세요."
낯선 인사였다. 마치 호텔의 손님이 새로운 직원을 맞이하는 것처럼.
지은은 엄마 옆에 앉았다.
"안녕, 엄마."
"저는... 누구세요?"
그 질문이 가장 무서웠다. 아니, 이미 무서움을 넘어섰다. 지은은 엄마의 손을 잡았다. 엄마는 지은의 손을 거부하지 않았다. 기억이 없어도 손길은 받아주었다.
"나는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이야."
"그래요? 고마워요."
엄마의 목소리는 낯설었다. 하지만 손은 따뜻했다. 손가락의 감각이 선명했다. 엄마의 손등 위의 주름, 손톱 끝의 차가운 질감, 손가락 사이사이의 부드러운 살. 모든 것이 지은의 손에 전해졌다.
지은의 핸드폰이 또 울렸다.
[4시간 30분 남았어.]
강태현의 메시지였다.
지은은 핸드폰을 내려놨다.
엄마와 함께 창밖을 바라봤다. 새벽빛이 점차 밝아지고 있었다. 바다 냄새가 창문을 통해 들어왔다. 소호의 아침이 시작되고 있었다.
그리고 지은의 선택의 시간도 시작되고 있었다.
능력을 사용하면 엄마가 고통받을 것이다. 하지만 능력을 포기하면... 조직이 엄마를 해칠 수도 있다.
지은은 손가락을 펼쳤다.
희미한 빛이 다시 나타났다. 그 빛은 점점 더 짙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