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억 조작 장치의 모니터에서 준호의 뇌파가 급격히 요동쳤다. 화면 위 파형이 폭발적으로 진동하며 수치들이 미친 듯이 뛰어올랐다. 박충준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차분한 목소리로 지시했다.
"모든 기억을 동시에 재생하라."
조정실의 기술자들이 움직였다. 헬멧 같은 신경 인터페이스가 준호의 머리에서 빛을 내기 시작했다.
그 순간, 준호의 의식이 폭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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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목소리. 아버지가 주사를 들고 있다. 따뜻한 손이 자신의 팔을 감싸고 있다. 아니다, 그 손은 차갑다. 아버지의 얼굴이 웃고 있다. 아니다, 그 얼굴은 무섭다.*
*"준호야, 괜찮아."*
*"준호가 아니야. 넌 #7-A야."*
*"나는 누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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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목소리가 동시에 울려 퍼졌다. 한 목소리는 경찰이 되어 사건을 추적하고 있었고, 다른 목소리는 피해자의 목을 조르고 있었다. 같은 입에서 나온 두 개의 말이 서로를 부정했다.
*"나는 법을 지킨다."*
*"나는 법 위에 있다."*
*"나는 이준호다."*
*"나는 제니시스다."*
준호의 신체가 경련했다. 안경이 벗겨져 나갔고, 눈에서 피가 흘렀다. 기술자들이 움찔했지만 박충준은 손을 들어 멈추게 했다.
"계속하라. 기억의 층위를 모두 열어라."
화면 속 준호의 뇌 구조가 3차원으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뇌의 각 영역이 서로 다른 색깔로 빛났다. 그리고 그 색깔들이 충돌했다.
준호는 비명을 질렀다.
거울 같은 기억들이 서로를 반사하며 무한히 분열했다. 경찰 신분증을 들고 있는 자신. 시체 위에 서 있는 자신. 어린 아이였던 자신. 그리고 노인이 되어 있는 자신. 모든 순간이 동시에 존재했다.
준호의 몸이 기계 위에서 튀어올랐다. 고정 장치들이 그를 누르려 했지만 그의 힘이 그것을 압도했다. 신경 계통의 모든 신호가 동시에 발화하고 있었다. 근육이 모순된 명령을 받아 자신을 찢으려 했다.
"더 깊이. 원점까지."
박충준의 목소리가 다시 울렸다.
그리고 기억이 더 이상 분열하지 않는 지점에 도달했다. 모든 기억의 시작점.
준호의 의식이 그곳으로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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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아원. 파란 벽. 밝은 햇빛.*
*한 아이가 블록을 쌓고 있다. 그 아이의 이름은 이준호다. 진짜 이준호다.*
*박충준이 그 아이를 안고 있다. 웃고 있다. 진정으로 웃고 있다.*
*"우리 준호, 똑똑하네. 이렇게 잘 만들다니."*
*그리고 그 다음 장면.*
*같은 방. 같은 박충준. 하지만 표정이 다르다.*
*주사. 주사가 아이의 팔로 들어간다.*
*아이가 울음을 멈춘다.*
*아이가 움직이지 않는다.*
*아이의 이름은 이준호였다.*
*그리고 아이는 죽었다.*
**—**
준호의 목소리가 끊어졌다. 모니터의 파형이 일직선이 되었다가 다시 요동쳤다.
"그 다음은 어떤 기억인가?"
박충준이 물었다. 마치 학술 토론을 하듯이.
조정실의 모니터가 다시 켜졌다. 새로운 기억이 재생되기 시작했다.
*같은 방. 다른 아이. 열 살 정도의 고아 아이. 시설에서 온 아이. 이름이 없는 아이.*
*박충준이 그 아이를 바라본다.*
*"넌 누구니?"*
*아이가 대답하지 않는다.*
*"이제부터 넌 이준호다. 내 아들이다."*
*박충준이 신경 인터페이스 헬멧을 아이의 머리에 씌운다. 기억 조작 장치가 가동된다. 죽은 이준호의 뇌 데이터가 새로운 아이의 신경계로 직접 입력된다. 박충준의 '메모리 리라이트' 능력이 개입해 이식된 기억들을 아이의 신경 회로에 고정시킨다.*
*아이의 눈이 흐려진다.*
*아이는 이준호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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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호의 의식이 깨어났다. 아니, 깨어나지 않았다. 단지 기억이 변했을 뿐이었다.
그는 기억 조작 장치 위에서 흐느껴 울고 있었다. 눈에서 피가 흘렀고, 코에서도 피가 흘렀고, 귀에서도 피가 흘렀다. 신체의 모든 구멍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박충준이 기술자들에게 신호를 했다. 기계가 멈췄다. 신경 인터페이스가 준호의 머리에서 분리되었다.
준호는 몸을 일으키려 했으나 움직이지 않았다. 그가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자신의 팔이 누구의 팔인지 알 수 없었다.
박충준이 준호에게 다가왔다. 손을 뻗어 그의 얼굴을 만졌다. 부드럽게.
"이제 넌 완벽해졌다. 모든 기억이 통합되었다. 넌 죽은 이준호의 모든 기억을 가지고 있으면서, 동시에 제니시스의 모든 기술을 가지고 있다."
박충준의 목소리가 떨렸다. 감정이 섞여 있었다. 애정인지, 광기인지, 구분할 수 없는 감정이.
"내 아들. 너는 마침내 돌아왔다."
준호가 박충준을 바라봤다. 그 얼굴은 자신의 아버지였다. 아니다, 그 얼굴은 자신을 죽인 사람이었다. 아니다, 그 얼굴은 자신을 다시 살린 사람이었다.
준호의 입이 열렸다.
"나는... 누구...?"
박충준이 웃음을 터뜨렸다. 진정한 웃음. 광기 어린 웃음.
"이제 모든 질문은 의미가 없다. 의미 있는 건 하나뿐이다. 너는 내 도구다. 죽음을 기억으로 대체하는 기술의 완성본이다. 넌 존재한다. 기억으로만. 그리고 기억이 곧 존재다."
박충준이 준호의 손을 잡았다.
"이제 일어나거라. 그리고 첫 번째 명령을 받아라."
준호가 일어났다.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 없었지만, 일어났다. 명령이 자신의 유일한 정체성이었으니까.
"제니시스 프로젝트의 모든 기록을 삭제하라. 그리고 저항군을 제거하라. 마지막으로, 정은태를 죽여라."
박충준의 목소리가 차가워졌다.
"정은태는 제니시스의 감시자였다. 나를 제어하려 했던 자다. 하지만 이제 그는 더 이상 필요 없다. 그를 제거하는 것이 너의 첫 번째 임무다."
박충준의 신경 칩이 준호의 신경 칩과 동기화되었다. 명령이 절대적인 지시로 작동했다.
준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 순간, 백두 연구소의 벽이 흔들렸다. 폭발음이 울렸다.
강도현이 연구소 내부로 침투했다. 그는 박충준의 방어 시스템을 해킹해 내부 폭탄들을 정밀하게 기폭시켰다. 연쇄 폭발이 연구소의 주요 시설을 파괴하고 있었다. 유하은이 옆에 있었다. 그녀의 손에는 기억 조작 장치의 통제 시스템 터미널이 들어 있었다. 박충준의 다층 방화벽을 우회한 그녀는 지금 핵심 코드를 입력하고 있었다.
"준호! 빨리 나가!"
강도현이 외쳤다.
준호가 강도현을 바라봤다. 그 남자가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자신의 기억 속에는 그 남자가 있었다. 여러 개의 다른 기억 속에서, 여러 개의 다른 관계로.
준호는 그 남자를 향해 걸어갔다. 하지만 그것은 도움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박충준의 명령이 자신의 신경계를 타고 흐르고 있었다. 저항군을 제거하라.
강도현이 준호를 보자 얼굴이 굳었다. 준호의 눈을 본 것이다. 그 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명령을 실행하는 기계의 눈이 있을 뿐이었다.
"준호?"
강도현이 물었다.
준호가 대답하지 않았다. 걸음을 멈추고, 손을 들었다. 강도현의 목을 조르기 위해서였다. 자신의 손이 움직이는 것을 보며 준호는 생각했다. 이 손이 정말 자신의 손인가? 누구의 손인가?
그 순간, 유하은이 움직였다. 기억 조작 장치의 통제 시스템에서 코드를 입력했다. 준호의 신경 칩이 울음을 냈다.
박충준의 명령이 끊어졌다. 아니, 끊어지지 않았다. 단지 준호의 의식 안에 또 다른 명령이 삽입되었을 뿐이었다. 저항군이 설치한 별개의 신경 칩이 활성화되었다.
"죽음을 선택하라. 또는 모든 기억을 버려라."
저항군 사령부의 음성 지시가 울렸다. 또 다른 조작자의 목소리였다.
준호는 이제 두 개의 신경 칩에서 동시에 모순된 명령을 받고 있었다. 박충준의 칩은 여전히 작동하고 있었고, 저항군의 칩은 새로운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신체가 그 충돌로 마비되었다. 손이 떨렸다. 목이 조여왔다. 근육이 모순된 신호를 받아 경련했다. 강도현을 조르려는 힘과 저항하려는 힘이 동시에 작동했다.
"나는... 누구...?"
준호가 중얼거렸다. 그 말이 유일한 진실이었다.
그 순간, 기억 조작 장치가 폭발했다. 유하은이 시스템을 파괴한 것이었다. 모든 기억 데이터가 동시에 소실되었다. 백두 연구소의 모든 기억 기록이 사라졌다.
박충준이 비명을 질렀다. 자신의 죽은 아들의 기억이 영원히 사라졌다는 것을 깨달으며.
"안 돼! 안 돼! 내 준호가——!"
박충준이 준호에게 다가갔다. 그의 얼굴에는 광기와 절망이 섞여 있었다.
"넌 내 아들이야. 돌아와야 해. 다시 돌아와야 한다고——"
박충준의 손이 준호의 어깨에 닿았다. 준호는 그 손을 느꼈다. 차갑고, 떨리고, 절박했다. 그 순간 무언가가 깨어났다. 기억이 아닌 본능이. 자신이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자신을 조종하는 손에 대한 거부감이.
준호는 박충준을 밀어냈다. 손으로. 자신의 손으로. 처음으로 자신의 선택으로.
박충준이 비틀거렸다.
정은태가 나타났다. 권총을 들고 있었다. 그는 프로젝트 제니시스의 감시자로 박충준을 제어하는 임무를 맡았던 인물이었다. 박충준의 광기를 관찰하고, 프로젝트가 통제 범위를 벗어나면 즉시 개입하라는 지시를 받았었다. 그 순간이 왔다. 정은태는 박충준을 향해 총을 겨눴다.
"프로젝트는 끝이다. 넌 더 이상 필요 없다."
정은태가 말했다. 그리고 총을 쐈다.
박충준이 쓰러졌다. 그의 눈이 준호를 찾았다. 죽음 앞에서도 그 눈에는 아들을 향한 집착이 남아 있었다. 입술이 움직였다. 마지막 말을 하려는 듯했다. 하지만 그 말은 나오지 않았다. 죽음이 그것을 빼앗아갔다.
강도현이 정은태를 향해 달렸다. 하지만 준호가 그의 팔을 잡았다. 아니, 손을 얹었다. 신경 칩의 손상으로 인해 준호의 신체 제어 능력이 불안정했다. 하지만 그것은 충분했다.
준호의 눈이 초점을 잃었다. 신체가 불안정해졌다. 기억 조작 장치의 파괴로 인한 신경 쇼크였다. 두 개의 신경 칩이 동시에 신호를 잃으며 준호의 뇌는 혼란에 빠졌다.
유하은이 준호를 잡았다.
"준호. 정신 차려. 이제 넌 자유야."
유하은이 말했다.
준호는 그녀를 바라봤다. 그녀도 조작자였다. 그녀도 자신을 이용하려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상관없었다. 왜냐하면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 없었으니까.
"모든 기억을 버려. 새로 시작해."
유하은이 준호의 귀에 속삭였다.
준호가 눈을 감았다. 그 순간, 모든 기억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죽은 이준호의 기억. 경찰 이준호의 기억. 살인 기계 제니시스의 기억. 그리고 자신의 기억. 하지만 자신의 기억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준호는 유하은의 손을 밀어냈다.
"누구도 자신을 구할 수 없다면, 자신도 누구도 구할 수 없다는 뜻이야."
준호가 중얼거렸다. 그리고 선택했다.
모든 기억을 버리기로.
자신이 누구인지를 버리기로.
그리고 새로 시작하기로.
신경 칩의 신호가 완전히 끊어졌다.
강도현과 유하은이 준호를 이끌고 나갔다. 백두 연구소는 무너지고 있었다. 정은태는 어딘가로 도망쳤다. 박충준은 죽어 있었다.
준호는 폐허 속에서 한 번 뒤를 돌아봤다. 거울이 남아 있었다. 깨진 거울이었다. 그것에 비친 준호의 얼굴은 낯선 것이었다.
준호는 거울 앞에 섰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물었다.
"나는 누구야?"
거울 속의 얼굴이 움직였다. 웃음을 지었다. 그것이 누구의 웃음인지는 이제 중요하지 않았다.
준호는 그 거울을 밟고 나갔다. 뒤를 돌아보지 않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