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가락이 떨렸다
경기가 끝나고 로커룸으로 향하는 복도에서, 준호의 오른손은 통제 불능이었다. 지난 10분 동안 다섯 번이나 시간을 되감았다. 손가락이 경련을 일으켰다. 마치 누군가 다른 사람이 줄을 당기고 있는 것처럼. 대구 라이언스전에서 세 번, 인천 스카이맨과의 경기에서 두 번. 그 사이에 또 다른 경기들이 있었다. 정확히 몇 경기였는지 이제 기억도 안 난다. 리와인드. 리와인드. 리와인드.
손가락의 떨림은 더 이상 두려움이 아니었다. 중독의 신호였다.
로커룸의 문을 열었을 때, 박진수의 목소리가 먼저 들렸다.
"어? 준호 형이다. 우리 영웅님 오셨다."
다른 선수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것은 환영의 웃음이 아니었다. 준호는 이미 안다. 저 웃음의 정체를. 일주일 전과는 다른 종류의 웃음이었다. 일주일 전에는 의심의 웃음이었고, 지금은 냉소의 웃음이었다.
준호는 샤워실로 향했다.
물이 몸에 닿는 순간, 척추에 번개가 내려쳤다. 아니, 번개는 이미 내려친 것이었다. 지난 4일 동안 계속 내려쳤다. 준호는 찬물로 몸을 식히며 자신의 등을 만져봤다. 근육이 돌처럼 경직되어 있었다. 부종이 선명했다. 손가락을 누르면 자국이 남을 정도였다.
무릎도 마찬가지였다. 왼쪽 무릎은 계단을 내려갈 때마다 무너질 듯한 느낌을 줬다. 어제는 밤 3시까지 깨어 있었다. 통증 때문이 아니라 통증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로커룸으로 돌아와 옷을 입고 있을 때, 서윤이 다가왔다.
"준호. 밥 먹자."
준호가 고개를 들었다. 서윤의 표정은 밝았지만, 눈은 어두웠다. 포인트 가드의 눈은 거짓말을 못 한다.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괜찮아. 좀 피곤해서."
"피곤? 우리 에이스가 피곤해? 그게 무슨 소리야?" 서윤이 웃음을 지으며 준호의 어깨를 누눌렀다.
순간, 준호는 비명을 지를 뻔했다. 어깨에 만져진 손의 무게가 천 톤처럼 느껴졌다. 신경이 곤두서 있었던 것이다.
"정말 괜찮아?"
서윤의 목소리가 더 낮아졌다. 이제는 숨기지 않고 물어보고 있었다. 준호는 눈을 마주칠 수 없었다.
"응. 괜찮아. 정말."
거짓말이었다. 그것이 오늘만 세 번째 거짓말이었다.
"준호, 날 믿어?"
준호가 고개를 들었다. 서윤의 눈에는 상처가 맺혀 있었다.
"날 믿으면 말해. 뭐가 문제야?"
"아무것도 아니야."
"그게 거짓이잖아. 넌 왜 자꾸 날 속이려고 해?"
준호는 입을 다물었다. 서윤을 보고 싶지 않았다. 그 눈을 보면 자신의 모든 거짓이 드러날 것 같았다.
"나랑 우린 팀이야. 팀이라는 게 뭔지 알아?"
"알아."
"그럼 왜?"
준호는 대답할 수 없었다. 대답하면 모든 게 끝날 것 같았다. 리와인드도, 계약도, 생존도 모두.
서윤이 한 발 물러섰다. 그의 어깨가 축 내려갔다.
"내일 봐."
준호는 그의 뒷모습을 봤다. 신뢰가 조각조각 깨지는 소리를 준호는 들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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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도착한 것은 밤 10시였다.
준호는 거울 앞에 섰다. 침실의 조명이 약했지만, 충분했다. 창백했다. 정말로 창백했다. 일주일 전만 해도 검게 그을린 얼굴이었는데, 지금은 죽은 사람처럼 하얗다. 눈 밑에 검은 자국이 져 있었다. 눈 자체도 흐려 보였다.
이 얼굴이 자신의 얼굴일까?
준호는 손을 들어 올렸다. 떨렸다. 계속 떨렸다. 손가락이 제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휴대폰이 울렸다.
화면에 알 수 없는 번호가 떠 있었다. 지역번호도 없는 번호였다. 준호는 처음에는 무시하려다가, 결국 받았다.
"여보세요?"
침묵.
"누구세요?"
여전히 침묵이었다. 하지만 누군가 있다는 것은 분명했다. 숨소리가 들렸다.
그 순간, 문자가 도착했다.
**멈춰. 아직 늦지 않았어.**
준호의 손이 떨렸다. 휴대폰을 집어던질 뻔했다. 화면을 다시 봤다. 같은 알 수 없는 번호였다.
전화는 끊겼다.
준호는 거울을 다시 봤다. 거울 속의 자신은 더욱 창백해 보였다. 손가락이 떨렸다.
어두움 속에서 준호는 자신의 손가락을 바라봤다. 떨리는 손가락. 중독의 신호. 아니, 경고의 신호.
그 신호를 무시하고 리와인드를 사용했다. 다섯 번. 여섯 번. 일곱 번.
왜?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간단했다. 팬들의 환호. 미디어의 주목. 그리고 경영진의 약속. '플레이오프까지 버텨. 그럼 계약 연장해줄 테니까.'
5년 만의 챔피언십 결승전 진출. 그리고 계약 연장. 그것이 준호의 모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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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훈련장에 들어갔을 때, 강민준 코치가 준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준호. 내 사무실로 와."
준호의 심장이 철렁했다. 코치의 표정은 심각했다.
사무실에 들어가자마자, 코치가 물었다.
"너 뭔가 숨기고 있어. 신체에 문제 있어?"
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내가 물었어. 신체에 문제 있냐고."
"없습니다."
거짓말이었다. 코치는 알고 있었다. 준호의 움직임이 달라졌다는 것을. 지난 일주일 동안 준호의 스피드가 느려졌다는 것을.
"너 손가락 봤어?"
코치가 준호의 손을 잡았다. 손가락이 떨렸다. 코치의 눈이 가늘어졌다.
"이게 뭐야?"
"피로입니다."
"피로? 이건 신경계 손상이야. 과도한 사용으로 인한 신경계 손상. 넌 뭔가를 계속 하고 있어. 뭐를 하고 있어?"
준호는 입을 다물었다. 코치는 한참 동안 준호의 눈을 봤다. 마침내 코치가 말했다.
"플레이오프까지 벌 수 있는 경기는 몇 개 안 돼. 그 동안 너를 잃을 순 없어. 알겠지?"
준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회복 시간을 가져. 지금부터 훈련 강도를 줄인다."
"아, 코치. 제가 괜찮습니다. 정말로요."
코치가 준호를 바라봤다. 그 눈에는 실망과 안타까움이 섞여 있었다.
"넌 내 말을 듣지 않는구나."
코치가 돌아섰다. 준호는 사무실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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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3시, 경영진 이은철의 전화가 왔다.
"준호. 지금 시간 있어?"
"네."
"우리 사무실로 와. 좋은 소식이 있어."
준호는 경영진 사무실로 갔다. 이은철은 테이블 위에 계약서를 펼쳐 놓고 있었다.
"봤어? 계약 연장서야. 우리가 플레이오프까지 잘하면, 3년 연장하기로 했어. 연봉도 올려주고."
준호의 눈이 반짝였다. 3년. 3년의 안정. 3년의 생명.
"조건이 하나 있어."
이은철이 계약서를 손가락으로 짚었다.
"지금처럼만 해. 이번 플레이오프에서 넌 계속 이 정도 활약을 해줘야 해. 우리가 우승할 수 있거든."
준호는 계약서를 바라봤다. 숫자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이은철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신체 문제는 절대 밖으로 새지 마. 미디어한테 말하면 안 돼. 우리 팀의 이미지에 상처가 돼. 넌 완벽해야 해. 팬들이 원하는 건 그거야."
준호의 손가락이 떨렸다. 이은철이 그것을 봤다.
"뭐, 신체에 문제 있는 건가?"
"없습니다."
"그럼 손가락은 왜 떨려?"
"피로입니다."
이은철이 웃음을 지었다. 포식자의 웃음이었다.
"피로. 좋아. 그럼 그 피로를 플레이오프까지 관리해. 알겠지? 우리가 우승하면 넌 영웅이고, 계약도 따라온다. 하지만 신체 문제로 밝혀지면? 그땐 다른 얘기야."
준호는 계약서를 봤다.
"신체 문제를 숨겨야 한다는 뜻인가요?"
이은철이 계약서를 넘겼다.
"문제가 없다고 해야 한다는 뜻이야. 이해해?"
준호는 입을 다물었다. 계약서에 서명하려는 손이 떨렸다.
"뭐, 고민이 있어?"
"아뇨."
"그럼 서명해."
준호는 펜을 들었다. 손가락이 떨렸다. 펜을 제대로 잡을 수 없었다.
"손가락이 떨리네. 피로가 심한 가 봐. 그래도 우리 팀을 믿고 플레이오프까지 버텨줄 거지?"
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펜으로 계약서에 서명했다. 글씨가 흔들렸다.
"좋아. 이제 우린 파트너야. 우승을 향해 함께 가자."
이은철이 손을 내밀었다. 준호가 손을 잡았다. 손가락이 떨렸다.
준호는 사무실을 나왔다. 복도에서 멈춰 섰다.
신뢰 대 생존. 팀 대 자신. 완벽함 대 현실.
그 모든 것이 무너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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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밤, 준호는 훈련장의 수영장으로 갔다. 팀 선수들이 사용하지 않는 시간이었다. 혼자였다.
물에 들어갔다. 물이 척추를 감쌌다. 통증이 조금 완화되는 느낌이었다. 일시적인 안도감이었다.
준호는 물 위에 떠 있었다. 천장을 봤다. 수영장의 조명이 물 위에 반사되고 있었다.
그 순간, 준호는 누군가의 발소리를 들었다.
발소리는 수영장 입구에서 멈췄다. 준호가 고개를 돌렸다.
낯선 노인이 서 있었다. 준호는 그를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의 눈은 익숙했다. 마치 자신의 미래를 보는 것 같은 눈이었다.
노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준호를 바라봤다. 그 눈에는 슬픔이 있었다. 그리고 안타까움이 있었다.
"누세요?"
준호가 물었다.
노인은 입을 열었다. 천천히, 분명하게.
"멈춰. 지금이라도 멈춰."
목소리는 낮고 무거웠다. 마치 깊은 우물에서 올라오는 소리처럼.
"제가 뭘 하고 있는지 어떻게 알아요?"
"넌 이미 너 자신을 잃고 있어. 눈만 봐도 알아."
노인이 한 발 다가섰다.
"그 능력, 계속 쓰면 넌 돌아올 수 없어. 알겠어?"
"누구세요? 제 능력을 어떻게 알아요?"
노인이 준호의 눈을 바라봤다. 그 시선은 뜨거웠다.
"나는 너처럼 된 사람을 알아. 그 사람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아니?"
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죽었어. 리와인드를 쓰다가 죽었어. 신체가 먼저 망가졌고, 정신이 따라갔어. 그 사람도 처음엔 너처럼 생각했어. 조금만 더, 한 번만 더. 그렇게 계속하다가 돌아올 수 없는 곳까지 갔어. 그리고 이제 그 사람은 없어."
노인의 목소리가 떨렸다.
"넌 아직 돌아갈 수 있어. 지금이라도."
"돌아가면 뭐가 남아요? 팀도 떠나고, 계약도 없고."
"그래도 넌 살아있어. 그게 전부야."
노인이 한 발 물러섰다.
"기억해. 멈추는 게 약함이 아니야. 멈추는 게 강함이야. 누군가를 지키는 것, 자신을 지키는 것. 그게 진짜 승리야."
노인이 돌아섰다.
"잠깐, 당신은 누구세요?"
노인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냥 사라졌다. 준호는 빠르게 물에서 나왔다. 하지만 입구에는 아무도 없었다. 발자국도 없었다. 마치 환상처럼.
준호는 옷을 입었다. 손가락이 떨렸다. 더 심하게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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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준호의 휴대폰이 울렸다. 같은 알 수 없는 번호였다.
이번에는 문자가 먼저 도착했다.
**넌 뭘 하고 있어? 이게 네가 원한 거야?**
준호는 차를 세웠다. 손가락으로 문자를 입력하려 했지만, 손가락이 떨려서 입력할 수 없었다.
휴대폰이 다시 울렸다. 같은 번호였다.
이번에는 받지 않았다.
준호는 핸들을 잡고 있었다. 손가락이 떨렸다. 계속 떨렸다.
그 떨림 속에서, 준호는 깨닫기 시작했다.
자신이 중독에 빠져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중독이 자신을 죽이고 있다는 것을.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왜냐하면 멈추는 순간, 자신이 사라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준호라는 이름이 사라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준호는 다시 차를 움직였다. 향하는 곳은 훈련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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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1시의 훈련장은 텅 비어 있었다. 준호는 혼자 코트에 들어섰다.
공을 집었다. 손가락이 떨렸다.
슈팅 폼을 취했다. 손가락이 떨렸다.
슛을 날렸다.
공은 림을 맞추고 튕겨나갔다.
준호는 다시 공을 집었다.
슈팅.
미스.
슈팅.
미스.
슈팅.
골.
준호는 계속 슈팅했다. 손가락이 떨렸다. 척추가 아팠다. 무릎이 무너질 듯했다.
하지만 멈추지 않았다.
그 순간, 준호의 손이 멈췄다.
다음 슛을 날리려는 순간, 손가락이 경련을 일으켰다. 공이 손에서 떨어졌다.
준호는 손을 바라봤다. 손가락이 제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리와인드를 사용할 수 있었다. 시간을 되돌리고, 다시 슈팅할 수 있었다. 경영진의 약속도 있고, 계약도 있고, 챔피언십도 있었다.
하지만 준호는 멈춰 있었다.
서윤의 상처받은 눈이 떠올랐다. 코치의 실망한 표정이 떠올랐다. 그리고 노인의 말이 떠올랐다.
'멈추는 게 강함이야.'
준호는 손을 내려놨다.
공은 그대로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밤 1시가 될 때까지, 준호는 그 공을 집지 않았다.
그리고 리와인드를 사용하지 않았다.
손가락은 여전히 떨렸다. 척추는 여전히 아팠다. 무릎은 여전히 불안정했다.
하지만 그 순간, 준호는 뭔가를 깨달았다.
신뢰를 잃는 것보다 신체를 잃는 게 더 빠르다는 것을.
그리고 신체를 잃으면 신뢰도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준호는 천천히 일어섰다.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을 집었다.
서윤에게 문자를 보냈다.
**미안해. 내일 만나자. 모든 걸 말할게.**
손가락이 떨렸지만, 준호는 보냈다.
코트를 나가며 준호는 뒤를 돌아봤다. 바닥에 떨어진 공이 보였다.
그 공을 집지 않는 것이, 자신을 살리는 첫 번째 선택이었다.
준호는 훈련장을 나갔다.
밤거리는 조용했다. 손가락은 여전히 떨렸다.
하지만 이번엔 다른 종류의 떨림이었다.
죽음 직전의 공포가 아니라,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희미한 가능성이 만드는 떨림이었다.
그 가능성은 여전히 희미했다. 서윤의 답장이 올지도 알 수 없었다. 코치가 자신을 받아줄지도 알 수 없었다. 경영진은 분명 계약 취소를 통보할 것이었다.
하지만 준호는 살아있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