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바운드 타이머 4화
경기장의 조명이 적색으로 변했다. 서울 타이거스 대 대구 라이언스, 정규시즌 12라운드. 준호는 벤치에서 일어나야 한다는 신호를 받고 있었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49:54. 5점 차이. 3쿼터 막바지.
강민준 코치의 목소리가 벤치를 가르고 날아왔다.
"준호!"
준호는 트레이닝복을 벗어던지고 일어났다. 손가락이 이미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새벽 체육관에서의 훈련, 친선경기에서의 각성, 그리고 3일 전 로커룸 전화 통화까지—모든 것이 이 순간을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코트에 들어서는 순간, 준호의 머릿속은 혼란스러웠다. 능력을 써야 한다는 충동과 신체의 한계가 충돌했다. 대구 라이언스의 센터 김준식이 그를 마주했다. 190cm의 덩어리 같은 몸. 준호는 189cm였다. 그 1cm의 차이가 지금 세상 같았다.
*한 번만. 한 번만 더.*
손을 벌리고 싶은 충동이 밀려왔다. 리와인드를 쓰면 모든 게 쉬워질 텐데. 하지만 손가락의 경련이 그것을 거부했다. 신체가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좋아, 준호. 침착해."
서윤이 속삭였다. 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거짓이었다.
첫 번째 플레이는 3쿼터 마지막 초 근처였다. 대구가 볼을 소유한 상태. 라이언스의 포인트가드 박상민이 준호를 향해 페이크를 날렸다. 준호의 발이 떨어졌다.
박상민은 재빠르게 골 아래로 침투했다.
준호는 즉시 판단했다. 이 플레이는 안 된다. 아직 3초나 남아 있다. 리와인드를 쓸 타이밍이 아니다. 하지만 손이 떨렸다. 심장이 울렸다. 그리고 뇌가 명령했다.
*한 번만. 한 번만 더.*
준호는 손을 벌렸다.
세상이 뒤로 간다. 공이 박상민의 손에서 벗어나 다시 그의 손으로 돌아온다. 라이언스의 센터 김준식이 뒷걸음질을 친다. 관중의 환호성이 역재생된다. 준호의 척추에 얼음이 흐른다.
10초 전.
이번에는 준호의 발을 놓지 않았다. 박상민의 페이크를 읽었다. 스틸. 준호의 손가락이 공을 집어챘다. 그리고 앞으로 튕겨 보냈다.
서윤이 중원에서 그 공을 잡았다. 빠른 공격. 준호는 이미 골 아래에 있었다. 손가락이 터질 것 같은 통증 속에서 준호는 레이업을 올렸다.
골.
체육관이 울렸다.
49:56에서 51:56으로.
"좋아! 좋아!"
서윤이 준호를 밀어냈다. 팀 동료들이 손뼉을 쳤다. 그러나 준호의 손가락은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그것은 기쁨의 떨림이 아니었다.
4쿼터로 넘어갔다. 준호의 호흡이 가팠다. 신체 손상의 신호들이 곳곳에서 올라왔다. 왼쪽 무릎이 저렸다. 척추 중앙이 욱신거렸다. 하지만 경기는 계속됐다.
대구 라이언스가 2점을 내리꽂았다. 53:58.
팀이 공격했다. 박진수가 슛을 날렸다. 튕겨 나왔다. 다시 대구의 공.
4쿼터 4분 30초. 준호는 또 다른 선택지를 마주했다.
라이언스의 파워 포워드 이동훈이 중거리 슈팅을 올렸다. 그것이 들어갈 것 같았다. 준호의 반사신경이 움직였다. 손을 들었다. 공은 이미 궤적 위에 있었다.
블록은 불가능했다.
그렇다면 다시 하자.
준호는 이미 손을 벌리고 있었다. 몸이 움직였다. 의식이 명령하기 전에.
세상이 역주행한다. 이동훈의 슈팅 폼이 역재생된다. 준호의 신체가 다시 배치된다. 척추에 못이 박힌다. 무릎이 비틀린다. 하지만 이번에는 준호의 손이 정확했다.
블록아웃.
공이 준호의 손에서 튕겨 나갔다. 그것은 코트 중앙으로 날아갔다. 서윤이 그것을 낚아챘다. 빠른 전개. 준호는 이미 골 아래로 달렸다. 아니, 달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몸이 따라가지 않았다.
대신 서윤이 준호를 본다. 준호가 손을 편다. 그것은 레이업의 신호가 아니었다. 그것은 '맡긴다'는 신호였다.
서윤은 즉시 이해했다. 준호의 신체 상태를. 준호의 선택을. 서윤은 슈팅 폼을 완성했다.
아르크로 그려지는 궤적. 공이 림에 닿는다. 한 번. 두 번. 그리고.
골.
체육관이 폭발했다. 53:59에서 55:59로. 동점이다.
스타디움의 함성이 준호의 귀에 들어왔다가 나갔다. 준호는 손을 내렸다. 손가락이 이제는 경련하고 있었다. 단순한 떨림이 아니었다. 근육이 자동으로 오므렸다 펴졌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준호! 괜찮아?"
서윤이 달려왔다. 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거짓이었다.
남은 경기는 치열했다. 대구 라이언스가 다시 3점을 내리꽂았다. 58:59. 타이거스가 반격했다. 박진수가 2점을 넣었다. 60:59. 대구가 다시 2점. 62:60.
4쿼터 1분 15초. 준호는 코트 위에 있었다. 손가락이 여전히 경련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더 심했다. 무릎도 저렸다. 척추는 이미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그러나 타이머는 멈추지 않았다.
대구의 박상민이 다시 침투를 시도했다. 준호는 수비를 섰다. 박상민의 페이크. 준호의 발이 떨어졌다.
*한 번만.*
준호의 손이 벌어졌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를 것 같았다. 신체의 신호가 더 강했다. 척추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손가락이 아니라 전신이 경련했다.
준호는 멈췄다.
손을 내렸다. 리와인드를 쓰지 않기로 결정했다. 신체의 비명이 더 이상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박상민의 페이크가 준호를 흔들었지만, 준호는 버텼다. 침투를 막았다.
서윤이 공을 잡았다. 빠른 공격. 준호는 달렸다. 신체가 비명을 지르지만 달렸다.
준호는 서윤을 본다. 서윤은 준호를 본다.
준호의 손이 편다. '맡긴다'는 신호.
서윤은 슈팅을 올린다. 골.
64:60에서 64:62로.
체육장이 울었다. 남은 시간은 1분. 대구가 타임아웃을 부른다.
준호는 벤치로 돌아갔다. 그곳에서 강민준 코치가 기다리고 있었다.
남은 1분은 지옥이었다. 대구가 다시 2점을 넣었다. 66:62. 타이거스가 3점슈팅으로 답했다. 65:65.
50초. 대구의 볼. 박상민이 드리블을 한다. 준호의 손가락이 경련한다. 박상민이 슈팅을 올린다.
튕겨 나온다.
리바운드 싸움. 서윤과 대구의 파워 포워드가 점프한다. 서윤이 공을 얻는다. 빠른 전개. 준호는 골 아래에 있다.
아니, 있어야 한다.
준호는 달렸다. 신체가 비명을 지른다. 왼쪽 무릎이 비틀린다. 척추가 욱신거린다. 손가락이 경련한다.
하지만 준호는 달린다.
서윤이 준호를 본다. 준호가 손을 편다. 이번에는 리와인드를 사용하지 않았다. 그냥 신뢰했다.
서윤이 패스한다.
준호가 레이업을 올린다.
골.
체육장이 폭발한다. 66:67. 타이거스의 역전.
남은 시간은 3초. 대구의 타임아웃. 마지막 플레이. 박상민이 풀코트 슈팅을 날린다.
날아간다.
날아간다.
빗나간다.
종료 사인이 울린다.
서울 타이거스의 첫 승리다.
관중들이 일어섰다. 손뼉이 울렸다. 팀 동료들이 코트로 뛰어내렸다. 준호는 서윤에게 안겼다. 서윤이 준호의 등을 두드렸다.
"해냈어. 해냈어!"
준호는 웃었다. 하지만 그것은 승리의 웃음이 아니었다.
---
로커룸.
준호는 벤치에 앉았다. 경기 후 한 시간이 지났다. 샤워도 했다. 옷도 갈아입었다. 하지만 손가락의 경련은 멈추지 않았다.
왼쪽 손가락. 검지와 중지가 자동으로 오므렸다 펴졌다를 반복했다. 준호는 손을 내려다봤다.
"당신이 저를 선택한 이유가 뭔가요?"
준호의 머리가 들렸다. 김태현이 서 있었다. 신인 가드. 준호를 우상으로 생각하는 선수.
"뭐?"
"당신이... 저를 선택한 이유요."
김태현의 눈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의 목소리는 조용했지만 간절했다.
"아까 마지막 슈팅. 서윤 선배한테 패스하셨잖아요. 왜 저한테 안 하셨어요? 저는 명확한 슈팅 기회가 있었는데."
준호는 대답하지 못했다. 손가락이 더 심하게 경련했다.
"아, 미안해. 내가..."
"아니에요. 그냥... 궁금해서요."
준호는 입을 열었다. 김태현을 바라봤다. 신인의 눈에는 신뢰와 실망이 뒤섞여 있었다.
"태현아. 내가 서윤이를 선택한 건... 넌 충분히 잘했어. 정말 잘했어. 하지만 내 신체가 극한에 다다랐어. 마지막 슈팅까지 가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리와인드를 최대한 아끼는 것뿐이었어. 그래서 내가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 맡긴 거야. 그건... 넌 충분히 잘했다는 뜻이기도 해."
김태현의 눈이 흔들렸다.
"내가 너한테 공을 못 줄 때, 그건 너를 믿지 않아서가 아니야. 내가 너를 믿기 때문에, 너를 더 이상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았어. 이해가 돼?"
김태현은 눈을 감았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눈물이 흘렀다. 하지만 이번에는 실망의 눈물이 아니었다.
"감사합니다, 선배."
김태현이 돌아섰다. 이번에는 떠나갔다.
준호는 손을 들었다. 손가락이 여전히 경련하고 있었다. 하지만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마치 어떤 무게가 덜어진 듯한.
---
다음 날 오후. 강민준 코치의 사무실.
"앉아."
준호는 앉았다. 코치는 준호를 오래 바라봤다. 그 시선이 불편했다.
"어제 경기 봤나?"
"네, 코치님."
"네가 능력을 몇 번 썼지?"
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2번이야. 내가 센 거야. 그리고 3번째를 쓸 뻔했어. 하지만 넌 멈췄다."
준호는 고개를 들었다.
"신체 상태가 좋지 않아 보이는데?"
"괜찮습니다."
"거짓말이지."
준호는 눈을 내렸다.
"능력은 넌 몇 번 더 쓸 수 있어. 하지만 넌 더 이상 못 쓸 거야. 이해가 돼?"
"...네."
"그게 아니라 물었어. 이해가 돼냐고."
준호는 고개를 들었다. 코치의 표정은 엄격했지만 그 눈은 다른 것을 말하고 있었다. 그것은 분노가 아니었다. 그것은 두려움이었다.
"능력은 너를 구하기 위한 게 아니야. 그건 팀을 위한 거야. 그리고 팀을 위한 능력은 결코 개인의 신체를 망가뜨릴 만큼 쓰여서는 안 돼. 알겠니?"
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경기는 언제지?"
"5일 후입니다."
"5일 동안 회복해. 그게 내 명령이야."
코치는 준호를 더 바라봤다. 마치 그를 설득하려는 듯이.
"넌 충분해. 이미 충분한 거야. 더 이상 증명할 필요 없어."
코치의 말이 준호의 가슴에 박혔다. 준호는 손을 펼쳤다 오므렸다를 반복했다. 손가락의 경련이 조금씩 약해지고 있었다. 마치 긴장이 풀리는 듯한 느낌. 하지만 그것이 안도감인지 불안감인지는 알 수 없었다.
"고맙습니다, 코치님."
준호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사무실을 나가려고 했다.
"준호."
준호는 멈췄다.
"그리고... 잘했어. 정말."
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무실을 나갔다.
---
그 날 저녁. 미디어 발표회.
구단 경영진 이은철이 마이크 앞에 섰다.
"서울 타이거스는 어제 중요한 승리를 거뒀습니다. 그리고 그 승리의 중심에는 이준호 선수가 있었습니다."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다.
"이준호 선수의 복귀가 우리 팀의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앞으로의 경기도 기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경영진은 웃었다. 그 웃음은 계산된 것이었다. 단기 실적을 위한 미디어 조종. 팬들의 기대감 조성. 준호는 단순한 수치일 뿐이었다.
준호는 집에서 그 발표를 TV로 봤다. 경영진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자신을 도구처럼 다루는 것처럼 들렸다. 자신의 신체는 팀의 자산이고, 자신의 능력은 구단의 마케팅 수단이었다.
그렇다면 다음 경기는 어떻게 해야 할까.
코치는 5일의 회복을 명령했다. 능력을 절제하라고 했다. 하지만 경영진은 준호가 팀의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 기대는 곧 압박이 될 것이었다. 팬들의 기대, 팀의 기대, 구단의 기대. 모든 것이 준호의 능력 사용을 강요할 것이었다.
손가락이 다시 경련하기 시작했다.
---
밤 11시. 샤워실.
준호는 혼자였다. 로커룸의 다른 선수들은 이미 나갔다. 준호만 남았다.
준호는 손을 들었다. 왼쪽 손가락. 검지와 중지가 여전히 경련하고 있었다. 오른쪽 손도 마찬가지였다. 이전과는 다르게, 이제는 경련이 멈추지 않았다.
준호는 손을 움켜쥐었다. 더 세게. 더 세게.
"이건... 너무 빨리 진행되고 있어."
중얼거림이 샤워실에 울렸다. 준호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신체의 손상이 누적되고 있었다. 코치는 5일의 회복을 명령했지만, 준호는 알고 있었다. 이 정도의 손상은 5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그 순간, 어두운 그림자가 샤워실 입구에 나타났다.
준호는 고개를 들었다. 그 실루엣을 본 순간, 준호의 호흡이 멈췄다.
신비한 노인이었다.
노인은 준호의 손을 바라봤다. 손가락의 경련을 직접 목격했다. 노인의 눈이 천천히 움직였다. 준호의 손에서 준호의 얼굴로. 그리고 다시 손으로.
노인의 표정이 변했다. 처음에는 엄격했던 눈이 이제는 뭔가 다른 감정으로 물들고 있었다. 실망. 그것은 분명했다.
노인은 천천히 다가왔다. 준호의 손을 직접 집어들었다. 손가락의 경련을 만져봤다. 거칠어진 피부. 멈추지 않는 떨림. 노인의 손이 준호의 손을 감쌌다.
"이 길은 아니야."
노인의 목소리가 샤워실에 울렸다. 그것은 경고였다. 하지만 동시에 애도였다.
"당신은 아직도 모르는군."
노인의 눈이 준호를 바라봤다. 그 눈에는 수십 년의 시간이 담겨 있었다.
"능력은 축복이 아니야. 그것은 시험이야. 그리고 넌 지금 시험에 떨어지고 있어."
노인은 준호의 손을 놓았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흔들었다.
한 번. 두 번. 세 번.
그것은 명확한 신호였다. 경고였다. 준호가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는 것을. 능력을 남용하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결말이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5일 뒤 경기에서 넌 또 쓸 거야. 그리고 그 다음도. 그 다음도."
노인의 목소리가 준호의 귀를 뚫었다.
"결국 넌 모든 걸 잃을 거야. 팀도. 신체도. 그리고 스스로도."
노인은 돌아섰다. 어둠 속으로 사라지기 전에, 한 번 더 고개를 흔들었다.
"아직도 시간이 있어. 멈춰."
준호는 일어나려고 했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신체의 피로가 극에 달해 있었다. 노인의 말이 자꾸만 떠올랐다.
*아직도 시간이 있어. 멈춰.*
준호는 손을 들었다. 손가락이 여전히 경련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이 다른 신호처럼 느껴졌다.
경고의 신호.
노인의 고개 흔들림과 손길이 자꾸만 떠올랐다. 그것은 분명한 메시지였다. 준호가 뭔가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는 것을. 능력을 남용하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결말이 어떻게 될 것인지를.
준호는 손가락을 바라봤다. 경련은 멈추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