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능력의 대가
병원 대기실의 형광등이 준호의 얼굴을 하얀색으로 밀어냈다. 의사는 엑스레이 필름을 들었다 놨다를 반복했다. 척추, 무릎, 손목—모두 정상 범위였다.
"특이 소견이 없네요. 근력 저하는 나이 때문일 수 있고, 손가락 경련은 스트레스성으로 보입니다. 충분한 휴식을 취하세요."
의사의 말은 준호를 지나갔다. 밤새 벽에 던진 공이 손으로 돌아오던 장면이 자꾸만 떠올랐다. 시간이 역행했다. 공의 궤적이 정확히 반대로 흘렀다. 그것은 환각이 아니었다. 신체는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의사는 모르고 있었다.
준호는 일어섰다. 의사의 말과 자신의 감각 사이의 간극이 가슴을 헤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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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열한 시, 준호는 아파트 거실에 섰다. 농구공이 손 위에 있었다. 거실 벽까지 거리는 정확히 2미터 80센티미터였다. 몇 번 재었다. 밤새 그 거리를 계산했다.
공을 던졌다.
벽에 맞은 공이 튕겨 돌아왔다. 준호가 손을 들었다. 공이 손가락 끝에 닿는 순간, 세상이 끝났다.
뼈가 시렸다. 척추부터 발끝까지 모든 뼈가 얼음물에 잠긴 것처럼 저렸다. 근육이 경련했다. 팔뚝의 근섬유가 수축과 이완을 반복했고, 허벅지가 떨렸다. 준호는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입에서 신음이 새어 나왔다.
그것은 통증이 아니었다. 통증은 명확한 경계가 있는 것이다. 이것은 몸 전체가 거부하는 신호였다. 세포가 비명을 지르는 소리였다.
5분이 지났을까. 10분이 지났을까. 경련이 멈추고 떨림만 남았다. 준호는 손가락을 펼쳤다. 공이 거기 있었다. 손 위에. 벽에 맞기 전의 위치에.
그 순간, 휴대폰이 울렸다.
강민준 코치였다.
"내일 훈련 나와."
코치의 목소리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었다.
"구단에서 방출을 공식 발표할 거야. 근데 그 전에 넌 한 번 더 보여줄 기회가 있어. 친선경기. 내일 오후 3시."
준호는 말할 수 없었다. 손가락이 여전히 경련했다.
"마지막 기회야, 준호. 넌 알겠지?"
코치가 끊었다. 준호는 거실 바닥에 앉아 있었다. 공은 여전히 손 위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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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세 시, 준호는 침대에 누워 있었다.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른손을 들었다 내렸다를 반복했다. 손가락의 경련은 거의 멈춰 있었지만, 뼈의 저린 감각은 여전했다.
능력을 다시 정리해 봤다.
10초. 공이 벽에 맞고 손으로 돌아오는 동안 정확히 10초였다. 그 이상은? 15초를 시도했다면? 20초를? 능력이 멈춰 있을까, 아니면 시간이 더 역행할까?
그리고 대가. 이 통증. 뼈 하나하나가 부서질 것 같은 저 느낌. 한 번 더 쓸 수 있을까? 두 번? 한 경기 동안 몇 번이나 쓸 수 있을까?
"하지만 기회다."
손가락이 다시 떨렸다. 이번엔 두려움 때문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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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1시 30분, 준호는 체육관에 들어섰다. 강민준 코치가 기다리고 있었다. 코치는 준호를 위아래로 훑어봤다.
"뭔가 다르네."
그 말이 전부였다. 준호는 라커룸으로 내려갔다.
박진수가 나타났다. 로커 앞에 서 있었다. 고의적이었다.
"또 실패할 준비 됐어?"
박진수의 입가에 비웃음이 떠 있었다. 그 웃음 뒤에는 다른 감정이 숨어 있었다. 준호가 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 자신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싶은 욕망. 하지만 더 깊은 곳에는 다른 두려움이 있었다. 준호 없이는 자신이 평범하다는 자각. 그것이 박진수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준호의 손가락이 움직였다. 주먹을 쥐었다. 펼쳤다. 다시 쥐었다. 팔뚝의 근육이 팽팽해졌다. 호흡이 깊어졌다. 코를 통해 천천히 들이마셨다. 입으로 천천히 내뱉었다.
박진수는 준호의 얼굴을 보고 있었다. 무언가가 변했다. 그것이 무엇인지 박진수는 알 수 없었지만, 준호의 눈빛이 다르다는 것은 분명히 보였다.
준호가 박진수를 지나쳤다. 어깨가 스쳤다. 박진수는 중얼거렸다.
"끝났어. 넌 이미 끝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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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커룸을 나온 준호는 코트에 섰다. 서윤이 공을 튀기고 있었다. 서윤의 눈이 준호를 맞췄다. 포인트 가드는 한 번 웃었다. 그리고 공을 던졌다. 준호가 받았다.
"넌 할 수 있어."
경기는 30분 친선경기였다. 준호 팀 vs. 서울 타이거스 2군 팀. 상대는 약했다. 하지만 준호는 능력을 쓰지 않았다.
1쿼터. 준호는 윙 포지션에서 움직였다. 슛을 쐈다. 골인. 다시 슛을 쐈다. 골인. 서윤의 패스를 받았다. 3점슛. 골인.
상대 수비수가 준호에게 붙었다. 더 타이트하게. 준호는 한 발 물러섰다. 그 공간에서 또 다른 슛을 쐈다.
중간에 한 번, 준호는 슛을 놓칠 뻔했다. 볼이 림에 맞고 튕겨 나갔다. 순간, 준호의 손가락이 경련했다. 능력을 쓸 수 있었다. 10초 뒤로 돌려서 다시 할 수 있었다.
준호는 멈췄다.
그 유혹이 얼마나 강한지 몸이 반응했다.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한 번만. 단 한 번만 더 시도하면 완벽한 슛이 될 텐데. 하지만 준호는 그 유혹을 밀어냈다. 그 실패가 진짜였기 때문이다. 그 실패 속에서 다음 움직임이 나왔다. 서윤이 리바운드를 잡았다. 준호에게 패스를 줬다. 준호가 다시 슈팅 자세를 잡았다.
골인.
그것이 더 아름다웠다.
경기가 끝났을 때 준호의 팀은 87:64로 이겼다. 준호는 32점을 득점했다. 능력 없이.
라커룸으로 돌아오며 서윤이 준호의 어깨를 쳤다.
"봤지? 넌 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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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준 코치가 준호를 별도의 공간으로 불렀다. 코치는 준호를 바라봤다.
"오늘 능력을 쓰지 않았다."
그것은 질문이 아니었다. 코치는 알고 있었다.
"네."
"왜?"
준호는 대답하지 못했다. 정확한 이유를 말할 수 없었다. 다만 알았다. 능력이 있으면 그것에 기대게 된다는 것을. 능력에 기대면 자신의 진정한 약점과 마주칠 수 없다는 것을. 그리고 팀원들의 신뢰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코치는 고개를 끄덕였다.
"구단에서 방출을 잠시 보류하기로 결정했다. 넌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 이후는 넌 정해야 해."
"이후는요?"
"능력으로 모든 걸 되돌릴 수 있다고 생각했지? 그럼 틀렸어. 능력은 그런 게 아니야."
코치가 준호의 눈을 바라봤다.
"능력은 너를 구하기 위한 게 아니라... 너를 선택하게 하는 거야. 무엇을 할지, 어떻게 할지를 넌 스스로 정해야 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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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호가 아파트에 돌아온 것은 밤 11시였다. 거실에 섰다. 농구공을 손에 들었다.
다시 한 번 해볼까.
손가락이 경련했다. 이번엔 두려움도, 흥분도 아닌 다른 감정이었다. 확인욕. 검증욕.
공을 던졌다. 벽에 맞은 공이 되돌아왔다. 손이 공을 받으려 했다.
그 순간, 휴대폰이 울렸다.
미디어 알림이었다.
[속보] 서울 타이거스, 플레이오프 진출 확정. 5년 만에 챔피언십 진출 경로 열렸다.
준호의 손에서 공이 떨어졌다. 벽에 맞고 바닥에 굴렀다. 그냥 굴렀다. 역행하지 않았다. 능력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휴대폰 화면이 밝았다. 다음 기사는 이미 올라와 있었다.
[단독] 챔피언십 결승전 상대는 부산 드래곤즈. 전력 격차 큼. 타이거스 우승 가능성 5%.
준호는 화면을 내렸다. 바닥의 공을 봤다. 그 공은 움직이지 않았다.
부산 드래곤즈. 그들은 단순히 강한 팀이 아니었다. 5년 전 준호가 경험한 바로 그 팀이었다. 4쿼터 5분 남겨두고 준호의 슈팅이 떨렸다. 손가락이 경련했다. 공이 공중에서 돌았다. 백보드를 맞고 튕겨 나갔다. 그 다음은 역전 패배였다. 5년. 정확히 5년 동안 그 순간이 준호를 따라다녔다.
이제 다시 그들을 만난다. 하지만 이번엔 다를 것이다.
준호는 침실로 들어갔다. 침대에 누웠다. 천장을 바라봤다. 척추가 저렸다. 무릎이 아팠다. 능력 사용의 대가는 신체에 누적되는 손상이었다.
코치의 말이 맴돌았다.
"능력은 너를 구하기 위한 게 아니라... 너를 선택하게 하는 거야."
그렇다. 준호는 깨달았다. 능력은 도구일 뿐이었다. 중요한 것은 그 도구를 어떻게 사용할지, 언제 사용하지 않을지를 선택하는 것이었다. 어제 친선경기에서 준호가 능력을 거절했을 때, 그것이 진정한 선택이었다. 그리고 그 선택이 팀원들에게 신뢰를 주었다.
플레이오프까지 남은 시간은 3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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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 타이거스 훈련장은 이상한 분위기로 가득 차 있었다. 플레이오프 진출이 확정되자 팀 내 에너지가 폭발했다. 선수들이 웅성거렸다. 코칭 스태프가 바쁘게 움직였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무언가 결여된 것이 있었다. 신뢰였다.
준호가 라커룸에 들어섰을 때 그 공기를 즉시 느낄 수 있었다. 일부 선수들의 시선이 준호를 향했다. 그들의 눈빛은 명확했다. 여전히 의심하고 있었다.
박진수가 로커 앞에서 준호를 봤다. 그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어제 친선경기 봤지? 2군 상대로 32점이래. 와, 진짜 대단하다."
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박진수가 더 가까이 다가왔다.
"근데 부산이 상대면 어떨까? 최동욱이 넌 봤지? 저 선수 너한테 붙으면 넌 3점도 못 먹을 거야."
"진수."
서윤의 목소리가 박진수를 중단시켰다. 서윤은 라커에 기대고 있었다. 표정은 평온했지만 눈빛은 차가웠다.
"피곤해. 말 좀 그만."
박진수가 웃음을 터뜨렸다.
"아, 윤이가 준호 편을 드네. 진짜 감동적이야."
"진수!"
강민준 코치의 목소리가 라커룸 전체를 관통했다. 코치는 입구에 서 있었다. 그의 얼굴은 엄했다.
"훈련복 입고 나가. 지금."
박진수가 입을 다물고 자리를 떴다. 코치는 라커룸에 남은 선수들을 바라봤다.
"어제 경기 봤지? 준호는 능력을 쓰지 않았다. 왜 그럴까?"
선수들이 침묵했다.
"팀을 믿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신뢰가 32점을 만들었다. 이게 우리가 부산을 상대로 가져야 할 태도다. 개인의 능력이 아니라 팀의 신뢰. 알겠나?"
"네!"
라커룸의 목소리가 하나로 모였다. 서윤이 준호를 봤다. 눈빛이 확실했다. 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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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장으로 나간 선수들. 강민준 코치가 준호를 따로 불렀다.
"저기 봐."
코치가 손가락으로 코트를 가리켰다. 준호가 따라봤다. 서윤과 김태현이 드리블 훈련을 하고 있었다. 그들의 움직임은 유연했다. 어제의 친선경기에서 보이던 어색함이 사라졌다.
"어제 경기 이후로 팀의 분위기가 조금씩 바뀌고 있어. 넌 능력을 쓰지 않았지? 그것도 중요한 변화지만, 더 중요한 변화는 따로 있다."
"뭔데요?"
"팀원들이 넘을 믿기 시작했다. 왜 그럴까?"
준호가 대답하지 못했다.
"넌 완벽하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야. 넌 실수했고, 그 실수 속에서 다시 일어섰다. 32점은 능력 때문이 아니라 그 과정 때문에 나온 거다."
코치가 준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부산은 강하다. 우리보다 훨씬. 하지만 넌 이미 그들과 싸워본 경험이 있다. 5년 전 그 경험을 기억해."
"그때 지잖아요."
"그래. 졌어. 그리고 그것이 너를 5년 동안 짓눌렀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이제 넌 혼자가 아니야."
코치는 훈련장을 바라봤다. 서윤이 김태현을 위해 패스를 주고 있었다. 김태현이 슛을 쐈다. 골인했다. 서윤이 엄지를 펼쳤다. 팀워크였다. 신뢰였다.
"저들이 너를 믿어. 넌 그것을 받아들여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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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이 시작되자 준호는 코트 위에 섰다. 하지만 몸이 무거웠다. 척추가 아직도 저렸다. 무릎 관절이 경직되어 있었다. 어제의 능력 사용이 신체에 미친 영향이 여전했다.
첫 번째 드릴. 부산 드래곤즈 상대 시뮬레이션. 준호는 최동욱의 마크를 받았다. 부산의 에이스. 지난 시즌 평균 23점을 기록한 선수였다.
코치가 영상을 보여줬다. 최동욱의 패턴. 그의 약점. 그의 강점. 준호는 모든 정보를 머리에 담았다.
실제 훈련이 시작되자 김태현이 최동욱 역할을 했다. 준호가 그를 마크했다. 김태현이 움직였다. 빠른 스텝. 날카로운 컷. 준호가 따라갔다.
손가락이 경련했다. 척추가 저렸다. 무릎이 아팠다. 능력을 쓰고 싶은 충동이 밀려왔다. 한 번만. 10초만 뒤로 돌려서 다시 하면...
준호는 멈췄다.
대신 준호는 김태현의 움직임을 읽었다. 그의 호흡을 감지했다. 그의 다음 움직임을 예상했다. 그리고 그 길을 막았다.
김태현이 슈팅을 시도했다. 준호가 그 슈팅을 블로킹했다. 공이 튕겨 나갔다. 서윤이 그 공을 잡았다.
"좋아! 그게 방어야!"
코치의 목소리가 울렸다.
훈련이 계속됐다. 준호는 여전히 능력을 쓰지 않았다. 손가락의 경련은 계속됐지만, 준호는 그것을 무시했다. 대신 준호는 관찰했다. 학습했다. 적응했다.
2시간의 훈련이 끝났을 때 준호의 몸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척추의 저림은 더 심해졌다. 무릎의 경직은 심화됐다. 손가락의 경련은 여전했다.
하지만 준호의 눈빛은 달라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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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이 끝난 후 라커룸. 서윤이 준호를 따로 데려갔다.
"어제 밤에 뭐 했어?"
"그냥... 생각했어."
"뭘?"
준호가 대답하지 못했다. 정확한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단지 감각일 뿐이었다.
서윤이 준호의 어깨를 쳤다.
"알겠어. 넌 뭔가 깨달았어. 오늘 훈련에서 봤어. 넌 능력을 쓸 수 있었는데 안 썼어. 왜?"
"팀을 믿었어."
"그래. 그게 맞아. 우리는 넌 믿어. 그걸로 충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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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준호는 스마트폰으로 부산 드래곤즈의 영상을 봤다. 지난 시즌 그들의 경기 영상들. 최동욱의 슈팅. 박준성의 리바운드. 팀 전체의 호흡.
5년 전 준호가 경험한 그 팀은 여전히 강했다. 아니, 더 강해졌다.
준호의 손가락이 경련했다. 척추가 저렸다. 무릎이 아팠다. 두려움이 올라왔다. 하지만 이번엔 다른 것도 함께 올라왔다.
그것은 희망이었다.
준호는 휴대폰을 내려놓고 천장을 바라봤다.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플레이오프까지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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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타이거스 훈련장은 긴장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플레이오프 대비 최종 훈련이었다.
강민준 코치가 선수들을 모았다.
"내일이 플레이오프다. 부산 드래곤즈. 우리가 상대할 팀은 우승팀이다. 하지만 우리도 여기까지 왔다. 이유가 있다."
코치는 준호를 봤다.
"이 선수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선수 혼자로는 부산을 이길 수 없다. 우리 모두가 필요하다. 우리 모두의 신뢰가 필요하다."
선수들의 눈빛이 준호를 향했다. 이번엔 의심이 아니었다. 지지였다.
박진수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표정은 여전히 복잡했지만, 적어도 준호를 바라보는 방식은 바뀌어 있었다.
훈련이 시작되자 준호는 코트 위에 섰다. 척추의 저림. 무릎의 경직. 손가락의 경련. 모든 것이 준호를 짓눌렀다.
하지만 준호는 움직였다.
최동욱 마크 연습. 부산 공격 패턴 분석. 팀 수비 전술 구성. 모든 것이 명확했다. 모든 것이 계획되어 있었다.
2시간의 훈련이 끝났을 때 준호는 바닥에 누웠다. 코치가 준호를 일으켜 세웠다.
"내일이 시작이야. 넌 준비가 됐나?"
준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능력을 쓸 거야?"
"필요하면."
"필요하지 않으면?"
"팀을 믿겠습니다."
코치가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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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준호는 아파트 거실에 섰다. 농구공을 손에 들었다. 거실 벽까지 거리는 정확히 2미터 80센티미터였다.
공을 던졌다.
벽에 맞은 공이 튕겨 돌아왔다. 준호가 손을 들었다. 공이 손가락 끝에 닿는 순간, 손가락이 경련했다.
능력을 쓸 수 있다는 신호였다.
하지만 준호는 공을 받았다. 그냥 받았다. 역행하지 않았다. 능력을 쓰지 않았다.
공은 손 위에 있었다. 시간은 흘렀다. 정상적으로, 앞으로.
준호는 공을 다시 던졌다. 벽에 맞고 돌아왔다. 받았다. 다시 던졌다.
반복이었다. 단순한 반복이었다. 하지만 그 반복 속에 모든 것이 있었다.
밤 열한 시, 준호는 침대에 누웠다. 천장을 바라봤다. 손가락이 경련했다. 척추가 저렸다. 무릎이 아팠다.
하지만 준호의 눈빛은 명확했다.
내일, 플레이오프가 시작된다.
부산 드래곤즈. 5년 전의 그 팀.
이번엔 준호는 혼자가 아니었다. 서윤이 있었다. 코치가 있었다. 팀이 있었다.
능력 없이도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준호의 가슴을 채웠다. 아니, 정확히는 확신이 아니었다. 그것은 절망적인 도전의식이었다. 하지만 그 도전 속에 희망이 있었다.
준호의 눈이 감겼다.
플레이오프 상대는 부산 드래곤즈였다.
그들을 상대로 준호가 내릴 선택은 무엇일까.
능력을 쓸 것인가. 아니면 팀을 믿을 것인가.
그 선택이 모든 것을 결정할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