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 비가 내렸다

훈련장을 나온 지 2시간이 지났는데도 준호의 손은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아침 10시, 팀 훈련. 스콜라스 감독이 지시한 투-포인트 라인 너머 슈팅 드릴. 볼을 받은 순간 준호는 모든 것을 알았다. 이것이 자신의 마지막 기회라는 것을. 경기장 한쪽에서 이은철 구단주가 팔짱을 끼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표정은 이미 판결을 내린 것 같았다.

5개 포인트 중 4개를 놓쳤다.

준호는 거리를 헤맸다. 강남역 부근의 골목, 편의점 앞 벤치, 공사장 가림막 옆. 비는 점점 굵어졌다. 옷은 흠뻑 젖었고, 신발에서는 물이 나왔다. 사람들은 우산을 쓰고 빠르게 지나쳤다. 누구도 준호를 보지 않았다. 혹은 본다 해도 외면했다.

준호는 벤치에 앉아 자신의 손을 들었다. 손가락이 파르르 떨렸다. 그 떨림은 추위 때문이 아니었다. 5년 전, 자신은 서울 타이거스의 에이스였다. 챔피언십 4강 결승전. 남은 시간 4.2초, 2점 차이. 준호가 던진 슛은 림을 맞고 튕겨 나갔다. 그 이후로 모든 것이 끝났다.

'넌 왜 항상 실패하니.'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죽은 지 3년이 된 아버지의 목소리가. 준호는 고등학교 3학년 때를 기억했다. 모의고사에서 전교 5등을 받은 날, 아버지는 자신을 벽에 밀어붙였다. 5등은 실패와 같다고 했다. 완벽함만이 살아남는 길이라고 했다. 그리고 준호는 그 말을 믿었다. 농구도 마찬가지였다. 매 경기마다 100점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한 번의 미스도 용납할 수 없었다.

결국 그 완벽함이 자신을 죽였다.

준호는 일어섰다. 다리가 비틀렸다. 비에 젖은 포장도로는 미끄러웠다. 그는 앞으로 나아갔다. 어디로 가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냥 계속 걷고 싶었다. 은퇴 권고를 받았다. 오전 훈련 후 경영진이 사무실로 부른 것이었다. 이은철 구단주는 의자에 앉은 채 고개도 들지 않았다.

"선수로서의 가치가 더 이상 없다고 판단됩니다. 건강상의 이유로 은퇴를 권고합니다. 물론 당신의 선택입니다만, 우리는 팀의 미래를 생각해야 합니다."

팀의 미래. 그 말이 가장 아팠다. 자신은 팀의 짐이었다. 준호는 좁은 골목으로 들어섰다. 가로등 빛이 빗줄기에 흐릿하게 흔들렸다. 한 발, 또 한 발. 그의 시야가 점점 흐려졌다. 비가 눈을 때렸다. 아니, 눈물이었을 수도 있다. 준호는 더 이상 구분하지 않았다.

그 순간이었다.

발이 헛디디는 소리가 났다. 몸이 공중으로 떨어졌다. 맨홀 뚜껑이 열려 있었다. 준호는 아무 저항도 하지 않았다. 그냥 떨어지고 싶었다. 영원히 내려가고 싶었다.

그런데 손이 잡혔다.

따뜻한 손이 준호의 팔을 잡아당겼다. 노인의 손이었다. 60대 후반으로 보이는 주름진 손. 그러나 그 손의 힘은 놀라웠다. 준호는 다시 땅 위로 끌려 올라왔다.

"괜찮은가."

노인의 목소리는 낮고 차분했다. 준호는 고개를 들었다. 노인의 얼굴이 보였다. 회백색의 짧은 머리, 깊게 패인 주름살, 그리고 눈. 그 눈은 이상했다. 단순한 노인의 눈이 아니었다. 마치 수백 년을 산 사람처럼 시간을 초월한 무언가가 담겨 있었다. 준호는 말을 잇지 못했다.

노인은 준호의 팔을 잡은 채로 한참을 바라봤다. 비는 여전히 내렸다. 가로등의 불빛이 노인의 얼굴을 비췄다 말았다를 반복했다.

"모든 것을 다시 할 수 있는 기회는 저주이자 축복이네."

노인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은 준호를 향한 것인지, 자신을 향한 것인지 불분명했다. 노인은 준호의 손을 더욱 세게 잡았다. 그 순간, 뭔가 흘러들어오는 느낌이 들었다. 따뜻한 액체 같은 것이. 준호의 손가락 끝에서 시작해 팔을 타고 올라와 온몸을 휘감았다.

"당신은 다시 할 수 있다."

노인이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이미 멀어지고 있었다. 준호의 눈이 감겼다. 비가 얼굴을 때렸지만, 더 이상 그것을 느낄 수 없었다.

검은 세계였다.

얼마나 지났을까. 시간이 없었다. 그저 무(無)의 상태가 계속되었다. 그리고 나서 준호는 눈을 떴다.

차가운 포장도로.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었다. 그는 일어났다. 몸 전체가 아팠지만, 상당히 괜찮았다. 손가락을 펼쳤다. 그리고 그 순간, 준호는 그것을 봤다.

손이 빛나고 있었다.

은은한 푸른 빛이 손가락 끝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준호는 손을 들어 자신의 얼굴 앞에 가져갔다. 빛은 점점 밝아졌다. 그리고 동시에, 뭔가가 준호의 눈 앞에서 재생되기 시작했다.

맨홀 뚜껑.

자신이 떨어지는 순간.

노인의 손.

모든 것이 역순으로 흐르고 있었다. 시간이 되감겨지고 있었다. 10초, 20초, 30초. 아니, 정확히 10초였다. 자신이 비에 젖은 골목으로 들어서는 순간까지. 모든 것이 눈앞에서 명확하게 재생되고 있었다.

준호는 공중에 떠 있었다. 다시 한 번. 같은 장면. 같은 순간.

그 장면이 멈췄다.

준호는 다시 땅을 디디고 섰다.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었다. 노인은 사라져 있었다. 하지만 그의 온기는 아직 준호의 손에 남아 있었다.

준호는 천천히 자신의 손을 펴 들었다. 여전히 은은한 빛이 흐르고 있었다. 무엇이 일어난 것일까. 이것이 무엇일까.

'뭐... 뭐야?'

준호가 중얼거렸다. 손가락을 움직여봤다. 빛이 더욱 강해졌다.

그 순간이었다.

통증이 밀려왔다.

뼈가 시렸다. 마치 얼음물에 빠진 것처럼 팔 전체가 저렸다. 손가락이 경련하기 시작했다. 파르르, 파르르. 끔찍한 떨림이었다. 손가락의 관절이 부러질 것 같았다. 팔의 근육이 꼬이고 비틀렸다.

준호는 비명을 질렀다.

"아아아악!"

몸이 자동으로 수축했다. 그는 포장도로에 무릎을 꿇었다. 손을 움켜쥐었다. 하지만 그것도 소용없었다. 통증은 더욱 심해졌다. 척추가 불타오르는 듯했다. 신경 끝이 모두 살아 깨어나 고통을 전달하고 있었다.

준호는 바닥에 쓰러졌다. 비에 젖은 포장도로 위에서 몸을 경련시키며 비명을 질렀다.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어두운 골목 어딘가에서 준호의 절규만 울려 퍼졌다.

그 비명 속에서 준호는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이것이 자신의 마지막 기회라는 것.

그리고 이 기회가 자신을 죽일 수도 있다는 것.

비명이 멎었을 때 준호는 이미 의식의 경계에 있었다. 몸 전체가 얼음 속에 갇힌 듯 뻣뻣했고, 손가락들은 여전히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포장도로의 차가움이 볼을 짓누르고 있었다. 얼마나 오래 그곳에 누워 있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시간이 흘렀을 수도, 멈췄을 수도 있었다.

정신이 돌아오면서 준호는 자신의 호흡음을 들었다. 헉, 헉. 동물처럼 거친 숨소리였다. 신체가 보내는 신호는 명확했다. 계속 누워 있으면 안 된다는 것. 일어나야 한다는 것.

준호는 팔꿈치에 힘을 주었다. 손가락이 경련하며 저항했다. 하지만 그는 이를 악물고 일어났다.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었고, 차가운 물줄기가 얼굴을 적셨다. 그 감각이 오히려 정신을 깨웠다.

무릎을 꿇은 채로 하늘을 봤다. 검은 구름이 도시 위에 깔려 있었다. 가로등의 불빛은 안개처럼 흩어져 있었다. 이 세상이 현실인지 꿈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준호는 천천히 일어섰다. 두 발이 땅에 닿자 무릎이 흔들렸다. 균형을 잡기 위해 골목 벽에 손을 짚었다. 손가락은 여전히 경련하고 있었지만, 강도는 조금 누그러들고 있었다.

'뭐야, 이게... 뭐야?'

준호는 자신의 손을 바라봤다. 더 이상 빛은 흐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 감각은 분명히 남아 있었다. 손가락 끝에서 몸 전체로 흘러들어왔던 그 따뜻함. 그리고 그 뒤에 밀려온 악몽 같은 통증.

'능력이라고?'

말도 안 된다. 현실이 아니다. 이 모든 것이 자신의 착각이거나 환각이거나, 아니면 저체온증으로 인한 환상일 거다. 준호는 자신을 설득하려고 했다. 하지만 손가락의 경련은 거짓이 아니었다. 척추의 통증도 거짓이 아니었다.

골목을 빠져나갔다. 거리는 거의 비어 있었다. 자정이 훨씬 넘었을 것 같았다. 준호는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집으로 가자니 사람들과 마주치기 싫었다. 병원에 가자니 설명할 말이 없었다.

그렇게 거리를 헤매다가 준호는 한 편의점 앞에 멈췄다. 유리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은 처참했다. 옷은 흙과 빗물에 젖어 있었고, 얼굴에는 자국이 남아 있었다. 눈은 망연해 보였다. 5년 동안 본 적 없는 표정이었다.

'은퇴 권고.'

그 말이 다시 떠올랐다. 이은철 경영진의 차가운 목소리. '당신은 더 이상 이 팀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은퇴를 권고합니다.'

그리고 그 직전의 훈련 장면. 승리를 확정할 수 있는 3점슛. 연습에서는 백 번이나 성공하던 슈팅. 하지만 경기에서는—

손가락이 다시 떨렸다.

준호는 편의점 유리에 손을 짚고 눈을 감았다. 그 순간, 시간이 재생되었다. 훈련장의 장면이 눈앞에 떠올랐다. 아니, 떠올랐다는 표현은 틀렸다. 그것은 기억이 아니었다. 그것은 실제로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강코치의 표정. 서윤의 실망한 눈빛. 박진수의 비웃음. 그리고 슛이 림을 빗나가는 소리.

'틀렸어.'

준호는 눈을 떴다. 현실로 돌아왔다. 여전히 편의점 앞이었다.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무언가가 달라졌다. 세상이 더 선명해 보였다. 색깔이 더 선명해 보였다.

편의점 문을 밀고 들어갔다. 점원은 졸고 있었다. 준호는 화장실로 향했다. 거울 앞에 섰다. 다시 자신을 봤다. 그리고 손을 펼쳤다.

여전히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떨리는 손가락만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 떨림 속에는 무언가가 살아 있었다. 준호는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손가락 끝에서 맥박치는 듯한 리듬. 그것은 자신의 심장 박동과는 다른 것이었다.

'다시 할 수 있는 기회.'

노인의 말이 반복되었다. 저주이자 축복이라는 그 말.

준호는 손을 주먹으로 쥐었다. 경련이 더 심해졌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것을 참았다. 이빨을 깨물고 참았다.

혹시... 혹시 이것을 이용하면?

생각은 위험했다. 하지만 준호는 그것을 지울 수 없었다. 은퇴 권고. 5년간의 실패. 팀의 불신. 아버지의 목소리. 모든 것이 한 번에 밀려왔다.

'한 번만. 한 번만 더 하면... 되지 않을까?'

그날 밤 준호는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대신 24시간 피트니스 센터의 한 구석에 몸을 누웠다. 짐을 두고 있던 보관함의 열쇠로 짐을 꺼냈다. 운동복과 신발. 그리고 농구화.

새벽 4시. 텅 빈 체육관에 준호 혼자만 있었다. 농구 골대 앞에 섰다. 공을 집어 들었다. 손가락이 여전히 떨렸지만, 그 정도는 견딜 수 있었다.

3점 거리로 물러섰다. 깊게 숨을 쉬었다. 이 슈팅이 성공하면 모든 것이 바뀔 거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불합리한 생각이지만, 준호는 그것을 믿고 싶었다.

공을 띄웠다. 손가락이 떨렸다. 슈팅 폼이 흐트러졌다. 공은 림을 맞히고 튕겨 나갔다.

'다시.'

준호는 공을 집어 들었다. 손을 펼쳤다. 은은한 빛이 다시 나타났다. 그리고 순간, 시간이 거꾸로 흐르기 시작했다.

공이 림에서 떨어져 나가는 장면이 역재생되었다. 손가락에서 떨어지는 순간. 슈팅 폼을 잡는 순간. 깊게 숨을 쉬는 순간. 모든 것이 거꾸로 흘렀다.

그리고 10초 전으로 돌아갔다.

준호는 다시 3점 거리에 서 있었다. 공을 손에 들고 있었다.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아니, 시간이 재설정된 것이었다.

'이번엔... 성공하겠지?'

준호는 다시 슈팅을 했다. 이번에도 손가락이 떨렸다. 이번에도 폼이 흐트러졌다. 공은 다시 림을 맞히고 튕겨 나갔다.

통증이 밀려왔다. 하지만 준호는 더 이상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그것을 견디려고 했다. 견디고 또 견디려고 했다.

'한 번 더.'

손을 펼쳤다. 빛이 나타났다. 시간이 다시 거꾸로 흐르기 시작했다.

준호는 계속했다. 다시, 또 다시, 계속 다시. 매번 통증이 밀려왔고, 손가락은 떨렸지만, 준호는 멈추지 않았다.

새벽 5시. 슈팅을 30회 반복했다. 성공률은 60%. 새벽 5시 30분. 50회를 넘겼다. 성공률은 70%. 새벽 6시. 공을 던지는 손가락이 떨렸지만, 어제보다는 덜 떨렸다. 성공률은 87%에 도달했다.

그 순간, 준호의 손이 경련했다. 이전과는 다른 경련이었다. 능력을 사용할 때의 통증이 아니라, 신체의 한계를 알리는 신호였다. 손가락 관절이 부어올랐고, 손목도 뻣뻣해졌다. 다시 한 번 더 하려고 손을 펼쳤지만, 빛이 나오지 않았다.

준호는 공을 내려놓았다. 벤치에 앉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87개의 성공. 13개의 실패.

그 숫자를 바라보며 준호는 깨달았다. 이 능력은 자신을 완벽하게 만들어주지 않는다는 것을. 아무리 다시 해도 손가락은 떨렸다. 폼은 흐트러졌다. 그리고 간헐적으로 슈팅이 실패했다. 같은 슈팅을 10회 이상 반복해도 실패율이 개선되지 않는 순간들이 있었다. 능력의 한계였다. 자신의 한계였다.

하지만 그 한계 속에서 무언가를 발견했다. 손가락이 떨렸지만, 그 떨림 속에 무언가 살아 있다는 확신. 완벽하지 않은 자신도 계속 나아갈 수 있다는 확신. 손가락의 떨림이 두려움의 신호에서 리듬감으로 변했다. 5년을 짓누르던 완벽함의 강박에서 벗어나는 순간이었다.

휴대폰이 울렸다. 강민준 코치였다. 화면을 봤을 때 시간은 새벽 6시 47분이었다.

"어디야?"

코치의 목소리는 다급했다.

"전수를 받았어. 이은철이 어제 회의에서 너를 방출하기로 이사회 결정을 내렸다고. 오늘 오전 공식 발표가 나온다고."

준호는 말이 없었다.

"너 어디 있어? 지금 팀에 와야 해. 뭐라도 할 수 있는 게 있을 거야."

준호는 자신의 손을 봤다.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부어오른 손가락들. 하지만 그 떨림 속에는 이제 두려움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무언가 다른 것도 있었다.

"코치, 저 알았습니다."

준호가 말했다.

"오늘 경기 있잖아요. 친선경기. 저 나가겠습니다."

침묵이 흘렀다.

"너... 지금 뭔 소리야?"

"혼자서는 절대 완벽할 수 없다는 걸 알았습니다. 이제 팀과 함께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준호는 통화를 끊었다. 농구화를 신었다. 손가락의 경련은 계속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일어섰다.

체육관을 나갔다. 새벽 햇빛이 도시를 밝히고 있었다. 비는 멈춰 있었고, 하늘은 조금씩 밝아지고 있었다.

손가락은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이제 그것이 두렵지 않았다. 오직 한 가지만 두려웠다—팀 앞에서 다시 실패하는 것. 하지만 그 두려움도 이제는 다른 의미였다. 자신만의 완벽함을 위한 두려움이 아니라, 함께 나아가기 위한 책임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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