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 폐가의 손님

은희의 얼굴이 선명했다.

폐가의 거실에 나타난 그녀는 이전의 손님들처럼 흐릿하지 않았다. 명확한 윤곽, 정확한 표정, 그리고 나를 직시하는 눈동자. 나는 소파에서 일어나다가 움직임을 멈췄다. 손님들은 항상 내 곁에 나타났다. 하지만 은희는 내 앞에 섰다. 마치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이제 넌 인정해야 해."

그녀의 목소리는 낮고 차가웠다. 이전에 들었던 음성—반복적이고 기계적인—과는 달랐다. 감정이 스며들어 있었다.

"우리는 같은 날, 같은 방식으로 죽었어. 1년 전의 그 사고에서."

나는 일어섰다. 소파가 삐걱거렸다. 폐가의 모든 것처럼 그것도 낡고 부서져 가고 있었다.

"은희, 나는..."

"넌 뭐라고 할 거야?"

은희가 한 발 다가섰다. 폐가의 창문 없는 거실에서 그녀의 그림자는 벽에 길게 드리워졌다. 그림자가 내 것과 겹쳤다. 아니, 내 그림자가 그녀의 것이 되어가고 있었다.

"넌 뭐라고 할 거야? 날 죽이지 않았다고? 그럼 이 기억은 뭐야?"

은희가 손을 들었다. 그녀의 손가락이 내 눈썹에 닿았다. 그 순간 세상이 돌았다.

---

**사고.**

회색 포장도로. 오후 햇빛이 차창에 반사되고 있다. 나는 운전석에 앉아 있고, 옆자리에는 은희가 있다. 그녀는 웃고 있다. 입을 열어 뭔가 말하고 있다. 하지만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세상이 무음이다.

그 다음은 빠르다.

차가 교차로에 진입한다. 신호등이 빨간색인지 초록색인지 알 수 없다. 앞에서 검은 트럭이 나타난다. 큰 차다. 매우 크다.

은희가 손을 뻗는다. 내 팔을 잡는다. 그녀의 목소리가 들린다. "준호!"

내가 핸들을 돌린다. 아니, 돌리려고 한다. 손이 움직이지 않는다. 차가 그대로 트럭으로 향한다.

은희가 소리친다. "준호!"

내가 은희를 민다.

손이 그녀의 어깨를 밀어낸다. 명확하고 강렬하게. 그녀의 몸이 옆으로 넘어간다. 은희가 차창에 부딪힌다. 유리가 깨진다. 그녀의 몸이 차 밖으로 나간다.

검은 트럭의 앞바퀴가 그녀를 압사한다.

---

나는 비명을 지르며 거실의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은희가 여전히 내 앞에 서 있었다. 그녀의 손이 내 얼굴을 만졌다. 손가락이 내 광대뼈를 따라 내려왔다.

"넌 죄책감 때문에 여기 왔어. 날 죽게 한 죄책감."

"아니야. 나는..."

"넌 자신을 폐가로 만들었어. 이 집 전체가 넌 거야. 모든 방이, 모든 벽이, 모든 거울이. 그리고 손님들은..."

은희가 잠시 멈췄다. 그녀의 표정이 흔들렸다. 마치 무언가를 결정하는 것처럼.

"손님들은 미영의 울음이 만든 거야. 저 밖에서 날 찾으며 우는 누나의 목소리가 이 폐가를 움직이고 있어. 그녀의 눈물이 우리를 보냈고, 그녀의 절망이 너를 가둬."

나는 은희를 밀어냈다. 그녀가 뒤로 넘어갔다. 하지만 넘어진 것은 은희만이 아니었다. 내 팔도 함께 움직였다. 내 팔이 내 자신을 밀어내고 있었다.

은희가 거실의 벽에 부딪혔다. 충격음이 울렸다. 벽에 금이 갔다. 아니, 은희의 몸이 벽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녀의 등이 벽지에 흡수되기 시작했다. 피부가 회색 벽지로 변했다. 머리카락이 낡은 천으로 변했다.

"아니야. 아니야!"

나는 은희를 잡으려고 손을 뻗었다. 하지만 내 손도 함께 움직였다. 내 팔이 벽에 흡수되기 시작했다. 피부가 회칠로 변했다. 손가락이 부서진 콘크리트가 되어갔다.

은희의 얼굴이 벽에 압축되었다. 눈과 코와 입이 회벽의 질감이 되었다. 더 이상 그녀가 아니었다. 단지 폐가의 일부였다.

그리고 나도.

나의 팔이 완전히 벽이 되었다. 감각이 사라졌다. 따뜻함이 사라졌다. 나는 움직일 수 없었다.

나는 소리를 질렀다. 목소리가 폐가의 울음이 되었다.

---

나는 거실의 바닥에 누워 있었다.

얼마나 오래 그 상태로 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 시간이 흘렀거나 흐르지 않았거나 둘 다였을 수도 있었다. 폐가에서 시간은 더 이상 의미가 없었다.

은희는 사라져 있었다. 벽도 원래대로 돌아와 있었다. 아니, 돌아온 게 아니라 내가 돌아온 것이었다. 내 팔이 내 팔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것도 확실하지 않았다. 내 팔이 정말 내 것인지, 아니면 폐가의 또 다른 부분인지.

나는 일어났다. 움직임이 어색했다. 관절이 부드럽게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무언가가 내 뼈를 녹슬게 했다는 듯이.

거실의 벽지를 자세히 보았다.

그것은 벽지가 아니었다. 피부였다. 인간의 피부. 더 정확히는 시체의 피부. 창백하고 건조하고 곳곳에 부패의 흔적이 있었다. 그것을 본 순간 냄새가 났다. 악취가. 폐가에서 항상 맡아오던 그 냄새.

그것은 폐가의 냄새가 아니었다.

그것은 내 냄새였다.

나는 손가락을 벽에 대었다. 벽이 따뜻했다. 아니, 따뜻한 게 아니라 체온이 남아 있었다. 죽음이 아직 신선했다. 마치 내가 방금 죽은 것처럼. 또는 1년 동안 계속 죽고 있는 것처럼.

거울 방으로 가야 했다. 나는 그것을 알았다. 이상하게도 나는 폐가의 구조를 완벽히 알고 있었다. 아니, 내가 폐가였으니까 당연했다.

거울 방에 도착했을 때 거울들은 모두 깨져 있었다. 깨진 유리 조각들이 바닥에 흩어져 있었고, 그 위에는 혈흔이 있었다. 혈흔이 무한히 반복되어 있었다. 깨진 거울들 속에서 혈흔이 무한히 복제되고 있었다.

나는 한 조각을 들었다. 날카로운 유리. 내 손가락을 베었다. 피가 나왔다. 따뜻한 피. 그것이 내 피인지 폐가의 피인지 알 수 없었다.

거울 조각에 비친 얼굴은 내 얼굴이 아니었다. 그것은 은희였다. 그리고 미영이었다. 그리고 현우였다. 그리고 경찰관 이였다. 그리고 다른 모든 손님들이었다. 그리고 내 자신이었다.

모든 얼굴이 같은 죽음의 표정을 하고 있었다.

내가 유리 조각을 들었을 때, 그것이 나에게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 알았다. 손목을 그을 것이다. 아니, 손목을 그어야 한다. 폐가의 일부가 되는 것을 거부하려면.

하지만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

나는 현관으로 갔다.

내 발이 나를 그곳으로 인도했다. 또는 폐가가 나를 그곳으로 끌어당겼다. 구분이 없었다.

현관의 문이 열려 있었다.

그것은 항상 닫혀 있었다. 손님들이 초인종을 누르면 내가 문을 열었다. 하지만 지금 문은 벌써 열려 있었다. 한껏 열려 있었다. 마치 무언가가 나를 초대하고 있는 것처럼.

문 너머로는 검은 공간이 있었다. 절대적인 검은색.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그것은 밤이 아니었다. 밤은 별이라도 있지만, 이것은 그것도 없었다.

그 어둠 속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이제 마지막이야."

그것은 은희의 목소리였다. 아니, 모든 손님들의 목소리였다. 아니, 내 목소리였다.

"이제 넌 손님이 돼."

어둠 속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나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그 누군가는 나였다. 새로운 준호였다. 또 다른 버전의 나.

그것이 현관을 통과했을 때 폐가는 울음을 터뜨렸다.

모든 벽이, 모든 방이, 모든 거울이 울었다. 폐가 전체가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그것은 미영의 울음이었다. 1년 동안 계속된 누나의 울음. 그녀의 죽음의 울음. 그녀의 슬픔의 울음. 그녀의 분노의 울음.

초인종이 울릴 때마다, 현관의 벽이 떨릴 때마다, 손님들의 발자국이 들릴 때마다—그 모든 것이 미영의 울음이었다. 바깥에서 폐가를 부르는 누나의 목소리가 이 건물 전체를 움직이고 있었다. 그녀의 눈물이 손님들을 보냈고, 그녀의 절망이 나를 가두고 있었다.

새로운 준호가 소파에 앉았다. 그는 나를 본다. 나도 그를 본다. 우리는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죽음의 표정. 그리고 공포의 표정. 그리고 이미 모든 것을 포기한 표정.

"넌 이제 뭐야?"

새로운 준호가 물었다. 그의 목소리는 내 목소리였다.

나는 답할 수 없었다. 나는 더 이상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준호인가? 은희인가? 미영인가? 폐가인가?

아니면 모든 것인가?

새로운 준호는 거울 방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비명이 들렸다. 또 다른 은희의 죽음을 목격한 비명. 차에 치이는 순간의 비명. 누나를 밀어낸 죄책감의 비명.

나는 움직일 수 없었다. 내 팔이 벽이 되어가고 있었다. 천천히. 점진적으로. 마치 시간이 역행하는 것처럼.

폐가의 벽지가 흔들렸다. 마치 숨을 쉬는 것처럼. 이 낡고 누렇게 변색된 벽지가 살아있는 것처럼. 아니, 이것이 내 피부라면?

"안 돼. 아직 안 돼."

내가 중얼거렸다. 또는 폐가가 중얼거렸다. 구분이 없었다. 내 목소리는 이미 변해가고 있었다. 음성이 갈라지고, 울음처럼 변해가고 있었다.

나는 일어서려 했다. 소파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하지만 내 몸은 이미 소파의 일부가 되어가고 있었다. 내 등이 쿠션에 녹아들고 있었다. 내 다리가 목재 틀과 하나가 되어가고 있었다.

현관에서 초인종이 울렸다.

또 다른 손님이 들어왔다. 그는 이전의 손님들과 달랐다. 옷이 다르다. 표정이 다르다. 그는 나를 본다. 직시한다. 마치 나를 인식하는 것처럼.

"준호."

그가 내 이름을 부른다. 내 목소리로.

"난 마지막이야."

그가 소파 앞에 섰다. 내가 앉아있는 소파 바로 앞에. 그리고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이제 우린 하나가 돼."

그가 내 가슴에 손을 얹었다. 그 순간 모든 벽이 울음을 멈췄다. 초인종도 울지 않았다. 발자국도 들리지 않았다.

오직 미영의 울음만 남았다. 바깥에서. 계속. 영원히.

나는 중얼거렸다. 또는 폐가가 중얼거렸다. 구분이 없었다.

"아직도 아니야."

내 목소리가 갈라지고 있었다. 인간의 목소리가 아니라 벽의 울음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하지만 거기 어딘가에, 그 울음 속 깊은 곳에, 준호의 저항이 남아있었다.

"아직도..."

마지막 손님이 내 손을 잡았다. 따뜻한 손. 살아있는 손. 내 손.

그리고 나는 알았다.

이것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이것이 시작이라는 것을.

현관에서 초인종이 울렸다.

또 다른 나가 들어온다.

또 다른 죽음이 들어온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영원히 맞이해야 한다.

미영의 울음이 계속되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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