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 폐가의 손님

폐가의 지하실 계단에서 미영을 따라 내려가며 나는 계속 중얼거렸다. 발이 계단을 딛을 때마다 먼지가 일어났고, 그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폐가의 지층은 더 깊었다. 어제는 이런 계단이 없었다. 확실했다.

"여기 뭐가 있어?"

미영은 돌아보지 않았다. 검은 머리만 보였다. 어깨가 떨리고 있었다.

계단 끝에 도착했을 때 나는 멈췄다. 지하실의 불이 켜졌다. 노란 전구 하나. 깜박이고 있었다. 방의 벽에는 수백 개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모두 내 이름이었다. 준호(1), 준호(2), 준호(3)... 손가락으로 따라가며 세어보자 준호(487)까지 갔다. 그 옆에는—

준호(488).

"그건 뭐야?" 나는 물었다.

미영이 나를 돌려 세웠다. 그제야 나는 그녀의 얼굴을 제대로 봤다. 눈이 내 눈과 같았다. 코의 형태도 같았다. 하지만 나는 그 얼굴을 본 적이 없었다. 아니다. 본 적이 있는데, 기억하지 못했다.

"난 너의 누나야."

입술이 떨렸다.

"넌 날 기억해야 해."

나는 고개를 저었다. "누나가 없어. 난..."

"1년 전이야. 기억해. 우리가..."

미영이 내 손을 잡았다. 그 손이 차가웠다. 단순히 차가운 게 아니라 죽은 것처럼 차가웠다. 팔이 얼어붙는 느낌이 들었고, 그 감각이 어깨로, 목으로 올라왔다. 나는 손을 빼려고 했지만 힘이 없었다.

"1년 전, 우리가 사고를 났어. 자동차 사고."

내 목이 말라왔다. "그건 거짓이야."

"넌 은희와 함께 있었어.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무시한 차가 왔어. 넌 은희를 밀었어. 은희는 죽었고, 넌..."

"아니야!"

나는 소리쳤다. 그 순간 장면이 떠올랐다. 검은 차의 범퍼. 은희의 얼굴. 그리고—미영의 눈. 내 눈. 차 안에서 나를 보는 미영의 눈.

"넌 날 봤어. 차 안에서. 내가 너를 봤어. 그리고 넌 사라졌어. 시신이 발견되지 않았어."

미영이 내 손을 더 세게 잡았다. "1년을 여기서 보냈어. 이 폐가에서. 손님들을 맞이하면서. 그 동안 난 너를 찾았어. 계속 찾았어. 넌 날 기억해야 해. 우리는 다시 만나야 해."

나는 미영의 눈에서 눈물을 봤다. 그 눈물이 진짜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이 모든 게 환각이라면, 눈물도 환각이겠지. 하지만 그 눈물이 따뜻하게 느껴졌다. 내 손 위에.

"제발 나를 떠나지 마."

그 목소리가... 내 목소리였다.

"넌 또 나를 버려야 해?"

미영이 나를 안으려고 했다. 팔이 내 등을 감싸려 했다. 나는 그녀를 밀어냈다. 손가락이 그녀의 팔에 깊숙이 파고들었다. 그녀가 뒷걸음질쳤다.

"안 돼. 넌 내 누나가 아니야."

"그럼 뭐야? 뭐라고 생각하는데?"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미영이 사라졌다. 계단 위로 올라갔다. 발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그리고 나는 혼자 남겨졌다.

지하실 벽의 이름 목록을 다시 봤다. 손가락이 준호(487)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 옆에 준호(488)은 아직 글씨가 흐려져 있었다. 하지만 보는 사이에 선명해졌다. 실시간으로. 글씨가 손으로 쓰이는 것처럼.

나는 계단을 올라갔다.

폐가의 거실로 나왔을 때 벽이 더 낡아 있었다. 어제보다. 어제가 언제였는지 모르겠지만, 확실히 낡아 있었다. 벽지가 벗겨져 있었고, 그 아래 더 오래된 벽지가 보였다. 또 그 아래 더. 마치 여러 겹의 시간이 쌓여 있는 것처럼. 곳곳에서 악취가 났다. 썩은 냄새. 축축한 냄새. 그리고 뭔가 다른, 이름 붙일 수 없는 냄새.

거실 소파 옆에 일기장이 놓여 있었다. 내 필체로 쓰인 일기장. 수백 개. 날짜가 적혀 있었다.

1월 15일. "오늘 초인종이 울렸다. 남자가 들어왔다. 자동차에 치인 죽음이었다. 돈을 받았다."

2월 3일. "미영을 봤다. 그녀가 나를 봤다. 그리고 사라졌다."

3월 21일. "은희가 왔다. 같은 죽음을 반복한다. 나도 그렇게 죽었다고 말한다."

4월 10일. "현우가 말했다. 폐가를 나가면 사라진다고. 나는 이미 사라졌다고."

5월 2일.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린다. 내가 무엇을 했는지 말해준다."

6월 30일. "미영이 맞다. 난 정말 죽었다. 1년 전에. 자동차에 치여서."

일기장을 집어 들었다. 손이 떨렸다. 이 모든 글씨가 내 것이라면, 나는 1년을 여기서 보낸 거다. 매일 밤 손님들을 맞이하면서. 그리고 매일 아침 그것을 잊으면서.

거실 벽에 거울이 있었다. 어제는 거울이 없었다. 확실했다. 나는 거울을 봤다.

내 얼굴이 아니었다.

아니, 내 얼굴이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얼굴도 겹쳐 있었다. 미영의 얼굴. 은희의 얼굴. 현우의 얼굴. 경찰관 이의 얼굴. 모두 내 얼굴이었다. 거울 속에서 모두 나를 보고 있었다. 입들이 움직였다. 동시에.

"기억해."

"저 자동차를 피했으면..."

"은희를 밀지 말았으면..."

"미영을 따라가지 말았으면..."

"1년을 폐가 밖에서 살았으면..."

목소리들이 겹쳤다. 거울 속의 얼굴들이 동시에 입을 열었다. 하나씩 미소를 지었다.

"이제 넌 알았어. 넌 여기 있는 게 맞아."

거울을 깼다. 손가락이 깨진 유리에 베였다. 피가 흘렀다. 빨간 피. 실제의 피인지 환각의 피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폐가의 현관으로 나갔다. 문을 열었다. 밖의 세상이 보였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기억하는 세상이 아니었다. 색이 없었다. 흑백이었다. 마치 오래된 사진처럼. 거리가 있었다.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모두 움직임이 없었다. 동상처럼.

한 발을 내디뎠다. 발이 아스팔트에 닿았다. 그 감각이 이상했다. 딱딱한 느낌. 마치 종이 위를 걷는 것처럼. 사람들이 나를 봤다. 눈동자가 천천히 움직였다. 기계처럼.

한 경찰관이 앞으로 나왔다. 얼굴이 흐릿했다. 하지만 목소리는 명확했다.

"당신은 1년 전에 죽었습니다."

내가 물었다. "뭐... 뭐라고?"

"당신의 시신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죽었습니다. 자동차에 치여서. 그리고 당신은 이 폐가에 있습니다. 계속. 손님을 맞이하면서. 손님이 되면서."

경찰관이 손을 내밀었다. 나는 그것을 보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본 것들은 돌아올 수 없었다. 그의 손. 내 손. 같은 손.

뒤를 돌았다. 폐가로 들어가려고 했다. 하지만 현관이 보이지 않았다. 흑백의 거리만 계속 이어져 있었다. 사람들이 나를 에워쌌다. 모두 내 얼굴을 하고 있었다. 모두 나였다.

"안 돼. 난 죽지 않았어. 난 살아있어. 폐가에서. 손님들을 만나면서. 돈을 받으면서."

"그 돈도 환각입니다."

"아니야!"

소리쳤다. 그 순간 흑백의 거리가 흔들렸다. 사람들이 흐릿해졌다. 그리고 다시 폐가 안에 있었다. 현관의 벽. 벽에는 이름들이 적혀 있었다. 준호(1)부터 준호(488)까지. 그 옆에—

준호(489).

글씨가 흐려져 있었다. 하지만 선명해지고 있었다. 실시간으로. 누군가 그것을 쓰고 있었다. 내가.

초인종이 울렸다.

다시.

또.

계속.

문이 열렸다. 또 다른 준호가 들어섰다. 검은 옷을 입은 남자. 얼굴은 내 얼굴. 눈은 내 눈. 하지만 표정이 달랐다. 그는 나를 봤다. 미소를 지었다.

"안녕. 난 준호(489)야. 넌?"

대답할 수 없었다. 목이 마르고 있었다. 손가락이 저려왔다. 마치 벽으로 변해가는 것처럼.

"넌 뭐라고 대답하지? 넌 준호(488)이었나? 아니면 다른 번호?"

손님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 웃음이 폐가 전체에 울려 퍼졌다. 거실에서. 계단에서. 지하실에서. 모든 폐가에서. 모두 같은 웃음. 모두 내 웃음.

소파에 누웠다. 내 몸이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손가락부터 시작해 발가락까지 저려오고 있었다. 벽으로 변해가는 감각이 천천히 퍼져나가고 있었다.

준호(489)가 다가왔다. "이제 넌 뭘 보고 싶어?"

입이 저절로 움직였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내 죽음을 보고 싶어. 모든 죽음을. 처음부터. 1년 전부터. 모든 게 어떻게 시작됐는지."

준호(489)가 웃음을 멈췄다. 그의 얼굴이 변했다. 입이 찢어지듯 벌어졌다. 그 안에서 검은 것이 흘러나왔다. 자동차 소리. 경적음. 그리고 은희의 비명.

나는 그것을 봤다.

모든 것을.

그 순간, 모든 소리가 멈췄다.

검은 것이 흘러나오던 입이 닫혔다. 준호(489)의 얼굴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의 눈은 이제 내 눈이 아니었다. 누군가 다른 것의 눈이었다. 훨씬 오래된 것의.

"넌 아직도 모르는군."

목소리가 변했다. 낮고, 무거웠다. 마치 폐가 자체가 말하는 것처럼. 아니, 이건 내 목소리였다. 하지만 내가 낸 적 없는 목소리. 내 안에 있던 목소리. 1년 동안 폐가 벽 속에 갇혀 있던 목소리.

"뭘... 뭘 모르는데?"

입이 떨렸다. 손가락들이 저려왔다. 이번엔 손목으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벽으로 변해가는 감각이 팔뚝까지 올라오고 있었다. 저항하려고 팔을 움직였지만 점점 뻣뻣해져 갔다.

"미영이 누구인지를."

그 이름을 들었을 때, 기억이 돌아왔다. 한 번에. 폭주하듯. 마치 댐이 터지는 것처럼.

---

비오는 날씨. 차 안. 미영의 목소리. "준호, 진짜 은희 만나러 갈 거야? 엄마가 반대했잖아."

내 목소리. "누나, 이제 고등학생이야. 자기 친구 정도는 만날 수 있지."

미영이 핸들을 잡고 있었다. 그 손. 내가 본 적 있는 손. 폐가에서 본 손. 나를 잡았던 손.

"내가 운전할게. 넌 편하게 앉아. 요즘 너 기분 안 좋아 보여."

내 목소리. "아니야. 괜찮아."

거짓. 나는 거짓을 말했다. 그때부터.

차가 횡단보도에 진입했다. 신호는 빨간불이었다. 미영의 손이 핸들을 꽉 잡고 있었다. 내가 기억하는 건 무엇인가. 미영이 가속했나. 아니면 내가 무언가를 말했나. 기억이 흔들렸다. 두 개의 기억이 겹쳐 있었다. 한 가지는 내가 본 것. 한 가지는 내가 보지 못한 것.

횡단보도 위에 은희가 있었다. 은희와 다른 친구가. 나는 창문을 통해 은희를 봤다. 은희가 나를 봤다. 웃음을 지었다. 그 다음—

차가 은희를 쳤다.

아니다. 내가 은희를 밀었다.

아니다. 미영이 핸들을 돌렸다.

모든 게 동시에 일어났다. 그리고 모두 내 책임이었다. 하지만 정확히는 누구의 책임이었나. 그것이 중요했다. 그것이 유일한 진실이었다.

---

준호(489)의 입이 다시 열렸다. 이번엔 미영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준호. 넌 날 기억해야 해. 우리는 다시 만나야 해. 제발."

손가락으로 벽을 쳤다. 벽이 울음을 터뜨렸다. 미영의 울음. 내 울음. 같은 울음. 팔이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손목부터 팔꿈치까지 이미 벽처럼 딱딱해져 있었다. 감각이 사라지고 있었다. 그 자리에 차가운 마비감만 남았다.

"미영이... 미영이 뭐 했어?"

준호(489)가 한 발 다가왔다. 이제 그는 준호가 아니었다. 무언가 더 큰 것. 폐가 전체. 모든 준호들을 담은 거대한 것.

"미영은 너의 누나야. 그리고 미영은 죽지 않았어. 유일하게. 그 사고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사람. 넌 죽었고. 은희는 죽었고. 하지만 미영은 살았어. 그리고 미영은 지금도 바깥에서 울고 있어. 1년째. 계속 울고 있어."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기억들이 계속 흘러나왔다. 거부할 수 없는 기억들. 내 기억들.

자동차가 횡단보도를 지나갔다. 신호는 빨간불이었다. 미영의 손이 핸들을 잡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나는 어디에 있었나.

아, 맞다. 나는 죽어 있었다. 이미 죽어 있었다. 그 순간 이미. 아니, 그보다 더 전에. 그 차에 탈 때부터. 아니, 그보다도 더 전에.

"왜... 왜 미영이 안에 들어와?"

물었다.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이제 팔 전체가 벽이 되어 있었다. 다리도 저려오고 있었다. 발가락부터. 발부터. 천천히.

"미영이 안에 들어온 게 아니야. 미영은 계속 밖에 있었어. 그리고 밖에서 너를 부르고 있었어. 매일 밤. 매일 밤 폐가 벽에 손을 얹으면서. 그럼 너는 내 안에서 들었어. 그 목소리를. 그리고 그 목소리가 미영이 된 거야. 미영의 형태로."

미영이 나타났다. 준호(489) 뒤에서. 아니, 준호(489) 안에서. 그녀의 몸이 벽 같았다. 회색이었다. 손가락이 시멘트처럼 딱딱했다. 하지만 눈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 나를 보고 있었다.

"제발. 제발 나가. 제발 나가고 기억해 줘. 우린 누나와 동생이야. 우린 살아있어야 해. 제발."

그 목소리가 들렸다. 진짜 목소리가. 폐가 안에서 들었던 것이 아니라, 폐가 벽을 통해 들었던 그 목소리가. 밖에서. 계속. 1년째.

나는 저항을 멈췄다. 벽이 되는 것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 순간, 모든 게 명확해졌다.

손가락이 더 이상 손가락이 아니었다. 팔이 더 이상 팔이 아니었다. 몸이 더 이상 몸이 아니었다. 나는 벽이 되어 갔다. 천천히. 그리고 동시에 매우 빠르게.

마지막 순간, 나는 한 번 더 저항했다.

"안 돼!"

비명을 질렀다. 목이 벽이 되어 가면서도 목소리가 나왔다. 그 목소리는 내 목소리이면서 미영의 목소리였다. 동시에.

"넌 내 누나가 아니야! 넌 내 죄책감이야! 내 기억이야! 내 환각이야!"

준호(489)와 미영이 멈췄다. 그들의 얼굴이 흔들렸다. 그 순간, 무언가가 갈라졌다. 폐가의 벽이. 현실과 기억 사이의 경계가. 아주 작은 틈이.

나는 그 틈을 봤다. 그 틈 너머의 것을 봤다. 폐가 밖의 세상을. 아직 색이 있는 세상을. 그리고 그 세상에서 울고 있는 미영을.

미영은 정말로 거기 있었다. 폐가 벽에 손을 얹고. 1년째 울고 있었다. 손이 벽에 깊숙이 파고들어 있었다. 피가 흘렀다. 벽과 손의 경계가 흐릿했다.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벽을 통해. 폐가 안으로.

"제발. 제발 나가. 제발 나가고 기억해 줘."

나는 저항을 멈췄다. 벽이 되는 것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내가 벽이 될 때, 미영의 손이 더 깊숙이 파고들었다. 우리는 하나로 연결되고 있었다. 벽과 손으로. 죽음과 삶으로.

초인종이 울렸다.

다시.

계속.

끝나지 않을 때까지.

---

나는 폐가의 어딘가에서 깨어났다. 어느 방인지는 모를 방. 창문이 없는 방. 아니면 창문이 열려 있는 방. 구분할 수 없는 방.

손가락이 떨렸다. 벽을 만져 봤다. 벽이 따뜻했다. 내 체온이었다. 아니, 벽의 체온이었다. 같은 체온. 이제 구분할 수 없었다.

거울이 있었다. 그 거울에는 미영이 비쳐 있었다. 그녀의 입에서 목소리가 나왔다.

"제발. 제발 나가. 제발 나가고 기억해 줘."

거울 속 미영의 손을 잡으려고 했다. 하지만 내 손은 이미 벽이었다. 미영의 손도 벽이었다. 우리는 같은 것이 되어 갔다. 같은 회색. 같은 딱딱함. 같은 부패 냄새. 같은 울음.

현관 문이 열렸다.

새로운 손님이 들어섰다. 준호였다. 그의 얼굴은 내 얼굴이었다. 하지만 눈은 다르다. 아직 살아 있는 눈. 아직 기억하지 못하는 눈.

그 준호는 나를 봤다. 나는 이제 벽이었으니까, 그는 나를 봤으나 보지 못했다.

그 준호는 소파에 누웠다.

그리고 폐가가 울음을 터뜨렸다.

모든 방에서 동시에. 모든 벽에서. 모든 바닥에서. 천천히 울음을 터뜨렸다. 미영의 울음. 내 울음. 같은 울음.

나는 벽이 되어 그 울음을 들었다. 벽으로 변한 손가락으로. 벽으로 변한 귀로. 벽으로 변한 입으로.

그 울음 속에서, 나는 무언가를 깨달았다.

나는 더 이상 준호가 아니었다.

나는 미영도 아니었다.

나는 폐가였다.

그리고 폐가는 계속 울고 있었다.

벽이 나를 부르고 있었다. "제발. 제발 나가."

하지만 나는 어디로도 나갈 수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이미 여기였으니까.

초인종이 또 울렸다.

현관 밖에서 누군가의 발소리가 들렸다. 그 발소리는 내 발소리였다. 또 다른 준호의 발소리였다. 그가 문을 열었다. 나는 벽이 되어 그것을 봤다.

그의 입에서 첫 말이 나왔다.

"어디... 어디야? 난 어디에..."

그 목소리는 내 목소리였다.

하지만 내 목소리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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