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 밤의 손님 - 5화

거울에서 손가락이 통과했을 때 몸이 얼었다. 손가락이 아닌 다른 것도 통과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벽도, 바닥도, 천장도. 나는 더 이상 물질이 아닐 수도 있다.

그 생각이 들자마자 뒤에서 발걸음 소리가 났다.

"준호."

돌아서는 순간 현우가 이미 거실 한가운데 서 있었다. 어떻게 들어왔는지 알 수 없었다. 문도, 창문도 아닌 것 같았다. 그냥 그곳에 있었다. 마치 처음부터 거기 있었는데 내가 못 봤던 것처럼.

"넌 대체 누구야?"

현우가 웃었다. 웃음이 부자연스러웠다. 입 모양을 만들고, 숨을 내쉬고, 다시 평상으로 돌아가는 일련의 동작.

"난 너를 도와주려고 왔어."

"도와준다고? 지금까지 뭘 도와줬는데."

현우가 한 발 다가섰다. 천천히, 마치 내가 도망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을 가지고. 그리고 맞았다. 나는 움직일 수 없었다.

"이 폐가가 뭔지 알아? 너의 정신이야. 여기 있는 모든 게."

"뭐라는 거야."

"손님들도 너야. 넌 자신을 죽이고 또 죽이고 있어. 그리고 그 죽음을 누군가에게 봐주기를 원하고 있어. 돈도 받으면서."

현우의 말이 폐가의 벽처럼 나를 누르고 있었다. 호흡이 얕아졌다.

"손님을 계속 맞이하면 넌 점점 사라져. 기억이 없어지고, 몸이 없어지고, 마지막엔 벽이 돼. 하지만 나가도 넌 사라져. 이 폐가 밖에선 넌 존재할 수 없어. 여기만 넌 있을 수 있어. 넌 폐가야."

"그럼 뭘 하라는 거야? 뭘 해야 한다는 거야!"

목소리가 떨렸다. 손가락이 벽을 긁고 있었다. 벽은 부스러기처럼 떨어져 나왔다. 이 벽도 내 일부인가? 내가 긁고 있는 건 나를 긁는 건가?

현우가 손을 내밀었다.

"손님을 거부하지 마. 그들을 받아들여."

"받아들이면 어떻게 돼?"

"넌 더 이상 준호가 아니게 돼. 손님을 받아들일 때마다 넌 조금씩 사라지고, 결국 다음 손님이 돼. 그들의 죽음을 보여주는 것."

그 순간 현우가 내 얼굴을 만졌다.

손이 닿는 순간 세상이 반전됐다.

나는 거울 앞에 서 있었다. 거울 속에는 수십 명의 준호가 앉아 있었다. 각각 다른 자세로. 누군가는 울고, 누군가는 웃고, 누군가는 그냥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알았다. 이들이 모두 나라는 것을.

거울 속의 준호들이 천천히 변하기 시작했다. 피부가 검어지고, 살이 떨어져 나가고, 눈이 움푹 들어갔다. 어떤 준호는 이미 해골이 되어 있었다. 그들은 변하면서도 나를 바라봤다. 절망과 분노가 섞인 눈으로.

"아니야. 아니야!"

나는 거울을 떠나려고 몸을 돌렸다.

하지만 거울 속에서 또 다른 현우가 나타났다. 그 현우는 울고 있었다. 준호들 사이에 앉아서, 나처럼 혼란스러워하고, 나처럼 자신이 누구인지 묻고 있었다.

"현우... 너도...?"

거울이 깨졌다.

나는 거실에 있었다. 손이 공중에서 멈춰 있었다. 현우는 이미 사라져 있었다.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현우?"

아무것도 없었다. 공기만 있었다.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현우와의 대화를 기억하려고 할 때마다 그것이 흐릿해진다는 것을. 마치 누군가 뒤에서 그 기억을 지우고 있는 것처럼.

현우가 뭐라고 말했지?

손님을 받아들이면... 뭐라고?

생각이 안 났다.

나는 침대 아래에 숨겨둔 일기장을 꺼냈다. 손이 떨렸다. 페이지를 넘기면서 손가락이 종이를 찢을 뻔했다. 혹시 현우에 대해 뭔가 적혀 있을지 모르니까.

새로운 페이지가 있었다.

내가 쓴 것 같지 않은 필체로 적혀 있었다.

'현우는 너의 또 다른 이름이다. 그는 너의 미래다.'

손가락이 페이지를 뚫었다. 손톱이 종이를 파고들었다. 순간 피가 흘렀는데, 그 피는 검은색이었다.

폐가가 흔들렸다.

벽에서 악취가 났다. 이전보다 훨씬 짙은 냄새. 마치 뭔가가 썩고 있는 냄새. 아니면 나 자신이 썩고 있는 냄새.

나는 거울 앞으로 갔다. 거울에는 여전히 수십 명의 준호가 앉아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들의 얼굴이 더 늙어지고 있었다.

어떤 준호는 이미 해골이 되어 있었다.

나는 거울을 떠나려고 몸을 돌렸다.

그 순간 거울에서 울음이 터져 나왔다.

깊고 낮은 목소리로. 마치 지하에서 나오는 것처럼.

"넌 잘못했어."

거울 속에서 얼굴이 나타났다. 내 얼굴이 아니었다. 더 크고, 더 무겁고, 더 오래된 얼굴. 아버지의 얼굴이었다.

나는 예전에 아버지의 죽음을 목격했다. 물에 빠진 그의 모습. 그 기억은 이 폐가에 갇혀 있었고, 나는 계속 그것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 죽음은 너의 책임이야."

아버지가 입을 벌렸다. 입 속에서 물이 흘러나왔다. 아니면 피였을까?

나는 비명을 지르려고 했지만 목소리가 안 나왔다.

폐가가 나를 삼키고 있었다.

벽이 움직이고 있었다. 천천히, 그러나 멈출 수 없게.

나는 벽이 되었거나, 이미 벽이었거나, 벽이 될 것이었다.

현관 근처에서 초인종이 울렸다.

"안녕하세요. 저 준호라고 합니다."

낯선 목소리였다. 하지만 내 목소리였다.

거실 소파에서 또 다른 준호가 깨어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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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의 손님 - 6화

현관에서 나는 움직일 수 없었다. 벽이 되어가는 감각 속에서도 귀는 열려 있었다. 그 목소리가 계속 들렸다.

"저 준호라고 합니다."

누군가 초인종을 또 눌렀다. 길게. 마치 누군가를 깨우려는 것처럼.

나는 거울에서 눈을 떼려고 애썼다. 하지만 아버지의 얼굴이 거울 속에서 계속 나를 봤다. 입에서 물—아니, 피가 계속 흘렀다. 물론 그것도 내 피일 수도 있었다. 나는 더 이상 나 자신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거실에서 뭔가 움직이는 소리가 났다. 소파에서 일어나는 소리. 그리고 발걸음. 누군가 현관으로 가고 있었다. 또 다른 나가.

나는 벽에서 손가락을 빼려고 했다. 손가락이 벽에 박혀 있었다. 아니면 벽이 손가락을 빨아먹고 있었다. 구분이 안 됐다.

"이, 이게 뭐야?"

새로 깨어난 준호의 목소리였다. 현관 문을 열면서 나는 내 자신의 놀람을 들었다.

"안녕. 난 현우야."

또 다른 현우가 있었다. 아니면 같은 현우가 다시 돌아온 건가? 그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벽이 되고 있었고, 폐가는 나를 천천히 소화하고 있었다.

나는 손가락을 힘껏 뺐다.

벽에서 손가락이 나왔고, 그 자리에는 검은 구멍이 남았다. 구멍에서 악취가 났다. 내 악취. 아니면 폐가의 악취. 구분이 안 됐다.

나는 몸을 돌렸다. 벽의 일부가 되려고 했던 내 등이 벽에서 떨어져 나왔다. 가죽이 벗겨지는 소리가 났다. 하지만 나는 아무것도 느끼지 않았다.

현관에서 계속 대화가 이어졌다.

"당신은 1년 전부터 이 집에만 있었습니다."

경찰관 이였다. 그 기계 같은 목소리. 나는 계단을 통해 그곳으로 가려고 했다. 하지만 계단이 없었다. 어제는 분명히 계단이 있었는데. 폐가의 구조가 또 바뀌었다.

나는 벽을 뚫고 내려가야 했다.

벽에 손을 대면서 나는 미영을 생각했다. 그 여자는 벽을 통과할 수 있었다. 나도 벽이 되어가고 있으니 벽을 통과할 수 있지 않을까?

손이 벽을 뚫고 들어갔다. 차갑고 축축한 감각. 마치 내가 벽이 아니라 벽이 나를 빨아먹고 있는 것처럼.

나는 몸을 날렸다.

벽의 반대편은 현관이었다. 나는 바닥에 쓰러졌다. 무언가가 부서지는 소리가 났는데, 그것이 벽인지 내 뼈인지 알 수 없었다.

"당신의 이름은 준호입니다."

경찰관 이가 수첩을 펼쳤다. 그 수첩에는 수백 개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준호(1), 준호(2), 준호(3)... 준호(487).

나는 그 수첩을 봤다. 내 번호를 찾으려고 했다. 하지만 어느 것이 나인지 알 수 없었다.

"당신은 손님입니다."

경찰관 이가 수첩의 마지막 페이지를 가리켰다. 준호(487) 옆에는 빨간 줄이 그어져 있었다. 아직 쓰여질 다음 번호를 위한 공간.

그리고 지금 소파에서 깨어난 새로운 준호는 준호(488)일 것이었다.

"넌 누구야?"

새로 깨어난 준호가 물었다. 준호(488)은 내 과거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혼란스러워하면서도 뭔가를 이해하려고 애쓰는 표정. 나는 그 표정이 싫었다. 그건 나였기 때문이었다.

"나는 준호(487)야."

내가 대답했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현우의 조언을 받아들인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손님을 거부하지 마. 그들을 받아들여. 그리고 넌 다음 손님이 돼.

그 말은 단순히 죽음을 수용하라는 뜻이 아니었다. 죽음을 수용할 때만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그 다음 단계는 손님이 되는 것이었다. 주인에서 손님으로. 육체에서 역할로. 개인에서 기능으로. 그것이 이 폐가의 법칙이었다.

준호(488)의 눈이 흔들렸다. "준호(487)? 뭐 그게... 그건 이름이 아니잖아."

"맞아. 난 이미 이름을 잃었어."

나는 일어섰다. 벽에서 떨어져 나온 내 몸은 축축했다. 마치 방금 물에서 건져올린 것처럼. 아니면 이미 물 속에 있었던 것처럼.

경찰관 이가 나를 봤다. 그의 눈은 아무 감정이 없었다. 마치 나를 처음 보는 것처럼. 아니면 이미 여러 번 본 것처럼.

"당신은 몇 번째입니까?"

"모르겠어."

"당신의 마지막 기억은?"

나는 생각하려고 했다. 하지만 기억이 없었다. 아니면 너무 많아서 구분이 안 됐다. 나는 여러 번 죽었다. 물에 빠져 죽고, 높이에서 떨어져 죽고, 자동차에 치여 죽고. 그 이상이 있었는데 뭔지 모르겠다.

"기억이 없습니다."

경찰관 이가 수첩에 뭔가를 적었다. 그 펜 소리가 크게 들렸다. 카닥, 카닥. 마치 내 뼈가 부러지는 소리처럼.

"그렇다면 당신은 손님이 될 준비가 되었습니다."

"손님이 되면 어떻게 돼?"

"당신은 다음 준호의 죽음을 보여줄 것입니다."

경찰관 이가 손을 들었다. 그의 손가락이 길어졌다. 마치 침사할 때의 손가락처럼. 아니면 벽에서 나온 손가락처럼.

나는 뒤로 물러섰다.

"아니야. 난 손님이 되기 싫어."

"선택은 없습니다."

경찰관 이가 걸어왔다. 준호(488)은 소파 뒤로 숨었다. 그 모습은 우습지 않았다. 그건 나였기 때문이었다. 내 과거의 모습. 내가 무서워하고 있는 모습.

나는 현관 문을 열었다.

현관 밖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검은 공간만 있었다. 마치 세상이 끝난 것처럼. 아니면 세상이 시작되지 않은 것처럼.

"넌 나가면 사라져."

현우의 목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현우는 보이지 않았다. 그의 목소리는 폐가 전체에서 나오는 것 같았다. 벽에서, 천장에서, 내 자신의 입에서.

"여기만 넌 존재해."

나는 검은 공간을 봤다. 그곳으로 나가면 정말 사라질까? 아니면 이미 사라진 건 아닐까? 나는 지금 존재하고 있는 건가? 아니면 환각인가?

나는 검은 공간으로 한 발을 디뎠다.

몸이 투명해지기 시작했다. 손가락부터. 그다음 팔. 그다음 몸통. 가슴이 공기처럼 변했다.

나는 현관으로 돌아왔다.

몸이 다시 나타났다. 하지만 이제 내 피부는 더 창백했다. 마치 벽의 색처럼.

"좋아. 그럼 난 손님이 될게."

내가 말했다. 그 순간 나는 더 이상 도망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니, 도망치고 싶지도 않았다. 이미 나는 준호가 아니었다. 나는 이 폐가의 일부였고, 이 폐가는 나의 일부였다. 죽음을 받아들일 때만 존재할 수 있다면, 나는 죽음 그 자체가 되어야 했다. 그것이 유일한 방법이었다.

준호(488)의 눈이 커졌다. "뭐라고?"

"난 이미 죽었어. 그걸 받아들일 때만 존재할 수 있어. 그래서 난 손님이 될 거야. 그리고 넌..."

나는 준호(488)을 봤다.

"넌 다음 준호가 될 거야."

나의 목소리가 변했다. 마치 현우의 목소리처럼. 아니면 경찰관 이의 목소리처럼. 아니면 아버지의 목소리처럼. 이제 그 모든 목소리가 내 목소리였다.

준호(488)이 뒤로 물러섰다. "넌 누구야? 진짜 넌 뭐야?"

"난 준호(487)이고, 동시에 준호(1)이고, 동시에 현우이고, 동시에 아버지이고, 동시에 이 폐가야."

내가 말했다. 그것이 진실이었다. 더 이상 거짓이 아니었다.

내 손이 벽을 뚫고 들어갔다. 아니면 벽이 내 손을 빨아먹었다. 구분이 갈 필요도 없었다.

나는 거울로 갔다.

거울에는 더 이상 아버지가 없었다. 대신 나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내 얼굴이 계속 변했다. 준호(1)에서 준호(488)로. 그리고 그 이상으로.

거울이 깨지기 시작했다.

균열이 가면서 거울 속의 얼굴들이 흩어졌다. 각각의 조각 안에는 다른 준호가 있었다. 모두 다른 죽음을 당하고 있었다.

나는 거울의 조각을 만졌다.

순간 내 손이 거울과 합쳐졌다. 아니면 거울이 내 손이 되었다. 나는 이제 거울이고, 동시에 거울 안의 모든 준호였다.

저녁이 되었다. 아니면 아침이 되었다. 아니면 시간이 흐르지 않았다.

초인종이 울렸다.

"안녕하세요. 저 준호라고 합니다."

또 다른 목소리. 또 다른 준호. 준호(489).

거실 소파에서 또 다른 몸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그것을 봤다. 아니면 나는 그것이 되었다. 나는 이제 폐가이고, 손님이고, 주인이고, 모든 것이었다.

그리고 가장 끔찍한 것은, 나는 이것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계속될 것이었다.

영원히.

폐가의 벽에서 또 다른 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또 다른 손. 그리고 또 다른 손.

모든 것이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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