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 기억 중개소의 계단을 내려오며 루시안은 자신의 손을 펼쳐 보았다. 손가락 끝이 반투명해졌다. 빛이 통과한다. 이것이 기억을 판다는 것의 대가였다.
"루시안."
헬렌의 목소리가 어두운 복도에서 울렸다. 그녀는 루시안을 한 방으로 이끌었다. 방 안에는 누군가 앉아 있었다. 여인이었다. 마흔을 넘은 것 같은, 하지만 그보다 훨씬 오래된 눈을 가진 여인이.
"셀린이야. 기억 거래를 하던 사람."
헬렌이 말했다.
"지금은?"
"지금은 여기서 일해."
셀린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루시안 앞의 책상 위에 흩어진 종이들을 정렬하고 있었다. 그 손가락들도 투명했다. 루시안은 숨을 멈췄다.
"얼마나 팔았어?"
루시안이 물었다.
"세어본 적 없어."
셀린이 드디어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눈은 회색이었다. 석조 벽처럼 무언가 단단하고 비어 있는 회색이었다.
"기억을 팔 때마다 뭔가 빠져나가는 걸 느껴?"
"네."
루시안이 대답했다.
"그게 뭔지 알아?"
셀린이 일어났다. 그녀는 루시안의 손을 집었다. 루시안의 손가락이 투명해진 부분을 만졌다. 차갑고 건조한 감촉이었다. 마치 종이에 닿는 것처럼.
"감정이야. 기쁨, 슬픔, 분노. 사랑도 포함돼."
"사랑도?"
"특히 사랑. 사랑은 가장 강한 기억이거든. 그걸 팔 때 잃어버리는 감정이 가장 커. 내가 그랬어."
셀린은 루시안의 손을 놓고 자신의 팔을 걷어올렸다. 팔뚝에 흉터가 있었다. 길고 깊은 흉터가. 칼자국처럼.
"언제?"
"기억을 다 팔았을 때. 더 이상 뭘 느껴야 하는지 몰랐어. 그러니까 상처를 냈어. 뭔가라도 느껴야 했거든. 피가 나오는 것, 아픔, 그것만이라도."
루시안은 그 흉터를 바라봤다. 오래된 흉터였다. 하얀색으로 변해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깊었다.
"그게 나라는 증거가 필요했어."
셀린이 말했다.
"흉터가?"
"응. 상처가 있으니까 난 존재한다고 느껴졌어. 기억이 없어도, 감정이 없어도, 적어도 난 여기 있다고."
헬렌이 두 사람 사이의 침묵을 기다렸다. 그녀는 창문 쪽으로 걸어가 밖을 내다봤다. 밤거리의 불빛이 유리창에 반사되었다.
"루시안. 너한테 경고해줘야 할 게 있어서 셀린을 소개했어. 넌 아직 돌아올 수 있어. 셀린도 처음엔 그럴 수 있었어. 하지만 계속 팔아. 자꾸만 팔아."
헬렌이 돌아섰다.
"그럼 어느 순간 자신이 누구인지 몰라. 그럼 기억을 되찾고 싶어 져. 하지만 기억을 되찾으면 모든 게 돌아와. 슬픔도, 고통도, 죄책감도."
"그래도 뭔가보다는 낫지 않아?"
루시안이 물었다.
"그럴까?"
셀린이 웃었다. 그 웃음은 종이가 찢어지는 소리 같았다.
"난 모르겠어. 내가 누군가를 사랑했다는 것만 알아. 기억은 없지만, 그 감정만 사라졌다는 걸 안단 말이야. 그럼 그 사람이 내 앞에 나타나도 날 모를 거야. 내가 사랑한 사람이 죽어 있어도 울 수 없을 거야."
루시안은 셀린의 팔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 흉터가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넌 뭘 팔려고 해?"
셀린이 물었다.
"황제의 기억. 그의 비밀들."
"왜?"
"그를 알기 위해. 그를 이해하기 위해."
"이해한다고 뭐가 바뀌어?"
루시안은 대답하지 못했다.
"넌 지금 그 황제를 사랑하려고 하지? 그러면서 자신을 잃고 있다는 걸 알고 있어?"
셀린이 루시안에게 가까워졌다.
"사랑하려고 하는데, 기억을 팔면서 사랑할 수 있는 능력도 잃어버리고 있어. 그럼 끝내 뭐가 남아? 아무것도 없어. 껍질만."
루시안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다. 손가락 끝이 더 투명해져 있었다. 어제보다.
"얼마나 팔았어, 넌?"
"아직 많지 않아."
"그래? 그럼 아직 느낄 수 있네. 아직 슬플 수도 있고, 분노할 수도 있고, 사랑할 수도 있네."
셀린이 루시안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 감정들을 지금 느껴봐. 아직 느낄 수 있잖아. 그게 얼마나 귀한지 알아."
루시안은 셀린의 손을 느껴보려 했다. 하지만 느껴지지 않았다. 손이 있는 것은 알았다. 온기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다. 감동도, 공포도, 연민도. 아무것도.
"감정이 안 느껴져?"
셀린이 물었다.
루시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시작이야."
지하실을 나간 루시안은 거리로 나왔다. 밤거리였다. 제국의 밤은 늘 어두웠다. 가로등이 몇 개 있었지만, 그것도 어둠을 완전히 밀어내지 못했다.
마크가 기다리고 있었다. 중개소의 밖에서. 그의 얼굴이 어두웠다.
"셀린을 만났어?"
"응."
"뭘 했어?"
루시안은 대답하지 않았다. 마크가 그녀의 손을 잡으려 했다. 루시안은 손을 빼냈다.
"뭐 하는 거야?"
"손 봐."
루시안이 손을 펼쳤다. 투명한 손가락들.
"루시안..."
마크가 그녀의 손을 다시 잡으려 했다. 루시안은 그의 손을 밀어냈다. 힘껏. 마크의 손이 공중에 떨어졌다.
"접하지 마. 기억이 옮겨."
"난 상관없어."
"난 상관이 있어."
루시안이 말했다.
"내일 밤에 다시 황궁에 들어가야 해. 카이젤의 기억이 더 필요해."
"루시안, 이건 미쳤어. 너는 지금—"
"무엇을?"
루시안이 마크를 바라봤다. 그녀의 눈이 차갑게 변했다. 아니, 변한 게 아니었다. 그냥 비어 있었다. 마치 셀린의 눈처럼.
"난 뭐야, 마크? 말해 봐."
"넌 사람이야. 내가 알던 사람이야."
"그 사람은 이제 없어. 내일 밤엔 더 없을 거고. 그 다음날엔 더더 없을 거야. 그래도 상관없어?"
마크는 말하지 못했다.
루시안은 거리를 걸었다. 자신의 손을 보며. 손가락이 점점 투명해지고 있었다. 마치 지워지고 있는 것처럼.
어느 골목의 벽에 붙은 거울 조각이 있었다. 누군가 버린 거울 조각. 루시안은 그것을 들어 자신의 얼굴을 봤다.
자신의 얼굴이 희미했다. 윤곽이 흐릿했다. 마치 물에 녹아내리는 그림처럼.
"내일 밤엔..."
루시안이 중얼거렸다.
"내일 밤엔 난 누가 되어 있을까?"
거울 속의 얼굴이 더 흐려졌다. 아니, 거울이 진동하고 있었다. 루시안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그녀는 거울을 떨어뜨렸다. 깨진 거울 조각들이 밤거리에 흩어졌다. 각각의 조각에는 루시안의 얼굴이 여러 개로 나뉘어 반사되었다.
셀린의 말이 계속 울렸다.
"그 황제가 널 기억하게 되는 순간, 넌 아무도 아니가 될 거야."
루시안은 거울 조각들을 밟고 지나갔다. 유리가 깨지는 소리가 났다. 날카로운 소리가. 하지만 그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내일 밤. 황궁. 카이젤의 기억.
그것이 루시안이 남은 마지막 목표였다. 아니, 목표도 아니었다. 그냥 하나 남은 행동일 뿐이었다. 감정 없이 움직이는 기계처럼.
기억 중개소의 지하실로 돌아간 루시안은 책상 앞에 앉았다. 헬렌이 나타났다.
"내일 밤에 황궁 침입을 준비해야 해. 카이젤의 기억을 모두 팔 거야."
"모두?"
"응. 그의 모든 기억을."
헬렌은 루시안을 오래 바라봤다. 마치 이미 죽은 사람을 보는 것처럼.
"그러면..."
헬렌이 말을 멈췄다.
"그러면 뭐?"
"아무것도 남지 않아. 넌."
루시안이 자신의 투명한 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이미 남은 게 없는데."
그 순간, 창 밖에서 종소리가 울렸다. 밤중의 종소리였다. 그것은 황제의 칙령이 내려졌을 때 울린다.
헬렌과 루시안은 창문으로 나갔다. 거리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종이 계속 울리고 있었다.
"뭐가 일어났어?"
헬렌이 누군가에게 물었다.
"대주교의 설교장에서 뭔가 있대. 운명의 신을 모욕한 자를 찾는다고."
루시안의 피가 얼었다.
"기억을 파는 자. 그자를 찾아야 한다고 대주교가 선언했대."
그 사람이 말했다.
루시안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다. 투명한 손가락들.
"기억을 파는 자는 운명의 신을 모욕한다."
대주교의 목소리가 거리에 울려 퍼졌다. 아마도 확성기술을 사용한 것 같았다.
"그자를 찾으면 상으로 금화 천 개를 주겠노라."
루시안은 밤거리 속으로 몸을 숨겼다. 거울 조각들이 여전히 흩어져 있었다. 그것들이 빛을 반사하며 반짝였다.
내일 밤. 황궁. 카이젤.
하지만 이제 시간이 없었다. 대주교가 움직였다. 종교가 움직였다.
루시안은 뛰기 시작했다. 자신의 투명한 손가락들을 숨기며. 아직 남은 시간이 있을 때. 아직 자신이 무엇인가일 때.
뒤에서 마크의 목소리가 들렸다.
"루시안!"
하지만 루시안은 돌아보지 않았다. 돌아보면 그의 얼굴이 보일 것 같았다. 자신을 걱정하는 얼굴이. 그리고 그 얼굴을 보면 자신도 뭔가를 느껴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느껴지는 게 없었다.
밤거리는 깊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루시안은 점점 투명해지고 있었다.
# 셀린의 경고
기억 중개소의 지하실은 여느 날처럼 침침했다. 촛불이 희미하게 타고 있었고, 벽에 붙은 거울 조각에는 루시안의 반투명한 손가락이 비쳤다. 마크는 그 손가락을 볼 때마다 눈을 감았다. 보지 않으려고 했지만, 자꾸만 시선이 그곳으로 쏠렸다.
"내일 밤에 황궁 침입을 준비해야 해. 카이젤의 기억을 모두 팔 거야."
루시안이 헬렌 앞에서 말했다. 목소리에는 감정이 없었다. 마치 누군가 다른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마크가 벌떡 일어났다.
"루시안, 잠깐. 좀 더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지금 이미..."
"이미 뭐?"
루시안이 마크를 바라봤다. 그 눈빛에 예전의 열정은 남아 있지 않았다. 차갑고 명확하고, 무서울 정도로 결정적이었다.
"이미 계획이 정해졌어. 카이젤의 모든 기억을 본다. 그 안에 뭐가 있는지 알아내고, 그것들을 팔아서 황실의 비밀을 파헤친다. 그게 내 목표야."
마크는 그 말이 거짓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목표가 아니라 집착이었다. 루시안은 더 이상 카이젤을 변화시키고 싶어 하는 게 아니었다. 그냥 자신을 지워내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마치 그것이 구원인 것처럼.
헬렌이 루시안의 투명한 손을 들어 보였다.
"모두?"
"응. 그의 모든 기억."
헬렌은 오래 침묵했다. 그 침묵 속에는 수십 년간 기억 거래를 중개해온 여인의 경험이 담겨 있었다. 마치 죽음을 본 의사가 환자를 바라보는 것처럼, 그녀는 루시안을 봤다.
"그러면..."
헬렌이 말을 멈췄다.
"그러면 뭐?"
"아무것도 남지 않아. 넌."
루시안이 자신의 투명한 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이미 남은 게 없는데."
그 대답은 너무 자연스러웠다. 마크는 소름이 돋았다. 루시안이 정말로 자신의 소멸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헬렌, 셀린이 아직 여기 있어?"
루시안이 갑자기 물었다.
헬렌의 얼굴이 굳었다. 마크는 그것을 보고 이상한 불안감을 느꼈다. 헬렌이 그런 표정을 짓다니.
"셀린을... 왜?"
"그녀도 기억 거래자였다고 했잖아. 만나고 싶어."
헬렌은 루시안을 오래 바라봤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2층에 있어. 기억 카탈로그 정리하고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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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린의 방은 작았다. 벽장 같은 공간에 책상 하나와 의자 두 개가 전부였다. 여름에도 차가운 지하실의 습기가 스며든 그곳에서 셀린은 오래된 서류들을 정렬하고 있었다. 손끝이 검은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먹이었나, 아니면 기억의 때였나.
셀린은 루시안을 보고 조용히 웃었다.
"헬렌이 보냈구나. 내 후배를 만나러 왔어?"
"후배?"
"기억 거래자 중에서도 등급이 있어. 헬렌이 말하지 않았나? 넌 신급이야. 타인의 기억을 추출할 수 있으니까. 나는 그냥 판매자였을 뿐이야. 내 기억만 팔았어."
셀린이 일어섰다. 그녀의 움직임은 느렸다. 마치 몸이 무거운 것처럼. 루시안은 그것을 봤다.
"앉아."
셀린이 의자를 가리켰다. 루시안은 앉았다.
"넌 자신의 감정이 사라지고 있다는 걸 알고 있어?"
"알고 있어."
루시안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계속할 거야."
"왜?"
셀린이 루시안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마치 거울을 보듯이. 마치 자신의 과거를 보듯이.
"그 황제를 기억하게 하고 싶어서."
"그리고 그 과정에서 넌 누가 되니?"
"아무도 아닌 누군가."
루시안이 자신의 투명한 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셀린은 한숨을 쉬었다. 깊고 오래된 한숨이었다. 마치 수년을 견디다가 마침내 터뜨린 한숨처럼.
"내 팔을 봐."
셀린이 소매를 걷었다. 그녀의 팔에는 상처 같은 자국들이 있었다. 하얀 흉터들. 마치 누군가 칼로 그은 것처럼. 하지만 그것은 칼자국이 아니었다. 루시안은 직감적으로 알았다. 그것은 기억의 자국이었다.
"이게 뭐야?"
"날짜야. 내가 기억을 팔았던 날들. 내가 정한 거야. 매번 팔 때마다 팔에 상처를 내고, 그 상처가 흉터가 되게. 왜냐하면..."
셀린이 루시안의 손을 잡았다. 따뜻한 손이었다. 루시안의 투명한 손과는 달리, 셀린의 손은 실재했다.
"내가 누군지 잊어가고 있었기 때문이야. 그래서 이 흉터들이 필요했어. 이게 나라는 증거가 필요했어."
루시안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것은 처음이었다. 지금까지 느껴지지 않던 감정이 갑자기 밀려왔다.
"지금 넌 몇 개의 기억을 팔았어?"
셀린이 물었다.
"모르겠어."
루시안이 대답했다.
"잃어버렸어."
"그래. 그렇게 된다. 어느 순간 자기가 뭘 팔았는지 기억이 안 나. 뭘 느껴야 하는지도 기억이 안 나. 그냥 행동만 남아. 손만 움직여."
셀린이 루시안의 손을 더 강하게 잡았다.
"넌 지금 그 황제를 사랑하려고 하지? 그러면서 자신을 잃고 있다는 걸 알고 있어?"
루시안은 대답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것이 진실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진실이 도드라졌다.
"나도 누군가를 사랑했어. 내가 모든 기억을 팔기 전에. 그 사람을 죽인 놈의 기억을 샀어. 왜냐하면 그걸 봐야 할 것 같았거든. 내 증오를 정당화하고 싶었어. 하지만..."
셀린이 루시안을 놓았다.
"나는 그 기억을 본 순간, 그 사람을 사랑했다는 감정을 잃어버렸어. 그냥 흔적만 남았어. 이 흉터처럼."
루시안은 셀린의 팔을 바라봤다. 하나, 둘, 셋... 흉터가 너무 많았다. 세어질 수 없을 정도로.
"너한테는 아직 손가락이 투명할 정도인 거 보니, 기억을 많이 팔지는 않은 모양이네. 다행이야."
"다행이라고?"
루시안이 웃음처럼 들릴 수 있는 소리를 냈다.
"내일 밤 그 황제의 모든 기억을 팔 거야. 그럼 내가 남아?"
셀린의 눈이 커졌다.
"그러면... 넌 아무도 아니가 될 거야."
"내가 이미 아무도 아닌데?"
"아니. 넌 아직 네 목표가 있어. 아직 넌 무언가를 원하고 있어. 그게 넌 아직 누군가라는 증거야. 하지만 그 목표를 이루는 순간..."
셀린이 루시안의 얼굴에 손을 올렸다.
"그 황제가 널 기억하게 되는 순간, 넌 정말 아무도 아니가 될 거야."
루시안은 그 말을 들었다. 그리고 그 말이 거짓이기를 바랐다. 하지만 자신의 손가락을 보면서, 자신의 감정을 느껴보면서, 그것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밤거리에서 종소리가 울렸다. 깊고 울리는 종소리. 중야의 종소리.
루시안과 셀린은 창문으로 나갔다. 기억 중개소의 2층 창에서 거리를 내려다봤다.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손에 횃불을 들고.
"뭐가 일어났어?"
셀린이 중얼거렸다.
그 순간, 확성기 같은 것에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종교적이고 위엄 있는 목소리.
"기억을 파는 자가 나타났노라!"
대주교의 목소리였다.
"그자는 운명의 신을 모욕한다! 그자를 찾아 황제에게 바치는 자에게는 금화 천 개의 상을 내리겠노라!"
루시안의 피가 얼었다. 마크가 뒤에서 나타났다. 얼굴이 창백했다.
"루시안, 우리 나가야 해. 지금 당장."
"기억을 파는 자는 운명을 거스르는 자다! 그 손가락은 신을 모욕한다!"
대주교의 목소리는 계속 울려 퍼졌다.
루시안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다. 투명한 손가락들. 그것이 이제 표적이 되었다.
"내일 밤이 아니라 지금이야."
루시안이 중얼거렸다.
"내가 지금 움직여야 해."
"루시안, 그건 자살하는 거야!"
마크가 루시안을 붙잡았다.
하지만 루시안은 마크의 손을 벗어났다. 아니, 벗어났다기보다는 마크의 손이 루시안의 투명한 팔을 통과했다. 접촉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내가 이미 죽어 있는 거야. 마크. 넌 아직 모르겠지만, 나는 지금 투명해지고 있어. 이 손가락들이 증거야."
루시안이 창문을 통해 거리를 바라봤다. 사람들이 계속 모여들고 있었다. 횃불들이 밤을 밝히고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단 하나야. 그 황제의 모든 기억을 보는 것. 그리고 그것이 내가 남은 마지막 무언가가 되는 거야."
셀린이 루시안의 손을 다시 잡았다. 이번에는 접촉이 이루어졌다. 셀린의 손이 따뜻했다.
"그럼 나를 기억해 줄래? 내가 말한 이 말들을. 혹시 모르니까. 혹시 넌 정말 아무도 아니가 되더라도. 누군가는 널 기억했다는 증거가 될 수 있도록."
루시안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셀린의 말이 이미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기억은 이미 사라지고 있었다. 하나씩, 천천히.
헬렌이 나타났다. 그녀의 손에는 기억 거래 계약서가 들려 있었다.
"오늘 밤. 황궁. 넌 준비가 되어 있어?"
헬렌이 물었다.
루시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 다음은?"
"그 다음은 없어. 헬렌. 나는 그 다음이 없어."
루시안이 대답했다.
그 말이 마지막이었다. 그 순간, 거리에서 횃불이 더 밝아졌다. 사람들의 목소리가 더 커졌다. 그리고 루시안은 자신의 손가락이 더 투명해지는 것을 느꼈다.
밤은 깊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루시안은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