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울 속 손님 3화
오전 10시 47분. 강남 의료타운의 회색 하늘 아래 경찰청 심리분석팀장 김수진은 이준호의 클리닉 현관에 섰다.
검은색 정장, 뒤로 묶은 머리, 곧게 펼친 어깨. 그녀의 눈동자는 유리처럼 투명하면서도 차가웠다. 대기실의 따뜻한 조명도 그 차가움을 녹이지 못했다.
"이준호 선생님은 지금 진료 중이신가요?"
간호사 이나영은 예약 시스템을 확인했다. 이준호는 이미 그녀의 도착을 알고 있었다. 어제 경찰청에서 전화가 왔고, 협력 차원에서 방문하겠다는 통보였다. 공식적으로는 '정신과 진료 기록 중 자살 사건과의 연관성 조사'였다.
"바로 연결해 드리겠습니다."
진료실 문이 열렸을 때 이준호는 환자를 배웅하는 중이었다. 불안장애로 진단된 40대 여성. 그녀는 이준호를 떠날 때 숭배자가 신을 바라보는 눈으로 뒤돌아봤다. 이준호의 미소는 완벽했다. 항상 그렇듯이.
김수진이 들어섰다.
"수고하셨습니다, 선생님."
이준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동작은 자연스러웠다. 놀람도, 경계도 드러내지 않았다. 하지만 내부는 달랐다. 그녀의 무의식을 읽으려는 순간, 이준호는 이상한 감각을 느꼈다.
벽이다. 투명하지만 명백한 벽.
마치 자신의 손이 물 속으로 뻗어나가려다 유리에 부딪친 것 같은 느낌. 손가락 끝이 저렸다. 뇌가 찢어지는 듯한 통증이 순간 스쳐 지나갔다. 그는 즉시 표정을 유지했지만, 관자놀이의 맥박이 두드렸다.
"경찰청에서 오셨군요. 어떤 일로?"
"최근 몇 달간 우리 지구 내에서 자살 사건이 증가했습니다." 김수진은 소파에 앉지 않은 채 말했다. "그중 일부가 정신과 진료 이력을 가지고 있었거든요. 혹시 패턴이 있을까 해서 협력 병원들을 방문 중입니다."
거짓이 아니었다. 하지만 전부도 아니었다.
"그렇군요. 저도 협력하겠습니다." 이준호는 환자 보호 규정을 이유로 상세 정보는 제공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 부분을 능숙하게 처리했다. 수년간 경찰 조사를 받은 경험이 있었다. 아니, 있다고 믿고 있었다. 기억이 불확실했다.
"혹시 최근에 비정상적인 환자 반응이나 사건을 경험하신 적은?"
이준호는 미소를 유지했다. 하지만 그의 오른쪽 눈이 가느다란 간격으로 떨렸다. 그 자신도 느꼈다. 통제 불능의 신체 신호.
"특별히 없습니다. 모든 환자는 정상적인 진료 과정을 거칩니다."
김수진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녀는 거짓말하는 사람의 미세한 신호를 읽는 데 능숙했다. 입술의 긴장도, 눈동자의 미세한 움직임도. 하지만 이준호는 다른 종류의 거짓말쟁이였다. 몸이 신호를 보낼 때도 있고, 보내지 않을 때도 있다. 마치 두 명의 사람이 한 몸을 공유하고 있는 것처럼.
"이상하네요." 김수진은 자신의 수첩을 펼쳤다. "이 병원의 환자 사망률이 서울 평균보다 23% 높다는 거."
침묵. 이준호의 얼굴이 일순간 경직되었다.
"통계는 맥락에 따라 달라집니다."
"맞습니다. 하지만 당신의 진료 환자 중에서만 보면 더 높습니다. 35% 높습니다."
이준호는 그 숫자를 들었을 때 가슴의 한 점이 얼어붙는 것을 느꼈다. 자신이 조종했던 환자들. 그들의 얼굴과 이름들이 기억 속에서 흐릿해졌다. 몇 명이었더라? 정확히는 몇 명이었는가?
"통계 오류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제 환자군이 특별히 중증 사례들로 구성되어 있을 수 있으니까요."
김수진은 그의 대답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 대신 자신의 휴대폰을 꺼냈다. 화면에는 네 명의 사진이 떠 있었다. 모두 자살로 처리된 사건들의 피해자였다. 박영미, 정혜진, 이수현, 최윤호. 이준호는 처음 두 명을 명확히 기억했다. 아니, 기억한다고 믿고 있었다.
"이 분들을 진료하셨나요?"
이준호의 뇌는 빠르게 회전했다. 진료 기록을 인정하면 의심이 심해질 것이다. 부정하면 경찰의 체계적인 조사가 시작될 것이다. 둘 다 위험했다. 그래서 그는 중간 지점을 택했다.
"기억이 명확하지 않습니다. 환자 프라이버시 때문에 구체적으로 답변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진료 기록으로 확인하겠습니다. 법원 영장이 필요하면 받겠습니다."
그녀가 돌아서는 순간, 이준호는 마지막 시도를 했다. 자신의 능력을 집중시켜 그녀의 무의식으로 침투하려 했다. 의심을 누그러뜨리고, 그 대신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게 만드는 가느다란 암시. 그것은 이준호가 지난 5년간 완벽하게 해온 일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게 작동했다.
이준호의 시야가 순간 흔들렸다. 코끝에서 따뜻한 액체가 흘렀다. 코피였다. 자신의 능력이 자신에게 반발했다. 마치 두 개의 자석 같은 극이 서로를 밀어내듯이.
김수진은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혹시 괜찮으세요?"
이준호는 손수건으로 코를 눌렀다. 떨리는 손. 그것을 감추기 위해 그는 웃음을 지었다.
"진료 후라 피로해서요. 괜찮습니다."
"그렇군요. 그럼 내일 영장을 가지고 오겠습니다."
문이 닫혔다.
이준호는 거울을 봤다. 자신의 코 아래에는 선홍색 피가 흘렀다. 그리고 거울 속 자신의 눈은 갈색이 아니라 검은색이었다. 또 변했다. 다시 변했다. 아니면 처음부터 검은색이었던가?
거울을 더 자세히 들여다봤을 때, 그는 자신의 입이 움직이는 것을 봤다. 하지만 자신의 입은 움직이지 않았다. 거울 속의 얼굴만 천천히 웃고 있었다. 그 웃음은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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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2시. 강남경찰서 심리분석팀 사무실. 김수진은 자신의 책상 위에 사건 파일을 펼쳤다.
박영미(35). 여성. 아파트 옥상에서 투신. 유서 없음. 진료 기록: 이준호 정신과.
정혜진(28). 여성. 자택에서 약물 과다복용. 유서 있음(난필). 진료 기록: 이준호 정신과.
이수현(52). 남성. 한강 다리에서 투신. 유서 없음. 진료 기록: 다른 병원의 신경과.
최윤호(31). 남성. 자택에서 목을 매기. 유서 있음(정상 필체). 진료 기록: 이준호 정신과.
네 명 중 세 명이 같은 의사를 거쳤다. 통계적으로 불가능한 수치다.
김수진은 CCTV 영상 요청을 시작했다. 각 사건 발생 시간대의 이준호의 위치 추적. 그 과정에서 발견한 것이 있었다.
박영미 사건 당일, 강남 의료타운 CCTV에는 이준호가 오후 6시에 병원을 나가는 모습이 기록되어 있었다. 화면을 확대했을 때 그의 체격은 일반적인 이준호의 체격과 달랐다. 어깨 폭이 약 3cm 더 넓어 보였고, 걸음걸이도 달랐다. 신체 무게 중심이 다르다는 의미였다.
정혜진 사건 당일, 같은 위치의 다른 CCTV에는 이준호가 오후 8시에 병원으로 들어오는 모습이 있었다. 이번에는 어깨가 더 좁아 보였다. 어깨 폭이 약 2.5cm 더 좁다. 마치 다른 사람이 그의 옷을 입고 있는 것처럼.
김수진은 화면을 확대했다. 얼굴은 마스크로 가려져 있었다. 하지만 눈의 각도가 달랐다. 한 번은 내려다보는 각도, 한 번은 앞을 보는 각도. 키가 다르다는 의미였다. 적어도 5cm 이상.
불안감이 엄습했다. 같은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자꾸만 떠올랐다. 만약 같은 사람이 아니라면? 만약 여러 명의 서로 다른 사람이 같은 수법으로 범행한다면? 아니면 한 명이 자신의 체격을 변장시킨 것인가?
김수진은 영상을 다시 봤다. 이번에는 손가락에 집중했다. 반지, 시계, 손의 크기. 모든 것이 달랐다. 마치 다른 사람이었다.
그녀의 휴대폰이 울렸다. 병원 기록실 담당자였다.
"차장님, 이준호 선생님의 진료 기록 중 일부가 손상되었다고 합니다. 복사본도 없고."
"누가 손상시켰습니까?"
침묵.
"담당자가 말하기를... 원장님의 지시라고 했습니다."
김수진은 이 정보를 적었다. 윤영호. 의료계의 실력자. 그리고 이준호의 상급자. 기록을 의도적으로 훼손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은폐.
그리고 그것은 한 가지 가능성을 시사했다. 윤영호가 이준호를 보호하고 있다는 것. 아니면 더 위험한 가능성. 윤영호 자신이 이 일에 관여하고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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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3시 45분. 윤영호의 원장실.
이준호는 그곳에 불려갔다. 전화가 아니라 간호사를 통한 직접 소환이었다. 그것만으로도 긴장의 신호였다.
윤영호는 큰 창문 앞에 앉아 있었다. 서울의 스카이라인이 그의 뒤에 펼쳐져 있었다. 그는 자신의 시선을 돌리지 않고 말했다.
"경찰이 왔다더군."
"예. 정기적인 조사였습니다."
"정기적이었나?" 이제 윤영호가 돌아봤다. 그의 눈빛은 예리했다. "당신 환자의 사망률이 업계 평균보다 35% 높다는 것을 아십니까?"
이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35%입니다. 매우 흥미로운 숫자입니다." 윤영호는 책상 위의 문서를 집어 들었다. "통계학적으로 보면 우연이 아닙니다. 어떻게 설명하시겠습니까?"
"환자군의 특성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경찰에게도 그렇게 말씀하셨습니까?"
"예."
윤영호는 천천히 일어섰다. 그는 이준호에게 가까워졌다. 매우 가까워졌다. 거리는 1미터 미만. 그의 얼굴은 이준호의 얼굴과 같은 높이에 있었다.
"당신을 아는 사람이 나라는 것을 명심하세요."
그 말의 무게는 엄청났다. 당신의 비밀을. 당신이 무엇인지를. 당신이 한 일을. 모든 것을 아는 사람이 나라는 것.
"하지만 나는 당신을 보호할 수도 있습니다. 경찰의 수사를 막을 수도 있습니다. 기록을 더 손상시킬 수도 있습니다." 윤영호는 한 발 물러섰다. "당신이 계속 의사로 살 수 있도록."
그것은 거래였다. 명확한 거래. 당신은 계속 의사로 살고, 나는 당신의 비밀을 지킨다. 대신 당신은 나의 것이다. 앞으로 내가 지시하는 일을 해야 한다. 환자들을 더 깊이 조종해야 한다. 증거를 없애야 한다. 필요하면 특정 인물을 제거해야 한다.
"이해하셨습니까?"
"예."
"그럼 다시 진료실로 돌아가세요. 오늘은 환자를 많이 보세요. 정상적으로."
이준호는 나왔다.
복도의 거울 앞에서 발걸음이 멈춰섰다. 손이 떨렸다. 호흡이 가빠졌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느낌. 윤영호의 말이 자신의 목을 조르는 것 같았다. 통제 불능. 그것이 이제 자신의 상태였다. 더 이상 자신이 조종하는 쪽이 아니라 조종당하는 쪽.
거울 속 얼굴을 봤다. 손이 움직이지 않는데 거울 속의 손이 움직였다. 그 손이 자신의 뺨을 스쳤다. 따뜻한 손가락. 자신의 손이 아닌 다른 누군가의 손. 거울 속에서 그 얼굴이 천천히 웃음을 짓기 시작했다. 입술이 벌어지고, 눈이 가늘어졌다. 하지만 자신의 얼굴은 경직된 채였다. 마치 누군가 다른 사람이 자신의 얼굴을 통해 웃고 있는 것 같았다.
이준호는 거울에서 눈을 돌렸다. 하지만 등 뒤에서 여전히 그 웃음이 들리는 것 같았다. 시야가 흔들렸다. 숨을 고르려 했지만 가슴이 철렁거렸다. 언제부터 자신의 몸이 자신의 것이 아니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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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4시 30분. 진료실.
환자는 30대의 불안장애 여성이었다. 정기적으로 오는 환자 중 한 명. 이름은 김지연. 그녀는 항상 이준호를 신뢰했다. 그의 말 한마디로 안정되었다.
"요즘 좋으신가요?"
"네, 선생님. 덕분에 많이 나아졌습니다."
이준호는 자신의 능력을 집중시켰다. 그녀의 무의식으로 진입하려 했다. 깊숙이 들어가서 그녀의 불안을 누그러뜨리고, 자신에 대한 의존성을 강화시키는 작업. 그것이 그의 치료 방식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벽이 있었다.
"선생님?"
여성이 물었다.
"뭔가 이상한데요. 선생님 말씀이 자꾸 제 귀에 안 들어와요. 마치 수중에 있는 것 같고."
이준호는 깨달았다. 자신의 능력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은 비단 이 여성만이 아니었다. 아까 김수진도 그랬다. 지난 진료 환자들도 그렇게 반응했다. 자신의 능력이 점점 약해지고 있다는 것을.
그런데 더 이상한 것이 있었다. 여성의 팔에 닿으려 할 때, 이준호는 그 순간 날카로운 통증을 느꼈다. 마치 누군가 자신의 손등을 바늘로 찌르는 것 같은 통증. 그것은 김수진과의 접촉 때 느꼈던 것과 정확히 같은 감각이었다.
그의 손가락이 저절로 움직였다.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손이 펜을 집어 들고 환자의 팔을 향해 움직였다. 이준호는 그것을 멈추려고 했지만, 손은 계속 움직였다. 마치 다른 누군가가 자신의 팔을 조종하고 있는 것처럼.
"선생님?"
여성의 목소리가 두려움으로 떨렸다. 이준호는 필사적으로 손을 제어했다. 펜을 놓았다. 숨을 고르고 미소를 지었다.
"괜찮습니다. 피로할 뿐입니다."
그는 약을 처방했다. 정상적인 정신과 의사처럼. 하지만 내부는 붕괴되고 있었다. 자신의 몸이 더 이상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깨달음 속에서. 누군가가 자신의 팔을 움직이고, 자신의 눈을 통해 보고, 자신의 입으로 웃는다는 깨달음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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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6시 15분. 자택 거실.
이준호는 자신의 일기를 펼쳤다. 어제 쓴 페이지. 그 위에는 자신이 쓰지 않은 글귀가 있었다.
'당신은 누구인가? 의사인가, 살인범인가, 아니면 나인가?'
손가락으로 글씨를 더듬었다. 아직 잉크가 마르지 않았다. 따뜻했다. 오늘 낮에 쓰여진 글씨였다.
그리고 그 글씨는 자신의 필체와 정확히 같았다.
이준호는 거울을 들었다. 자신의 얼굴을 비춰봤다. 그 순간, 거울 속에서 손이 움직이는 것을 봤다. 자신의 손이 아니라 거울 속의 손이. 그 손이 펜을 들고 일기장 위로 내려왔다. 이준호는 자신의 손이 움직이지 않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거울 속에서는 자신이 펜을 들고 있었다.
글씨가 써지기 시작했다.
'넌 이미 죽었어.'
이준호는 거울을 떨어뜨렸다. 깨진 거울 조각들이 바닥에 흩어졌다. 각 조각마다 다른 얼굴이 비쳤다. 어떤 조각에는 자신의 갈색 눈동자가 있었고, 어떤 조각에는 검은색 눈동자가 있었다. 그리고 모든 조각에서 그 얼굴들이 웃고 있었다. 하나의 얼굴으로 통일되지 않은 웃음. 마치 여러 명의 입이 동시에 벌어지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