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음력 초하루 전야, 결단의 시간
응혼의 절규가 당 안을 가득 채웠다.
소연은 거울 앞에서 자신의 손을 들었다. 손가락이 투명했다. 목까지 진행된 투명함. 남은 시간은 6시간.
손가락을 움직여봤지만 감각이 없었다. 피부에 닿는 것은 공기뿐이었다. 죽음이 천천히 올라오고 있었다.
응혼의 울음이 더 커졌다. 분노가 아니었다. 절규였다. 150년을 불려지지 않은 이름의 절규.
소연은 거울을 돌려 응혼을 봤다. 검은 제단 위에 놓인 그것은 여전히 울고 있었다. 죽음을 요구하는 울음. 자신의 죽음으로 모든 것을 끝내라는 울음.
죽을 수 있다면 얼마나 쉬울까.
하지만 죽으면 마을은 어떻게 될까. 응혼의 저주는 풀릴까. 아니면 더 깊어질까. 진희의 원한은 풀릴까. 아니면 영원히 이 땅에 박혀 있을까.
소연의 손이 떨렸다. 투명한 손가락이 떨렸다.
밤 열한 시.
마을 회관의 불이 꺼지지 않았다. 유진이 나타났을 때, 소연은 응혼을 들 준비를 하고 있었다. 검은 제단 위에 놓여 있었고, 그 주변의 공기는 희끗희끗하며 떨리고 있었다.
"내려놓아."
유진의 목소리는 낮지만 단호했다. 그는 문턱에 서 있었고, 손에는 기록장이 아닌 다른 것을 들고 있었다. 열 개의 초. 마을 사람들이 진희의 제단 앞에서 켠 것들이었다.
"마을 사람들이 모였다. 지금도 회관에 있다."
"초하루 자정까지 남은 시간에 무슨—"
"들어."
유진이 한 발 앞으로 나왔다. 투명해진 소연의 손이 응혼의 자루를 잡고 있었다. 그는 그 손을 바라봤다.
"야차를 베는 방법이 하나만 있는 게 아니다."
"응혼이 없으면 야차는 베어지지 않는다."
"응혼은 죄책감을 먹이로 한다. 그렇다면 죄책감을 함께 나누면 어떻게 될까?"
소연이 응혼에서 손을 떼었다. 아주 천천히. 투명한 손가락이 검의 자루에서 미끄러져내렸다.
"무슨 소리냐?"
"마을 사람들이 진희의 죽음을 마주했다. 150년 동안 마을이 함께 눈을 감았던 그 죽음을. 이제 마을은 진희의 죄책감을 자신들의 죄책감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너 혼자가 아니라, 모두가 함께."
유진이 다가섰다. 그의 손이 소연의 투명한 팔을 잡았다. 손가락이 그녀의 팔을 관통할 수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았다.
"만약 모두가 함께 야차를 맞이한다면? 모두가 함께 진희를 부른다면? 그 울음이 죄책감이 아니라 용서와 추도의 울음이라면?"
"그래도 야차는 죄책감이다."
"죄책감이 희석되면 야차도 약해진다. 응혼을 내려놓고 마을 사람들과 함께 야차 앞에 서자. 너는 죽지 않고. 우리가 함께 그것의 한을 짊어지자."
소연의 손이 떨렸다. 투명한 손이었으므로, 떨림이 공기 속에서 직접 보였다.
"넌 진희를 잃지 않았어. 넌 가족을 잃었어."
"그래서 안 된다는 뜻이 아니다."
유진이 소연의 손을 더 강하게 잡았다. 그의 손이 따뜻했다.
"넌 죄책감으로 죽으려고 했다. 그런데 지금 넌 다른 것을 느낄 수 있어. 마을 사람들이 함께라는 것을. 그게 응혼을 약하게 만든다."
"유진."
"진희가 죽던 날 밤, 나는 너를 본다. 응혼을 들고 이장을 추격하던 너. 그때 너의 얼굴에는 죄책감이 없었다. 분노였다. 정의였다."
유진의 목소리가 떨렸다.
"넌 살아야 한다. 그리고 살면서 진희를 기억해야 한다. 응혼이 아니라 마음으로."
소연은 응혼을 보았다. 검은 제단 위에서 여전히 울고 있었다.
"만약 내가 죽으면?"
"그럼 나도 죽는다. 너를 남기고 살 수 없다."
유진의 손이 떨렸다. 그 떨림 안에 모든 것이 담겨 있었다. 5년 전 야차에게 잃은 가족의 울음. 그리고 지금 소연을 잃고 싶지 않은 욕망.
"그래."
소연이 응혼에서 완전히 돌아섰다.
회관으로 가는 길은 가파랐다. 마을의 야산을 내려오며, 소연은 투명해진 자신의 팔을 보았다. 목과 얼굴도 이제 희미했다. 시간이 남지 않았다.
회관의 문이 열렸을 때, 마을 사람들이 있었다.
덕순 할머니가 맨 앞에 있었다. 그 뒤로 마을의 주민들. 노인들, 젊은이들. 그들은 모두 진희의 제단 앞에 앉아 있었다. 제단 위에는 열 개의 초가 놓여 있었다.
할머니가 일어섰다. 그녀의 눈은 빨갛게 부어 있었다.
"소연아."
"응혼을 들고 왔나?"
"아니요."
할머니가 소연을 안았다. 투명해진 팔이 할머니의 등을 안았다. 감각이 희미했지만, 그 체온은 전달되었다.
회관의 한구석에서 이장 이준호가 일어섰다.
그의 얼굴은 창백했다. 150년 동안 자신의 죄를 숨기며 살아온 사람의 얼굴이었다.
"이건 미친 짓이다. 야차는 죄책감이 아니라 원귀다. 소연이 응혼을 들고 야차를 베어야만 한다."
"그럼 소연이 죽는다."
덕순 할머니가 이장을 바라봤다. 그 눈빛은 차가웠다. 150년 침묵의 무게를 아는 눈빛.
"우린 이미 한 사람을 죽게 했다. 그 죽음 위에 또 다른 죽음을 쌓을 순 없다."
"할머니."
이장이 입을 열려다 다시 닫았다. 그 순간, 마을의 주민들이 일어섰다. 조용히. 하지만 단호하게.
민준이가 앞으로 나왔다. 여덟 살 아이였다.
"누나가 죽으면 안 돼요. 누나가 살아있는 게 가장 좋은 결말이에요."
이장의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그는 입을 열려 했지만, 다시 닫았다. 무릎을 꿇었다. 그의 어깨가 떨렸다.
"우린 함께한다."
누군가가 말했다. 그것이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 목소리는 모두의 목소리였다.
마을의 주민들은 진희의 제단 앞에 모두 무릎을 꿇었다. 그들의 몸이 흔들렸다. 어떤 이는 울음을 터뜨렸다. 손을 떨며 제단을 향해 내밀었다. 무릎이 바닥에 닿으며 나는 소리. 목이 메인 울음. 150년 동안 지키지 못한 침묵을 깨는 신체들.
"진희."
누군가가 불렀다.
"진희."
다른 목소리가 따라왔다.
"진희."
그 울음이 회관을 채웠다. 추도의 울음이었다. 용서를 청하는 울음이었다.
마을 경계에서, 그 울음을 듣고 있었던 것이 있었다.
—
밤이 깊어갔다. 자정이 가까워졌다.
소연은 응혼을 들고 마을 경계로 나갔다. 유진이 함께였다. 그들의 뒤로, 마을의 주민들도 따라왔다. 모두가.
마을 경계의 숲이 침묵했다. 아무것도 울지 않았다.
그때였다.
—진희...
숲 깊은 곳에서, 절규가 터져 나왔다. 더 이상 분노의 울음이 아니었다. 진희라는 이름을 부르는 절규였다. 150년 동안 아무도 불러주지 않은 그 이름.
소연은 응혼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투명해진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마을 사람들도 손을 내밀었다. 모두가.
—진희...
그 울음이 가까워졌다. 마을 경계의 어둠이 흔들렸다.
마을 경계의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형태를 잡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림자였다. 까만 그림자. 하지만 그 그림자가 점점 선명해질수록, 그 안에 얼굴이 보였다.
여자의 얼굴이었다.
야차였지만, 동시에 진희였다.
그 얼굴은 슬픔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150년의 슬픔이. 마을에 의해 외면당한 슬픔이.
응혼이 변했다.
검의 자루가 응축되기 시작했다. 빛이 모여들었다. 더 이상 검이 아니었다. 목걸이가 되었다. 작은, 검은 목걸이. 진희의 눈물 같은 색깔로.
"우린 모두 알고 있다."
소연이 말했다.
"당신이 혼자가 아니었다는 것을. 당신의 죄책감이 우리의 죄책감이었다는 것을."
야차의 형태가 흔들렸다.
"150년 동안 우린 당신을 외면했다. 침묵으로. 그것이 우리의 죄다."
이장 이준호가 무릎을 꿇었다. 마을 경계 근처에서. 마을 주민들도 함께.
"용서해달라."
누군가가 말했다.
"용서해달라."
목소리가 겹쳤다.
"용서해달라."
마을 전체의 목소리가 되었다.
야차는 울었다.
더 이상 분노로 울지 않았다. 눈물로 울었다. 150년 만에 누군가가 자신의 죽음을 인정해주었을 때의 울음이었다.
그 울음과 함께, 마을의 경계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은 공격이 아니었다. 해방이었다. 150년 동안 야차가 마을을 짓누르던 저주의 결계가 풀리는 소리였다.
목걸이가 소연의 목에 걸렸다.
목걸이는 따뜻했다.
소연의 몸에서 투명함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손가락부터. 손목부터. 발끝부터. 투명했던 부분들이 색을 되찾았다.
흐릿한 은빛이 피부를 타고 흘러 올라왔다. 응혼의 색이었다.
손가락이 돌아오고, 팔이 돌아오고, 목이 돌아왔다.
마지막으로 얼굴이 온전해졌다. 은빛은 천천히 사라졌고, 소연의 살색이 돌아왔다.
"소연!"
유진이 소연을 잡았다. 손가락이 살갗에 닿았다. 따뜻한 손가락.
소연은 고개를 들었다. 유진의 얼굴을 봤다. 그의 눈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
"죽지 마."
유진의 목소리가 떨렸다.
"제발. 죽지 마."
그것이 명령이 아니라 간청임을 소연은 알았다. 5년 전 유진은 가족을 잃었다. 그 이후 그는 어떤 죽음도 더 이상 견디지 못할 사람이었다.
"당신이 죽으면 나도 죽고 싶어."
소연의 가슴이 철렁했다. 그것은 협박이 아니었다. 약속이었다.
마을의 주민들도 그것을 알았다. 그들의 손이 더욱 앞으로 나아갔다.
"우리가 함께 질 것이다. 당신의 슬픔을. 당신의 죄책감을. 모두."
마을의 주민들이 손을 더욱 앞으로 내밀었다.
그들의 손과 야차의 형태가 만났을 때, 빛이 폭발했다.
—
음력 초하루의 자정이 울렸다.
마을 경계의 숲이 조용해졌다. 더 이상 원한의 울음이 없었다. 죽음의 기운도 없었다.
대신, 무언가 새로운 것이 태어났다.
마을의 중앙 제단에서, 열 개의 초가 모두 타버렸다. 하지만 그곳에는 새로운 불이 켜져 있었다. 진희를 기리는 불. 150년 만에.
소연은 유진의 손을 놓지 않았다.
"살아있어?"
유진이 물었다.
"응."
소연이 대답했다.
"죽지 않을 거야?"
"응."
그 대답 하나로 유진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덕순 할머니가 그들에게 다가왔다. 할머니의 얼굴에는 웃음이 있었다. 150년 만의 웃음이었다.
"이제 시작이다."
할머니가 말했다.
"죽음이 아닌 희망의 속죄가."
소연의 목에 걸린 목걸이가 부드럽게 따뜻해졌다.
"안녕히 가."
소연이 중얼거렸다.
"우린 여기에 있을 테니."
그 말을 마치는 순간, 목걸이에서 마지막 빛이 흘러나왔다. 그것은 마을 하늘로 올라갔다. 별처럼. 수백 개의 별처럼. 150년 동안 하늘에 오르지 못했던 모든 혼들을 태우고.
—
새벽이 밝아올 때, 마을은 변해 있었다.
더 이상 저주의 그림자가 없었다. 주민들의 얼굴에서도 공포가 사라졌다. 대신 무거운 것이 있었다. 죄책감. 하지만 이제 그것은 혼자 짊어진 것이 아니었다.
마을 경계에 서 있던 사람들이 천천히 마을로 돌아갔다. 유진이 소연의 손을 잡고 걸었다. 민준이는 아버지 어깨 위에서 자고 있었다. 덕순 할머니는 이장의 옆을 지나갔다. 이장은 여전히 무릎을 꿇고 있었다.
"이장님."
할머니가 말했다.
"일어나세요. 이제 당신도 함께 질 차례입니다."
이장이 고개를 들었다. 그의 얼굴은 완전히 무너져 있었다. 하지만 그 안에는 어떤 해방감도 있었다. 150년 동안 혼자 짊어진 죄책감에서 벗어나는 것의 해방감.
마을의 당에서, 응혼이 사라진 제단이 비어 있었다.
하지만 비어 있지 않았다.
거기에는 목걸이가 놓여 있었다. 검은 목걸이. 진희의 눈물 같은 색깔로.
소연은 그 목걸이를 들었다. 여전히 따뜻했다.
"이제 뭘 할 거야?"
유진이 물었다.
소연이 목걸이를 목에 걸었다. 검은 비단이 그녀의 목을 감쌌다.
"살아야지. 우리가 함께."
그 말을 하는 순간, 목걸이가 한 번 더 따뜻해졌다.
목걸이 안에서, 무언가가 움직이고 있었다.
응혼이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검의 형태를 잃었을 뿐, 그것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 그것은 소연의 가슴팍에서 뛰고 있었다. 마치 심장처럼.
목걸이 속에서 응혼의 울음이 울려 퍼졌다. 더 이상 죽음을 요구하는 울음이 아니었다. 그것은 속삭임이었다.
*"이제 시작이야. 우린 함께 살아간다. 진희와 함께. 마을과 함께."*
소연의 손이 목걸이를 감쌌다. 그 안에서 뛰는 것을 느꼈다. 응혼의 고동. 아직도 무언가를 원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것은 죽음이 아니었다. 기억이었다. 진희를 잊지 말라는 울음이었다.
유진이 소연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얹었다.
"뭐가 보여?"
"응혼이 살아있어. 여전히."
"그게 위험한 건 아닐까?"
소연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이제 그건 저주가 아니야. 약속이야."
목걸이가 다시 따뜻해졌다. 마치 그것이 동의하는 것처럼.
마을의 하늘에는 여전히 별들이 떠 있었다. 150년 만에 하늘에 오른 혼들의 불빛. 그들은 더 이상 이 땅에 묶여 있지 않았다. 하지만 완전히 떠나지도 않았다. 마을 위에서, 마을을 지키며, 마을을 기억하고 있었다.
소연은 목걸이를 만졌다.
"우리가 기억할게. 당신을. 진희를."
그 말이 끝나는 순간, 목걸이에서 따뜻한 기운이 흘러나왔다. 그것은 소연의 온몸을 감싸고, 유진을 감싸고, 마을 전체를 감쌌다.
150년의 저주가 풀렸다.
하지만 새로운 것이 시작되고 있었다.
목걸이 안에서, 응혼은 여전히 깨어 있었다. 그것은 더 이상 죽음의 검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이 될지는, 아직 아무도 알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