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 이장의 음모

회관의 난로에서 불이 피어올랐다. 150년의 기록이 재가 되어 떨어졌다. 이장 이준호는 타들어가는 종이를 바라봤다. 그의 손가락이 떨렸다. 유진이 소리를 지르며 달려들었지만 너무 늦었다.

"진실은 불편하거든."

이준호의 목소리가 회관 안을 채웠다.

"진실은 마을을 무너뜨려. 하지만 소연의 죽음은 영웅담이 된다. 그게 필요해. 그게 이 마을이 살아남는 방법이야."

창밖에서 소연이 그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투명해지는 손가락. 응혼에서 울음이 터져 나왔다.

---

유진이 방에서 나간 뒤, 당의 방은 고요했다. 소연은 덕순 할머니가 펼쳐 놓은 기록을 바라봤다. 150년 전의 글씨들이 희미하게 떨렸다. 손가락이 점점 투명해지고 있었다. 팔이 아닌 가슴팍까지.

응혼이 베개 위에서 조용히 울렸다.

"진실을 알아야 해."

할머니의 목소리는 끝까지 부드러웠지만, 그 무게는 돌덩이였다.

"죽기 전에, 당신은 누가 이 모든 것을 시작했는지 알아야 한다."

소연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응혼의 기운이 점점 강해지고 있었다. 마을 위에서, 야차도 느끼고 있을 것이었다. 소연의 죄책감이 깊어질수록, 검의 울음은 커졌다.

그 순간 밖에서 소리가 났다. 발걸음. 여럿. 유진이 기록을 들고 마을 회관으로 향한다는 것을 소연은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여정이 얼마나 길 것인지, 그 기록이 어떤 운명을 맞을 것인지는 몰랐다.

"당신은 아직 움직일 수 있지?"

할머니가 물었다.

"네."

소연은 일어섰다. 투명한 손으로 응혼을 집었다. 검은 주인의 의도를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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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회관의 불이 켜져 있었다. 유진과 마을 사람 몇몇이 모여 있었다. 밤중이었지만, 소식은 빨리 퍼져 있었다. 150년 전의 기록. 야차의 탄생. 이장 가문의 죄.

소연은 창밖에서 그들을 봤다.

유진이 손에 들린 낡은 문서를 펼쳤다. 글씨가 선명했다. 이장의 조상—150년 전 수령의 이름이 명확하게 적혀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 여인의 이름. 강씨 집안의 딸. 욕보임의 기록.

마을 사람들이 숨을 죽였다.

그 순간, 뒤에서 발걸음이 났다. 이장 이준호였다.

"뭐 하는 거야?"

그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소연은 창틀 뒤에서 몸을 숨겼다. 창문 사이로 내부를 들여다봤다.

"기록을 공개해야 한다."

유진이 말했다.

"야차가 탄생한 진정한 이유를 마을 사람들이 알아야 한다. 그래야 죄책감이 흩어진다. 소연이 죽지 않아도 된다."

이준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죄책감이 흩어진다고? 그게 무슨 말이냐."

"야차는 죄책감에서 태어났습니다."

덕순 할머니의 목소리가 회관 입구에서 울렸다. 그녀가 들어섰다.

"당신의 조상이 지은 죄. 그로 인한 원한. 그것이 구체화되어 야차가 되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그 사실을 알고 용서할 때, 야차는 약해집니다."

"용서?"

이준호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것은 웃음이 아니었다. 비명이었다.

"용서? 이 마을이 나를 용서할 리 없지. 나의 조상을 용서할 리 없어!"

그는 유진의 손에서 기록을 빼앗았다. 너무 빨라서 유진은 반응할 수 없었다. 손가락이 기록을 움켜쥐려 했지만, 이미 이준호의 손 안에 있었다.

"이게 뭐하는 짓이냐? 진실? 진실이 뭐가 되는데!"

이준호의 손이 떨렸다. 기록지가 찢어졌다.

그는 회관 안쪽으로 달려갔다. 창밖의 소연도 그의 행동을 따라갔다. 방화로. 옛날 난로가 여전히 회관 한쪽에 남아 있었다.

"당신의 죄를 마을이 알게 해서 뭐 하려고? 소연이 영웅처럼 죽어가지 않냐. 영웅의 죽음! 그게 이 마을에 필요한 거야. 진실? 진실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다! 지금 이 순간, 소연이 마을을 지키는 모습! 그게 진실이야!"

이준호는 기록을 난로에 집어던졌다.

종이가 타들어갔다. 150년의 기록이 재가 되어 떨어졌다.

유진이 소리를 지르며 달려들었지만 너무 늦었다.

"진실은 불편하거든. 진실은 마을을 무너뜨려. 하지만 소연의 죽음은 영웅담이 된다. 그게 필요해. 그게 이 마을이 살아남는 방법이야!"

소연의 손이 창틀을 부수고 들어왔다.

창문이 깨졌다. 유리가 떨어졌다.

소연은 회관 안으로 들어섰다. 응혼을 들었다. 투명한 팔이 검을 휘둘렀다.

이준호가 뒷걸음질쳤다.

"뭐 하는 거야? 나를 죽일 거야? 그럼 너도 같은 죄인이야! 너도 나처럼—"

"닥쳐."

소연의 목소리였다. 처음 들었다. 그 목소리에서 죄책감은 없었다. 대신 분노가 있었다.

응혼이 울었다. 높고 날카로운 음. 회관의 벽이 울렸다. 먼지가 떨어졌다. 검의 울음이 점차 음역대를 높여갔다. 마치 분노 자체가 음파가 되어 퍼져나가는 듯했다.

소연의 투명한 손이 떨렸다. 팔이 아니라 가슴팍도 투명해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멈추지 않았다.

"당신은 진실을 알고도 숨겼어. 당신의 조상의 죄를 숨기기 위해, 150년을 죽음과 공포로 채웠어. 그리고 지금 날 죽게 하려고 했어. 내 죽음으로 모든 걸 끝내려고."

소연은 응혼의 검기를 거둬들였다. 이준호를 베지 않았다. 하지만 그 주변의 공기가 갈라졌다. 난로의 재가 휘날렸다. 이준호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유진이 소연의 팔을 잡았다.

"소연, 멈춰."

"내가 죽으면 이 모든 게 끝나는 줄 알았어. 내 죄책감이 야차를 만든 줄 알았어."

소연이 말했다. 투명한 가슴에서 심장이 뛰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이건 내 죄책감 때문이 아니었어. 이건 당신의 죄. 150년 동안 숨겨진 죄. 그리고 그 죄책감이 야차를 먹여 살렸어."

유진의 눈빛이 흔들렸다. 당신은 정말 죽을 생각인가. 그것뿐인가. 그런 질문이 담긴 눈빛.

소연은 그 눈을 마주쳤다.

"아니야. 이제 진실을 말할 거야. 마을 모두에게."

덕순 할머니가 회관 입구에서 가만히 서 있었다. 그녀의 눈이 반짝였다.

"당신은 죽으면 안 된다."

할머니의 목소리가 너무 강해서, 소연은 응혼을 내려놨다.

"내가 아는 것만 있다면, 당신은 살아야 한다. 당신이 살아야 진실이 산다."

이준호가 입을 열었다. 말할 것이 있다는 듯. 하지만 그 순간, 밖에서 울음이 났다.

야차였다.

---

밤이 깊어갔다. 이준호가 나간 뒤, 회관은 다시 조용해졌다. 하지만 그 조용함은 죽음의 침묵이 아니었다. 준비의 침묵이었다.

유진이 소연의 옆에 앉았다. 그 얼굴은 단단했지만 눈빛은 흔들렸다. 소연을 바라보는 그 눈에는 물음이 가득했다.

소연은 그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덕순 할머니는 회관 뒤의 방으로 들어갔다. 오래된 궤짝을 열었다. 그 안에는 다른 기록들이 있었다. 종이가 누렇게 변색된 것들. 이준호도 모르는 기록들. 아니, 알되 숨긴 기록들.

손가락이 오래된 글씨를 더듬었다.

"내일 새벽에 떠나야겠구나."

할머니가 중얼거렸다.

"이 기록들을 가지고."

소연이 몸을 일으켰다. 투명한 팔이 떨렸다. 응혼을 들었던 손가락부터 시작된 그 투명함이 이제 목까지 올라와 있었다.

"할머니, 당신이 야차와?"

"150년 동안 나는 침묵했다. 하지만 누군가의 깨어남을 기다리고 있었다."

할머니는 소연을 돌아봤다. 그 눈에는 주름 사이로 깊은 시간이 흘러 있었다.

"당신이 분노하는 것을 봤다. 죄책감이 아닌 분노. 그게 처음이야."

"할머니가 야차와 대면할 수 없어요. 당신은 너무—"

"약하지. 하지만 난 말할 수 있다. 영혼의 말로."

할머니의 손이 기록들을 집었다. 종이가 바스락거렸다.

"진희를 아니?"

"네."

응혼이 울음을 멈췄다. 그 이름이 나오자, 검의 진동이 멈췄다. 소연은 그것을 느꼈다. 응혼이 반응했다. 진희라는 이름에.

"그 아이의 진짜 이름은 무엇이었나?"

소연이 대답하지 못했다. 할머니는 계속했다.

"야차가 왜 진희라는 이름을 썼는지 알고 싶지?"

할머니가 기록을 펼쳤다. 종이 위의 글씨가 드러났다. 소연의 눈이 그것을 따라갔다.

"당신의 어머니가 미쳐버리기 전에, 자기 딸의 이름을 부르지 못했어. 그 이름이 바로 야차가 데려간 첫 번째 아이의 이름이었거든."

소연의 투명한 손이 떨렸다. 응혼이 울었다. 아니, 울음이라기보다는 비명에 가까웠다. 검 자체가 경련하는 듯한 울음.

"할머니는 이걸 어떻게?"

"기록에 있었어. 150년 전 강씨 가문의 딸. 그 아이의 이름이 진희였어. 마을에 기근이 들던 해. 양반가 수령의 아들이 시골 양반집 딸을 욕보였어. 그 아이가 진희였고."

할머니가 일어섰다. 무릎 관절이 소리를 냈다. 하지만 그 움직임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야차가 150년 동안 진희라는 이름을 부르며 아이들을 데려간 이유가 뭘까?"

바깥에서 울음이 났다. 야차였다. 더 크고, 더 가까워졌다. 마을의 결계를 헤집고 들어오려는 듯한 울음. 음파가 회관의 벽을 진동시켰다. 공기가 갈라지는 소리. 그리고 썩은 내음이 밀려들었다. 150년간 묻혀 있던 것들의 냄새.

응혼이 격렬하게 울었다. 소연의 몸이 떨렸다. 투명함이 목까지 올라왔다. 이제 가슴까지 닿아 있을 것 같았다.

유진이 소연의 손을 잡았다. 따뜻한 손. 살아 있는 손.

"소연."

유진의 목소리가 낮고 단호했다.

"우리가 진희와 준이의 이름을 마을에 알리겠어."

소연이 고개를 들었다. 투명한 팔이 유진의 손을 움켜잡았다. 응혼에서 나오는 울음처럼, 소연의 가슴도 울리고 있었다.

"그들이 누구였는지, 왜 죽었는지. 그 이름들이 단순한 피해자가 아니라 진짜 누군가였다는 걸."

회관의 벽이 흔들렸다. 야차의 공격이 결계에 부딪쳤다. 그 충격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먼지가 소용돌이쳤다.

덕순 할머니가 기록들을 가슴에 안았다. 종이가 할머니의 옷에 닿으며 바스락거렸다.

"새벽이 오기 전에, 당신은 기억해야 한다."

할머니의 목소리가 떨렸다. 처음으로, 소연은 할머니가 두려워하는 것을 봤다. 하지만 그 두려움은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마을을 위한 것이었다.

"당신이 죽는 것은 끝이 아니야. 그건 또 다른 시작일 뿐이야. 그 시작을 누군가는 마저 해야 한다."

회관 밖에서 야차의 울음이 또 났다. 이번에는 말이 섞여 있었다.

"진희."

야차가 불렀다. 목소리가 여러 겹으로 울렸다. 여인의 목소리, 아이의 목소리, 그리고 수백 명의 목소리가 하나로 겹쳐서.

"진희는 어디 있나?"

소연의 몸이 경직됐다. 응혼이 손에서 미끄러질 듯했다. 유진이 재빨리 잡아줬다.

"할머니, 야차가—"

"알아. 이제 그것도 끝이 다가왔다는 거야."

할머니가 회관 문을 향해 걸어갔다. 그 뒤를 소연이 따랐다. 유진도 함께했다. 응혼이 울음을 멈추지 않으며, 마을 전체가 그 울음에 떨리고 있었다.

회관의 문이 열렸다.

밖은 암흑이었다. 하지만 그 암흑 속에서 무언가가 움직였다. 형태를 가지지 않은 그것이. 150년의 한을 몸에 두른 그것이.

야차가 나타났다.

검은 연기처럼 형체를 이루고 있었다. 마을의 결계 바깥에서, 그것은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당신이 소연이구나."

야차의 목소리였다. 여자와 남자가 섞인, 수백 명의 목소리가 겹친 음성. 그것이 울리자 공기 자체가 떨렸다. 소연의 피부가 따끔거렸다.

"진희를 찾고 있나?"

소연은 입을 열 수 없었다. 응혼이 울고 있었다. 그 울음 속에 무언가가 섞여 있었다. 죄책감이 아닌, 다른 감정이.

분노였다.

"나도 찾고 있다. 150년을 찾고 있다."

야차가 한 걸음 더 가까워졌다. 냄새가 더욱 진했다. 흙내음과 썩음내음, 그리고 피냄새.

"그 이름을 부르면 누군가 죽는다. 그 이름을 부르면 누군가 울음을 멈춘다. 그래서 나는 계속 불렀다."

할머니가 기록들을 펼쳤다.

"진희의 이름은 기록에 남아 있다."

할머니의 목소리가 밤하늘에 떨어졌다.

"당신의 이름도."

야차가 멈춰섰다.

그 순간, 마을의 모든 결계가 흔들렸다. 응혼이 울음을 멈췄다. 그리고 소연의 투명한 팔에서, 처음으로 다른 색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은 회복이 아니었다.

그것은 변화였다.

응혼의 검이 소연의 손 위에서 형태를 바꾸기 시작했다. 검신의 색이 변했다. 은색에서 시작된 빛이 점차 붉은 빛으로 변해갔다. 분노의 색으로. 동시에 울음의 음역대가 높아졌다. 더 이상 슬픔의 울음이 아니었다. 그것은 분노의 비명이었다. 마치 150년의 한이 한 점으로 수렴되는 것 같은.

---

새벽 한 시간 전, 마을의 회관 앞에서.

소연은 자신이 무엇을 놓치고 있었는지 깨달았다.

응혼은 검이 아니었다. 그것은 처음부터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누군가의 진정한 분노를 기다리며.

"할머니, 진희의 진짜 이름은 뭐예요?"

소연이 물었다.

할머니는 기록을 펼쳤다. 그 안에는 한 여인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강진희."

할머니가 말했다.

"그리고 그 아이의 오빠는."

할머니의 손가락이 또 다른 이름을 가리켰다. 소연의 눈이 그것을 따라갔다. 글씨 위에 멈춰섰다.

"강준호였다."

소연의 몸이 굳었다. 응혼이 울음을 멈췄다.

"이장의 진짜 이름이 이준호라고 했지?"

할머니의 눈이 반짝였다.

"그 남자는 강준호였어. 150년 전, 자신의 누이가 욕보인 후 죽은 강준호. 하지만 마을은 그를 이준호라고 부르기로 했어. 죄를 잊기 위해."

마을의 밤하늘에서, 야차의 울음이 더욱 크게 울려 퍼졌다.

"당신들은 나를 잘못된 이름으로 부르고 있었다."

야차가 말했다. 음성이 갈라졌다. 마치 여러 시간대에서 동시에 울리는 것처럼.

"나는 진희가 아니라, 그 진희를 죽인 자들의 죄책감이다. 그리고 그 죄책감을 숨긴 자는 누구인가."

밤하늘이 갈라졌다.

이준호가—아니, 강준호가 회관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공포가 가득했다. 150년을 숨겨온 비밀이 한순간에 드러나는 것을 느끼며, 그는 입을 열었다.

"아니야. 나는... 나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의 손이 자신의 목을 움켜잡았다. 마치 스스로를 목졸라 죽이려는 듯.

"내가 뭘 할 수 있었어? 그때 내가 뭘 할 수 있었어?"

울음이 터져 나왔다. 150년을 견뎌온 죄책감이, 한 남자의 몸에서 터져 나왔다.

"진희를... 내가 못 봤어. 내가 못 봤어!"

소연의 투명한 손에서, 응혼이 새로운 형태로 완성되고 있었다. 검신이 붉은 빛으로 물들어갔다. 그것은 더 이상 죄책감의 울음이 아니었다. 분노의 울음이었다. 150년을 기다린 분노의 울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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