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의 이권을 무너뜨리는지."
채유선이 그 말을 되씹었다. 문밖 그림자를 다시 보았다. 김치복은 여전히 팔짱을 낀 채 대장간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사내가 씩 웃으며 고개를 까딱였다. 마치 오래 알아온 사이처럼.
유득경이 채유선의 소매를 슬쩍 당겼다. 낮은 목소리가 귓가에 붙었다.
"저 사람이 김치복일세. 화성 현장에 들어오는 무쇠, 목재, 석재— 그 조달을 다 쥐고 있지. 궁방과 저잣거리 상인들 사이에 앉아 이문을 챙기는 자야." 유득경의 눈이 흙바닥의 부서진 조각으로 내려갔다. "돌을 나르는 데 부역꾼이 몇이나 드는지 아나? 소가 몇 필, 수레가 몇 대인지. 그게 다 저 사람 장부를 거쳐 돈이 되네."
채유선의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자네가 만들려는 그 물건." 유득경이 대장간 화덕 옆에 세워둔 숯 도면을 턱짓했다. 김을 가두어 힘을 내는, 아직 그림에 불과한 기관. "김의 힘으로 돌을 든다면— 소도, 수레도, 부역꾼도 줄지. 저 장부가 반으로 접히는 걸세."
머릿속에서 무언가 맞물렸다. 톱니가 잇니에 걸리듯.
정조가 어전에서 했던 말이 떠올랐다. 새어나가면 지켜주지 못한다. 그때는 노론의 예법 탓인 줄만 알았다. 강상이니 잔재주니 하는 말들. 그런데 아니었다. 이 물건은 누군가의 밥그릇을 깨는 칼이었다. 김치복 같은 자들의.
"나는……." 채유선의 입이 말라붙었다. "그저 옳은 물건을 만들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게 자네의 병이야." 유득경이 씁쓸하게 웃었다. "옳은 물건은 반드시 누군가를 다치게 하네. 화덕 하나만 걸어도 그렇거늘, 하물며 세상의 물길을 바꾸는 물건이라면."
문밖의 그림자가 움직였다. 김치복이 두루마기 자락을 여미며 안으로 들어섰다. 흙바닥을 밟는 가죽신 소리가 유독 부드러웠다.
"검서관 나리께서 손수 대장간까지 오셨소이다그려." 김치복의 목소리는 기름을 먹인 듯 매끄러웠다. "먼 길 오시느라 노고가 크셨겠소. 한데 이 험한 데서 무얼 그리 살피시는지."
"자재 실태를 보러 왔소." 유득경이 짧게 답했다.
"자재라." 김치복이 부서진 무쇠 조각을 발끝으로 툭 건드렸다. "이 아까운 걸 다 부수는 양반이 여기 있는데, 실태는 무슨 실태겠소. 내 좋은 무쇠를 대주어도 이 모양이니, 나야 억울할 따름이지요." 그가 채유선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자네가 그 그림쟁이렷다. 어전에서 자명종 멎을 걸 짚었다는."
채유선은 대답하지 않았다. 김치복의 말이 이상하게 걸렸다.
*내 좋은 무쇠를 대주어도.*
그날 아침 화덕에 넣은 무쇠였다. 이음쇠를 뜬 그 무쇠. 채유선의 눈이 화덕 옆에 쌓인 무쇠 덩이로 옮겨갔다.
거기서 붉은 실선이 어른거렸다.
처음엔 화덕 불빛의 잔상인 줄 알았다. 눈을 비볐다. 아니었다. 쌓인 무쇠 덩이의 결을 따라, 가느다란 붉은 금이 실핏줄처럼 뻗어 있었다. 완성된 기물이 아니라 아직 원자재인 무쇠 덩이에서. 이런 적은 없었다.
채유선이 다가가 무쇠 덩이 하나를 집어들었다. 손바닥에 얹고 무게를 가늠했다. 단면에 손톱을 세워 긁었다. 겉으로는 검푸른 정련 무쇠였다. 상급이라 불리는.
그러나 붉은 실선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홍 대장." 채유선이 낮게 불렀다. "이 무쇠, 지난달 것과 같은 등급입니까?"
홍만춘이 어정쩡하게 다가왔다. 무쇠 덩이를 받아 이리저리 돌려보았다. 굵은 손가락으로 단면을 문질렀다.
"…같아 뵈는데." 홍만춘이 미간을 좁혔다. "한데 뭐가 좀…… 무르나?"
채유선은 무쇠를 화덕 불빛에 비춰 보았다. 결이 곱지 않았다. 검푸른 빛 속에 미세하게 회색이 섞여 있었다. 유득경이 부서진 조각에서 짚어낸 그 회색. 기포와 찌꺼기가 몰린 자리의 색이었다. 그것이 한 점이 아니라, 무쇠 전체에 안개처럼 퍼져 있었다.
"이건 상급이 아닙니다." 채유선이 말했다. "겉만 정련하고 속은 덜 뺀 무쇠입니다. 겉을 봐선 몰라도, 불에 달구어 두드리면 결이 갈라지지요. 이 물건으로는 김의 압력을 못 견딥니다. 반드시 터집니다."
대장간이 조용해졌다. 젊은 장인들이 손을 멈췄다.
김치복의 웃음이 아주 잠깐, 정말 눈 깜박할 사이에 굳었다. 매끄럽던 얼굴에 금이 갔다. 그 순간을 채유선은 놓치지 않았다. 붉은 실선을 짚어낼 때와 똑같은 감각이었다. 어긋난 것을 본 자만이 아는 서늘함.
"허어." 김치복이 이내 웃음을 되찾았다. 그러나 아까처럼 매끄럽진 못했다. "손으로 무쇠를 만져 등급을 안다? 그런 재주가 세상에 어디 있소. 정련 무쇠는 정련 무쇠지. 장부에 상급으로 올라온 물건이오. 감영 인장까지 찍힌."
"장부요?" 채유선이 되물었다.
"자재 장부 말이오." 김치복이 두루마기 안에서 접힌 종이 한 장을 꺼냈다. 손가락으로 한 줄을 짚어 보였다. "여기, 화성 대장간 납품분. 정련 상급 무쇠 삼백 근. 감영 각인 완료. 다 적혀 있소. 내가 뭐가 아쉬워 등급을 낮춰 대겠소. 이문이 남는 것도 아니고."
채유선은 그 장부를 들여다보았다. 글씨는 반듯했다. 인장도 선명했다. 삼백 근, 상급. 흠잡을 데가 없었다.
바로 그것이 흠이었다.
장부에는 상급이라 적혀 있는데, 화덕 옆 무쇠에서는 붉은 금이 뻗어 나온다. 종이와 실물이 어긋나 있었다. 누군가 상급 값을 받고 하급 물건을 밀어넣은 것이다. 그리고 그 차액은—
"이문이 안 남는다 하셨소?" 채유선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상급 값을 받고 하급을 대면, 근당 몇 푼이 남지요. 삼백 근이면 적잖은 돈일 텐데."
"채유선." 유득경이 급히 그의 팔을 잡았다. "그만하게."
늦었다. 김치복의 눈이 가늘어졌다. 웃음은 그대로였으나 눈만 웃지 않았다.
"이 사람이 지금……." 김치복이 장부를 천천히 접었다. "잡직 그림쟁이가, 감영 인장이 찍힌 관의 장부를 거짓이라 하는 게요? 나라의 장부를? 증좌는 있소? 무쇠를 손으로 만져 알았다는 그 잔재주 말고, 관이 인정할 증좌가."
채유선은 대답하지 못했다. 증좌라면 붉은 실선뿐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눈에만 보인다. 세상에 내보일 수 없는.
"…없습니다." 채유선이 인정했다.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어긋난 것을 보고도 증명할 수 없는 것, 그것이 그의 눈이 짊어진 저주였다.
"없다." 김치복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그의 목소리에서 기름기가 걷혔다. 그 밑에 있던 쇳소리가 드러났다. "증좌도 없이 관을 무고하였소. 잡직이 감독관을 능멸하고, 감영 장부를 거짓이라 하였다. 이거 하나만으로도 자네는 곤장감이야."
유득경이 채유선을 뒤로 끌어당기며 앞을 막아섰다.
"감독관, 말이 지나치시오." 유득경의 목소리가 팽팽해졌다. "이 사람은 무쇠의 성질을 논한 것이지, 감독관을 무고한 바 없소. 무쇠가 무르면 무르다 하는 것이 장인의 소임 아니겠소."
"검서관 나리께서 잡직을 감싸시는군." 김치복이 유득경을 훑어보았다. "규장각서 내려오셨다니 한마디 하리다. 이 무른 무쇠 소리, 함부로 입에 담지 마시오. 나 하나 걸고넘어져 될 일이 아니오. 화성 자재가 다 나를 거쳐 가는데, 내가 손을 놓으면 저 화덕 불부터 꺼지오." 그가 대장간을 둘러보았다. "무쇠도, 숯도, 삼밧줄도— 다 내 장부에서 나가는 것들이지."
채유선의 심장이 내려앉았다. 홍만춘의 표정도 굳었다.
김치복은 그 침묵을 즐기듯 잠시 서 있다가, 두루마기 자락을 털며 돌아섰다. 문가에서 멈춰 고개만 돌렸다.
"채유선이라 했나. 그 눈, 재주는 재주로다." 그가 웃었다. "한데 재주 있는 것들이 제 명에 못 죽는 걸 내 여럿 봤네. 무쇠를 만져 등급을 안다니— 그 재주, 어디까지 봐줄 수 있는지 위에서도 궁금해하실 게야."
그가 나갔다. 가죽신 소리가 멀어졌다.
대장간에 남은 것은 화덕 타는 소리뿐이었다. 유득경이 길게 한숨을 내쉬며 채유선을 돌아보았다.
"자네, 정말……." 그가 이마를 짚었다. "옳은 걸 봤으면 그걸 어떻게 쓸지를 먼저 생각해야지. 저 사람 면전에 대놓고 던지면 어쩌자는 건가. 증좌도 없이. 이제 저자는 자네를 무고죄로 물고 늘어질 걸세. 그것도 관을 능멸한 죄로."
"보였습니다." 채유선이 낮게 말했다. "무른 무쇠가 보이는데, 그걸 아는데 어떻게 입을 다뭅니까. 저 무쇠로 만들면 사람이 죽습니다. 김의 힘이 터지면 대장간이 통째로 날아갑니다."
"그래서 사람이 죽기 전에 자네가 먼저 죽게 생겼네." 유득경이 목소리를 낮췄다. "이곳은 옳은 자가 이기는 곳이 아닐세, 채유선. 누가 말했느냐가 무엇을 말했느냐보다 앞서는 곳이야. 잡직이 옳으면— 그게 더 위험하네."
홍만춘이 무쇠 덩이를 화덕 옆에 내려놓았다. 손바닥으로 이마의 땀을 훔쳤다.
"저 무른 무쇠로 물건을 뜨면 진짜 터지나?" 홍만춘이 물었다.
"터집니다." 채유선이 단언했다. "속에 찌꺼기가 몰린 자리마다 갈라집니다."
홍만춘이 한참 채유선을 보다가, 무쇠 덩이를 발로 툭 밀었다. "그럼 다시 정련해야지. 이대로는 못 써." 그가 젊은 장인들을 돌아보았다. "화덕에 다시 넣어라. 이번엔 찌꺼기 빠질 때까지 잡아. 저 나리 눈이 무섭다는 거, 갈고리쇠 때 봤지 않느냐."
무쇠를 다시 정련하려면 이레는 더 걸린다. 정치적으로도, 시간으로도 손해였다. 그러나 홍만춘은 채유선의 눈을 믿었다. 그것이 채유선의 목을 조금은 데웠다.
바로 그때였다.
대장간 밖에서 말발굽 소리가 났다. 여러 필. 흙먼지가 문틈으로 밀려들었다. 부역꾼들이 웅성거리는 소리, 누군가 길을 비키라 외치는 소리.
유득경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가 창밖을 내다보았다.
"…규장각 인마가 아닐세." 유득경이 중얼거렸다. "저건 사헌부 복색이야."
관복을 입은 사내들이 대장간 앞마당으로 들이닥쳤다. 앞선 자가 두루마리 하나를 펼쳐 들었다. 감사관이었다. 그 어깨 너머로, 언제 다시 왔는지 김치복이 팔짱을 낀 채 서 있었다. 그 옆에 낯선 유생 하나가 붓과 종이를 든 채 대기하고 있었다.
감사관이 두루마리를 읽어 내려갔다. 목소리가 앞마당에 쩌렁쩌렁 울렸다.
"화성 축조 규례에 이르되, 무릇 잡직은 그 시행에 앞서 반드시 상신을 거쳐 재가를 받아야 하느니. 좌의정 심 대감의 계에 따라, 사헌부가 이 현장의 주물 공정을 감찰한다."
채유선의 손끝이 차갑게 식었다. 심환지. 어전에서 그를 노려보던 그 눈.
감사관이 두루마리를 접고, 대장간 안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화덕을, 숯 도면을, 부서진 무쇠 조각을. 그리고 채유선에게 시선을 멈췄다.
"상신 없는 잡직의 사사로운 주물." 감사관의 목소리가 낮게 떨어졌다. "규례 위반이오. 오늘부터 이 현장의 모든 공정을 봉인하겠소."
감사관이 손을 들자, 사내들이 화덕으로 다가가 불을 끄기 시작했다.
물을 끼얹는 소리와 함께, 화덕의 붉은 빛이 꺼져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