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명종은 이미 죽어 있었다.
채유선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어전 한가운데, 붉은 비단 위에 얹힌 청국제 자명종이 여전히 째깍째깍 소리를 내고 있는데도. 놋쇠 몸통 안쪽, 겹겹이 맞물린 톱니의 어느 한 지점에서 실핏줄 같은 붉은 금이 스멀스멀 번지고 있었다. 그 물건이 곧 멈출 자리였다.
그는 어금니를 물었다. 눈을 감아도 그 붉은 금은 사라지지 않았다. 태엽축이 감긴 축의 세 번째 잇니. 거기가 어긋나 물러날 것이다. 반 각도 지나지 않아.
"청국 사신이 진상한 물건이온데, 하루에 반 시진도 어긋나지 않는다 하옵니다."
호조판서가 허리를 굽히며 아뢰었다. 정조는 옥좌에 기대 팔걸이를 가만히 두드리고 있었다. 그 손끝에서 무료함과 계산이 함께 묻어났다.
"조선의 물시계는 물을 채우고 비우느라 손이 많이 드는데, 저것은 태엽 하나로 홀로 돈다니. 과연 서양의 재주는 별스럽구나."
말은 감탄이되, 눈은 웃지 않았다. 채유선은 문 앞 말석에 무릎을 꿇은 채였다. 잡직 도화서 화원의 옷을 입은 그가 이 어전에 든 것부터가 파격이었다. 자명종을 그려 도설을 올리라는 명이 있었기에 겨우 끝자락에 붙어 앉았을 뿐.
그런데 눈이 자꾸만 그 붉은 금을 좇았다. 번지고, 벌어지고, 톱니의 골까지 파고드는.
'멈춘다.'
머릿속에서 소리 없는 종이 울렸다. 그는 저도 모르게 상체를 앞으로 기울였다. 손가락이 방바닥을 긁었다.
"저……"
말이 새어나온 순간, 좌중의 눈이 일제히 그에게 꽂혔다.
호조판서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채유선은 제 입에서 나온 소리에 자기가 더 놀랐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저 물건이 멎는 꼴을, 아무 말 없이 지켜볼 수가 없었다. 틀린 것을 보고도 입을 다무는 일은, 그에게 손톱 밑에 가시를 박는 것과 같았다.
"무엄하다. 여기가 어느 안전이라고 잡직이 함부로 소리를 내느냐."
노기 서린 꾸짖음이 떨어졌다. 채유선은 이마를 방바닥에 붙였다. 그러나 고개는 다시 들렸다.
"전하……. 저 자명종은 곧 멈추옵니다."
방 안이 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째깍, 째깍. 자명종의 소리만 또렷했다. 살아 있는 것을 죽는다 한 셈이니, 누가 들어도 미친 소리였다.
호조판서가 얼굴을 붉혔다. "청국 사신이 하루에 반 시진도 어긋나지 않는다 한 물건을……!"
"태엽축의 세 번째 잇니가 닳았습니다." 채유선의 목소리는 떨렸으나 문장은 곧았다. "그 자리가 어긋나 축이 헛돌면, 종은 힘을 잃고 멎습니다. 지금……."
째깍.
소리가 한 박자 늦었다. 좌중의 숨이 일제히 멈췄다.
째깍……. 자명종이 마지막으로 힘겹게 한 번을 울고는, 멎었다. 놋쇠 몸통 안에서 미약한 마찰음이 이어지다 끊겼다. 붉은 비단 위에서 그 물건은 이제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정조의 손가락이 팔걸이 위에서 멈췄다.
호조판서가 자명종 쪽으로 상체를 기울였다가, 얼른 물러났다. 손으로 흔들어보려다 감히 어전 진상품에 손을 대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굳었다. 그 얼굴이 삶은 게처럼 붉어졌다.
"이, 이는……. 우연이옵니다. 서양 물건이 조선 땅의 습기를 못 이겨 잠시 멎은 것이지, 어찌 저 천출이 미리 알았다 하겠사옵니까."
"태엽을 다시 감아보시오."
정조의 목소리가 낮게 떨어졌다. 명이었다.
호조판서가 떨리는 손으로 태엽을 감았다. 감고, 또 감았다. 자명종은 몇 번 째깍이다가, 같은 자리에서 다시 멎었다. 세 번째 잇니. 채유선이 짚은 그 자리였다.
이번에는 아무도 우연이라 말하지 못했다.
채유선은 이마를 다시 방바닥에 붙였다. 심장이 갈비뼈를 두드렸다. 두려움 때문인지, 아니면 오랫동안 목구멍에 걸려 있던 무언가가 겨우 터져나온 후련함 때문인지 그 자신도 알 수 없었다.
정적을 깬 것은 부드러운 웃음소리였다.
"허어. 참으로 신기한 재주로다."
병조 쪽 상석에서 백발의 노신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심환지였다. 그는 웃고 있었다. 그 웃음이 방 안의 온도를 되레 떨어뜨렸다.
"전하, 신이 늙어 눈이 어두우나 귀는 아직 밝사옵니다. 방금 저 아랫것이 어전에서 제 입으로 물건의 흠을 논하고, 대신의 말을 되받아 꺾었사옵니다."
"흠을 바로 본 것이 죄가 되오, 판중추부사?"
"흠을 본 것이 죄가 아니라……" 심환지는 두 손을 소맷자락 안에 모으고 허리를 굽혔다. "천출 잡직이 어전에서 입을 놀린 것이 죄이옵니다. 재주가 신묘할수록 두려운 것은, 그 재주가 위아래의 분별을 넘볼 때이옵니다. 오늘 자명종의 흠을 짚었으니, 내일은 조정의 흠을 짚겠다 나설 것이옵니다. 강상(綱常)이 무너지는 것은 늘 이렇게 작은 데서 비롯되옵니다."
말은 온화했다. 그래서 더 서늘했다. 손가락질도 호통도 없이, 그는 채유선을 나라의 근본을 흔드는 벌레로 규정하고 있었다.
채유선은 입을 열려 했다. 흠은 흠이고 분별은 분별이지, 어찌 하나를 짚었다고 다른 하나를 넘본다 하는가. 그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옳은 것을 옳다 말하는 자를 어찌 죄인이라 하는가.
"경들은 물러가라."
정조의 한마디가 그의 말을 눌러 삼켰다.
좌중이 술렁였다. 심환지의 눈썹이 미세하게 올라갔다.
"전하, 아직 저 자의 처분이……."
"판중추부사." 정조가 그를 불렀다. 목소리에 옥좌의 무게가 실렸다. "경의 근심은 짐이 새겨들었소. 하나 진상품이 어전에서 멎은 일을 두고 청국 사신의 귀에 무어라 전할지, 그것부터 헤아리는 것이 신하의 도리 아니겠소. 물러가서 사신의 응대를 의논하시오."
명분을 명분으로 되받았다. 심환지는 잠시 정조를 응시했다. 왕이 저 천출을 남기려는 속셈을 그 노회한 머리로 모를 리 없었다. 그러나 어전 진상품이 멎은 낭패는 노론에게도 골칫거리였다. 그는 물러날 자리를 알았다.
"……황공하옵니다."
심환지가 뒷걸음으로 물러났다. 그 걸음이 문지방을 넘기 직전, 그는 고개만 살짝 돌려 채유선을 보았다. 웃음은 여전했다. 하지만 그 눈은 이미 다음 수를 두고 있었다. 오늘의 패배를 어느 규례에 적어 되갚을지, 계산하는 눈이었다.
문이 닫혔다.
어전에는 정조와 채유선, 그리고 옥좌 뒤 늙은 내관 하나만 남았다.
"고개를 들라."
채유선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처음으로, 왕의 얼굴을 정면에서 보았다. 젊은 얼굴이었으나 눈가에는 잠 못 이룬 밤이 겹겹이 쌓여 있었다.
"네가 화원 채유선이냐. 어미가 노비였다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 한마디에 평생 등에 붙어 다닌 낙인이 다 담겨 있었다.
"……그러하옵니다."
"어찌 알았느냐. 저것이 멎을 자리를."
채유선은 답을 골랐다. 붉은 금이 보였다는 말을 어찌 왕에게 아뢸 것인가. 미친 소리로 들릴 것이다.
"소인은…… 완성된 물건을 보면, 그 물건이 어디서 어긋날지가 눈에 들어옵니다. 톱니의 잇수, 축의 굵기, 힘이 몰리는 자리. 그것들이 어떻게 짜맞춰졌는지 거꾸로 되짚으면, 부러질 곳이 보입니다."
"거꾸로 되짚는다." 정조가 그 말을 되뇌었다. 흥미가 눈에 번졌다. "결과에서 공정을 읽는다는 게냐. 물건을 만들 줄 아느냐, 그저 흠만 보는 게냐."
바로 그 지점이었다. 채유선은 잠시 침묵했다.
"소인은…… 흠이 보이는 곳은 압니다. 허나 그것을 어찌 고칠지는, 보이지 않사옵니다. 실물을 만들어 부수고, 다시 만들어 또 부수며 손으로 찾아야 합니다. 눈이 알려주는 것은 여기까지이옵니다."
정직한 답이었다. 재주를 부풀리면 왕의 눈에 들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부풀릴 줄을 몰랐다. 틀린 치수 하나를 못 견디는 자가, 어찌 제 재주에 거짓을 섞겠는가.
정조가 조용히 웃었다. 이번에는 눈도 함께 웃었다.
"솔직하구나. 재주 있는 자들은 대개 제 재주를 부풀리는데."
왕이 손짓하자 내관이 함 하나를 받쳐 들고 왔다. 자개로 장식된 함이었다. 정조가 직접 뚜껑을 열었다.
안에는 또 다른 시계가 있었다. 자명종과는 다른 물건이었다. 유리관과 놋쇠 부표, 물이 흐르는 관, 그리고 그 흐름을 잇수 다른 톱니바퀴들이 받아 천천히 바늘을 돌리는 구조.
"서양의 물시계다. 청국을 거쳐 들어왔다. 자격루처럼 물의 힘으로 도나, 그 힘을 톱니로 받아 고르게 나누는 것이 조선 것과 다르다."
채유선은 그 물건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물의 힘이 톱니를 타고 흐르는 길이 머릿속에서 저절로 풀렸다. 어디에 힘이 몰리고, 어디가 헐거운지. 붉은 금은 보이지 않았다. 잘 만든 물건이었다.
"이것을 되짚어라."
정조가 함을 그의 앞으로 밀었다.
"물의 힘으로 톱니를 돌리듯, 다른 힘으로 톱니를 돌려 무거운 것을 들고 옮기는 기관을 만들라. 물을 끓이면 김이 오르지 않느냐. 그 김의 힘으로."
채유선은 왕을 올려다보았다. 김의 힘. 솥뚜껑을 들썩이는 그 힘.
"화성을 쌓고 있다." 정조의 목소리가 한 겹 낮아졌다. "돌을 뜨고 나르는 데 수천의 부역꾼이 매달리고, 그 비용이 나라의 등골을 휜다. 만약 사람 손 대신 김의 힘으로 돌을 들고 물을 퍼올릴 수 있다면……. 조선은 서양보다 앞서 새로운 힘을 갖게 된다."
말끝에 왕은 잠시 눈을 감았다. 그 얼굴에 옥좌의 무게가 다시 얹혔다.
"허나 짐이 이를 조당에 내걸 수는 없다. 김의 힘이 돌을 들면, 돌을 나르던 자들의 밥그릇이 깨진다. 자재를 대던 상인, 부역을 감독하던 관리, 그 위의 궁방과 노론. 새 힘은 곧 누군가의 이권을 부수는 칼이다. 그래서 이 일은 화성 축조라는 명분 아래, 은밀히 이루어져야 한다."
채유선은 이해했다. 왕이 왜 좌중을 물리고 자기를 남겼는지. 왜 하필 이름 없는 천출 잡직에게 이 물건을 맡기는지. 성공하면 나라의 힘이 되고, 실패하거나 새어나가면 버릴 수 있는 자였기 때문이다. 그 비정함이 서운하지 않았다. 도리어, 처음으로 재주가 신분을 앞선 자리에 자기를 세워준 것이었다.
"소인이……" 그의 목소리가 떨렸다. "소인 같은 것에게 이 일을 맡기시는 까닭이 있사옵니까."
"양반의 재주는 공을 탐하고, 공을 탐하면 이권을 좇는다." 정조가 담담히 말했다. "너는 잃을 것이 없고, 무엇보다 흠을 못 견디는 눈을 지녔다. 그 눈이라면, 남이 대충 넘긴 자리에서 나라를 무너뜨릴 흠을 찾아낼 것이다."
채유선은 물시계 함에 두 손을 얹었다. 차가운 자개의 감촉이 손끝에 배어들었다.
그 순간, 그는 어미를 떠올렸다.
노비였던 어미. 손끝이 야물어 무엇이든 잘 짜고 잘 고쳤던 어미. 아씨의 깨진 노리개를 밤새 붙여 감쪽같이 되살려놓고도, 상은커녕 "천것이 주제넘게 손을 댔다"는 매를 맞았던 어미. 재주가 아무리 좋아도 그 공은 위로만 흘렀고, 매는 아래로만 떨어졌다. 어미는 그 매의 독으로 앓다 세상을 떴다. 재주 하나 곱게 쓰지 못한 채로.
'어머니.'
채유선은 이를 악물었다. 손끝의 재주가 신분에 묻히지 않는 나라. 이름 없는 자의 손이 나라의 대들보가 될 수 있는 세상. 그 헛된 꿈을, 그는 어미의 무덤 앞에서 삼켰었다. 그리고 지금, 그 꿈으로 통하는 문이 처음으로 손끝에 걸렸다.
옳음을 증명하면, 세상은 결국 알아줄 것이다. 그는 그렇게 믿었다. 오늘 어전에서 자명종의 흠을 짚어 대신들의 코를 납작하게 만든 것처럼, 김의 힘을 세워 보이면 신분의 벽도 무너뜨릴 수 있으리라.
"소인, 목숨을 걸고 이루겠사옵니다."
정조가 그를 오래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옥좌에서 몸을 일으켜, 한 걸음 내려섰다. 왕이 신하에게 다가서는 일은 드물었다. 그 한 걸음의 무게에 채유선은 다시 고개를 숙였다.
정조의 목소리가 귓가에 닿을 만큼 낮게 떨어졌다.
"단, 이 일이 새어나가면 짐도 너를 지키지 못한다."
찬물이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오늘 어전에서 자명종을 짚은 재주는 이미 심환지의 눈에 박혔다. 그는 이 일을 그냥 두지 않을 것이다. 규례로, 절차로, 상소로 네 목을 조여올 것이다. 짐이 너를 부르되, 짐의 이름은 이 일 어디에도 없다. 무슨 뜻인지 알겠느냐."
채유선은 물시계 함을 끌어안았다. 방금 손에 쥔 문이, 실은 낭떠러지 위에 걸린 외나무다리임을 그제야 깨달았다.
"화성으로 가라. 그리고 네 손으로, 증기의 힘을 세워라."
왕은 그 말을 끝으로 돌아섰다. 자개함을 안은 채유선의 그림자가 어전 마룻바닥에 길게 드리웠다. 그 그림자 위로, 문틈으로 새어든 늦은 봄볕이 한 줄기 떨어졌다.
그리고 그 순간, 채유선의 눈에 물시계 유리관 안쪽 어딘가에서, 아주 희미한 붉은 기운이 한 점 어른거렸다 사라졌다.
착각이었을까. 아니면, 저 물건조차 언젠가 그의 손안에서 무너질 자리를 미리 보여준 것일까.
그는 함을 더 세게 끌어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