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차가운 무쇠에 손을 댄 채, 채유선은 밤을 넘겼다.

등잔 기름이 다 탈 때까지 실린더를 응시했다. 붉은 그물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음새를 감은 삼밧줄, 놋쇠 톱니가 물린 축, 그리고 실린더 아래쪽 이음쇠와 통이 만나는 그 한 뼘. 거기서 붉은 선이 가장 굵게 뭉쳐 번들거렸다. 첫 거푸집에서 못 고쳐 부숴버린 그 자리. 세 번을 다시 떠도 같은 곳에서 갈라지던 그 자리. 눈은 정확했다. 언제나 정확했다. 그래서 지옥이었다.

'왜 하필 저기냐.'

무쇠를 손끝으로 두드려 보았다. 소리는 맑았다. 겉은 완벽했다. 홍만춘의 손이 만든 물건은 흠 하나 없었다. 그러나 채유선의 눈에는 그 매끈한 벽 속에서 핏빛 실금이 숨을 쉬고 있었다. 압을 올리면 저 선을 따라 갈라진다. 어디가 터질지는 보인다. 어떻게 막을지는—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날이 흐옇게 밝았다.

폐 대장간 앞마당으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부역꾼 대여섯이 화덕에 물을 데워 나르고, 유득경이 청국 서책의 도판을 펼쳐 든 채 실린더 곁을 서성였다. 홍만춘은 옻 먹인 삼밧줄을 한 번 더 조이며 이음새를 살폈다. 그리고 마당 저편, 김치복이 김 감독이라 불리는 자재 감독 하나를 앞세우고 팔짱을 낀 채 서 있었다.

"멈추시오."

채유선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사흘째 잠을 못 잔 목이었다.

"이 통은 시험하면 안 됩니다. 여기가 터집니다."

그가 실린더 아래쪽 이음새를 가리켰다. 손끝이 떨렸다.

김 감독이 눈살을 찌푸렸다. "터진다니. 방금 대장이 이음새를 다 살폈는데. 어디 흠이 있소?"

"흠은… 겉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보이지도 않는 흠을 어떻게 아시오?"

채유선은 입을 다물었다. 붉은 실선은 자신에게만 보인다. 관에 제출할 증좌가 없다. 그 벽에 늘 부딪혔다. 4화에서 무쇠 등급을 지적했다가 무고죄로 몰린 것도 이 벽 때문이었다.

"…압을 반만 올려 보십시오. 반만 올려도 이 이음새에서 김이 샐 겁니다. 그걸 보면—"

김치복이 느릿하게 걸어 나왔다. 봉인 딱지 붙일 벽을 잃었던 그 사내의 얼굴은 이미 무표정을 되찾은 뒤였다. 오히려 입꼬리가 올라가 있었다.

"채 화원." 그가 부드럽게 불렀다. "조 감동관께서 뭐라 하셨소. 공사가 빨라진다는 걸 물건으로 보이라 하셨지. 물건으로. 그런데 지금 그 물건을 시험도 하기 전에, 화원이 손수 터진다고 하시는 거요?"

"터지니까 막는 겁니다."

"허." 김치복이 마당의 부역꾼들을 둘러보며 목소리를 키웠다. "듣거라. 밤새 이 통을 째려보다가 겁을 집어먹은 게지. 서얼이 잔재주는 있어도 배포가 없어. 제 손으로 만든 물건 하나 못 믿고 벌벌 떠니, 이게 나라의 대들보가 되겠느냐? 조 감동관 서명 받아낸 게 어제인데, 오늘 제 입으로 못 하겠다 하면— 이 종이는 없던 게 된다 하셨다. 없던 게 돼."

부역꾼 몇이 킥킥댔다. 채유선의 얼굴이 달아올랐다.

"압을 반만—"

"반이고 전부고." 김치복이 손을 저었다. "김 감독, 물 다 데웠으면 붓게. 화덕 살리고. 정해진 대로 시험한다. 화원이 무섭거든 뒤로 물러서 있으시고."

유득경이 도판을 든 채 다가왔다. "감독. 채 화원의 눈은 이제껏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소. 갈고리쇠도, 이음쇠도. 반만 올려 보는 게 뭐 그리 어려운 일이오?"

"검서관 나리." 김치복이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정중해서 더 서늘했다. "규례에 압을 반만 올리라는 조항이 있소? 없지요. 감동관이 허한 건 개량 시험이지, 반쪽 시험이 아니외다. 절차대로 안 하면 그것도 규례 위반이오. 나리께서 그리 아끼는 규례 말입니다."

유득경이 말문이 막혔다. 심환지의 절차가, 이번엔 김치복의 입에서 나왔다.

홍만춘이 성큼 걸어와 채유선의 팔을 잡았다. 낮게 으르렁댔다. "어디가 터진다는 거요. 정확히."

채유선이 이음새 아래를 짚었다. "여기. 실린더와 이음쇠가 만나는 이 한 뼘. 통 안쪽으로 붉은 금이 그물처럼 번졌습니다. 지난번보다 굵습니다. 대장어른의 이음쇠는 깨끗한데— 통 자체가 무릅니다. 이 무쇠, 속이 덜 뺐습니다."

홍만춘의 얼굴이 굳었다. 그가 실린더를 다시 두드렸다. 맑은 소리. 그의 서른 해 귀로는 아무 흠도 잡히지 않았다.

"내 손으로 뜬 통이오. 폐 대장간 불로 새로 정련한 무쇠로."

"정련은 대장어른이 하셨지요. 무쇠는— 어디서 왔습니까."

홍만춘의 입이 벌어졌다가 다물렸다. 새 무쇠 덩이는 김 감독이 대준 것이었다. 감영 인장 찍힌 장부와 함께. 상급이라 적힌 장부와 함께.

"채 화원 말이 옳으면." 홍만춘이 김치복을 노려봤다. "이 무쇠, 또 속인 거요?"

"장부 보시오." 김치복이 손바닥을 폈다. "감영 인장 찍힌 상급이오. 대장이 못 믿겠거든 감영에 물으시든가. 어허, 물 붓는다. 다들 물러서!"

김이 올랐다.

화덕에 얹은 실린더가 달아올랐다. 통 아래 물이 끓기 시작했다. 채유선은 이음새 아래에서 번들거리는 붉은 그물이 점점 더 짙어지는 것을 보았다. 압이 차오를수록 선이 굵어졌다. 무쇠 속에서 핏줄이 부풀듯이.

"압을 낮춰!" 채유선이 소리쳤다. "그만—"

톱니가 돌기 시작했다. 물시계에서 역산한 놋쇠 감속 톱니가, 김의 힘을 받아 천천히 물렸다. 유득경이 숨을 삼켰다. 됐다. 도는구나. 김이 힘이 되어 톱니를 돌리는구나. 조선 땅에서 처음으로—

채유선의 눈에는 붉은 선이 이음새를 완전히 집어삼키는 것이 보였다.

"엎드려!"

그가 몸을 던져 유득경을 밀쳤다.

굉음.

실린더 아래쪽이 붉은 선을 따라 그대로 갈라졌다. 첫 거푸집에서 본 자리. 세 번을 다시 떠도 갈라지던 그 자리. 예견한 그 한 뼘이, 정확히 그 한 뼘이 터졌다. 뜨거운 김이 벼락처럼 뿜어 나오고 무쇠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화덕의 숯불이 튀어 오르고, 끓는 물이 쏟아졌다.

비명이 마당을 갈랐다.

부역꾼 하나가 허벅지를 붙잡고 나뒹굴었다. 무쇠 조각이 박혔다. 다른 하나는 김에 얼굴을 데어 땅을 굴렀다. 채유선은 유득경을 감싼 채 엎어졌고, 등 위로 끓는 물이 쏟아졌다. 무명 저고리가 눌어붙었다. 왼손등에 벌겋게 달군 무쇠 조각이 스쳤다. 살이 지글거리는 냄새.

"으윽—"

채유선은 이를 악물었다. 눈앞이 하얘졌다가 붉어졌다. 손등이 타는 것보다, 귓속에서 울리는 게 더 컸다. 도는 톱니 소리. 그리고 비명.

'눈이 옳았다.'

그 생각이 통증보다 먼저 왔다. 정확히 그 자리였다. 그가 밤새 노려본 그 한 뼘. 반만 올리라고 빌었던 그 압. 눈은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었다. 이번에도 옳았다.

그래서 사람이 쓰러졌다.

"채 화원! 채 화원!" 유득경이 그를 흔들었다. 얼굴에 흙과 재가 묻은 채였다. "정신 차리시오! 손이— 손이!"

채유선은 무릎으로 기어 부역꾼에게 갔다. 허벅지에 무쇠가 박힌 사내. 채유선의 성한 오른손이 그의 상처를 눌렀다. 피가 손가락 사이로 흘렀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내가— 반만 올리라고 했는데. 내가—"

"물러서시오!"

날카로운 목소리가 마당을 갈랐다. 봉인 명령을 들고 왔던 사헌부 감사관과 유생 몇이 어느새 담장 밖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김치복이 언제 불렀는지, 그들은 이미 그 자리에 있었다.

감사관이 종이와 붓을 꺼냈다. 다친 사람보다 먼저.

"상신 없는 잡직의 사사로운 주물이 사람을 상하게 했다." 그가 소리 내어 적었다. 목소리에 은근한 만족이 배어 있었다. "부역꾼 둘이 크게 다치고, 화덕이 무너지고, 시험이라는 것은 통이 터지는 것으로 끝났다. 서얼의 잔재주가 강상을 어지럽히고 사람을 해쳤다— 좌의정 대감께 그대로 계로 올릴 것이니라."

유득경이 벌떡 일어섰다. "사람이 다쳤소! 먼저 의원을—"

"검서관." 감사관이 붓을 멈추지 않았다. "누가 이 위험한 주물을 하도록 놔뒀소? 규장각 검서관이 잡직을 싸고돌아 사람을 상하게 했다— 이것도 함께 적을까요?"

유득경의 얼굴이 사색이 됐다.

심환지의 그물이 조여왔다. 봉인이 실패하자, 폭발이 상소가 되었다. 채유선의 눈이 옳았음을 증명한 그 폭발이, 그대로 채유선의 죄가 되었다. 옳음이 죄가 되는 나라. 어미가 그렇게 죽었다. 재주 있는 종년이 주제넘다고, 옳은 소리를 했다고.

채유선은 부역꾼의 상처를 누른 채 고개를 들지 못했다.

"내가… 봤는데."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봤는데 못 막았다."

첫 거푸집에서도 그랬다. 붉은 균열을 보고도 손이 없어 못 고쳤다. 일곱 번을 다시 떠도, 어디가 터질지는 보이는데 어떻게 막을지는 끝내 보이지 않았다. 눈은 저주였다. 죽을 자리를 미리 보여주고, 살릴 방법은 감췄다. 신이 있다면, 그를 조롱하려고 이 눈을 준 것이다.

굵은 손이 그의 겨드랑이를 파고들었다.

홍만춘이었다. 그은 얼굴에 재가 묻고, 눈썹 한쪽이 그을렸다. 그가 아무 말 없이 채유선을 들쳐업었다. 채유선의 화상 입은 왼손이 홍만춘의 어깨에 눌려 비명이 나왔다.

"움직이지 마시오." 홍만춘이 성큼성큼 걸었다. "의원한테 갑니다. 저 부역꾼들도 사람 붙였소. 걱정 마시오."

채유선은 그의 등에 얼굴을 묻었다. 무쇠 냄새, 땀 냄새, 탄 냄새.

"대장어른." 목소리가 젖었다. "왜… 왜 눈에 보이는데. 보이는데 왜 못 막느냐고. 첫 거푸집도, 일곱 번째 이음쇠도, 이번 통도— 다 봤는데. 다 봤는데 하나도 못 막았습니다. 이럴 거면 왜 보이는 겁니까. 이럴 거면—"

홍만춘의 걸음이 잠깐 흔들렸다.

"…나도 묻고 싶소." 그가 낮게 말했다. 화가 났는지 슬픈지 알 수 없는 목소리였다. "화원이 반만 올리자 할 때, 내가 왜 안 우겼는가. 서른 해 무쇠를 만졌으면서, 왜 화원 눈을 안 믿고 내 귀를 믿었는가. 무쇠 소리 맑다고, 흠 없다고. 저 김가 놈이 준 무쇠를 왜 안 의심했는가."

채유선의 어깨가 들썩였다.

처음이었다. 사흘을 못 자고, 일곱 번을 부수고, 무고죄로 몰리고, 봉인을 당하는 동안에도 마르던 눈이었다. 옳으면 인정받으리라 믿었다. 정밀하면 세상이 알아주리라 믿었다. 그런데 가장 정밀하게 옳았던 순간에, 사람이 쓰러졌고 그것이 그의 죄가 되었다.

그가 홍만춘의 등에서 울었다. 소리 없이, 어깨만 떨며. 화상 입은 손을 오므린 채.

"울으시오." 홍만춘이 걸음을 늦추지 않았다. "울고, 나으시오. 그담에 다시 뜹시다. 이번엔 화원 눈대로. 내 귀 말고."

의원 움막 앞에 이르렀을 때, 채유선의 정신이 흐려졌다. 화상의 열이 온몸으로 번지고, 사흘 불면의 피로가 한꺼번에 무너졌다. 시야 가장자리가 검게 조여들었다.

그 흐릿한 귓가로, 담장 너머 목소리가 스쳤다. 감사관에게 하는 말이었다. 부드럽고, 여유롭고, 승리한 자의 목소리.

"무쇠 등급이야 장부대로였지요." 김치복이었다. "감영 인장 찍힌 상급 무쇠, 내 손으로 안 대었소. 통이 터진 건 무쇠 탓이 아니외다. 사고는— 저 서얼 손끝의 죄요. 재주도 없는 게 재주 있는 척하다 사람 잡은 게지. 그리 적으시오. 감영 장부 어디에도 하급 무쇠 들인 기록은 없으니."

장부. 감영 인장. 하급 무쇠.

혼미한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걸렸다. 그 무쇠는 김치복이 대었다. 그가 폭발의 원인이라 짚은 그 무른 통은, 김치복의 손을 거쳐 왔다. 4화에서 붉은 실선으로 간파했던 그 하급 무쇠. 증좌가 없어 무고로 몰렸던 그 비리. 그것이 오늘, 사람을 쓰러뜨렸다.

채유선의 성한 오른손이 흙바닥을 더듬었다.

들쳐업힌 채, 홍만춘이 미처 못 본 사이, 채유선은 마당에서 파편 하나를 쥐고 있었다. 이음새 아래가 갈라진 실린더 조각. 붉은 선을 따라 정확히 터진 그 한 뼘. 아직 뜨거운 무쇠였다.

화상 입은 왼손이 아니라, 성한 오른손이었다. 그 손이 파편을 움켜쥐었다. 손바닥이 지글 타들어가는데도 놓지 않았다.

이 조각 속에, 속을 덜 뺀 무른 무쇠가 있다. 이 조각이, 장부가 못 하는 증언을 한다.

'무쇠 탓이 아니라고 했느냐.'

의식이 완전히 꺼지기 직전, 채유선은 그 무쇠 조각을 가슴팍으로 끌어당겼다. 감영 인장이 아니라, 갈라진 무쇠 그 자체가 증좌였다. 눈에만 보이던 것이, 이제 손안에 있었다.

세상이 검게 닫혔다.

그러나 그의 손은 끝내 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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