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이 회차는 아직 그래픽 노블 장면이 제작되지 않아 일반 노블로 보여드려요.

물을 끼얹는 소리가 그쳤다.

화덕의 마지막 불씨가 검은 재로 주저앉는 것을 채유선은 눈도 깜빡이지 않고 지켜보았다. 그 재 위에, 그가 사흘 밤을 새워 벼린 이음쇠 도면의 잔상이 아직 붉게 어른거렸다. 대장간이 죽으면 그의 눈도 볼 것을 잃는다.

감사관이 두루마리를 김치복에게 넘겼다. 김치복이 그것을 공손히 받는 시늉을 하며 채유선을 곁눈질했다. 웃지도 않았다. 다 이겼다고 여기는 자의 무표정이었다.

"봉인 딱지는 내일 아침 붙이겠소." 감사관이 말했다. "그때까지 대장간 안의 어떤 물건도 손대지 마시오. 손대면 그 또한 규례 위반으로 계에 올리겠소."

관복 자락이 문지방을 넘어 사라지고, 흙먼지가 가라앉는 데는 한참이 걸렸다.

채유선이 죽은 화덕 앞에 무릎을 꿇었다. 재를 손가락으로 헤집었다. 아직 온기가 남아 있었다.

"만지지 말게." 유득경이 그의 어깨를 잡았다. "저들이 창밖에서 보고 있을지도 몰라."

"불이 살아 있을 때 재정련을 시작했으면—"

"채유선."

"이레면 됩니다. 이레면 무른 무쇠를 다시 잡을 수 있었어요. 그런데 하루 차이로—"

"채유선!" 유득경이 그의 손목을 잡아 재에서 떼어냈다. 힘이 셌다. 이론만 아는 서생의 손이 아니었다. "자네가 여기서 딱지 하나 더 붙이면, 화성 대장간을 봉인한 게 아니라 자네 목을 봉인하는 걸세. 알겠나?"

채유선의 손끝에서 재가 부슬부슬 떨어졌다.

홍만춘은 화덕 반대편에 팔짱을 낀 채 서 있었다. 서른 해를 불 앞에서 산 사내였다. 그가 꺼진 화덕을 내려다보는 눈은, 죽은 짐승을 보는 사냥꾼의 눈 같았다.

"이 불, 조상 대에서 물려받은 불이오." 홍만춘이 낮게 말했다. "화성 온 뒤로 한 번도 안 꺼뜨렸소. 부역꾼 삼천 명 연장이 이 불에서 나왔단 말이오."

"다시 살릴 수 있습니다." 채유선이 말했다.

"봉인 딱지 붙으면?"

채유선은 대답하지 못했다.

밤이 왔다. 유득경은 임시 처소로 돌아가지 않았다. 대신 봇짐에서 손때 묻은 책 한 무더기를 꺼내 등잔 앞에 쌓았다. 『화성성역의궤』 초본, 『대전통편』 발췌, 그리고 이름 없는 손이 베껴 쓴 규례집 필사본 여러 권.

"뭘 하시는 겁니까." 채유선이 물었다.

"저들이 규례로 자넬 막았지." 유득경이 책장을 넘기며 답했다. 종이 넘어가는 소리가 빨랐다. "그럼 규례로 뚫어야지. 다른 길은 없네. 조당에서 자네가 옳다고 소리쳐봐야, 잡직이 옳으면 그게 더 위험하다고 내가 낮에 말하지 않았나."

"규례는 심환지의 것입니다. 그자가 예법을 손금 보듯 아는데—"

"바로 그래서일세." 유득경이 고개를 들었다. 등잔불에 눈이 번들거렸다. "규례는 노론이 세운 담장이야. 담장이 높을수록 틈도 많은 법이지. 이 축조 규례라는 게 말일세, 원래 백성을 위해, 공사를 굴러가게 하려고 만든 것들이란 말이야. 사람 잡으라고 만든 게 아니라. 잘만 뒤지면—"

그가 말을 멈추고 다시 책에 코를 박았다.

채유선은 그 곁에 앉았다. 자기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사실이 목을 조였다. 도면은 그릴 줄 알아도 규례는 읽을 줄 몰랐다. 어느 조항이 어느 조항을 이기는지, 그 싸움의 법칙을 그는 배운 적이 없었다. 서얼에게 그런 것을 가르치는 스승은 없었다.

"제가 도울 게 없군요." 채유선이 중얼거렸다.

"있네." 유득경이 책에서 눈을 떼지 않고 말했다. "자넨 자네가 만들려는 게 정확히 뭔지 나한테 말해주게. 이름을 붙여야 조항에 걸든 말든 할 것 아닌가. 김을 가둬 힘을 내는 통— 이걸 관에서 뭐라고 부르게 만들 것이냐, 그게 승부일세."

채유선은 등잔불 곁으로 봇짐을 끌어당겼다. 무명천으로 두 번 싼 자개함. 매듭을 풀자, 정조가 하사한 서양 물시계가 드러났다. 놋쇠 톱니가 등잔불을 받아 잔잔히 빛났다.

그는 물시계를 손바닥에 올리고 응시했다.

역산이 시작되었다. 심상 속에서 물시계가 스스로 분해되어 톱니 하나하나가 허공에 떠올랐다. 큰 바퀴가 작은 바퀴를 물고, 작은 바퀴가 더 작은 바퀴를 돌린다. 물의 힘을 받아 도는 큰 바퀴의 빠른 회전이, 톱니의 잇수 차이를 거치며 느리고 무거운 힘으로 바뀐다. 감속. 힘을 늦추어 무겁게 만드는 배열.

김의 힘도 마찬가지였다. 피스톤이 미친 듯이 오르내리는 그 급한 움직임을, 이 톱니 배열로 늦추면— 무거운 돌을 천천히, 그러나 억세게 들어 올리는 힘으로 바뀐다. 물시계의 심장이 곧 기관의 감속 장치였다.

"…이겁니다." 채유선이 입을 열었다. "김의 힘은 너무 급합니다. 그대로는 아무것도 못 듭니다. 이 톱니 배열로 힘을 늦춰 무겁게 만들면— 거중기가 도르래로 하는 일을, 김이 대신하게 됩니다."

유득경의 손이 멈췄다.

"방금 뭐라고 했나." 그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거중기라고 했나?"

"거중기가 도르래로 힘을 나눠 무거운 돌을 드는 것과—"

"채유선." 유득경이 갑자기 책 무더기를 뒤지기 시작했다. 필사본 한 권을 낚아채 미친 듯이 넘겼다. 손가락에 침을 발라 장을 넘기는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거중기… 거중기…"

등잔불이 그의 얼굴 위에서 흔들렸다.

"여깄다." 유득경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여기 있어."

그가 필사본을 채유선의 코앞에 들이밀었다. 채유선은 글을 읽을 줄은 알았으나, 유득경이 짚은 손가락이 어찌나 떨리는지 글자가 흔들렸다.

"화성 축조 규례, 기계 조항." 유득경이 소리 내어 읽었다. "무릇 거중기·녹로의 기계는 그 부속을 고쳐 힘을 더할 수 있으니, 이 개량의 시험은 현장 감동관의 재량으로 행하되 별도의 상신을 요하지 아니한다."

방 안이 고요해졌다.

"별도의 상신을 요하지 아니한다." 유득경이 다시 읽었다. 이번엔 한 자씩 끊어서. "요하지, 아니한다."

채유선의 심장이 크게 뛰었다.

"감사관이 뭐라 했지? 상신 없는 잡직의 사사로운 주물이라 했지. 규례 위반이라고. 그런데—" 유득경이 필사본을 탁 쳤다. "이 조항에 따르면, 거중기 부속을 개량하는 시험은 상신이 아예 필요가 없네. 감동관 재량이야. 심환지가 자기 규례집으로 자넬 묶었는데, 바로 그 같은 규례집 다른 장에 자넬 풀어줄 조항이 박혀 있단 말일세!"

"하지만 제가 만드는 건 거중기가 아니라—"

"김의 통이지. 알아." 유득경이 눈을 빛냈다. "그런데 자네가 방금 뭐라고 했나? 김의 힘으로 거중기가 하는 일을 대신하게 한다고 했지. 그럼 이건 거중기의 부속 개량일세. 도르래와 사람 대신 김통을 붙여 힘을 더하는 개량. 이름을 그렇게 붙이면— 규례가 허락하네."

채유선은 그 논리를 머릿속에서 두 번, 세 번 되짚었다. 빈틈을 찾으려 했다. 결벽이 그렇게 시켰다. 그러나 이번엔 빈틈이 보이지 않았다.

"이게… 통합니까."

"통해야지." 유득경이 필사본을 덮었다. "안 통하면 내가 규장각 검서관 관두고 이 필사본을 씹어 먹겠네. 문제는—" 그가 목소리를 낮췄다. "감동관이 재량을 써줘야 한다는 걸세. 이 현장 감동관이 누군가."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김치복은 아닙니다." 채유선이 말했다. "김치복은 자재 조달일 뿐입니다. 감동관은 따로—"

"조심수라네." 유득경이 말했다. "정3품 감동관. 노론이지만 심환지 사람은 아니야. 공사가 늦어지는 걸 제일 싫어하는 위인이지. 공기를 못 맞추면 자기 목이 날아가니까. 자넨 이 조 감동관에게 딱 하나만 증명하면 되네. 이게 거중기를 더 빨리, 더 세게 굴리는 개량이라고. 공사가 빨라진다고."

채유선의 손가락이 자개함 위 물시계를 쓸었다.

"증명은 물건으로 합니다." 그가 말했다. "말로 하는 건 제가 못 합니다."

"알아." 유득경이 피식 웃었다. "그러니 물건을 만들어야지. 봉인 딱지 붙기 전에."

바로 그때, 대장간 뒷문 쪽에서 발소리가 났다.

채유선이 등잔을 가렸다. 유득경이 몸을 낮췄다.

문이 삐걱 열리고, 홍만춘이 들어섰다. 어깨에 검댕이 잔뜩 묻어 있었다. 손에는 무언가를 무명천에 싸 들고 있었다. 그가 그것을 조심스레 등잔 앞에 내려놓았다.

무명천을 풀자, 이음쇠 하나가 나왔다. 아직 온기가 남은.

"어디서—" 채유선이 숨을 삼켰다.

"봉인은 이 대장간에 붙는 거지." 홍만춘이 툴툴거렸다. "골짜기 너머 폐 대장간 하나 있소. 옛날에 부역꾼들이 쓰던 거. 화덕이 아직 성하더군. 밤새 혼자 불을 살렸소."

"이레는 걸린다고—"

"찌꺼기 빠질 때까지 잡았소, 자네 말대로." 홍만춘이 채유선의 눈을 똑바로 보았다. "이건 겉만 정련한 거고, 진짜는 지금 그 화덕에서 익고 있소. 자네 눈으로 봐주쇼. 이번엔 붉은 게 보이나 안 보이나."

채유선은 이음쇠를 들었다. 손바닥에 무게가 실렸다. 응시했다.

붉은 실선은— 없었다. 매끈했다.

"…깨끗합니다." 채유선의 목소리가 떨렸다. "이음쇠는 깨끗해요, 대장어른."

홍만춘의 굳은 얼굴에 처음으로 금이 갔다. 그가 코를 한 번 훔쳤다.

"양반붙이가 처음 왔을 때." 홍만춘이 말했다. "종이쪼가리 들고 와서 무쇠 어쩌고 하길래, 며칠 놀다 갈 놈인 줄 알았소. 근데 자네는 안 가더군. 화덕 앞에서 손 데어가며 안 가더군." 그가 이음쇠를 턱으로 가리켰다. "저들이 불 껐다고 내 불까지 끈 건 아니오. 알겠소?"

채유선은 이음쇠를 가슴에 안았다. 목이 메었다. 어미 생각이 났다. 재주가 있어도 이름을 못 남기고 죽은 어미. 이 사내는 이름을 못 남길 재주를 가진 채 서른 해를 살았다.

"대장어른." 채유선이 말했다. "기관이 서면, 이 이음쇠 벼린 사람 이름을 공역 장부에 올릴 겁니다. 감독관 이름 말고. 홍만춘 석 자로."

홍만춘이 코웃음을 쳤다. "상것 이름을 장부에 올려? 미쳤소?"

"올립니다."

"…올리든 말든." 홍만춘이 몸을 돌렸다. "새 무쇠 익으면 부르리다. 실린더인가 뭔가, 김 가두는 그 통. 그거부터 떠야 할 것 아니오."

사흘 뒤, 조 감동관은 유득경이 짚은 규례 조항 앞에서 한참을 침묵했다.

정3품 감동관은 필사본을 두 번 읽고, 마당에 세워둔 거중기를 한참 노려보고, 공기 지연 장계를 손끝으로 두드렸다. 그가 마침내 붓을 들었을 때, 유득경은 채유선의 옷소매를 꽉 쥐고 있었다.

"거중기 부속 개량 시험." 조 감동관이 서명하며 중얼거렸다. "감동관 재량으로 허한다. 상신은 요치 않는다. 규례에 그리 적혀 있으니." 그가 붓을 놓고 채유선을 보았다. "단, 공사가 빨라진다는 걸 물건으로 보여라. 못 보이면— 이 종이는 없던 것이 된다. 알겠느냐."

김치복은 마당 저편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았다. 그의 무표정이 처음으로 일그러졌다. 봉인 딱지를 손에 쥔 채, 그것을 붙일 벽을 잃은 사내의 얼굴이었다.

채유선은 조 감동관의 서명이 마른 종이를 두 손으로 받았다. 심환지의 규례가 심환지를 되쳤다. 담장의 틈이었다.

폐 대장간의 불은 밤낮으로 살았다.

홍만춘의 새 무쇠로 실린더를 떴다. 물시계에서 역산한 감속 톱니를 놋쇠로 벼렸다. 옻 먹인 삼밧줄로 이음새를 감았다. 첫 압력 시험은 다음 날 새벽으로 정해졌다. 김을 가둬 압을 올리고, 그 힘이 톱니를 돌리는지 보는 시험.

시험 전날 밤, 채유선은 홀로 실린더 앞에 섰다.

등잔을 들어 무쇠 통을 비췄다. 매끈한 벽면. 홍만춘의 손이 만든 물건이었다. 채유선은 습관처럼 그것을 응시했다. 이음쇠가 깨끗했으니, 실린더도—

붉은 실선이 번졌다.

채유선의 등잔이 흔들렸다.

한 줄이 아니었다. 실린더 벽면을 따라 붉은 금이 그물처럼 뻗어 있었다. 지난번 이음쇠에서 본 것보다, 첫 거푸집에서 본 것보다, 더 짙고 더 굵었다. 등잔불이 닿는 곳마다 무쇠 속에서 핏빛 균열이 번들거렸다. 압을 올리면 이 선을 따라 갈라진다. 저 선을 따라 터진다.

채유선은 실린더에 손을 댔다. 차가운 무쇠. 겉은 완벽했다.

'이건 터진다.'

내일 새벽, 이 통에 김을 가두면— 사람이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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