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이 닫히기 직전, 셔츠 틈으로 삐죽 나온 노란 꼭짓점—별 모양 고무. 도윤은 그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지안이 열여섯 살 때 문구점에서 사서 오 년을 매단 열쇠고리. 별 하나의 뿔이 이가 나간 채로 닳아 있던 그것. 형광등 아래에서 딱 한 번 스쳐 봤을 뿐인데, 도윤의 손톱이 저절로 손바닥을 파고들었다.
"기다려요."
계단 위 어둠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가 뒤쫓아 올라갔을 때 반지하 입구는 텅 비어 있었다. 손전등 불빛 하나 없이, 한명진의 발소리도 없이. 새벽 안개가 골목을 반쯤 삼키고 있었다.
도윤은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등 뒤 거울 넷이 여전히 희미하게 빛나는 걸 목덜미로 느끼면서도.
*설명 가능한 원인을 먼저 찾지 마.*
그 습관이 태오를 삼켰다. 그 습관이 지안을 놓쳤다. 이번만큼은, 도윤은 자신에게 물었다. 지안의 열쇠고리가 한명진의 안주머니에 있다. 그렇다면 지안은 '완성'됐고, 물건이 됐고, 어딘가로 넘겨졌다는 뜻인가. 아니면 아직 반쯤 걸린 채 남아 있는가.
답을 아는 사람은 하나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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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소라는 다음 날 오후, 회사 창고 뒤편에서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태오가 사라진 지 열두 시간도 안 됐는데, 그의 이름은 아침 조회에 오르지 않았다. 한명진은 "정태오 씨, 개인 사정으로 그만두셨어요"라는 한 문장으로 사람 하나를 지웠다.
도윤이 다가가자 소라는 담배를 벽에 비벼 껐다.
"태오 죽었지."
질문이 아니었다. 도윤은 걸음을 멈췄다.
"봤어요?"
"열두 명." 소라가 손가락을 폈다 접었다. "내가 여기 들어온 뒤로 사라진 신입이 열두 명. 다들 '개인 사정으로 그만뒀'대. 열두 번째가 네 옆에 있던 애겠지." 그녀는 도윤을 위아래로 훑었다. "근데 넌 안 죽었네. 규칙 잘 지켰나 봐?"
"규칙 안 지켰어요. 그래서 살았고요."
소라의 눈썹이 처음으로 움직였다.
도윤은 주머니에서 태오의 슬리퍼 한 짝을 꺼냈다. 3번에 밑줄이 그어진 규칙표도. 그리고—망설였다. 지안의 메모까지 보일까. 이 여자를 믿어도 되는가. 판단이 등 뒤로 미끄러지려는 걸, 그는 목덜미를 잡아채듯 붙들었다.
"물건이 어디로 가는지 알고 싶어요."
소라의 손이 멈췄다.
"물건." 그녀가 낮게 되뇌었다. "그 단어, 어디서 들었어."
"한명진 대표한테요. 어젯밤에. '완성된 물건은 내가 가져간다'고 했어요. 그리고 내 동생 열쇠고리를 안주머니에 넣고 있었어요."
한동안 소라는 대답하지 않았다. 담뱃갑을 만지작거리다가, 결국 도로 집어넣었다.
"따라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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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라의 낡은 승합차 뒷좌석에는 서류철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그녀가 그중 하나를 도윤의 무릎에 던졌다.
"우리 회사가 지난 삼 년간 수주한 현장 목록. 내가 몰래 뽑았어."
도윤이 페이지를 넘겼다. 손끝이 종이 가장자리에 몇 번 걸렸다.
"전부 사망 현장이에요."
"당연하지, 특수청소니까." 소라가 핸들에 팔을 얹었다. "근데 잘 봐. 사인 칸."
심근경색. 고독사. 심근경색. 실족. 심장마비. 원인 미상. 도윤은 페이지를 거꾸로도 넘겨보았다. 서른일곱 건. 그중 스물아홉 건이 '급성 심정지' 계열이었다.
"이 바닥에 현장이 이것만 있는 게 아니야." 소라가 말했다. "매달 수십 건씩 나와. 근데 한 대표는 골라서 받아. 다른 업체가 마다한 걸, 우리가 웃돈 주고 가져와. 나 처음엔 대표가 미친 줄 알았어. 손해 보면서 왜 저러나."
"공통점이 뭐예요."
소라가 도윤을 돌아봤다. 그 눈에 처음으로 경계 아닌 다른 게 스쳤다.
"전부 쪽지가 있던 집."
도윤의 등줄기가 곤두섰다.
"냉장고나 거울 뒤나 신발장에 붙은 '생활 규칙' 쪽지." 소라가 손가락으로 서류를 툭툭 쳤다. "다른 업체는 그냥 유품이랑 같이 버려. 근데 우리 대표는 그거 있는 집만 골라. '고인의 뜻'이라면서. 사진 찍어서 자기한테 먼저 보내라 그러고. 이상하지 않아? 죽은 사람 냉장고에 붙은 메모가 왜 그렇게 중요할까."
"쪽지가 완성되면 물건이 나오니까요."
소라가 한참 도윤을 봤다.
"너 뭘 아는 거야, 대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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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현장은 재개발 4동 지하의 낡은 원룸이었다. 노인이 화장실에서 발견된 지 이 주가 지난 집. 소라와 도윤은 방독면을 쓰고 들어갔고, 도윤은 곧장 냉장고 문으로 갔다.
쪽지가 있었다. 여섯 줄.
"소라 씨." 도윤이 규칙표를 나란히 놓았다. "이 집 쪽지랑 반지하 집 쪽지랑 비교해봐요."
소라가 쪼그려 앉았다. 두 장의 종이. 언뜻 같아 보였다. 하지만—
"순서가 달라." 소라가 먼저 짚었다. "반지하는 두꺼비집 조항이 3번이었는데, 여긴 5번이야."
"그리고 여긴 거울 조항이 1번이에요." 도윤이 손가락으로 짚었다. "반지하는 6번이었고. 302호도 6번이었어요."
두 사람은 서류철의 다른 현장 사진들을 바닥에 늘어놓았다. 대여섯 장의 쪽지 사진. 도윤은 무릎을 꿇고 그것들을 오래 노려봤다. 냄새도, 먼지 방향도 잊고. 초 단위로 머릿속에 배열을 세웠다.
"조항 자체는 다 똑같아요."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두꺼비집, 거울, 노크, 음식물 배출, 현관등. 여섯 개가 계속 돌려막기로 나와요. 근데 순서만 집집마다 달라."
"그게 왜."
"순서가 조건이니까." 도윤의 목소리가 빨라졌다. "302호는 거울이 6번—마지막이었어요. 그 노인은 앞의 다섯 조항을 다 지키다가, 마지막 6번에서 죽었어요. 반지하 태오는 두꺼비집이 3번이라, 세 번째로 그걸 밟았고요."
소라가 사진들을 도윤 쪽으로 밀었다. "그럼 이 집은."
도윤이 거울 조항을 짚었다. "여긴 거울이 1번. 제일 먼저 완성돼요. 이 집 노인은 화장실에서 죽었어요—거울 앞에서. 첫 번째 조항에서."
방 안이 조용해졌다. 벽시계 초침 소리만 째깍째깍.
"순서가 카운트다운이야." 소라가 중얼거렸다. "하나씩 지킬 때마다 한 칸씩 완성되는 거지. 마지막 조항이 발동하면—"
"물건이 나오고, 사람이 사라져요." 도윤이 규칙표 여섯 장을 부채처럼 펼쳤다. "한명진은 어느 집이 몇 번째 조항까지 완성됐는지 알아요. 그래서 골라 받는 거예요. 완성 직전인 집을. 신입을 마지막 조항에 밀어넣으면—태오처럼—그 사람이 마지막 칸을 채우고, 물건이 떨어지고, 대표가 주워가요."
소라가 벽에 등을 기댔다. 그녀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삼 년 만에 처음이야." 그녀가 말했다. "이걸 말이 되게 설명한 사람은. 나 혼자 서류만 파고 있었어. 사인이 다 심정지인 것까진 알았는데, 순서까진 못 봤어."
"소라 씨가 서류를 안 모았으면 저도 못 봤어요."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창고 뒤에서 도윤을 위아래로 훑던 그 경계가, 조금 녹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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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윤은 화장실로 향했다. 거울이 있었다. 노인이 마지막을 맞은 자리.
손을 뻗는데, 손목이 붙잡혔다.
소라의 손이었다. 세게.
"뭐 하려고."
"보려고요. 노인이 마지막에 뭘 봤는지. 거울 조항이 정말 1번인지, 확인하려면—"
"거울에 손대는 거." 소라가 그의 손목을 놓지 않았다. "너 그거 하면 몸에 뭐 남지."
도윤이 굳었다.
"3동에 강준이라고 있었어. 나보다 먼저 들어온 애." 소라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걔도 거울 보고 뭘 알아냈다 그랬어. 죽은 사람 시야가 보인다나. 처음엔 좋아했어. 함정을 미리 피할 수 있다고. 근데 쓸수록 이상해졌어. 거울에 비친 자기가 자기보다 늦게 움직인다고. 나중엔 자기보다 먼저 움직인다고. 그러다—"
그녀가 말을 삼켰다.
"어느 날 거울 앞에서 사라졌어. 거울 속 강준이는 남아서 웃고 있고."
도윤의 팔에서 힘이 빠졌다. 방독면 너머로 자신의 숨소리가 크게 들렸다. 어젯밤, 거울 속 자신의 상이 실체보다 먼저 가슴 주머니로 손을 가져가던 그 장면이 다시 떠올랐다. 두 박자 늦던 상이, 이젠 앞선다. 시차가 벌어지다 못해 역전됐다.
"너무 자주 쓰지 마." 소라가 손목을 놓았다. 그리고 덧붙였다. 낮게, 하지만 분명하게. "죽지 말라고, 이 말이야. 정 때문에 손해 보는 거 딱 질색인데."
도윤은 거울에서 손을 뗐다. 처음으로, 능력을 쓰고 싶은 충동을 미루지 않고 곧장 눌렀다.
"고마워요."
"됐어." 소라가 고개를 돌렸다. "여기 마저 치우고 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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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는 두 시간을 끌었다. 노인의 옷가지, 곰팡이 슨 이불, 화장실 타일에 밴 것들. 도윤은 순서에 신경 쓰며—어느 방을 먼저 정리하면 조항이 발동하는지 소라가 일러줬다—형광 테이프로 구역을 나눴다.
오후 네 시가 조금 지났을 때였다.
소라의 손이 멈췄다. 걸레를 쥔 채, 그녀는 벽시계를 봤다. 네 시 십사 분. 별 의미 없어 보이는 시각.
"잠깐 나갔다 올게."
"어디요?"
"화장실." 그녀는 대답하며 이미 걸어가고 있었다. 이상한 건, 거울이 있는 화장실이 아니라 방 안쪽의 다른 문으로 향한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그녀는 벽에 걸린 거울을 등지고, 옆걸음으로 미끄러지듯 문을 향해 갔다. 마치 거울에 등을 보이는 각도를 정확히 계산한 사람처럼.
도윤은 걸레를 든 채 지켜봤다.
소라는 문 안으로 사라졌다. 문이 닫혔다. 방 안에 도윤 혼자 남았다.
*네 시 십사 분.*
그가 처음 봤을 때가 아니었다. 어제도, 그제도—아니, 어제 창고에서. 소라는 담배를 정확히 그 시각에 벽에 비벼 껐었다. 도윤은 그때 시계를 봤었다. 네 시 십사 분.
우연이라고, 습관이라고, 방광 문제라고—설명 가능한 원인들이 줄줄이 떠올랐다. 도윤은 그것들을 하나씩 밀어냈다. 태오를 잃은 뒤로, 그 편리한 설명들을 믿지 않기로 했다.
그는 소라가 들어간 문으로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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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안쪽은 창고로 쓰이던 좁은 방이었다. 창문 하나 없이 어�두컴컴한. 소라의 모습은 없었다. 뒷문도, 다른 출구도 보이지 않는데.
도윤은 자외선 램프를 켰다.
그리고 왼쪽 벽을 비췄다.
숨이 멎었다.
벽 한 면이 글씨로 가득 덮여 있었다. 손톱으로 긁은 것, 볼펜으로 눌러쓴 것, 립스틱으로 문지른 것. 수십 개의 필체가 서로 겹쳐 층을 이루고 있었다. 이전 세입자들. 이전 청소부들. 여기 들어왔다가 사라진 사람들의 흔적.
*나가고 싶다.* *거울 보지 마.* *3번 먼저.* *완성되면 안 돼.* *강준.* 강준이라는 이름이 세 번 반복돼 있었다. 그 옆에 흐릿하게—*소라야 미안.*
도윤의 손이 램프를 아래로 내렸다. 벽 아래쪽, 아직 마르지 않은 새 글씨가 있었다. 오늘 쓴 것처럼.
거기, 다른 필체들 틈에.
*서도윤.*
램프 불빛 아래에서, 자기 이름 세 글자가 젖은 채 빛나고 있었다. 누군가 방금 쓴 것처럼. 그리고 그 아래로, 아직 채 마르지 않은 획 하나가—문장이 되려다 만 것처럼—번져 있었다.
등 뒤에서, 문이 조용히 닫히는 소리가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