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문에 이마를 붙인 채, 지오는 붉은 등이 깜빡이는 리듬을 세었다. 하나, 둘, 셋. 마르가의 물음이 채널 안에서 멈춰 있었다. 잠금을 열까, 말까.

"열어." 지오가 말했다. "잠금만 열어. 되감기는 안 해."

『뭐라고?』

"레나를 손으로 꺼낼 거야." 지오는 세면대를 붙들고 몸을 일으켰다. 무릎이 다시 꺾이려 했지만 이번엔 세면대 모서리에 체중을 실어 버텼다. "형이 남긴 게 죽는 법이었어, 마르가. 옳게 죽어서 실험을 끝내는 법. 그런데 나는—레나를 살리려고 나까지 죽으면, 형이 하지 말라던 걸 정확히 하는 거야. 눈금을 채우는 거라고."

『6분 30초야, 지오. 격벽이 밀봉되면 안에서 골반이 으깨져. 3화 때랑 똑같아. 그땐 네가 되감았어.』

"그땐 내가 몰랐으니까." 지오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이번엔 알아. 되감기 한 번이 마지막 눈금이야. 그 한 번을 레나한테 쓰면, 재개자가 원하는 게 바로 그거야. 이해해? 저것들은 지금 레나를 미끼로 나를 유도하는 중이야."

붉은 잠금등이 초록으로 바뀌었다. 도어가 압력 소리를 내며 물러났다.

지오는 통로로 굴러 나가듯 나왔다. 눈앞에 도한이 서 있었다. 격리를 집행했던 손. 그 손이 지금은 지오의 겨드랑이를 받쳐 올렸다.

"뛸 수 있어?"

"못 뛰어." 지오가 헐떡였다. "그러니까 네가 뛰어. 나는 벽을 읽어야 해."

"벽?" 도한의 눈썹이 일그러졌다. "지금 사람이 갇혔는데 벽 얘기야?"

"5층 서편 회랑." 지오는 도한의 어깨를 붙들고 방향을 틀었다. "그 벽에 40억 년 치 사망 데이터가 다 적혀 있어. 레나 꺼낼 방법도 거기 있고, 저것들이 뭘 원하는지도 거기 있어. 나 혼자 봤던 걸 이제 다 같이 봐야 해."

도한은 반 초 지오의 얼굴을 봤다. 노인의 얼굴. 흰머리, 팔자선, 떨리는 새끼손가락. 그러고는 이를 악물고 지오를 끌어 회랑 입구로 향했다.

*

5층 서편 회랑은 자기장 교란으로 조명이 명멸했다. 벽면 문양이 살아 있는 것처럼 파랗게 흘렀다. 지오가 처음 이 문양에서 자기와 형의 이름을 읽었던 그 벽이었다.

붕괴 지점은 회랑 중간이었다. 세라믹 대들보가 통째로 내려앉아, 격벽 안쪽 좁은 공간에 레나를 가두고 있었다. 잔해와 격벽 사이 틈으로 레나의 헤드램프 불빛이 보였다.

"지오!" 레나의 목소리가 틈으로 새어 나왔다. "오지 마! 밀봉 시작됐어. 너 여기 들어오면 같이 죽어."

"안 죽어." 지오는 벽에 손바닥을 댔다. 파란 문양이 그의 손 아래로 몰려들었다. "가만있어. 몇 분 남았어?"

『5분 12초.』 마르가가 위층 콘솔에서 밀봉 시퀀스를 읽었다. 『격벽 유압이 안쪽으로 밀려. 완전 밀봉 시점에 골반이 낀 채로 압착돼.』

지오는 벽 문양을 손끝으로 훑었다. 스캐너는 압수당했다. 헤드셋도 없었다. 하지만 이 문양은 장비 없이도 읽혔다—되감기를 거듭하며 그의 뇌에 각인된 언어였으니까.

"도한, 램프 이쪽. 레나, 스캐너 갖고 있지?"

"응." 레나가 틈으로 스캐너를 밀어냈다. "이거라도—"

지오는 스캐너를 벽에 붙였다. 사망 데이터 각인이 화면에 번역되어 흘렀다. 그는 손가락으로 짚으며 소리 내어 읽었다.

"샘플 001. 회수 자격 획득. 방식—반복. 샘플 002. 회수 자격 획득. 방식—반복." 지오의 목소리가 점점 빨라졌다. "전부 똑같아. 40억 년 치 사망자가 전부 같은 방식으로 자격을 얻었어."

"반복이 뭐야." 도한이 램프를 겨눈 채 물었다.

"되감기." 지오가 벽에서 눈을 떼지 않고 말했다. "여기 적힌 '반복'은 전부 각인 대상의 자발적 되감기야. 도한, 이걸 봐. 회수 프로토콜의 완성 조건이 여기 다 적혀 있어. 발신 문명은 강제로 수확 못 해. 대상이 스스로 되감기를 반복해야 자격이 완성돼. 그게—그게 실험의 전부야."

지오는 손이 떨려서 스캐너를 벽에 눌러 고정했다.

"봐. 방식 칸이 세 종류밖에 없어. '반복'—자격 획득. '반납'—부분 승인. 그리고—" 그가 한 줄을 짚었다. 문양이 다른 색이었다. 붉은빛도 파란빛도 아닌, 꺼진 회색. "'무효'. 자격 NULL. 딱 하나야. 40억 년 치에서 딱 한 건."

"그게 뭔데."

"샘플 011." 지오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서준오."

램프 불빛 아래 도한의 얼굴이 굳었다.

"형이야. 유일하게 자격을 무효화한 샘플. 스스로 링크를 끊고, 자기 죽음을 눈금에서 지운 유일한 사람." 지오는 벽에 이마를 잠깐 댔다가 뗐다. "회수 조건이 뭔지 이제 완전히 알았어. 각인 대상의 자발적 되감기 반복. 그게 채워지면 실험이 완성돼. 내가 지금 레나를 위해 되감으면—마지막 눈금이 채워지고, 우리 열두 명이 다 회수돼."

『4분 30초.』 마르가의 목소리가 낮게 잘렸다. 『지오, 그럼 어떻게 꺼내.』

"손으로." 지오가 몸을 돌렸다. "대들보야. 세라믹 대들보 하나가 격벽 재개방 릴리즈 밸브를 누르고 있어. 이 문양이 밸브 위치를 알려줘. 저 대들보를 3센티만 들면 밸브가 풀리고 격벽이 재개방 모드로 돌아가."

"저걸 손으로 든다고?" 도한이 대들보를 올려다봤다. "저거 300킬로는 나가. 화성 중력이라도 90킬로 이상이야. 너랑 나랑 둘이서는—"

"셋이야." 위쪽에서 발소리가 울렸다. 마르가가 콘솔을 버리고 사다리를 타고 내려왔다. 어깨에 유압 잭 하나를 걸치고 있었다. "유리는 위에서 밀봉 시퀀스 붙들고 있어. 30초당 5초씩 지연시킬 수 있대. 그게 우리가 훔친 시간이야."

*

세 사람이 대들보 앞에 붙었다. 잭을 밑에 물렸지만 각도가 나오지 않았다. 잭이 물어야 할 지점에 잔해가 쌓여 있었다.

"잔해부터." 지오가 헐떡였다. "이거 치워야 잭이 물어."

지오는 왼손만 썼다. 오른손 새끼손가락은 이제 물건을 쥐지도 못했다. 세라믹 파편 하나를 겨우 옆으로 밀자, 팔뚝 근육이 비명을 질렀다. 근육량 41퍼센트의 몸이었다. 파편은 손가락 두 마디만큼 움직였다.

"비켜." 도한이 지오를 밀치고 파편을 두 손으로 끌어냈다. "넌 방향만 잡아. 힘은 우리가 써."

『3분 10초.』

잭이 대들보 밑에 물렸다. 마르가가 레버를 당겼다. 대들보가 1센티 들렸다. 잭의 한계였다.

"2센티 더." 지오가 소리쳤다. "밸브가 안 풀려."

"잭이 끝까지 갔어!" 마르가가 이를 갈았다.

"그럼 우리가." 도한이 대들보 아래로 어깨를 밀어 넣었다. "지오, 왼손이라도 껴. 마르가, 반대쪽. 셋이 동시에 밀어. 하나, 둘—"

지오는 대들보 아래로 왼쪽 어깨를 밀어 넣었다. 무릎이 꺾이려 했지만 도한의 등이 옆에서 받쳐줬다. 마르가가 반대편에서 다리로 벽을 밀었다. 세 사람의 숨이 하나로 겹쳤다.

되감기라면 이 순간을 삭제할 수 있었다. 지오의 머릿속에서 그 유혹이 또렷하게 켜졌다. 한 번. 딱 한 번이면 이 무게도, 이 통증도, 레나의 위험도 다 없던 일이 된다. 한 번 더 되감으면—

지오는 이를 악물었다. 그 목소리는 자기 것이 아니었다. 재개자가 자기 갈망을 정확히 읽고 흘려보내는 미끼였다. 형이 봤던 것. 형이 D+310에 이미 봤던 것. '봤다'는 게 이거였다.

"셋!"

대들보가 3센티 들렸다. 벽 안쪽에서 딸깍, 하는 유압 소리가 났다. 격벽이 밀봉을 멈추고, 역방향으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레나!" 도한이 소리쳤다. "지금이야! 기어 나와!"

틈이 벌어졌다. 레나가 골반을 비틀어 격벽 사이로 몸을 빼냈다. 헤드램프가 흔들리고, 그녀가 도한의 팔을 잡았다. 지오는 어깨에서 대들보 무게를 놓았다. 세 사람이 동시에 물러나자 대들보가 다시 내려앉았다—레나가 있던 자리를 정확히 으깨며.

『밀봉 완료. 인원 이탈 확인.』 유리의 목소리가 위에서 떨렸다. 『살았어. 다들 살았어.』

레나는 통로 바닥에 주저앉아 숨을 몰아쉬었다. 그러고는 지오를 올려다봤다.

"안 되감았네."

"안 되감았어." 지오가 벽에 등을 대고 미끄러져 앉았다. 심장이 갈비뼈를 두드렸다. "네가 살아 있어. 되감기 없이."

레나의 눈에서 뭔가가 떨어졌다. 그녀가 지오의 손을 잡았다—오른손, 물건도 못 쥐는 그 손을. 조심스럽게.

*

숨이 가라앉자, 지오는 다시 벽으로 기어갔다. 스캐너가 아직 붙어 있었다. 화면에 새로운 문양이 흘러들었다. 구출 순간이 벽에 기록되고 있었다.

"이거 봐." 지오가 손짓으로 넷을 불렀다. "레나 구출—방식 칸이 비었어. '반복' 아님. '반납' 아님. 그냥—미기록."

도한이 벽 앞에 쪼그려 앉았다. "그게 무슨 뜻이야."

"우리가 방금 한 게 저것들 계량기에 안 잡혔다는 거야." 지오가 스캐너를 위로 스크롤했다. "40억 년 치에서 안 잡힌 방식이 두 개야. 형의 '무효'. 그리고 방금 우리의 '손으로 구출'. 이해해? 재개자는 죽음과 되감기와 반납만 셀 줄 알아. 사람이 사람을 손으로 꺼내는 건—셈에 없어. 그건 데이터가 아니니까."

마르가가 벽 문양을 오래 봤다. 파란빛이 그녀의 얼굴 위로 흘렀다.

"이 실험." 마르가가 천천히 말했다. "40억 년 전에 뭘 파종한 거야. 여기 다 적혀 있잖아. 읽어."

지오는 가장 오래된 각인 줄로 스캐너를 옮겼다. 문양이 흐릿했다—복원과 재복원을 반복한 자국.

"파종. 매질—지하수. 목표—지성 형태 수확. 실험 조기 붕괴. 종료." 지오의 손끝이 다음 줄에서 멈췄다. "씨앗 잔존분—우주 먼지 이동—외행성 안착."

침묵이 회랑을 채웠다.

"외행성." 유리의 목소리가 스피커로 떨어졌다. "지구야?"

"지구야." 지오가 벽에 손바닥을 댔다. "우린 여기서 실패한 실험이야. 씨앗 일부가 화성에서 튀어 나가서, 40억 년 전 우주 먼지를 타고 지구에 떨어졌어. 우리는—인류는 이 실패한 수확의 잔존 파생물이야. 재개자는 그 중단된 수확을 지금 완성하려는 거고. 우리가 제 발로 여기 찾아온 순간, 저것들 눈엔 '중단된 회수 대상이 돌아왔다'로 보였어."

레나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도한은 벽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우리 산소." 도한이 쉰 목소리로 말했다. "재생기 순환수. 그게 처음부터 파종 매질을 지나왔다고 했지. 그럼 우린 첫날부터—"

"저것들 안에서 숨 쉰 거야." 지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린 실험실 밖에서 온 손님이 아니었어. 처음부터 실험 안에 있었어. 40억 년 늦게 돌아온 샘플."

*

마르가가 지오 앞에 쪼그려 앉았다. 대장이 대원 앞에 무릎을 낮추는 건 처음이었다.

"3화 때." 마르가가 말했다. "너는 레나를 되감아서 살렸어. 나는 그때 네가 무슨 짓을 하는지 몰랐지. 오늘은 안 되감았어. 대들보를 손으로 들었어. 나랑 도한이랑 셋이서."

"어쩔 수 없었어. 되감으면 마지막 눈금이—"

"어쩔 수 없어서가 아니야." 마르가가 지오의 말을 잘랐다. "너는 되감기 유혹을 알아본 거야. 아까 대들보 밑에서 네 얼굴 봤어. 너 그거 참았지. 참느라 이 악물었지."

지오는 대답하지 못했다.

"네가 멈추는 법을 배웠구나." 마르가가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에서 명령의 톤이 사라져 있었다. "내가 6화에 되감기 전면 금지 명령을 내렸을 때, 너는 그게 사형 선고인 줄 알았어. 전원 생존 경로가 없으니까. 그런데 오늘 너는 그 명령을 네 손으로 실행했어. 아무도 안 죽이고."

"그건—" 지오가 벽에 등을 기댔다. "그 명령, 내가 받아들일게. 되감기 금지. 이제 내가 나한테 내리는 명령이기도 해. 다시는 안 되감아. 마지막 눈금은 절대 안 채워."

도한이 입을 열었다. 뭔가 반박하려던 습관이 목까지 올라왔다가, 도로 내려갔다.

"형이 왜 답을 안 남겼는지 이제 알겠어." 지오가 천장을 봤다. "'멈춘 뒤 어떻게 다 사는지' 형은 안 알려줬어. 왜냐하면 답이 '손으로 사는 것'이었으니까. 계산으로 못 남기는 거야. 되감기 없이, 서로 대들보를 같이 드는 거. 형은 그걸 나한테 글로 못 남겼어. 몸으로 보여줄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먼저 죽어서 자기를 각인에서 지운 거야."

지오는 스캐너를 벽에서 뗐다. 마지막으로 형의 이름이 적힌 회색 줄을 한 번 더 봤다.

"형은 나를 각인 대상 자리에서 빼내려고 했어. D+310에. 자기가 먼저 죽어서 각인이 나한테 안 넘어오게 하려던 거야. 근데 실패했지. 각인은 나한테 왔고. 그래서 형은 대신 답을 벽에 심어놨어. '봤다'—그게 이거야. 파종 실험을, 회수 조건을, 멈추는 법을 다 본 거야. 세 손가락 수신호도—"

지오가 자기 손을 들었다. 오른손. 새끼손가락이 떨렸다. 나머지 세 손가락을 접었다.

"세 종류. 반복. 반납. 무효. 회수 방식 세 개. 형은 죽어가면서 그걸 손으로 세어서 나한테 보낸 거야. '봤다. 세 개다. 무효를 골라라.'"

*

레나가 지오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회랑의 파란 문양이 느리게 맥동했다. 다섯 사람의 숨소리 위로, 벽면 어딘가에서 진동이 올라왔다.

스캐너 화면이 저절로 켜졌다. 아무도 입력하지 않은 문장이 흘렀다. 6화 콘솔에서 켜졌던 것과 같은, 감정 없는 절차의 목소리.

『대상 관측. 방식—미기록. 셈 불가.』

한 줄이 지나가고, 다음 줄이 떠올랐다.

『대상이 스스로 반복을 멈출 경우, 실험은 미완으로 종료된다.』

지오의 손이 멎었다. 도한이 화면 위로 몸을 기울였다.

"미완 종료." 마르가가 읽었다. "그럼 저것들이—포기한다는 거야?"

"아니." 지오가 화면을 노려봤다. "저건 마지막 유도야. 봐."

다음 줄이 켜졌다. 천천히. 미끼를 던지듯이.

『단, 미완 데이터는 회랑 코어에 직접 접속해야 지구로 송신 가능하다.』

회랑 깊은 곳에서, 심연 회랑 끝—코어실 방향에서 빛이 한 번 파랗게 번졌다.

지오의 등줄기가 굳었다. 멈추는 것만으로는 안 됐다. 실험을 미완으로 끝내고, 그 진실을 인류에게 보내려면—누군가 되감기 능력자가, 각인 대상 본인이, 이 늙은 몸으로 심연 회랑 끝까지 내려가 코어에 직접 손을 대야 했다.

그리고 코어에 접속하는 순간, 재개자가 마지막으로 무엇을 요구할지—지오는 이미 형의 회색 줄에서 답을 봤다.

"이거." 지오가 속삭였다. 스캐너를 쥔 왼손이 떨렸다. "이게 형이 안 알려준 뒷문장이야. 멈추기만 하면 실험은 안 끝나. 진실도 못 보내. 코어까지 내려가서—거기서 자격을 지워야 해."

레나가 그의 손을 붙들었다. "지오. 코어실은 진입하면—"

『회랑 코어 접속 대기.』 스캐너 화면이 마지막 한 줄로 스스로 점화됐다. 『대상 도달까지, 산소 잔여 138일. 카운트 개시.』

숫자가 138에서 137로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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