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이 회차는 아직 그래픽 노블 장면이 제작되지 않아 일반 노블로 보여드려요.

"저 계단, 뭐야. 언제 떨어졌는지, 너 알지."

지오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문장이 없어서가 아니라, 어떤 문장을 골라도 도한이 그 밑을 파고들 사람이라서였다. 거울 속 얼굴이 여전히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하룻밤 새 접힌 눈가 주름. 세 가닥으로 늘어난 흰머리. 그리고 조금 전까지 벽에 떠 있던 그래프—세 번의 계단식 급락과 자신의 되감기 세 번이 한 치의 오차 없이 겹치던 그 선.

"모르겠어." 지오가 세면대 물을 잠갔다. "그래프는 아침에 누가 띄워둔 거야. 나도 지금 봤고."

"거짓말은 논리적으로 하는 편이 낫지." 도한이 태블릿을 흔들었다. "이 로그는 십오 분 단위로 찍혀. 자정 급락은 산소 재생기 이상도, 누출도 없어. 밸브 정상. 압력 정상. 그런데 삼 퍼센트가 그냥—사라졌어. 공기가 다리 달려서 걸어 나갔나?"

"나한테 왜 물어."

"네 얼굴한테 물은 거야." 도한이 한 발 더 들어왔다. 좁은 위생실이 더 좁아졌다. "사흘 만에 십 년을 늙는 사람이, 공기가 사라지는 시각을 우연히 세 번 다 알아. 나는 우연을 세 번 겹치면 그걸 원인이라고 불러."

지오는 도한의 붉어진 눈을 봤다. 이 사람은 화를 내는 게 아니었다. 겁을 참고 있었다. 300일도 못 버틸 산소를 열두 명이 나눠 쉬고 있다는 계산을 매 순간 머릿속에서 굴리는 사람의 얼굴이었다.

"보고할 거야, 마르가한테." 도한이 문을 막고 섰다. "그 전에 네 입으로 먼저 말하는 게 나아."

"보고할 게 없어." 지오가 그를 밀치고 나갔다. 어깨가 부딪혔다. 도한은 잡지 않았다. 대신 등 뒤로 던졌다.

"내일 아침, 마르가 앞에서. 나는 십오 분 로그를 걸겠어. 준비해."

*

지오는 자기 침낭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새벽 두 시. 거주 모듈은 절전 상태였고 대원들은 각자의 어둠 속에 있었다. 그는 통신실을 지나며 유리의 규칙적인 숨소리를 들었고, 회복실 문틈으로 카이의 뒤척임을 봤다. "이미 죽었어." 카이가 잠꼬대로 중얼거렸다. 밀려나 살았는데도, 판에 깔린 감각을 기억하는 남자. 지오가 되감기 전 회차의 카이였다. 지오는 잠깐 문 앞에 멈췄다가, 발소리를 죽이고 지나갔다.

그가 향한 곳은 장비실이었다. 소음 없이 산소통 하나를 챙기고, 헤드램프와 휴대 스캐너, 하강 로프를 챙겼다. 손이 떨렸다. 오른손 새끼손가락이 유독. 살갗이 얇아진 그 자리를 왼손으로 감싸 쥐었다.

거울이 보여준 것, 그래프가 확인시켜준 것. 되감기는 산소를 걷어가고 그의 몸을 갉는다. 이건 확정된 사실이다. 그런데 왜? 어디로 가는가? 유적이 그의 세포와 기지의 공기를 뜯어가서 무엇에 쓰는가. 형이 왜 "멈춰라"라고 남겼는가. 그 답은 위생실 거울에도, 도한의 태블릿에도 없었다.

답이 있을 만한 곳은 하나뿐이었다. 아래.

중층 심연 회랑. 코어로 이어지는 유일한 통로이며, 벽면이 방문자의 사망 데이터를 기록한다고 표식이 뜬 곳. 정찰에서 유리가 추락했던 그 층. 자기장이 통신을 삼키고 중력이 어긋나는 곳.

혼자 가야 했다. 누구를 데려가면, 그 누구를 위해 또 되감아야 할지 모르니까.

*

하강은 40분이 걸렸다. 4층에서 5층으로 내려가는 나선 통로에서 지오의 무릎이 두 번 꺾였다. 관절이 삐걱거리는 소리가 헤드램프 불빛보다 크게 들렸다. 열두 시간 전만 해도 없던 통증이었다. 그는 벽을 짚고 숨을 골랐다. 산소 게이지가 눈금 하나를 까먹는 걸 지켜봤다.

5층 심연 회랑 입구에 도착했을 때, 헤드램프가 벽면을 스치자 그것들이 깨어났다.

발광 문양. 벽 전체가 유기금속 합금 위에 새겨진 미세한 홈으로 뒤덮여 있었고, 지오의 빛이 닿을 때마다 홈이 청록색으로 점화됐다. 처음엔 무늬로 보였다. 가까이 대자 무늬가 아니었다.

좌표였다. 그리고 이름이었다.

지오는 스캐너를 벽에 붙였다. 판독 화면에 문자열이 흘렀다. 대부분 해독 불가한 기호였지만, 그 사이사이 인류의 표기 체계로 번역된 항목이 섞여 있었다. 스캐너가 자동 변환한 것들.

『대상: 카이 노박. 사망 시각 D+402 14:07:22. 원인: 세라믹 판 하부 압착. 데이터 상태: 회수됨.』

지오의 손이 굳었다. 카이는 살아 있었다. 회복실에서 자고 있었다. 그런데 벽은 그가 14시 07분에 판에 깔려 죽은 것을 기록하고 있었다. 지오가 되감기 전, 첫 회차의 카이. 벽은 그 죽음을 지우지 않았다. 저장했다.

『대상: 유리 페트로프. 사망 시각 D+405 09:41:10. 원인: 자기장 교란 중 추락, 두개골 손상. 데이터 상태: 회수됨.』

그것도 있었다. 지오가 되감아 살린, 사라졌어야 할 죽음.

되감기는 사건을 없애는 게 아니었다. 벽은 원본을 붙잡고 있었다. 살아난 자들의 삭제된 죽음이, 이 아래에 문신처럼 새겨져 있었다.

지오는 침을 삼키고 스캐너를 옆으로 밀었다. 홈이 계속 점화됐다. 낯선 좌표가 수천 줄 흘러갔다—인류의 것이 아닌, 다른 문자, 다른 척도. 40억 년어치의 이름들. 이전 샘플들. 실패한 실험의 흔적들.

그리고 스캐너가 멈췄다. 한 항목 위에서.

『대상: 서준…』

빛이 그 자리에서 멈칫했다. 지오의 심장이 갈비뼈를 쳤다. 그는 스캐너를 벽에 더 세게 눌렀다. 판독 진행 막대가 기어갔다. 32퍼센트. 41퍼센트.

그때 회랑 전체가 낮게 울었다.

*

바닥에서 진동이 올라왔다. 헤드램프 불빛이 흔들렸다. 지오의 귀에 익은 소리—붕괴 카운트다운. 상층부가 순차 밀봉되기 전에 나던 그 저음. 그런데 여기는 5층이었다. 밀봉은 위에서부터 시작될 텐데.

지오가 고개를 돌리자, 회랑 입구의 격벽이 움직이고 있었다. 천천히, 무겁게, 위아래에서 서로를 향해 다가오는 두 개의 세라믹 판. 자기 복원 합금이라 부술 수도 멈출 수도 없는 문.

"지오!"

빛 하나가 격벽 반대편에서 흔들렸다. 레나였다. 그가 장비실에서 챙긴 흔적을 발견하고 따라온 것이다. 그녀는 밀봉되는 격벽 이쪽, 회랑 안쪽으로 들어오려 뛰고 있었다.

"멈춰!" 지오가 소리쳤다. "들어오지 마! 문이 닫혀—"

레나의 발이 격벽 문턱을 넘는 순간, 위판이 예상보다 빠르게 떨어졌다. 그녀의 왼쪽 어깨와 상반신이 문틈에 들어왔고 하반신이 밖에 남았다. 판이 그녀의 허리를 향해 내려왔다.

시간이 있었다면 끌어낼 수 있었다. 시간이 없었다.

세라믹 판이 레나의 골반을 물었다. 뼈가 세라믹과 만나는 소리를, 지오는 평생 잊지 못할 소리로 들었다. 그녀의 비명이 반 박자 늦게 터졌다. 스캐너 화면 옆으로, 지오의 시야 가장자리에 익숙한 문양이 점화됐다. 벽이 기록을 시작했다. 『대상: 레나 오이시. 사망 시각—』

사망 확정.

지오의 뇌 뒤편이 켜졌다.

*

차가운 스위치가 눌리는 감각. 세계가 뒤로 감겼다. 소리가 역재생되고, 레나의 비명이 목구멍으로 빨려 들어가고, 세라믹 판이 천장으로 되올라갔다. 4분.

지오는 다시 벽 앞에 서 있었다. 스캐너가 『서준…』 위에서 판독 막대를 41퍼센트로 채우고 있었다. 무릎에 통증이 새로 얹혔다. 관자놀이가 뜨거웠다. 왼손을 들어 새끼손가락을 확인했다—살갗이 또 얇아져 있었다. 대가는 이미 지불됐다.

이번엔 계산할 시간이 있었다.

지오는 스캐너를 놓치지 않은 채 회랑 입구를 노려봤다. 진동이 언제 오는지 안다. 격벽이 어느 속도로 닫히는지 봤다. 위판이 예상보다 빨랐던 것도 기억한다. 레나가 문턱을 넘는 시점도, 골반이 물리는 위치도.

바닥이 낮게 울기 시작했다.

"레나!" 지오가 먼저 소리쳤다. 이번엔 늦지 않게. "격벽 온다! 들어오지 말고 그 자리에서 손 뻗어!"

"뭐? 너 미쳤—"

"손! 뻗어! 지금!"

레나가 반사적으로 팔을 뻗었다. 그 순간 지오는 벽에서 몸을 날렸다. 무릎이 비명을 질렀지만 무시했다. 격벽이 내려오기 시작했다. 지난 회차엔 레나가 문턱을 넘어 들어왔다. 이번엔 그녀를 넘어오게 두지 않는다. 그가 나간다.

지오는 레나의 뻗은 손목을 잡았다. 위판이 그의 정수리 위로 떨어지는 게 보였다. 지난 회차 그녀의 골반을 문 그 지점. 그 타이밍. 판이 문틈을 완전히 막기까지—지오의 머릿속 시계가 셌다. 0.8초. 0.6초.

그는 레나의 팔을 자기 쪽이 아니라 바깥쪽으로, 문 밖으로 채찍처럼 당겼다. 자신도 그 힘으로 몸을 문 밖으로 던졌다. 두 사람이 회랑 밖 통로로 함께 굴렀다.

세라믹 판이 그들이 조금 전까지 서 있던 자리를 물었다. 쿵. 지오의 발뒤꿈치에서 손가락 두 마디쯤 떨어진 곳이었다. 0.4초. 지난 회차 실패에서 배운 정확히 그만큼을 앞질렀다.

밀봉된 격벽 안쪽에서, 벽의 문양은 이번엔 아무 이름도 점화하지 않았다.

*

레나가 통로 바닥에서 숨을 몰아쉬었다. 헤드램프 두 개가 어긋난 각도로 천장을 비췄다.

"너……" 그녀가 지오의 팔을 붙들었다. 손이 떨렸다. "네가 어떻게 알았어. 판이 언제 떨어지는지. 어느 속도인지. 나한테 손 뻗으라고 소리친 타이밍까지—전부."

"봤으니까." 지오가 숨을 골랐다.

"뭘 봤어. 처음 온 층이잖아. 나도 처음이야."

"레나." 지오는 일어나 앉으려다 무릎이 접혀 다시 주저앉았다. 그녀가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그의 손을 잡아 램프 불빛 아래로 끌어당겼다.

새끼손가락. 얇아진 살갗. 떨림. 그리고 그의 얼굴—아침보다도 더 늙은 얼굴.

"또 했구나." 레나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되감았어. 방금. 나 때문에. 내가 그 문에 끼여 죽었던 거지. 한 번은. 네 세계에서."

지오는 부정하지 않았다. 부정할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그래서 혼자 온 거야?" 그녀가 그의 손목을 놓지 않았다. "누굴 데려오면 그 사람 때문에 또 감아야 하니까. 대가는 네 몸이랑 우리 산소인데, 그걸 아무도 모르게 혼자 치르려고. 도한이 매일 로그 붙들고 미쳐가는 동안, 너는 밤마다 이 밑에서 십 년씩 늙으면서."

"이게 유일한—"

"닥쳐." 레나가 그의 말을 잘랐다. 화가 아니라 애원에 가까운 소리였다. "혼자 짐 지지 말라고 했잖아. 두 번째야, 내가 이 말 하는 거. 세 번은 안 해." 그녀가 지오의 얼굴을 두 손으로 붙들었다. 늙은 눈가를, 흰머리를. "다음에 이 밑으로 내려올 땐, 나 데려가. 네가 볼 것을 나도 봐. 네가 지불하는 걸 나도 나눠 낼 방법을 찾아. 너 하나 죽어가는 걸 보라고 나를 살린 거면, 나 그거 못 견뎌."

지오는 그녀의 손 아래서 눈을 감았다. 아무도 잃지 않겠다는 그의 문장 안에, 자기 자신은 한 번도 포함된 적이 없었다는 걸, 이 순간 그녀의 손바닥 온기가 알려주고 있었다.

*

그때 지오의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새겨졌다.

되감기마다 오는 그것. 치른 대가만큼 열리는 진실 조각. 이번 회차의 것이 두개골 안쪽에 문장으로 각인됐다. 그가 원한 적도, 읽으려 한 적도 없는데, 마치 벽의 문양처럼 점화됐다.

『신호원은 사망 데이터를 수집한다.』

지오는 눈을 떴다. 방금 밀봉된 회랑 안, 카이의 죽음도 유리의 죽음도, 사라졌어야 할 죽음들이 벽에 저장돼 있던 이유. 되감기가 대가를 걷어가던 이유. 산소가, 그의 세포가 어디로 갔는지. 유적이 무엇을 먹고 사는지.

죽음이었다. 벽은 죽음을 마셨다. 그가 되감을 때마다 없앤 죽음의 원본이, 그대로 회수되어 저 아래로 흘렀다. 그가 열두 명을 살리려 감으면 감을수록, 유적은 열두 개의 사망 데이터를 배부르게 삼키고 있었다.

"레나." 지오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우리가 되감을 때마다, 이건—실험이야. 죽음을 데이터로 걷어가는. 형이 왜 멈추라고 했는지 이제……"

"형?" 레나가 물었다.

지오는 대답 대신 밀봉된 격벽을 돌아봤다. 스캐너를 놓쳤다. 판독은 41퍼센트에서 끊겼다. 『서준…』 그 이름을, 그는 다 읽지 못했다.

*

기지로 올라오는 데 다시 40분이 걸렸다. 레나가 그의 팔을 부축했고, 지오는 처음으로 거절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도한과 마르가에게 무어라 말할지 정하지 않은 채 4층에 이르렀고, 지오는 그곳에서 멈췄다.

되감기 전, 스캐너가 벽에 붙은 채였다. 그 데이터는 지오의 헤드셋에 자동 캐시로 남아 있었다. 되감아도 캐시는 지워지지 않았다—기록 장치의 부산물이라, 이 능력은. 지오는 통로 벽에 등을 대고 앉아 헤드셋 화면을 켰다.

캐시 복원. 진행 막대가 41퍼센트에서 다시 기어가기 시작했다. 레나가 옆에 웅크려 함께 화면을 봤다.

『대상: 서준오.』

지오의 손가락이 화면 위에서 얼어붙었다.

『사망 시각 D+310 21:53:00. 원인:』

막대가 채워졌다. 88퍼센트. 95퍼센트.

『원인: 자발적 접속 단절. 대상은 신호원 각인 링크를 스스로 절단함. 회수 거부. 데이터 상태: 미회수.』

화면이 거기서 정지했다.

형은 사고로 죽은 게 아니었다. 판에 깔리지도, 추락하지도, 자기장에 삼켜지지도 않았다. 준오는 신호원과 연결된 각인 링크를—되감기 대상이 될 그 자리를—제 손으로 끊고, 회수당하기를 거부한 채 죽음을 골랐다.

지오의 숨이 멎었다. 화면 속 마지막 프레임이 떨리지도 않고 그 문장을 붙들고 있었다. 미회수. 형은 벽에 삼켜지지 않은 유일한 이름이었다.

"멈춰라." 지오가 그 단어를 입 밖에 냈다. "형이……"

레나가 그의 어깨를 잡았다. 그러나 지오의 눈은 화면을 떠나지 못했다. 형은 무엇을 봤길래, 스스로 링크를 끊는 것이 유일한 답이라고 판단했을까. 그리고 그 자리를—지금 지오가 앉아 있는 그 각인의 자리를—동생에게 남기지 않으려 했던 걸까.

헤드셋 화면 아래로, 새 문자열 하나가 저 혼자 점화됐다. 아무도 스캔하지 않았는데.

『기록 대상 확인. 관측 계속.』

다음 화 계속 보기 →

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