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손을 떼야 했다. 서온은 그것부터 알았다.

손끝에서 손목으로 번지는 열이 마디마디를 밀랍처럼 굳혔다. 뜨겁다는 감각은 이미 통증도 아니었다. 살이 익어 감각을 잃는 그 직전의, 무디고 두꺼운 마비. 강윤도의 뺨에서 새어 나온 진심이 뜨거울수록 그녀의 손은 더 빨리 죽어갔다.

서온은 반대편 손으로 손목을 움켜쥐고, 살점을 뜯듯 손가락을 떼어냈다.

떨어진 손을 가슴에 안았다. 부엌 조명 아래 손끝을 펼쳐보니 아무것도 없었다. 물집도, 화상 자국도. 다만 손가락 세 개가 남의 것처럼 굳어 접히지 않았다. 조각칼을 쥐던 손이었다. 대패를 밀고 결을 다듬던,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유일한 손.

'진심의 온도차가 임계를 초과하면 감응 능력에 반동이 발생함을 감수한다.'

계약서 열두 번째 조항이 이제야 이빨을 드러냈다. 대수롭지 않게 넘긴 문장이었다. 강윤도가 백지라서, 읽을 온도조차 없다 여겼으니까.

그런데 있었다. 봉인된 문틈으로 삐져나온 불길이. 그리고 그 불길을 확인하는 순간, 그녀의 손이 대가를 치렀다.

소파에서 강윤도가 몸을 뒤척였다. 서류가 무릎에서 미끄러졌다. 서온은 반사적으로 벽 쪽으로 물러났다. 뒤꿈치가 식탁 다리에 부딪혀 소리를 냈지만 그는 깨지 않았다.

깨달음이 등줄기를 훑고 지나갔다.

이 남자의 진심을 알고 싶어질수록—그를 향한 마음이 커질수록—그녀는 손을 잃는다. 나무를 만질 손을, 공방을 지킬 손을. 아버지가 남긴 전부를.

서온은 굳은 손을 소맷자락 안으로 밀어 넣었다. 계단을 오르는 내내 심장이 이상한 박자로 뛰었다. 무서워서인지, 아니면 방금 그 온도가 여전히 손끝에 남아 있어서인지 스스로도 구분이 되지 않았다.

방문을 닫고 등을 기댔다. 손을 폈다 쥐길 반복했다. 열 번째쯤 되자 새끼손가락이 겨우 접혔다.

***

아침이 왔고, 손은 절반쯤 돌아왔다.

엄지와 검지는 움직였지만 가운뎃손가락은 여전히 반박자 느렸다. 서온은 세면대 앞에서 물을 틀고 굳은 손을 담갔다. 미지근한 물이 흘렀는데 손은 그 온도조차 제대로 전하지 않았다.

식당으로 내려가니 강윤도가 이미 앉아 있었다. 넥타이를 매지 않은 셔츠 차림. 왼쪽 소맷단이 손목 안쪽 흉터를 덮고 있었다.

"안 주무셨어요?"

서온이 먼저 물었다. 어젯밤 그의 뺨에 손을 댄 사람이 자기라는 걸 그는 모른다. 알 리 없다.

"두 시간쯤."

강윤도가 커피잔을 내려놓았다. "A블록 이중 매매는 없었습니다. 등기부, 계약 원본까지 다 확인했어요. 형이 그쪽으로 흔들 여지는 없습니다."

서온은 빵을 뜯다 멈췄다. 없는 이중 매매였다. 그녀가 형 앞에서 급조한 거짓 미끼. 그걸 밤새 뒤져 '없음'을 확인한 뒤, 그 결과를 아침 식탁에서 보고하듯 내미는 남자.

"그거… 확인 안 해도 됐는데요."

"당신이 던진 말입니다." 그가 커피잔 손잡이를 매만졌다. "책임은 내가 집니다."

서온은 웃으려 했다. "무슨 사장님이 아침부터 이렇게 성실하세요. 저 같으면 늦잠 잤을 텐데."

농담이 입에서 미끄러졌다. 그의 진심을 마주 보지 않으려고 던지는, 늘 하던 방식. 그를 밀어내면 그녀의 손도 안전했다.

강윤도는 그 농담을 받지 않았다. 대신 서온의 손을 보았다. 빵을 반쯤 뜯다 만, 부자연스럽게 굽은 가운뎃손가락을.

서온은 손을 무릎 아래로 내렸다.

"오늘 이사님 오십니다." 강윤도가 화제를 돌렸다. "형이 감사팀을 붙였어요. 우리 결혼을 후계 조항에서 흔들려는 겁니다."

***

강윤성은 유리벽 너머로 도시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등 뒤에서 감사팀장이 파일을 펼쳤다.

"혼인신고는 유효합니다. 서류상 흠이 없습니다. 동거 실체도 확인됐고요."

"실체." 강윤성이 나직이 웃었다. 유리에 비친 그의 얼굴은 부드러웠다. "그 여자 손목 부채가 얼마였지?"

"삼억 팔천. 이자 포함하면 사억 넘겼을 겁니다. 선우 측 대납으로 정리됐습니다."

"부채 대납. 부지 제외." 강윤성이 손가락으로 유리를 톡, 두드렸다. "혼인의 대가로 재산상 이익을 수수했다. 그럼 그건 혼인이 아니라 거래야. 유언장은 '가정을 이룬 자'에게 프리미엄을 준다고 했지, 부동산 거래한 자한테 준다고 안 했어."

"입증이 쉽지 않습니다. 두 사람이 부인하면—"

"입증은 여자 쪽에서 나오게 만들면 돼."

강윤성이 돌아섰다. 책상 위에 놓인 두꺼운 서류 봉투를 집어 손안에서 무게를 가늠했다. 봉투 겉면에 '온공방 채권 양수도 계약서'라 인쇄돼 있었다.

"윤도가 대납한 그 부채, 채권 원본을 우리가 되사 왔어. 대납은 됐지만 채권 자체는 아직 살아 있거든. 명의만 옮기면 이 여자 목줄은 다시 내 손에 들어와."

문이 열렸다. 명서주가 하이힐 소리를 세련되게 죽이며 들어섰다. 크림색 정장, 흐트러짐 없는 미소.

"부르셨어요, 아주버님?"

강윤성이 봉투를 그녀 앞으로 밀었다.

"서온 씨 한번 만나줘요. 여자끼리 할 얘기가 있잖아. 이 결혼이 얼마나 위태로운지, 아주 부드럽게 알려주면 돼."

명서주가 봉투를 열어 서류를 훑었다. 입꼬리가 미세하게 올라갔다.

"공방을 미끼로 쓰라는 말씀이시네요."

"미끼라니. 배려라고 하자고." 강윤성이 웃었다. "그 여자, 남의 속을 잘 읽는다며. 그럼 자기 앞가림도 잘하겠지. 위험한 걸 보여주면 알아서 도망칠 거야."

명서주가 서류를 봉투에 도로 넣었다. 그 순간 두 사람 사이에 흐른 공기가 있었다. 겉으로는 아무 온기도 없는 상류사회의 미소였지만, 그 아래 흐르는 미열—같은 목적을 공유한 자들의, 은밀한 공모의 열기.

"그럼 오늘 다녀올게요." 명서주가 봉투를 핸드백에 넣으며 말했다. "저도 이 결혼, 빨리 정리되면 좋으니까요."

***

명서주는 예고 없이 왔다.

서온이 별채 작업실에서 아버지의 조각칼을 정리하던 오후였다. 굳었던 손이 그나마 돌아와, 미완성 목함을 다시 손에 쥐어보던 참이었다. 경첩도 자물쇠도 없이 열리지 않는 함. 온도조차 읽히지 않는, 강윤도와 똑같은 백지.

"작업실이 정말 예쁘네요."

명서주가 문가에 서 있었다. 향수 냄새가 톱밥 냄새를 밀어냈다.

서온은 목함을 선반에 내려놓았다. 방문객이 세 걸음 안으로 들어서자, 손끝을 타고 온도가 올라왔다.

서늘했다. 겉은 크림처럼 부드러운데, 안쪽은 얼음물에 담근 칼날 같은 서늘함. 적의였다. 잘 다듬어 광을 낸 적의.

"명서주 씨죠." 서온이 손을 앞치마에 문질렀다. "차라도 내드릴까요? 저희 집엔 믹스커피밖에 없는데."

"괜찮아요." 명서주가 선반의 목함을 눈으로 훑었다. "오래 있을 건 아니라서요."

그녀가 핸드백에서 봉투를 꺼내 작업대 위에 올렸다. '온공방 채권 양수도 계약서.'

"이게 뭔지 아세요?"

서온은 봉투를 보았다. 온도가 없었다. 종이는 감정이 없으니까. 하지만 그걸 내미는 명서주의 손끝에서는, 승리를 예감하는 자의 서늘한 즐거움이 흘러나왔다.

"공방 채권이네요." 서온이 담담히 말했다. "대납은 됐는데, 원본이 살아 있었나 봐요."

명서주의 미소가 아주 잠깐 흔들렸다. 이렇게 빨리 알아챌 줄 몰랐다는 듯이.

"똑똑하시네요. 그럼 이해도 빠르겠어요." 그녀가 목소리를 낮췄다. 배려하는 사람의 어조로. "서온 씨, 이 결혼 가짜인 거 저 알아요. 윤도 씨가 후계 조항 때문에 급하게 사람 하나 구한 거잖아요. 부채 대신 갚아주고, 서류상 아내 하나 사고."

서온은 앞치마 끈을 만졌다.

"그래서요?"

"이 채권이 아주버님 손에 있어요. 결혼이 거래였다는 게 밝혀지면 윤도 씨는 후계에서 탈락하고, 그럼 이 공방은—" 명서주가 봉투를 손끝으로 밀었다. "다시 경매로 넘어가요. 이번엔 도와줄 사람도 없이. 제가 알려주는 거예요, 서온 씨. 발 담그기 전에 빼시라고. 조용히 이혼하고 나가시면, 채권은 없던 일로 해드릴게요."

우아한 협박이었다. 배려의 포장지에 싼 칼.

서온은 봉투를 보지 않았다. 대신 명서주를 보았다. 그리고 손끝에 집중했다. 세 걸음 거리에서 흘러오는 온도의 결을.

서늘한 적의 아래—미열이 있었다. 죄책감이 아닌, 불안의 미열. 이 여자는 무언가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명서주 씨." 서온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지금 저한테 나가라고 하시는 거, 절 위해서예요, 아니면 본인을 위해서예요?"

"…무슨 뜻이에요?"

"이 결혼이 무산되면요." 서온이 한 걸음 다가섰다. 온도가 더 선명해졌다. "제일 다급한 게 저일 것 같으세요? 저는 공방 하나 잃으면 그만이에요. 다시 대패 잡고 밑바닥부터 시작하면 돼요. 근데 명서주 씨는요?"

명서주의 어깨가 굳었다.

"강윤도 씨가 후계에서 탈락하면, 명서주 씨가 그 자리 대신 노리는 혼사가 필요하잖아요. 근데 그건 강윤도 씨가 밀려나고 강윤성 씨가 올라야 성립하는 거고요. 강윤성 씨가 후계를 잡으면 명서주 씨 가문 위상이 서는 거고요. 지금 그렇게 다급하게 종이 한 장 들고 여기까지 온 거—그거 제가 잃을 게 많아서예요, 아니면 명서주 씨가 잃을 게 많아서예요?"

향수 냄새 사이로, 명서주의 서늘함이 흔들렸다. 얼음이 금 가는 소리. 미열이 확 솟았다. 들킨 자의 불안.

"제 손끝은요." 서온이 마지막을 눌렀다. "사람들이 뭘 두려워하는지 잘 알거든요. 명서주 씨, 지금 굉장히 초조하시네요. 부드럽게 웃고 계신데, 속은 얼음물이에요."

명서주가 봉투를 도로 낚아채듯 집었다. 미소가 벗겨진 얼굴은 한결 나이 들어 보였다.

"…독특한 사람이네요, 정말."

"칭찬으로 들을게요."

"오늘은 여기까지 할게요." 명서주가 문 쪽으로 돌아섰다. 하이힐 소리가 아까보다 급했다. "하지만 서온 씨. 채권은 여전히 아주버님 손에 있어요. 오늘 제 얘기, 잊지 마세요."

문이 닫혔다. 향수 냄새가 톱밥 냄새에 밀려 흩어졌다.

서온은 작업대에 손을 짚었다. 다리에 힘이 풀렸다. 되받아치긴 했지만, 손끝은 여전히 명서주의 서늘함을 앓고 있었다. 미열이 손목까지 올라와 지끈거렸다. 남의 온도를 읽는 대가. 반동. 요즘 그녀의 손은 하루도 성한 날이 없었다.

봉투는 사라졌지만 채권은 살아 있다. 강윤성의 손에. 이 결혼이 무너지면 공방은 다시 경매로 간다. 이번엔 강윤도의 대납도 없이.

서온은 굳은 손을 폈다 쥐었다.

강윤도에게 알려야 했다. 형이 채권을 되사 왔다고, 감사팀을 붙였다고, 이 결혼을 후계 탈락 사유로 만들려 한다고.

***

저녁, 서온은 별채를 나와 본채 서재로 향했다.

강윤도는 책상 위에 지분 관련 서류를 잔뜩 펼쳐놓고 있었다. 형이 조사를 붙였다는 걸 이미 아는 사람의 얼굴이었다. 그가 고개를 들었다.

"무슨 일 있었습니까."

서온은 입을 열려 했다. 명서주가 왔다고. 채권이 형 손에 있다고. 나 오늘 되받아쳤지만 위험한 상황이라고. 말은 목까지 올라왔다.

그런데 강윤도가 그녀를 보는 눈빛이, 어젯밤 그 뜨거운 온도를 떠올리게 했다.

이 사람의 진심을 확인하고 싶어지면—그의 마음이 뜨거워지고 그걸 내가 읽게 되면—내 손은 다시 탄다. 위험을 알리는 순간, 그가 나를 걱정하고, 그 걱정이 뜨거워지고, 나는 또 손을 잃는다.

서온은 입가를 끌어올렸다.

"별거 아니에요. 그냥… 저녁 뭐 먹나 물어보러 왔어요. 사장님 또 굶고 계실 것 같아서."

또였다. 또 농담으로 밀어냈다. 진심을 마주 보는 게 두려워서, 손이 상하는 게 무서워서, 정작 해야 할 말을 삼키고 우스갯소리 뒤에 숨었다.

강윤도가 미간을 좁혔다. "…밥."

"네, 밥. 사람이 밥은 먹고 형이랑 싸워야죠."

서온이 돌아서려는데, 강윤도가 일어섰다. 책상을 돌아 성큼 다가왔다. 그리고 그녀가 미처 손을 감추기 전에, 그 손을 잡았다.

크고 마른 손이 그녀의 손을 감쌌다. 온도는 없었다. 여전히 백지. 하지만 그의 엄지가 그녀의 굳은 손가락 마디를 눌렀을 때—접히지 않는 그 마디를 느꼈을 때—

강윤도의 표정이 굳었다.

"이 손."

그가 서온의 손가락을 하나하나 펴보았다. 가운뎃손가락이 반박자 늦게, 어색하게 펴졌다.

"언제부터 이랬어."

서온은 손을 빼려 했다. 그가 놓지 않았다.

"조각칼 쥐는 손이잖아. 굳어 있어. 언제부터 이랬느냐고."

존댓말이 벗겨진 목소리였다.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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