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목을 잡힌 순간, 하연서는 이미 다음 두 걸음을 계산하고 있었다.
"어이, 신입. 소매 걷어봐."
순찰 무사가 이죽거리며 팔을 당겼다. 나머지 셋이 반원을 그리며 다가왔다. 왼손목의 상처를 보이면 끝이다. 그날 밤, 학살자의 손목에 새겨져 있던 태산검문의 검 문양—그것과 대칭을 이루는 흉터가 하연서의 손목에 있었다. 검혼이 처음 몸을 태우고 지나간 자리.
"저기, 순찰 조장님."
하연서는 손목을 빼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반대쪽 손으로 품에서 목패를 꺼내 들었다. 서열전 승자에게 주어지는 외당 대시험 참가패.
"내일 대시험 참가자를 이 시각에 붙잡아두셨다가, 제가 못 나가면 곽동 사형이 뭐라고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그 사형이 순찰당 부당주랑 의형제라던데."
거짓말은 절반이었다. 곽동을 꺾은 건 사실이고, 곽동이 누구와 친한지는 몰랐다. 그러나 확신에 찬 목소리는 진실보다 무겁다. 조장의 손아귀에서 힘이 조금 빠졌다.
"…부당주?"
"확인해보셔도 됩니다. 다만 늦으면 조장님 이름으로 사유서를 올려야 할 텐데, 신참 하나 소매 걷어보겠다고요."
침묵이 흘렀다. 조장은 혀를 차며 손목을 놓았다.
"꺼져. 재수 없는 놈."
하연서는 고개를 숙이고 돌아섰다. 등을 보이는 순간까지 심장은 평소 박자를 유지했다. 죽은 자들과 오 년을 함께 살면, 산 자 넷쯤은 무섭지 않다. 골목을 돈 뒤에야 그는 왼손목을 소매 깊이 밀어 넣었다.
*
외당 대시험은 연무장 세 곳에서 사흘간 치러졌다.
수백 명의 제자가 조를 나눠 붙었고, 이기면 올라가고 지면 짐을 쌌다. 하연서는 첫날 여덟 판을 싸웠고, 여덟 판 모두 망자검을 쓰지 않았다. 검혼을 부르면 수명이 탄다. 진짜 싸움을 위해 아껴야 했다. 몸에 익은 패검문 기본 검로만으로도 외당 삼류·이류 무리는 넘칠 만큼 벅찼다.
"저 하연이라는 애, 뭐야. 검을 안 휘두르는데 다 이겨."
"막기만 하잖아. 상대가 지쳐서 자빠지는 거지."
수군거림이 둘째 날부터 이름으로 바뀌었다. 하연. 조용한 외당 제자. 검을 뽑는 시간보다 넣는 시간이 긴 자.
셋째 날 아침, 진유하가 만두 두 개를 들고 달려왔다.
"연아! 이거 먹어. 아침 안 먹었지? 넌 꼭 굶고 싸우더라. 그러다 쓰러진다니까 진짜."
"안 먹어도 돼."
"먹어. 내가 새벽에 부엌 아주머니한테 웃어드리고 얻은 거야. 하나는 내 거." 진유하는 벌써 자기 몫을 반쯤 삼키며 웃었다. "오늘 결승이지? 상대 누군지 들었어. 모용성이래."
하연서의 손이 만두를 받아 들었다. 온기가 손바닥에 닿았다. 이 순박한 얼굴은 도구로 쓰기에 아깝다—그는 언제나처럼 그렇게 분류하려 했다. 그런데 분류가 끝나기 전에 만두를 한 입 베어 물고 있었다.
"모용성, 너 이길 수 있지?"
"글쎄."
"이겨. 넌 이겨야 돼. 왜냐면…" 진유하가 목소리를 낮췄다. "저번에 걔가 뒤에서 그랬거든. 근본 없는 놈이 실력을 숨긴다고. 근데 근본이 뭐가 중요해. 지금 잘하면 되는 거지. 안 그래?"
근본. 하연서는 만두를 씹던 턱을 잠시 멈췄다.
*
결승 연무장에는 사람이 몰렸다.
모용성은 이미 중앙에 서 있었다. 검집을 세워 잡은 자세가 흐트러짐이 없었다. 태산검문 장로의 조카, 직계 촉망주. 그가 하연서를 위아래로 훑었다.
"드디어 정체를 보여주겠나."
"무슨 정체."
"여드레 동안 검 한 번 제대로 안 뽑았지. 남들은 네가 방어에 능하다고 하더군. 나는 아니라고 본다." 모용성이 검을 뽑았다. 정순한 내공이 검신을 타고 올라 은은한 검기를 세웠다. 절정 문턱의 실력이었다. 외당에서 이만한 자는 없다. "너는 강해서 안 뽑은 거야. 오늘은 뽑게 만들어주지."
"…허튼소리."
"시작!"
심판의 외침과 함께 모용성이 짓쳐들었다. 태산검문의 상승 검법, 태산압정. 위에서 아래로 내리누르는 검압이 하연서의 어깨를 겨눴다. 빨랐다. 곽동과는 차원이 달랐다.
하연서는 반보 물러서며 흘렸다. 검과 검이 스치며 불꽃이 튀었다. 한 합, 두 합, 세 합. 그는 여전히 패검문 기본 검로만 썼다. 그러나 모용성의 검압은 기본기로 흘리기엔 무거웠다. 열 합을 넘기자 팔이 저렸다.
'검혼을 불러야 하나.'
그 순간 관중석 위쪽, 지붕이 있는 참관대에 시선이 닿았다. 흰 도포를 입은 노인이 앉아 있었다. 얼굴은 온화했고 눈매는 학처럼 맑았다. 무림맹주 천공진인. 정의의 화신. 하연서는 그 얼굴을 오 년간 그림자로만 알아왔다. 각본을 쓴 손.
심장이 한 박자 뛰었다.
'저자 앞에서 검혼을 부르면 안 된다.'
검혼을 부르면 눈동자가 은빛으로 물들고 말투가 죽은 사형의 것으로 바뀐다. 패검문 절기가 그대로 드러난다. 저 노인이 그걸 못 알아볼 리 없다.
모용성의 검이 다시 내리찍혔다. 이번엔 검강의 편린이 실렸다. 어깨 살갗이 찢겨 피가 배어 나왔다.
"뽑아라! 왜 안 뽑아!"
모용성의 눈에 광기에 가까운 집착이 어렸다. 그는 이기려는 게 아니었다. 하연서의 진짜를 끄집어내려 했다. 자신이 옳았음을 증명하려고.
하연서는 물러서던 발을 멈췄다.
검혼을 부르지 않겠다. 대신 오 년간 죽은 자들의 검로를 지켜보며 몸에 새긴 것들, 검혼 없이도 손끝에 남은 것들을 쓴다. 사형들의 검이 아니라 그들을 보고 자란 자신의 검을.
그는 처음으로 검을 앞으로 내밀었다.
*
패검문 검법의 진수는 '흘림'이 아니라 '되돌림'에 있었다.
상대의 힘을 흘려버리지 않고, 그 힘의 길에 자기 검을 얹어 방향만 비튼다. 모용성의 태산압정이 아래로 내리꽂히는 순간, 하연서는 물러서지 않고 파고들었다. 검을 세워 상대 검면에 붙였다. 그리고 손목을 돌렸다.
무거운 검압이 옆으로 미끄러졌다. 모용성의 몸이 앞으로 딸려 나왔다. 자기가 실은 힘에 자기가 끌려온 것이다.
"뭐—"
하연서의 검 끝이 모용성의 목젖 앞 세 치에서 멈췄다.
연무장이 조용해졌다. 만두를 나눠 먹던 진유하가 입을 벌린 채 굳었다.
하연서는 검을 겨눈 채, 검혼도 검강도 없이, 오직 자기 손과 오 년의 시간만으로 절정 문턱의 직계 제자를 제압했다. 여기서 목을 그으면 승리가 확실해진다. 그러나 그는 검 끝을 아래로 살짝 내렸다.
"패배를 인정할 기회를 주지."
모용성의 자존심을 짓밟는 대신, 스스로 물러설 여지를 남긴 것이다. 계산이었다. 모용성을 완전히 부수면 장로 조카의 원한을 사고 이목이 집중된다. 명성은 필요하지만 원한은 부담이다.
그러나 모용성은 그 배려를 배려로 받지 않았다.
"…너, 봐준 거냐."
검을 겨눈 채 하연서는 대답하지 않았다.
"봐줬어. 네가 지금 나를 봐줬어." 모용성의 목소리가 떨렸다.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이 검법… 어디서 배운 거야. 태산검문에 이런 되돌림은 없어. 이건… 이건 사파 검로다."
관중석이 술렁였다. 하연서의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항복하나, 안 하나." 하연서가 검 끝을 다시 목젖으로 올렸다.
모용성이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검을 땅에 던졌다.
"…패배를 인정한다."
함성이 터졌다. 심판이 하연서의 손을 들어 올렸다.
"외당 대시험 우승자, 하연!"
*
"연아! 연아!!"
진유하가 사람들을 밀치고 뛰어들었다. 그러고는 하연서를 와락 끌어안았다.
"봤어! 나 다 봤어! 네가 이겼어! 진짜 이겼어!"
하연서의 몸이 굳었다. 산 자의 체온이 정면에서 안겨왔다. 오 년 만이었다. 이렇게 아무 계산 없이, 아무 이유 없이, 자기 일처럼 기뻐하며 안겨오는 사람은.
"모용성 그 자식 얼굴 봤냐? 근본 없는 놈이 어쩌고 하더니! 근본은 무슨! 야, 너 진짜… 진짜 대단하다. 나 눈물 날 뻔했어. 진짜로."
진유하는 정말로 눈가가 붉었다.
하연서는 손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랐다. 이 순박한 얼굴을 도구로 분류해두었는데, 도구가 자기 일처럼 우는 건 계산에 없었다. 가슴 한구석이 얼음판 갈라지듯 미세하게 금이 갔다. 그는 그 균열을 밀어내려 했다. 밀어내려는데, 잘 밀리지 않았다.
"…놔라. 사람들 본다."
"보라 그래! 우승자 친구인데!"
친구. 그 말에 하연서는 이 년 전 진유하가 건넸던 낡은 목검을 떠올렸다. 진짜 친구가 되고 싶다던 말. 그때는 흘려들었다. 지금은 흘려지지 않았다.
*
참관대에서 흰 도포의 노인이 천천히 일어섰다.
천공진인은 연무장 중앙의 소년을 오래 내려다보았다. 온화하던 눈매가 아주 조금, 학의 깃털이 접히듯 가늘어졌다.
'되돌림 검로. 힘을 흘리지 않고 되돌린다.'
삼십 년 전, 정사대전의 전장에서 그가 본 적 있는 검이었다. 패검문 검법의 진수. 이미 이 세상에서 흔적조차 지워버렸다고 믿었던 살기. 소년의 검에는 그것이 있었다. 검혼도 검강도 없이, 그저 몸에 새겨진 것으로.
곁에 선 수하가 고개를 숙였다.
"맹주님, 우승자에게 내당 견습 자격을 내리시겠습니까. 전례대로라면—"
"내리게." 천공진인의 목소리는 봄바람처럼 부드러웠다. "그리고 저 아이를 내 처소로 데려오게. 축하는 직접 해주고 싶군."
"예."
노인은 소매를 여미며 미소 지었다. 그 미소는 천하가 우러르는 정의의 화신의 미소였고, 동시에 오 년 전 각본을 완성했던 자의 미소였다.
*
내당 견습 자격 첩지가 하연서의 손에 쥐어졌을 때, 그는 목표에 한 걸음 다가섰음을 알았다.
내당. 장로원. 수뇌부. 장무극이 있는 곳. 그 위의 각본을 쓴 자가 있는 곳. 오 년을 벼려온 칼끝이 드디어 껍질 안으로 파고든다.
진유하가 첩지를 넘겨다보며 감탄했다.
"내당 견습이라니. 외당 우승해도 이건 몇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래. 너 진짜 출세한다, 연아."
"…그래."
그때 흰옷을 입은 시종이 다가와 하연서 앞에 공손히 섰다.
"우승자 하연 소협 되십니까. 맹주님께서 찾으십니다. 처소로 드시지요."
진유하의 눈이 접시만큼 커졌다.
"매… 맹주님이? 너를? 왜?"
하연서는 대답하지 않았다. 등줄기를 따라 오 년 만의 살기가 곤두섰다. 죽은 사형들의 목소리가 검집 안에서 웅웅거렸다. 저 노인이다. 각본을 쓴 손. 스승을 죽이라 명한 입.
그는 첩지를 소매에 넣고 발을 뗐다.
*
맹주의 처소는 향내가 은은했다.
천공진인은 창가에 앉아 차를 따르고 있었다. 소년이 들어서자 고개를 들었다. 그 얼굴에 어린 미소는 손자를 맞는 노인의 것처럼 자애로웠다.
"앉게. 우승을 축하하네. 외당에서 그런 검을 본 지가 오래되었어."
하연서는 무릎을 꿇고 예를 갖췄다. 심장은 얼음처럼 가라앉혀 두었다. 검집 안의 웅얼거림도 눌러 두었다.
"과분한 말씀입니다, 맹주님."
노인은 찻잔을 소년 앞으로 밀었다. 그리고 학처럼 맑은 눈으로 오래도록 하연서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온화한 침묵이 방 안을 채웠다. 향 연기가 두 사람 사이에서 천천히 피어올랐다.
이윽고 천공진인이, 여전히 미소를 머금은 채, 아주 부드럽게 물었다.
"그런데 자네— 그 검, 어디서 배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