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문이 닫힌 뒤에도 무진의 손끝은 풀리지 않았다.

넝쿨이 다시 제자리로 늘어지며 마당 입구를 가렸다. 제갈운이 남긴 문장이 빗물 고인 진창에 박힌 못처럼 명치를 눌렀다. 검가의 혈족이 살아 있다. 그자가 문을 열었고, 지금도 맹 고위 인사와 선이 닿아 있다.

"놔." 무진이 서린의 팔을 밀어냈다.

"놓기는." 서린이 도리어 팔에 힘을 줬다. "지금 네 다리로 서 있는 것도 내 덕이야. 봤어? 손등. 아까까진 팔뚝이더니 이제 팔꿈치까지 갔어. 저 잘난 놈한테 흘림수 한 번 보여주자고 몇 년을 태운 거냐고."

"살아 있대." 무진의 목소리가 낮았다. "문을 연 자가. 우리 사람이."

서린의 손이 멈췄다.

턱의 흉터가 빗물에 젖어 하얗게 도드라졌다. 그녀는 삼 년간 열아홉 명을 관제묘 뒷방에 숨겨 먹여온 여자였다. 그 열아홉이 왜 흩어졌는지, 누구 때문에 검 한 번 못 뽑고 죽었는지—그녀도 알고 싶었다. 그러나 지금 그녀가 붙든 건 진실이 아니라 무진의 팔이었다.

"그래서." 서린이 이를 악물었다. "이름도 안 알려주고 갔잖아. 값 치르라고. 그럼 우리가 먼저 찾으면 되지. 저 잘난 맹 나부랭이한테 손 벌리지 말고."

"찾을 데가 있어."

"어디."

"흑철련." 무진이 손등을 내려다봤다. 마른 살갗이 팔꿈치 안쪽까지 갈라져 있었다. "멸문의 밤, 병기 출처와 자금을 쥔 게 흑철련이라 했지. 습격조도 저쪽이 보냈어. 저들은 그날 누가 무엇을 사고팔았는지 장부를 갖고 있어. 제갈운도 거기서 산 거야."

서린이 그를 노려봤다. 반박하려다, 삼켰다. 대신 젖은 소맷자락으로 무진의 팔뚝을 감싸며 툭 뱉었다.

"혼자 갈 생각 하지 마. 흑철련 안면 트는 건 내 일이야. 넌 검이나 아껴."

---

흑철련의 서편 지단은 도성 밖 폐사찰을 창구로 썼다.

낮에는 향불 파는 노점이었고, 밤이면 뒷문으로 밀거래가 오갔다. 서린은 삼 년 동안 유민들 약값을 이곳에서 흥정해왔다. 문지기 사내가 그녀의 얼굴을 알아보고 눈짓하자, 두 사람은 향 연기가 자욱한 안뜰을 지나 지하로 내려갔다.

관을 열듯 삐걱대는 문 안쪽에, 장부를 산처럼 쌓아둔 노인이 앉아 있었다. 흑철련이 '기록쟁이'라 부르는 자였다. 그는 무진의 흰머리를 흘긋 보더니, 서린에게 말을 걸었다.

"약값은 지난달에 다 치렀을 텐데."

"오늘은 다른 거." 서린이 은자 주머니를 탁자에 올렸다. 관제묘 세간을 판 돈이었다. "삼 년 전 봄, 무천산 아래로 들어간 물건과 사람. 그날 밤 장부. 통째로."

노인의 손가락이 멈췄다.

"그건 값이 달라." 그가 주머니 무게를 손끝으로 가늠했다. "그리고 위험해. 그 밤 장부는 위에서 봉해뒀어. 맹 쪽에서 조용히 해달라고 값을 크게 쳤거든."

"맹 쪽 누가." 무진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노인이 그를 올려다봤다. 무진의 눈이 젊은데 머리는 세었다는 것을, 그제야 제대로 알아본 얼굴이었다.

"이름은 안 팔아. 목이 붙어 있어야 장사를 하지." 노인이 주머니를 다시 밀어냈다. "가."

서린이 뭐라 쏘아붙이려는데, 무진이 손바닥을 폈다. 도굴꾼의 검을 막다 그은 자상 위로, 오늘 다시 벤 상처가 겹쳐 있었다. 그는 상처를 노인 앞 등잔불에 비췄다.

"나는 무천검가 후계요."

노인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위패당에서 강림하는 자. 도굴꾼 여섯을 하나만 살려 보낸 자. 관제묘를 친 흑철련 습격조 일곱을 하나도 안 죽인 자." 무진의 목소리는 높지 않았다. "당신네 지단주에게 전해도 돼. 나는 값을 못 치르면 검으로 치르는 사람이라고. 다만 오늘은—" 그가 은자 주머니를 노인 쪽으로 다시 밀었다. "값을 치르러 왔소. 그 밤 장부. 이름은 필요 없어. 사고판 목록이면 충분해."

한참을 노인이 무진을 응시했다. 등잔 심지가 타들어가는 소리만 났다.

"이름을 안 산다면." 노인이 마침내 뒷벽 궤짝을 열었다. "목숨 두 개 값은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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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부는 소가죽으로 싼 두툼한 묶음이었다.

서린이 등잔을 당겨 왔다. 무진은 젖은 손으로 책장을 넘겼다. 삼 년 전 봄, 무천산 서편으로 흘러든 물목이 날짜별로 적혀 있었다. 화약, 쇠뇌살, 마비독—그날 밤 수백을 검 한 번 못 뽑고 쓰러뜨린 흉기의 출처였다.

무진의 손이 한 항목에서 멈췄다.

"이거." 그가 손톱으로 줄을 짚었다. "진법 파쇄용 부적. 봉인고 결계를 흩는 물건. 스물네 장. 멸문 사흘 전에 산 아래로 들어갔어."

"그게 뭐가 중요한데." 서린이 물었다.

무진은 대답 대신 품에서 접은 종이를 꺼냈다. 봉인고에서 무천려의 검혼을 강림시켜 읽어낸, 진법 해제 순서였다. 손목까지 살갗을 태워가며 기억한 도식. 그는 그것을 장부 옆에 나란히 폈다.

"봉인고 진법은 스물네 단계였어. 밖에서 부수면 순서가 뒤엉켜. 그런데 그 밤 진법은—" 무진의 목소리가 떨렸다. "순서대로 꺼져 있었어. 첫 단계부터 마지막까지. 안에 있는 사람이 하나씩 손으로 껐다는 뜻이야. 철문 걸쇠도 안쪽에서 젖혀져 있었고."

서린의 얼굴이 굳었다.

"부적 스물네 장." 무진이 두 종이를 번갈아 짚었다. "진법 단계 스물넷. 정확히 맞아. 이걸 산 자는 진법이 몇 단계인지 알았어. 몇 장이 필요한지 미리 셌다는 거야. 검가 밖의 누구도 그 숫자를 몰라. 이건—외부 침입이 아니야. 안에서, 순서를 아는 자가, 문을 열고 결계를 재로 만든 거야."

등잔불이 흔들렸다.

무진은 그 자리에서 세 가지를 하나로 꿰맞추고 있었다. 봉인고의 안쪽 걸쇠. 순서대로 꺼진 진법. 그리고 지금 손에 쥔, 개수까지 딱 맞는 매매 기록. 제갈운의 입에서 나온 '살아 있는 혈족'이라는 말이 세 물증의 정중앙에 내려앉았다.

"기록쟁이 노인." 무진이 고개를 들었다. "이 부적을 산 자. 이름은 안 사겠다 했지. 그럼 물목만 물어보지. 이 스물넷을 받은 자가, 검가 사람인가."

노인은 오래 침묵했다. 그러다 장부 맨 뒤, 검은 밀랍으로 봉한 한 장을 손끝으로 툭 쳤다.

"거기 값을 치른 자의 인장이 있어. 나는 못 뜯어. 위에서 봉한 거니까. 하지만—" 노인이 눈을 내리깔았다. "네가 뜯는 거야 내 알 바 아니지. 나는 봉한 채로 팔았을 뿐이고."

---

무진의 손끝이 밀랍 위에 얹혔다.

"진맥이 뛰네." 서린이 그의 손목을 흘긋 봤다. "관두자, 무진. 이건 뜯는 순간 되돌아가지 않아. 저 안에 네가 아는 얼굴이 있으면. 너 그거 견딜 수 있어?"

"견뎌야지."

"왜 너만 견뎌." 서린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왜 항상 너 혼자 다 견디려고 해. 열아홉이 산 아래서 숨 쉬고 있어. 그 사람들도 그날 밤 누굴 잃었어. 너만의 밤이 아니라고."

무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밀랍 아래 눌린 세 글자의 윤곽을, 이미 손끝으로 느끼고 있었다. 봉인의 두께 너머로 굳은 진실이 만져졌다. 명치 안쪽에서, 산 정상의 봉인검이 다시 한 번 실을 팽팽하게 당겼다. 강림도 하지 않았는데 그것이 울었다. 마치 이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이.

'검조.' 무진이 속으로 불렀다. '알고 있었지. 그날 밤 당신이 삼킨 이름. 무영—까지 말하다 성대를 붙잡았던 그 이름. 이 밑에 있는 거지.'

무천현은 침묵했다.

그 침묵이, 이번엔 긍정이었다.

무진은 손톱을 세웠다. 검은 밀랍을 긁었다. 삼 년간 굳은 인장이 부스러기로 떨어져 나갔다. 서린이 숨을 멈췄다. 노인은 고개를 돌렸다. 등잔불만이 세 글자 위로 천천히 형체를 드러냈다.

첫 획.

둘째 글자.

무진의 손톱 끝이, 마지막 글자에서 멈췄다.

무영천.

무진의 무릎이 꺾였다.

서린이 그를 붙들었으나 두 사람 다 바닥에 주저앉았다. 무진의 입에서 웃음인지 신음인지 모를 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 이름을 그는 알았다. 아주 잘 알았다.

멸문의 밤, 열두 살의 그를 검가 밖으로 내보낸 사람. "무진아, 급한 심부름이니 하룻밤만 성 아래 대장간에 다녀오너라." 그렇게 등을 떠밀어, 그를 살린 사람. 세상에 홀로 남은 그에게 훗날 사람을 보내 "나에게 오면 살길을 열어주마"라 전한 사람. 아버지의 사촌 동생. 방계의 어른. 숙부.

무영천.

"그럴 리가." 무진의 목소리가 부서졌다. "이 사람이 나를 살렸는데. 나를 밖으로 내보내서 나 혼자 살아남았는데."

그 문장을 말하는 순간, 무진은 다른 진실 하나를 함께 깨달았다. 등줄기가 얼음처럼 굳었다.

왜 하필 그날 밤, 자신만 성 밖에 있었는가.

우연이 아니었다. 문을 열 자는, 열 자신을 미리 치워두었다.

"내가—" 무진의 어깨가 떨렸다. "내가 살아남은 게, 저 사람이 문을 연 대가였어. 수백이 죽는 동안 나 하나만. 그럼 나는. 저 사람 손에 목숨을 빚진 채로, 삼 년을 저 사람을 원수라 부를 준비를 한 거야."

복수심과 죄책감이 그의 안에서 정면으로 부딪쳤다. 죽여야 할 원수가, 자신을 살린 은인이었다. 갚아야 할 빚이, 원한의 표적이었다. 그 두 감정은 서로를 상쇄하지 않고 서로를 물어뜯었다. 무진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손등의 마른 살갗이 뺨에 닿았다.

"차라리 내가 그날 죽었으면." 무진이 낮게 뱉었다. "나 하나 안 살렸으면, 이런 걸 아는 사람도 없었을 텐데."

서린의 손바닥이 그의 뺨을 후려쳤다.

찰싹, 하는 소리가 지하실에 울렸다. 노인이 흠칫 어깨를 움츠렸다.

"한 번만 더 그딴 소리 해봐." 서린의 눈에 물기가 번들거렸다. 그러나 목소리는 칼처럼 곧았다. "네가 그날 죽었으면 좋았다고? 그럼 관제묘 열아홉은 누굴 후계라고 부르며 삼 년을 버텼는데. 대장장이 영감이 왜 아직도 네 첫 검을 닦고 있는데. 내가 왜 성 밖에서 살아남은 죄로 네 옆에 붙어서 이 지랄을 하고 있는데."

"서린."

"들어." 그녀가 그의 멱살을 쥐었다. 무진의 흰머리가 흔들렸다. "진실을 알았어. 좋아. 무영천이 문을 열었어. 널 살렸어. 둘 다 사실이야. 그런데 그걸 갚는 방법이 왜 항상 네가 죽는 거야? 검혼 태워서, 수명 태워서, 그 인간 목 하나 따고 너도 같이 재가 되는 거? 그게 갚는 거야?"

무진의 눈이 흔들렸다.

"계율첩." 서린이 그의 품을 손가락으로 찔렀다. "내가 준 거. 거기 뭐라 쓰여 있어. 검은 함께 나눈다. 후계자는 혼자 짊어지지 않는다. 삼백 년 검가가 왜 그 문장을 첫 장에 박았겠어. 너 같은 놈이 나올 걸 알았으니까."

지하실이 조용해졌다.

무진은 서린이 쥔 멱살에 매달린 채, 오래 숨을 골랐다. 명치 안쪽 봉인검의 실이, 조금씩 느슨해졌다. 그를 삼키려 벼르던 어둠이 한 발 물러섰다. 서린의 손이 붙든 것은 그의 옷깃이었으나, 붙든 건 그의 목숨이었다.

"진실을 알아도." 서린이 목소리를 낮췄다. "너 혼자 죽는 걸로 갚을 순 없어. 그건 갚는 게 아니라 도망이야. 저 인간이 살린 목숨이면, 살아서 갚아. 알겠어?"

무진은 대답하지 못했다. 다만, 고개를 아주 작게 끄덕였다.

서린이 그제야 손을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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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이 폐사찰 뒷문을 나설 때, 하늘이 희붐하게 열리고 있었다.

무진은 밀랍을 긁어낸 그 장부 한 장을 접어 품에 넣었다. 손끝이 아직 떨렸으나, 무릎은 다시 그를 지탱했다. 무영천. 이제 이름이 있었다. 얼굴이 있었다. 열두 살의 자신을 안아 성문 밖으로 내보내던, 그 따뜻하던 손도.

"어디부터야." 서린이 물었다.

"제갈운이 말한 맹 고위 인사." 무진이 향 연기 걷힌 새벽 공기를 들이켰다. "무영천이 지금도 선이 닿아 있다는 그자. 무영천을 찾으려면 그 선을 먼저 잡아야 해."

그러나 무진이 미처 말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 봉인검이 왜 하필 그의 절망이 가장 깊을 때 우는가. 강림도 없이 명치를 당기던 그 실이, 방금 서린의 손이 그를 붙들지 않았다면 어디까지 팽팽해졌을까.

관제묘로 돌아가는 산길 초입에서, 무진은 걸음을 멈췄다.

"왜." 서린이 돌아봤다.

무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눈동자를 서린이 들여다봤다. 새벽 빛 속에서, 무진의 검은 눈동자 가장자리가—실핏줄처럼 붉게 물들어 있었다. 아주 옅게. 그러나 분명하게.

"무진." 서린의 목소리가 얼어붙었다. "너 눈이."

무진이 손을 들어 자신의 눈가를 만졌다.

명치 안쪽에서, 봉인검이 마지막으로 한 번, 길게 울었다.

그리고 삼 년 만에 처음으로, 그의 안에서 무천현이 아닌 다른 목소리가 속삭였다.

"너를 살리려 판 것이다."

무진의 손이, 서린의 소매를 붙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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