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 배신과 붕괴

법정의 형광등이 모두를 백색으로 바꾼다.

성모병원 윤리위원회 청문실. 박민준이 증인석에 앉는다. 서인호는 방청석 맨 뒤, 벽과 등이 맞닿은 자리에 있다. 아무도 그를 보지 않으려는 듯, 모두 박민준을 향해 몸을 틀었다.

이수현 위원장이 먼저 입을 연다.

"박민준 펠로우, 당신은 8월 15일 정수진 환자의 수술 의료기록에 이상을 발견하고 이를 보고했습니다.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십시오."

박민준은 손에 쥔 기록지를 펼친다. 손이 떨린다. 서인호는 그 떨림을 본다. 친구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그것이 무엇인지 안다. 두려움이 아니다. 죄책감이다.

"수술 기록상 서인호 펠로우는 정수진 환자의 심장에서 '신호'를 감지했다고 기술했습니다. 마취 후 8분 만에 신호 감지, 절개 부위 결정, 수술 개시. 그런데..."

박민준이 눈을 들어 서인호를 본다. 그 순간 시간이 멈춘다. 벽시계는 여전히 움직이고, 형광등은 윙윙거리지만, 둘 사이의 공기만 정지된다.

"마취 기록을 확인하면 마취제 주입 후 뇌파 안정화까지 12분이 걸렸습니다. 신호를 감지하기 위해서는 환자가 의식 상태에 있거나 뇌파가 특정 리듬을 유지해야 합니다. 8분 시점에는 그것이 불가능했습니다. 환자의 뇌는 여전히 마취제에 반응하는 과도기 상태였고, 심장 신호는 기계적 모니터링으로만 감지 가능한 수준이었습니다."

박민준의 목소리가 낮아진다. 거의 속삭이는 수준.

"펠로우 서인호는 신호를 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능력에 대한 확신, 또는 강박으로 인해 수술을 강행했습니다. 그리고 환자는 사망했습니다."

서인호의 귀에서 음성이 사라진다. 박민준의 입이 움직이는데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심장이 아직도 뛰고 있나? 손목의 맥박을 누르려다 멈춘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박민준이 다시 기록지를 들어올린다.

"8월 13일 윤리위 청문회에서 서인호 펠로우의 진술과 의료기록의 내용이 일치하지 않습니다. 신호 감지 시점, 의료적 판단 근거, 환자 상태 설명 모두에서 거짓이 있습니다."

이수현이 펜을 멈춘다.

"거짓 진술인가요?"

"네. 의료기록 위조와 거짓 진술이 있습니다."

박민준이 서인호를 다시 본다. 그 눈빛. 서인호는 그것을 읽을 수 있다. 자책. 죄책감. 그리고 무엇인가 더. 체념인가? 아니면 분노인가?

"나는 너를 살리려 했어."

박민준의 입이 움직인다. 그게 소리인가? 아니면 서인호의 뇌에서 직접 생겨나는 음성인가?

"당신은 정수진 환자와의 관계는 어떻게 되시나요?"

이수현의 질문이 들린다. 박민준이 대답한다.

"저는 그 환자를 담당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수술 전날 서인호 펠로우와 대화했습니다. 그는 불안해했습니다. 신호가 명확하지 않다고 했습니다. 저는 수술을 연기할 것을 권했습니다."

"하지만 수술은 진행됐다?"

"네. 진행됐습니다."

박민준이 고개를 떨어뜨린다. 그 순간, 청문실 뒤쪽에서 울음소리가 난다. 정수진의 유족이다. 어머니로 보이는 여성이 손수건으로 입을 막고 있다. 옆에 서 있는 남성, 아버지가 그녀의 어깨를 감싼다. 그들의 울음은 억제되지만, 그 절규는 청문실 전체를 진동시킨다.

이수현이 그들을 본다. 그리고 다시 박민준을 본다.

"증언 감사합니다."

---

청문회가 끝난 후, 복도.

서인호는 벽에 등을 기댄다. 사람들이 지나간다. 누구도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박민준이 다가온다. 거리는 2미터. 1미터. 0.5미터.

"넌 나를 죽였어."

서인호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박민준은 멈춘다.

"난 너를 살리려 했어."

"그 거짓말로?"

박민준이 입을 열었다 다시 닫는다. 증언대에서는 진실만 말해야 한다. 그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는 다르다. 여기서는 친구를 지켜야 한다. 그 둘 사이의 불가능한 거리.

"진실이 진실이야. 정수진 환자는... 이미 사망한 상태였어. 넌 그걸 알면서도..."

박민준이 손을 내민다. 서인호의 방향으로.

"아직 돌아올 수 있어. 아직."

서인호는 그 손을 본다. 따뜻할까? 차가울까? 손가락이 몇 개일까?

"증언하면서 계속 울었어. 넌 못 본 거야. 넌 이미 나를 보지 않고 있어."

"그게 아니야. 난..."

박민준의 목소리가 흔들린다. 울음이 목에 걸려 있다. 그는 증언대에서 이미 모든 눈물을 흘렸다. 이제 남은 것은 공허함뿐이다.

"넌 증언대에서 진실을 말했어. 그게 맞아. 하지만..."

서인호가 손을 내밀었던 박민준의 손을 밀어낸다. 손가락이 닿는 순간, 온기가 전해진다. 그것이 박민준의 손인지, 자신의 손인지 구분할 수 없지만, 그 온기는 분명히 살아 있는 무언가의 증거다. 그리고 서인호는 그것을 거부한다.

"넌 나를 버렸어."

박민준이 물러난다. 그 뒤로 정수진의 유족이 지나간다. 어머니는 여전히 울고 있다. 아버지는 그녀를 안고 있다. 그들의 눈이 서인호를 스친다. 증오가 아니라 무언가 더 깊은 것. 이해할 수 없는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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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3시, 성모병원 대회의실.

최태성 과장이 기자들 앞에 선다. 마이크 앞에 선다. 카메라 플래시가 터진다.

"저는 명확히 하고 싶습니다. 펠로우 서인호의 비의료적 행위는 성모병원의 결정과 무관합니다. 병원은 의료윤리를 최우선으로 하며, 부적절한 진료 행위에 대해서는 엄격한 조치를 취할 것입니다."

최태성의 얼굴은 심각하다. 한 명의 기자가 손을 든다.

"과장님은 서인호 펠로우와 어떤 관계였나요?"

"펠로우는 제 지도를 받는 후배입니다. 하지만 개인의 윤리적 결함까지 감시할 수는 없습니다."

지도를 받는. 그 말이 핵심이다. 책임은 펠로우에게 있고, 자신은 피해자 취급이다.

또 다른 기자가 손을 든다.

"서인호 펠로우가 '검은 실'을 본다는 것은 사실인가요?"

"의료적 근거 없는 주장입니다. 정신과 의사의 평가가 필요해 보입니다."

정신과. 그 단어로 모든 것이 끝난다. 서인호는 더 이상 의사가 아니라 환자가 된다.

기자 중 한 명이 추가 질문을 던진다.

"최태성 과장님과 건설회사 회장 서정환 씨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다는 제보가 들어왔는데요?"

최태성의 얼굴이 경직된다.

"그건... 의료 사건과 무관한 개인적 관계입니다. 더 이상의 질문은 받지 않겠습니다."

그는 마이크에서 물러난다. 카메라는 계속 플래시를 터뜨린다.

---

같은 시간, 강남 빌딩 33층.

건설회사 회장실. 서정환이 휴대폰을 내려놓는다. 비서가 들어온다.

"회장님, 기자들이..."

"아무것도 말하지 마. 성명 하나 내. '나는 서인호 펠로우와 어떤 공모도 없었으며, 의료 전문가의 판단만을 믿는다'고."

"예, 회장님."

서정환은 창밖을 본다. 서울 하늘. 구름이 몰려온다.

"그리고 그 펠로우... 요즘 어디서 지내나?"

"강남구 역삼동 오피스텔로 파악됩니다."

"그렇군. 혹시 모르니까... 계속 지켜봐. 그가 어디로 가든."

비서가 나간 후, 서정환은 노트북을 켠다. 화면에는 건설 계획서가 떠 있지만, 그의 눈은 다른 곳을 향해 있다. 최태성과의 메시지 기록. 그 안에는 '신논현동 지하 시설', '펠로우 격리', '최종 처리'라는 단어들이 있다.

계획이 진행되고 있다. 서인호를 그곳으로 유인하고, 그곳에서 모든 증거를 없애려는 계획. 최태성은 자신의 지위를 보호하기 위해, 서정환은 자신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 손을 잡았다. 그리고 서인호는 그것을 깨닫지 못할 것이다. 아직은.

서정환은 휴대폰을 집어든다. 알 수 없는 번호로 전화를 건다. 수신음이 울린다.

"준비됐나?"

"예. 신논현동 B-1. 밤 2시. 그가 올 거예요."

"확실해?"

"네. 그의 약점을 알고 있으니까요. 죽음을 봤다는 그 환상. 그리고 자신이 환자를 살릴 수 있다는 확신. 우린 그것을 미끼로 쓸 겁니다."

"좋아. 그리고 그 이후는?"

"모든 증거가 사라질 겁니다. 그 펠로우도 함께."

전화가 끊긴다.

---

저녁 6시 30분, 서인호의 원룸.

반지하 10평. 창문은 눈높이에 있고, 밖으로는 사람들의 다리만 보인다. 걷는 다리. 달리는 다리. 멈춰선 다리. 모두 살아 있는 다리들.

서인호는 욕실 거울을 본다.

자신의 얼굴이 거기 있다. 눈. 코. 입. 모두 있다. 그런데 가슴을 보면?

셔츠를 열면, 가슴팍이 검게 물들어 있다. 검은 실들이 심장을 감싸고 있다. 그 실들이 한 가닥씩 끊어지고 있다. 끊어질 때마다 가슴이 쥐어진다.

얼마나 남았나? 3가닥? 2가닥? 1가닥?

서인호는 거울에서 눈을 돌린다. 손이 떨린다. 이것은 환각이다. 서인호는 그것을 안다. 하지만 아는 것과 벗어나는 것은 다르다.

욕실의 온도가 떨어진다. 숨을 쉬면 입김이 하얀 연기가 되어 떠오른다. 발이 바닥에 닿아 있지만, 마치 떠 있는 것 같은 감각.

서인호는 욕실을 나간다. 침대에 누운다. 눈을 감는다.

휴대폰이 울린다.

알 수 없는 번호. 화면이 깨진 듯 뒷자리가 보이지 않는다.

"여보세요?"

"서인호 펠로우?"

목소리는 중성적이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 수 없다.

"네."

"당신을 찾고 있던 사람이 있습니다."

"누구?"

"당신만이 할 수 있는 환자입니다. 심장이... 매우 특이한 상태입니다."

서인호의 호흡이 빨라진다.

"어디?"

"강남구 신논현동. 비공식 수술실입니다. 밤 2시. 당신은... 당신만이 그 환자를 살릴 수 있습니다."

"왜 나한테?"

"당신은 죽음을 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이 환자는 죽음 속에 있습니다. 당신의 능력이 필요합니다."

"누구세요?"

"시간이 없습니다. 강남구 신논현동. 기억하세요."

전화가 끊긴다.

서인호는 휴대폰을 내려놓는다. 손이 더 이상 떨리지 않는다. 가슴의 검은 실도 멈춰 있다. 마지막 한 가닥만 남아 있고, 그것도 끊어질 준비를 하고 있다.

그 목소리. 서정환이었나? 최태성이었나? 아니면 누군가 다른 사람이었나?

서인호는 옷을 입는다. 셔츠. 바지. 신발. 그 위에 긴 코트를 입는다. 외출용 가방을 든다.

거울을 다시 본다. 이번엔 거울이 깨져 있다. 아니다. 자신이 거울을 주먹으로 쳤다. 손가락이 깨진다. 피가 흐른다. 빨간 피. 따뜻한 피. 살아 있는 피.

그것도 곧 사라질 것이다.

---

한편, 성모병원 지하 3층 기록실.

이수현은 의료기록을 펼친다. 첫 번째 환자, 이준영, 62세 남성, 급성 심근경색, 입원 후 7분 만에 사망.

기록에는 "입원 시 이미 심정지 상태. 심폐소생술 30분 진행 후 사망 선언"이라고 적혀 있다.

이수현은 부검 기록을 확인한다. 다른 폴더를 연다.

"심근 손상 없음. 관상동맥 협착 없음. 심장 조직 모두 정상."

정상인데 사망했다? 그건 말이 안 된다.

이수현은 X-ray 사진을 들어올린다. 빛에 비춰본다. 화면에 흐릿한 영상이 떠오른다. 폐, 늑골, 척추. 모두 정상적으로 보인다.

이수현의 손이 떨린다. 의료기록과 부검 결과가 맞지 않는다. 이것은 의료 기록상 불가능한 상태다.

그렇다면 의료기록이 거짓이라는 뜻인가? 아니면 부검 결과가 거짓인가?

이수현은 다른 환자들의 기록을 검색한다. 정수진, 박준호, 김은미. 모두 서인호가 수술한 환자들이다. 모두 사망했다.

그리고 모두 의료기록과 부검 결과가 불일치한다.

이수현은 기록지에 메모를 남긴다. 손이 계속 떨린다.

"의료기록 재검토 필요. 첫 번째 환자 사망 원인 불명. 서인호 펠로우의 초기 진술과 의료기록 불일치. 부검 결과와의 모순 확인."

그 순간, 이수현은 무언가를 깨닫는다.

박민준의 증언은 명확했다. 마취 기록 12분 vs 신호 감지 8분. 불가능한 시점. 따라서 서인호는 거짓말을 했다. 신호를 보지 못했다.

하지만 부검 기록은 다른 이야기를 한다.

첫 번째 환자는 심근 손상이 없다. 관상동맥 협착도 없다. 그렇다면 왜 사망했는가? 의료기록상 "입원 시 이미 심정지 상태"라고 적혀 있지만, 그렇다면 왜 수술을 진행했는가?

이수현은 서인호의 초기 진술을 다시 읽는다.

"환자가 이미 사망한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신호를 감지했습니다."

그 말이 거짓이라고 박민준이 증명했다. 신호를 감지할 수 없었다. 마취 기록이 그것을 증명한다.

그렇다면... 서인호가 본 것은 무엇인가?

이수현은 천천히 깨닫는다. 서인호가 거짓말을 한 게 아니라면? 서인호가 정말로 무언가를 본 것이라면?

환자가 이미 죽어 있었고, 서인호가 본 신호는 자신의 죽음에 대한 예감이었을 수도 있다. 아니면 더 이상한 무언가.

이수현은 노트북을 닫는다. 손이 멈춘다. 펜이 멈춘다. 심장이 멈춘다.

지하의 형광등이 하나 깜빡인다.

---

밤 11시 30분, 강남구 신논현동.

서인호는 거리를 헤맨다. 건물 주소를 찾을 수 없다. GPS도 작동하지 않는다.

그 순간, 문이 열린다. 어두운 입구. 계단이 내려간다.

"오신다고 들었습니다."

목소리가 위에서 난다. 서인호가 고개를 들면, 그곳에는 아무도 없다. 그저 어둠만 있다.

"환자는?"

"아래입니다."

서인호는 계단을 내려간다. 한 발, 또 한 발. 계단이 끝나지 않는다. 내려갈수록 위층의 빛이 더욱 멀어진다. 공기가 차가워진다.

마지막 발걸음을 내디디는 순간, 밝은 불이 켜진다.

그것은 수술실이다. 수술대 위에 누군가 누워 있다. 얼굴은 수술포로 가려져 있다.

"수술해 주시겠습니까?"

"환자가 누구?"

"당신이 알아야 할 사람입니다."

서인호가 수술포를 들어올린다.

얼굴이 드러난다.

그것은 자신이다.

---

서인호의 눈이 뜨인다.

원룸의 천장. 반지하이므로 천장이 매우 낮다.

꿈이었나? 아니면 또 다른 현실인가?

온도를 확인한다. 손가락이 따뜻하다. 중력을 확인한다. 몸이 침대에 눌려 있다. 통증을 확인한다. 주먹을 쥐었을 때의 손가락 통증이 남아 있다. 이것은 현실이다.

휴대폰을 든다. 4시 23분. 아침도 아니고 밤도 아닌 시간.

메시지가 있다.

[박민준: "정수진 유족이 고소장을 냈어. 너를 고소했어. 그리고 난 증언했어. 미안해. 진짜 미안해. 하지만 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어. 환자들을 위해서."]

[최태성: "펠로우 계약 해지. 행정 처리 예정. 변호사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

[서정환: "흥미로운 밤 되길 바란다."]

그리고 마지막 메시지. 발신자 없음.

[알 수 없는 번호: "강남구 신논현동 B-1. 밤 2시. 마지막 기회입니다."]

서인호는 가슴을 본다. 셔츠를 열면, 검은 실이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대신, 가슴팍에 글씨가 적혀 있다.

손글씨. 자신의 글씨.

"나는 죽음을 봤다. 나는 죽음을 막았다. 하지만 난 실패했다. 이제 넌 죽음이 돼야 한다."

서인호는 일어난다. 옷을 입는다. 신발을 신는다. 거울을 보지 않는다.

현관문을 열고 나간다.

밤의 강남. 불이 켜진 건물들. 모두가 자고 있는 시간인데, 누군가는 깨어 있다. 서인호처럼.

그는 걷는다. 목적지를 향해. 신논현동으로. 함정으로.

가슴의 마지막 검은 실이 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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