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첫 번째 죽음
수술실의 조명이 정수진의 가슴 위에서 하얀 빛을 쏟아냈다. 51세 여성, 심근경색 진단. 서인호는 절개선을 따라 손을 움직였다.
검은 실이 보이지 않았다.
응급실 모니터에서도, 진단 영상에서도, 환자의 심장이 드러난 이 순간에도 어디에도 없었다. 그런데도 손이 움직였다. 메스가 절개면을 깊게 파고들었다. 환자의 심장이 드러났다. 여전히 검은 실은 없었다.
"펠로우, 환자 상태 악화합니다. 심박수 급상승, 혈압 저하."
간호사 김은지의 목소리가 떨렸다. 서인호는 듣지 않았다. 검은 실이 없다는 것은 죽음이 정해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자신이 그것을 막을 수 있다.
손가락이 투명해졌다.
메스를 잡은 손가락이 수술 조명 속에서 반투명한 유령처럼 떨렸다.
"서인호, 멈춰야 해."
박민준의 목소리가 수술실의 벽을 때렸다. 마취과 의사로서 환자의 생체 신호 모니터를 지켜보고 있던 그는 같은 세대의 펠로우였다.
"계속해."
서인호가 대답했다. 자신의 목소리가 아닌 것 같았다. 누군가 다른 존재가 입을 통해 말하는 느낌이었다. 메스가 다시 움직였다. 절개면이 깊어졌다. 환자의 심장이 더욱 노출되었다.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서인호! 멈춰! 환자가 죽어!"
박민준이 외쳤다. 절박함이 그의 목소리를 갈라놨다. 서인호는 손을 멈추지 않았다. 손가락이 계속 투명해졌다. 손목까지 도달했다.
환자의 모니터 음파가 평탄해졌다.
일직선. 심실세동 같은 불규칙함도 없이, 그냥 평탄했다.
"심정지."
누군가가 말했다.
"에피네프린 1mg IV."
"가슴 압박 시작합니다."
수술실의 리듬이 바뀌었다. 응급 상황으로 전환되는 그 특유한 긴장감. 서인호는 여전히 절개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손에서 코피가 떨어졌다. 한 방울, 두 방울. 환자의 심장 위에.
"서인호, 물러나."
박민준이 다시 말했다. 이번에는 명령조였다.
"이 환자는… 이미."
서인호가 손을 놓지 않았다. 메스를 다시 들었다. 검은 실이 보이지 않으면 길을 알 수 없다. 그런데 손이 알고 있었다. 손이 움직이고 있었다. 누군가의 손이, 자신의 손가락을 조종하고 있었다.
"서인호!"
박민준이 직접 절개 부위 위에 손을 얹으려 했다. 그 순간 서인호가 비명을 질렀다.
"안 돼! 안 돼!"
수술실이 정지했다. 모두가 펠로우 서인호를 바라봤다. 침착하기만 했던 그 의사가, 처음으로 목이 터져라 외치고 있었다.
"안 돼, 안 돼, 안 돼!"
그의 목소리는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환자의 심장이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30분의 심폐소생술 끝에, 의료팀은 공식적으로 사망을 선언했다.
오전 2시 47분.
정수진은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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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로우실은 침묵으로 가득했다. 서인호는 한 모서리에 앉아 있었다. 손을 보고 있었다. 투명해진 손가락들이 천천히 원래 색을 되찾고 있었다. 흰색에서 연분홍으로, 다시 살색으로. 마치 사진이 현상되는 것처럼.
박민준이 들어왔다. 손에는 의료기록지를 들고 있었다. 그는 침대 맞은편에 앉지 않았다. 문 옆에 서 있었다.
"기록을 남겨야 한다."
박민준이 말했다.
"뭘."
서인호가 답했다.
"정수진 환자의 사망 원인. 의료 판단의 오류. 펠로우 서인호의 비의료적 판단에 의한 수술 강행. 환자의 상태 악화 후에도 중단하지 않은 것. 이 모든 것."
박민준이 펜을 들었다. 손이 떨렸다. 펜촉이 종이에 닿았다. 글씨가 나타났다.
서인호가 일어섰다. 천천히, 마치 누군가 다른 존재가 그의 몸을 조종하는 것처럼. 그는 박민준을 바라봤다.
"넌 나를 배신했어."
박민준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분노의 눈물이 아니었다. 절망의 눈물이었다. 그는 의료기록지를 펠로우실의 책상 위에 놓았다. 글씨가 또렷했다.
"나는 환자를 위해 하는 거야."
박민준이 말했다.
"그리고 넌 넘어가고 있어."
서인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의 눈은 자신의 손을 보고 있었다. 다시 투명해지기 시작한 손가락들을. 그것이 능력의 부작용인지, 정신분열의 신호인지, 자신의 죽음을 알리는 것인지—그 구분이 점점 흐려지고 있었다. 박민준의 배신도, 환자의 죽음도 이제 중요하지 않았다. 유일하게 남은 것은 자신이 소멸해가고 있다는 확신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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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재훈 원장의 사무실은 새벽 4시에도 불이 켜져 있었다. 서인호는 의자에 앉혀 있었다. 원장 앞에. 그 거대한 책상 너머로.
"이 사건은 없었던 일이 될 거야."
노재훈이 말했다.
"응급 상황에서의 의료 판단 오류는 흔하다. 특히 펠로우 수준에서는. 환자 유족에게 합의금을 제시하고, 의료 사고 보험으로 처리한다. 의무기록은 수정되지 않겠지만, 공식적인 문제 제기는 없을 것이다."
"왜 그러십니까."
서인호가 물었다.
"넌 성모병원의 자산이야. 지난 3개월간 너는 5건의 수술을 성공시켰다. 5건. 그 중 몇 건은 다른 의사들이라면 절대 시도하지 않았을 케이스들이다. 넌 기적을 일으키는 의사다. 우리가 그걸 포기할 리 없다."
원장이 서인호를 바라봤다. 그 시선 속에는 의료 윤리도, 환자에 대한 책임도 없었다. 단지 경제적 가치만 있었다.
"넌 계속 수술을 할 거야. 그리고 우리는 그걸 보호할 거야. 그게 우리 둘의 관계다."
"만약 거절하면?"
서인호가 물었다.
"그럼 너는 의료 사고 책임자가 된다. 환자 유족의 고소. 의료 감정 신청. 경찰 조사. 모든 게 너 혼자의 책임이 된다. 그리고 다른 환자들은? 넌 더 이상 펠로우 자격이 없을 것이다."
원장이 앞으로 몸을 기울였다.
"선택은 너의 것이지만, 현명하기를 바란다."
서인호는 침묵으로 응답했다. 그것이 수용이었는지 거부였는지, 아니면 단순한 무관심이었는지 원장은 알 수 없었다. 서인호의 눈은 자신의 손을 보고 있었다. 손가락이 다시 투명해지고 있었다. 능력이 아니라 다른 무언가가 자신의 신체를 갉아먹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이미 너무 늦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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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위원회 간사 이수현은 의료기록실에서 밤을 지새웠다. 책상 위에는 서인호의 모든 수술 기록이 펼쳐져 있었다. 첫 번째 환자부터 다섯 번째 환자까지. 날짜, 시간, 진단, 결과.
그의 손가락이 첫 번째 환자의 기록에서 멈췄다.
이준영. 62세 남성. 심근경색. 사망 시간: 오전 1시 22분.
응급실 의료진 기록을 확인했다. 그 시간대 응급실 당직 의사: 박민준. 간호사: 김은지. 펠로우: 서인호.
심근경색 진단을 받은 환자가 7분 만에 사망한다? 응급실에서? 응급실에는 제세동기가 있다. 심폐소생술 팀이 있다. 7분은 너무 짧다.
간호 기록을 읽었다. '펠로우 서인호 선생님께 환자 상태 보고.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심폐소생술 중단.'
약물 투여 기록: '에피네프린 1회 투여 후 중단.'
1회? 심근경색 환자의 심정지에 에피네프린을 1회만 투여하고 중단? 그것도 펠로우의 지시로?
이수현이 응급실 담당자를 호출했다. 새벽 5시, 응급실은 여전히 분주했다.
"이준영 환자의 사망 당시 상황이 기록되어 있나?"
이수현이 물었다.
"그 환자요? 입원하자마자 상태가 급격히 악화됐고, 펠로우 서인호 선생님이 응급 판단을 내렸습니다."
"어떤 판단을?"
"더 이상 소생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하셨어요. 그래서 저희는 기록을 마무리했습니다."
이수현의 눈이 좁혀졌다. 심근경색 환자가 입원 직후 소생 불가능 판정? 응급실에서? 그것도 펠로우의 판단만으로?
의료 시스템에 접근했다. 입원 당시 이준영의 심전도 수치, 트로포닌 수치, 혈압, 맥박. 모두 심근경색을 가리키고 있었다. 하지만 그 수치들이 정말 일관성이 있는가?
입원 시 심전도: ST 상승 패턴 명확. 트로포닌: 3.2 ng/mL (정상: 0.04 이하). 혈압: 85/52. 맥박: 142.
이것은 심근경색 맞다. 하지만 그 7분 동안 서인호는 무엇을 했는가? 왜 소생을 시도하지 않았는가?
응급실 CCTV 기록을 요청했다. 그 시간대의 영상. 하지만 응급실 CCTV는 환자 프라이버시 보호를 이유로 특정 구간이 흐릿하게 처리되어 있었다. 정확히 서인호가 환자를 본 시간대가.
이수현은 휴대폰을 들었다. 하지만 그 전에, 한 가지 더 확인해야 할 것이 있었다. 서인호의 근무 기록. 그 날 밤 응급실에서 대기했던 시간. 그리고 이준영이 사망한 정확한 시간.
일치했다.
너무나 정확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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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옥상. 새벽 6시. 하늘이 어두운 파란색에서 회색으로 변하고 있었다. 서인호는 난간에 기대어 섰다. 손에는 휴대폰이 있었다. 윤리위 소환 통보. 오늘 오전 10시. 윤리위원회에 출석할 것.
그의 눈이 흐려졌다. 도시의 불빛들이 검은 실로 변했다. 수천 개, 수만 개의 검은 실들이 도시 전체를 덮고 있었다. 빌딩마다, 골목마다, 차 안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가슴마다.
그리고 자신의 가슴에도.
서인호가 손을 내려다봤다. 손가락이 투명해지고 있었다. 이번에는 멈추지 않고 팔 전체로 확산되고 있었다. 팔꿈치를 넘어 어깨까지. 투명한 유령 같은 몸이 되어가고 있었다.
환청이 들렸다.
'계속해.'
누군가의 목소리였다. 자신의 목소리가 아닌. 그 목소리는 자신의 내부에서, 가슴 깊은 곳에서 울려 나오고 있었다.
'계속 봐야 해. 모두를 봐야 해. 모두를 막아야 해.'
"막을 수 없어."
서인호가 중얼거렸다.
'그럼 넌 죽게 될 거야. 모두가 죽을 때까지 계속 봐야 하고, 계속 막아야 하고, 계속 죽어야 해.'
"난… 이미 죽고 있어."
서인호가 난간에 올라탔다. 발 아래는 6층 높이의 추락. 아래로는 병원 주차장과 응급차가 드나드는 입구가 보였다.
그의 몸이 기울어졌다. 투명한 팔이 바람에 흔들렸다. 그는 자신이 정말 죽어가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이 모든 것이 자신의 정신 속에서 벌어지는 환각인지 알 수 없었다. 그 구분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어느 쪽이든 그는 사라지고 있었다.
"Seo In-ho."
목소리가 들렸다. 뒤에서. 서인호가 고개를 돌렸다. 이수현 위원장이 옥상 문을 통해 들어오고 있었다.
"내려와."
이수현이 말했다.
"당신은… 뭘 아세요?"
서인호가 물었다. 난간 위에서.
"충분히 많은 것을."
이수현이 한 발 한 발 천천히 다가왔다.
"그리고 당신도 알아야 할 것들이 있다. 당신의 첫 환자에 대해서. 이준영에 대해서."
서인호의 몸이 경직되었다.
"당신이 본 검은 실은 정말 무엇이었는가. 그것이 정말 당신의 능력이었는가."
이수현이 한 걸음 더 다가왔다.
"아니면 당신 자신의 죽음을 보고 있었는가."
서인호의 손가락이 떨렸다. 투명한 손가락이. 그 손가락이 이제 완전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손목부터 팔까지. 그의 몸이 점점 보이지 않게 되고 있었다.
"내려와, 서인호."
이수현이 손을 내밀었다.
서인호는 그 손을 보았다. 하지만 자신의 손을 내밀 수 없었다. 투명해진 손가락들이 공기처럼 사라졌기 때문이다. 난간 위에 서 있는 그의 몸도 점점 희미해지고 있었다. 마치 아침 안개처럼. 마치 애초에 없었던 것처럼.
"당신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이수현이 말했다.
"정말로, 들어야 한다. 이준영은 정말 심근경색으로 죽었는가? 당신이 본 그 검은 실은 그의 죽음이었는가, 아니면 당신의 죽음이었는가? 그리고 왜 당신은 그 7분 동안 그를 살리려 하지 않았는가?"
서인호의 몸이 완전히 투명해졌다. 하지만 이수현은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의 숨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숨소리는 살아 있는 것의 숨소리였다.
"청문회에서 모든 것을 말해야 한다."
이수현이 말했다.
"당신이 정말 죽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무언가가 당신을 죽이고 있는 것인지. 그 구분을 명확히 해야 한다. 당신 자신도 그 구분을 못 하고 있지 않은가?"
투명한 공간에서 서인호의 숨이 끊겼다. 이수현의 말이 정확했다. 그는 자신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능력인지 정신분열인지, 죽음인지 살음인지. 그 모든 것이 뒤섞여 있었다.
"청문회에서 말해야 한다."
이수현이 다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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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위원회 소집 긴급 통보가 전 의료진에게 발송된 것은 오전 8시였다. 오전 10시, 윤리위 회의실에서 청문회를 개최한다. 대상: 펠로우 서인호. 혐의: 의료윤리 위반, 환자 안전 무시, 비의료적 판단에 의한 환자 사망.
그리고 추가 혐의 한 가지.
첫 번째 환자 이준영의 사망 원인 재검토. 그 사망이 정말 자연사인가, 아니면 다른 무언가인가.
노재훈 원장은 자신의 사무실에서 이 소식을 받았다. 그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서인호를 보호하겠다던 계약이 이미 무너지고 있었다. 이수현은 그를 거치지 않고 직접 총장실로 보고했다.
최태성 과장은 휴대폰을 들었다. 서인호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아무도 받지 않았다. 펠로우실도 비어 있었다. 응급실도. 수술실도. 서인호는 어디에도 없었다.
박민준은 의료기록실에서 자신이 기록한 문장을 다시 읽고 있었다. '펠로우 서인호의 비의료적 판단에 의한 환자 사망.' 그 문장이 이제 그의 우호자를 구원하는 증거가 되었다. 그는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병원 옥상에는 아무도 없었다.
단지 난간 위에 떨어진 한 권의 의료 기록지가 있을 뿐이었다. 그 위에는 작은 글씨로 무언가가 적혀 있었다.
'첫 번째 환자부터 다시 확인해야 한다. 이준영은 정말 심근경색으로 죽었는가? 당신이 본 검은 실이 정말 죽음이었다면, 왜 나는 그것을 막지 않았는가?'
누구의 필적인지 알 수 없는 그 글씨를 이수현이 주워 들었을 때, 그는 알았다. 이것은 끝이 아니라는 것을. 진짜 질문은 지금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그리고 서인호의 투명함이 무엇인지, 그것이 능력의 부작용인지 죽음의 신호인지, 아니면 정신분열의 환각인지, 심지어 그 모든 것이 동시에 진행 중인 것은 아닌지를 밝혀야 한다는 것을.
청문회는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