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가락이 투명해졌다
아침 6시 45분, 응급실 준비실. 서인호는 자신의 손을 마주 보고 있었다. 왼손 검지부터 시작된 투명화는 이제 손가락 전체를 잠식했다. 피부 너머로 뼈의 윤곽이 희미하게 드러났다. 손을 움직여봤다. 손가락이 움직였지만, 뭔가 빠진 느낌이었다. 무게가 없었다. 자신의 손이 아닌 것처럼.
"서인호?"
박민준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서인호는 손을 재빨리 내렸다.
"밤새 또 수술했나?"
"응."
"몇 건이야?"
대답하지 않았다. 박민준이 앞으로 나왔다. 그의 눈이 서인호의 얼굴에서 손가락으로 내려갔다. 박민준은 입을 벌렸다가 다시 다물었다.
"심부전 3단계야. 이미영, 38세. 응급실 3번 침대."
박민준의 말이 현재형으로 들렸다. 응급실에서 또 다른 신호가 울리고 있다는 뜻이었다. 서인호는 일어섰다. 박민준이 팔을 잡았다.
"잠깐, 너 지금 정신 차려. 손가락이—"
"알아."
"알아? 넌 뭐가 알아? 너 거울 봤어?"
서인호는 박민준의 손을 풀고 나갔다. 복도의 불빛이 자신의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거울이 없어도 이미 알고 있었다. 어젯밤 수술실 천장의 반사 스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봤다. 눈이 흐릿했다. 마치 누군가 손가락으로 눈알을 밀어 넣으려 할 때의 그 느낌. 창백한 피부 아래로 혈관이 도드라졌다. 코는 마르지 않은 핏자국으로 검었다.
응급실 3번 침대에 누워 있던 여성은 이미 의식을 잃고 있었다. 이미영. 의료 기록에 따르면 2년 전 심근경색으로 한 번 죽음 직전까지 갔었고, 이번엔 심부전이 악화되어 온 상태였다. 남편과 딸이 침대 옆에 서 있었다. 딸은 어린이였다. 열 살 정도로 보였다.
"의사선생님, 살려주세요."
남편이 서인호를 붙잡았다. 손가락이 떨렸다. 남편의 팔에 닿는 순간, 서인호의 투명한 손가락이 남편의 팔을 통과하는 느낌이 들었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지만, 그렇게 느껴졌다.
"심장 초음파상 좌심실 박출률이 20% 이하입니다. 이 상태로는 수술 불가능 판정입니다."
담당 의사 이준호가 보고했다. 그는 서인호를 보지 않았다. 아무도 서인호를 보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모두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서인호는 환자에게 손을 얹었다. 심장 위에.
검은 실이 들렸다.
"네, 내가 하겠습니다."
자신의 목소리가 아닌 목소리로, 서인호는 말했다. 주변의 의료진들이 멈췄다.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서인호는 자신의 손을 보고 있었다. 손가락이 더 이상 손가락처럼 보이지 않았다. 마치 누군가 다른 사람의 손을 빌려 쓰고 있는 것처럼. 하지만 그 손이 정확하게 움직였다. 심장 위에서. 정확한 위치를 찾아내며.
"수술실로."
이준호가 휴대폰을 들었다. 하지만 서인호는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침대를 밀며. 딸의 울음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어머니가 어디 가냐고 묻는 목소리. 아버지의 다그침. 그 모든 것이 먼 곳에서 들렸다.
수술실에 도착했을 때, 서인호는 자신의 손을 다시 봤다. 투명화가 손목까지 올라와 있었다. 손목 너머로도 팔뚝에 검은 그림자가 보였다. 그것도 투명해질 것이었다. 곧.
능력을 사용할 때마다 신체가 투명해진다. 그것이 대가였다. 서인호는 이미 알고 있었다. 어젯밤 수술 중 능력을 다섯 번 사용했다. 환자의 심장에 닿을 때마다, 검은 실을 읽을 때마다. 누적된 피해가 이제 손가락을 넘어 팔뚝까지 침범했다.
"집중해."
박민준의 목소리였다. 박민준이 수술실에 있었다. 간호사로. 서인호의 옆에서. 그는 서인호의 얼굴을 봤다. 그리고 눈을 돌렸다.
"메스."
서인호가 손을 내밀었다. 투명한 손가락이 메스를 집었다. 메스는 여전히 금속이었지만, 서인호가 집고 있으니 마치 투명해 보였다.
첫 번째 절개.
심실 벽에 칼이 들어갔다. 환자의 심장에서 검은 실이 더 빠르게 떨렸다. 서인호는 그것을 따라갔다. 손가락이 움직였다. 하지만 그것은 자신의 의지가 아니었다. 누군가 다른 사람이 자신의 손가락을 조종하고 있는 것처럼. 아니, 누군가 다른 사람이 자신의 몸 안에 들어와 있는 것처럼.
"이미영 환자, 심박수 40. 혈압 하강."
모니터의 경고음이 울렸다. 서인호는 손을 멈추지 않았다. 검은 실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계속 들어갔다. 심실 내막을 지나고, 또 다른 층을 지나고.
"서인호, 너 뭐 해?"
박민준이 외쳤다.
"나? 아니야. 이건 나한테 하는 거야."
서인호가 중얼거렸다. 자신도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손은 계속 움직였다.
"심박수 20. 혈압 측정 불가."
"심실 정지?"
"예. 즉시 제세동이 필요합니다."
패들을 들어올리려는 순간, 서인호의 손이 움직였다. 마지막 봉합. 딱 한 바늘. 그 순간.
심박수가 돌아왔다.
90. 100. 110.
"심박수 정상화."
"혈압?"
"120/80으로 안정화. 산소포화도 98%."
침묵.
서인호는 자신의 손을 봤다. 투명한 손가락에서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환자의 피가 아니라, 자신의 피. 투명한 피였지만,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박민준이 가까워졌다. 그의 얼굴이 가까워질수록, 서인호는 박민준의 옆에도 검은 실이 보였다. 느껴졌다. 아주 가늘고 긴, 그리고 매우 먼 곳에서 끊어질 검은 실. 박민준의 죽음. 서인호는 그것을 보고 있었다.
"서인호, 진짜 정신 차려."
박민준이 손을 잡았다. 투명한 손이 박민준의 손에 닿았다. 박민준은 움찔했다.
"넌... 넌 내 친구가 아니라 내 죽음의 신호야."
서인호가 말했다. 자신의 목소리가 아닌 목소리로.
박민준이 물러섰다. 그의 얼굴에 공포가 떠올랐다. 하지만 그 공포 뒤에는 뭔가 더 있었다. 우정을 배신하는 것에 대한 죄책감.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알면서도 그것을 하지 못하는 무력감.
"고발할 거야."
박민준이 간신히 말했다.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윤리위원회에 당신의 수술 기록을 제출할 거야. 이준영 사건, 박경숙 환자의 위조된 동의서, 모든 것을. 내일 아침에."
서인호는 박민준을 보지 않았다. 이미 알고 있었다. 박민준의 고발이 얼마나 구체적일지, 어떤 증거를 제시할지, 그것이 자신의 삶을 어떻게 무너뜨릴지.
"미안해. 정말 미안해."
박민준의 목소리가 흔들렸다. 그는 서인호의 손을 놓았다. 투명한 손이 공중에 떨어졌다.
수술실을 나왔을 때, 병원 지하 1층의 장례식장 쪽에서 누군가 걸어오고 있었다. 최태성 과장이었다. 그의 옆에는 서정환이 있었다. 전임의 서정환. 최태성의 측근.
"축하한다, 서인호."
최태성이 손을 내밀었다. 서인호는 그 손을 보지 않았다. 손을 내밀 수도 없었다. 투명한 손가락을 숨기기 위해.
"이미영 환자의 수술, 완벽했다고 들었어. 또 한 명의 기적이군."
최태성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하지만 그 뒤에는 뭔가 검은 것이 있었다. 서인호는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너한테 제안이 있어."
서정환이 말했다. 그의 얼굴에는 미소가 떠 있었다. 건설회사 회장의 미소가 아니라 다른 무언가의 미소.
"내 생각엔 넌 혼자가 아니야. 누군가 너를 도와줄 필요가 있어."
"누가?"
"나. 그리고 최 과장."
서정환이 최태성 옆으로 한 발 물러섰다. 그들은 나란히 서 있었다.
"네가 본 검은 실. 그것도 능력이면, 그것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도 분명 있을 거야. 우린 그걸 연구하고 싶어. 너의 능력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그리고 그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지."
서정환이 한 발 다시 앞으로 나왔다.
"내가 너를 도와줄 수 있어. 돈으로. 사람으로. 의료 자원도. 그 대신, 넌 내 건강을 계속 봐줘야 해. 그리고 만약 내 이름이 어떤 비리 관련해서 떠올라도, 넌 그걸 부정해줘야 해. 우리 함께."
서인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대답할 필요가 없었다. 서정환은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좋아. 생각해봐. 근데 너무 오래 생각하지 마. 시간이 별로 없을 것 같으니까."
서정환이 미소 지었다. 그리고 그의 뒤에도 검은 실이 보였다. 아주 굵고, 아주 가까운 곳에서 끊어질 검은 실. 서정환의 죽음은 자연스럽지 않을 것이었다. 무언가에 의해 강제로 끊어질 죽음.
최태성과 서정환이 떠난 뒤, 복도가 조용해졌다. 서인호는 자신의 손을 다시 봤다. 투명화가 팔뚝까지 올라와 있었다. 심장 쪽으로 향하고 있는 것처럼.
병원 휴게실로 갔다. 거울이 있는 곳. 서인호는 자신의 얼굴을 봤다. 눈이 완전히 흐릿해졌다. 동공이 보이지 않았다. 마치 누군가 손가락으로 눈알을 밀어 넣은 것처럼. 그리고 입가에는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코피가 아니라, 입 안에서 나오는 피. 혀 아래에서.
"당신이 서인호 펠로우 맞습니까?"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서인호는 거울에 비친 상을 통해 뒤를 봤다. 여성이 서 있었다. 나이는 50대 초반으로 보였다. 흰 코트를 입었지만, 수술복이 아니라 의무기록 담당자 같은 편한 복장이었다.
"이수현입니다. 성모병원 윤리위원회 간사."
그 여성은 자신을 소개했다. 서인호는 돌아섰다. 투명한 손가락을 주머니에 넣으며.
"당신의 지난 네 건의 수술 기록을 전면 검토하려고 합니다."
이수현이 말했다. 그녀의 눈은 차갑고 정확했다. 마치 법의학자의 눈처럼.
"의료윤리 위반 혐의가 있거든요. 특히 첫 번째 환자 이준영의 사망 직후, 당신이 응급실을 떠난 이유. 그리고 박경숙 환자의 수술 동의서에 서명이 없다는 점. 위조된 서명까지 발견했습니다."
이수현이 서인호에게 한 발 가까워졌다.
"가장 중요한 것은 당신의 신체 변화입니다. 손가락이 투명해지고, 눈이 흐려지고, 코에서 피가 난다. 이것이 의료행위의 부작용일까요? 아니면 다른 무언가일까요?"
서인호의 심장이 뛰었다. 아니, 그것도 투명해졌을까?
"우리는 당신이 뭔가를 숨기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환자의 생명과 직결되어 있다는 것도."
이수현이 서인호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그녀의 눈이 서인호의 눈을 통과해 뭔가를 찾고 있는 것처럼.
"당신의 수술 기록에 접근 권한을 받았습니다. 의료기록실, 수술실 CCTV, 마취 기록까지. 모든 것을 검토할 겁니다. 그 과정에서 당신이 협력한다면, 우리는 가능한 한 당신을 보호해드리겠습니다."
이수현이 손에 들고 있던 폴더를 내밀었다.
"하지만 당신이 계속 숨긴다면, 우리는 모든 것을 공개하게 될 겁니다. 의료계에, 그리고 언론에."
서인호는 폴더를 보지 않았다. 대신, 이수현의 옆에도 검은 실이 보였다. 느껴졌다. 아주 길고, 아주 먼 곳에서 끊어질 검은 실. 이수현의 죽음은 자연스러웠다. 마치 누군가 그렇게 정해놓은 것처럼.
서인호는 폴더를 집었다. 투명한 손가락으로. 이수현은 움찔했다. 그 손이 자신의 손을 통과할 것 같은 공포가 그녀의 얼굴에 떠올랐다.
"협력하겠습니다."
서인호가 말했다. 자신의 목소리로.
"내일 오후 3시, 윤리위원실로 가겠습니다."
이수현은 서인호를 바라봤다. 그의 눈은 여전히 흐릿했지만, 그 안에는 뭔가 다른 것이 있었다. 결정.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것은 분명했다.
이수현이 떠난 뒤, 서인호는 혼자 남겨졌다. 거울 앞에서. 폴더를 들고 있는 투명한 손을 보며. 폴더 안에는 이준영의 사망 기록, 박경숙의 위조된 동의서, 그리고 자신의 수술 영상이 들어 있을 것이었다. 모든 증거. 모든 죄.
병원 옥상으로 올라갔다.
서울의 야경이 내려다보였다. 강남의 불빛들.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자고 있는 도시. 그들의 심장이 뛰고 있을 것이다. 모두가 살고 싶어 하는 도시.
서인호는 도시를 내려다봤다. 손가락이 투명한 채로.
"나는 죽음을 본다."
입에서 말이 나왔다. 자신의 목소리가 아니라, 누군가 다른 사람의 목소리로.
"나는 죽음을 막는다."
도시의 불빛이 깜빡였다. 그 안에 수천 개의 검은 실이 울렸다. 모두 끊어져 가고 있었다.
"나는 죽음이 된다."
그 순간, 옥상의 문이 열렸다.
"서인호!"
박민준이 나타났다. 그의 얼굴에는 공포와 절망이 섞여 있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울음이 섞여 있었다.
"정신 차려. 제발. 넌 죽음이 아니야. 넌 인간이야. 의사야. 그냥... 인간이야."
박민준이 서인호에게 다가왔다. 하지만 서인호는 박민준을 보지 않았다. 대신, 박민준 너머의 도시를 보고 있었다. 그 도시의 모든 검은 실을 보고 있었다.
박민준이 서인호의 팔을 잡으려 했다. 손이 투명한 팔을 통과했다. 마치 공기를 잡으려는 것처럼. 박민준의 손가락이 서인호의 팔 안쪽을 헤쳤지만,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이봐. 이봐!"
박민준이 다시 손을 내밀었다. 이번엔 서인호의 어깨를 잡으려 했다. 손이 다시 통과했다. 투명한 몸에 닿을 수 없었다.
박민준은 경보를 눌렀다. 손가락이 빨간 버튼을 누르는 순간, 옥상 전역에 사이렌이 울렸다. 하지만 서인호는 움직이지 않았다.
"제발 말해. 뭐가 필요해? 뭐든 할게."
박민준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는 서인호의 얼굴 앞에서 손을 흔들었다. 서인호의 흐릿한 눈이 박민준을 보지 않았다. 마치 그가 이미 다른 세계에 있는 것처럼.
"서인호! 제발!"
박민준이 외쳤다. 하지만 서인호의 입에서는 아무 대답도 나오지 않았다. 그의 입술이 움직였지만,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또는 그것이 다른 언어였을 수도 있었다. 죽음의 언어.
서인호는 옥상의 가장자리로 한 발을 내디뎠다. 투명한 발이 허공 위에 떠 있었다.
"안 돼!"
박민준이 앞으로 뛰어갔다. 하지만 서인호는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두 번째 발도 가장자리를 넘었다. 몸이 기울어졌다.
박민준이 서인호의 손목을 잡으려 했다. 손가락이 투명한 손목을 통과했다.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서인호의 몸은 이미 이 세계에 속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박민준은 무선 통신기를 집어 들었다. 손가락이 떨렸다.
"옥상에서 의료진 추락 위험! 즉시 출동!"
외침이 병원 전역에 울려 퍼졌다. 하지만 그것도 너무 늦었을 수도 있었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박민준이 울먹였다. 그의 손이 공중에서 맴돌았다. 잡을 것이 없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가까운 것은 자신의 것이었다.
서인호의 검은 실. 그것이 옥상에서 끊어지려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