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문
검은 실이 깜박거렸다.
불규칙한 신호. 점점 강해지고, 약해지고, 다시 강해진다. 마치 라디오 전파처럼 노이즈가 섞여 있었다. 서인호의 눈이 떨렸다. 이전의 어떤 신호도 이렇게 불안정하지 않았다.
응급실 모니터들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심박수 불규칙. 혈압 하강. 산소 포화도 70%. 남성 환자, 의식 있음, 비명을 지르고 있음.
"펠로우! 결정 내려주세요!"
"심실세동 나타났어요!"
"제세동 준비!"
간호사들의 목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서인호는 환자의 가슴에 손을 올렸다. 검은 실이 또 다른 신호를 숨기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환자의 심장에서 나온 게 아니었다.
자신에게서 나오고 있었다.
두 개의 신호가 겹쳐 있었다. 하나는 환자의 심장에서. 하나는 자신의 심장 어딘가에서. 음파가 간섭하듯, 검은 실이 뒤틀렸다. 신호의 색이 변했다 돌아왔다, 다시 변했다.
"1분 15초 남았습니다!"
서인호는 눈을 깜박였다. 순간, 환자의 신호만 남고 자신의 신호는 사라졌다. 아니다. 숨겨진 것이다. 자신의 신호는 계속 흔들리고 있었고, 단지 자신만 그것을 무시하려 했을 뿐이었다.
"올려놓으세요! 가슥을 열어야 해요!"
서인호가 움직였다. 손을 위로 올렸다. 의료진들이 환자를 수술실로 옮기기 시작했다. 그는 뒤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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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숙이 퇴원하는 날 아침, 서인호는 병실 앞에서 시간을 재었다. 남은 시간이 정확히 3분 22초일 때였다. 그 여자는 살았다. 한 달 전만 해도 의료진 전원이 포기한 Type A 대동맥 박리. 자기 손으로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었다.
"고마워요. 정말…" 박경숙은 휠체어에 앉아 서인호의 손을 잡았다. 손가락이 희미해 보였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살아 있는 손이었다.
그 순간, 서인호는 박경숙의 손가락을 유심히 봤다. 희미한 손가락. 투명해지는 피부. 마치 자신의 손처럼. 그의 눈이 미세하게 흔들렸지만, 곧 그것을 묻어버렸다.
펠로우실로 돌아오자마자 분위기가 달랐다. 복도에서 교육받던 펠로우들이 서인호를 보자 입을 다물었다. 누군가는 돌아서고, 누군가는 속삭였다.
"서 펠로우가 했다던데? 그 환자?"
"불가능한 수술이라고 했는데 성공했대."
"어떻게?"
아무도 답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서인호는 자신의 책상에 앉았다. 컴퓨터 화면에는 박경숙의 수술 기록이 떠 있었다. 기록상으로는 모든 게 정상이었다. 절개 위치, 봉합 방식, 혈관 재구성—의학 교과서 속 '정확한' 수술이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그건 검은 실이 보여준 방향이었다. 현미경으로는 절대 보이지 않는 길을 따라간 것이었다.
휴대폰이 울렸다. 노재훈 원장의 비서였다.
"펠로우 서인호입니까? 원장님께서 뵙고 싶으신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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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장실은 18층이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창밖으로 한강이 보였다. 노재훈 원장은 그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서인호가 들어가자 돌아섰다.
"앉아." 목소리는 평탄했다. "박경숙 환자 수술, 어떻게 했어?"
"의료진과의 협력 덕분입니다."
"협력? 그 수술은 불가능 판정이 내려진 케이스야. 넌 그걸 혼자 했지." 노재훈은 책상 뒤로 돌아가 앉았다. "어떻게 했냐고 물었어. 정확히."
서인호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검은 실이 보인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럼 정신과 입원이 기다리고 있었다.
"직관입니다." 서인호가 말했다. "수술장에서 환자의 상태를 보며 즉각적으로 판단했습니다."
노재훈은 한참을 그를 바라봤다. 침묵이 방을 채웠다. 그 시간은 길었고, 무거웠다. 원장의 눈이 서인호의 얼굴을 훑고, 손을 지나, 다시 눈으로 돌아왔다.
"심장외과에서 직관이 통하나?" 노재훈이 웃음을 흘렸다. 웃음은 짧고 날카로웠다. "여긴 과학하는 곳이야. 증거와 데이터가 있어야지."
"모든 데이터는 수술 기록에 있습니다."
"기록에는 '어떻게'가 없어. 있는 건 '무엇'뿐이야." 노재훈이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그 정도 수술을 혼자 할 수 있는 펠로우를 본 적이 없어. 최태성도 아니고."
서인호의 손에 땀이 맺혔다. 손가락 끝이 떨리기 시작했다. 거울 속의 자신의 얼굴이 떠올랐다. 투명해지고 있었다. 수명을 대가로 치르고 있었다. 그 비밀을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호흡이 얕아졌다. 가슴이 철렁거렸다.
"직관입니다." 서인호가 반복했다.
노재훈은 한참을 그를 바라봤다. 마침내 원장은 몸을 뒤로 뺐다.
"알았어. 그럼 계속 그 직관을 발휘해 봐. 성모병원이 자네가 필요해."
서인호가 일어서려 하자, 노재훈이 중얼거렸다. 목소리는 매우 낮았지만, 서인호의 귀에는 명확히 들렸다.
"성모병원의 미래다. 절대 놓칠 수 없는 카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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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도로 나오며 서인호는 그 말이 칭찬인지 경고인지 판단할 수 없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다가 최태성 교수와 마주쳤다. 교수는 원장실 문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서인호를 보자 눈을 좁혔다.
"펠로우." 최태성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그렇기에 더 위험했다. "요새 바쁘네?"
"예, 교수님."
"박경숙 환자. 잘 됐다던데?" 최태성이 웃었다. "어떻게 했어? 우리도 배워야지."
"의료진 협력 덕분입니다."
"협력? 아, 맞다. 넌 일 잘하는 펠로우구나." 최태성이 서인호의 어깨를 톡톡 쳤다. 그 손길은 따뜻하지 않았다. "앞으로도 잘 부탁해. 우리 과를 위해서 말이야."
최태성이 지나가고 엘리베이터 문이 닫혔다. 서인호는 거울 같은 엘리베이터 벽에 자신을 비췄다. 얼굴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하지만 손가락 끝이 희미해 보였다. 그리고 최태성의 말이 자꾸만 맴돌았다. '우리 과를 위해서.' 그 말 속에 담긴 의도가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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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저녁, 박민준이 펠로우실에 나타났다. 의료기록을 들고 있었다.
"박경숙 환자 상태 봤어?" 박민준이 물었다.
"응. 회복 중이야."
"그 수술 정말 넌 했어?" 박민준이 앉았다. 그의 목소리는 조용했지만, 무언가 다급했다. "나한테만 말해 봐. 정말로."
"응."
"어떻게? 본사람은 없었거든. 영상도 이상했고. 기록도 맞지 않는 부분이 많아." 박민준이 서인호의 눈을 봤다. "넌 정말 환자를 위해 하는 거야? 아니면 자신을 위해?"
서인호는 웃음을 흘렸다. 하지만 그 웃음은 공허했다. 박민준의 눈빛이 변했다.
"그 웃음이… 불안해. 진짜."
"괜찮아."
"괜찮지 않아." 박민준이 일어섰다. 목소리에 절박함이 묻어났다. "인호, 뭔가 이상해. 박경숙 환자 수술 후로 자네 손가락이 투명해졌어. 거울에 비칠 때마다 느껴져."
서인호는 손을 감췄다. 박민준의 말이 정확했다. 자신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너 코피 흘렸잖아. 수술 직후에. 그건… 정상이 아니야."
"괜찮다니까."
"괜찮지 않아!" 박민준이 목소리를 높였다. 펠로우실의 다른 인턴들이 고개를 들었다. "뭔가 댓가가 있는 거 아니야? 그 환자를 살리는 댓가가?"
서인호의 호흡이 가빠졌다. 가슴이 철렁거렸다. 눈의 초점이 흐려졌다. 박민준을 정확히 보려 했지만, 그의 모습이 자꾸만 흔들렸다. 손가락이 떨렸다.
박민준은 한참을 그를 바라봤다. 그 눈빛은 동료의 눈빛이 아니었다. 친구의 눈빛이었고, 그렇기에 더 무거웠다. 박민준은 서인호를 붙잡고 싶었다. 손을 내밀고 싶었다. 하지만 그 손이 닿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환자가 살았으면 뭐든 괜찮아?" 박민준이 물었다. 그것은 질문이자 절규였다.
서인호는 입을 열었다 다물었다. 말해야 할 것과 말할 수 없는 것 사이에서 흔들렸다.
"언젠가 후회할 거야." 박민준이 의료기록을 내려놨다. 그 말은 경고가 아니라 애도였다. "꼭."
박민준은 돌아섰다. 복도로 나가는 그의 발걸음이 무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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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아침, 뉴스가 터졌다.
'대학병원 펠로우, 불가능한 수술 성공'
'기적의 의사 탄생?'
'의료계 신화, 검은 실을 본다?'
휴대폰 기사는 몇십 개씩 쌓였다. 병원 로비의 모니터들이 모두 같은 뉴스를 방송했다. 서인호의 얼굴이 보도되고 있었다. 기적의 의사라는 자막과 함께.
오후 2시, 종교 단체에서 전화가 들어왔다. 신의 선택받은 자라고 했다. 저녁 6시, 또 다른 단체에서 전화가 들어왔다. 악마의 도구라고 했다.
병원 로비에는 환자 가족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서인호를 찾는 사람들. 자신의 가족을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사람들. 의료진들이 그들을 제지했지만, 그 목소리는 계속 들렸다.
"저 의사 어디 있어요?"
"제 아버지도 봐주세요!"
"기적이 일어나게 해주세요!"
병원 복도는 광기로 가득 찼다. 그것이 신앙인지 절망인지 구분할 수 없는 광기.
그리고 밤 11시, 윤리위원장 이수현이 펠로우실에 나타났다.
이수현은 40대 초반의 여의사였다. 법의학 전문의이고, 윤리위원회의 간사였다. 얼굴은 차갑고 정중했다. 하지만 그 눈빛 속에는 무언가가 있었다. 의심. 아니, 확신.
"서인호 펠로우?" 그녀가 물었다.
"예."
"윤리위원장 이수현입니다." 그녀가 앉았다. 펠로우실의 다른 의료진들이 눈치껏 자리를 떴다. "박경숙 환자 수술에 대해 몇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물어보세요."
"당신의 성공이 정말 의료윤리를 따른 건가요?" 이수현이 메모장을 펼쳤다. "환자 동의? 대체 수술법 설명? 위험성 고지?"
"모두 진행했습니다."
"그렇다면 의료기록을 보여주시겠어요?" 이수현이 메모장을 내밀었다. "박경숙 환자의 수술 동의서가 없네요. 위험성 고지 기록도 없습니다. 수술 전 협의 내용도 마찬가지고요."
서인호는 메모장을 봤다. 그것은 그가 기억하고 있는 것과 다르게 기록되어 있었다. 아니, 기록이 없었다. 마치 처음부터 그런 절차가 없었던 것처럼.
"의료기록에 누락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누락." 이수현이 웃음을 흘렸다. 웃음은 따뜻하지 않았다. 그것은 추적자의 웃음이었다. "펠로우, 당신 손가락이 투명하네요."
서인호는 손을 감췄다. 하지만 이미 보였다.
"당신의 성공이 정말 환자를 위한 건가요? 아니면 자신을 위한 건가요?" 이수현이 물었다. 그것은 박민준이 한 질문과 정확히 같았다. "그 답이 윤리위원회의 결정을 결정합니다."
이수현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그저 서인호를 바라봤다. 그 눈빛은 판사의 눈빛이었다. 이미 판결은 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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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2시, 응급실 호출이 들어왔다. 심근경색 환자.
서인호는 자동으로 일어났다. 응급실의 모니터들이 신호를 보냈다. 심박수 불규칙, 혈압 하강, 산소 포화도 70%. 환자는 남성이었고, 의식이 있었고,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서인호가 환자의 가슴에 손을 올렸다.
검은 실이 보였다. 그런데 평소와 달랐다. 더 빠르게 흔들리고 있었다. 더 짙은 검은색이었다. 마치 깜박거리는 신호처럼, 점점 강해지고 약해지고, 다시 강해졌다.
서인호의 표정이 굳었다.
남은 시간이 정확히 1분 15초였다.
그런데 그 신호가 이상했다. 이전의 어떤 신호도 이렇게 불규칙하지 않았다. 검은 실이 깜박거렸다. 색감이 변했다. 마치 두 개의 신호가 음파처럼 간섭하고 있는 것처럼.
"펠로우!" 간호사가 부르짖었다. "뭐 하세요! 환자가!"
서인호는 손을 내려놨다. 하지만 그 불규칙한 검은 실은 계속 깜박였다.
"어?" 서인호가 중얼거렸다.
검은 실이 또 다른 신호를 숨기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환자의 심장에서 나온 게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에게서 나오고 있었다.
간호사들의 목소리가 먼 곳에서 들려왔다.
"펠로우! 결정 내려주세요!"
"심실세동 나타났어요!"
"제세동 준비!"
그의 눈앞에 두 개의 신호가 겹쳐 있었다. 하나는 환자의 심장에서. 하나는 자신의 심장 어딘가에서. 그 둘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음파가 간섭하듯이, 검은 실이 뒤틀렸다. 신호의 색이 변했다 돌아왔다, 다시 변했다.
"서인호 펠로우! 지시를 내려주세요!"
"1분 15초 남았습니다!"
서인호는 눈을 깜박였다. 순간, 환자의 신호만 남고 자신의 신호는 사라졌다. 아니다. 숨겨진 것이다. 자신의 신호는 계속 흔들리고 있었고, 단지 자신만 그것을 무시하려 했을 뿐이었다.
"올려놓으세요! 가슴을 열어야 해요!"
서인호가 움직였다. 손을 위로 올렸다. 의료진들이 환자를 수술실로 옮기기 시작했다. 그는 뒤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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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은 1시간 47분이 걸렸다.
서인호는 검은 실을 따라 움직였다. 그것이 지시하는 대로 칼을 움직였고, 봉합을 했고, 절개를 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검은 실이 처음처럼 명확하지 않았다. 마치 라디오 전파처럼 노이즈가 섞여 있었다. 그리고 그 노이즈는 자신의 심장에서 나오고 있었다.
손이 떨렸다. 한 번도 떨린 적 없는 손이 떨렸다. 메스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봉합선이 불규칙해졌다.
"펠로우, 뭔가..."
간호사가 말을 흐렸다. 서인호를 바라보는 눈이 두려움으로 가득했다.
그의 이마에서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코피가 아니었다. 이마의 피부가 갈라지면서 흘러나오는 피였다. 마치 투명해지는 피부가 견디지 못한 것처럼.
"괜찮습니다." 서인호가 말했다. 하지만 손은 계속 떨렸다.
검은 실이 마지막 신호를 보냈다. 환자의 심장이 정상 박동을 되찾았다. 심전도가 규칙적인 파형을 그렸다.
성공이었다.
그런데 자신의 신호는?
서인호는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가슴을 만져봤다. 검은 실이 여전히 거기 있었다. 더 짙어진 색으로. 더 빠르게 흔들리면서. 마치 경고하듯이.
"환자 상태 안정화됐습니다!" 마취 담당 의사가 외쳤다.
"좋습니다." 서인호가 대답했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자신의 것이 아닌 것 같았다. 마치 다른 누군가가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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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실을 나왔을 때 시간은 새벽 4시 32분이었다.
로비에는 이미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노재훈 원장, 최태성 과장, 그리고 기자들이었다. 그들 뒤로는 환자 가족들이 있었다.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사람들.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
"서인호 펠로우!" 기자들이 달려왔다. "또 성공했다고요?"
"응급 상황이었습니다. 환자 회복 상황에 집중하겠습니다."
"당신의 능력은 정말 뭔가요? 신의 선물인가요?"
서인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대신 노재훈 원장을 바라봤다.
원장은 웃고 있었다. 그것은 기쁨의 웃음이 아니었다. 다른 감정의 웃음이었다. 소유욕의 웃음처럼 보였다. 마치 자신이 뭔가 귀한 것을 손에 넣은 것처럼.
"펠로우, 우리 사무실에 와야겠는데요." 노재훈이 말했다. "성모병원의 미래에 대해 얘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
서인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의 눈은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최태성 과장이었다.
최태성은 눈을 좁혀 서인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눈빛 속에는 호의가 아닌 다른 감정이 있었다. 경계. 아니, 위협이었다. 마치 자신의 영역을 침범하는 자를 보는 눈빛.
"저 꼬맹이가 뭔가 하려나?" 최태성의 입술이 움직였다. 소리는 나지 않았지만, 그 의도는 명확했다.
서인호가 로비를 지나가며 거울을 봤다. 그의 얼굴이 반사되었다. 이마의 피는 이미 닦여 있었지만, 눈 주변이 검게 멍들어 있었다. 손가락은 여전히 투명했다. 그리고 그의 눈에는 뭔가가 빠져 있었다.
인간이 가져야 할 무언가가.
펠로우실로 돌아가는 복도에서, 박민준이 나타났다. 그는 의료기록을 들고 있었고, 얼굴은 창백했다.
"넌 봤어?" 박민준이 물었다.
"뭘?"
"이 환자 기록." 박민준이 의료기록을 펼쳤다. "박경숙 환자. 퇴원 후 사회 복귀 현황 조회 들어왔어."
서인호는 기록을 봤다. 이름은 박경숙이었다. 나이 62세. 그 다음 줄에서 손가락이 멈췄다. 직업 란에 쓰인 글자를 읽었다.
'건설 회사 회장 서정환의 동생.'
서인호의 호흡이 멈췄다.
"그리고 하나 더." 박민준이 또 다른 기록을 펼쳤다. "이번 수술한 환자. 심근경색으로 응급 내원한 남자 환자."
서인호는 천천히 기록을 읽기 시작했다. 이름 란. 나이 란. 직업 란.
'건설 회사 회장 서정환.'
세상이 기울었다.
"같은 환자를 두 번 살렸어. 아니, 같은 사람 때문에 두 번 목숨을 걸었어." 박민준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이상하지 않아? 우연이야? 정말?"
서인호는 말이 없었다. 기록을 내려놨다. 손가락이 떨렸다.
"또 뭐가 있는 줄 알아?" 박민준이 계속했다. "이수현 윤리위원장이 방금 나한테 물어봤어. 넌 박경숙 환자 수술할 때 정말 동의 절차를 밟았냐고. 의료기록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마치 그게 애초부터 없었던 것처럼."
"환자가 살았습니다."
"그게 다야?" 박민준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환자가 살았으면 뭐든 괜찮아? 어떤 과정이든?"
서인호는 박민준을 바라봤다. 그의 눈에는 친구가 아닌 다른 무언가가 보이고 있었다. 방해. 의심. 회의.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자신을 향하고 있었다.
그것들이 싫었다.
"난 환자를 살렸습니다. 그것만 중요합니다."
박민준이 한 발 물러났다. 마치 맞은 것처럼. 그의 얼굴이 굳었다.
"아." 박민준이 중얼거렸다. "그래. 넌 그렇게 생각하는군."
그가 돌아섰다. 복도를 나가는 박민준의 어깨가 굽어 있었다. 친구의 등이 계속 커져 갔다. 점점 멀어져 갔다.
서인호는 그를 붙잡지 않았다. 손을 내밀지도 않았다. 그저 그 등을 바라봤다. 자신이 놓아버린 것을 바라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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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6시, 노재훈 원장의 사무실.
원장은 서인호를 보며 중얼거렸다. 그 말은 서인호를 향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향한 것 같았다.
"성모병원의 미래다. 절대 놓칠 수 없는 카드야."
그 말이 끝나자, 복도의 모퉁이에서 최태성이 나타났다. 원장실 문을 통해 그 장면을 봤을 것이다. 그는 눈을 좁혔다. 그리고 생각했다.
'저 꼬맹이가 정말 뭔가 하려나?'
최태성의 얼굴에 무언가가 스쳤다. 계산. 아니, 위협 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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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1시, 펠로우실.
서인호는 거울을 보고 있었다. 손가락이 투명해지고 있었다. 손등의 혈관이 반투명하게 보였다. 이마의 갈라진 피부도 아직 낫지 않았다. 마치 자신이 천천히 사라지고 있는 것처럼.
휴대폰이 울렸다. 알 수 없는 번호였다.
"여보세요?"
"서인호 펠로우?" 목소리는 낮고 차분했다. "나 서정환이야. 내 동생과 나를 살려줘서 고마워."
서인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귀에서 소리가 울렸다.
"한 가지 제안이 있어." 서정환이 계속했다. "우리 만날까? 병원 지하 1층 장례식장 옆 카페에서. 오후 3시?"
"무슨 일입니까?"
"너와 나, 우리는 같은 사람이야." 서정환이 말했다. 목소리에는 확신이 있었다. 마치 서인호의 비밀을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우리는 둘 다 절대 멈출 수 없는 사람들이지. 그 능력을 가진 사람들. 그래서 우리는 함께할 수 있어. 아니, 함께해야 해."
통화가 끝났다.
서인호는 거울 속 자신을 바라봤다. 투명한 손가락. 검게 멍든 눈. 갈라진 이마. 그리고 그 얼굴 속에서, 무언가가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려주는 무언가가.
응급실 호출이 들어왔다.
심근경색 환자. 이번엔 여성이었다. 나이 55세. 의식 불명.
서인호는 응급실로 향했다. 의료진들이 환자를 옮기고 있었다. 그 와중에 환자의 가슴에 손을 올렸다.
검은 실이 보였다.
하지만 이번엔 그것이 이전과 완전히 달랐다. 그것은 깜박거리지 않았다. 대신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끊어져 가고 있었다.
남은 시간: 3분 22초.
서인호의 눈이 흔들렸다. 왜냐하면 그 검은 실 너머로, 또 다른 신호가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자신의 신호였다. 그리고 그것도 끊어져 가고 있었다.
간호사가 외쳤다.
"펠로우! 수술실 준비됐습니다!"
서인호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그 여성의 가슴 위에 손을 올린 채로, 두 개의 끊어져 가는 검은 실을 바라봤다.
하나는 환자의.
하나는 자신의.
그리고 이 둘이 만나는 그 지점에서, 무언가가 일어나려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