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장의 수술실
응급실의 심박 모니터가 울음을 멈췄다.
62세 여성 박경숙. 2시간 전 응급차로 실려온 환자. 심전도는 ST 상승을 보였지만, CT와 혈액 검사 결과는 더 심각했다. 대동맥 박리. 그것도 Type A. 가슴을 가로질러 내려오는 동맥벽의 균열. 외과 의사들이라면 누구나 알던 진실—이미 승패가 났다는 것.
"심초음파에서도 확인됐어요. 박리 범위가 너무 넓다. 응급 수술을 해도 생존율이 5% 미만입니다."
응급실 과장 김태호가 환자의 딸에게 설명하고 있었다. 서인호는 모니터 너머로 박경숙을 봤다. 숨을 거둘 때까지 정확히 몇 초가 남았을까. 그 순간을 감지하려고 눈을 좁혔다.
그리고 봤다.
가슴 속에서 검은 실이 떨리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 손잡이를 당기려 하는 듯이. 끝은 이미 정해져 있지만, 아직 끝나지 않은 상태. 서인호는 그 떨림의 강도를 읽었다. 남은 시간은 대략 한 시간 반. 아니, 더 정확히는 1시간 47분.
그 순간, 시야가 왜곡되기 시작했다.
응급실의 형광등이 흔들렸다. 아니, 흔들린 게 아니라 자신의 눈이 초점을 잃었다. 청각도 변했다. 심박음이 두 배로 빨라졌다가 느려졌다가를 반복했다. 손가락 끝이 저렸다. 마치 전기가 흐르는 것처럼.
어디를 절개해야 하는지. 어느 각도로 접근해야 하는지. 그 혈관을 어떻게 봉합해야 하는지. 의학 교과서에는 없는 각도. 해부학적으로 불가능해야 하는 접근. 하지만 지금 이 환자의 심장 속에서는 유일하게 가능한 방법.
그것은 신호였다. 검은 실이 보여주는 것. 박경숙의 심장 구조 자체. 왼쪽 폐동맥이 비정상적으로 높게 위치한 선천적 변이. 표준 접근법으로는 절대 도달할 수 없는 곳. 하지만 그 변이 때문에, 역설적으로 박리된 대동맥 벽이 더 얇은 부위가 생겨 있었다. 봉합 가능한 지점이 존재했다.
신호는 그것을 가리키고 있었다.
서인호는 움직였다. 김태호의 팔을 잡았다.
"수술해야 합니다."
"뭔 소리야? 폐사 위험이..."
"수술하면 살립니다."
말이 아니었다. 확신이었다. 서인호의 눈이 다르게 빛났다. 김태호는 손을 놨다.
"미쳤냐? 이건 의료 문제가 아니라 윤리 문제야."
"사실입니다."
"근거를 대봐."
근거. 서인호는 입을 다물었다. '나는 환자의 심장에서 검은 실을 봤습니다'? 정신과 입원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제 책임입니다. 서명하겠습니다."
최태성 과장은 회진 중이었다. 서인호는 그를 찾아 수술실 앞 복도에 막아섰다.
"박경숙 환자 수술 승인해 주십시오."
최태성은 차트를 훑어봤다. 얼굴이 굳었다.
"불가능한 케이스다."
"제가 수술하겠습니다."
"넌 펠로우야. 그리고 이건 Type A 대동맥 박리야. 너 같은 놈이 손대면..."
"성공하겠습니다."
최태성은 서인호를 봤다. 펠로우의 눈이 아니었다. 어떤 광기 같은 게 흐르고 있었다.
"안 돼. 끝."
최태성은 돌아섰다.
펠로우실은 오후 3시였다. 박민준이 환자 기록을 정리하다가 서인호를 봤다.
"뭐 해? 너 왜 그 모양이야?"
"박경숙 환자를 수술실로 옮겨야 해."
"미쳤냐? 아까 최 교수가..."
"옮겨야 해."
박민준은 침대에서 일어섰다. "서인호, 뭔가 달라졌어. 이전의 넌 아니야. 뭐가 됐어?"
서인호는 이미 이동하고 있었다.
간호사 김은지를 찾았다. 야간 당직 조장. 지난번 수술 때 옆에 있던 간호사. 서인호의 손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봤던 사람.
"박경숙 환자를 수술실로."
"최 교수가 거절했대. 수술 불가 판정이..."
"내가 책임집니다."
김은지는 서인호의 눈을 봤다. 그리고 움직였다. 그녀가 움직이자 마취과 전공의는 따라왔다. 수술 간호사는 따라왔다. 누군가 명령을 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모두가 알고 있었다. 대학병원의 비공식 채널. 펠로우가 움직일 때 따라가는 방식.
박경숙은 8분 안에 수술실에 누워있었다.
"마취 준비 완료."
"기관삽관 시작."
"절개 준비."
서인호는 손을 씻었다. 물이 팔을 타고 내려갔다. 거울에 비친 자신은 누구인가. 창백한 얼굴. 떨리는 손. 하지만 눈은 이상하게 밝았다.
수술실의 무영등이 켜졌다.
"메스."
첫 절개. 피가 흘렀다. 서인호는 가슴 속으로 들어갔다. 검은 실이 명확히 보였다. 신호가 가리키는 방향. 왼쪽에서 45도 각도. 그곳에 비정상적으로 부풀어 오른 혈관이 있었다.
"정상 경로 아닙니다. 왼쪽 접근을 시도하겠습니다."
"그 방향은..."
"제 책임입니다."
메스가 움직였다. 칼끝이 정확히 그 지점에 닿았다. 그 순간, 박경숙의 가슴 속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교과서에는 없는 혈관이 드러났다. 선천적 변이. 왼쪽 폐동맥의 비정상적 위치. 표준 대동맥 박리 환자에게는 거의 나타나지 않는 해부학적 이상. 하지만 바로 그 변이 때문에 박리된 벽이 더 얇은 부위가 존재했다.
"혈관 노출 완료."
"봉합 준비."
서인호의 손이 움직였다. 3-0 prolene. 바늘이 정확히 박혔다. 한 번, 두 번, 세 번. 혈관이 봉합되었다.
"대동맥 박리 부위 봉합 완료. 재관류 확인."
심박 모니터가 울었다. 정상 리듬. 혈액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환자 안정화."
"수술 성공."
2시간 42분. 서인호는 메스를 내려놨다. 손이 떨리고 있었다. 가슴에서 뭔가 빠져나가는 것 같은 느낌. 마치 자신의 일부가 환자의 가슴 속에 남겨진 것 같은.
"선생님, 괜찮으세요?"
김은지가 물었다. 서인호의 입에서 피가 흘렀다. 코피였다.
"괜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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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실을 나온 서인호는 병원 2층 건강검진센터로 들어갔다.
"펠로우 서인호입니다. 어제 받은 검진 결과를..."
검진 의사는 컴퓨터를 켰다. 화면을 보더니 눈썹을 찌푸렸다.
"이상한데요. 어제 측정한 심장 나이가..."
"뭐가."
"1년이 증가했습니다. 30세 환자분이 어제는 31세였는데, 오늘 다시 측정하니 32세네요."
서인호는 더 이상 듣지 않았다.
그 순간, 자신의 가슴 속에서 무언가가 떨리는 것을 느꼈다. 아주 미세하게. 마치 누군가 자신의 심장에 손가락을 대고 있는 것처럼.
검은 실이었다.
자신의 심장 속에서 검은 실이 떨리고 있었다. 환자의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것이. 방금 박경숙을 살린 그 순간, 자신의 생명이 1년 줄어들었다는 신호.
서인호는 손을 가슴에 얹었다. 맥박이 역으로 뛰고 있었다. 심장이 자신의 몸 안에서 갈라지는 느낌. 두 개의 심장이 서로 다른 박자로 뛰고 있는 것처럼.
건강검진센터의 창밖으로 서울이 보였다. 저 도시에 얼마나 많은 검은 실들이 떨리고 있을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마지막 시간을 세고 있을까.
그리고 자신은 그것을 볼 수 있는 유일한 사람.
서인호의 입가가 일그러졌다. 웃음이 아니었다. 피가 흘렀다. 코에서, 입에서. 그는 손가락을 펼쳤다 오므렸다를 반복했다. 손가락 끝이 투명해 보였다. 착각일 리 없었다. 정말로 투명해지고 있었다.
병원 옥상으로 향했다.
바람이 불었다. 강남의 야경이 펼쳐져 있었다. 성모병원은 이 도시의 중심에 있었다. 그리고 자신은 이 도시의 중심에 선 의사였다. 아니, 의사가 아니라 뭔가 다른 것이 되고 있었다.
휴대폰이 울렸다. 최태성 과장이었다.
"박경숙 환자 수술... 뭘 한 거야?"
"살렸습니다."
"...뭐?"
"Type A 대동맥 박리. 제 책임하에 수술했습니다. 환자는 생존하고 있습니다."
전화 너머에서 최태성의 숨소리가 들렸다. 길게, 깊게.
"...병원장님께 보고하겠습니다."
전화가 끊겼다.
서인호는 옥상 난간에 손을 얹었다. 손가락이 계속 투명해지고 있었다. 저 아래로 떨어지면 어떨까. 그럼 자신의 검은 실도 보일까. 아니면 사라질까.
그 순간, 또 다른 신호가 들어왔다.
응급실에서 새로운 환자가 들어왔다는 호출음. 심근경색 의심. 응급 이송.
서인호의 몸이 자동으로 움직였다.
옥상에서 내려왔다. 계단을 내려갔다. 응급실로 향했다.
그리고 또 다시 봤다.
새로운 검은 실.
또 다른 생명의 끝.
또 다른 선택의 순간.
서인호는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코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지만, 그는 계속 움직였다. 마치 자신이 이미 죽어 있는 것처럼, 또는 이제 막 다시 태어나는 것처럼.
의료 권력의 피라미드 속에서 가장 아래에 있던 펠로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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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도의 형광등 아래서 서인호는 자신의 손가락을 들었다 놨다를 반복했다. 손가락 끝이 투명해 보였다. 착각이 아니었다. 피부가 정말로 투명해지고 있었다.
휴지로 코를 닦았다. 빨간 자국이 남았다. 자신의 것인지 박경숙 환자의 것인지 구분이 안 갔다.
심장 나이가 1년 증가했다. 30세인데 32세의 심장을 가진 신체.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했다. 박경숙을 살린 대가. 자신의 수명으로 지불한 대가.
펠로우실로 돌아가야 했다. 기록을 남겨야 했다. 수술 소견서, 경과 기록, 환자 상태 모니터링. 모든 절차가 정확해야 했다. 최태성 과장의 전화 이후 이 수술은 더 이상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병원의 공식 기록이 될 것이었다.
복도를 걸으며 생각했다. 박경숙의 남편이 지금 어떤 표정을 하고 있을까. 의료진의 '수술 불가능' 판정에서 '성공적 수술'로 바뀐 현실.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난 아내. 그 남편은 감사의 눈물을 흘리고 있을 것이다.
서인호는 그 남편의 얼굴을 상상했다. 그리고 자신이 받게 될 감사가 어떤 무게를 가질지 예측했다.
펠로우실 문을 열었을 때 박민준이 있었다.
박민준은 침대에 누워 있었다. 당직은 아니었지만, 서인호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았다. 서인호가 들어오자 천천히 일어나 앉았다. 침대 가장자리에 발을 내려놨다.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박경숙 환자, 진짜 수술했어?"
"응."
"타입 A인데? 그 환자는..."
"살았다."
박민준의 얼굴이 굳었다. 불가능한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Type A 대동맥 박리는 4시간 이내에 수술하지 않으면 사망률이 90퍼센트를 넘는다. 박경숙이 응급실에 도착했을 때 이미 2시간 50분이 경과했고, 모든 검사 결과가 수술 불가능을 나타냈다. 그런데 살았다.
박민준은 침대에서 일어섰다. 서인호 쪽으로 몸을 돌렸다. 하지만 눈은 마주치지 않았다. 그 대신 손가락으로 침대 시트를 집었다. 시트가 팽팽해지더니 손가락 끝에서 피가 맺혔다. 손톱이 파고들었던 것이다.
"어... 어떻게?"
서인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의자에 앉으려 했다.
"봤어."
박민준의 목소리가 갈라져 있었다.
"뭘?"
"응급실에서. 넌 박경숙 환자를 봤을 때... 다르게 봤어. 다른 의사들처럼 보지 않았어."
서인호는 박민준을 봤다. 박민준은 여전히 시트를 집고 있었다. 손가락이 흰색으로 변했다.
"뭔가 봤잖아. 우리가 못 보는 뭔가."
"그런 건 없어."
"거짓말하지 마."
박민준이 마침내 서인호의 눈을 마주쳤다. 그 눈에는 의심만 있었다. 좋은 의사가 되고 싶다는 욕망과 친구를 잃어버릴 수 있다는 두려움이 함께 섞여 있었다. 하지만 더 강한 것은 배신감이었다.
서인호는 침묵했다.
박민준이 일어섰다. 침대에서 내려와 서인호를 마주했다. 거리는 1미터도 안 됐다. 가까웠다. 너무 가까웠다.
"인호, 제발... 뭔가 잘못되고 있는 거 아니야?"
서인호는 박민준을 보지 않았다. 그것이 더 상처를 줄 것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이미 선택된 길 위에 있었으니까.
박민준이 다시 말했다. 목소리가 낮았다.
"넌 달라졌어. 너무 많이."
침묵이 흘렀다. 그 침묵 속에서 박민준의 손가락이 시트에서 떨어졌다. 손가락 끝은 여전히 흰색이었다. 혈류가 끊겨 있었다. 아주 작은 것이지만, 분명한 손상. 친구 사이의 신뢰가 금이 가는 소리처럼 들리지 않았지만, 그것이 바로 그 소리였다.
박민준은 침대로 돌아가 누웠다. 얼굴을 벽 쪽으로 돌렸다. 서인호는 그 뒷모습을 봤다. 어깨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밤이 깊어갔다. 응급실은 여전히 환자들로 가득했다. 심근경색, 폐색전증, 급성 뇌경색. 죽음의 신호를 받은 환자들이 계속 들어왔다. 서인호는 대기실에서 모니터를 봤다. 응급 환자 리스트가 떴을 때마다 자신의 가슴이 반응했다. 검은 실이 흔들리는지 확인하려고.
새벽 3시 47분.
노재훈 원장의 전화가 왔다.
"서인호 펠로우."
목소리가 낮았다. 위협적이었다.
"예, 원장님."
"박경숙 환자 수술. 최 과장한테서 보고받았다. 뭘 한 거야?"
"의료 불가능 판정을 받은 환자를 제 책임 하에 수술했습니다."
"내 말은, 어떻게 가능했냐는 거야."
서인호는 침묵했다. 원장이 기다렸다. 그 침묵 속에서 서인호는 자신이 무엇인지 생각했다. 의사인가, 아니면 괴물인가. 생명을 구하는 자인가, 아니면 생명을 빼앗는 자인가.
"의료 판단입니다."
"의료 판단? 그 환자는 모든 검사에서 수술 불가능이었다. 심장초음파, CT, 혈액검사. 전부다. 그런데 넌?"
"환자의 생명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의료윤리를 위반하고?"
"환자를 살렸습니다."
전화 너머에서 노재훈의 숨소리가 들렸다. 길고, 깊고, 위험했다. 그 다음 나온 말은 차분했다.
"좋다. 그럼 내일 오전 9시에 내 사무실에 와. 그리고 모든 의료 기록을 가져와. 윤리위원회에서 검토하겠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서인호."
"예?"
"이 일이 어떻게 알려질지 생각해 봤나? 기록 조작 의혹도 나올 수 있다."
전화가 끊겼다.
서인호는 휴대폰을 내려놨다. 손이 더 심하게 떨렸다. 이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원장의 소환은 윤리위원회 소환을 의미했다. 공식 조사, 기록 검증, 언론 보도.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자신을 어떤 방향으로든 몰아갈 것이었다.
응급실에서 호출음이 울렸다. 새로운 환자. 급성 대동맥 박리 의심.
서인호는 일어섰다. 박민준이 말했다. 여전히 벽을 향하고 있었다.
"인호, 잠깐만."
서인호는 멈추지 않았다. 응급실로 향했다.
그곳에는 또 다른 검은 실이 떨리고 있었다.
58세 남성. 대동맥 협착증 의심. 남은 시간 4분 38초.
서인호는 신호를 따라 움직였다. 응급실 의사들은 기본 생명 유지 처치를 하고 있었다. 서인호가 다가갔을 때 의료진들의 표정이 달라졌다. 박경숙 수술의 소식이 이미 응급실에까지 전해져 있었던 것이다.
"펠로우 서인호, 이 환자 봐줄래요?"
응급실 의사가 물었다. 목소리에는 기대감이 섞여 있었다. 주변 의료진들도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기적을 기대하는 신자들처럼.
그 시선의 무게가 서인호의 어깨에 내려앉았다. 이미 그는 '기적의 의사'가 되어 있었다.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이 환자를 외면할 수 없었다. 모두가 자신을 보고 있었으니까.
"수술해야 합니다."
"지금?"
"지금."
응급실은 움직였다. 이미 준비 중인 상태였다. 박경숙 수술의 성공 소식이 전해진 이후, 응급실 의료진들은 불가능한 환자도 서인호에게 보낼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서인호는 수술실로 향했다. 간호사들이 그를 따랐다. 그 중에 김은지도 있었다.
"인호, 이 환자는 응급 수술도 위험하대요."
"알겠습니다."
김은지는 말을 멈추고 수술실 준비를 계속했다. 그녀도 느끼고 있었다. 뭔가 달라진 것을. 서인호의 움직임이, 그의 시선이, 그의 존재 자체가.
수술대에 환자를 올렸다. 마취 유도. 절개 준비.
서인호는 환자의 가슴을 봤다. 검은 실이 거의 끊어질 듯이 떨리고 있었다. 이번엔 신호가 더욱 선명했다. 아니, 신호가 아니라 명령에 가까웠다.
절개선을 그었다. 신호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의학적 표준이 아니라, 이 환자의 해부학적 구조에서 유일하게 가능한 방향으로.
메스가 피부를 갈랐다.
근육층이 드러났다.
그리고 그 아래에 있어야 할 수 없는 것이 있었다. 박경숙 수술에서도 본 것. 해부학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혈관 배치. 이 환자도 선천적 변이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신호는 정확했다.
"봉합 준비."
서인호의 손이 움직였다. 마치 수백 번 이 수술을 한 것처럼. 아니, 이 환자의 심장 속에서 본 신호가 모든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절개점, 봉합 방식, 혈류 방향, 조직의 취약점.
"완벽해."
누군가 중얼거렸다. 아마도 김은지였을 것이다.
수술은 성공했다. 환자의 맥박이 안정화되었다. 생명의 신호가 돌아왔다.
서인호는 손을 내려놨다. 떨리고 있었다. 손가락의 절반이 투명했다. 정말로.
"코피."
김은지가 말했다. 서인호는 마스크 위로 피가 흐르는 것을 느꼈다. 코에서, 입에서.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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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실을 나온 서인호는 병원 1층 로비로 내려갔다. 대형 모니터가 떠 있었다. 뉴스 채널이 켜져 있었다.
화면에 자신의 얼굴이 나타나고 있었다.
"...성모병원 심장외과 펠로우 서인호 의사. 의료계에서는 '기적의 의사'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어제 Type A 대동맥 박리로 진단받은 환자를 성공적으로 수술했으며, 오늘 새벽에도 대동맥 협착증 환자의 긴급 수술을 성공시켰습니다."
자막이 떴다. 흰 글씨로.
'기적의 의사 서인호'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다'
'의료계 신화의 탄생'
서인호는 그 자막들을 봤다. 글씨가 자신의 피부에 새겨지는 것 같았다. 아주 천천히. 마치 누군가 칼로 자신의 몸에 글을 쓰는 것처럼. 피부가 벌어지고, 글씨가 박혀 들어가고, 다시 봉합되는 과정이 반복되었다.
'기적의 의사'
그 말이 뇌에 박혔다. 목소리가 아니라 물리적 충격으로. 마치 망치로 머리를 맞은 것처럼.
환청이 들렸다. 수술실에서 들었던 환자들의 심박음이. 자신의 심장과 겹쳐서. 두 개의 리듬이 아니라 셋, 넷, 다섯 개의 리듬이. 모두 다른 박자로 울려 퍼지고 있었다.
손가락이 투명해졌다.
더 이상 착각이 아니었다. 손가락의 절반이 투명했다. 뼈와 혈관이 보였다. 그 아래는 공기였다.
휴대폰이 울렸다. 최태성 과장이었다.
"서인호. 지금 뉴스 봤나? 언론에 다 떴다. 원장님이 대응..."
서인호는 전화를 끊었다.
그 다음 울린 건 박민준의 전화였다.
"인호! 뉴스 나왔어! 근데 이게 정상이 아니야. 두 환자 모두 의료 불가능 판정이었는데 넌 어떻게..."
서인호는 또 전화를 끊었다.
응급실에서 또 다른 신호가 들어왔다. 새로운 환자. 또 다른 검은 실.
서인호는 휴대폰을 내려놨다. 그리고 응급실로 향했다.
그의 뒤에서 모니터는 계속해서 같은 뉴스를 반복하고 있었다. 자막이 계속 떴다.
'기적의 의사'
'성모병원의 기적'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손'
서인호는 그 소리를 듣지 않았다. 오직 자신의 심장 속에서 떨리는 검은 실만 들었다.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 응급실 곳곳에서 떨리고 있는 검은 실들. 그리고 자신의 것도.
응급실 문이 열렸다.
새로운 환자가 들어오고 있었다. 60대 여성. 급성 심근경색. 응급 이송.
서인호는 그 환자의 얼굴을 봤다.
박민준의 어머니였다.
응급실의 심박 모니터가 울음을 멈추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