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별의 프로듀서 6화
휴대폰 화면이 울렸다. 이준서는 차 안에서 핸들을 놓고 화면을 확인했다. 박정훈. 엘리트 기획사의 대표였다.
통화 버튼을 눌렀다.
"이준서."
박정훈의 목소리는 차갑고 날카로웠다. 준서는 잠깐의 침묵으로 응답했다.
"너 뭐 하는 거야? 루미너스 말이다. 멤버 중 한 명이 기억을 못 하는 거 알아? 최근 3개월간의 개인사를 완전히 잊어버렸다고. 부모 얼굴도, 고향도. 그게 정상인가? 그게 정상적인 성장인가?"
준서의 손가락이 조금 경직되었다. 박정훈이 말을 이었다.
"너 같은 놈 때문에 우리 산업이 무너진다. 공정한 경쟁이 무너진다. 지금 당장 루미너스를 접어. 아니면 내가 이걸 전부 언론에 흘려버린다. 기억 손실, 비정상적 성장, 모든 것. 너는 망할 거고, 그 아이들도 망할 거다."
침묵.
"들었어?"
준서는 웃음이 나왔다. 가볍고, 차갑고, 약간 미친 웃음이었다.
"박 대표님. 나 루미너스 멤버들한테 최근 기억 손실 있냐고 물어본 적 없거든. 당신이 어디서 그런 정보를 얻었는지 모르겠지만, 그건 기획사 내부 의료 기록이야. 불법 수집이면 당신이 먼저 법정에 가는 거고. 그리고 루미너스는 절대 안 접어. 오히려 더 강해질 거야."
준서는 통화를 끊었다. 손가락 사이에서 옅은 빛이 떨어져 나갔다. 별의 잔상이었다. 아직도 그의 손에는 수확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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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 준서의 휴대폰은 쉴 새 없이 울렸다.
KBC 라디오 방송국에서 확인 전화를 했다. "샛별 대표님, 루미너스가 예정된 방송 편성이 변경되었습니다. 죄송하지만 2주 뒤로 미루게 되었습니다."
그 다음은 협력사였다. "계약 갱신이 어려워졌습니다. 다른 팀과의 콜라보 일정도 취소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또 다른 협력사. 그리고 또. 그리고 또.
준서는 사무실 책상 앞에 앉아 전화를 받고 또 받았다. 최윤호는 한쪽 구석에서 엑셀 파일을 열고 있었다. 계약 취소 건수를 세고 있었다.
"박정훈이 한 거네. 확실해."
최윤호가 말했다.
"산업 내 인맥을 이용해서 우리를 압박하는 거야. 광고 플랫폼에서 루미너스 검색어도 배제했고, SNS 광고 승인도 거절했어. 이건... 조직적인 방해야."
준서는 손을 들었다. 최윤호를 잠시 멈추게 하려는 제스처였다. 그의 손가락이 떨렸다. 아주 미세하게.
"이건 경쟁이야, 윤호. 산업에서 흔한 일이지. 약한 팀은 밀려나고, 강한 팀만 살아남아. 우리는 강해. 루미너스는 강해."
준서의 목소리는 확신에 차 있었지만, 그 말 뒤에는 뭔가 다른 것이 숨어 있었다. 자신을 설득하려는 절박함. 자신의 선택이 옳다고 믿고 싶은 필사적인 욕망.
"이게 경쟁? 이건 폭력이야. 그리고..."
최윤호가 준서의 눈을 직접 마주쳤다.
"너는 뭔가 숨기고 있어. 박정훈이 왜 루미너스 멤버의 기억 손실을 알고 있는 거야? 누가 그걸 알려줬어?"
준서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일어나 창문으로 나갔다. 서울의 도시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어딘가 더 완벽해 보였다. 더 빛나 보였다. 하지만 그 완벽함 뒤에는 뭔가 부서진 게 있다는 걸 이제 준서도 알고 있었다. 그저 보지 않으려고 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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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커룸. 오후 3시.
예나는 거울 앞에 서 있었다. 단독으로. 음악은 나오지 않았다. 그저 침묵 속에서 예나는 춤을 추고 있었다. 어제 무대에서 춘 안무를 그대로 따라 하고 있었다.
턴. 점프. 착지. 손가락 펼침. 다리 회전.
몸이 기억하고 있었다. 완벽하게. 너무나 완벽하게.
하지만 예나의 얼굴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기쁨도, 슬픔도, 긴장도, 해방감도. 그저 움직이는 근육과 움직이는 관절. 정확하고 정밀한 기계 같은 움직임.
예나는 거울 속 자신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손가락이 떨렸다. 아니, 떨리지 않았다. 손가락이 정확히 제자리에 내려왔다. 움직임은 완벽했다.
그런데 그 완벽함 속에서 예나는 자신을 찾을 수 없었다.
예나는 휴대폰을 집었다. 어제 무대 영상을 재생했다. 유튜브에 올라온 루미너스의 공연 영상. 화면 속의 예나는 정말 아름다웠다. 우아했다. 완벽했다.
그런데...
예나는 영상 속 자신의 춤을 따라 했다. 같은 동작을 반복했다. 거울 속 자신과 화면 속 자신이 정확히 겹쳤다. 움직임은 일치했다. 완벽하게 일치했다.
그런데 왜.
예나의 눈빛이 흔들렸다. 화면 속의 자신을 보면서 느끼는 낯섦. 저 사람의 얼굴에 뭔가가 없다는 걸 느꼈다. 표정이 없는 게 아니라, 그 안에 누군가가 없다는 느낌. 마치 자신의 몸을 빌린 다른 누군가가 춤을 추고 있는 것 같은 공포감.
예나는 휴대폰을 내려놨다. 다시 거울을 봤다. 그리고 춤을 추기 시작했다. 같은 안무를. 같은 동작을.
하지만 이번엔 다르게 느껴졌다. 춤을 추는 자신이 아니라, 춤을 당하고 있는 자신. 자신의 몸이 누군가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는 느낌.
'저게... 내 춤이 아니야.'
예나는 중얼거렸다. 영상을 멈췄다. 자신의 얼굴이 그대로 정지되어 있었다. 표정 없는 얼굴. 텅 빈 눈빛.
'이게... 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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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서가 라커룸으로 들어갔을 때, 예나는 여전히 휴대폰 화면을 들고 있었다.
"예나, 뭐 해?"
준서의 목소리에 예나는 고개를 들었다. 느리게.
"어제 무대 영상을 봤어요."
"좋지? 반응 미쳤어. 너희 댄스 싱크로율 99.7%라고 나왔어."
예나는 휴대폰 화면을 준서에게 보였다. 자신의 춤을 추는 영상이었다. 예나의 눈이 준서를 마주쳤다.
"저 사람이... 저예요?"
준서는 화면을 봤다. 그리고 웃음을 지었다.
"당연하지. 그게 너야. 완벽한 너."
"그런데 저 사람 얼굴에 뭐가 없어요. 눈빛이..."
"프로의식이야. 무대 위에서는 감정 대신 기술로 움직이는 거야. 그게 진정한 아티스트야. 나 기쁠 정도야. 너는 완벽해."
준서는 예나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칭찬하는 제스처였다. 하지만 그 손은 무거웠다. 그 무게 안에는 뭔가 다른 것이 흐르고 있었다.
예나는 준서를 바라봤다. 눈동자가 조금 더 커졌다. 뭔가 물어보고 싶었던 것 같았다. 하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준서의 손이 자신을 누르고 있는 것 같은 느낌. 그 손 아래에서 자신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다는 느낌.
준서는 라커룸을 나갔다. 레이와 시아를 찾기 위해.
예나는 다시 휴대폰 화면을 봤다. 자신의 얼굴. 자신의 춤. 자신의 몸.
그런데 그게 자신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춤을 추면서도 춤을 추는 이유를 모르는 자신. 무대 위에서 웃어야 할 때 웃지 못하는 자신. 그게 정말 자신일까.
예나는 거울 앞으로 다시 나갔다. 춤을 추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번엔 춤이 아니었다. 자신의 몸에 일어나는 일들을 관찰하는 것이었다. 마치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의 몸을 보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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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어딘가 다른 곳.
카페에서 한지호는 노트북을 열고 있었다. 루미너스 팬 커뮤니티에 이미 가입한 지 3주가 되었다. 아이디는 '별의 추종자'였다.
그는 최근 팬들의 글들을 스크롤하고 있었다.
'루미너스 요즘 뭔가 달라진 것 같은데... 아무도 안 느껴?'
'완벽한데 왜 섬뜩한 기분이 들어?'
'멤버들이 점점 무표정해지는 것 같아. 무대에서는 미쳤는데 인터뷰할 때 뭔가 이상해.'
'내가 미친 건가? 처음엔 좋아했는데 요즘엔 불편해. 왜지?'
한지호는 이 글들을 캡처했다. 그리고 준서의 최근 영상들을 다시 봤다. 라커룸 촬영본. 준서의 손 움직임. 그 손에서 나오는 빛.
그것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뭔가 있었다. 자연스럽지 않은 뭔가. 의도적인 뭔가.
한지호는 휴대폰으로 최윤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샛별 사무실에 내부 고발자가 있다고 봐. 루미너스 멤버들의 기억 손실 데이터, 수확 전후 뇌파 기록, 팀원들의 녹음 파일까지 있을 거야. 우리가 만나서 얘기해야 할 것 같아.'
메시지는 즉시 읽음 표시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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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6시, 샛별 사무실 복도.
최윤호와 한지호가 마주했다. 한지호는 노트북을 들고 있었다. 화면에는 준서의 손에서 나오는 별의 형태가 확대되어 있었다.
"이게 뭐라고 생각해?"
한지호가 물었다.
"정상적인 에너지 흐름이 아니야. 이건 의도적으로 누군가에게서 뭔가를 빼내는 거야. 그리고 그 대상이 루미너스 멤버들이라는 건 너도 알겠지?"
최윤호는 노트북을 내려다봤다. 준서의 손가락 사이를 떠도는 별들. 그것이 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그것이 자연스럽지 않다는 것은 분명했다.
"그런데..."
최윤호가 말을 잇기 전에 한지호가 계속했다.
"3년 전 의료 기록에서 루미너스 멤버들의 기억 손실이 시작된 시점이 명확해. 그리고 준서가 이 기획사에 들어온 시점과 정확히 일치해. 게다가 팬 커뮤니티에서도 멤버들의 변화를 감지하고 있어. 이건 충분해."
최윤호는 창문을 통해 사무실을 바라봤다. 준서의 자리는 비어 있었다. 그 자리에 앉아 있던 준서를 생각했다. 3년 전 폐업 위기 속에서 절망하던 준서. 그 절망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그런데 준서는 이미 박정훈에게 쫓기고 있어. 산업 내 모든 협력사를 끊었어."
최윤호의 목소리는 낮았다.
"이게 끝일까?"
"그래서 더 좋아."
한지호의 목소리는 차갑고 계산적이었다.
"박정훈이 준서를 무너뜨리는 와중에 우리가 진실을 드러내면, 준서는 도망칠 곳이 없어. 그리고 루미너스 멤버들도 자유로워질 거야."
최윤호는 한지호를 바라봤다. 그의 눈빛에는 정의감이 있었다. 하지만 그 정의감 뒤에는 뭔가 다른 것도 있었다. 자신의 정의가 옳다는 확신. 그 확신이 때론 위험할 수 있다는 걸 최윤호는 알고 있었다.
"증거는 충분해?"
"충분해."
한지호가 노트북을 닫았다.
"그리고 지금이 기회야. 준서가 가장 취약한 순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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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7시, 루미너스의 신곡 연습.
준서는 세 명 앞에 섰다. 레이, 시아, 예나.
"우리는 이미 최고야. 아무도 우리를 막을 수 없어."
준서의 목소리는 확신으로 가득 찼다. 광기에 가까운 확신. 하지만 그 확신 뒤에는 불안이 숨어 있었다. 자신이 만든 세계가 무너지지 않기를 바라는 절박한 불안.
세 아이는 준서를 바라봤다. 그들의 눈빛에는 두려움이 있었다. 자신들이 뭔가 잃어가고 있다는 두려움. 자신들이 누구인지 점점 모르겨 가고 있다는 두려움.
하지만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준서의 목소리가 너무 강했다. 아니, 준서 자신이 너무 강해 보였다. 그들이 거역할 수 없을 만큼.
준서는 손을 들었다.
"다시. 처음부터."
음악이 울렸다. 세 아이의 몸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완벽하게. 정확하게. 기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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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위. 밤 8시.
객석의 팬들은 열광했다. 환호했다. 카메라 플래시가 터져 나왔다. 루미너스는 무대 위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하지만 무대 조명 뒤의 그림자에는 세 아이의 공허함이 드리워져 있었다. 그들의 눈빛 속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마치 누군가가 그들을 비워버린 것처럼.
준서는 무대 옆에서 이 모습을 봤다. 그리고 웃음을 지었다. 성취감에 찬 웃음. 하지만 그 웃음 속에는 뭔가 깨진 게 있었다. 자신의 정당화가 얼마나 허약한지를 자신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예나가 정확한 타이밍에 손을 놨다. 완벽한 안무가 깨졌다.
준서의 웃음이 멈췄다.
예나는 무대 위에서 멈춘 채로 준서를 바라봤다. 춤 도중 손이 멈추고 표정이 흔들렸다. 입을 열었다. 떨리는 목소리로.
"저기... 준서 오빠."
무대 조명이 예나에게 집중됐다.
"저 사람이... 정말 제예요?"
예나의 목소리는 무대 위에 울렸다. 마이크를 통해 증폭된 그 목소리는 객석까지 전달됐다. 팬들의 환호가 잠깐 끊겼다. 뭔가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직관이 관객들을 스쳐 지나갔다.
준서는 무대 옆에서 얼었다. 손가락이 떨렸다. 자신이 만든 세계가 균열을 일으키고 있다는 걸 느꼈다.
레이와 시아는 예나를 바라봤다. 두 사람의 눈빛에도 뭔가가 깨어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자신들이 무엇을 잃었는지 자각하는 순간의 공포. 그것이 얼굴에 묻어났다.
"예나, 계속해."
준서의 목소리는 낮고 단호했다. 무대 위쪽 스피커를 통해 전달됐다. 하지만 그 목소리에는 위협이 실려 있었다.
예나는 움직이지 않았다. 무대 조명 아래서 그의 몸은 떨리고 있었다.
"저는... 왜 춤을 추고 있어요?"
객석에서 웅성거림이 들렸다. SNS에 실시간으로 무언가가 올라가고 있을 거였다. 라이브 스트림이 진행 중이었다. 이 장면은 지금 인터넷 전역에 퍼지고 있었다.
준서는 무대 쪽으로 빠르게 걸어갔다.
"예나. 지금 뭐 하는 거야?"
목소리에 위협이 실려 있었다. 하지만 그 위협 뒤에는 공포가 있었다.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무언가가 시작되었다는 공포.
예나는 무대 위에서 뒤로 물러났다. 레이가 예나의 팔을 잡았다. 시아도 움직였다. 세 명 사이에 뭔가가 흐르고 있었다. 기억이 돌아오는 듯한 느낌. 자신들이 잃어버렸던 감정들이 조각조각 모이기 시작하는 것처럼.
"제가... 제가 뭘 잃어버렸는지 알 것 같아요."
예나의 목소리가 떨렸다.
"레이 언니는 자꾸 누군가를 찾고 있어요. 시아는 자기 목소리가 없다고 했어요. 그리고 저는... 저는 춤을 추면서도 왜 춤을 추는지 모르겠어요."
객석이 조용해졌다. 팬들의 환호가 멈춘 지 오래였다. 카메라 플래시도 더 이상 터지지 않았다. 뭔가 무언가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모두가 감지했다.
한 팬이 휴대폰을 들었다. 화면 속에는 자신이 좋아하던 완벽함이 사실은 파괴였다는 깨달음이 비쳤다. 옆의 팬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자신들이 사랑했던 팀이 사실은 고통 속에 있었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는 눈물.
또 다른 팬은 일어나 앉았다. 자신의 응원이 누군가의 착취를 정당화했다는 깨달음. 그 죄책감이 얼굴에 드러났다.
준서는 무대 위로 올라갔다. 빠르게. 예나에게 손을 뻗었다. 그 손에서 희미한 빛이 나타났다. 은은한 별의 형태. 예나의 몸 주변에 떠 있는 에너지를 집으려는 동작. 마지막 수확.
그때 레이가 예나 앞으로 나섰다.
"안 돼요."
레이의 목소리는 작았지만 분명했다.
"우리가 뭘 잃어버렸는지 우리도 몰라요. 근데 뭔가를 잃어가고 있다는 건 알아요. 준서 오빠, 우리한테 뭘 한 거예요?"
준서는 손을 멈췄다. 손가락 사이에서 별이 사라졌다. 그의 손이 떨렸다.
"넌 뭐라는 거야? 난 너희를 구했잖아. 버려진 아이들을 무대 위에 세웠잖아."
목소리가 높아졌다. 절박함이 드러났다.
"이게 성공이 아니면 뭐야? 이게 꿈이 아니면 뭐야?"
"꿈이 아니에요."
시아가 입을 열었다. 래퍼의 목소리. 그것이 되찾아지고 있는 것처럼 들렸다.
"꿈이라는 건 우리가 원했던 거잖아요. 근데 지금 우리는 뭘 원하는지 모르겠어요. 뭘 좋아하는지도 모르고. 누가 우리인지도 모르고."
시아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우리가 완벽해진 대신 우리가 사라졌어요."
객석의 팬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 팬이 일어섰다. 그 팬의 눈빛에는 자신들이 사랑했던 팀을 위해 뭔가를 해야 한다는 결연함이 있었다. 다른 팬들도 일어났다. 휴대폰을 들었다. 이 장면을 기록하고 있었다. 증거로서. 증언으로서.
준서는 무대 위에 서 있었다. 손이 떨렸다. 손가락이 떨렸다. 자신이 해온 일들이 한 순간에 무너지는 것 같은 느낌. 자신이 정당화해온 모든 것들이 거짓이었다는 깨달음.
"그럼 뭐하자는 거야? 우리가 여기까지 왔잖아. 차트 1위야. 전국 투어야. 팬들이 우리를 사랑해."
준서의 목소리에 절박함이 담겨 있었다. 자신의 선택이 옳았다고 누군가 말해주길 바라는 절박함.
"이 모든 걸 버리라고?"
"우리가 버린 게 아니라 오빠가 우리한테서 빼앗은 거예요."
레이의 목소리가 차가워졌다.
"우리는 원래 이렇게 완벽하지 않았어요. 우리는 어색했고, 실수했고, 감정이 있었어요. 그게 우리였어요. 근데 오빠는 우리를 도구로 만들었어."
준서는 무대에서 내려갔다. 걸음이 비틀거렸다. 자신의 세계가 무너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무너짐 속에서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객석의 팬들은 조용했다. 누군가는 울고 있었다. 누군가는 휴대폰 화면을 들었다. 누군가는 일어서서 나가고 있었다. 자신들이 사랑했던 완벽함이 사실은 파괴였다는 깨달음. 그 깨달음이 얼굴에 드러났다.
준서는 무대 옆으로 나갔다. 라커룸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의 발걸음은 도망치는 것처럼 보였다.
복도에서 최윤호가 서 있었다. 휴대폰을 들고 있었다. 화면에는 라이브 스트림 영상이 재생되고 있었다. 준서와 루미너스가 무대 위에서 벌이고 있는 일들. 모든 것이 기록되고 있었다.
"최윤호."
준서가 멈춰 섰다. 그의 목소리는 이미 부서져 있었다.
"이건... 이건 안 돼. 이건 산업 내 기밀이야. 이건..."
"이건 범죄야."
최윤호의 목소리는 낮고 단호했다.
"너는 아이들의 정체성을 빼앗았어. 그리고 그걸 정당화했어. 팬들의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성공이라는 이름으로."
최윤호는 휴대폰 화면을 준서에게 보였다. 3년 전 의료 기록. 루미너스 멤버들의 기억 손실이 시작된 정확한 시점. 그리고 수확 전후 뇌파 데이터. 그리고 팀원들의 녹음 파일들. 모든 증거가 거기 있었다.
"이게 증거야. 모든 게 기록되어 있어. 너는 계획적으로 아이들을 파괴했어."
최윤호의 휴대폰이 울렸다. 한지호였다. 통화 버튼을 눌렀다.
"최윤호? 모든 영상이 SNS에 퍼지고 있어. 트렌드 1위야. 그리고 박정훈이 움직이고 있어. 이 기회를 이용해서 준서를 무너뜨릴 거야."
한지호의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들렸다.
"근데 그게 문제가 아니야. 문제는 지금 루미너스 팬들이 깨어나고 있다는 거야. 자신들이 사랑했던 팀이 사실은 파괴됐다는 걸. 그리고 그 파괴의 주인공이 프로듀서라는 걸."
한지호의 목소리에는 승리감이 있었다. 하지만 그 승리감 뒤에는 뭔가 다른 것도 있었다. 정의라는 이름 아래 누군가를 무너뜨리는 쾌감.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한지호는 모르고 있었다.
준서는 벽에 기대었다. 숨을 쉬기가 힘들었다.
"지금 무슨 일이..."
"너를 고발하는 일이지."
최윤호가 준서를 바라봤다. 그의 눈빛에는 동정이 있었다. 하지만 그 동정 뒤에는 냉정함도 있었다.
"3년 전 폐업 서류 앞에서 넌 절망했어. 그 절망이 너를 이렇게 만들었어. 하지만 넌 선택할 수 있었어. 아이들과 함께 천천히 가는 것. 그들의 속도에 맞춰가는 것. 근데 넌 지름길을 택했어. 그리고 그 지름길의 끝에는 아이들의 파괴가 있었어."
준서는 입을 열려다 닫았다. 할 말이 없었다. 자신의 선택이 옳았다고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자신의 선택이 틀렸다고 인정할 수도 없었다.
그때 복도 저쪽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빠르고 결연한 걸음. 박정훈이었다. 몇 명의 보좌관들을 거느리고 있었다.
"이준서 대표."
박정훈의 목소리는 냉정했다.
"네가 산업을 어떻게 다뤘는지 다 알고 있어. 불공정한 능력. 아이들의 착취. 그리고 그 과정에서의 모든 기록들."
박정훈의 손가락이 준서를 가리켰다.
"너는 끝났어. 샛별은 끝났어. 그리고 루미너스도 끝났어. 이제 넌 내 몫이야."
준서는 벽에서 떨어졌다. 손가락이 떨렸다. 손가락 사이에서 별이 나타났다. 마지막 별. 자신의 것. 자신의 절망. 자신의 욕망. 자신의 죄책감이 모두 담긴 별.
그 별을 바라보며 준서는 생각했다. 이 모든 게 뭐였을까. 성공? 꿈? 아니면 그저 절망에서 벗어나려는 필사적인 몸부림?
그 순간, 라커룸 문이 열렸다. 레이, 시아, 예나가 나왔다.
"준서 오빠."
레이가 앞으로 나섰다. 무대 위에서의 분노는 사라져 있었다. 대신 그 자리에는 깊은 슬픔이 있었다.
"우리를 돌려줄 수 있어요?"
준서는 그 질문에 답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자신도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이 한 일이 뭐였는지. 자신이 왜 이 모든 걸 해온 건지.
손가락 사이의 별이 사라졌다. 빛이 꺼졌다.
그리고 무대 위의 조명도 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