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 완벽함의 함정

최윤호가 사무실 문을 열었을 때, 준서는 휴대폰 화면을 들었다.

"아이들 봤어?"

"봤어."

"봤다고? 이게 뭐 하는 짓이야?"

최윤호가 책상 앞에 선 준서의 어깨를 잡으려 했다. 준서는 몸을 돌렸다. 그의 눈은 휴대폰에 고정되어 있었다.

"시아의 음성 대역폭이 38% 떨어졌어. 어제 녹음한 음원이랑 비교해봤어. 음질이 완전히 달라."

최윤호가 책상을 내려쳤다.

"그게 뭐가 중요해? 아이들이 무너지고 있는데!"

"무너지는 게 아니야. 더 완벽해지는 거야."

준서가 휴대폰을 내렸다. 최윤호의 눈을 똑바로 봤다.

"루미너스 전국 투어 확정. 서울, 부산, 대구, 인천… 12개 도시 20회 공연. 이건 메이저 하우스도 1년에 한 번 할 수 있는 규모야. 지금까지는 기초였어.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야. 무대는 완벽함을 요구해."

"너는 정말로 그 말을 믿고 있구나."

최윤호가 한 발 물러섰다. 준서를 보는 그의 시선이 변했다. 실망이 아니라, 두려움이었다.

준서는 대답하지 않았다. 휴대폰이 또 울렸다. 라디오 방송국에서 온 메시지였다.

---

라커룸. 오후 3시 30분.

준서가 문을 닫고 들어왔을 때, 세 명이 모두 거울을 보고 있었다. 레이는 앉아있고, 시아와 예나는 서 있었다. 누구도 움직이지 않았다.

"준비됐어?"

그들이 돌아봤다. 그 돌아보는 동작마저 정확하고 기계적이었다.

"오늘 더 한 단계 올라갈 거야. 전국 투어가 확정되면서 팬들의 기대도 올라갔어. 그 기대를 넘어서야 해."

준서가 한 발 물러섰다. 손가락 끝에서 옅은 빛이 맴돌기 시작했다.

"이번엔 네 개를 가져갈 거야. 너희 중 누군가는 정말 중요한 것을 잃게 될 거다."

레이가 입을 열었다.

"준서 오빠… 지금 뭐 하려고…"

"조용해."

준서의 목소리가 차가웠다.

준서가 레이에게 손을 올렸다. 거리는 30센티미터. 레이의 몸 주변에 떠있는 별들이 반응했다. 투명한 결정체들이 천천히 준서의 손을 향해 모여들기 시작했다.

첫 번째 별, 두 번째 별, 세 번째 별. 그리고 네 번째 별이 천천히 떨어져 나왔다.

그 별은 다른 것들과 달랐다. 따뜻한 황금색이었다. 엄마의 얼굴이 그 안에 어렴풋이 떠올랐다. 모성애. 엄마를 향한 그리움. 레이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던 것.

"아, 아…"

레이가 목을 긁었다. 마치 숨이 막히는 것처럼.

별들이 준서의 손 안에 들어갔다. 손가락 끝에서 나오는 빛이 순간적으로 밝아졌다가, 천천히 사그라들었다.

레이의 눈이 변했다. 동공이 수축했다. 눈물이 맺혔다가 마른다. 무언가 소중한 것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끼는 듯한 표정이었다.

"레이?"

시아가 옆 사람을 봤다.

레이가 천천히 일어났다. 움직임이 정확했다. 하나하나가 계산된 것처럼. 마치 프로그래밍된 로봇처럼.

준서가 이번엔 시아에게 손을 올렸다. 시아의 몸 주변에 떠있는 별들이 반응했다. 시아는 눈을 감았다.

"왜? 우리 잘하고 있잖아."

시아의 목소리였다. 하지만 그 목소리에는 의문이 아니라 항복이 들어있었다.

별들이 준서의 손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번엔 다섯 개였다. 별들이 더 많았다. 시아의 별이 더 깊고, 더 강했다.

시아의 눈이 감겼다. 그대로 감긴 채 있었다. 몇 초가 지났다. 10초. 15초. 시아가 눈을 떴다.

"내 목소리가…"

시아가 중얼거렸다. 손을 목에 올렸다.

"뭔가… 이상해."

"정상이야. 적응 기간일 뿐이야."

준서가 마지막으로 예나에게 손을 올렸다. 예나는 이미 준비하고 있었다. 마치 순서를 기다리고 있던 것처럼.

"예나는?"

"괜찮아. 해줘."

예나의 목소리는 평탄했다. 감정이 없었다. 아니, 감정이 없기를 선택한 것처럼 들렸다.

별들이 소용돌이쳤다. 예나의 별은 가장 아름다웠다. 색깔이 다채로웠다. 주황색, 분홍색, 노란색. 춤에 대한 열정, 무대에 대한 꿈, 자신이 존재하는 이유들.

모두가 준서의 손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예나가 넘어질 것처럼 흔들렸다. 시아가 잡아줬다. 그것도 정확한 동작이었다. 마치 안무의 일부인 것처럼.

준서가 손을 내렸다. 손가락에서 나오는 빛이 사그라들었다. 그의 얼굴에는 쾌감이 드러났다. 눈이 반짝였다. 입가에 웃음이 떠올랐다. 마치 중독된 것처럼.

---

라커룸 밖. 복도.

최윤호가 벽에 기대 있었다. 휴대폰으로 뭔가를 녹음하고 있었다.

"4월 15일, 오후 3시 30분. 라커룸 내부에서 비정상적 음파 감지. 지난 기록과 비교하면 진동 강도 약 35% 증가. 대규모 수확 행위 진행 중."

그가 휴대폰을 내렸다. 화면에는 스프레드시트가 떠있었다. 세 줄의 데이터. 레이, 시아, 예나. 각 줄마다 수십 개의 숫자들이 있었다. 기억 손실률, 감정 표현 지수, 신체 반응 시간, 음성 대역폭.

모두 아래로 향하고 있었다.

---

라커룸. 다시.

레이가 휴대폰을 집었다. 화면을 켰다. 최근 통화 기록. 엄마. 3분 전.

"한 번 걸어봐."

레이가 자신에게 말했다. 마치 누군가 다른 사람에게 명령하는 것처럼.

엄마 번호를 눌렀다. 신호음. 한 번, 두 번.

"여보세요?"

엄마의 목소리였다.

"엄마?"

"응, 뭐해?"

"엄마… 엄마 목소리가…"

레이가 말을 멈췄다.

"뭐가?"

엄마가 묻고 있었다. 하지만 레이는 대답할 수 없었다. 뭔가 중요한 것을 잃어버렸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엄마 목소리가… 이렇게 낮았나?"

엄마가 웃음을 터뜨렸다.

"뭐라는 거야? 같은 목소리인데?"

"아… 맞다. 그렇지. 미안해."

레이가 끊었다.

휴대폰을 내렸다. 화면에 통화 기록이 떴다. 엄마. 3분 전. 엄마. 6분 전. 엄마. 12분 전. 엄마. 20분 전.

오늘 하루만 해도 열 번은 엄마에게 전화했을 것 같은데.

왜 전화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뭘 물어보려고 했는데…"

레이가 중얼거렸다. 그녀의 얼굴이 거울에 비쳤다. 표정이 없었다.

시아가 창문으로 나가고 있었다. 복도로 나가는 것 같았다.

"어딜 가?"

레이가 묻지 않았다. 예나도 묻지 않았다. 시아도 답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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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도. 화장실 쪽.

시아가 혼자 섰다. 거울 앞에.

목을 만졌다. 손가락이 목 앞쪽에서 멈췄다.

"내 목소리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거울 속의 시아가 입을 벌렸다.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아니, 뭔가가 나오고는 있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확인할 수 없는 것처럼.

시아가 라이터를 꺼냈다. 옷 주머니에서 찾아낸 것 같았다. 불을 켰다. 혼자 보고 있었다. 마치 뭔가 확인하려고 하는 것처럼. 불을 껐다 켰다를 반복했다.

"내가 왜 래퍼가 되려고 했더라?"

이 질문도 혼잣말이었다.

대답이 없었다. 시아는 라이터를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손가락이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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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커룸으로 돌아가는 복도.

예나가 걷고 있었다. 한 발 한 발이 정확했다. 마치 무대 위에 있는 것처럼.

거울이 있었다. 복도 벽에 붙은 작은 거울. 예나가 멈춰 섰다.

거울 속의 자신을 봤다. 표정이 없었다.

"이건… 내 얼굴?"

손가락으로 자신의 광대뼈를 만졌다. 거울 속의 손가락도 움직였다.

"같은데…"

말을 멈췄다. 무언가 다른 것 같은데,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예나가 무릎을 꿇었다. 갑자기. 거울을 계속 봤다. 목소리가 떨렸다. 처음으로.

"내가 춤을 추는 이유가 뭐였지?"

그리고 다시 한 번, 더 크게.

"준서, 넌 우리를 뭐로 만들고 있어?"

라커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목소리는 이제 절규에 가까웠다.

"나 누구야? 우리 누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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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커룸.

레이와 시아가 예나의 목소리를 들었다. 둘 다 돌아봤다.

예나가 복도에서 돌아오고 있었다. 눈이 빨갛게 충혈되어 있었다.

"우리가 뭐가 됐어? 준서, 대답해!"

예나가 라커룸으로 들어섰다. 준서를 바라봤다.

"지우지 마. 우리를 지우지 마."

목소리가 떨렸다. 그것이 저항이었다.

레이가 일어났다. 움직임이 느렸다. 마치 물속을 걷는 것처럼.

"내가… 엄마한테 뭘 물어보려고 했는데…"

레이가 준서를 봤다.

"넌 우리한테 뭘 한 거야?"

시아도 입을 열었다. 목소리가 갈라졌다.

"내 목소리… 돌려줘."

세 명이 준서를 바라봤다. 그들의 눈에 무언가가 돌아오고 있었다. 완벽함 뒤에 숨겨진 것들. 두려움, 분노, 절망.

그리고 저항.

준서는 한 발 물러섰다. 그들의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입을 열었다가 다시 닫았다.

"이건… 너희를 위한 거야."

"거짓이야."

예나가 한 발 다가섰다.

"우리는 완벽해지고 싶었던 게 아니야. 우리는 우리고 싶었어. 우리가 누구인지 기억하고 싶었어."

레이도 움직였다.

"엄마를 잊고 있어. 내가 엄마를 잊고 있어. 그게 뭐 하는 짓이야?"

시아는 말하지 않았다. 대신 준서에게 손을 내밀었다. 손가락이 떨렸다. 마치 그의 손에서 자신의 것을 빼앗으려는 것처럼.

준서가 뒤로 물러섰다.

"너희가 원하던 거잖아. 완벽함. 무대. 팬들의 사랑."

"우리가 원한 건 그게 아니야!"

예나가 외쳤다.

"우리가 원한 건 함께 자라는 거야. 함께 실수하고, 함께 배우고, 함께 무대에 서는 거야. 이건… 이건 뭐야?"

준서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라커룸 문을 향해 돌아섰다.

"준서!"

예나가 외쳤다. 하지만 준서는 이미 문을 열고 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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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 준서의 책상.

준서가 앉아있었다. 휴대폰을 들었다 놨다를 반복했다.

SNS를 켰다.

#루미너스 최고 - 12만 개의 좋아요

루미너스는 정말 완벽해 - 8만 개의 좋아요

루미너스 없이 못 살아 - 6만 개의 좋아요

전국 투어 표지판 영상이 올라왔다. 12개 도시. 루미너스의 얼굴이 크게 인쇄되어 있었다. 눈이 반짝였다. 입가에 웃음이 있었다.

준서가 그 영상을 본 채 한참을 앉아있었다.

댓글을 읽었다.

"루미너스는 완벽한 아이돌이에요."

"이렇게 좋은 팀은 처음입니다."

"루미너스 때문에 산다."

"이들이 우리의 희망입니다."

준서가 휴대폰을 내렸다. 그의 입가에 웃음이 떠올랐다.

"이들이 원하는 거야. 완벽함. 그리고 나는 그걸 만들어주고 있어."

자신에게 말했다. 마치 확인하려고 하는 것처럼.

"옳은 일이야. 이게 옳은 일이야."

하지만 그의 손이 떨렸다. 휴대폰을 들었던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 순간, 예나의 절규가 귓가에 맴돌았다. '우리를 지우지 마.' 레이의 목소리도 들렸다. '넌 우리한테 뭘 한 거야?' 시아의 갈라진 목소리도.

준서가 고개를 들었다. 아무도 없는 사무실 안에서 그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환청이었다. 하지만 너무 생생했다.

그는 눈을 감았다. 팬들의 댓글이 떠올랐다. '루미너스 때문에 산다.' '이들이 우리의 희망입니다.'

두 세계가 충돌했다. 팬들이 원하는 완벽함과 팀원들의 절규. 둘 다 진실이었다. 둘 다 그가 만든 것이었다.

준서의 손가락이 더 심하게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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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건물 맞은편.

건물이 보이는 카페. 2층.

한지호가 카메라를 들고 있었다. 렌즈가 건물 라커룸 쪽을 향했다. 거리는 약 200미터. 정확한 각도였다.

화면에 라커룸의 일부가 비쳤다. 거울. 세 개의 인물.

한지호가 촬영을 계속했다.

"루미너스, 넌 뭐야?"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완벽함도 너무 완벽하면 이상해. 이건 뭔가 다른 거야."

카메라의 셔터음이 계속 나왔다. 클릭, 클릭, 클릭.

화면에 녹음 표시가 떴다. 영상 녹화 중.

라커룸 내부의 움직임이 포착되었다. 세 명이 준서를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의 입이 움직였다. 말을 하고 있었다.

"…우리를 뭐로 만들고 있어?"

"…돌려줘."

목소리들이 들렸다. 약하지만 분명했다.

한지호가 웃음을 흘렸다.

"시작되는군."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최윤호에게 메시지를 작성했다.

'지금 라커룸에서 뭔가 일어나고 있어. 아이들이 저항하고 있다. 데이터를 보내줄 수 있나? 나도 영상으로 증거를 남겼어. 그리고 내일 직접 준서를 만날 거야. 이 영상과 데이터가 증거가 될 거야. 우리가 함께 움직이자.'

전송.

최윤호로부터 응답이 왔다.

'최윤호: 알았다. 나도 녹음 파일을 정리했어. 모든 기록이 있다. 이제 박정훈에게 알릴 차례야. 그 놈이 움직이기 시작할 거다.'

한지호는 다시 카메라를 들었다. 라커룸을 계속 촬영했다.

포커스는 준서에게 맞춰졌다. 세 명의 저항 속에 서 있는 준서.

그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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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투어 포스터.

서울역 광고판. 가로 15미터, 세로 10미터.

루미너스의 얼굴이 크게 인쇄되어 있었다.

"루미너스 전국 투어 2025 - 12개 도시, 20회 공연 - 완벽한 무대, 완벽한 경험"

텍스트 아래에 세 명의 얼굴이 있었다. 레이, 시아, 예나.

그들의 눈은 밝았다.

포스터 앞에 팬들이 모여 있었다.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고, 자신들의 이름을 외쳤다.

"루미너스!"

"우리 아이들!"

"최고야!"

포스터는 여전히 밝았다. 그 위의 세 얼굴은 여전히 완벽했다.

준서는 포스터를 봤다. 세 얼굴이 밝았다. 하지만 눈이 텅 빈 것처럼 보였다.

마치 누군가가 그 눈에서 무언가를 빼앗아간 것처럼.

팬들이 계속 외쳤다.

"루미너스!"

"완벽해!"

"이들이 최고야!"

준서는 팬들의 환호를 들었다. 그리고 동시에 라커룸에서 들었던 절규를 들었다.

'우리를 지우지 마.'

예나의 목소리가 팬들의 환호를 뚫고 들렸다.

포스터 위의 세 얼굴과 라커룸에서 만난 세 명의 눈. 준서는 둘 사이에 서 있었다.

팬들의 환호가 점점 커졌다. 포스터가 더욱 밝아 보였다.

하지만 준서의 손은 계속 떨렸다.

"준서, 넌 우리를 지우지 마."

예나의 절규가 다시 들렸다. 이번엔 포스터 앞에서.

준서가 고개를 들었다. 포스터를 보는 그의 눈에 무언가가 흔들렸다. 완벽함의 가면에 균열이 생기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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