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 증거

밤 11시 18분. 수술실의 무영등이 정하윤의 가슴을 밝힌다. 한준혁의 손가락이 절개선 위를 움직인다. 가는 떨림 없이, 정확하게.

"압박."

윤태희가 거즈를 건넨다. 동시에 수술실 밖에서 무전기 음성이 울린다.

"대상자 확보. 출입 봉쇄."

경찰이다.

한준혁의 손가락이 멈춘다. 손끝에서 저림이 시작된다.

"의사선생님, 수술 중단하고 나오세요."

경찰관이 수술실 문을 두드린다. 명령조인 목소리.

정하윤의 심장이 손가락 끝에서 뛴다. 아이의 좌심실 벽이 얇아져 있다. 여러 번의 수술을 견딘 흉터들.

손가락 끝의 저림이 손목으로 퍼진다. 신경이 곤두서는 느낌.

남은 시간이 떠오른다.

10일 5시간 42분.

어제보다 18시간 더 늘었다. ECMO가 작동했다. 아이는 살아갈 기회를 얻었다.

하지만 손가락 끝의 저림은 또 다른 죽음을 예고한다.

"불가능합니다."

윤태희가 답한다. 응급실 간호사의 목소리가 아니라, 법을 아는 누군가의 목소리다.

"의료법 제28조. 의료인은 응급 상황에서 환자의 생명 보호를 최우선으로 한다. 현재는 응급 상황입니다."

경찰관이 문 손잡이에 손을 얹는다. 하지만 열지 않는다.

한준혁의 손이 다시 움직인다. 정하윤의 심장을 감싼다. 손가락 끝의 저림이 손목으로 퍼진다.

"닥터 한."

윤태희의 목소리. 그녀는 한준혁의 얼굴을 본다. 손 떨림을 본다.

"봉합 준비."

---

밤 11시 42분. 경찰서 신문실.

박서은은 노트북 앞에 앉아 있다. 화면은 기사 초안으로 가득하다. 제목: 〈의료 거부의 패턴, 312명을 죽음으로 몬 시스템〉

손가락이 마우스 위에서 떨린다.

옆 책상에는 최민준이 있다. 그는 자신의 수술 거부 기록을 들고 있다. 312개 폴더 중 하나를 펼쳐 본다. 자신의 기록과 동일한 거부 사유. 동일한 대리인 이름. 황준식.

"저도 증거가 될 수 있다고요?"

최민준이 묻는다.

"당신이 증거입니다."

박서은이 대답한다.

법률팀의 변호사가 옆에 선다. 그는 문서 한 장을 내민다. 〈의도적 의료 거부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소장〉. 보험사 명의, 황준식 명의, 그리고 병원 이사회의 김준호 명의.

"기사가 나가면 이것들이 증거 자료가 됩니다."

변호사가 말한다.

"기사가 나가지 않으면?"

박서은이 묻는다.

"증거가 아니라 고소 대상이 됩니다."

침묵.

박서은의 손가락이 마우스 위에서 더 심하게 떨린다.

정하윤의 얼굴이 떠오른다. 8살 아이의 가슴을 열어야 했던 이유. 보험사의 거부 판정. '회복 불가능'이라는 경제적 계산.

이수진의 얼굴이 떠오른다. 12살 아이가 응급실 대기실에서 속삭인 말. "엄마, 나 이제 아파서 못 견딜 것 같아요."

최민준의 목소리가 떠오른다. "저처럼 거부당한 수천 명의 환자가 있어요."

박서은의 손가락이 마우스 위에서 멈춘다. 클릭 버튼 위.

호흡이 얕아진다. 심장이 빨라진다. 손가락의 온도가 내려간다.

손가락이 천천히 내려간다.

클릭.

화면이 깜빡인다. 로딩 표시가 나타났다 사라진다.

〈기사가 발행되었습니다.〉

박서은은 손을 내린다. 손가락이 여전히 떨리고 있다.

---

밤 11시 59분. 병원 이사장실.

이사장 김준호는 노트북 화면을 본다. 기사 제목이 뜬다. 〈의료 거부의 패턴, 312명을 죽음으로 몬 시스템〉

그의 얼굴이 창백해진다.

"연결해."

그가 전화기를 집는다.

보험사 대리인 황준식의 목소리가 들린다. 목소리가 떨리고 있다.

"이사장님, 기사가..."

"알고 있다."

"어떻게 해야..."

"한준혁을 찾아. 지금 당장."

---

밤 11시 58분. 수술실.

한준혁은 여전히 정하윤의 가슴을 열고 있다. 아이의 심장이 손가락 끝에서 뛴다. 수술은 성공이다. 이제 남은 것은 봉합이다.

"닥터 한, 기사가 나갔습니다."

윤태희가 말한다. 그녀의 휴대폰이 울린다. 병원 인사팀의 전화. 그녀는 받지 않는다.

"계속하세요."

한준혁이 말한다.

"당신의 능력이 저주가 아니라 증거였어요."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린다. 박서은이다. 그녀는 수술실 밖에서 말한다. 경찰관들 사이로.

"312명의 환자 기록이 모두 당신의 성공률로 인정됐어요. 보험사가 당신의 높은 성공률을 보고 더 많은 환자를 거부했다는 증거. 모두 당신의 손이 만든 증거였어요."

한준혁의 손가락이 멈춘다. 정하윤의 심장 위에서.

"그들은 당신의 기적을 경제 계산으로 만들었어요. 하지만 당신의 기적이 그들의 거짓을 증명했어요."

박서은의 목소리가 수술실을 관통한다.

한준혁의 손이 다시 움직인다. 정하윤의 가슴을 봉합한다. 손가락이 여전히 저려오지만, 움직임은 멈추지 않는다.

---

밤 12시 7분.

경찰관이 수술실 문을 연다. 이번에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는다.

"의사선생님, 조사 협조 부탁드립니다."

경찰관의 목소리는 부드럽다. 더 이상 명령이 아니다.

한준혁은 수술복을 벗는다. 정하윤은 회복실로 옮겨진다. 아이의 심박수는 정상이다. 남은 시간은 10일 5시간 41분.

---

밤 12시 34분. 응급실 대기실.

정하윤의 엄마가 박서은을 본다. 엄마의 눈은 빨갛다. 하지만 눈빛은 다르다.

"당신이 기자분이에요?"

정하윤의 엄마가 묻는다.

"네."

박서은이 대답한다.

"제 증언도 받아주시겠어요? 제 아이가 왜 거부당했는지... 그게 왜 죽음이었는지..."

엄마의 목소리가 떨린다.

"네. 그것이 증거입니다."

박서은이 말한다.

옆에서 이수진의 엄마도 고개를 끄덕인다. 그녀도 박서은에게 손을 내민다. 문서 한 장을 건넨다. 이수진의 보험 거부 기록. 그 아래 적힌 문장.

"나도 증거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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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2시 52분. 경찰서 신문실.

한준혁은 의자에 앉아 있다. 마주 앉은 경찰관은 녹음기를 켠다.

"당신이 보험사의 거부 판정을 알면서도 수술을 강행했다는 고발이 있습니다."

경찰관이 말한다.

"네."

한준혁이 대답한다.

"그 이유는?"

"환자가 살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죽음이 확정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한준혁의 목소리는 차분하다.

경찰관은 한준혁의 얼굴을 본다. 이 사람이 기사에서 읽은 그 의사다. 312명의 환자 거부를 증명한 사람. 하지만 경찰관의 눈에 보이는 것은 죄인의 얼굴이 아니라 증인의 얼굴이다.

"당신의 성공률이 정말 92%입니까?"

경찰관이 묻는다.

"네. 하지만 그것은 내가 거부당한 환자들만 받았기 때문입니다. 다른 의사들은 건강한 환자들을 받습니다. 제가 받는 환자들은 이미 죽음이 거의 확정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기적 같은 성공률이 나옵니다."

한준혁이 설명한다.

"그리고 그 92%의 성공이 보험사가 거부한 312명의 환자를 정당화하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제 성공이 높을수록, 보험사는 더 많은 환자를 거부했습니다. 그것이 기사의 핵심입니다."

침묵.

경찰관은 녹음기를 끈다.

"당신의 변호사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경찰관이 말한다.

---

새벽 1시 17분. 응급실.

한준혁은 다시 응급실로 돌아온다. 윤태희가 기다리고 있다. 그녀의 눈은 피곤하지만 확정적이다. 병원 인사팀으로부터 세 통의 전화가 왔다. 그녀는 답하지 않았다.

"당신은 어떻게 할 거예요?"

윤태희가 묻는다.

"모르겠습니다."

한준혁이 대답한다.

"그럼 저는 말할 수 있어요. 저는 이 병원을 나갈 거예요."

윤태희의 목소리가 단호해진다.

"당신 때문이 아니에요. 당신 때문에 깨달았을 뿐이에요. 시스템을 바꾸려면, 시스템 안에서는 안 된다는 것을."

그녀의 눈이 흔들린다.

"저는 법을 배웠어요. 법이 의료인을 보호하지 못한다면, 법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법을 바꾸려면 먼저 나가야 해요. 당신처럼."

응급실의 무선 호출이 울린다.

"응급 환자 입원. 3번 침상."

간호사의 목소리가 울린다.

한준혁이 일어난다. 윤태희도 일어난다.

응급실 문이 열린다.

들어오는 것은 60대 남성이다. 산재 환자. 건설 현장에서 떨어진 노동자. 척추 손상. 호흡 곤란. 의식 흐림.

한준혁이 남성에게 접근한다. 그의 손이 남성의 팔에 닿는다.

그 순간.

손가락 끝에서 저림이 시작된다. 손가락 끝에서 손목으로, 손목에서 팔뚝으로 퍼져나가는 저림.

남은 시간이 떠오른다.

4일 11시간 23분.

한준혁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숨을 쉬기 어려워진다.

또 다른 죽음이 온다.

한준혁은 눈을 든다. 응급실 천장을 본다. 밝은 무영등. 그 너머의 어두운 천장.

"수술 준비."

한준혁이 말한다.

"이 환자를 죽게 놔둘 수 없습니다."

윤태희가 움직인다. 하지만 그녀의 움직임은 이제 다르다. 병원의 명령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신념을 따르는 것이다.

응급실의 다른 간호사들도 움직인다. 의료 기구들이 모인다. 모니터가 켜진다. 산재 환자의 심박수가 화면에 나타난다.

새벽 1시 41분.

한준혁이 수술실로 들어간다.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린다. 휴대폰 목소리. 기자 박서은이다.

"닥터 한, 이사장에게서 전화가 왔어요. 당신에 대한 고소장을 준비 중이래요. 당신뿐만 아니라, 모든 협력자들을 고소하겠대요."

박서은의 목소리가 울린다.

"알겠습니다."

한준혁이 대답한다.

"그런데 뭔가 이상해요. 이사장이 너무 서둘러요. 마치 더 이상 당신을 통제할 수 없다는 걸 아는 것처럼."

박서은이 말한다.

"기사가 나갔기 때문입니다."

한준혁이 말한다.

"이제 제 성공률은 더 이상 병원의 자산이 아니라 증거입니다. 그들은 저를 보호할 이유가 없습니다. 오히려 저가 위험합니다."

박서은의 분석이 맞다.

수술실 문이 닫힌다.

산재 환자의 척추가 드러난다. 손상 부위가 명확하다. 수술 방법이 떠오른다. 한준혁의 손이 움직인다.

새벽 2시 3분.

병원 로비에서 경찰관들이 서 있다. 그들은 체포 영장을 들고 있다. 대상은 이사장 김준호와 보험사 대리인 황준식. 그리고 한준혁.

하지만 한준혁은 수술실에 있다.

경찰관들은 수술실 문 앞에서 선다. 응급실의 간호사들이 수술실 문 앞으로 모인다. 윤태희가 맨 앞에 선다. 그 뒤로 레지던트, 인턴, 간호조무사들이 선다. 한 명, 또 한 명씩.

각자의 이유로.

윤태희는 법을 위해 선다. 의료법 제28조를 지키기 위해.

한 레지던트는 자신이 배운 의학을 위해 선다. 생명 보호라는 원칙을 위해.

한 간호사는 정하윤의 엄마를 위해 선다. 그 엄마가 했던 말. "나도 증거가 될 수 있다."

한 인턴은 자신의 양심을 위해 선다.

경찰관들은 이 벽 앞에서 멈춘다.

"환자가 임계 상황입니다. 의료법 제28조에 따라 수술은 중단될 수 없습니다."

윤태희가 말한다.

경찰관들은 침묵한다.

이 벽을 뚫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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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3시 47분.

산재 환자의 척추 수술이 완료된다. 한준혁의 손가락이 마지막 봉합을 한다.

남은 시간: 4일 11시간 22분.

1분이 줄었다. 하지만 이 1분은 중요하다. 이것은 한준혁의 고통이 1분 더 길어진다는 뜻이다. 하지만 동시에, 이 환자는 1분 더 살 수 있다는 뜻이다.

수술실 문이 열린다.

경찰관이 들어온다. 이번에는 체포 영장을 들고 있지 않다. 대신 한 통의 전화를 건넨다.

"검사님, 피의자 한준혁이 수술 중입니다. 의료법 제28조를 적용하여... 네, 알겠습니다."

경찰관의 얼굴이 변한다. 지시를 받았다.

기다려.

---

새벽 5시 12분.

한준혁은 경찰관과 함께 경찰차에 탄다. 하지만 체포가 아니다. 조사 협조다.

뒤에서 박서은이 따라온다. 카메라를 들고.

"닥터 한, 한 마디만 해주세요."

박서은이 외친다.

한준혁이 경찰차 창문을 통해 본다.

응급실의 간호사들이 수술실 문 앞에 여전히 서 있다. 윤태희도 그 중에 있다. 그녀의 얼굴은 피곤하지만, 눈빛은 명확하다.

경찰차가 출발한다.

새벽 5시 47분.

병원 응급실에 새로운 환자가 들어온다.

40대 여성. 폐암 말기. 호스피스를 권장받은 지 3개월.

간호사들이 환자를 3번 침상에 눕힌다.

응급실에는 한준혁이 없다. 하지만 그의 자리는 비어 있지 않다. 레지던트 한 명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다.

레지던트가 환자에게 접근한다. 손이 환자의 팔에 닿는다.

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환자는 아무것도 모른다. 자신이 보험사로부터 거부당했다는 것을. 자신이 통계의 숫자였다는 것을. 자신이 증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환자는 단지 숨을 쉰다.

그리고 응급실의 천장을 본다. 밝은 무영등이 없는 천장. 단지 병원의 일반 천장.

여기서는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다.

기적은 오직 한준혁의 손에서만 일어난다.

그리고 그 손은 이제 경찰서에 있다.

---

새벽 6시 14분. 경찰서 신문실.

한준혁 앞에 312개의 폴더가 놓여 있다. 거부당한 312명의 환자 기록.

한준혁의 손이 폴더 위에 닿는다. 손가락이 폴더의 모서리를 따라 움직인다. 종이의 질감. 각 폴더 속에 담긴 인간의 무게.

첫 번째 폴더를 펼친다. 박영수. 47세. 폐암 말기. 거부 사유: 회복 불가능. 그 아래 작은 글씨로 적힌 이름들. 가족 이름. 아내 이름. 아들 이름.

손가락이 다음 폴더로 넘어간다. 정하윤. 8세. 심근병증. 거부 사유: 예후 불량. 그 아래 그려진 아이의 그림. 병원 침대에 누워 있는 자신을 그린 아이의 그림. 손가락이 떨린다.

세 번째 폴더. 이수진. 12세. 뇌종양. 거부 사유: 수술 성공률 저조. 그 아래 적힌 일기. "엄마, 나 이제 아파서 못 견딜 것 같아요." 손가락이 더 심하게 떨린다.

네 번째, 다섯 번째, 여섯 번째 폴더들. 이름들이 쌓인다. 김민수. 이영희. 박준호. 손가락이 각 이름을 따라 읽으며 움직인다. 종이를 넘기는 소리가 점점 빨라진다. 하지만 손가락의 떨림도 함께 커진다.

일곱 번째, 여덟 번째... 폴더들이 계속 쌓인다. 손가락이 각 이름을 읽을 때마다 신체에 고통이 누적된다. 손가락 끝의 저림에서 시작된 고통이 손목을 거쳐 팔뚝으로, 어깨로 퍼진다. 호흡이 얕아진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312개. 312명. 312개의 인생. 312번의 고통.

검사가 묻는다.

"이 중 몇 명을 알고 계십니까?"

한준혁이 대답한다.

"셋입니다."

"누구입니까?"

한준혁이 폴더를 펼친다. 박영수. 정하윤. 이수진. 손가락이 세 폴더 위에서 멈춘다.

"이들을 구하기 위해 당신은 보험사의 거부를 무시했습니까?"

검사가 묻는다.

"네."

한준혁이 대답한다.

"그리고 당신은 이제 알고 있습니까? 당신의 성공이 이 312명의 거부를 정당화했다는 것을?"

침묵.

한준혁의 손가락이 폴더 위에서 떨린다. 손가락 끝의 저림. 손가락 전체로 퍼지는 고통. 이것은 312명의 고통이 한 사람의 손에 집중되는 순간이다. 손이 책상 위에서 미끄러진다. 폴더들이 쓸려나간다. 하지만 한준혁의 눈은 계속 각 이름을 따라간다.

"네. 저는 알고 있습니다."

한준혁이 천천히 말한다. 목소리가 떨린다.

"제 기적이 시스템의 부조리를 증명했다는 것을. 제 성공률이 높을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죽어야 했다는 것을. 제 손이 구한 사람들이 많을수록, 제 손이 죽게 한 사람들도 많다는 것을."

한준혁의 목소리가 더 작아진다. 하지만 더 명확해진다.

"그렇다면 당신은 계속할 겁니까?"

검사가 묻는다.

한준혁이 눈을 든다. 검사의 눈을 본다.

"네."

한준혁이 대답한다.

"보험사의 거부가 계속되는 한, 저는 계속할 것입니다. 능력이 있는 한, 저는 계속할 것입니다."

한준혁의 손이 312개의 폴더를 모은다. 손가락이 각 폴더를 정렬한다. 종이 소리가 난다.

"하지만 이제는 혼자가 아닙니다."

한준혁이 말한다.

"윤태희가 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박서은이 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정하윤의 엄마, 이수진의 엄마, 최민준이 증거가 되고 있습니다. 응급실의 의료진들이 선택하고 있습니다."

한준혁의 눈이 검사를 바라본다.

"제 손의 고통이 더 이상 저만의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것이 변화의 시작입니다."

검사는 한준혁의 얼굴을 본다. 이 사람이 죄인인지 영웅인지, 판단하기 어렵다.

하지만 검사가 확실히 아는 것이 하나 있다.

이 사람의 손은 더 이상 병원의 소유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 사람의 손은 이제 시스템을 바꾸는 도구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도구는 더 이상 멈출 수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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