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화 「번아웃」
밤 1시 47분. 응급실 침상 3번.
정하윤의 심박수가 분당 156회를 유지하고 있었다. ECMO 삽입 수술로 생명을 건진 지 9시간. 한준혁은 아이의 손목에 맥박계를 다시 부착하고 모니터를 확인했다. 산소포화도 89%. 위험 수준이었다.
"심초음파 결과 왔습니다."
윤태희가 태블릿을 건넸다. 화면에는 정하윤의 심장 영상이 떠 있었다. 좌심실 박출률이 정상치의 절반 이하였다. 어제 검사에서는 35%였다. 지금은 18%.
한준혁의 손이 움직였다. 아이의 팔목을 잡으려 했다. 그 순간 멈췄다.
손을 거둔 지 채 24시간이 되지 않았다. 정하윤이 말했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죽고 싶어요."* 8살 아이의 입에서 나온 말. 엄마 앞에서, 의사 앞에서 또 말했던 그 말.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준혁은 수술을 했다. 정의라는 명목 아래. 병원이 책임지겠다는 약속 아래. 하지만 지금 모니터에 떠 있는 수치는 그 약속이 얼마나 허약한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심장 이식 대기자 명단에는 여전히 올라갈 수 없는 상태입니다."
윤태희의 목소리가 낮았다. 그녀는 한준혁의 얼굴을 보지 않고 있었다.
"보험사?"
"황준식 대리인이 전화했습니다. ECMO 유지 비용이 하루 800만 원이라면서, 14일까지만 승인한다고."
한준혁의 턱이 경직되었다. 정하윤의 예상 생존 시간은 1개월 15일이었다. 손을 잡은 순간 뇌에 입력된 수치. 불가능한 회복을 암시하는 수치였다. 그런데 보험사는 14일만 주겠다고.
14일이면 정하윤은 죽는다.
"이수진은?"
한준혁이 다른 침상을 바라봤다. 침상 5번. 12살 뇌종양 환자. 오후 4시에 입원했다. 남은 시간은 3일 21시간이었다. 손을 잡자마자 두개골 내 뇌압이 급상승하는 이미지가 떠올랐다. 수술이 필요했다. 뇌종양 감압술. 지금 바로.
"보험사가 거부했습니다."
윤태희가 문서를 내밀었다. 한준혁은 읽지 않고도 알 수 있었다. *회복 불가능한 상태로 의학적 판정. 말기 환자에 대한 적극적 치료는 비용 효율성 측면에서 비추천.* 항상 같은 문구였다. 항상 같은 이유였다.
황준식. 보험사 대리인의 이름이 서명란에 있을 것이다. 최민준이 보여줬던 312건의 거부 판정. 모두 같은 이름이었다.
한준혁은 침상을 떠났다.
응급실 의약품 보관실. 자동 잠금 냉장고 앞에 멈춰 섰다. 손이 떨렸다. 어제 박영수의 고통을 느꼈을 때부터 떨리고 있었다. 폐가 짓눌리는 감각. 심장이 멈추는 순간의 공포. 정확히 48시간 뒤 오후 3시 24분에 박영수는 죽을 것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한준혁은 다시 그 고통을—
손가락이 냉장고 손잡이에 닿았다.
"당신은 뭘 하고 있어요?"
윤태희의 목소리가 뒤에서 울렸다.
한준혁은 돌아서지 않았다. 손잡이를 내려다봤다.
"정하윤을 살렸는데 보험사는 14일만 준다고 했다. 이수진은 3일 21시간 남았는데 거부됐다. 박영수는 내일 죽는다. 그리고 나는—"
"나도 힘들어요."
윤태희가 말을 끊었다.
한준혁은 천천히 돌아섰다. 윤태희의 눈이 빨갛게 충혈되어 있었다. 그녀는 응급실 근무복을 입은 채 한준혁을 바라봤다.
"당신 혼자만 힘든 게 아니에요. 나도 이걸 봤어. 정하윤이 고통받는 거 봤고, 박영수가 죽어가는 거 봤고, 이수진이 입원했을 때 당신이 그 아이의 손을 잡으려고 했다가 만 것도 봤어요."
윤태희가 한 발 다가섰다.
"그리고 난 집에 가서 딸한테 뭐라고 말해야 해? 내일도 일하러 나가야 해요. 월급이 필요하니까. 당신처럼 이 시스템을 바꿀 수도 없고, 그렇다고 떠날 수도 없는 사람이 있다는 거 알죠?"
윤태희의 목소리가 떨렸다.
"내 딸은 학원비가 남았어요. 이 병원을 그만두면 생활비가 떨어진다고. 그래서 나도 계속 여기 있는 거예요. 당신처럼 정의를 말할 수 없는 사람도 있다는 거."
한준혁의 손이 내려왔다.
윤태희가 한 발 더 다가섰다. 그녀의 손이 한준혁의 팔에 닿았다. 그 순간 한준혁의 몸이 경직되었다. 냉장고의 차가움이 아닌 다른 종류의 추위가 그를 관통했다. 누군가의 간절함. 누군가의 절망. 자신과 같은 무게로 누군가가 짓눌려 있다는 깨달음.
"당신도 힘들겠지만, 나도 이 상황이 힘들다는 거 좀 알아줄 수 있을까요?"
한준혁의 눈가가 따뜻해졌다. 눈물이 맺혔다. 그는 고개를 돌렸다. 자신의 손가락이 냉장고에서 떨어지는 순간, 무엇을 깨달았는가. 자신의 능력이 모든 것을 구할 수 없다는 것. 자신의 의료가 시스템의 벽을 넘을 수 없다는 것. 그리고 그 벽 앞에서 윤태희처럼 무너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응급실로 돌아간 것은 1시간 후였다.
한준혁은 정하윤의 침상에 선 채 태블릿을 들었다. 뇌 CT 영상. 심장 초음파. 폐 X선. 모두 절망적이었다. 하지만 그의 손가락은 계속 화면을 넘겼다. 뭔가를 찾고 있었다. 불가능한 것 안에서 가능성을. 의료로 할 수 없는 것을 의료로 하는 방법을.
정하윤의 엄마가 응급실에 들어섰다. 밤 3시 15분이었다. 여인의 얼굴은 창백했다.
"의사선생님."
목소리가 떨렸다.
"제발. 어떻게든 해달라고요. 우리 아이는 죽을 수 없어요."
한준혁은 돌아섰다. 엄마의 눈이 흔들리고 있었다. 아이를 향한 절박함. 의사를 향한 간청. 그리고 그 간청 뒤에 숨겨진 두려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한준혁이 말했다.
그 말이 거짓인지 진실인지, 자신도 알 수 없었다.
밤 4시 22분, 응급실 의료진 회의실.
한준혁은 정하윤과 이수진의 의료기록을 나란히 펼쳐놨다. 옆에는 윤태희가 서 있었다.
"정하윤의 심박 악화는 ECMO 회로 내 혈전 때문일 수 있습니다."
한준혁의 목소리가 차가웠다.
"혈액응고 방지제의 용량을 높이고 6시간마다 회로를 점검하면?"
"그럼 출혈 위험이 높아집니다."
"아이가 이미 죽음 직전입니다."
말이 끝나는 순간 한준혁의 손이 떨렸다. 그는 손을 주머니에 밀어 넣었다.
"이수진의 뇌압은 지금 이 순간에도 상승하고 있을 겁니다. 감압술이 필요해요. 뇌척수액을 배출하고 종양 주변 부종을 감소시키는 수술. 오늘 밤 안에."
"보험사가 거부했습니다."
누군가 말했다. 한준혁은 누구인지 보지 않았다.
"병원 책임으로 진행합니다."
"이사장님이 그걸 허락할까요?"
한준혁의 눈이 들렸다.
"이사장님은 내 성공률이 병원의 자산이라고 했습니다. 그럼 자산을 활용해야죠. 두 아이를 모두 살려야 합니다."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밤 5시 11분, 한준혁의 호출음이 울렸다. 이사장 김준호였다.
"한 원장님, 잠깐 뵐 수 있을까요? 이사회 회의가 있습니다."
병원 이사장실. 30층 창밖으로 도시의 야경이 펼쳐져 있었다. 한준혁이 들어섰을 때 이사장은 책상 뒤에 앉아 있었다. 그의 옆에는 보험사 대리인 황준식이 서 있었다.
"한 원장님의 성공률이 하락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사장이 먼저 입을 열었다.
"작년 같은 기간 대비 이번 달 성공률이 88%라고요. 정말로요?"
한준혁의 눈이 좁혀졌다.
"그건 아직 월말이 아닙니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묻는 거예요. 요즘 환자들이 너무 어려운 케이스라서일까요? 아니면 한 원장님의 집중력이 흐트러졌을까요?"
황준식이 웃음을 흘렸다.
"정하윤 환자 케이스, 정말 기적 같은 회복이었습니다. 심박 악화가 어제 있었는데, 오늘 아침에는 안정화됐다니요. ECMO 관리를 잘하고 계신 모양입니다."
한준혁의 가슴이 철렁했다. 황준식은 정하윤의 상태를 알고 있었다.
"이수진 환자는 어떻게 하실 계획이십니까? 보험사로서는 보호자 상담을 권장하는 입장입니다."
호스피스. 그 말을 안 했지만 의미는 명백했다.
"수술을 진행하겠습니다."
한준혁이 말했다.
"병원 책임으로."
"그러면 비용은?"
"병원에서."
"한 원장님, 현실을 좀 봐야 하지 않을까요?"
이사장이 일어섰다. 그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정말로 한준혁을 걱정하는 의사 같았다.
"당신의 성공률이 병원의 명성입니다. 하지만 성공률이 떨어지면 당신도 힘들고, 우리 병원도 힘듭니다. 그래서 우리는 당신을 지원하고 싶어요. 더 나은 환자들을 보내드리고, 당신이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습니다."
"더 나은 환자라는 게?"
"회복 가능성이 있는 환자들 말입니다. 당신 같은 천재라도 말기 환자만 계속 보면 성공률이 떨어질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우리는 당신을 위해서 환자 배정을 조정하려고 합니다."
한준혁이 이해했다. 그들은 자신의 성공률을 올리기 위해 쉬운 케이스만 주겠다는 것. 그리고 어려운 환자들—보험사가 거부한 환자들—은 다시 어두운 곳으로 보낼 것이라는 뜻. 그것이 시스템의 정의라고 말하면서.
한준혁의 입이 열렸다.
"그건 거절하겠습니다."
"거절이라니요?"
이사장의 표정이 굳었다.
"환자를 선별하는 것은 의료 정의에 배치됩니다. 어려운 환자일수록 더 나은 의료를 받아야 합니다. 그게 의사의 책임입니다."
한준혁의 목소리가 낮았지만 흔들리지 않았다.
"성공률이 떨어진다면 그건 시스템의 문제지, 제 책임이 아닙니다. 보험사가 거부하는 환자들을 제가 살리는 것이 문제라면, 그 문제를 풀어야 합니다. 환자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
황준식이 웃음을 흘렸다.
"한 원장님은 현실을 모르시는군요. 이 시스템은 바뀌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바꿔야 합니다."
한준혁이 말했다.
이사장이 손가락으로 책상을 톡톡 쳤다. 그 소리는 판결처럼 울렸다.
"답변은 내일 오전에 주세요. 환자 배정을 받을 것인지, 아니면 이사장실 열쇠를 반납할 것인지."
한준혁의 눈이 들렸다. 이사장의 얼굴에서 부드러움이 사라졌다.
응급실로 돌아온 한준혁은 시계를 봤다. 밤 11시 47분. 박영수의 임종까지 37분.
한준혁은 침상 6번으로 향했다. 박영수는 이미 의식이 없었다. 얼굴이 회백색이었다. 호흡이 점점 약해지고 있었다. 모니터의 심박수는 분당 38회였다.
손을 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손을 잡으면 박영수의 죽음을 느껴야 했다. 그 고통을 자신의 몸으로 경험해야 했다.
한준혁은 박영수의 침상 옆에 섰다. 정하윤의 침상은 3번. 박영수는 6번. 그 사이에는 다섯 개의 침상이 있었다. 다섯 명의 다른 환자들.
손을 잡으면 정하윤의 심박수가 떨어질 것이다. 한준혁은 그것을 알고 있었다. 자신의 생명력이 한 곳으로 향하면, 다른 곳에서는 그것이 빠져나갈 것이다. 두 생명을 동시에 살릴 수 없다는 절망적인 선택.
밤 11시 52분.
한준혁은 박영수의 손을 잡았다.
극심한 고통이 그의 가슴을 짓누르기 시작했다. 폐가 짓눌리는 감각. 심장이 멈추는 순간의 공포. 마치 자신이 박영수가 되는 것처럼, 자신의 신체가 죽음을 느끼는 것처럼.
박영수의 입이 벌어졌다. 마지막 숨을 내쉬려는 듯 턱이 떨렸다. 호흡이 끊어졌다가 다시 시작되었다. 그 간격이 점점 길어지고 있었다. 30초. 45초. 1분.
한준혁의 무릎이 꺾였다.
"선생님!"
윤태희가 달려왔다. 하지만 한준혁은 손을 들었다.
"괜찮아. 계속해."
정하윤의 침상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 순간—
심박수가 떨어졌다. 분당 156회에서 142회로. 그리고 계속 떨어지고 있었다.
한준혁의 손이 올라왔다. 박영수의 손에서 놓았다. 박영수의 호흡이 멈췄다. 모니터에 평탄한 선이 그려졌다.
그리고 정하윤의 손을 잡았다. 아이의 손목은 따뜻했다. 살아 있는 온기였다.
정하윤의 심박수가 다시 올라갔다. 분당 142회에서 148회로. 그리고 안정되었다.
한준혁의 몸이 흔들렸다. 박영수의 죽음이 그의 손 위에 남아 있었다. 손가락 끝에 맺힌 마지막 체온. 더 이상 돌아오지 않을 생명. 그것이 아직도 떠나가지 않고 있었다. 그것이 증거였다. 증거가 되어야 했다.
침상 6번의 가족들이 울음을 터뜨렸다. 딸. 아내. 그들이 박영수의 시신을 감싸 안았다.
한준혁은 돌아서지 않았다. 정하윤의 손을 놓지 않았다.
"정하윤이 회복되고 있습니다."
윤태희가 모니터를 보며 말했다. 목소리가 떨렸다.
"심박이 안정되고, 산소포화도가 올라가고 있어요."
한준혁은 정하윤의 얼굴을 봤다. 아이의 눈이 떠 있었다. 그리고 한준혁을 보고 있었다.
"아파요?"
정하윤의 목소리가 작았다.
"괜찮아. 이제 아프지 않을 거야."
한준혁이 거짓말을 했다. 아이는 계속 아플 것이었다. 심장은 계속 약해질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이 아이는 살아 있었다. 그리고 자신은 그것을 선택했다. 박영수가 아닌 정하윤을. 죽음이 아닌 생명을. 그 선택의 무게가 영원히 자신의 손 위에 남을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
밤 0시 47분.
응급실 침상 5번에서 경고음이 울렸다. 이수진의 뇌압이 급격히 상승했다.
한준혁의 눈이 들렸다. 박영수의 고통이 아직도 몸 안에 남아 있었다. 하지만 다른 아이가 죽음 직전이었다.
"수술실 준비!"
한준혁이 외쳤다.
"뇌압 감압술. 지금 바로!"
그는 이수진의 침상으로 달려갔다. 12살 아이의 얼굴은 경련으로 비틀려 있었다. 뇌척수액이 뇌를 압박하고 있었다. 시간이 없었다.
한준혁의 손이 이수진의 팔목을 잡았다. 남은 시간이 표시되었다.
3일 21시간이 아니었다.
2주일 3일.
한준혁의 눈이 커졌다. 정하윤처럼. 불가능한 회복을 암시하는 시간. 아이를 살릴 수 있다는 신호.
"수술실로!"
한준혁이 외쳤다.
응급실 로비에는 여전히 사람들이 들어오고 있었다. 자살 시도 환자. 교통사고 환자. 심근경색 환자. 죽음은 끝나지 않고 계속 몰려오고 있었다.
한준혁은 수술실로 향했다.
박영수는 죽었다. 정하윤은 살았다. 이수진은 지금 수술실에 있다.
그리고 내일도 누군가는 죽을 것이다.
수술실 입구에서 한준혁은 멈춰 섰다. 마취 주사기를 들고 있는 손이 떨렸다. 그 손으로 한 명을 살리고, 한 명을 놓아주었다. 그 손으로 다시 생명을 만들어야 한다.
"준비됐습니다, 선생님."
간호사가 말했다.
한준혁은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칼을 들었다.
이수진의 두개골에 첫 절개를 내렸다. 피가 흘렀다. 뇌척수액이 흘렀다.
절개의 정확함. 수술의 우아함. 그리고 그 아래 숨겨진 의료의 한계.
미세수술현미경을 통해 뇌 조직이 확대되었다. 종양은 뇌간 옆에 박혀 있었다. 한 밀리미터의 차이가 죽음과 삶을 나눴다. 한준혁의 손가락이 움직였다. 박리. 흡입. 지혈. 모든 동작이 수십 년의 경험으로 응축된 정밀함이었다.
뇌척수액이 흘렀다. 종양의 경계가 선명해졌다. 칼이 들어갔다. 종양이 조각조각 떨어져 나갔다. 뇌 조직은 보호되었다. 신경은 손상되지 않았다.
한준혁의 손이 멈추지 않았다. 절개. 박리. 흡입. 지혈. 그리고 또 다시.
시간이 흘렀다. 종양의 마지막 부분이 제거되었다. 뇌척수액이 정상적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뇌압이 떨어질 것이다. 이수진은 살 것이다.
한준혁의 손이 떨렸다.
그 손으로 몇 명을 더 살릴 수 있을 것인가. 그 손으로 몇 명을 더 놓아줄 것인가. 그 손으로 이 시스템을 바꿀 수 있을 것인가.
밤 4시 15분, 수술이 끝났다.
이수진의 뇌종양은 99% 제거되었다. 남은 부분은 방사선 치료로 관리할 수 있었다. 아이는 살 것이다.
한준혁은 수술실을 나왔다.
응급실은 여전히 소음으로 가득했다. 울음소리. 의료진의 목소리. 기계음.
윤태희가 한준혁을 맞이했다.
"정하윤이 깨어났어요. 의식이 명확해요."
한준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수진?"
"회복실에서 깨어나는 중입니다. 신경학적 반응이 모두 정상입니다."
한준혁은 침상 6번으로 향했다. 박영수의 침상은 이미 비워지고 있었다. 가족들이 장기 기증 동의서에 서명한 후였다.
한준혁은 빈 침상을 봤다.
그리고 생각했다.
내가 살린 아이들이 있다.
내가 살리지 못한 사람도 있다.
그 차이는 무엇인가.
기술인가. 운인가. 아니면 시스템인가.
윤태희가 한준혁 곁에 섰다. 그녀의 얼굴은 여전히 창백했다. 응급실 근무복의 소매에는 박영수 가족의 눈물 자국이 남아 있었다.
"당신은 어떻게 할 거예요?"
윤태희가 물었다.
한준혁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휴대폰을 꺼냈다. 박서은 기자의 명함을 찾았다. 밤 5시 3분이었다.
"기자님, 저 한준혁입니다."
목소리가 거칠었다.
"만날 수 있을까요?"
한준혁은 잠시 침묵했다. 그 침묵 속에는 결정이 있었다. 이제 더 이상 병원의 울타리 안에만 있지 않겠다는 결정. 더 이상 침묵하지 않겠다는 결정. 박영수의 죽음을 증거로 삼겠다는 결정.
"황준식 대리인의 312건 거부 판정 기록을 모두 공개하려고 합니다."
한준혁의 목소리가 낮았지만 흔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내일 오전 이사장님께 답변을 드리겠습니다."
통화가 끝났다. 한준혁은 휴대폰을 내려놨다. 손이 여전히 떨렸다. 박영수의 죽음과 정하윤의 생명이 그 손 위에 남아 있었다.
윤태희가 한준혁의 손을 잡았다.
"나도 함께할 수 있을까요?"
한준혁은 윤태희를 봤다. 그녀의 눈이 다시 빨갛게 충혈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눈물이 아니었다. 결연한 의지가 그 눈에 담겨 있었다.
"당신의 딸은?"
"학원은 그만둬도 돼요. 하지만 엄마가 옳은 일을 하는 모습을 보는 건 돈으로 살 수 없으니까요."
윤태희의 손이 더 단단해졌다.
응급실 로비의 모니터는 새로운 환자 입원을 알리고 있었다.
그리고 어딘가에서는 또 다른 의사가 또 다른 환자를 봤을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보험사 대리인이 또 다른 거부 판정을 내렸을 것이다.
하지만 한준혁은 더 이상 그것을 방관하지 않을 것이다.
밤은 계속되고 있었다.
그리고 내일, 새로운 싸움이 시작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