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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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수의 죽음은 정확히 48시간 뒤, 오후 3시 24분에 찾아왔다.

한준혁은 그 시간을 알고 있었다. 손가락 끝에서 느껴지던 환자의 남은 생존 시간이 정확히 입력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는 것과 겪는 것은 다르다. 그가 응급실 의약품 보관실 바닥에 쓰러졌을 때, 신체는 박영수의 임종 고통을 고스란히 체험했다.

폐가 수축되고 심장이 멎어가는 감각. 산소 부족으로 뇌가 서서히 꺼져가는 느낌. 그 고통 속에서 신경계는 경련을 일으켰고, 의식은 흐릿해졌으며, 감각은 왜곡되었다. 2분 47초간 지속된 그 지옥은 한준혁의 몸을 완전히 마비시켰다.

의식을 되찾았을 때는 새벽 4시였다. 윤태희가 수액을 다시 꽂고 있었다.

"또 쓰러졌어요. 어제 박영수 환자 같은 상태."

한준혁은 대답하지 않았다. 천장을 바라봤을 뿐이다. 손가락이 떨렸다.

이틀 동안 그는 응급실에 나오지 않았다. 공식적으로는 '건강상의 이유'였다. 비공식적으로는 번아웃이었다. 집의 침대에서 그는 밤새 악몽을 꿨다. 박영수의 죽음, 또 다른 환자들의 죽음, 자신의 손이 아무것도 만지지 않는 꿈. 휴대폰은 울렸다. 이사장 김준호의 문자가 반복적으로 들어왔다.

'의료진 배치 현황상 야간 응급실은 당신이 필요합니다.'

'박영수 사건이 언론에서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당신의 복귀를 기다리겠습니다.'

세 번째 밤, 한준혁은 다시 응급실로 돌아갔다. 선택지가 없었다. 환자들이 있었다. 죽음 직전의 환자들이.

밤 10시 42분. 응급실의 슬라이딩 도어가 열렸다. 어머니가 밀어붙이는 휠체어 위에 앉은 8세 아이. 피부는 창백하고 입술은 푸르스름했다. 응급실 스피커가 울렸다.

"심부전 말기, 정하윤 환자 입원."

한준혁은 그 아이를 보는 순간 알았다. 또 다른 죽음이 도착했다는 것을. 엄마는 간호사에게 매달렸다.

"제발 한준혁 선생님 불러주세요. 그 기적의 의사요. 우리 하윤이는 그 선생님이 아니면 안 돼요."

정하윤의 어머니는 한준혁을 본 순간 달려왔다. 손을 맞잡았다.

"선생님, 제발입니다. 제 아이를 살려주세요."

한준혁은 정하윤의 손을 잡았다.

그 순간, 세계가 숫자로 변했다.

**2주일**

정하윤의 심장 내부가 3D 영상으로 떠올랐다. 좌심실의 비후, 판막의 역류, 관상동맥의 협착. 이 모든 것이 한 번의 수술로 교정 가능했다. 방법도 명확했다. 심장 우측 제4늑간에서 소절개를 하고, 특수 카테터로 판막을 교체한 후, 관상동맥을 우회로 만드는 삼중 수술. 난이도는 높지만, 불가능하지 않았다.

2주일이면 충분했다.

하지만 그 손을 놓는 순간, 한준혁은 알았다. 정하윤의 엄마는 보험사 승인을 받지 못할 거라는 것을. 말기 소아 심부전은 치료 거부 판정의 최상급이었다.

"정하윤 환자의 보험사 확인 완료."

간호사의 보고가 들려왔다. 한준혁은 응급실 전자 보드를 봤다.

**거부 판정 — 호스피스 권장**

정하윤의 어머니는 그 글자를 보는 순간 무릎을 꿇었다.

"아니, 아니에요. 하윤이를 살릴 수 있는 선생님도 있는데 왜..."

한준혁은 그 어머니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박영수의 딸을 떠올렸다. 그리고 박영수의 죽음을. 그리고 그 죽음이 자신의 신체를 관통했던 고통을.

"우선 정하윤 환자를 중환자실로 옮기겠습니다. 편안함을 위한 진정 치료를 시작할게요."

윤태희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것은 의료 전문용어였지만, 실제로는 '죽음을 준비하라'는 의미였다.

한준혁은 응급실 밖으로 나갔다. 더 이상 그 장면을 보고 싶지 않았다.

복도의 자동판매기 앞에 서 있는 여자가 있었다. 30대 초반, 검정 정장, 어깨에 카메라. 그 여자는 한준혁을 본 순간 고개를 들었다.

"한준혁 선생님?"

한준혁은 발걸음을 멈췄다.

"박서은입니다. 의료 전문 기자거든요."

그 여자—박서은은 한 발 다가섰다. 카메라는 여전히 손에 들려 있었다.

"당신의 수술 성공률이 92%라고 들었습니다. 지난 3개월간 말기 환자 25명 중 23명을 살렸다고요."

"취재는 병원 홍보팀을 통해 신청하세요."

한준혁은 돌아서려 했다.

"당신의 성공률은 통계적으로 불가능합니다."

박서은의 목소리가 한준혁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의학적으로 말기 환자의 생존율은 5~10%입니다. 수술 자체가 불가능한 경우가 대부분이죠. 그런데 당신은 92%의 성공률을 기록했다. 3명을 잃었을 뿐입니다."

박서은이 한 발 더 다가섰다. 그녀의 눈빛은 호기심으로 반짝였다.

"당신은 뭔가 다릅니다. 일반적인 외과의사는 아니라는 뜻이에요."

한준혁은 그 여자를 봤다. 그녀의 눈에는 진짜 궁금함이 있었다. 두려움도 없었다. 단지 진실을 알고 싶어 하는 욕망만 있었다.

침묵이 흘렀다. 한준혁은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침묵은 무언의 인정처럼 들렸다. 박서은은 그것을 읽었다.

"코멘트 없으시군요."

"네."

한준혁이 간단히 답했다.

"당신이 말을 안 해도 괜찮아요. 하지만 당신의 손을 봤습니다. 수술실 밖에서 기다리다가 당신이 나오는 걸 봤거든요. 손이 떨리고 있었어요. 마치 뭔가 견디기 힘든 일을 겪은 사람처럼요."

박서은이 명함을 꺼냈다. 흰 카드에 검은 글씨로 적혀 있었다.

**박서은 기자**

**의료 정의 네트워크**

"저는 혼자가 아닙니다. 의료 정의를 위해 일하는 의사, 변호사, 언론인들이 있어요. 보험사의 부당한 거부, 병원의 은폐, 시스템의 모순을 드러내는 사람들이죠. 박영수 사건도 추적 중입니다."

박서은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당신이 뭔가 비밀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이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면, 혼자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우리와 함께라면."

박서은은 그것만 말하고 떠났다. 그녀의 발걸음은 빨랐다. 응급실 쪽으로.

한준혁은 그 명함을 들었다. **의료 정의 네트워크**. 손가락이 떨렸다. 명함을 집어 들었다 놨다를 반복했다.

그가 떨렸다. 손이 떨렸다. 몸이 떨렸다. 하지만 명함을 집어 드는 순간, 떨림 속에 다른 감정이 섞여 들었다. 두려움만이 아니었다.

보험사의 거부. 아이는 죽어가고 있다. 자신은 능력이 있는데도 할 수 없다. 능력을 쓰면 죽음의 고통이 몸을 짓누른다. 그렇다면 계속 혼자 견딜 수밖에 없는 건가?

아니면 다른 방법이 있는 건가?

응급실 문이 열렸다. 윤태희가 나왔다. 그녀는 한준혁이 명함을 들고 있는 것을 봤다.

"당신 괜찮아요?"

윤태희가 물었다.

한준혁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냥 명함을 봤다.

"정하윤 아이는 지금 안정화됐어요. 혈압도 정상이고, 산소 포화도도 올라갔어요. 하지만 보험사는 여전히 수술 승인을 거부하고 있어요. 호스피스 권장 상태 그대로입니다."

한준혁의 눈이 들렸다. 보험사의 거부는 여전했다. 아이는 살아났지만,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이사장님은?"

"오전 9시에 회의실에서 만나자고 했어요. 당신 때문이라고."

한준혁이 고개를 들었다.

"당신 때문에 정하윤 아이가 살았다고요. 기적의 의사라고. 신문에 나간대요. 당신 얼굴 사진까지."

"신문?"

"네. 박영수 환자 사건이 난 뒤로 계속. '말기 암 환자를 살려낸 천재 외과의사'라고요. 병원 홍보팀이 너무 좋아해서... 하지만 당신이 알아야 할 게 있어요."

윤태희가 한 발 더 가까워졌다.

"정하윤 아이의 엄마가 당신을 직접 찾았어요. 아이가 깨어났을 때, 당신을 부르고 있었어요. 당신이 자기를 살렸다고. 당신이 기적을 일으켰다고. 그리고..."

"그리고?"

"당신의 능력이 뭔지 알고 싶어 해요. 당신이 뭔가 특별하다는 걸 느꼈거든요. 엄마가 당신을 봤을 때, 당신의 손에서 뭔가 다른 것을 느꼈대요."

한준혁은 그 말을 들었다. 정하윤의 엄마도 알고 있었다. 자신이 뭔가 다르다는 것을. 박서은뿐만 아니라.

윤태희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정하윤 아이는 당신을 보면서 말했어요. '아저씨, 아파요?'라고. 당신이 고통받고 있다는 걸 느꼈대요."

한준혁은 입을 열지 못했다. 8세 아이가 자신의 고통을 느꼈다는 말이었다.

응급실 스피커가 울렸다.

"정하윤 환자 혈압 급상승. 한준혁 선생님 응급 대응 요청."

한준혁은 명함을 주머니에 넣었다. 응급실로 달려갔다. 정하윤은 침대 위에서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산소 포화도가 떨어지고 있었다. 심장이 멎으려 하고 있었다.

"제세동기 준비해요!"

윤태희가 외쳤다. 한준혁은 정하윤의 손을 잡았다.

**2주일**

그 숫자는 여전히 정확했다. 하지만 이 순간, 한준혁은 알았다. 이 2주일이라는 시간이 정말로 주어질지, 아니면 지금 이 순간이 끝일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을.

보험사의 거부. 이사장의 침묵. 그리고 자신의 무력함.

정하윤의 엄마가 비명을 질렀다.

"제발, 제발 살려주세요!"

한준혁은 그 손을 놓지 않았다.

정하윤의 몸이 한 번 더 경련을 일으켰다. 심장 모니터의 파형이 불규칙해지며 경고음이 울려 퍼졌다. 한준혁은 아이의 손을 놓지 않은 채 응급 상황의 중심으로 이동했다.

"산소 포화도?"

"85%에서 떨어지고 있습니다."

레지던트가 긴장한 목소리로 답했다. 윤태희는 이미 제세동기를 준비하고 있었다. 한준혁의 눈은 모니터에 고정됐다. 심박수가 180을 넘었다.

"에피네프린 1mg 정맥 주입. 산소 농도 100%로 올려."

그는 정하윤의 가슴 위에 손을 올렸다. 흰색 병실 조명 아래서 8세 아이의 갈비뼈가 희미하게 보였다. 그 아래 병든 심장이 절박하게 뛰고 있었다. 한준혁은 압박 위치를 계산했다. 아이의 몸은 성인과 다르다. 압박의 강도, 깊이, 빈도 모두 달라야 한다.

"흉부 압박 시작합니다."

그의 손이 아이의 가슴을 누르기 시작했다. 리듬은 일정했다. 심장 박동처럼. 1분에 100회. 정확했다. 윤태희가 그의 움직임에 맞춰 약물을 밀어 올렸다. 이 둘은 말 없이도 호흡이 맞아떨어졌다. 오래된 신뢰였다.

정하윤의 엄마는 복도에서 울고 있었다. 간호사 하나가 그녀를 붙잡고 있었다. 그 울음소리가 응급실에까지 들려왔다.

"2분 경과."

레지던트가 시간을 재고 있었다.

모니터가 여전히 불안정했다. 심방세동 상태였다. 심장이 효과적으로 피를 내보내지 못하고 있었다. 한준혁은 압박을 계속했다. 그의 이마에서 땀이 흘러내렸다. 응급실의 온도는 18도였지만, 그의 몸은 불타고 있었다.

"제세동기 준비됐습니다."

"3번 충격 준비. 모두 물러나."

윤태희가 외쳤다. 모니터에 200줄의 전기가 입력됐다. 정하윤의 작은 몸이 침대 위에서 한 번 들렸다가 내려왔다.

그 순간, 한준혁은 느꼈다.

죽음의 손길이.

그것은 아이의 가슴 위에서 시작되었다. 차갑고 무거웠다. 마치 누군가 자신의 가슴을 천천히 짜내는 느낌이었다. 그 감각은 손을 타고 팔을 거쳐 전신으로 퍼져나갔다. 폐가 수축되는 것 같았다. 심장이 멎으려 하는 것 같았다. 산소 부족으로 뇌가 흐릿해졌다. 신경은 경련을 일으켰다. 손가락이 저렸다. 시야가 검어졌다가 밝아졌다가 다시 검어졌다. 그것이 반복됐다. 2분 47초. 박영수의 임종 고통이 다시 찾아왔다.

하지만 한준혁은 멈추지 않았다. 압박을 계속했다. 손을 놓지 않았다.

"다시 확인."

모니터를 봤다. 심박수가 60으로 떨어졌다. 불규칙하지만, 생명의 신호가 있었다.

"맥박 돌아왔습니다!"

레지던트가 외쳤다. 윤태희가 정하윤의 목에 손을 올렸다.

"카로티드 동맥, 만져집니다. 의식 확인해 봅시다."

한준혁은 한 발 물러섰다. 그의 손이 떨렸다. 그의 다리가 흔들렸다. 그의 호흡이 끊어질 듯 가빠졌다. 세상이 회전하는 것 같았다. 윤태희가 그를 봤다. 그녀의 눈빛은 걱정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말하지 않았다. 지금은 할 말이 없었다.

정하윤이 작은 신음을 내었다. 눈이 반쯤 떠졌다. 의식이 돌아오고 있었다.

"정하윤 아이, 엄마가 있어. 계속 깨어 있어야 해."

윤태희가 부드럽게 말했다. 하지만 그녀의 손은 정맥주사를 고정하느라 바빴다. 혈압계가 계속 울렸다. 심박수 모니터가 계속 삑삑거렸다.

정하윤의 엄마가 응급실로 들어왔다. 간호사가 막지 못했다. 그녀는 아이 침대로 달려왔다.

"하윤! 하윤!"

"어머니, 아이를 안정시켜야 합니다. 손을 잡아주되 움직이지 마세요."

한준혁의 목소리가 나왔다. 그것은 의사의 목소리였다. 감정 없는 지시였다. 정하윤의 엄마는 아이의 손을 잡았다. 아이는 엄마의 손을 느꼈다. 그의 눈동자가 엄마를 향했다.

응급실 밖으로 나온 한준혁은 벽에 기대섰다. 몸이 떨렸다. 죽음의 손길이 여전히 팔을 타고 흘러내리는 것 같았다. 가슴을 쓸어내렸다. 숨을 들이마셨다. 천천히. 다시. 천천히.

복도는 조용했다. 밤 12시 47분. 응급실의 대기실은 텅 비어 있었다. 자동판매기 앞의 바닥에 뭔가 떨어져 있었다. 하얀 카드. 박서은의 명함이었다.

한준혁은 그것을 집어 들었다.

**박서은 기자**

**의료 정의 네트워크**

손가락이 떨렸다. 명함을 들었다 놨다를 반복했다. 그 손짓 속에는 뭔가 결정이 내려지는 과정이 있었다.

자신이 뭔가 다르다는 것을 이제 모두가 안다. 정하윤의 엄마도, 박서은도, 윤태희도. 숨길 수 없다. 그렇다면 혼자 견디는 것이 답인가?

능력을 쓸 때마다 죽음의 고통이 몸을 짓누른다. 2분 47초의 지옥. 그것을 반복할 수 없다. 하지만 능력을 쓰지 않으면 환자들이 죽는다. 보험사는 거부한다. 시스템은 움직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명함의 글자가 선명해졌다. **의료 정의 네트워크**. 의사, 변호사, 언론인들. 혼자가 아닐 수도.

한준혁은 명함을 꺼냈다. 휴대폰을 켰다. 번호를 입력했다. 화면이 밝아졌다. 통화 버튼이 보였다.

윤태희가 나왔다.

"당신은 천재야. 손으로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하지만 당신 혼자로는 시스템을 바꿀 수 없어. 그것만은 알아줘."

윤태희가 그를 봤다. 그녀의 눈빛은 차분했지만 간절했다.

"혼자가 아니라면, 뭔가 할 수 있을 거야. 당신과 그 기자, 그리고 우리 모두가 함께라면."

한준혁은 그 말을 들었다. 시스템을 바꿀 수 없다. 혼자로는.

하지만 혼자가 아니라면?

손가락이 움직였다. 화면을 터치했다. 통화 버튼을 누르려는 순간—

멈췄다. 손가락이 멈춰섰다.

번호는 저장되었다. 화면은 꺼졌다.

응급실의 심장 모니터가 계속 삑삑거렸다. 밤은 아직 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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