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 본문

이문호의 검이 한유의 목을 향해 내려꽂혔다.

폐허 절터 뒤 골목, 낡은 담장을 등지고 무릎을 꿇은 한유의 몸이 비틀렸다. 검기가 그의 어깨를 스쳤다. 피가 흘렀다. 그것이 세 번째였다. 그 뒤로 이틀.

이틀 동안 이문호는 멈추지 않았다.

천경의 동쪽 시장에서 한 번. 서쪽 다리 위에서 또 한 번. 어제는 거지 검객들이 자주 모이는 주막 앞에서까지 나타났다. 이번엔 달랐다. 이전의 추적은 한유를 시험하는 것이었다면, 이제는 죽이기 위한 것이었다. 칼이 더 빨랐다. 검기가 더 무거웠다. 그리고 한유는 매번 기연을 사용했다.

32명의 죽음을 꺼낼 수밖에 없었다.

"그대는 왜 검을 놓는가."

이문호의 음성이 여전히 귓가에 맴돌았다. 매번 같은 질문이었다. 한유가 기연을 해제할 때마다, 이문호는 검을 거두고 그 말만 반복했다. 마치 한유가 검을 놓는 것 자체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이문호의 손가락이 경련을 일으켰다. 그의 입술이 움직였다. 말이 나왔지만, 그것은 명령에 대한 대답이 아니었다.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이었다.

"그대는 왜 검을 놓는가?"

한유는 손가락으로 담장을 짚었다. 벽면에 다섯 개의 서로 다른 검자국이 남아 있었다. 어제 밤 기연 발동 중에 자신의 손에서 나온 것들이다. 32명이 동시에 움직이려 할 때, 한유의 몸은 더 이상 한 사람이 아니었다.

낮이 되었을 때 처음 깨달았다.

천경의 시장 한복판에서 갑자기 눈앞이 검어졌다. 아니, 검어진 게 아니었다. 다른 것들이 보인 것이었다. 32명의 눈으로 동시에 본 시장. 32명의 귀로 들은 북적거림. 손 위의 검기가 진동했다. 한유는 비명을 지르며 물건을 집어던졌다. 주변 상인들이 뒷걸음질쳤다. 누군가 관군을 부르러 갔다.

밤이 되자 악몽이 시작되었다.

잠을 청해도 눈을 감는 순간, 32명의 죽음이 한번에 밀려들었다. 첫 번째 검객의 마지막 숨을 쉬고, 두 번째 검객의 가슴이 터지고, 세 번째 검객의 뼈가 부러진다. 한 번에. 동시에. 차례대로가 아니라 모두 한꺼번에.

한유의 몸은 경련했다. 입에서는 비명이 나왔다. 그것은 자신의 목소리도 아닌 것 같았다. 32개의 목소리가 겹쳐 있었다.

"한유."

백영이 나타났을 때, 한유는 이미 피를 토하고 있었다. 노검객의 흐린 눈이 한유의 얼굴을 훑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자신의 손을 한유의 가슴팍에 얹었다. 따뜻한 손이 누르자, 한유의 떨림이 조금 줄어들었다.

"기연의 저주가 심해지고 있다."

백영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하지만 그 안에는 깊은 우려가 담겨 있었다.

"처음엔 이렇게 빠르지 않다. 보통 한 달은 견딘다. 하지만 자주 사용하면..." 백영이 말을 멈췄다. "더 빨리 진행된다."

"어떻게 되는 거지?" 한유의 목소리는 쉬었다. "내가... 어떻게 되는 거예요?"

백영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한유의 손을 잡았다. 순간, 한유의 손 위에서 32개의 검기가 동시에 떨렸다.

"이것이 검맥의 저주다. 하지만 이것을 견디는 것이 검맥의 정통성이다."

낡은 목소리가 울렸다. 백영의 눈은 여전히 앞을 보지 못했지만, 그의 시선은 어딘가 훨씬 더 멀리 향해 있었다.

"32명의 죽음을 견뎌내는 것. 그들의 저항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 그것이 황제의 검이 아닌 검맥의 정통성이다."

한유는 떨리는 손으로 백영의 팔을 잡았다. "그들은... 모두 황제를 거슬렀다는 이유로 죽었나요?"

"그렇다."

"그렇다면 나는?"

백영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대는 그들을 증명해야 한다. 그들의 죽음이 정당했다는 것을. 그들의 저항이 옳았다는 것을."

밤거리의 어딘가에서 또 다른 비명이 들려왔다. 이번엔 한유의 비명이 아니었다. 황실 기치들의 고함이었다. 그들은 거리의 거지 검객들을 잡고 있었다. 한유가 어디로 갔는지, 누가 도와주는지를 알기 위해.

연화는 지붕 위에서 그것을 보고 있었다.

암살자의 눈은 차가웠다. 하지만 그 차가운 눈 뒤에는 뭔가가 흔들리고 있었다. 한유가 밤거리에서 비명을 지르며 32명의 죽음에 빠질 때, 연화는 그것을 보았다. 한 사람의 몸에서 32가지의 다른 검술이 흘러나오는 장면. 주변 건물의 벽이 베어 무너지고, 돌이 날아다니고, 한유의 피가 밤공기에 흩어지는 장면. 그 모습은 더 이상 죽어가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저항이었다. 누군가의 죽음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저항.

연화는 손가락을 움직여 자신의 정보망에 신호를 보냈다. 천경 곳곳의 거지 검객들, 방랑 무인들, 황실에서 쫓겨난 자들. 그들은 한유를 숨기라는 신호를 받았다. 신호가 퍼지자, 거리의 거지 검객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 명이 한유를 보면, 다른 한 명이 그를 받아넘기고, 또 다른 한 명이 그를 옮겼다. 황실 기치들이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한유의 흔적이 사라져 있었다. 연화의 정보망이 그를 빨아들인 것이었다.

그 밤, 연화는 황실로 돌아갔다.

황실의 지하 첩보실. 벽은 검은 석조로 이루어져 있었고, 촛불만이 유일한 빛이었다. 연화의 상관은 책상 위의 지도를 보고 있었다. 지도 위에는 한유의 움직임을 추적한 빨간 선이 그려져 있었다.

"보고하라."

"한유는 이미 죽어가고 있습니다."

연화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거짓말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거짓말을 진실처럼 말하는 방식. 암살자의 기술.

"기연의 저주가 점점 심해지고 있고, 낮에도 환각을 경험하기 시작했습니다. 며칠 안에 정신이 완전히 붕괴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더 이상의 추적은 필요 없을 것 같습니다."

상관의 표정이 변했다. 만족이 아니었다. 불만족이었다. 그의 손이 책상을 짚었다.

"그렇다면 다른 방법을 써야겠군."

상관이 몸을 일으켰다. 촛불이 그의 얼굴을 비추었을 때, 연화는 깨달았다. 이 남자는 한유가 죽기를 바라는 게 아니었다. 한유가 죽는 과정을 보기를 원하는 것이었다. 그것도 천천히.

"이문호를 보내라. 이번엔 죽이지 말고, 계속 쫓아가게 하라. 그가 어디로 도망치든, 누가 도와주든."

상관의 입술이 올라갔다. 웃음이 아니었다. 뭔가 다른 것이었다.

"우리는 그 과정에서 모든 것을 알 수 있을 테니까."

연화의 몸이 경직되었다. 이 명령의 의미를 알았다. 이문호를 통해 한유가 누구를 만나는지, 누가 한유를 돕는지, 거리 검객들의 네트워크가 어디까지 뻗어 있는지를 모두 파악하겠다는 뜻이었다.

한유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한유를 미끼로 삼는 것이었다.

연화는 상관에게 절을 했다. 얼굴은 보이지 않도록.

황실을 나간 연화는 천경의 밤거리로 돌아갔다. 지붕을 타고 남쪽으로. 폐허 절터 너머로. 거지 검객들의 신호망이 이어지는 곳으로.

그곳에서 한유를 찾아야 했다. 그리고 이번엔 다른 무언가를 해야 했다.

한유는 절터의 지하실에 있었다. 벽에는 과거의 흔적들이 남아 있었다. 글씨. 낙서. 누군가의 손자국.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숨었는지를 알 수 있는 흔적들.

그리고 한 사람의 그림자가 더 있었다.

"안녕하세요. 한유님."

한 팔의 검객이 어둠 속에서 나왔다. 그의 왼쪽 팔은 팔꿈치 아래가 없었다. 하지만 그의 눈은 매우 또렷했다.

"내 이름은 구화입니다. 백영 선생이 당신을 기다리라고 했거든요."

구화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것은 웃음이었지만, 그 안에는 무언가 다른 것이 담겨 있었다. 누군가를 기다려온 사람의 표정. 오랫동안.

"당신이 정말 황제검맥의 후예입니까?"

한유는 떠는 손으로 대답했다. "내가... 정말 후예인가요?"

구화의 눈이 반짝였다.

"네. 당신은 황제의 사생아일 수도 있지만, 지금 당신의 손에 있는 것은 황제의 검이 아닙니다."

구화가 한 발 더 가까워졌다.

"그것은 검맥의 저항입니다. 그리고 저항은... 죽음을 견디는 자만이 할 수 있습니다."

연화가 절터 입구에 도착했을 때, 지하실 안에서는 이미 대화가 오가고 있었다.

"저항은... 죽음을 견디는 자만이 할 수 있습니다."

구화의 목소리가 들렸다. 연화는 돌 틈새로 신체를 숨기고 내부를 관찰했다. 한유는 무릎을 꿇은 상태였다. 손가락이 떨리고 있었다. 구화는 한 팔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팔의 끝에서 검기가 흐릿하게 피어올랐다.

"죽음을 견딘다는 게... 무슨 말입니까?"

한유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연화는 그 음성에서 뭔가를 감지했다. 공포. 그리고 그 공포를 견디려는 의지. 그것이 섞여 있었다.

"내가 이 팔을 잃었을 때, 나도 죽음을 경험했습니다."

구화가 팔꿈치 아래의 절단면을 들어 올렸다. 흉터가 가득했다. 마치 칼날로 여러 번 헤친 자국처럼.

"하지만 죽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내가 죽음을 받아들이기로 선택했거든요. 그것이 죽음을 견디는 것입니다."

구화가 다시 말했다. 이번엔 더 천천히.

"당신의 손 위의 32명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죽었지만, 죽음 속에서 저항하기로 선택했어요. 그 저항이 지금 당신 안에서 살아 있는 겁니다."

한유의 몸이 더욱 떨렸다. 연화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지하실로 내려왔다.

"그는 거짓을 말하고 있습니다."

연화의 목소리가 어둠을 가르며 떨어졌다.

구화가 몸을 날렸다. 검이 반짝였다. 한 팔로 휘두른 검이었지만, 그 속도는 정상적이지 않았다. 연화가 몸을 날려 피했다. 단검이 공중에서 교차했다. 금속음이 울렸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구화가 물었다. 연화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한유를 바라봤다.

"저항이 아닙니다. 이것은 저주입니다."

연화가 한유에게 말했다.

"당신의 손 위의 32명은 저항하다 죽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들의 죽음이 당신을 강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당신을 천천히 죽이고 있습니다. 그것이 저주의 본질입니다."

한유가 연화를 바라봤다. 그의 눈이 초점을 잃고 있었다.

"당신은... 황실의 자객이군요."

구화가 다시 공격했다. 검이 연화의 옆구리를 향해 날아왔다. 연화가 몸을 굴려 피했다. 구화의 검이 지하실의 돌벽을 베었다. 돌이 갈라졌다. 한 팔로 베어낸 검이 이 정도라면, 두 팔이었다면 어땠을까.

연화가 일어섰다. 단검을 들지 않았다. 대신 입을 열었다.

"나는 당신을 죽이러 온 게 아닙니다."

구화가 움직임을 멈췄다.

"당신을 살리러 왔습니다."

연화가 천천히 한유에게 다가갔다. 구화는 그 사이를 막지 않았다. 연화의 눈이 한유의 얼굴을 읽고 있었다. 지붕에서 본 그 모습. 32가지 검술이 한 몸에서 터져 나오는 그 장면. 죽음이 아니라 저항으로 보였던 그것.

"황제의 명령이 바뀌었습니다. 당신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당신을 통해 모든 것을 파악하려고 합니다. 당신이 누구를 만나는지, 누가 당신을 돕는지, 거리의 검객들이 어디까지 뻗어 있는지를."

한유의 입술이 떨렸다.

"그러니까 당신이 해야 할 일은 간단합니다. 계속 도망치세요. 계속 저항하세요. 그러면 나머지는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까."

연화가 한유의 손을 잡았다. 그 순간, 한유의 몸에서 검기가 폭발했다.

손가락이 뒤틀렸다. 팔이 경직되었다. 한유의 입에서 비명이 흘러나왔다.

"안 돼... 안 돼!"

한유가 손을 내던졌다. 연화가 뒤로 날아갔다. 구화가 한유를 받쳐줬다. 하지만 한유는 구화의 팔을 밀어냈다.

"물러나세요! 지금... 지금 뭔가 오고 있어요!"

한유의 눈이 흰자위를 드러냈다. 그의 몸에서 동시에 여러 개의 검기가 피어올랐다. 한 개가 아니라 여러 개. 동시에. 각기 다른 형태로.

한유의 왼팔은 도검식 검을 휘두르고 있었고, 오른팔은 창처럼 관통하는 기를 내뿜고 있었다. 그의 가슴에서는 회전하는 기가, 등에서는 베어지르는 기가 동시에 흘러나왔다.

32가지의 죽음이 한 몸에서 동시에 펼쳐지고 있었다.

"한유!"

백영의 목소리가 들렸다. 한 눈이 흐린 노검객이 지하실 입구에서 나타났다. 그는 절을 하고 있었다. 무릎을 꿇은 자세로.

"견뎌내세요. 이것이 검맥의 저주입니다. 하지만 이것을 견디는 것이 검맥의 정통성입니다."

백영의 목소리가 울렸다.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그 순간 지하실의 벽이 무너졌다. 한유의 검기가 모든 방향으로 퍼져 나간 것이다. 돌이 벽에서 떨어져 나왔다. 천장의 돌들이 한유의 몸을 향해 튕겨 떨어졌다. 먼지가 일었다. 연화가 몸을 날려 피했다. 구화도 벽 너머로 몸을 날렸다.

한유의 몸에서는 여전히 32가지의 검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것들이 서로 충돌했다. 그의 몸은 여러 개의 검술을 동시에 펼치고 있었고, 그 검술들이 자기 자신과 충돌하고 있었다.

한유의 입에서 피가 흘렀다. 귀에서도. 눈에서도.

"제발... 멈춰... 멈춰..."

한유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그것은 한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여러 개의 목소리가 겹쳐 있었다. 32명의 목소리가.

백영이 손을 들었다. 한 눈이 감겼다. 그 대신 그의 손에서 검기가 피어올랐다. 그것은 하늘빛 같은 파란색이었다. 천심검법의 기. 오래된 검맥의 정통성이 담긴 그 기는 한유를 감싸기 시작했다.

"견뎌내세요!"

백영이 한유를 향해 손을 펼쳤다. 파란 기가 한유의 몸을 천천히 감싸 올렸다. 32가지의 검기들이 하나씩 통합되기 시작했다. 도검식 검이 파란 기에 녹아들었다. 창처럼 관통하는 기가 사라졌다. 회전하는 기가 멈췄다. 베어지르는 기가 수렴했다.

한유의 몸이 경직되었다. 그의 팔이 내려가기 시작했다. 각기 다른 32가지의 검기가 천천히 하나의 형태로 통합되고 있었다.

그 과정 속에서 한유의 손가락이 떨렸다. 하지만 이제 그것은 공포의 떨림이 아니었다. 32명의 의지를 받아들이는 떨림이었다. 첫 번째 검객의 마지막 숨결. 두 번째 검객의 분노. 세 번째 검객의 절망. 그들이 모두 한 사람 안에서 살아나고 있었다.

그것은 한 자루의 검의 형태였다.

한 자루의 검. 그것은 매우 오래되어 보였다. 그 검의 끝에는 32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검객들의 이름. 저항한 자들의 이름. 죽음을 견딘 자들의 이름.

한유가 무릎을 꿇었다. 검이 그의 손에 내려앉았다. 그의 몸은 경련을 멈췄다. 하지만 그의 눈은 여전히 열려 있었다. 그리고 그 눈 속에는 32명의 죽음이 아니라, 32명의 의지가 남겨져 있었다.

연화는 그 광경을 지켜봤다. 손가락이 떨리고 있었다. 그녀는 처음으로 깨달았다. 이것이 죽음이 아니라는 것을.

이것은 다른 것이었다. 죽음의 끝이 아니라, 죽음의 시작. 32명의 의지가 한 사람 안에서 깨어나는 순간.

"그를 데려가세요."

백영이 연화에게 말했다. 한 눈이 흐린 노검객의 목소리는 매우 차분했다.

"그리고 어디로 가든, 그를 놓지 마세요. 그가 혼자가 되면, 다시 32명의 죽음이 그를 집어삼킬 테니까."

연화는 한유를 들어 올렸다. 그의 몸은 가벼웠다. 마치 영혼만 남겨진 것처럼. 하지만 그의 손에 쥐어진 검은 무거웠다. 32명의 무게가 담긴 검.

그 밤, 천경의 밤거리는 조용했다.

하지만 황실의 지하 첩보실에서는 새로운 명령이 내려지고 있었다.

"이문호를 풀어라."

상관이 말했다. 그의 손가락이 지도 위의 한 지점을 짚었다. 폐허 절터. 거기에 기록된 한유의 흔적.

"이제 진짜 사냥을 시작하자. 그를 추적하되, 절대 죽이지 말아라. 그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기억해라."

상관의 입술이 올라갔다.

"우리는 검맥의 모든 것을 알아야 한다. 그것을 통해 황제의 권력은 영원할 테니까."

이문호는 황실의 방에 있었다. 그의 검은 벽에 기대어 있었다. 그의 눈은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천경의 밤하늘을 향해.

새로운 명령이 그에게 전달되었다.

"계속 쫓아가라. 절대 죽이지 말고."

이문호의 손가락이 경련을 일으켰다. 그의 입술이 움직였다. 말이 나왔지만, 그것은 대답이 아니었다. 질문이었다.

"그대는 왜 검을 놓는가?"

그것은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이었다. 아니면 한유에게 던지는 질문이었다. 아니면 누군가 다른 사람에게 던지는 질문이었다. 이문호는 더 이상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없었다. 명령만 받고, 질문만 반복했다. 그 과정에서 자신이라는 존재는 점점 희미해지고 있었다. 마치 명령 속에 자신이 녹아드는 것처럼. 이문호라는 이름도, 이문호라는 정체성도 사라져가고 있었다. 남은 것은 오직 명령뿐이었다.

그 밤, 천경의 거리는 세 명을 숨기고 있었다. 한유. 연화. 구화. 그리고 어둠 속에서 그들을 따라다니는 또 다른 그림자.

이문호.

그리고 그 뒤를 따라다니는 또 다른 그림자.

그것이 누구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분명 움직이고 있었다. 천천히. 그리고 아주 조용하게.

한유는 연화의 품 속에서 눈을 떴다. 그의 손 위의 검기는 여전히 흐릿하게 빛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것은 32가지가 아니었다.

하나였다.

하지만 그 하나 속에는 32명이 있었다.

32명의 죽음이. 32명의 저항이. 32명의 의지가.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나요?"

한유가 물었다. 그의 목소리는 이제 자신의 목소리였다. 하나의 목소리. 하지만 그 안에는 32명의 무게가 담겨 있었다.

연화는 천경의 지도를 머릿속으로 그렸다. 황실. 황제. 그리고 모든 것의 끝. 하지만 그것도 끝이 아니라 시작일 수도 있었다. 그녀는 한유를 바라봤다. 그리고 한 가지 확신했다.

이 길의 끝에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앞으로만 가면 됩니다."

그녀가 마침내 말했다.

"황실의 기치가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것은 황제가 직접 나선다는 신호입니다."

그 순간, 천경의 어딘가에서 울음이 들렸다. 거리 검객들의 신호음이었다. 한유를 따라다니는 자들이 있다는 신호. 추적자들이 다시 나타났다는 신호.

한유의 손 위의 검기가 다시 밝아졌다.

32명의 죽음이 다시 울음을 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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