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 9화 「현재의 회복」

장례식장 입구에 도착했을 때 지훈의 손가락은 떨리고 있었다. 오전 9시 반. 아직 두 시간 이상이 남아 있었지만, 그는 벌써 여기 있었다. 이석호의 관을 봐야 했다. 아니, 정확히는 그 죽음이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걸 확인해야 했다.

계단을 밟을 때마다 가슴이 철렁였다. 1층. 2층. 3층. 장례식장 복도의 형광등이 눈을 찔렀다. 지훈은 눈을 반쯤 감고 방 번호를 찾았다. 203호. 이석호 배우 추도식.

문을 열었을 때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조용했다. 너무나 조용해서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관이 보였다. 검은색 관. 그 위에는 이석호의 사진이 놓여 있었다. 미소 짓는 젊은 시절의 이석호. 지훈은 한 발, 한 발 나아갔다. 발바닥이 바닥에 붙어 있는 것처럼 무거웠다.

관에 손을 얹었을 때, 처음으로 현실이 침투했다.

죽었다. 이석호가 죽었다. 그것은 지훈이 선택한 결과였다. 필름을 복원하겠다는 집착, 박준호의 완벽함을 재현하겠다는 강박,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겠다는 욕망—모든 것이 이 검은 관으로 흘러들어왔다.

지훈은 손가락으로 관의 표면을 쓸어내렸다. 차갑다. 너무 차갑다. 살아 있는 사람이 만져야 할 온기가 없었다.

그 순간이었다. 필름 속의 자신이 밀려왔다. 박준호 감독의 촬영장에서 느꼈던 모든 감정들. 완벽함을 추구하며 흔들렸던 순간들. 그 감정들이 관의 차가운 표면을 통해 손가락으로 전해졌다. 마치 살아 있는 기억처럼, 몸을 휘감으려 했다.

하지만 그것도 차단되었다.

이석호의 죽음이 그것을 모두 밀어냈다. 필름 속의 감정과 현재의 감정이 충돌했다. 지훈의 손가락은 여전히 관 위에 있었지만, 그 손가락이 느끼는 것은 두 가지였다. 한쪽은 과거의 완벽함을 재현하려는 욕망. 다른 한쪽은 이 순간, 죽은 사람 앞에서 느끼는 현재의 절망. 그 두 감정이 신체 안에서 격렬하게 부딪혔다.

성대가 경련했다. 눈이 흔들렸다. 손가락의 온도가 떨어졌다. 마치 필름 속 자신과 현재의 자신이 다른 신체를 차지하려고 싸우는 것 같았다.

지훈은 손을 떼려 했지만 떨어지지 않았다. 관 위에 박혀 있는 손가락. 그 손가락이 느끼는 두 가지 감정의 무게. 완벽함의 무게와 현실의 무게가 팔 전체를 누르고 있었다.

'내가 죽였다.'

그 생각이 처음 떠올랐다. 분명하게. 의심의 여지 없이. 필름을 본 것도 자신이고, 복원하려고 한 것도 자신이고, 이석호에게 계속 보여준 것도 자신이었다. 그리고 이석호는 그 과정에서 죽었다. 자살했다. 지훈의 강박이 이석호를 죽였다.

손가락이 떨렸다. 관 위에서 미끄러졌다. 몸 전체가 흔들렸다. 무릎이 구부러졌다.

"지훈!"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민지였다. 그 뒤로 윤희, 한진수, 차수진이 들어섰다. 조용히. 마치 장례식 예식처럼.

지훈은 돌아서지 않았다. 관을 계속 보고 있었다. 자신의 손이 관 위에서 떨리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언제부터 여기 있었어?" 민지가 물었다.

"모르겠어. 시간이 뭔지 모르겠어."

그 말이 나오는 순간, 지훈의 입술이 떨렸다.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만은 아니었다. 깨달음. 무너짐. 그동안 쌓아 올린 모든 것이 한 순간에 무너지는 소리.

"내가 했어. 이걸 했어."

"지훈…"

"필름이 아니야. 사람이 죽었어. 이석호가 죽었어. 그리고 그건 내 때문이야."

지훈은 무릎을 꿇었다. 그의 몸이 흔들렸다. 관 위에 놓인 이석호의 사진을 바라보면서.

윤희가 앞으로 나왔다. 그녀의 얼굴은 창백했다. 3년 전 박준호의 촬영장에서 본 것과 같은 공포. 그것이 지훈의 얼굴에도 묻어났다.

"지훈, 들어봐. 이건 누구의 책임도 아니야."

"누구의 책임도?" 지훈이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은 비어 있었다. "필름을 본 건 내고, 복원하려고 한 건 내고, 이석호한테 계속 보여준 건 내야. 그 모든 게 내 손이야."

차수진이 입을 열었다. 영화사 대표의 목소리가 아니라 한 명의 사람으로서의 음성이었다.

"프로젝트를 중단하고 싶다고?"

지훈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관 위에 놓인 이석호의 사진을 보면서.

"네. 중단하겠습니다."

"왜?"

지훈이 잠시 침묵했다. 뒤에 선 사람들의 숨소리가 들렸다.

"이게 옳은 길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이 영화는 많은 사람을 죽였어요. 박준호 감독을 죽였고, 이석호를 죽였고. 그리고 제가 그걸 계속하고 있었어요."

한진수가 한 발 물러섰다. 그의 어깨가 내려앉았다. 필름 보관소의 지하실에서 본 그 고민—예술과 현실 사이의 갈등—이 한 가지 방향으로 결정되는 순간이었다.

"편지를 쓰겠습니다," 지훈이 계속했다. "제작사에. 프로젝트 중단하고, 모든 법적 분쟁을 종료한다고."

민지가 지훈의 팔을 잡았다. 그의 손이 차가웠다.

"정말 괜찮아? 모든 걸 포기하는 거잖아."

"아니. 난 앞으로도 힘들 거야. 이석호의 죽음을 받아들이기 위해선 시간이 필요해. 하지만 난 이제 현재에서 살기로 했어."

그 말이 나오자, 뭔가 풀렸다. 가슴이. 아니, 정확히는 그동안 짓눌러 왔던 무게가 조금씩 떨어져 나갔다. 완벽함의 무게. 증명의 무게. 과거의 무게.

윤희가 한 발 나아갔다.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

"고마워. 넌 이걸 깨달아줘서."

지훈이 돌아봤다. 윤희의 얼굴을 봤다. 그녀도 3년 전 필름 속에 있던 사람이었다. 박준호의 광기 속에서 함께 연기했던 사람. 그리고 현재를 택하기 위해 과거를 외면해야 했던 사람.

"미안해. 너한테."

"넌 뭐 미안해. 넌 이제 현재로 돌아왔잖아."

지훈이 관을 다시 봤다. 이석호의 사진. 그 미소는 더 이상 회복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지훈이 감수해야 할 대가였다.

오후 2시. 추도식이 시작되었을 때 지훈은 여전히 관 앞에 서 있었다. 스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염불 소리가 퍼졌다. 민지가 옆에 있었다. 윤희가 뒤에 있었다. 그들은 모두 현재 속에 있었다. 과거가 아닌 지금 이 순간 속에.

추도식이 끝난 후, 지훈은 손으로 편지를 썼다. 스마트폰이 아니라 손으로. 종이에. 펜으로.

*제작사 귀중*

*필름 복원 프로젝트를 중단합니다.*

*그리고 모든 법적 분쟁을 종료하겠습니다.*

*필름 <천사의 날개>는 다시 금고에 갇혀야 합니다.*

*그것이 옳은 길입니다.*

*배우 지훈*

편지는 택배로 전달되었다. 3일 후, 제작사로부터 답장이 왔다.

*프로젝트 중단 승인. 모든 법적 분쟁 종료.*

필름은 다시 지하 금고에 갇혔다. 어둠 속으로. 그곳에서 3년을 더 기다릴 것이다. 언제 누군가 다시 꺼낼 때까지.

일주일이 지났다.

뉴스 기사가 났다. 작은 기사였다. 연예면의 한 귀퉁이. *배우 지훈, 필름 복원 프로젝트 중단 결정. 업계의 낙인을 받아들이다.* 댓글은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관심 자체가 없었다. 지훈은 여전히 '문제 배우'였다. 3년 전 사고의 후유증으로 기억을 잃었고, 조연으로 전락했으며, 이제는 필름 복원으로 제작사와 분쟁을 벌인 '문제아'였다.

그런데 이제 그것이 두렵지 않았다.

에이전시는 계약을 파기했고, 캐스팅 제의는 들어오지 않았다. 대신 지훈은 자신의 손으로 오디션을 찾아다녔다. 조연 역할. 엑스트라 역할. 예전 같으면 거절했을 역할들.

강남의 카페에서 민지를 만났을 때, 그녀는 지훈의 얼굴을 한참 바라봤다.

"뭐 봐?"

"그 눈이 없어졌어."

"뭐?"

"필름 속에 갇힌 눈. 과거만 보던 눈. 그게 없어졌단 말이야."

민지가 커피를 마셨다. 그 동작도 예전과 달랐다. 더 이상 지훈을 걱정하지 않는 동료의 동작이었다.

"앞으로도 힘들 거야," 지훈이 말했다. "이석호를 받아들이기 위해선. 내가 한 일들을 받아들이기 위해선."

"당연하지. 그게 현재야."

민지가 웃었다. 그것은 조연 배우로 살아가는 한 명의 여자의 웃음이었다. 희망과 절망 사이의 웃음.

윤희는 지훈에게 문자를 보냈다.

*고마워. 너가 이걸 깨달아서.*

지훈은 오래 그 문자를 바라봤다. 회신은 없었다. 대신 그는 그 문자의 의미를 천천히 되새겼다. 지훈이 필름을 포기했다는 것은 윤희의 과거도 함께 포기되었다는 뜻이었다. 3년 전 <천사의 날개> 촬영장에서의 자신도, 박준호의 광적 지도 아래 흔들렸던 자신도, 모두 다시 어둠 속으로 돌아갔다는 뜻이었다.

그것이 구원이었다.

차수진 대표는 편집실에 혼자 앉아 있었다. 마스터 파일이 담긴 하드드라이브를 들었다 놨다를 반복했다. 3년 전 영화. 박준호의 유작. 완벽했던 그 영화. 그 영화는 이제 누구의 것도 아니었다.

한진수는 필름 보관소의 어둠 속에서 필름을 정리했다. <천사의 날개>. 그것은 이제 다시 '폐기 예정'이었다. 그는 그 필름을 조심스럽게 다뤘다. 예술 작품을 다루듯. 그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10일 후, 오디션 통보가 왔다.

*방송국 리딩실. 오후 3시. 조연 역할 오디션.*

지훈은 그 시간에 맞춰 강남역으로 향했다. 지하철에 탔다. 일반인처럼. 조연 배우처럼. 아무도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것이 현재였다.

방송국 리딩실 문을 열었을 때, 지훈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심사위원들이 앉아 있었다. 3명. 프로듀서, 감독, 배우 캐스팅 담당. 그들의 눈은 무표정했다.

"배우 지훈 맞나?"

"네."

지훈이 대본을 받았다. 얇은 종이. 한 장. 조연 역할. 주인공과의 한 장면. 돈을 빌려달라는 장면.

손이 떨렸다. 이 장면이 낯설지 않았다. 3년 전 박준호의 촬영장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있었다. 그 장면에서 자신은 완벽했다. 감정의 진폭이 깊었고, 목소리의 톤이 정확했으며, 눈의 초점이 흔들리지 않았다.

지훈이 필름을 떠올렸다. 그 장면. 그 완벽함. 성대가 긴장했다. 눈의 초점이 흔들렸다. 필름 속의 자신이 밀려왔다. 그 완벽함을 재현하려는 욕망이 몸 전체를 휩쓸었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밀어냈다.

깊게 숨을 내쉬었다. 성대의 긴장을 풀었다. 눈의 초점을 현재로 돌렸다. 지금 이 순간, 리딩실에 앉아 있는 한 명의 배우로 돌아왔다.

지훈이 대본을 읽기 시작했다.

"돈 좀 빌려줄 수 있어?"

그 목소리는 필름 속의 자신이 아니었다. 3년 전의 완벽한 음성도 아니었다. 지금 이 순간, 리딩실 의자에 앉아 있는 한 명의 배우의 목소리였다. 현재의 지훈. 기억을 잃은 지훈. 조연으로 전락한 지훈. 그 누구도 아닌, 지금 이 순간의 지훈.

심사위원 중 한 명이 고개를 들었다. 여자 감독이었다. 그녀의 눈빛이 변했다.

"다시."

지훈이 다시 읽었다.

"돈 좀 빌려줄 수 있어?"

이번엔 다른 감정이었다. 필름을 재현하는 감정이 아니라 현재의 감정. 지금 이 순간, 돈이 필요한 누군가의 감정. 절박함. 부끄러움. 그리고 상대를 바라보는 눈. 그 눈은 도움을 구하는 눈이면서 동시에 거절을 각오한 눈이었다. 완벽함이 아닌, 현재의 불완전함. 그것이 리딩실을 채웠다.

프로듀서가 펜을 내려놨다. 옆 감독과 눈을 맞췄다.

"좋아. 충분해."

심사위원들의 표정이 부드러워졌다. 그들은 더 이상 지훈을 보지 않았다. 다음 배우를 부르라고 손짓했다.

오디션은 끝이 났다. 지훈은 리딩실을 나왔다. 강남역으로 돌아갔다. 지하철을 탔다. 아무도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것이 현재였다. 그것이 배우 지훈의 현재였다.

3일 후, 합격 통보가 왔다.

드라마 <현재의 시간>. 조연 역할. 촬영은 내일부터 시작된다.

그 밤, 지훈은 필름 보관소로 향했다. 한진수가 아직 거기 있었다. 지하실의 어둠 속에서.

"프로젝트가 끝났네요," 한진수가 말했다.

"네. 끝났어요."

"그 필름은?"

"금고에 들어갑니다. 다시."

한진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이 현실이었다. 예술은 항상 현실에 진다. 하지만 그 현실 속에서 배우는 산다.

지훈이 물었다.

"당신은 후회하세요?"

한진수가 잠시 말이 없었다. 그 침묵 속에는 많은 것들이 있었다. 버려진 영화들. 사라진 배우들. 소거된 역사들. 그리고 그것들을 지키지 못한 자신.

"네. 죽는 날까지 후회할 것 같습니다," 한진수가 답했다.

"그것도 현재입니다."

지훈이 필름 보관소를 나왔다. 강남의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별이 보였다. 과거의 별이 아닌 현재의 별. 지금 이 순간 빛나는 별.

그 별 아래서 강남의 밤거리를 걸었다. 스튜디오들이 보였다. 촬영장들이 보였다. 모두 같은 시간대에 다른 현장들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박준호의 스튜디오도 여전히 돌아가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훈은 그곳으로 가지 않았다.

내일 촬영할 스튜디오를 찾아 길을 재촉했다. 강남의 밤거리는 여전히 낯설었다. 하지만 그것이 현재였다. 예측 불가능한 현재. 불완전한 현재. 살아 있는 현재.

호텔 앞 편의점에 들어갔다. 커피를 샀다. 따뜻한 커피. 손가락이 컵을 감싸 안았다. 그 온기가 현재였다. 내일 촬영을 앞두고 느끼는 불안감. 두려움. 그리고 작은 희망. 모두가 섞여 있는 그 감정이 현재였다.

지훈은 커피를 마셨다. 그리고 내일을 기다렸다.

밤거리의 불빛 아래서, 박준호의 유령처럼 남아 있는 과거와 현재가 공존했다. 필름 보관소의 어둠 속에 갇힌 <천사의 날개>. 그리고 내일 시작될 새로운 촬영. 한진수의 침묵. 차수진의 하드드라이브. 모든 것이 현재와 과거 사이의 긴장 속에 있었다.

지훈은 그것을 알고 있었다. 이것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현재로의 복귀는 과거와의 단절이 아니라, 그것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것이라는 것을.

내일, 촬영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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