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열 시 반, 병실 복도의 형광등이 지훈의 얼굴을 창백하게 비췄다. 모니터의 비프음이 규칙적으로 울리는 중환자실 문 앞에서 지훈은 움직이지 않았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는 상태로 이석호의 침대 옆에 앉아 있었다.
"지훈."
차수진 대표의 목소리가 복도에서 들렸다. 그녀는 종이 한 장을 들고 있었다. 법원의 공문이었다.
"가처분이 나왔어."
지훈이 고개를 들었다. 차수진의 얼굴은 경직되어 있었다.
"필름 복원 작업 임시 중단. 서준영 프로덕션의 저작권 침해 소송이 병행된다. 현재로서는 법적으로 더 진행할 수 없어."
지훈의 손가락이 떨렸다. 차수진은 그 손을 봤다.
"이석호를 봤니?"
"네."
"그 아이가 왜 이랬는지 알아?"
지훈이 입술을 깨물었다.
"우리가 박준호처럼 되고 있어. 완벽함을 위해 모든 걸 태우고 있어."
차수진이 공문을 내려놨다. 종이가 복도의 바닥에 천천히 떨어졌다.
"멈춰야 해."
---
병실을 나온 지훈은 민지가 대기실에서 앉아 있는 것을 봤다. 어깨가 움츠러들어 있었다. 눈가가 부어 있었다.
"민지."
지훈이 다가갔다. 민지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왜 계속하는 거야?"
"뭐라고?"
"이석호야. 이석호를 봤잖아. 왜 계속 필름 복원을 고집하는 거야?"
지훈이 앉았다. 민지와 같은 높이로.
"이석호를 살리는 방법은 이 영화를 세상에 내보내는 거야."
"뭐라고?"
"그럼 그건 저주가 아니라 걸작이 돼. 그럼 이석호도 살아날 거야. 자기가 만든 작품이 빛나는 거를 보면, 이석호도 다시 살아날 거야."
민지가 지훈을 봤다. 그 눈빛은 낯설었다.
"너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하지만 이석호는 다를 수도 있어."
"그럴 리 없어. 배우는 자기 작품으로 살아나는 거야. 자기 연기를 인정받을 때 비로소 살아나는 거야. 이석호도 그럴 거야."
민지가 일어섰다.
"너는 지금 너 자신에 대해 얘기하고 있어. 이석호 때문이 아니라."
"민지—"
"나 이제 모르겠어. 언제부터 넌 이렇게 됐어?"
지훈이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무언가를 말하려 했지만, 그 말들이 무의미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내가 이렇게 된 게 아니야. 이 영화가 나를 이렇게 만든 거야."
"그건 변명이야. 지훈, 넌 이미 알고 있어. 이 영화가 뭔지. 박준호가 뭘 했는지."
"박준호는 완벽함에 집착했고, 난 다르다."
"정말? 넌 지금 뭐 하고 있어? 법원의 가처분도 무시하고, 에이전시도 떠나고, 이석호는 중환자실에 있고. 그런데 넌 뭐 하고 있어?"
민지의 목소리가 떨렸다.
"필름을 본다고? 그 필름 속의 너를 본다고? 그게 이석호를 살린다고 생각해?"
"그래. 그렇게 생각해."
"왜?"
지훈은 대답하지 못했다. 왜인지 자신도 모르고 있었다. 아니,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이유를 말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게 내 작품이고, 내 인생이고, 내 전부니까."
민지가 지훈을 바라봤다. 그 눈에는 절망이 가득했다.
"넌 날 포기했어. 그리고 넌 자기도 포기했어."
---
오후 다섯 시, 병원.
지훈은 이석호가 입원한 중환자실 앞에 섰다. 유리창 너머로 이석호가 보였다.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다. 모니터의 비프음이 규칙적으로 울렸다.
간호사가 지훈을 봤다.
"아직 회복 중입니다. 언제 깰지는 모르겠어요."
지훈이 이석호의 얼굴을 봤다. 주름이 깊었다. 3년 전보다 훨씬 더 깊어 있었다.
---
밤 열 시, 지훈은 카페에 앉아 있었다. 노트북 화면에는 필름의 장면들이 떠 있었다.
한진수가 건넨 하드드라이브의 파일들.
4K 복원 버전. 감독의 완성본. 박준호가 마지막에 남겨둔 원본.
그리고 박준호의 일기장.
지훈은 일기장의 사진들을 천천히 넘겼다. 감독의 필체. 광적인 메모들. 마진에 그려진 낙서들.
그리고 마지막 페이지.
'완벽함 없이는 살 수 없다. 하지만 완벽함을 추구하는 자는 반드시 죽는다. 나는 이제 죽기로 결심했다. 이 영화가 완벽해지는 순간, 나도 함께 사라질 것이다. 아마 그것이 가장 완벽한 마무리일 것이다.'
지훈의 손이 떨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그는 다시 필름을 재생했다. 자신의 얼굴이 화면에 떠올랐다. 완벽한 표정. 완벽한 음성. 완벽한 몸짓.
필름 속의 자신이 지훈을 바라봤다.
'나는 이 정도의 배우였다.'
---
새벽 세 시, 지훈은 독립영화사 '시선'의 편집실에 들어갔다.
차수진이 모니터 앞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지훈을 보지 않았다.
"가처분 때문에 공식 작업은 멈춰야 해. 하지만..."
차수진이 마우스를 클릭했다. 화면에 필름의 장면이 떠올랐다. 3년 전, 지훈의 표정. 눈의 초점. 성대의 진동까지 담긴 그 장면.
"다른 방법이 있을 수도 있다."
지훈이 모니터에 가까워졌다.
"뭔데요?"
"개인 채널로 배포하는 거야. SNS, 유튜브, 영화제 출품. 법적으로는 문제가 될 수 있지만, 일단 세상에 나가면 돌릴 수 없어. 그 다음엔 대중의 여론이 우리를 보호해 줄 거야."
지훈의 손가락이 떨렸다.
"정말요?"
차수진이 지훈을 봤다. 그녀의 눈에는 뭔가가 죽어 있었다.
"한진수가 이 파일들을 줬어. 마스터 파일. 모든 원본. 4K 복원 버전도 있고, 감독의 완성본도 있고. 박준호가 마지막에 남겨둔 원본까지."
차수진이 외장 하드드라이브를 꺼냈다.
"이걸 가지고 나가면, 너는 끝날 거야. 법적 문제도 생길 거고, 업계에서도 끝날 거고. 그리고 한진수도 끝날 거고."
"한진수는?"
"이미 제작사에서 나왔어. 오늘 오전에 해고 통보를 받았어. 그리고 이 파일들을 가져왔어. 너 때문에."
차수진이 하드드라이브를 지훈에게 향했다.
"한진수는 이렇게 말했어. '지훈 씨, 제 마지막 조언입니다. 이 필름이 아름답다면, 그것은 아름다움이 아니라 저주입니다. 돌아가세요. 현재로.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라고."
지훈이 하드드라이브를 봤다.
"그런데 넌 돌아가지 않을 거지?"
지훈은 대답하지 않았다.
차수진이 한숨을 쉬었다.
"네. 괜찮습니다."
지훈의 목소리는 차갑고 명확했다.
그는 하드드라이브를 받아들였다. 손가락이 검은 상자를 움켜쥐는 순간, 차수진의 얼굴이 변했다. 뭔가가 그녀에게서 떨어져 나갔다. 희망이었을 것이다.
"지훈,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차수진의 목소리가 작았다.
"이 필름을 배포하면, 넌 이 업계에서 영원히 끝나. 돌아올 수 없어. 알지?"
"네. 알아요."
"그리고 이석호는 어떻게 할 거야?"
지훈은 대답하지 못했다.
---
새벽 여섯 시, 지훈은 자신의 원룸으로 돌아왔다. 밖은 여전히 어두웠다.
휴대폰의 알림이 계속 울렸다.
뉴스 기사의 댓글들. 업계 채팅방의 메시지들. 에이전시 측의 법무 서신.
'당신은 이제 이 업계에서 일할 수 없습니다.'
'저주받은 영화의 저주받은 배우.'
'박준호처럼 끝날 거야.'
지훈은 휴대폰을 던졌다. 침대에 누웠다. 천장을 바라봤다. 하지만 천장은 공허했다. 어떤 환상도 투사되지 않았다.
대신 귀에 들렸다.
민지의 목소리. '넌 날 포기했어.'
차수진의 목소리. '멈춰야 해.'
이석호의 목소리. 아직 들은 적 없는, 그러나 분명히 들리는 목소리.
지훈은 눈을 감았다. 하지만 눈을 감은 것도 잠시였다. 수면이 오지 않았다. 뇌가 과열 상태였다.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었다. 손가락이 자동으로 경련했다.
밤이 깊어갈수록 증상은 악화했다. 손가락의 경련에서 시작된 떨림이 팔 전체로 퍼졌다. 눈을 감아도 필름 속의 장면들이 떠올랐다. 3년 전의 자신. 완벽한 표정. 완벽한 음성. 완벽한 몸짓. 그 이미지가 반복되고 반복되었다.
오전 여섯 시, 지훈은 침대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일어난 것이 아니라 튕겨 올라갔다. 몸이 자신의 통제를 벗어나고 있었다. 거울을 봤다. 눈 아래 다크서클이 검게 내려앉아 있었다. 수염이 자라 있었다. 피부는 회색이었다.
3년 전의 완벽한 얼굴은 사라지고 없었다.
---
오전 아홉 시, 지훈의 휴대폰이 울렸다.
민지였다.
"지훈, 어디야?"
"집이야."
"이석호가 깼어."
지훈의 심장이 멎었다.
"지금 병원 와. 빨리."
---
병원의 중환자실 앞.
이석호는 깨어 있었다.
하지만 눈은 열려 있지 않았다. 눈꺼풀만 떠 있었다. 그 안의 눈동자는 초점을 잃고 있었다. 좌우로 불규칙하게 움직였다가 멈추고, 다시 움직였다.
"이석호."
지훈이 손을 내밀었다.
이석호의 손가락이 경련했다. 마치 누군가를 밀어내려는 듯. 지훈의 손을 거부했다.
"왜 날 깼어."
이석호의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다. 성대가 손상된 듯한 음성이었다.
"왜 날 깼어. 거기가 좋았어. 거기가 편했어."
"이석호, 난 너를 살리려고—"
"살렸어. 넌 날 살렸어. 그리고 이제 난 죽어 있어."
이석호의 눈동자가 지훈을 향했다. 초점이 맞지 않은 채로.
"넌 뭐야. 왜 날 이렇게 만들었어."
지훈은 말하지 못했다. 손을 내밀었던 팔이 서서히 내려갔다. 그 팔이 허공에서 멈췄다. 이석호는 그 손을 잡지 않았다. 손도 눈도 지훈을 거부했다. 신체 전체가 거부했다.
민지가 지훈의 팔을 잡았다.
"나가자."
"민지—"
"나가. 제발."
---
병원의 복도.
지훈과 민지가 마주 섰다.
"이석호가 뭐라고 했는지 들었어?"
민지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건 넌 죽이지 않았다는 뜻이야. 그건 넌 그걸 끝내지 않았다는 뜻이야. 그건 넌 이제 그걸 책임져야 한다는 뜻이야."
"내가 뭘 어떻게 책임진다는 거야?"
"자기 인생을 돌려놓는 거. 지훈, 제발. 그 필름을 버려. 그 영화를 포기해."
지훈이 고개를 저었다.
"할 수 없어."
"왜?"
"왜냐하면 그게 내 유일한 증명이니까. 내가 존재했다는 증명이니까."
민지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그럼 넌 정말 죽은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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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세 시, 지훈은 독립영화사 '시선'의 편집실에 들어갔다.
차수진이 모니터 앞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지훈을 보지 않았다.
화면에는 필름의 장면이 떠 있었다. 3년 전, 지훈의 표정. 눈의 초점. 성대의 진동까지 담긴 그 장면.
"가처분 때문에 공식 작업은 멈춰야 해. 하지만..."
차수진이 마우스를 클릭했다.
"다른 방법이 있을 수도 있다."
지훈이 모니터에 가까워졌다.
"뭔데요?"
"개인 채널로 배포하는 거야. SNS, 유튜브, 영화제 출품. 법적으로는 문제가 될 수 있지만, 일단 세상에 나가면 돌릴 수 없어. 그 다음엔 대중의 여론이 우리를 보호해 줄 거야."
지훈의 손가락이 떨렸다.
"정말요?"
차수진이 지훈을 봤다. 그녀의 눈에는 뭔가가 죽어 있었다.
"한진수가 이 파일들을 줬어. 마스터 파일. 모든 원본. 4K 복원 버전도 있고, 감독의 완성본도 있고. 박준호가 마지막에 남겨둔 원본까지."
차수진이 외장 하드드라이브를 꺼냈다.
"이걸 가지고 나가면, 너는 끝날 거야. 법적 문제도 생길 거고, 업계에서도 끝날 거고. 그리고 한진수도 끝날 거고."
"한진수는?"
"이미 제작사에서 나왔어. 오늘 오전에 해고 통보를 받았어. 그리고 이 파일들을 가져왔어. 너 때문에."
차수진이 하드드라이브를 지훈에게 향했다.
"한진수는 이렇게 말했어. '지훈 씨, 제 마지막 조언입니다. 이 필름이 아름답다면, 그것은 아름다움이 아니라 저주입니다. 돌아가세요. 현재로.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라고."
지훈이 하드드라이브를 봤다.
"그런데 넌 돌아가지 않을 거지?"
지훈은 대답하지 않았다.
차수진이 한숨을 쉬었다.
"네. 괜찮습니다."
지훈의 목소리는 차갑고 명확했다.
그는 하드드라이브를 받아들였다. 손가락이 검은 상자를 움켜쥐는 순간, 차수진의 얼굴이 변했다. 뭔가가 그녀에게서 떨어져 나갔다. 희망이었을 것이다.
"지훈,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차수진의 목소리가 작았다.
"이 필름을 배포하면, 넌 이 업계에서 영원히 끝나. 돌아올 수 없어. 알지?"
"네. 알아요."
"그리고 이석호는 어떻게 할 거야?"
지훈은 대답하지 못했다.
---
새벽 여섯 시, 서울의 뉴스가 나갔다.
'폐기 필름 복원 법적 분쟁, 배우 지훈 vs 제작사 대형 소송 예상'
지훈의 이름이 업계 전역에 퍼져나갔다. 채팅방에서 그의 이름이 오르내렸다.
'문제 배우 지훈'
'저주받은 영화에 집착하는 미친 배우'
'저작권 침해 소송 당사자'
에이전시에서 전화가 왔다. 지훈의 휴대폰 화면이 울렸다.
"지훈 씨, 현재 상황을 보면 당신과 계약을 유지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전화를 끊은 후, 지훈은 한진수가 건넨 하드드라이브를 꺼냈다. 손가락이 하드드라이브를 만졌다. 차갑고 단단한 금속. 그 안에 담긴 것은 자신의 완벽함이었다. 동시에 자신의 파멸이었다.
---
밤 여덟 시, 지훈은 자신의 원룸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노트북 화면에는 SNS 업로드 창이 떠 있었다.
'3년 전, 폐기된 영화 <완벽함>. 배우 박준호의 마지막 유작. 감독 박준호의 완성본. 이제 세상에 공개합니다.'
하드드라이브의 파일을 드래그했다. 4K 복원 버전. 영화 전체가 업로드되기 시작했다.
진행률이 올라갔다. 10%. 20%. 30%.
지훈의 손가락이 업로드 버튼 위에 멈춰 있었다.
한 번 누르면, 돌아올 수 없었다.
50%. 60%. 70%.
지훈의 눈이 필름 속의 자신을 바라봤다. 3년 전의 완벽한 표정. 완벽한 음성. 완벽한 몸짓.
'나는 이 정도의 배우였다.'
그 말이 중얼거려졌다.
80%. 90%. 100%.
업로드가 완료되었다.
지훈의 손가락이 '공개' 버튼을 눌렀다.
---
자정, 필름이 세상에 나갔다.
조회수가 올라갔다. 1만. 10만. 100만.
댓글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이 연기 미친다'
'박준호 감독의 유작이 이런 거였어?'
'지훈 배우 정말 대단하다'
'이건 예술이야'
하지만 다른 댓글들도 있었다.
'저작권 침해 아닌가?'
'서준영 프로덕션이 고소할 거 같은데'
'이 배우 미쳤나'
'박준호처럼 끝날 거야'
지훈은 댓글을 읽지 않았다.
대신 필름을 다시 재생했다.
3년 전의 자신. 완벽한 표정. 완벽한 음성. 완벽한 몸짓.
필름 속의 자신이 지훈을 바라봤다.
'나는 이 정도의 배우였다.'
그 말이 반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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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여덟 시, 서준영 프로덕션의 법무팀에서 연락이 왔다.
"저작권 침해로 고소합니다. 영상 즉시 삭제 및 손해배상 청구."
지훈은 휴대폰을 내려놨다.
하지만 필름은 이미 퍼져 있었다.
SNS에서. 유튜브에서. 영화 커뮤니티에서.
돌릴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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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열 시, 지훈은 병원으로 향했다.
이석호를 보러.
중환자실 앞에서 지훈은 멈췄다.
유리창 너머로 이석호가 보였다. 눈을 감고 있었다. 다시.
간호사가 지훈을 봤다.
"어제 깼던 환자 말이에요. 오늘 아침에 다시 의식을 잃었어요. 의료진도 이유를 모르겠어요. 신체적으로는 회복 중인데..."
지훈은 말하지 못했다.
"혹시 정신적 충격이 있었나 해서요. 어제 방문객이 있었다고 하던데."
지훈이 고개를 들었다.
"어제 누가 왔어요?"
"글쎄요. 간호사들도 정확히 모르겠대요. 하지만 그 이후로 환자가 의식을 잃었어요."
지훈의 손가락이 경련했다. 그가 어제 이석호를 만났을 때, 이석호는 깨어 있었다. 그리고 지훈을 거부했다. 그 거부가 이석호를 다시 의식 속으로 밀어 넣었을 수도 있었다.
---
오후 두 시, 지훈의 휴대폰이 울렸다.
민지였다.
"지훈, 너 뭐 한 거야?"
"뭘?"
"필름 말이야. 넌 필름을 올렸어. SNS에. 영화를 올렸어."
"응."
"왜? 왜 그런 거야?"
"해야 할 일이었어."
"해야 할 일? 지훈, 이석호가 다시 의식을 잃었어. 어제 깼다가 오늘 또 잃었어. 의사들도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대. 그리고 넌 필름을 올렸어?"
"그게 이석호를 살리는 거야."
"뭐라고?"
"그 영화가 세상에 나가면, 이석호도 살아날 거야. 그게 유일한 방법이야."
민지의 목소리가 떨렸다.
"넌 미쳤어. 정말 미쳤어. 이석호는 지금 죽어 있어. 그리고 넌 그걸 모르는 척하고 있어. 아니, 모르는 게 아니라 무시하고 있어."
"민지—"
"나 이제 더 이상 너한테 얘기할 게 없어. 넌 이미 죽은 사람이야."
통화가 끊겼다.
---
밤 자정, 지훈의 휴대폰이 울렸다.
알 수 없는 번호였다.
지훈이 받았다.
"안녕하세요. 저는 박준호 감독의 유족입니다."
지훈의 심장이 멎었다.
"당신이 우리 아버지의 필름을 올렸다고 들었어요."
"네."
"감사합니다."
지훈은 말하지 못했다.
"아버지가 남긴 메모에 이런 말이 있어요. '만약 누군가가 내 필름을 세상에 내보낸다면, 그는 나처럼 죽을 것이다. 그것이 가장 완벽한 마무리일 것이다'라고."
"그건..."
"당신은 이제 아버지의 길을 따라가고 있어요. 축하합니다."
유족의 목소리가 끝났다. 마지막 문장이 떨어졌다. 그 말이 지훈에게 박혀 들어갔다. 축하한다는 말. 그것은 축하가 아니라 저주였다.
통화가 끊겼다.
지훈은 휴대폰을 내려놨다. 손이 여전히 떨렸다.
그는 필름을 다시 재생했다. 3년 전의 자신. 완벽한 표정. 완벽한 음성. 완벽한 몸짓.
필름 속의 자신이 지훈을 바라봤다.
'나는 이 정도의 배우였다.'
그 말이 반복되었다. 더 이상 강박이 아니었다. 확신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지훈을 파괴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