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문
소피아의 목소리가 유나의 귀에 맴돌았다.
"모성애가 저주를 진화시키고 있습니다."
유나는 동굴 벽에 기댄 채 그 말을 되짚었다. 루미를 안은 팔이 떨렸다. 진화. 그 단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유나는 알았다. 루미가 더 이상 저주받은 용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을 가진 새로운 존재가 된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지금 루미의 몸에서는 여전히 검은 비늘이 흘러내렸다. 목 위까지 퍼진 그 비늘들이 햇빛에 비칠 때마다 검게 빛났다. 유나는 손가락으로 그 비늘을 조심스레 쓸어냈다. 차갑고 딱딱한 질감. 하지만 그 아래서는 분명 인간의 피부가 자라나고 있었다.
"엄마..." 루미가 작게 울었다.
유나의 몸이 멈췄다.
루미가 자신을 보았다. 검은 비늘로 덮인 얼굴에 인간의 눈이 떠졌다. 그 눈 속에는 공포도, 증오도 없었다. 오직 사랑만이 있었다. 루미는 입술을 움직였다. 아직도 불완전한 발음이었지만, 그것은 분명 인간의 말이었다.
"사랑해... 엄마."
유나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그것은 기쁨의 눈물이었고, 동시에 슬픔의 눈물이었다. 자신이 모든 것을 내려놓을 가치가 있다는 확신이 가슴을 채웠다. 수명도, 몸도, 영혼도. 모든 것이 값어치가 있었다.
유나는 루미를 더 깊이 안았다. 투명해지는 팔로 루미의 작은 몸을 감싸고, 뺨에 루미의 머리를 비비며 중얼거렸다.
"엄마도 루미를 사랑해. 너무너무 사랑해."
루미가 유나의 목에 작은 팔을 감았다. 그 팔은 반은 인간의 팔, 반은 용의 발톱이었다. 두 세계의 경계에서 루미는 엄마를 안고 있었다.
밤이 깊어졌다.
유나는 루미를 안고 동굴 안쪽 따뜻한 부분에 누웠다. 노르칸이 동굴 입구에서 보초를 섰다. 루미는 유나의 가슴에 머리를 얹고, 엄마의 투명해지는 손으로 자신의 등을 쓸어내리는 것을 느꼈다.
"엄마는 어디서 왔어?" 루미가 물었다. 발음이 점점 또렷해지고 있었다.
"고아원이라는 곳에서. 아이들을 돌보는 곳이야."
"루미도... 엄마 아이?"
유나의 목이 메었다. 그 순수한 질문 앞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주겠다는 결심이 다시 한 번 확인되었다.
"그래. 루미는 엄마 아이야. 가장 사랑하는 아이."
루미가 더 깊이 안겼다. 유나의 투명한 손가락이 루미의 머리를 어루만졌다. 검은 비늘 위로 손이 미끄러질 때마다 유나는 느꼈다. 아래에서 자라나는 인간의 피부. 변신이 진행 중이었다.
"엄마는 루미 없이 살 수 없어."
루미의 목소리가 이제는 거의 인간다웠다. 단지 가끔 뒤로 밀려나가는 '르' 발음만이 그가 여전히 변신 중임을 알렸다.
"엄마도 루미 없이는 살 수 없어."
그렇게 말하며 유나는 루미를 더 깊이 품었다. 자신의 모든 따뜻함을 루미에게 나누어주려는 듯.
시간이 흘렀다. 루미는 잠들었고, 유나는 깨어 있었다. 투명한 손가락으로 루미의 얼굴을 천천히 그렸다. 검은 비늘이 덮인 이마, 그 아래로 드러난 인간의 눈, 작은 코, 미소 짓는 입. 이 얼굴이 완전히 인간이 될 때까지, 유나는 살아야 했다.
동굴 벽의 틈으로 들어오는 찬바람이 유나의 투명한 몸을 지나갔다. 팔이 점점 더 투명해지고 있었다. 손가락은 이제 거의 보이지 않았다. 손목까지 비어 있었다. 자신의 수명이 얼마나 남았는지 유나는 정확히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느낄 수는 있었다. 몸이 가벼워지고, 마음이 맑아지고, 세상이 점점 멀어지는 것을.
유나는 루미의 얼굴을 바라봤다. 인간의 얼굴로 변해가는 루미. 자신의 사랑으로 구원받아가는 루미. 이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밤이 더 깊어졌을 때였다.
루미의 몸이 갑자기 경련을 시작했다.
"아... 아..."
울음이 변했다. 인간의 울음이 아니라, 동물의 비명으로. 루미의 몸이 유나의 품에서 뒹굴었다. 검은 비늘이 폭발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목에서 가슴으로, 가슴에서 팔로, 팔에서 다리로. 마치 불이 번지듯 퍼져나갔다. 인간의 피부가 다시 용의 가죽으로 변하고 있었다.
"루미! 루미!"
유나가 루미를 안으려 했지만, 루미의 몸에서 뜨거운 열이 방출되었다. 그 열기는 마치 불타는 숯과 같아서, 유나의 투명한 손을 지나갔다. 루미는 극심한 고통 속에서 울부짖었다. 그 울음은 아이의 목소리와 용의 울음이 겹쳐, 동굴 전체를 진동시켰다. 동굴의 천장에서 돌가루가 떨어졌다.
"견뎌. 루미, 견뎌내야 해."
유나의 목소리가 약해졌다. 말을 마칠 때쯤 목이 거의 들리지 않았다. 호흡도 얕아지고 있었다. 하지만 손은 여전히 루미를 감싸고 있었다. 투명한 팔로 루미의 몸을 안고, 자신의 모든 생명력을 루미에게 쏟아붓고 있었다. 모성애의 마법이 극도로 발동되고 있었다. 유나의 가슴에서 파란 빛이 흘러나와 루미를 감싸고 있었다.
하지만 루미의 검은 비늘은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더 빠르게 퍼져나갔다. 루미의 몸 전체가 이제 검은 색으로 변하고 있었다. 마지막 진화의 고통이 시작되고 있었다.
동굴 입구에서 노르칸이 울었다. 오래된 용의 울음이 젊은 용의 울음과 겹쳐, 하늘을 가르며 울려 퍼졌다. 그것은 슬픔의 울음이었고, 동시에 승인의 울음이었다. 루미가 더 이상 저주받은 용이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을 받아들이는 용이 되어가고 있다는 울음. 노르칸은 알고 있었다. 루미가 지금 무엇을 선택하고 있는지를.
그 순간, 산 아래에서 횃불이 올라왔다.
카인이 이끄는 기사단이 동굴을 향해 올라오고 있었다. 그들의 횃불이 밤의 어둠을 가르며 점점 가까워졌다. 카인의 검이 밤 공기를 가르며 올라왔다. 그의 얼굴에는 결연한 표정이 있었다. 마지막 저주받은 것을 제거하겠다는 결연함.
하지만 그 눈빛 속에는 무언가 흔들리고 있었다.
노르칸이 동굴 입구를 막았다. 고대 용의 거대한 몸이 동굴 입구를 완전히 차단했다.
"물러나거라, 용이여."
카인의 목소리가 울렸다.
"이것은 마을을 위한 것이다."
노르칸이 울었다. 그 울음에는 거부가, 저항이, 그리고 루미를 지키겠다는 절박한 의지가 담겨 있었다.
카인의 검이 노르칸의 비늘을 향해 휘어올랐다. 두 용 사이의 전투가 시작되었다. 노르칸의 거대한 발이 지면을 흔들었고, 카인의 검은 그 발을 향해 날카롭게 내려왔다. 비늘이 부딪혔다. 검이 울렸다. 산 위에서 돌이 굴러내렸다.
동굴 안쪽에서 루미의 울음이 더 커졌다.
유나의 투명한 몸에서 파란 빛이 폭발적으로 퍼져나갔다. 모성애의 마법이 극도에 달했다. 유나는 자신의 마지막 생명력을 루미에게 쏟아붓고 있었다. 더 이상 남은 것이 없을 때까지.
그 순간, 루미의 몸에서 무언가가 깨어났다.
루미는 깨달았다. 자신이 저주받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저주 속에 숨겨진 또 다른 가능성이었다는 것을. 엄마의 사랑이 자신을 변신시키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자신이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을.
루미는 선택했다.
저주를 풀기를. 용이 되기를. 하지만 엄마의 사랑을 잃지 않는 용이 되기를. 인간의 마음을 가진 용이 되기를.
검은 비늘이 변하기 시작했다. 목부터 시작된 변화가 가슴으로, 등으로, 팔과 다리로 퍼져나갔다. 검은 색이 서서히 금색으로 변해갔다. 마치 검은 밤이 새벽빛으로 물드는 것처럼.
금색의 비늘이 루미의 몸을 완전히 덮었다. 하지만 그 금색은 차갑지 않았다. 따뜻했다. 마치 햇빛처럼, 엄마의 손처럼.
루미는 울었다. 이제는 용의 울음이었지만, 그 울음 속에는 인간의 감정이 담겨 있었다. 감사의 울음. 사랑의 울음.
"엄마..."
루미의 목소리가 울렸다. 이제는 완전히 용의 목소리였지만, 여전히 루미였다. 여전히 엄마를 부르는 루미였다.
유나의 투명한 팔이 루미를 감쌌다. 거의 사라질 뻔한 손가락들이 루미의 금색 비늘을 어루만졌다.
"여기 있어, 루미. 엄마가 여기 있어."
유나의 목소리는 이제 바람 소리처럼 희미했다. 하지만 그 손은 여전히 따뜻했다.
동굴 입구에서 카인과 노르칸의 전투가 계속되고 있었다. 카인의 검이 날카롭게 내려왔고, 노르칸의 발이 그것을 막았다. 하지만 카인의 움직임이 조금씩 느려지고 있었다. 그의 눈이 동굴 안쪽을 향하고 있었다.
금색의 빛이 동굴 입구를 밝히고 있었다.
카인은 멈췄다.
검을 들었던 손이 떨렸다. 동굴 안쪽에서 흘러나오는 금색의 빛을 보면서, 그는 깨달았다. 죽은 아내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내가 자신의 아이를 품고 있던 모습이. 그 모습과 지금 유나가 루미를 안고 있는 모습이 겹쳤다. 자신이 지금까지 제거하려던 것이 정말로 저주받은 것인지. 자신의 증오가 정말로 정당한 것인지. 엄마의 사랑 앞에서 그 증오는 무너지고 있었다.
카인의 검이 내려왔다.
노르칸이 울었다. 승리의 울음이 아니었다. 오직 루미를 지켰다는 안도의 울음이었다.
동굴 안쪽에서 유나는 루미를 안고 있었다. 투명해진 자신의 몸으로, 금색으로 변한 루미를 감싸고 있었다.
"잘했어, 루미. 정말 잘했어."
유나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
루미는 엄마를 더 깊이 안았다. 금색의 발톱으로, 따뜻한 가슴으로. 엄마가 사라지지 않도록. 엄마를 놓지 않도록.
하지만 유나의 몸은 계속 투명해지고 있었다. 팔이 거의 보이지 않고, 몸의 윤곽이 흐릿해졌다. 마지막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루미... 이제 혼자가 아니야. 노르칸이 있고... 고아원 아이들이 있고..."
유나가 마지막 말을 남기려 했을 때, 루미의 금색 발톱이 엄마의 투명한 손을 더욱 깊이 안았다.
"엄마를 놓지 않을 거야."
루미의 목소리가 떨렸다. 용이 된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으로, 엄마를 붙잡으려 했다.
유나는 루미의 얼굴을 바라봤다. 금색의 비늘로 완성된 루미의 얼굴. 인간의 눈과 용의 강함이 함께 있는 그 얼굴. 자신의 모성애로 만들어낸 기적.
"고마워, 루미."
유나의 목소리는 이제 거의 들리지 않았다. 손가락이 완전히 투명해졌다. 팔도, 가슴도 점점 사라져가고 있었다.
"엄마!"
루미의 울음이 동굴을 울렸다. 인간의 감정을 가진 용의 절규였다.
유나의 몸은 거의 완전히 투명해졌다. 이제 루미의 품 안에서 희미한 윤곽만 남아 있었다. 모성애의 저주가 풀렸다. 유나는 루미를 구했다. 루미는 저주에서 벗어났다. 마법의 규칙대로, 저주가 풀렸으니 그것을 사용한 자도 함께 소멸해야 했다.
하지만 유나의 손은 여전히 루미의 등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거의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그곳에 있었다.
"살아가. 루미. 강하게, 따뜻하게..."
마지막 목소리가 바람처럼 사라졌다.
루미는 엄마를 놓지 않았다. 금색의 팔로 공중을 안고 있었다. 엄마의 몸이 완전히 사라진 후에도.
동굴 입구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동굴로 들어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