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 동굴의 선택

유나의 투명한 손이 루미를 안을 수 없게 되는 순간이 왔다.

손가락을 구부렸다 펴도 느낌이 없었다. 마치 물에 잠긴 손처럼, 아니 물보다 더 희미하게 존재했다. 팔뚝까지 밀려올라온 투명함은 이미 피부를 투과할 정도였다. 유나는 루미를 안으려 했지만, 자신의 팔이 루미의 몸을 관통할 것 같은 공포가 밀려왔다.

동굴 깊숙한 곳에서 루미의 울음이 멎지 않았다.

인간의 목소리와 용의 울음이 엉켜 울려 퍼지는 그 소리는 유나의 가슴을 미어뜨렸다. 루미의 몸은 어제보다 더 인간에 가까운 형태로 변하고 있었다. 어제는 팔꿈치 아래가 여전히 용의 발톱이었는데, 지금은 손가락이 열 개 모두 생겨 있었다. 엄지손가락부터 새끼손가락까지, 완벽한 인간의 손이었다. 하지만 손목부터 팔뚝까지는 검은 비늘이 소용돌이처럼 흘러다니고 있었다. 마치 검은 강이 흐르는 것처럼, 비늘들이 계속 위로 올라오고 있었다. 어제는 목까지 도달했던 비늘이, 오늘은 턱 아래까지 올라와 있었다.

루미의 얼굴은 완전히 인간이었다. 보름 전 만난 용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동그란 눈, 작은 코, 아직 유치한 입술. 여섯 살 정도의 아이 얼굴이었다. 그 얼굴이 울고 있었다. 검은 비늘이 턱 아래에서 맥박처럼 두근거리며 올라오는 것을 느끼면서.

"엄마... 아파요."

루미의 목소리가 떨렸다. 인간의 말이 처음으로 명확하게 나왔다. 지금까지는 울음과 신음 사이의 것이었는데, 이제는 단어였다. 문법까지 맞는 단어였다.

유나가 루미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투명한 손가락으로 루미의 머리를 쓸어내렸다. 손가락이 루미의 검은 비늘에 닿았을 때, 그 비늘들이 순간 멈췄다. 마치 숨을 참은 것처럼.

"괜찮아. 엄마가 여기 있어."

유나의 목소리는 여전히 확실했다. 손이 사라져도, 목소리는 남아 있었다.

어둠 속에서 움직임이 있었다.

거대한 형태가 동굴의 벽에서 떨어져 나왔다. 바위처럼 가만히 있던 것이 갑자기 살아났다. 비늘이 반짝였다. 은색이었다. 금색이 섞인 은색이었다. 마치 달빛과 별빛이 함께 흐르는 것처럼.

"벽이 아니었군."

유나가 중얼거렸다.

용이 완전히 몸을 펼쳤다. 동굴의 천장까지 닿을 정도의 크기였다. 루미의 어머니가 죽었던 산 위의 동굴보다도 훨씬 컸다. 이 용의 나이는 얼마나 될까. 유나는 본능적으로 루미를 더 꼭 안았다.

용이 천천히 고개를 내렸다. 그 눈은 루미를 보고 있었다. 루미의 눈과 정확히 같은 모양이었다. 다만 색깔이 달랐다. 루미의 눈은 인간이 되려는 용의 눈이었고, 이 용의 눈은 용으로 남기로 한 용의 눈이었다.

"노르칸?"

루미가 손을 뻗었다. 투명해진 유나의 손 사이로 검은 비늘이 섞인 루미의 손이 나타났다.

"당신을 알아요?"

유나가 루미에게 물었다. 루미의 손이 떨렸다.

"엄마 친구의 친구... 기억이 흐릿해요."

루미의 목소리가 끊겼다. 마치 두 개의 음성이 한 몸에서 나오려는 것처럼 갈라졌다. 인간의 목소리와 용의 울음이 동시에 울려 퍼졌다.

노르칸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 눈이 유나를 보았다. 유나의 투명한 손을 보았다.

"당신이 모성애의 마법을 사용했군요."

목소리였다. 인간의 말이었다. 용의 입에서 나온 인간의 말. 유나는 처음 들었다. 용이 이렇게 말을 한다는 것을.

"루미의 어머니를 아세요?"

유나가 물었다. 루미를 안은 팔에 힘을 주려 했지만, 투명한 팔에는 힘이 없었다.

노르칸이 앉았다. 산처럼 거대한 몸이 바닥에 내려앉자 동굴이 울렸다.

"알고 있지요. 루미의 어머니는 나의 천 년 친구였습니다."

천 년. 유나는 그 시간을 상상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루미의 어머니가 왜 죽었는지 아세요?"

"저주 때문입니다."

노르칸의 눈이 루미를 향했다. 그 순간, 동굴의 벽에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마치 누군가 그곳에 있는 것처럼. 아니, 누군가가 정말 있었다. 루미의 어머니였다. 죽어가던 그 용의 모습이 벽에 비쳤다. 투명한 유나의 눈에만 보이는 환영이었다.

"모든 용은 태어날 때부터 검은 심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을 저주라고 부르지요."

벽 위의 환영이 움직였다. 검은 비늘로 뒤덮인 용의 모습이 보였다. 그 용이 자신의 몸에서 검은 것을 끌어내고 있었다. 저주를 분리하는 순간이었다.

"루미의 어머니는 다른 선택을 했습니다. 자신의 저주를 자신의 아이에게 넘기는 것입니다."

환영 속에서 루미의 어머니가 아기 루미를 안았다. 그 순간, 검은 것이 아기의 몸으로 흘러들어갔다. 저주가 전이되는 순간이었다. 루미의 어머니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하지만 그 고통 뒤에는 무언가 다른 감정이 있었다. 희망인가, 아니면 포기인가.

"루미는 어머니의 저주를 두 배로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자신의 저주와 어머니의 저주. 그것이 루미의 검은 심장입니다."

유나는 루미를 더 꼭 안았다. 투명한 팔이 루미의 몸을 감쌌다. 루미가 울었다. 인간의 울음이었다. 용의 울음이 아닌, 완전히 인간의 울음이었다. 루미는 깨달았다. 자신이 무엇을 짊어지고 있는지를.

"그런데 왜... 왜 어머니가 자신의 저주를 루미에게 넘겼어요?"

유나는 루미의 죽어가던 어머니를 생각했다. 마을의 숲에서, 카인의 칼에 맞아 피를 흘리던 그 용. 그 용의 눈빛. 자신은 그 눈빛을 간청으로 읽었다. 루미를 살려달라는 간청으로.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유나는 느꼈다. 그 눈빛 속에 다른 것이 있었다는 것을.

"루미의 어머니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노르칸이 말했다. 그 목소리에 오래된 슬픔이 묻어 있었다.

"자신의 저주가 아이에게 전해지면, 언젠가 그 저주를 깨뜨릴 누군가가 나타날 것이라는 희망 말입니다. 자신은 그 누군가를 만나지 못했지만, 자신의 아이는 다를 것이라는 희망."

노르칸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 눈빛이 멀리를 보고 있었다.

"천 년을 함께했던 친구가 선택한 것이었습니다. 자신의 고통을 아이에게 물려주고, 그 아이가 자신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선택 말입니다."

벽 위의 환영이 사라졌다. 루미의 어머니의 모습이 어둠 속으로 녹아들었다.

유나의 가슴이 철렁했다. 죽어가던 용의 눈빛이 다시 떠올랐다. 그것은 간청이 아니었다. 그것은 기원이었다. 자신의 아이를 구원해달라는 기원. 유나는 자신의 투명한 손을 내려다봤다. 손가락이 거의 보이지 않는 상태였다. 마치 자신이 이미 반쯤 사라진 것처럼.

"그렇다면... 루미는 구원받을 수 있나요?"

유나의 목소리가 떨렸다.

"모성애의 마법이 진정한 마법이라면, 그렇습니다."

노르칸이 대답했다.

"하지만 그 대가는 극도로 혹독합니다. 사용자의 모든 것을 요구합니다."

"어떤 대가요?"

유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자신의 투명한 팔이 그 대가를 말해주고 있었다. 하지만 물어야 했다. 확인해야 했다.

"루미의 저주가 완전히 풀릴 때까지, 당신은 자신의 생명력을 계속 소모할 것입니다."

노르칸의 눈이 유나를 향했다. 그 눈빛은 깊었다. 마치 천 년의 세월을 담고 있는 것처럼.

"루미를 구원하면, 당신도 함께 사라질 것입니다."

유나는 자신의 투명한 손을 봤다. 손가락이 거의 보이지 않는 상태였다. 숨이 멎었다. 자신이 정말로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이었다.

"얼마나 남았나요?"

"한 달 반입니다."

루미가 유나의 목에 얼굴을 묻었다.

"엄마... 엄마가... 아프면... 싫어."

루미의 목소리가 떨렸다. 인간의 말이었다. 자신이 한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는 아이의 목소리였다. 루미는 깨달았다. 엄마가 자신 때문에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괜찮아, 루미."

유나가 루미의 머리를 쓸어내렸다. 투명한 손이 루미의 검은 비늘을 지나갔다. 그 순간, 비늘들이 잠깐 멈췄다. 마치 루미가 엄마의 손길에 안심한 것처럼.

유나는 노르칸을 봤다.

"루미를 어디로 데려가야 하나요?"

"남쪽입니다."

노르칸이 동굴의 입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남쪽 산맥 너머에 마법사들이 있습니다. 천 년 전부터 저주의 비밀을 지켜온 자들입니다. 당신의 모성애의 마법이 루미의 저주를 풀 수 있는지, 그들만이 확인할 수 있습니다."

노르칸의 목소리에 확신이 담겨 있었다.

"그들이 정말 도움을 줄 수 있나요?"

유나가 물었다.

"루미의 저주는 천 년 동안 누적된 것입니다. 그들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당신의 모성애의 마법이 진정하다면, 그것이 유일한 희망입니다."

노르칸이 일어섰다. 그 움직임만으로도 동굴이 울렸다. 산처럼 무거운 몸이 움직였다.

"이제 당신이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노르칸이 유나를 바라봤다. 그 눈빛이 깊었다.

"당신은 이미 선택을 했습니다. 루미를 구원하기로. 하지만 그 구원은 루미만의 것이 아닙니다."

"무슨 말씀이세요?"

"루미의 어머니가 자신의 저주를 루미에게 넘길 때, 그것은 단순한 저주의 전이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어머니가 루미에게 남긴 마지막 사랑이었습니다. 루미가 자신이 되지 않기를, 자신이 할 수 없는 것을 루미가 할 수 있기를 바라는 사랑."

유나는 루미를 바라봤다. 루미의 얼굴이 유나를 보고 있었다. 인간의 얼굴으로. 그 순간, 유나의 손이 더 투명해졌다. 손가락이 거의 사라져 가고 있었다. 숨이 멎을 뻔했다. 루미의 어머니가 천 년을 어떻게 견뎠을까. 그 무게를 어떻게 짊어졌을까.

"당신이 루미를 구원한다면, 루미의 어머니도 함께 구원받을 것입니다. 그 어머니가 천 년 동안 짊어지고 있던 저주도, 루미와 함께 풀릴 것입니다."

노르칸이 동굴의 깊은 곳을 가리켰다.

"이 길을 따라가세요. 동굴의 반대편으로 나가는 길입니다. 남쪽으로 향하는 길입니다."

유나는 루미를 안고 반대 방향으로 뛰기 시작했다. 투명한 다리가 바닥을 디뎠다. 느낌이 없었지만, 몸은 움직였다. 어둠 속 갈림길에서 유나는 잠깐 멈췄다. 왼쪽과 오른쪽. 어느 쪽이 남쪽일까. 뒤에서 울음이 들렸다. 노르칸의 울음이었다. 그 울음이 유나를 밀어냈다. 유나는 오른쪽 길로 달렸다.

뒤에서 거대한 울음이 울려 퍼졌다. 용의 울음이었다. 노르칸이 입을 열었다. 동굴 전체가 흔들렸다. 바위들이 쏟아져 내렸다.

동굴의 입구에서 카인이 검을 들었다. 은색 비늘을 보는 순간, 그는 본능적으로 알았다. 이것이 진정한 용이라는 것을. 자신이 마주한 그 어떤 괴물과도 다른 존재라는 것을.

"물러나!"

카인이 외쳤다. 기사들이 몸을 날렸다.

노르칸이 거대한 날개를 펼쳤다. 천 년을 산 용의 힘이 동굴 전체에 퍼졌다. 천장이 울렸다. 바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카인은 검을 들어 올렸다. 떨어지는 바위를 막으려 했지만, 그것은 무의미했다. 노르칸의 울음은 모든 것을 압도했다.

거대한 바위가 동굴의 입구를 막았다. 기사들의 비명이 들렸다. 그 소리는 금세 사라졌다. 어둠이 모든 것을 삼켰다.

유나는 앞만 봤다. 동굴의 반대편으로. 남쪽으로.

갑자기 앞이 밝아졌다. 동굴의 출구였다. 햇빛이 쏟아져 내렸다. 유나는 루미를 안고 그 빛 속으로 뛰어들었다.

뒤에서는 더 이상의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노르칸의 울음도 멎었다. 동굴은 완전히 무너져 있었을 것이다.

유나와 루미는 산 위의 길을 달렸다. 아래로는 계곡이 보였다. 멀리 남쪽 산맥이 보였다. 그 산맥 너머에 마법사들이 있을 것이다.

루미의 목소리가 들렸다. 투명해지는 유나의 귀에.

"엄마... 사랑해요."

처음 듣는 말이었다. 인간의 말이었다. 용이 인간이 되면서 배운 첫 번째 감정의 언어였다. 하지만 이 말은 단순한 감정 표현이 아니었다. 루미가 자신의 어머니를 이해했다는 뜻이었다. 자신이 무엇을 얻었고, 무엇을 잃고 있는지를 깨달았다는 뜻이었다.

유나의 눈물이 떨어졌다.

"엄마도 사랑해, 루미."

그 순간, 유나의 손가락이 완전히 사라졌다. 손목도 보이지 않기 시작했다. 팔이 투명한 공기가 되어갔다. 루미를 안고 있던 유나의 팔이, 루미의 몸을 관통하기 시작했다.

"엄마..."

루미의 목소리가 떨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절망의 울음이 아니었다. 깨달음의 울음이었다.

유나는 더 꼭 안으려 했다. 하지만 자신의 팔은 이미 루미의 몸을 통과하고 있었다. 투명한 손가락들이 루미의 등 너머로 나타났다. 느낄 수 없었다. 안을 수 없었다. 오직 사라지고 있을 뿐이었다.

"계속 달려, 루미. 남쪽으로. 마법사들을 찾아."

유나의 목소리는 여전히 확실했다. 하지만 손은 더 이상 루미를 잡을 수 없었다.

뒤에서 카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동굴 너머에서. 멀리서.

"저기다! 저기를 쏴라!"

화살이 날아왔다. 유나는 몸을 날려 피했다. 투명한 몸이 땅에 닿았다. 아팠다. 하지만 루미는 안전했다. 루미는 계속 달릴 수 있었다.

"달려, 루미. 함께 달려."

유나가 다시 일어섰다. 투명한 다리가 산길을 내달았다. 또 다른 화살이 날아왔다. 하나가 유나의 옆구리를 스쳤다. 투명한 피가 흘렀다.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남쪽 산맥이 점점 가까워졌다.

루미는 앞으로만 달렸다. 검은 비늘이 점점 옅어지고 있었다. 인간의 모습이 완성되어 가고 있었다. 하지만 엄마는 사라지고 있었다.

"엄마!"

루미가 뒤를 돌아봤다. 유나의 몸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투명한 실루엣만 남아 있었다. 그 실루엣도 빠르게 흐릿해지고 있었다.

"앞으로 달려, 루미. 절대 뒤를 돌아보지 마."

유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제 공기 속에서 나오는 목소리 같았다. 몸이 없는 목소리 같았다.

루미는 계속 달렸다. 검은 비늘이 완전히 사라졌다. 완벽한 인간의 모습이 되었다. 여섯 살 아이의 모습으로. 하지만 엄마는.

"사랑해, 루미."

그 목소리가 바람처럼 사라져 갔다.

루미의 발이 멈췄다. 뒤를 돌아봤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엄마가 완전히 사라졌다. 오직 공중에 떠 있는 투명한 손가락 하나만 남아 있었다. 그 손가락이 루미의 뺨을 스쳤다. 마지막으로.

그리고 사라졌다.

루미는 남쪽 산맥을 향해 다시 뛰기 시작했다. 이제 혼자였다. 하지만 엄마의 사랑을 가지고. 엄마가 남긴 모든 것을 가지고.

남쪽 산맥 너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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