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루미의 울음이 멈추지 않았다.

동굴 깊숙한 곳, 유나의 팔 안에서 루미는 인간의 목소리와 용의 울음을 섞어 내뱉었다. 그 울음은 고통이었고 간청이었고, 동시에 무언가를 깨닫고 있는 음성 그 자체였다. 유나는 루미의 몸을 감싸 안고 자신의 마지막 생명력을 쏟아붓고 있었다.

투명해진 손가락들이 루미의 등을 쓸었다. 손가락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만큼 흐릿해진 손. 유나는 자신의 형태가 사라져 가는 것을 느껴도 멈추지 않았다. 루미가 살아야 했다. 루미가 살아남으면 자신이 죽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모성애라는 이름의 절대적 감정이, 유나의 모든 것을 태워버리고 있었다.

"엄마... 엄마가..."

루미의 목소리가 떨렸다. 작은 팔이 유나의 목을 감싸 안았다. 그 팔은 더 이상 비늘로 뒤덮인 용의 발이 아니었다. 인간의 팔이었다. 따뜻하고, 부드럽고, 생명으로 떨리는 팔이었다.

"나는 무엇인가요?"

루미의 질문이 동굴을 울렸다. 유나는 루미의 머리를 쓸어내렸다. 투명한 손이 루미의 머리카락을 만졌을 때, 유나는 자신이 정말로 사라지고 있음을 알았다. 하지만 두렵지 않았다.

"넌 내 아이야. 루미."

유나의 목소리는 더 이상 힘이 없었다. 호흡도 가빠졌다. 하지만 루미를 안은 팔은 여전히 단단했다. 아니, 단단해야 했다. 루미가 떨어져 나가면 안 됐다.

"저는... 저는..."

루미가 고개를 들었다. 루미의 눈이 유나와 마주쳤다. 그 순간, 유나는 루미의 눈빛 안에서 무언가를 깨닫는 과정을 목격했다. 루미의 검은 비늘이 목까지 올라왔다. 비늘이 루미의 얼굴을 집어삼킬 듯이 퍼져나갔다. 하지만 그 비늘 너머로, 루미의 눈빛은 점점 더 맑아지고 있었다.

"저는 저주받은 용입니다."

루미가 말했다. 아이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용의 울음이 아니었다. 둘이 섞인 음성이 동굴을 진동시켰다.

"엄마는 나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주고 있습니다."

루미가 이해했다. 비로소, 루미는 이해했다.

유나는 루미의 머리를 더 깊게 가슴에 묻었다. 투명한 팔이 루미를 감싸 안았다. 유나의 몸에서 마지막 남은 생명력이 파란 빛으로 변했다. 그 빛이 루미를 감싸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루미의 목소리가 변했다. 더 이상 흔들리지 않았다. 더 이상 두렵지 않았다.

"나는 엄마를 사랑합니다."

루미의 팔이 유나를 안았다. 아이의 팔이, 용의 발이 아닌 인간의 팔이 유나의 등을 감싸 안았다. 그 팔에 힘이 들어갔다. 루미가 유나를 안는 것이었다. 처음으로, 루미가 유나를 구하려 하고 있었다.

동굴 안이 밝아졌다.

파란 빛이 아니었다. 금색의 빛이었다. 루미의 몸에서 터져 나오는 금색의 빛이었다. 루미의 검은 비늘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비늘이 벗겨지면서 나타난 것은 완전한 인간의 피부였다. 하지만 그 피부 위에는 여전히 용으로서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미세한 금색 무늬가 루미의 팔과 어깨를 따라 흐르고 있었다. 저주가 아닌, 선택의 증거였다.

루미의 눈빛이 변했다. 순수한 인간의 감정이 루미의 눈에 가득 찼다. 그리고 동시에, 용으로서의 위엄이 루미의 눈 속에 살아났다. 루미는 더 이상 저주받은 용이 아니었다. 루미는 자신의 정체를 받아들인 존재가 되었다.

"엄마!"

루미의 울음이 터져 나왔다. 루미는 유나를 안은 팔에 힘을 주었다. 완전한 인간의 목소리로, 하지만 용의 울음을 담아서, 루미는 울었다.

"엄마, 제발! 엄마!"

유나의 눈이 감기고 있었다. 투명한 몸이 더 이상 빛을 내지 못했다. 유나의 수명이 다해 가고 있었다. 루미의 팔 안에서, 유나는 마지막으로 루미의 얼굴을 느껴보려 했다. 투명한 손이 루미의 뺨을 만졌다.

따뜻했다.

인간의 온기였다. 저주가 아닌, 생명의 온기였다.

"루미... 살아줘..."

유나의 목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아졌다. 유나의 눈이 완전히 감겼다. 투명한 몸이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루미는 울었다.

아이의 울음도, 용의 울음도 아닌, 무언가 새로운 울음이었다. 루미의 울음이 동굴을 울렸다. 루미의 팔이 유나를 더 깊게 안았다. 루미의 가슴에서 따뜻한 빛이 터져 나왔다.

금색의 빛이었다.

루미가 사랑하는 빛이었다. 루미가 유나를 사랑하는 그 감정이, 금색의 빛으로 변해 유나를 감싸고 있었다. 루미는 유나를 구하려고 했다. 루미는 자신의 모든 것을 유나에게 쏟아붓고 있었다.

유나의 눈이 떠졌다.

첫 번째 숨이 유나의 몸에 돌아왔다. 투명했던 손이 다시 색을 되찾기 시작했다. 유나의 얼굴에 생기가 돌아왔다. 유나는 루미의 팔 안에서 눈을 떠 루미의 얼굴을 보았다.

루미의 얼굴이 보였다. 인간의 얼굴이었다. 하지만 눈 속에는 용의 영혼이 살아 있었다. 루미는 더 이상 저주받은 존재가 아니었다. 루미는 자신을 받아들인 존재가 되었다.

"엄마..."

루미가 울며 웃었다. 유나는 루미의 뺨을 닦아 주었다. 이번에는 투명하지 않은 손이었다. 따뜻한 손이었다.

"내가 여기 있어. 루미."

유나의 목소리에 힘이 돌아왔다. 유나는 루미를 안았다. 진정한 안음이었다. 모성애의 마법이 아닌, 엄마와 아이의 안음이었다.

동굴 입구에서 카인의 기사들이 들어오려 했다. 하지만 노르칸이 그 길을 막았다. 거대한 용의 몸이 동굴 입구를 가득 채웠다.

"충분하다."

노르칸의 목소리가 울렸다. 기사들이 뒤로 물러섰다.

노르칸은 동굴 안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루미와 유나를 본 노르칸의 눈이 반짝였다. 노르칸은 입 꼬리를 올렸다. 그것이 용의 미소였다.

"가거라. 아이와 어머니여."

노르칸이 몸을 비켜섰다. 동굴의 뒤쪽, 남쪽으로 향하는 길이 열렸다.

유나는 루미를 안고 일어섰다. 루미는 유나의 목에 팔을 감았다. 유나는 루미를 안고 동굴을 빠져나왔다.

새벽이 밝아오고 있었다.

산맥의 능선을 따라 햇빛이 흘러내렸다. 고아원 쪽으로 향하는 길이 한눈에 보였다. 유나는 루미를 안고 그 길을 걸어갔다.

루미는 유나의 목에 얼굴을 묻었다. 루미의 숨소리는 편했다. 더 이상 경련하지 않았다. 루미는 자신의 정체를 받아들였기 때문이었다.

산을 내려오는 길에서, 유나는 고아원의 아이들을 만났다.

민준이가 맨 앞에 서 있었다. 그 뒤로 고아원의 모든 아이들이 줄을 서 있었다. 소피아도 함께 있었다. 소피아의 눈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

"언니!"

민준이가 달려왔다. 유나는 루미를 한 팔로 안은 채 민준이를 안았다.

"루미 형이!"

다른 아이들도 달려왔다. 루미는 유나의 팔에서 내려와 아이들을 맞이했다. 루미의 얼굴에는 처음으로 순수한 미소가 떠올랐다.

"안녕... 나는 루미야."

루미가 말했다. 아이들이 루미를 안았다. 루미는 그 안음을 받아들였다. 더 이상 저주받은 용이 아니었다. 루미는 고아원의 형이 되었다.

마을 사람들이 고아원 앞에 모여 있었다. 처음에는 두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루미가 웃고, 아이들이 루미를 안을 때, 마을 사람들의 얼굴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아론 경은 더 이상 용의 제거를 주장하지 않았다. 카인은 고아원 앞에서 멈춰 섰다. 그의 눈에는 여전히 슬픔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증오는 사라지고 있었다.

유나는 고아원 문 앞에서 루미를 안았다. 루미의 손이 유나의 목을 감쌌다.

"엄마, 사랑해."

루미가 말했다.

"나도 사랑해, 루미."

유나가 대답했다.

고아원의 문이 열렸다. 아이들이 웃으며 들어갔다. 유나와 루미도 함께 들어갔다. 뒤에서 마을 사람들의 환호성이 들렸다.

새로운 아침이 고아원을 밝혔다.

유나의 얼굴에는 다시 생기가 돌아왔다. 투명해진 손은 다시 따뜻해졌다. 유나의 수명은 루미의 사랑으로 되살아났다.

루미는 이제 유나의 아들이자, 고아원의 형이 되었다. 루미의 몸에는 저주의 비늘이 남아 있지 않았다. 대신 금색의 무늬가 루미의 피부 위에 흘렀다. 그것은 루미가 자신을 받아들인 증거였다. 저주가 아닌, 선택의 흔적이었다.

고아원의 밥상 위에는 다섯 그릇의 밥이 놓였다. 유나, 루미, 민준이, 그리고 다른 아이들을 위한 밥이었다. 루미는 유나의 옆에 앉아 밥을 집어먹었다. 처음으로, 루미는 배고픔을 느꼈다. 처음으로, 루미는 음식의 맛을 알았다.

"엄마, 맛있어."

루미가 웃으며 말했다.

"그래. 잘 먹어."

유나가 루미의 머리를 쓸어 내렸다.

창문 너머로, 새로운 계절이 고아원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봄이 올 것 같았다. 고아원의 정원에는 꽃이 필 것이다. 루미는 그 꽃을 보며 웃을 것이다.

유나는 루미를 바라봤다. 루미는 더 이상 죽어가는 용이 아니었다. 루미는 유나의 아이였다. 진정한 아이였다.

그리고 유나는 진정한 엄마가 되었다.

모성애라는 가장 강한 마법으로, 저주의 사슬을 끊은 진정한 엄마가 되었다.

고아원의 문 밖에서 카인은 멈춰 있었다. 기사단장의 눈에는 여전히 슬픔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더 이상 증오는 없었다. 카인은 고개를 돌려 마을로 향했다. 자신의 아내를 위해, 그리고 루미를 위해 기도하기 위해서였다.

아론 경은 저택으로 돌아갔다. 그의 계산은 틀렸다. 사랑이라는 변수를 계산에 넣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노르칸은 산 위의 동굴에서 내려왔다. 오래된 친구의 죽음이 헛되지 않았다. 루미가 살았다. 루미가 자신의 정체를 받아들였다. 노르칸은 고아원 위의 하늘에서 루미를 내려다봤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먼 산맥으로 사라졌다.

고아원의 밥상 위에서, 루미는 유나의 손을 잡았다. 투명하지 않은 손이었다. 따뜻한 손이었다. 루미의 손도 따뜻했다. 인간의 온기였다.

"엄마, 앞으로는 어디로 가요?"

루미가 물었다.

"여기 있어. 루미. 우리는 여기 있어."

유나가 대답했다.

"고아원?"

"응. 고아원이 우리 집이야."

유나가 루미의 손을 꼭 잡았다.

고아원의 창문에서 햇빛이 들어왔다. 새로운 아침의 빛이었다. 유나와 루미는 그 빛 속에서 밥을 먹고 있었다. 진정한 엄마와 아이가 되어, 함께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저주는 끝났다.

사랑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동굴 깊숙한 곳에서 파란 빛이 천천히 꺼져갔다.

유나의 손가락이 완전히 투명해졌다. 팔도, 어깨도. 이제 남은 것은 루미를 감싸는 두 팔뿐이었다. 그 팔도 점점 얇아지고 있었다. 마치 물에 녹아드는 얼음처럼.

루미는 울고 있었다.

인간의 울음과 용의 울음이 뒤섞인, 그 소리는 동굴 벽을 울리고 다시 돌아왔다. 루미의 몸은 여전히 경련하고 있었다. 검은 비늘이 목을 타고 턱까지 올라왔다. 거의 다 왔다. 저주가 루미를 완전히 집어삼킬 때까지는 이제 몇 시간도 남지 않았다.

유나는 자신의 투명한 팔을 더 단단히 조였다.

"루미. 들어봐."

유나의 목소리는 가늘었다. 마지막 초를 태우는 촛불처럼 희미했다.

"엄마... 엄마가 자꾸 사라져..."

루미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루미의 눈빛에 공포가 가득했다. 하지만 그것은 저주의 검은 심장이 일으키는 공포가 아니었다. 엄마를 잃을까봐 두려워하는, 인간의 감정이었다.

"괜찮아. 내가 여기 있어."

유나가 루미의 뒷덜미에 입을 맞췄다. 마지막 남은 생명력을 모두 쏟아붓는 기분이었다. 자신의 심장이 두드리는 소리를 루미에게 들려주고 싶었다. 이게 사랑이야, 이게 엄마야, 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루미의 몸이 다시 경련했다.

검은 비늘이 입까지 올라왔다. 루미의 이빨이 뾰족하게 변했다. 손톱은 발톱이 되어 자라났다. 용의 본능이 깨어나고 있었다. 곧 루미는 이 악몽에서 깨어나 진정한 괴물이 될 것이다. 자신을 낳은 어미마저 해칠 수 있는, 증오와 파괴욕만이 남은 괴물이 될 것이다.

유나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 순간, 뭔가 바뀌었다.

루미가 갑자기 움직임을 멈췄다. 경련하던 몸이 굳었다. 검은 비늘이 더 이상 확산되지 않았다. 대신 루미의 눈이 천천히 떠졌다. 그 눈은 검은색이 아니었다.

금색이었다.

"나는..."

루미가 천천히 말했다. 목소리가 깊어졌다. 용의 목소리와 인간의 목소리가 완벽하게 섞여 있었다.

"나는... 저주받은 용이다."

루미의 손이 유나의 팔을 감쌌다. 그 손가락은 발톱이 아니었다. 인간의 손가락이었다. 따뜻한 손가락이었다.

"그리고 엄마는..."

루미가 고개를 돌려 유나를 바라봤다. 금색의 눈으로.

"엄마는 나를 구하기 위해 자신을 태우고 있다."

유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자신의 목소리가 모두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었다. 투명한 입술이 떨렸다.

"나는 알았어. 엄마."

루미가 유나를 안았다. 죽어가는 엄마를 품에 안고, 루미가 울음을 터뜨렸다.

"나는 용이야. 저주받은 용이야. 그리고 그걸 받아들여."

루미의 목소리가 동굴 전체를 울렸다. 그 울음은 절망이 아니었다. 선택의 울음이었다.

"나는 나를 받아들인다!"

동굴이 진동했다.

루미의 몸에서 금색의 빛이 터져 나왔다. 검은 비늘이 하나둘 떨어져 나갔다. 어두운 연기처럼 흩어졌다. 떨어지는 비늘 자리에는 금색의 무늬가 남겨졌다. 저주가 아닌, 선택의 흔적으로.

유나는 루미의 팔 안에서 눈을 떴다.

투명하던 손이 다시 색을 돌아왔다. 손가락이 다시 나타났다. 따뜻한 온기가 돌아왔다. 가슴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 죽어가던 심장이 다시 살아났다.

"엄마!"

루미가 소리쳤다. 인간의 목소리였다. 완전한 인간의 목소리였다. 하지만 그 안에는 용의 울음이 아련하게 남아 있었다.

"내가... 나를 받아들였어. 나는 용이야. 하지만 엄마의 아들이야!"

루미가 유나를 안고 울었다. 눈물이 흘렀다. 인간의 눈물이었다. 하지만 그 눈물은 금색으로 빛났다.

유나는 루미의 가슴에 기대어 숨을 쉬었다. 살아 있다. 자신이 살아 있다. 루미도 살아 있다. 더 이상 저주받은 용이 아니라, 자신의 정체를 받아들인 용으로서 살아 있다.

"고마워, 루미. 고마워."

유나가 루미의 등을 쓸어 내렸다. 따뜻한 손이었다. 더 이상 투명하지 않은 손이었다.

동굴의 어둠이 천천히 걷혀갔다. 입구에서 새벽빛이 들어왔다. 밤이 지나갔다. 새로운 아침이 왔다.

---

고아원의 문 앞에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카인의 기사들이 칼을 내려놨다. 아론 경의 관리인은 폐쇄 명령서를 구겨 버렸다. 마을 사람들의 얼굴에는 두려움 대신 놀라움이 가득했다.

산 위에서 울려 퍼지던 용의 울음이 멈췄다. 대신 새로운 울음이 들렸다. 금색으로 빛나는 울음이었다. 저주의 울음이 아니라, 선택의 울음이었다.

유나는 루미의 손을 잡고 고아원으로 내려왔다. 투명했던 얼굴에 다시 생기가 돌아와 있었다. 루미의 몸은 완전한 인간의 형태였지만, 그 피부에는 금색의 무늬가 흘렀다. 저주의 비늘은 단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대신, 루미의 눈은 금색이었다. 그것이 루미가 용이라는 증거였다. 그것이 루미가 자신을 받아들였다는 증거였다.

민준이가 가장 먼저 뛰어나왔다.

"루미! 루미야!"

민준이가 루미를 안았다. 루미는 민준이를 안아 들었다. 인간의 힘으로. 용의 힘이 아니라, 그저 형이 되어 동생을 안는 힘으로.

"민준이. 나는... 더 이상 무서워하지 않아."

루미가 말했다. 그 목소리에는 평온함이 있었다.

"나는 나야."

고아원의 아이들이 하나둘 나왔다. 그들은 루미를 둘러싸고 울음을 터뜨렸다. 루미는 아이들을 안았다. 하나하나를 안고 자신의 형이 되어 있었다.

카인은 고아원 앞에서 멈춰 서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여전히 슬픔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증오는 사라지고 있었다. 그가 보는 것은 괴물이 아니라, 유나의 아들이었다. 자신의 아내를 죽인 종족이 아니라, 모성애로 구원받은 한 생명이었다.

카인은 무릎을 꿇었다.

"용... 루미."

카인이 말했다. 기사단장의 목소리가 떨렸다.

"나는... 미안하다."

루미는 카인을 바라봤다. 금색의 눈으로. 용의 눈으로. 하지만 그 안에는 용서가 있었다.

"나도 미안해. 아저씨."

루미가 말했다.

"내 어머니는 많은 사람을 해쳤어. 나도 그 저주를 안고 있었어. 하지만 이제는 아니야."

루미가 손을 내밀었다. 인간의 손이었다.

"이제 나는 새로운 사람이야. 엄마의 아들이야."

카인은 루미의 손을 잡았다. 기사단장의 손가락이 떨렸다.

"용서해줘서 고마워, 루미."

아론 경은 저택 창문에서 이 장면을 보고 있었다. 그의 얼굴이 창백했다. 계산이 틀렸다. 사랑이라는 변수를 넣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창문을 닫고 몸을 돌렸다.

마을 사람들의 얼굴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공포가 경외로 바뀌었다. 증오가 수용으로 바뀌었다. 마을은 천천히, 하지만 확실히 변하고 있었다.

유나는 고아원 문 앞에서 루미를 안았다. 루미의 손이 유나의 목을 감쌌다.

"엄마, 사랑해."

루미가 말했다.

"나도 사랑해, 루미."

유나가 대답했다.

고아원의 문이 열렸다. 아이들이 웃으며 들어갔다. 유나와 루미도 함께 들어갔다. 뒤에서 마을 사람들의 환호성이 들렸다.

새로운 아침이 고아원을 밝혔다.

유나의 얼굴에는 다시 생기가 돌아왔다. 투명해진 손은 다시 따뜻해졌다. 유나의 수명은 루미의 사랑으로 되살아났다.

루미는 이제 유나의 아들이자, 고아원의 형이 되었다. 루미의 몸에는 저주의 비늘이 남아 있지 않았다. 대신 금색의 무늬가 루미의 피부 위에 흘렀다. 그것은 루미가 자신을 받아들인 증거였다. 저주가 아닌, 선택의 흔적이었다.

고아원의 밥상 위에는 다섯 그릇의 밥이 놓였다. 유나, 루미, 민준이, 그리고 다른 아이들을 위한 밥이었다. 루미는 유나의 옆에 앉아 밥을 집어먹었다. 처음으로, 루미는 배고픔을 느꼈다. 처음으로, 루미는 음식의 맛을 알았다.

"엄마, 맛있어."

루미가 웃으며 말했다.

"그래. 잘 먹어."

유나가 루미의 머리를 쓸어 내렸다.

창문 너머로, 새로운 계절이 고아원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봄이 올 것 같았다. 고아원의 정원에는 꽃이 필 것이다. 루미는 그 꽃을 보며 웃을 것이다.

노르칸은 산 위의 동굴에서 내려왔다. 오래된 친구의 죽음이 헛되지 않았다. 루미가 살았다. 루미가 자신의 정체를 받아들였다. 노르칸은 고아원 위의 하늘에서 루미를 내려다봤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먼 산맥으로 사라졌다. 친구가 남긴 마지막 선물은 잘 살아갈 것이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고아원의 밥상 위에서, 루미는 유나의 손을 잡았다. 투명하지 않은 손이었다. 따뜻한 손이었다. 루미의 손도 따뜻했다. 인간의 온기였다. 그리고 그 손가락 사이에는 금색의 빛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엄마, 앞으로는 어디로 가요?"

루미가 물었다.

"여기 있어. 루미. 우리는 여기 있어."

유나가 대답했다.

"고아원?"

"응. 고아원이 우리 집이야. 그리고 이 아이들이 우리 가족이야."

유나가 루미의 손을 꼭 잡았다.

고아원의 창문에서 햇빛이 들어왔다. 새로운 아침의 빛이었다. 유나와 루미는 그 빛 속에서 밥을 먹고 있었다. 진정한 엄마와 아이가 되어, 함께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저주는 끝났다.

사랑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마을의 변화는 이제 시작이었다. 카인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있었다. 기사단장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렀다. 아내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놓친 것들을 위해서였다.

그리고 산 위의 어딘가에서, 노르칸의 울음이 다시 울려 퍼졌다. 용의 울음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슬픔이 아니라 희망의 울음이었다.

고아원의 밥상은 내일도 채워질 것이다. 루미는 계속해서 배우고 자라날 것이다. 유나는 그 곁에서 웃음을 잃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어느 날, 루미가 자신의 진정한 이름을 되찾을 때, 모든 것이 다시 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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