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준이의 손이 떨렸다
어제 밤 카인 기사단장이 고아원 담장 너머에 심은 것을 발견했을 때부터 손이 떨리지 않은 적이 없었다. 유리병 같은 것들. 투명한 액체가 담긴. 냄새를 맡으면 코가 싼했고, 손끝에 닿으면 피부가 따가웠다. 독이었다. 루미를 죽이기 위한 독.
"엄마."
민준이는 아침 햇살이 들어오는 거실에서 유나를 찾았다. 유나는 창가에 서 있었다. 손가락이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투명해져 있었다. 루미는 여전히 자고 있었다. 요즘 루미는 밤새 악몽을 꾸다가 아침이 되면 진이 빠져 깊이 잠들곤 했다.
"뭐 있어, 민준이?"
유나가 돌아봤다. 얼굴이 창백했다. 민준이는 엄마의 얼굴을 볼 때마다 가슴이 철렁했다. 엄마가 자꾸만 사라져가고 있었다. 손가락만 아니라, 팔도, 목도, 심지어 얼굴까지. 마치 엄마가 천천히 세상에서 지워지고 있는 것처럼.
"기사단이... 뭔가 심었어요."
민준이가 주머니에서 종이 조각을 꺼냈다. 어제 밤 담장 너머에서 주운 것. 카인의 필체였다. 글씨는 날카롭고 직선적이었다.
**'루미에게 닿으면 3시간 내 심장 마비. 3일 안에 끝낼 것.'**
유나의 얼굴이 굳었다. 손가락이 더 사라져 갔다. 마치 감정이 커질수록 신체가 지워지는 것처럼.
"어디에?"
"담장 밖. 루미가 나갈 수 있는 모든 곳에."
유나가 창밖을 봤다. 아침 햇살 아래, 고아원을 둘러싼 담장 너머로 기사들이 서 있었다. 3일 전과는 달랐다. 기사들의 수가 두 배로 늘어났다. 그리고 그들은 더 이상 기다리는 표정이 아니었다. 준비된 표정이었다. 마치 언제든 들어올 준비가 되어 있는 것처럼.
"엄마, 루미를 데리고 나가야 해요."
민준이의 목소리가 떨렸다. 아이가 맞다. 민준이는 아이지만, 지금 고아원 안에 있는 유일한 어른의 관점을 가진 사람이었다. 소피아 의사는 약초를 구하러 마을 중심부로 나갔고, 다른 아이들은 자고 있었다.
"어디로?"
"산으로. 산 위의 동굴로."
민준이가 말했다. 그곳이라면 기사들이 쉽게 들어올 수 없다. 그곳이라면 루미가 숨을 수 있다. 민준이는 3년 전부터 고아원 뒤의 산길을 알고 있었다. 버려진 음식을 가져다 주던 고양이들 때문에.
유나가 민준이를 바라봤다. 아이의 눈은 맑았다. 무섭지 않은 것처럼 보였지만, 손은 떨리고 있었다. 유나는 민준이의 손을 잡았다. 투명해진 손가락이 아이의 손등 위에서 거의 무게를 드리우지 못했다.
"고마워. 정말로."
유나가 속삭였다.
"하지만 먼저 할 일이 있어."
***
오전 10시. 고아원 담장 앞.
카인은 말 위에 앉아 있었다. 그의 갑옷은 햇빛에 반짝였고, 얼굴은 돌처럼 경직되어 있었다. 3년 전부터 그랬다. 아내를 잃은 날 이후로 그의 얼굴은 굳어 버렸다.
담장 문이 열렸다.
유나가 나왔다. 혼자. 루미는 고아원 안에 남겨두고.
카인의 눈이 좁혀졌다. 그는 말에서 내렸다. 철갑옷이 부딪히며 소리를 냈다. 그 소리는 마치 칼을 갈고 있는 것 같았다.
"아이를 내놓으시오."
카인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감정이 없었다.
"루미는 당신의 아내를 죽인 그 용이 아닙니다."
유나가 말했다. 목소리는 떨리지 않았다.
"3년 전 마을을 습격한 용은 루미의 어머니였습니다. 루미는... 루미는 아직 아기예요. 아기인데, 저주를 받은 아기일 뿐입니다."
카인이 한 발 다가섰다.
"모든 용은 같습니다."
"아니에요."
유나가 한 발 물러서지 않았다.
"루미는 날 때부터 저주를 받았어요. 검은 심장 증후군이라고 하죠. 그건 루미의 잘못이 아니에요. 루미는... 루미는 지금 그 저주를 극복하고 있어요. 제 손으로 안고, 제 눈으로 보고, 제 마음으로 사랑하면서."
유나의 목소리가 떨렸다.
"당신도 알 거예요. 아내분을 잃으셨으니까. 복수가 뭔지. 그 감정이 얼마나 깊은지. 하지만 루미를 죽인다고 해서 아내분이 돌아오지는 않아요."
카인의 턱이 경련했다. 마치 무언가 단단한 것 안에서 깨어지려는 것처럼. 유나의 말이 닿았다. 그의 손이 검의 자루를 더 세게 움켜쥐었다.
"제 아내는 그 괴물 때문에 죽었습니다."
카인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3년간 억눌러온 감정이 떠오르는 것 같았다. 아내의 죽음. 그 장면이 자신의 눈앞에 떠올랐다. 용의 불길 속에서 타오르던 아내의 모습. 자신을 지키려고 팔을 벌렸던 아내의 손. 그 손이 재가 되어 흩어지던 순간.
"알아요."
유나가 말했다.
"정말 미안해요. 하지만 이 아기는 당신의 아내를 죽인 용이 아니에요. 이건 복수가 아니라 학살이 되는 거예요. 무고한 아이를 죽이는 것."
카인이 검을 뽑았다. 검의 소리가 공기를 가르며 울렸다. 기사단의 기사들이 긴장했다. 말들이 코를 벌렁거렸다.
"아이를 내놓으시오."
카인이 말했다.
"아니면?"
유나가 말했다.
"당신이 직접 들어올 건가요? 고아원에 들어가서 아이들 앞에서 루미를 죽일 건가요? 그게 당신이 지키고 싶던 마을의 정의예요?"
카인이 움직였다. 빠르게. 검을 들고 담장 안으로 들어섰다. 기사들이 따라왔다. 말발굽이 흙을 파고 들어섰다. 담장 안의 정원이 먼지로 뒤덮였다.
유나가 소리쳤다.
"민준이!"
고아원의 모든 창문이 열렸다. 아이들의 얼굴이 나타났다. 열 명이 넘는 아이들이. 그들은 담장 안으로 들어오는 기사들을 봤다. 철갑옷을 입은 기사들을. 검을 든 기사들을.
그리고 그들은 고아원 거실로 뛰어갔다. 루미가 있는 곳으로.
카인이 멈췄다.
고아원의 거실에서 아이들의 목소리가 울렸다. 그것은 두려움의 비명이 아니었다. 그것은 루미를 보호하려는 외침이었다. 아이들은 루미를 둘러싸고 서 있었다. 마치 루미가 자신들의 형제인 것처럼.
민준이가 가장 앞에 섰다.
"루미는 우리 가족이에요!"
아이의 목소리가 고아원 전체에 울렸다.
카인의 검이 흔들렸다. 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아내의 죽음 이후 3년간 굳어 있던 그 얼굴이. 무언가 깨지려는 것처럼.
카인은 한 발 더 나아갔다. 아이들을 밀쳐내려고. 하지만 민준이가 앞으로 나섰다. 작은 몸으로. 갑옷 입은 기사를 막으려고.
"가지 마!"
민준이가 외쳤다.
카인은 검을 들었다. 아이를 밀쳐낼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손가락이 경련했다. 아이의 목소리가 닿았기 때문이다. 루미를 보호하려는 그 목소리가. 무고한 아이의 목소리가.
3년 전, 아내가 죽던 날. 아내도 누군가를 보호하려다 죽었다. 용의 불길 속에서. 자신을 지키려고. 아이를 지키려고.
그 아내의 모습과 민준이의 모습이 겹쳤다.
카인의 검이 손에서 떨어졌다. 철갑옷이 부딪히며 소리를 냈다.
"내가... 뭘 하려던 거지?"
카인이 중얼거렸다. 그의 목소리는 부서져 있었다. 3년 동안 자신을 지탱해온 분노가 한순간에 무너지는 것을 느꼈다. 자신의 아내를 죽인 것은 루미의 어머니였다. 그렇다면 루미를 죽인다고 해서 아내가 돌아올까? 아내의 죽음으로 또 다른 아이를 잃게 하는 것이 자신의 아내가 원했던 일일까?
카인은 무릎을 꿇었다. 아이들 앞에서. 민준이 앞에서.
유나가 고아원 안으로 들어갔다. 아이들을 밀치고 루미를 안아 올렸다. 루미의 몸은 이미 반쯤 인간의 형태로 변해 있었다. 팔과 다리가 있었다. 하지만 등과 어깨에는 여전히 검은 비늘이 퍼져 있었다.
"우리 나가."
유나가 루미를 안고 말했다.
루미는 유나의 목에 팔을 감았다. 인간의 팔. 아직은 인간의 팔.
유나가 루미의 머리를 쓸어내렸다. 루미의 머리카락은 부드러웠다. 이미 용의 비늘이 아니라 인간의 머리카락이었다.
유나가 루미를 안고 달렸다. 고아원의 뒷문으로. 산길로. 아침 햇살이 가득한 정원을 가로질러.
뒤에서 기사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카인이 무릎을 꿇고 있었기 때문이다. 검을 내려놓고.
검의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담장을 자르는 소리도, 나무를 자르는 소리도 없었다. 유나는 돌아보지 않았다.
루미가 유나의 목에 팔을 감았다.
"엄마. 아파?"
"응. 좀."
유나가 말했다. 진실로.
"하지만 괜찮아. 우리 함께면 괜찮아."
산길은 가팔랐다. 유나의 다리가 떨렸다. 사라져가는 다리. 마치 공기 중에서 떠다니려는 것처럼. 산길을 오르면서 유나는 자신의 몸이 점점 무거워지면서도 동시에 가벼워지는 이상한 감각을 느꼈다. 루미의 무게는 실제로 무거워졌지만, 자신의 팔은 계속 투명해져 가고 있었다. 모성애의 마법이 작동하고 있었다. 자신의 생명을 루미에게 흘려보내는 마법이.
산길 위에서 뒤를 돌아보니, 고아원이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 카인의 갑옷은 보이지 않았다.
유나의 가슴이 철렁했다.
카인을 막을 수 없다. 유나는 알고 있었다. 자신은 더 이상 기사단과 싸울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손가락이 사라지고, 다리가 흔들리고, 숨이 가쁜 사람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카인이 따라오지 않았다.
유나는 계속 달렸다. 왜냐하면 자신의 팔에는 루미가 있었기 때문이다. 루미의 심장이 자신의 가슴에 닿아 있었기 때문이다. 루미가 자신을 "엄마"라고 부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산 위의 동굴이 보였다.
검은 입구. 그곳에서 무언가가 움직이고 있었다. 거대한 그림자. 용의 모양.
유나의 발걸음이 멈췄다. 그 그림자는 낯설지 않았다. 루미와 같은 향기가 났다. 루미와 같은 온기가 느껴졌다.
고대 용이 입을 열었다. 동굴 안으로. 노르칸이.
"들어와라. 빨리."
노르칸의 목소리가 울렸다. 깊고 오래된 음성. 마치 산 자체가 말하는 것 같았다. 그 목소리에는 절박함이 담겨 있었다. 마치 오래전부터 이 순간을 기다렸던 것처럼.
유나는 루미를 안고 뛰어들었다.
동굴의 어둠이 유나를 감쌌다. 루미가 자신의 목에 팔을 감고 있었다. 루미의 몸은 따뜻했다. 불처럼 따뜻했다. 용의 체온이.
"엄마."
루미가 울음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여기 어디야?"
"안전한 곳이야."
유나가 대답했다. 자신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자신의 팔이 루미를 더 이상 지탱할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사라져가는 팔.
동굴은 깊었다. 통로는 좁았다. 유나는 몸을 굽혔다. 바위에 머리를 부딪칠 뻔했다. 루미의 머리는 자신의 어깨 위에 있었다.
노르칸이 앞을 막았다. 거대한 용의 몸이 통로를 채웠다. 하지만 노르칸은 움직이지 않았다. 뒤에서 오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곧 기사들의 발자국이 들렸다. 점점 가까워졌다. 동굴 입구를 지나 통로 안으로. 손에 든 횃불의 불빛이 어둠을 밀어냈다.
"나가! 아이를 데리고 나가!"
카인의 목소리가 동굴 전체에 울렸다.
유나의 발이 멈췄다. 앞에는 노르칸의 거대한 몸이 있었다. 더 이상 갈 곳이 없었다. 루미가 유나의 팔을 움켜쥐었다. 루미의 손가락에 검은 비늘이 돋아나 있었다.
"엄마. 무서워."
루미가 중얼거렸다.
유나의 가슴이 부서질 것 같았다. 자신은 루미를 안전한 곳으로 데려가려고 했는데. 앞에는 용이 있고, 뒤에는 검을 든 기사가 있고.
노르칸이 움직였다.
거대한 용의 몸이 일어섰다. 동굴이 흔들렸다. 바위가 떨어졌다. 카인의 방향으로. 입구를 향해.
카인은 재빨리 물러났다. 횃불을 떨어뜨렸다.
동굴의 천장이 무너졌다. 거대한 돌덩이들이 쏟아져 내렸다. 입구를 막으며. 카인의 추격을 막으며.
"계속 안으로."
노르칸이 말했다.
유나는 움직였다. 노르칸의 거대한 몸 옆으로. 용의 비늘이 자신의 팔을 스쳤다. 따뜻한 온기. 그리고 어딘가 친숙한 향기. 루미와 같은.
동굴은 계속되었다. 끝이 없는 것처럼. 유나는 계속 걸었다. 루미를 안고. 손가락이 더 사라지는 것을 느끼면서.
루미의 몸은 점점 더 따뜻해지고 있었다. 검은 비늘이 유나의 팔을 타고 퍼져가고 있었다. 모성애의 마법이 진행되고 있었다. 유나의 생명력이 루미에게 흘러가고 있었다.
유나의 손가락이 더 투명해졌다. 손가락을 움직이려 해도 반응이 없었다. 마치 손가락이 이미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그 다음은 손목. 손목이 사라지자 팔이 흔들렸다. 루미를 안는 팔이 불안정해졌다. 유나는 루미를 더 깊이 안았다. 한 팔로는 부족했다. 다리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무릎부터. 마치 자신이 공중에 떠 있는 것처럼.
루미의 몸에서 검은 비늘이 퍼져나갔다. 등에서 시작해 어깨로, 팔로, 다리로. 루미의 변신이 빨라지고 있었다. 모성애의 마법이 루미의 저주를 가속화시키고 있었다. 루미는 울음을 터뜨렸다. 몸이 변하는 고통에. 하지만 유나를 놓지 않았다. 유나의 목에 팔을 더 깊이 감았다.
"엄마. 아파. 정말 아파."
루미의 목소리가 비명처럼 울렸다. 루미의 팔이 변했다. 인간의 팔에서 용의 발톱으로. 검은 비늘로 덮인 강한 팔로. 하지만 그 팔은 여전히 유나를 안고 있었다. 여전히 엄마를 놓지 않고 있었다.
유나의 다리가 완전히 사라졌다. 마치 공중에 떠 있는 것처럼. 루미가 유나를 지탱하고 있었다. 루미의 변신된 팔이. 용의 팔이. 그 팔이 유나를 안고 있었다.
"괜찮아. 우리 함께면 괜찮아."
유나가 루미의 귀에 속삭였다. 자신의 목소리가 희미해지고 있었다. 마치 자신이 바람이 되어가는 것처럼. 하지만 루미는 여전히 자신을 안고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알 수 없었다. 어둠 속에서는 시간이 의미를 잃었다.
마침내 동굴이 열렸다. 거대한 공간으로. 밤하늘이 보였다. 별들이. 달빛이. 고아원보다 훨씬 높은 산 위.
"여기서 쉬어."
노르칸이 말했다.
루미가 유나를 내려놓았다. 바위 위에. 부드럽게. 루미의 발톱이 유나의 몸을 상하지 않게 조심스럽게.
루미가 유나의 손을 들어 올렸다. 손가락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마치 유리처럼. 빛을 통과시키는 것처럼.
루미의 눈이 커졌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유나의 손을 더 깊이 움켜쥐었다.
유나는 루미를 다시 안아 올렸다. 루미의 검은 비늘이 자신의 옷에 스쳤다. 따뜻했다. 그 온기가 유나의 사라져가는 몸을 감싸 안았다.
루미가 유나의 목에 팔을 감았다. 용의 팔. 강한 팔. 하지만 여전히 따뜻한 팔.
"엄마. 약속해."
루미가 중얼거렸다.
"뭘?"
"나 버리지 말아. 아무리 아파도. 아무리 힘들어도."
유나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그 눈물이 루미의 얼굴에 떨어졌다.
"약속할게. 절대."
유나가 말했다.
루미는 유나의 목에 더 깊이 팔을 감았다.
산 아래 마을의 불빛이 보였다. 고아원의 불빛. 그곳에는 민준이가 있을 것이다. 다른 아이들도. 소피아도. 유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유나는 돌아갈 수 없었다.
노르칸이 움직였다. 거대한 용의 몸이 밤바람에 흔들렸다. 그 몸은 동굴 천장을 향해 일어섰다.
"루미의 어머니는 나에게 부탁했다."
노르칸의 목소리가 깊었다. 그 목소리에는 오랜 죄책감이 담겨 있었다. 루미의 어머니가 죽던 날, 자신은 그곳에 있지 않았다. 그 아이를 지켜주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 약속을 지킬 수 있었다.
"아이가 저주로부터 벗어나기를. 누군가 그 아이를 사랑해 주기를."
노르칸의 눈이 유나를 바라봤다. 수천 년의 시간이 그 눈빛에 담겨 있었다.
"당신이 그 누군가였구나."
유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루미를 안고 있었다. 루미의 심장이 자신의 가슴에 닿아 있었다.
노르칸이 움직였다. 거대한 용의 몸이 산 위에서 일어섰다. 날개를 펼쳤다. 검은 날개. 밤하늘을 가릴 정도로 거대한.
"저 길을 따라가거라."
노르칸이 발로 산 아래를 가리켰다. 동쪽으로 뻗어 나가는 길. 골짜기로 내려가는 길.
"남쪽. 저 산을 넘어 저 골짜기로. 그곳에는 다른 마법사들이 있다. 저주를 치료할 수 있는 자들이."
유나가 노르칸을 봤다.
"그곳까지 얼마나 멀어?"
"당신의 수명으로는. 한 달 반."
노르칸이 말했다.
유나의 손이 떨렸다. 사라져가는 손이. 이전에 남은 수명이 한 달이었는데, 이제는 한 달 반을 버텨야 한다고?
"모성애의 마법은 그렇게 작동한다."
노르칸이 말했다. 마치 유나의 의문을 읽은 것처럼.
"아이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소모할 때, 그 의지가 강할수록 시간이 늘어난다. 당신의 결심이 깊을수록. 당신의 사랑이 클수록."
노르칸의 눈이 다시 빨갛게 타올랐다.
"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다. 당신은 반드시 그곳에 도착해야 한다. 그 마법사들을 찾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완전히 사라질 것이다."
유나는 루미를 더 깊이 안았다.
"내가 당신을 지켜주겠다."
노르칸이 말했다.
"하지만 당신은 떠나야 한다. 지금. 이 밤에. 그리고 다시 돌아오지 말아야 한다. 이 마을로. 이 산으로. 카인 기사장이 당신을 찾을 것이다. 그를 더 이상 만나면 안 된다."
유나는 루미를 더 깊이 안았다. 루미의 몸이 따뜻했다. 그 따뜻함이 자신의 차가워지는 몸을 녹였다.
"우리 가자."
유나가 루미에게 말했다.
루미가 유나의 목에 팔을 감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유나는 루미를 안고 남쪽으로 걸었다. 산을 넘어. 골짜기로. 알려지지 않은 길로.
사라져가는 몸으로. 검은 비늘이 퍼지는 아이를 안고.
그리고 뒤에서 노르칸이 따라왔다. 거대한 용의 발자국으로. 마치 그들을 지키는 것처럼. 마치 루미의 어머니를 대신해 약속을 지키는 것처럼.
밤하늘의 별들이 그들의 길을 비춰주었다. 마치 누군가가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마치 축복을 내리는 것처럼.
유나는 계속 걸었다.
루미를 안고. 사라져가면서.
하지만 자신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루미가 진정한 구원을 받기 전에. 반드시 그곳에 도착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엄마의 의무라고.
그것이 자신이 할 수 있는 마지막 약속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