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 밤 세 시 오 분

형광등이 깜빡인다.

침대에 누운 나는 천장을 본다. 흰색 천장. 그 아래 나. 그 사이에는 무엇이 있는가?

기억이다. 기억들이 부유한다. 물 위의 기름처럼 섞이지 않으면서.

어제 먹은 음식은 기억나지 않는다. 어제 누가 방문했는지도 모른다. 팔뚝의 글씨는 이미 완전히 지워졌다. 그 자리에는 피부 위의 흰 자국만 남았다. 마치 누군가 내 이름을 지우려고 한 것처럼.

준호가 왔다. 아니면 온 것처럼 보였다. 유미경도 왔다. 아니면 오지 않았다. 내 뇌가 만든 거짓일 수도 있다.

현실과 환각의 경계가 무너졌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 경계가 애초에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아직 하나의 기억이 남아 있다. 그날 밤. 차 안. 누군가의 손. 핸들.

그 기억을 끝까지 복원하면 모든 게 끝난다.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것을.

침대에서 일어난다. 다리가 후들거린다. 약물의 영향이 아직도 남아 있다. 아니면 공포 때문인가? 구분할 수 없다.

화장실 거울 앞에 선다. 그 얼굴이 누구인가?

하얀 얼굴. 초점 없는 눈. 입술은 창백하다. 이것이 이지현인가? 아니면 누군가 다른 사람인가?

손가락으로 거울 표면을 만진다. 차갑다. 진짜다. 하지만 내 손가락이 진짜인지는 알 수 없다.

침대로 돌아간다. 메모장을 집어든다. 회색 노트. 내가 쓴 글들. 또는 내가 쓴 것으로 보이는 글들.

'준호 손가락 밴드' '한석준 기록 위조' '유미경 지시 추종' '차 사고 의도적 충돌'

내 필적이다. 하지만 확실하지 않다. 누군가 내 필체를 모방했을 수도 있다. 아니면 내가 내 필체를 인식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밤 삼 시 십오 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눈을 감는다. 깊게 숨을 마신다.

통증.

극심한 통증.

뇌가 찢어지는 것 같은 통증. 아니, 뇌가 자신의 조각들을 다시 모으려는 통증.

---

차 안.

움직인다. 차가 움직인다.

운전석에는 누군가가 있다. 준호가 아니다.

다른 남자다. 내가 알 수 없는 남자다.

그의 얼굴이 보인다. 피부는 창백하다. 눈은 진지하다. 입은 일직선으로 다물어져 있다.

그는 앞만 본다.

창밖은 어둡다. 깊은 밤이다.

"미안해."

누군가가 말한다.

"지현. 미안해."

그 목소리는... 내 목소리인가?

"이것이 최선의 방법이야."

아니다. 그 목소리는 내 목소리가 아니다. 하지만 내 목소리 같다.

"너는 잊어야 돼."

핸들이 차갑다. 내 손이 그것을 움켜쥐고 있다. 손가락이 떨린다.

차가 급격히 방향을 튼다.

흰색이 보인다. 다른 차의 흰색.

유리가 깨진다. 귀를 찢는 소리.

충돌.

---

눈이 뜨인다.

침대에 누워 있다.

천장을 본다. 형광등이 희미하게 켜져 있다.

기억 복원이 끝났다.

하지만 나는 움직이지 못한다. 몸이 마비된 것처럼 침대에 누워 있다.

그 기억 속에서 들었던 목소리.

'너는 잊어야 돼.'

그 목소리가 나의 목소리였다는 것을 이제 확실히 안다. 아니, 거의 확실하다.

내가 말했다. 나 자신에게. 아니, 누군가에게?

'잊어야 돼.'

나는 누군가에게 거짓말을 하도록 지시했다는 건가?

나는 음모의 일부였다는 건가?

피해자가 아니라?

손이 떨린다. 침대 시트를 움켜쥔다. 천 위에 손가락의 자국이 남는다.

침대에서 내려온다. 다시 거울 앞에 선다.

그 얼굴. 그 얼굴이 나인가?

그 입이 말했다. '너는 잊어야 돼.'

그 눈이 봤다. 충돌. 그 흰색 차.

---

메모장을 펼친다.

내 필적들. 또는 누군가의 필적들.

'준호 손가락 밴드'

이건 내가 썼다. 확실하다.

'한석준 기록 위조'

이것도 내 손으로 썼다.

'차 사고 의도적 충돌'

이것도.

하지만.

페이지를 넘긴다.

그 페이지에는 다른 글귀가 있다.

'당신은 안전합니다. 모든 것이 괜찮을 것입니다.'

이건.

내 필적이 아니다.

한석준이 자주 말하던 말이다. 그의 목소리로 반복되던 말.

'당신은 안전합니다, 이지현 님.'

'모든 것이 괜찮을 것입니다. 신뢰하세요.'

그 말이 내 노트에 적혀 있다.

누가 썼는가?

펜을 들어든다. 내 손에 들려 있는 펜.

펜 끝을 본다. 잉크가 묻어 있다. 검은 잉크. 최근에 사용한 흔적.

내가 썼나?

아니다. 누군가 다른 사람이 내 손을 움직였나?

아니다.

내가 썼다. 내가 의도적으로 한석준의 말을 내 노트에 옮겨 적었다.

왜?

왜 내가?

---

밤 삼 시 삼십오 분.

병실의 불을 끈다. 어둠이 내려온다.

침대에 누운다.

천장을 본다.

그 어둠 속에서 기억들이 부유한다.

준호가 말했던 말: '그날 밤은 사고가 아니었다.'

유미경이 말했던 말: '모두가 거짓을 말하고 있다.'

아니면 그게 환각이었던 말.

내가 말했던 말: '너는 잊어야 돼.'

그 말이 누구에게 향했던 말인가?

준호에게? 엄마에게? 의료진에게?

아니면 나 자신에게?

손가락이 움직인다. 침대 시트 위에서.

마치 무언가를 쓰려고 하는 것처럼.

하지만 나는 펜을 들지 않았다.

그런데 손가락이 움직인다.

글자를 쓰고 있다. 보이지 않는 글자를.

---

밤 네 시.

침대에서 일어난다.

병실을 나간다. 복도는 조용하다. 형광등은 희미하게 켜져 있다.

물리치료실로 향한다. 거기에는 거울이 있다. 큰 거울.

거울 앞에 선다.

그 얼굴이 나인가?

입술이 움직인다. 스스로 움직인다. 내 의지 없이.

'너는 잊어야 돼.'

내 입에서 나오는 말. 내 목소리.

하지만 나는 말하지 않았다.

거울 속의 얼굴이 웃는다.

나는 웃지 않았다.

거울 속의 얼굴만 웃는다.

---

밤 네 시 십오 분.

복도에서 누군가와 마주친다.

이재민이다. 물리치료사.

그는 나를 본다. 그의 눈이 나를 본다.

"이지현 님? 밤중에 무엇을?"

나는 입을 연다. 하지만 말을 하지 못한다.

그 입이 내 입인지 확실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재민이 한 발 더 가까워진다.

"혹시 어디가 아프신가요?"

나는 고개를 흔든다. 아니, 내 목이 고개를 흔든다.

"괜찮으세요? 얼굴이 창백해 보이는데요."

나는 거울을 봤다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어느 거울을 봤는지 설명할 수 없다.

"다시 침대로 돌아가세요. 약물의 부작용일 수 있습니다."

약물. 그 단어가 나를 깨운다.

"약물이 뭐에요?"

"어?"

"약물이 뭐냐고 물었어요."

이재민이 물러난다. 그의 눈이 경계한다.

"약물은... 당신의 회복을 돕기 위한 것입니다."

거짓이다. 나는 안다. 그것이 거짓이라는 것을.

하지만 나도 거짓을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

이재민이 손을 뻗는다. 내 팔을 잡으려고.

나는 몸을 돌린다. 복도를 향해 달린다.

뒤에서 이재민의 목소리가 들린다.

"이지현 님! 위험합니다!"

하지만 나는 멈추지 않는다.

병실로 돌아간다. 문을 닫는다. 자물쇠를 건다. 아니, 자물쇠는 내 쪽에 없다.

메모장을 집어든다.

그 페이지를 다시 본다.

'당신은 안전합니다. 모든 것이 괜찮을 것입니다.'

그 글귀 아래에 다른 글씨가 보인다.

내가 쓴 글씨.

'거짓이다.'

하지만 내가 그것을 쓴 기억이 없다.

펜을 든다. 손이 떨린다.

메모장의 빈 페이지에 쓴다.

'나는 누구인가?'

글씨가 나온다. 내 필적으로.

다시 쓴다.

'나는 누구인가?'

계속 쓴다.

페이지가 가득 찬다. 같은 문장의 반복으로.

마지막 줄.

펜이 멈춘다.

내 손가락이 무언가를 느낀다. 종이 위의 잉크.

잉크가 아직도 젖어 있다.

내가 방금 썼다.

하지만 글씨가 누구의 글씨인지 모르겠다.

---

병실 문이 열린다.

준호가 들어온다. 그 남자가.

"지현."

그가 내 이름을 부른다.

나는 고개를 든다.

"당신이 누구세요?"

"뭐라고?"

"당신이 누구라고 했어요?"

준호가 가까워진다. 그의 손이 내 어깨에 닿으려고 한다.

나는 몸을 뒤로 물린다.

"당신이 누구인지 모르겠어요."

"지현. 진정해."

"저도 제가 누구인지 모르겠어요."

그의 목소리가 떨린다. 아주 미세하게.

"뭘 말하는 거야?"

"내가 뭔가를 알았어요. 그날 밤에 대해."

준호의 얼굴이 창백해진다.

"뭘 알았어?"

"내 목소리가 들렸어요. 차 안에서. 내가 누군가에게 말했어요. '너는 잊어야 돼'라고."

준호가 한 발 물러난다.

"지현. 그건..."

"내가 공모자였어요."

"아니야. 넌..."

"내가 누구인지 모르겠어요."

메모장이 떨어진다. 바닥에.

페이지가 펼쳐진다.

그 페이지에는 새로운 글귀가 있다.

내가 본 적 없는 글귀.

'그녀는 안전합니다. 계획은 계속됩니다.'

준호가 메모장을 집어든다.

"이건 뭐야?"

나는 말하지 않는다.

준호가 페이지를 넘긴다. 그리고 멈춘다.

그의 얼굴이 창백해진다.

"이건... 넌 이걸 언제...?"

"저도 모르겠어요."

"이건 내 필적이 아니야."

"그래요. 저도."

"그럼 누가?"

나는 거울을 본다. 병실 벽에 붙은 작은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저 같아요. 내 필적처럼 보이는데..."

준호의 손이 떨린다. 메모장을 들었던 손이.

"지현. 너 정말 괜찮아?"

나는 대답하지 않는다. 대답할 말이 없기 때문이다.

침대에 누운다. 천장을 본다.

형광등이 희미하게 켜져 있다.

각각의 순간 사이에 기억이 사라진다.

준호의 얼굴.

그의 말.

메모장의 글씨.

모두 사라진다.

어둠이 내려온다. 깊은 어둠.

그 어둠 속에서 나는 나 자신을 찾으려고 손을 뻗는다.

하지만 만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빈 공간만 있다.

내 손가락이 공중을 헤맨다.

그리고 무언가를 집어든다.

펜이다.

누군가 나에게 쥐어준 펜이다.

아니, 내가 나 자신에게 쥐어준 펜이다.

나는 쓴다. 메모장에.

'우리가 지켜줄게.'

글씨가 나온다. 누구의 글씨인지 모르겠지만.

'모든 게 괜찮을 거야.'

그리고 깨닫는다.

내가 쓰고 있는 글씨.

그것이 누구의 거짓인지.

내 거짓인지.

아니면 누군가 다른 사람의 거짓인지.

아니면 모두의 거짓을 내가 대신 쓰고 있는 건지.

---

병실 문이 열린다.

유미경이 들어온다.

"지현."

그녀가 말한다.

"우리가 지켜줄게."

그 말이 반복된다.

반복이 진실을 만드는가?

"당신을 보호하겠다는 약속이야."

나는 입을 벌린다.

말을 하려고.

하지만 내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대신 다른 목소리가 나온다.

"나는 누구인가?"

그것은 내 목소리다.

또는 누군가 내 목소리를 모방한 목소리다.

또는 내 뇌가 만들어낸 목소리다.

유미경이 메모장을 본다.

"이건..."

그녀가 페이지를 넘긴다.

그리고 멈춘다.

"지현. 당신이 이걸 쓴 거야?"

나는 대답하지 않는다.

대답할 말이 없다.

그녀의 얼굴이 창백해진다.

그리고 그녀도 두려워하기 시작한다.

나 때문에.

아니면 자신 때문에.

아니면 우리 모두가 함께 만든 이 거짓 때문에.

그녀의 입술이 움직인다.

하지만 이번엔 내가 그 말을 믿지 않는다.

그리고 그녀도 자신의 말을 믿지 않는다.

그것이 보인다.

그녀의 눈빛에서.

우리 모두가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이.

우리 모두가 거짓 속에 갇혀 있다는 것을.

"당신이 뭘 하려고 하는 거야?"

유미경이 물어본다.

"뭘 말하는 거예요?"

"메모장. 이 글들. 당신이 뭘 계획하고 있어?"

나는 일어난다.

침대에서.

"계획이 없어요."

"그럼 이건?"

유미경이 메모장을 들어올린다.

"내가 쓴 것 같은데..."

"같은 게 아니라 당신이 쓴 거야."

"확실하지 않아요."

나는 그녀에게 다가간다.

"당신이 뭘 했는지 알아요."

유미경이 뒷걸음질친다.

"뭘 말하는 거야?"

"그날 밤. 차 안. 당신이 있었어요."

"아니야. 난..."

"내 목소리로 말했어요. 내가 말했어요. '너는 잊어야 돼'라고. 하지만 그건 당신의 지시였어요."

유미경의 손이 떨린다.

"지현. 진정해. 약물이 당신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어."

"약물이 뭐예요?"

"뭐라고?"

"약물이 뭐냐고 물었어요."

나는 그녀의 팔을 잡는다.

"센터에서 뭘 하고 있는 거예요? 진짜로. 기록을 조작하고, 약물을 주고. 내가 뭘 했어요?"

유미경이 손을 들어올린다.

주사기를 들고 있다.

"지현. 미안해."

"뭐 하는 거예요?"

"당신을 도와주려고."

"이게 뭐예요?"

"진정제야. 당신이 진정되어야 해."

나는 그녀의 손을 밀어낸다.

주사기가 떨어진다.

바닥에.

주사 바늘이 깨진다.

투명한 액체가 흘러나온다.

냄새가 난다.

화학 약품의 냄새.

"뭐 하는 거야!"

유미경이 외친다.

"내가 뭘 했어요?"

"당신은 잊어야 돼. 모든 걸."

"뭘?"

"그날 밤을. 당신이 본 것을. 당신이 들은 것을."

"내가 뭘 봤어요?"

유미경이 침대로 물러난다.

"당신이 정말 기억하고 싶어?"

"네."

"그럼 죽어야 돼."

나는 움직인다.

그녀에게.

그녀는 침대 옆의 벨을 누른다.

의료진이 들어온다.

이재민이.

그리고 다른 사람.

"이지현 님. 진정하세요."

이재민이 말한다.

"뭐 하는 거예요?"

"당신을 도와주려고."

그들이 나를 잡는다.

나는 저항한다.

하지만 약해진다.

약물 때문인가?

공포 때문인가?

"우리가 지켜줄게."

유미경이 말한다.

그 말이 반복된다.

그 말이 진실이 되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안전하지 않다.

나는 안다.

메모장이 떨어진다.

내 손에서.

페이지가 펼쳐진다.

마지막 페이지.

거기에는 글씨가 없다.

빈 페이지다.

하얀 페이지.

그리고 그 위에 내 손가락이 닿는다.

펜을 들고 싶지만 들 수 없다.

누군가 내 팔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 순간, 내 손가락이 움직인다.

펜을 들지 않았는데도.

빈 페이지 위에 글자를 그린다.

누군가의 손이 내 손을 움직이는 건가?

아니면 내 손이 스스로 움직이는 건가?

글자가 나타난다.

'도와줘.'

또는 누군가의 손이 내 손을 움직였고.

또는 내 손이 스스로 움직였고.

또는 이건 현실이 아니었다.

나는 어느 것이 맞는지 모른다.

정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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