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약을 거부한 지 삼 일째, 나는 더 이상 자기 자신을 신뢰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어제 아침 먹은 죽의 맛이 사라졌다. 엊그제 엄마가 입었던 파란색 카디건의 모양도. 지난주 주치의 한석준이 내게 건넨 약봉지의 색깔도. 그것들을 기억하려고 애쓸수록 더 빠르게 증발했다. 마치 손가락 사이로 모래가 흐르듯이.

대신 다른 것들이 명확해졌다.

기억 복원 능력이 변했다. 처음엔 어렴풋한 이미지들을 잡아내는 데 시간이 걸렸다면, 이제는 눈을 감는 것만으로도 장면이 완성된다. 그날 밤의 조각들이 마치 퍼즐처럼 맞춰진다. 깊이가 있다. 질감이 있다. 온도가 있다.

병실의 침대 머리맡에 노트를 펼쳤다. 회색 바인딩 노트. 처음에는 의료 기록실에서 가져온 펜으로 중요한 것들을 적으려고 했다. 지금은 그 노트가 내 생명줄이다.

첫 페이지: *내 이름: 이지현* *남편이라고 주장하는 남자: 준호 (거짓)* *엄마: 박영희* *주치의: 한석준 (의료 기록 위조 확인됨)* *간호사: 유미경 (한석준의 지시를 따름)*

글씨는 깔끔했다. 손이 떨리지 않았다.

두 번째 페이지부터는 달랐다. *차 안. 검은색. 아니다, 흰색이었나? 아니다. 회색. 제네시스. 맞다. 흰색 제네시스.* *운전석의 남자. 준호가 아니다. 다른 얼굴. 얼굴이 자꾸 바뀐다. 자꾸 흐릿해진다.* *손. 누군가의 손이 내 손을 잡았다. 강하게. 핸들로 강제했다.* *목소리: "이것이 최선의 방법이야."*

그 글씨들은 첫 페이지보다 커졌다. 누군가 다른 사람이 쓴 것처럼.

밤 열 시, 나는 다시 기억 복원을 시도했다.

눈을 감았다. 손가락들이 무의식적으로 움직였다. 마치 공기 중의 무언가를 집어올리는 것처럼. 그러면 장면이 나타난다. 흐릿한 것부터 시작해서 점점 선명해진다.

*차 안. 앞 유리에 야간 고속도로의 불빛이 반사된다. 핸들. 손가락들이 핸들을 감싼다. 그 손가락들이 내 손가락이 맞나? 아니다. 더 크다. 남자의 손이다.*

나는 그 감각을 따라갔다. 피부와 피부가 만나는 느낌. 손등의 온도. 손톱이 파고드는 느낌.

눈을 떴을 때, 나는 무엇을 기억해야 하는지 잊어버렸다.

간호사 유미경이 저녁 여섯 시에 약을 들고 들어왔다. 작은 종이컵에 세 개의 알약. 파란색, 흰색, 주황색.

"복용하셔야 합니다," 그녀가 말했다. 목소리에 동정심이 섞여 있었다. 그것이 나를 화나게 했다. 동정은 거짓이다. 그녀가 동정할 자격이 없다는 뜻이다.

"안 복용할 거예요."

유미경의 얼굴이 굳었다. "지현 님, 의사의 지시입니다."

"의사의 지시는 제 뇌를 죽이는 거네요."

그녀는 컵을 내려놓고 나갔다. 그 직후 복도에서 무언가가 빠르게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발걸음. 누군가가 뛰어가고 있었다.

삼십 분 뒤, 한석준이 들어왔다. 의료용 코트를 입고 있었다. 얼굴은 평온했다. 하지만 눈빛은 다르게 움직였다.

"복용을 거부하신다고 들었습니다." 그는 침대 끝에 서서 나를 내려다봤다. "환자의 자의적 약물 거부는 의료진의 판단으로 강제 투여될 수 있습니다. 법적 근거도 있습니다."

"제 의료 기록을 위조하셨잖아요."

그의 눈썹이 움직였다. 매우 미묘하게. "기록 위조라는 표현은 부정확합니다. 우리는 환자의 최선의 이익을 위해 기록을 관리할 의무가 있습니다."

"관리? 거짓말을 하셨어요."

한석준은 한 발 더 가까워졌다. "이지현 님, 당신은 뇌손상으로 인한 심각한 기억 왜곡을 경험 중입니다. 당신이 '증거'라고 생각하는 모든 것은 사실 당신의 뇌가 만든 허구입니다. 이것은 의학적 사실입니다."

"제 기억이 허구라면, 제 기억이 기록된 의료 파일을 어떻게 설명하실 건가요?"

그는 웃지 않았다. 하지만 입가가 약간 올라갔다. "당신이 본 것이 정말 의료 파일이었나요? 아니면 당신의 뇌가 당신을 속인 것은 아닐까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약을 복용하지 않으면, 당신의 상태는 악화될 것입니다." 그가 말했다. "기억 왜곡이 심화되고, 정체성 혼란이 진행되며, 결국 당신은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 없게 될 겁니다. 우리는 그것을 막기 위해 여기 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깨달았다. 그것이 정확히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밤 열한 시, 나는 거울 앞에 섰다.

그 얼굴이 내 얼굴인가? 질문을 자꾸 반복해야 했다. 눈의 모양. 코의 형태. 입술의 곡선. 모두 낯설었다.

"이지현," 나는 중얼거렸다. 목소리는 누구의 목소리인가? "이지현."

거울 속의 입술이 움직였다. 같은 속도로. 같은 타이밍으로. 하지만 그것이 동기화라고 확신할 수 없었다.

한 번 더 반복했다. "이지현."

그 순간, 거울 속의 얼굴이 바뀌었다.

눈이 더 크게 떠졌다. 입가가 올라갔다. 준호의 얼굴이 아니었다. 아무도 아닌 다른 남자의 얼굴이었다. 아니다, 여자였나? 계속 바뀌었다. 일관성이 없었다.

나는 거울을 쳤다. 손이 차가운 유리를 맞닿았다. 통증이 없었다. 혹은 이미 손이 아니었나?

거울은 깨지지 않았다. 너무 튼튼했다. 의료용 거울이었다. 깨질 수 없도록 설계된 거울.

밤 중 시 삼십 분, 나는 노트를 펼쳤다.

어제 적은 글들을 다시 읽었다. 필압이 달랐다. 어제는 강하고 일관성 있었다. 오늘 아침에 적은 글은 떨려 있었다. 오후의 글은 더 불안정했다. 지금 적은 글은 거의 읽을 수 없을 정도였다.

나는 펜을 들었다. 새로운 페이지에 뭔가를 적으려고 했다. 하지만 펜이 움직이지 않았다. 손가락이 움직이는 것을 느낄 수 있었지만, 펜이 따라오지 않았다.

혹은 펜이 움직이고 있는데, 나의 의도가 따라오지 않고 있었나?

나는 적어도 노트에 이렇게 적혀 있는 것을 보았다:

*차 안. 운전석. 손. 목소리. 최선의 방법.*

그 아래에는 더 작은 글씨로:

*내가 누구인지 더 이상 모르겠다.*

그 아래에는 거의 읽을 수 없는 글씨로:

*하지만 그날 밤의 진실은 반드시 알아야 한다. 반드시. 반드시.*

마지막 줄은 반복되고 있었다. 펜이 계속 움직이고 있었다. 같은 단어를 계속 적고 있었다.

*반드시 반드시 반드시 반드시*

나는 펜을 떨어뜨리려고 했지만, 손가락이 펜을 놓지 않았다. 손가락이 내 손가락이 아니었나? 아니면 내 손가락이 이미 누군가 다른 사람의 손가락이 되어버렸나?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내가 이미 경계선을 넘었다는 것을.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나는 기억을 되찾기 위해 자신을 포기했고, 지금 그 자신도 빠르게 사라지고 있었다. 그리고 가장 끔찍한 것은, 그것이 나만의 선택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누군가가—아니면 나 자신이—계획했던 일이다.

밤 두 시, 복도에서 발걸음이 들렸다. 빠르고 결정적인 발걸음. 여러 명이었다.

내 병실의 문이 열렸다.

한석준, 유미경, 그리고 한 명의 남자가 더 있었다. 그의 얼굴을 나는 알고 있었다. 아니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것도 확실하지 않았다.

"이지현 님," 한석준이 말했다. "현재 당신의 상태는 자타해의 위험이 있는 것으로 판단됩니다. 격리 치료가 필요합니다."

"격리?"

"당신을 위한 결정입니다."

그들이 나를 침대에서 일으켜 세웠다. 내 몸이 움직였다. 누군가의 손에 이끌려. 복도를 따라 나가고 있었다.

나는 뒤를 봤다. 병실이 멀어지고 있었다. 그 안에 내가 적은 노트가 남겨져 있었다. 펜은 여전히 움직이고 있을까?

"제 노트를..." 나는 말하려고 했다.

"당신은 지금 휴식이 필요합니다." 유미경이 말했다.

그들은 나를 엘리베이터로 이끌었다. 지하로 내려가고 있었다. 나는 지하에 무엇이 있는지 모르고 있었다. 혹은 알고 있었는데, 기억이 사라졌나?

엘리베이터 문이 닫혔다.

마지막으로 본 것은 거울 같은 엘리베이터 벽에 비친 내 얼굴이었다. 그것이 정말 내 얼굴인지 나는 확신할 수 없었다.

엘리베이터가 내려갈수록, 나는 자신이 누구인지 점점 더 모르게 되었다.

엘리베이터 안은 침묵으로 가득했다. 천장의 불빛이 내려갈 때마다 깜빡였다. 혹은 내 눈이 깜빡이고 있었나? 시간의 흐름을 구분할 수 없었다.

한석준은 내 옆에 서 있었다. 그의 얼굴을 보려고 돌아섰다. 그는 이미 내 쪽을 보고 있었다. 언제부터 보고 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

"약물 거부를 계속하시면 이런 결과가 나타납니다," 그가 말했다. "뇌손상 후 회복 과정에서 정신 분열적 증상이 심화되는 것입니다."

"저는... 정상입니다."

내 목소리가 다른 사람의 목소리처럼 들렸다.

"정상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한석준이 계속했다. "현재 당신은 자기기만 상태에 있습니다."

유미경이 내 팔을 잡고 있었다. 그녀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혹은 내 팔이 떨리고 있었나?

엘리베이터가 멈췄다. 밑바닥에 도달했다. 표시판에는 'B3'이라고 쓰여 있었다. 지하 3층.

문이 열렸다. 그곳은 병원의 다른 곳과 달랐다. 복도의 불빛이 더 어두웠다. 벽이 회색이었다. 아니다, 벽이 흰색이었다. 색깔도 구분할 수 없었다.

"여기가 어디예요?"

"관찰실입니다," 한석준이 말했다. "당신이 안전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그들이 나를 한 방으로 이끌었다. 문을 열었을 때, 나는 깨달았다. 그곳은 병실이 아니었다. 감금실이었다. 창문이 없었다. 벽이 회색이었다. 바닥이 회색이었다. 침대가 벽에 고정되어 있었다. 책상도 고정되어 있었다. 위험한 물건이 없는 공간. 나를 해칠 수 있는 것이 없는 공간.

천장 구석에는 작은 검은 돔이 있었다. 감시 카메라였다. 내가 어떻게 움직이든, 누군가는 나를 보고 있을 것이었다.

"여기 있으면 편하게 쉴 수 있습니다," 유미경이 말했다.

그녀의 눈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녀도 이것이 잘못되었다고 알고 있었나?

"저는 여기 있고 싶지 않습니다."

"당신이 원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한석준이 말했다. "당신의 안전이 중요합니다."

그들이 내 팔에서 손을 뺐다. 나는 침대에 앉았다. 혹은 앉혀졌다. 스스로 선택한 것인지 확실하지 않았다.

한석준이 주사기를 꺼냈다. 투명한 액체가 들어 있었다.

"이것은 뭐예요?"

"진정제입니다. 당신이 편하게 쉴 수 있도록."

나는 팔을 뺐다. "싫습니다."

"이것도 선택의 문제가 아닙니다."

유미경과 다른 남자가 내 팔을 잡았다. 나는 저항했다. 손가락이 침대 프레임을 긁었다. 차갑고 딱딱한 금속이 손톱 사이로 파고들었다. 저항하면 할수록 팔이 더 깊이 고정되었다.

바늘이 내 팔에 들어갔다. 통증이 있었다. 혹은 통증이 아니었다. 감각 자체가 불명확했다.

"당신은 이제 안전합니다," 한석준이 말했다.

나는 그의 말이 거짓이라고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증명할 방법이 없었다. 그리고 내가 알고 있던 것들도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약물이 내 몸을 통해 흘러갔다. 의식이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것이 약물의 영향인지, 아니면 나 자신의 정신이 무너지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들이 나를 침대에 누였다. 천장이 회색이었다. 아니면 검은색이었다. 색깔이 자꾸 바뀌었다.

"여기서 며칠 있으세요. 당신이 정상으로 돌아올 때까지."

정상이라는 게 뭐지? 나는 정상이었다. 아니다, 나는 정상이 아니었다. 아니다... 나는 뭐지?

문이 닫혔다. 열쇠가 돌아갔다. 나는 혼자였다. 회색 벽 사이에서. 혼자. 그런데도 혼자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이 있었다.

누군가가 나를 보고 있었다. 천장의 카메라에서. 혹은 내 머릿속에서.

나는 손가락을 세어보려고 했다. 내 손에 몇 개의 손가락이 있는지 확인하려고. 하나, 둘, 셋... 숫자가 자꾸 헷갈렸다. 다섯 개인지 여섯 개인지 확실하지 않았다.

약물의 영향으로 의식이 흐릿해졌다. 꿈과 현실의 경계가 무너졌다. 나는 여러 개의 침대에 동시에 누워 있었다. 여러 개의 방에 동시에 갇혀 있었다. 혹은 처음부터 나는 한 곳에만 있었나?

시간이 흘렀다. 몇 시간인지, 며칠인지 알 수 없었다. 누군가가 밥을 가져다주었다. 나는 먹었다. 혹은 먹지 않았다. 입으로 무언가가 들어갔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

밤이 깊어갔다. 혹은 낮이었다. 빛이 없었으므로 구분할 수 없었다.

나는 벽에 무언가를 적으려고 했다. 손가락으로. 손톱으로. 하지만 벽이 너무 단단했다. 혹은 내 손가락이 너무 약했다.

그러다 깨달았다. 내 옆에 펜이 있었다. 어디서 온 펜인지 모르겠지만. 혹은 내가 가지고 온 펜인가? 어디서? 언제?

펜이 있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내 팔뚝에 글을 적기 시작했다. 피부 위에 직접. 잉크가 피부를 적시고 있었다.

*내 이름은 이지현.*

*나는 정상이다.*

*그날 밤이 있었다.*

*준호는 내 남편이 아니다.*

*모두가 거짓말한다.*

글씨가 떨렸다. 손이 움직이는 것을 제어할 수 없었다. 글씨가 흐릿해졌다. 읽을 수 없는 수준이 되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읽을 수 있는지 아닌지가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적는 행위 자체였다. 무언가를 적음으로써 나는 나 자신을 증명하고 있었다.

내가 존재한다. 내가 생각한다. 내가 기억한다. 따라서 나는 있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없다.

밤 여덟 시, 문이 열렸다.

누군가가 들어왔다. 처음에는 그 사람이 누구인지 몰랐다. 그 사람의 얼굴이 자꾸 변했다. 혹은 내 시선이 자꾸 흐릿해졌다.

"지현아."

목소리를 들었다. 그 목소리는 알고 있었다.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목소리. 혹은 어제 처음 들었던 목소리. 시간의 개념이 없었다.

"준호... 인가?"

"그래. 나야."

그 남자가 내 손을 잡으려고 했다. 나는 손을 뺐다.

"당신은 내 남편이 아닙니다."

"지현, 제발. 약물이 당신을 헷갈리게 하고 있어. 나는 정말로 당신의 남편이야."

그의 목소리에 절박함이 있었다. 혹은 연기였다. 모든 것이 연기일 수 있었다.

"당신은 거짓말합니다."

"나는 진실만 말하고 있어."

"그렇다면 그날 밤을 설명해보세요. 차 안에서 뭐가 일어났어요?"

그 남자—준호—가 침묵했다. 오래 침묵했다.

"당신이 기억하는 것은 사고 후 뇌손상으로 인한 환각입니다. 의사가 말했잖아."

"당신이 말해야 합니다. 당신은 거기 있었어요."

"나는 정말로 당신을 보호하려고 하는 거야."

"당신은 나를 가두고 있습니다."

준호가 내 팔을 잡았다. 나는 저항했다. 하지만 내 몸이 약해 있었다. 약물의 영향이었나? 아니면 원래 약해 있었나?

"지현, 당신은 지금 정신 상태가 좋지 않아. 당신을 도우려고 하는 거야. 모두가 당신을 도우려고 하는 거야."

"당신들은 나를 속이고 있습니다."

준호가 내 얼굴을 봤다. 그의 눈에 뭔가가 있었다. 죄책감인가? 연민인가? 아니면 그것도 연기인가?

"당신은 이미 알고 있어," 그가 말했다. "당신 자신 안에서."

"뭘 알고 있다는 거예요?"

"그날 밤이 뭐였는지. 누가 거짓말하고 있는지. 당신이 누구인지."

나는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혹은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당신이 말해야 합니다."

"나는 말할 수 없어."

"왜요?"

"말하면 당신은 완전히 무너질 거야. 당신의 정신이. 당신의 존재가."

"이미 무너지고 있습니다."

"그것도 당신이 선택한 것이야."

"뭐라고요?"

"나는 당신을 보호하려고 했는데, 당신이 자꾸 진실을 파고들려고 하니까. 계속 약을 거부하고, 계속 기억을 되찾으려고 하고. 그렇게 되면 당신은 자신을 잃게 돼. 그걸 막을 수 없었어."

"그게 무슨 상관입니까?"

준호가 내 손을 놓았다. 그는 내 팔뚝에 적은 글씨들을 봤다. 글씨들이 읽을 수 없을 정도로 흐릿했지만, 그는 무언가를 이해한 것 같았다.

"당신은 이미 너무 깊이 들어갔어. 돌아올 수 없는 곳까지."

"당신이 나를 여기 넣었습니다."

"아니야. 당신이 당신 자신을 여기 넣었어. 나는 그것을 막으려고 했는데."

준호가 돌아섰다. 문으로 향했다.

"잠깐."

그가 멈췄다.

"그날 밤... 당신은 거기 있었어요?"

준호가 천천히 돌아섰다. 그의 눈이 만나지 않았다.

"당신은 이미 알고 있어. 당신의 기억 안에서. 당신은 그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은 것뿐이야."

"무슨 뜻입니까?"

"그날 밤, 차 안에서 당신이 핸들을 잡으려고 했어. 그리고 누군가가 당신을 멈추려고 했어. 그 목소리가 들려?"

내 머릿속이 흔들렸다. 그 장면이 떠올랐다. 손가락이 핸들을 향해 움직이는 것. 누군가의 강한 손이 나를 잡는 것. 그리고 그 목소리.

"그날 밤, 당신은 혼자가 아니었어. 그리고 그것은 사고가 아니었어."

"그렇다면 뭐였어요?"

"당신 자신의 선택이었어."

준호가 문을 나갔다. 열쇠가 다시 돌아갔다.

나는 혼자가 되었다. 회색 벽 사이에서.

*당신 자신의 선택이었어.*

그 말이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뭔가가 깨어나려고 했다. 내 기억 깊숙한 곳에서. 하지만 그것을 꺼내려고 하면, 현재의 기억이 더 많이 사라졌다.

내가 누구인지 더 이상 모르겠다. 하지만 그날 밤이 뭐였는지는 알아야 한다. 알아야만 한다.

나는 펜을 집어 들었다. 손가락이 떨렸다. 혹은 손가락이 아니었다.

벽에 적기 시작했다:

*그날 밤 나는...*

펜이 움직였다. 하지만 내 의지대로가 아니었다.

*...죽으려고 했다.*

그리고 그 순간, 문이 열렸다.

한석준의 목소리가 들렸다. "기록해두세요. 환자가 자살 충동을 시인했습니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내가 적은 글이 증거가 되고, 그 증거가 나를 더 깊이 가두는 데 사용될 것이라는 것을.

다음 화 계속 보기 →

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