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 증거의 쇄도

새벽 3시 47분. 침대 위에서 나는 준호를 바라봤다.

그는 침대 옆 소파에 누워 있었다. 최근 며칠간 그렇게 자고 있었다. 자신의 헌신을 증명하려는 듯이. 얼굴은 평온했지만 손가락에 붙은 밴드는 여전히 거기 있었다. 내 메모장에 적힌 그 밴드. 나는 그것을 보고 또 봤다. 그리고 물어야 했다.

"준호."

그는 눈을 떴다. 밤이 깊었는데도 즉각적으로. 마치 깨어 있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것처럼.

"뭐야?"

"우리 결혼 몇 년째?"

침묵이 흘렀다. 그 침묵 자체가 답이었다. 준호의 눈동자가 좌우로 흔들렸다. 계산하는 표정. 아니, 기억을 만드는 표정이었다.

"5년이지. 왜?"

5년.

그 숫자가 내 뇌를 찔렀다. 손가락을 움켜쥐었다. 통증. 손톱이 살을 파고들었다. 정말 5년인가? 내 기억을 복원해야 했다. 지금. 여기서.

"잠깐, 나... 내 결혼식을 기억해야 해."

나는 눈을 감았다. 파편을 모으는 절차를 시작했다. 조각난 기억들을 역으로 추적하는 것. 통증이 먼저 왔다. 뒷머리에서 시작되는 날카로운 통증. 마치 누군가 내 머릿속을 후벼파는 것처럼.

그리고 이미지가 떠올랐다.

하얀 드레스. 조명. 사람들. 음악. 나는 복도를 걷고 있었다. 누군가의 팔짱을 끼고. 아버지였나? 아니다. 아버지는 이미...

그리고 제단 위의 남자.

신랑. 검은 턱시도를 입은 남자. 나를 바라보고 있는 남자.

하지만 그 얼굴이...

준호가 아니었다.

완전히 다른 남자였다. 턱선이 더 각졌고, 눈빛이 차갑고, 입술이 준호의 입술이 아니었다. 그 남자는 나를 보며 웃었다. 그 웃음이 내 피부에 얼음처럼 스며들었다.

"아, 아..."

나는 눈을 떴다. 침대에서 일어났다. 숨이 가빴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지현? 괜찮아?"

준호가 일어났다. 다가왔다. 손을 뻗었다. 나는 그 손을 피했다.

"당신 얼굴이... 아니야. 당신 얼굴이 아니었어."

"뭘 말하는 거야?"

"내 결혼식. 내 결혼식에서 신랑이... 당신이 아니었어!"

준호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아니, 처음부터 창백했던 것 같다. 그것도 거짓이었나? 모든 것이 거짓이었나?

나는 침대에서 내려왔다. 다리가 떨렸다. 현재의 기억이 또 사라지고 있었다. 방금 전 대화가 흐릿해졌다. 준호가 뭐라고 했지? 5년? 3년? 10년? 숫자들이 겹쳐 흔들렸다. 하지만 한 가지는 명확했다.

그 남자는 준호가 아니었다.

"당신은... 당신은 내 남편이 아니야."

내 목소리가 떨렸다. 준호가 내 팔을 잡았다. 부드러운 손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더 위험했다.

"지현, 당신은 지금 혼란스러운 거야. 기억이 섞이는 거야. 의사가 뭐라고 했어? 뇌손상으로 인한 환각이라고..."

"거짓말!"

나는 손을 뿌쳤다. 준호의 손이 내 팔에서 떨어졌다.

---

아침. 복도에서 엄마를 찾았다.

박영희는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나는 그녀 앞에 섰다.

"엄마, 내 결혼 사진 어디 있어?"

박영희의 손이 잠깐 멈췄다. 커피잔이 입술 앞에서 멈춘 채로. 그 1초의 침묵이 모든 것을 말해줬다.

"지현, 그런 건 지금 중요하지 않아."

정확히 그 말이 나왔다. 중요하지 않다? 내 결혼 사진이? 그 말 자체가 거짓의 증거였다.

"중요하지 않아? 엄마, 내 결혼식 사진이 왜 없어?"

"있는데, 집에 있지."

"몇 개월 전에 도와줄 거라고 했잖아. 내 물건들을 가져오겠다고."

"지현..."

박영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진정성이 사라졌다. 남은 것은 자책감과 두려움뿐이었다. 그 표정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녀도 알고 있었다. 내 결혼 사진이 그 '거짓'을 증명할 것을.

나는 엄마의 팔을 잡았다. 그녀의 얼굴을 들었다. 눈과 눈이 마주쳤다.

"당신들이 거짓을 말했어. 모두가. 준호도, 의사도, 당신도. 그리고 나는... 나는..."

내 목소리가 끊어졌다. 나는 누구인가? 준호의 아내인가? 아니라면 누구의 아내인가? 내 정체성이 종이처럼 한 겹씩 벗겨져 나가고 있었다.

박영희는 나를 밀어냈다. 부드럽게. 하지만 확실하게.

"지현아. 당신은 약을 복용해야 해. 정말로."

"약이 뭐예요? 뭐가 들어있어요?"

"의료 전문가의 처방이야. 신경 안정제야."

신경 안정제. 그 단어가 내 뇌에서 울렸다. 안정이라는 이름으로 내 기억을 마비시키는 거 아닌가?

---

정오. 호출 버튼을 눌렀다.

한석준이 왔다. 1시간 후. 서두르지 않는 걸음으로. 자신이 모든 것을 통제한다고 믿는 자의 걸음이었다.

"어떻게 지내세요?"

"도와줘요. 제발. 뭔가... 뭔가 계속 틀렸어요."

"당신은 안전합니다."

그는 내 말을 끊었다. 침착한 목소리로. 마치 주문을 거는 것처럼. '당신은 안전합니다.' 그 문장이 몇 번이나 반복되었나? 매일 아침. 매일 밤. 당신은 안전합니다. 당신은 안전합니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내 피부에 두드러기가 났다. 안전이라는 단어가 가시처럼 박혀 내 살을 할퀴었다.

"모든 것이 괜찮을 것입니다."

그는 약을 꺼냈다. 흰 약. 작은 약. 투명한 플라스틱 컵에 담긴 채로. 그 약을 봤을 때마다 내 기억이 더 희미해진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아침에 먹은 음식. 어제 간호사의 목소리. 3일 전 준호의 표정. 모두 사라졌다. 하나씩.

한석준의 손가락이 약을 향했다. 손톱이 깔끔하게 정리된 손. 권력의 손.

"이 약이... 이 약이 제 기억을 더 흐릿하게 만드는 거 아닌가요?"

한석준의 눈이 반짝였다. 경계. 아니면 확신. 그는 웃었다. 아주 살짝. 입꼬리만.

"그럴 리 없습니다."

그 확신. 그 확신 있는 목소리. 그것이 가장 강력한 거짓말이었다. 거짓말은 불안해서 나오는 게 아니었다. 거짓말은 절대 확신에서 나온다. 그 차이를 나는 지금 깨달았다.

나는 약을 받았다. 손에. 손가락 사이에 끼웠다. 한석준이 물 잔을 건넸다. 투명한 물. 맑은 물.

"한 번에 삼키세요. 물과 함께."

나는 컵을 입에 대었다. 물을 마셨다. 목을 크게 움직였다. 약을 삼킨 척했다. 혀 아래에 숨겼다. 한석준이 나가자 나는 그 약을 침대 시트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또 다른 약들도. 어제. 그저께. 모두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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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침대 밑에 쌓아둔 약들 옆에 앉아 있었다.

손이 떨렸다. 다리도 떨렸다. 전신이 진동하고 있었다. 약의 영향이 빠져나가면서 뭔가가 깨어나고 있었다.

나는 기억들을 다시 모으기 시작했다. 파편적인 것들. 준호와의 대화. 한석준의 말. 엄마의 표정. 유미경의 동정적인 눈빛. 모든 것이 더 명확해졌다.

마치 필터가 벗겨지듯이.

약을 버렸을 때. 정확히 그 순간부터. 기억이 선명해졌다. 안개가 걷혀나가는 게 아니라 안개 자체가 소멸하는 느낌이었다. 귀를 막던 솜이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세상의 모든 소리가 한 번에 들렸다.

내 기억 복원 능력이 더 강해지고 있었다.

약 없이. 방해 없이. 나는 더 깊이 들어갈 수 있었다.

그 결혼식 기억으로 다시 들어갔다. 흰색 드레스. 장미 향. 그리고 신랑. 신랑의 얼굴. 명확했다. 이제는 명확했다. 턱선. 눈의 높이. 입술의 모양. 준호가 아니었다. 완전히 다른 남자였다.

그 남자의 이름은?

나는 그 기억을 붙잡으려 했다. 이름을 찾으려 했다. 그러나 이름 앞에서 기억이 끊겼다. 마치 누군가 그 부분을 도려내듯이.

그 대신 다른 이미지가 떠올랐다. 검은 자동차. 밤거리. 시끄러운 소리. 그리고 누군가의 목소리. 그 목소리가 뭐라고 했지? 나는 그 말을 반복해 들으려 했지만, 기억의 가장자리는 자꾸만 흐릿해졌다. 약이 아직도 내 안에 남아 있는 건가?

나는 침대 위에 앉아 손을 떨며 깨달았다.

약은 내 기억을 흐릿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내 능력을 억제했던 거다. 내 능력을. 내가 진실에 다가갈 수 없게. 내가 그들의 거짓을 폭로할 수 없게. 그리고 내가 그 거짓들을 하나씩 벗겨낼 때마다, 내 자신도 함께 벗겨져 나가고 있다는 것을.

---

밤 11시. 화장실 거울 앞에 섰다.

거울 속 여자를 봤다. 내가 맞나? 이게 정말 나인가?

얼굴의 상처들은 여전했다. 왼쪽 관자놀이. 오른쪽 턱. 이마의 한 점. 이 상처들은 언제 생겼나? 교통사고에서? 아니면 그 전에? 그 결혼식에서?

거울 속 여자가 움직였다. 나를 따라. 하지만 뭔가 어긋났다. 우리의 움직임이 정확히 일치하지 않았다. 1초 정도의 딜레이가 있었다. 아주 미세한 딜레이. 하지만 확실한 딜레이.

나는 손을 들었다.

거울 속 여자도 손을 들었다.

하지만 그 움직임이 다른 속도였다. 마치 다른 시간대에서 움직이는 것처럼.

내 목에서 소리가 나왔다. 거울에서 나온 소리였다. 거울 속 여자의 입이 움직였다. 나와는 다른 속도로.

"누구세요?"

나는 입을 열지 않았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분명히 내 목소리였다.

나는 거울에서 벗어났다. 뒤로 물러섰다. 화장실 벽에 등을 붙였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두근. 두근. 두근. 마치 누군가 내 흉부를 걷어찼다. 아니. 누군가 내 흉부에서 나와 나가려고 발버둥 치고 있는 것처럼.

약을 버렸다. 모두. 침대 밑에서 꺼냈다. 손에 한 줌. 흰 약들. 작은 알약들. 이것들이 나를 보호한 건가? 아니면 나를 감금한 건가?

나는 그 약들을 변기에 버렸다. 물을 내렸다. 약들이 소용돌이쳤다. 하얀 물거품. 그것들이 사라졌다.

그 순간부터 시각이 변했다. 거울 속 여자의 얼굴이 더 명확해졌다. 아니. 거울 속 여자가 아니라 누군가 다른 사람이 되어갔다. 눈빛이 차가워졌다. 입술이 비틀렸다. 이 얼굴. 이 얼굴을 본 적이 있다. 그 결혼식에서. 아니. 그 이후에. 그 검은 자동차 안에서.

내 시력이 흔들렸다. 거울 속 이미지가 깜빡였다. 켜졌다 꺼졌다. 마치 형광등이 고장 난 것처럼. 그리고 소리가 왜곡되기 시작했다. 화장실의 모든 소리가 느려졌다. 물 흐르는 소리. 내 호흡. 심장박동. 모두 저음으로 변했다.

시간감각이 이상해졌다. 거울 앞에 얼마나 오래 서 있었나? 1분? 10분? 1시간? 시계를 봤지만 시침이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약을 완전히 버린 대가였다. 능력이 폭주하고 있었다. 기억 복원이 아니라 현실 자체가 왜곡되는 것처럼. 내 능력의 범위를 벗어난 무언가가 일어나고 있었다.

---

자정이 지난 후. 병실의 노트북을 켰다.

비밀번호는 '1225'였다. 준호의 생일. 하지만 준호가 내 남편이 아니라면? 이 비밀번호는 뭔가? 거짓의 흔적인가? 아니면 진실의 조각인가?

로그인했다.

파일들이 떠올랐다. 문서. 사진. 영상. 모두 내가 만든 파일들인 듯했다. 하지만 내 기억에는 없었다. 그래픽 디자인 파일들. 수십 개.

나는 그래픽 디자이너인가? 아니면 의료 행정직인가? 둘 다인가? 둘 다 아닌가?

파일을 열었다.

로고 디자인. 브로셔. 명함. 모두 생소했다. 하지만 제작일자는 2년 전부터 시작되었다. 2년 전이라고? 그때는 뭐였지? 나는 뭘 하고 있었지?

그 기억을 찾으려 했다.

아무것도 없었다.

공백. 2년 전부터 지금까지의 공백. 그 공백 속에 뭐가 있나?

파일 목록을 더 살펴봤다. 최근 수정 날짜가 가장 오래된 파일은 정확히 2년 전 12월 25일이었다. 그 이전의 파일은 없었다. 마치 그 날짜 이전의 내 삶이 완전히 지워진 것처럼.

나는 기억 복원을 시도했다. 손을 들었다. 눈을 감았다. 그 2년 전으로 돌아가려고.

통증이 왔다. 뇌의 한 점에서. 아니. 뇌 전체에서. 마치 누군가 내 뇌를 짜내는 것처럼.

이미지들이 떠올랐다.

흰색 드레스.

검은 차.

준호의 목소리가 아닌 다른 목소리. 남자의 목소리. "이제 시작이야."

그 목소리가 뭐라고 했나?

"이제 시작이야. 그녀를 잊어줄 거겠지?"

그 말. 그 말이 뭐지?

그리고 또 다른 목소리. 준호의 목소리였다. "알겠습니다."

아. 준호는 동의했다. 뭔가에 동의했다. 나를 잊히게 하는 것에. 그 검은 차 안에서. 그 밤에.

나는 눈을 떴다.

코에서 피가 났다.

---

아침. 유미경이 들어왔다.

그녀의 얼굴을 봤을 때 나는 알았다. 그녀도 알고 있다는 것을. 뭔가를.

"지현... 코가..."

"알아요."

나는 거짓으로 웃었다. 아니. 거짓이 아닐 수도 있다. 나는 더 이상 뭐가 거짓이고 뭐가 진실인지 모른다.

"어제 밤에 뭔가... 기억나세요?"

유미경의 질문이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공포가 있었다. 동정심이 아니라. 공포.

"왜?"

"당신이... 약을 버렸죠. 우리가 몰래 카메라로 봤어요."

그렇구나. 몰래 카메라. 당연했다. 이곳은 의료센터가 아니라 감옥이었다. 투명한 감옥. 유리 감옥.

"약을 다시 복용해야 해요. 한석준 의사가 말했어. 당신의 상태가... 위험해지고 있대요."

위험. 내가 위험한가? 아니면 내가 알게 되는 게 위험한가?

나는 유미경의 눈을 봤다.

"유미경. 당신은 알고 있죠? 내가 누구인지. 그리고 저 남자가 누구인지."

유미경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모르겠어요. 저는 진짜..."

"거짓말하지 마. 당신의 눈이 말하고 있어. 당신은 알고 있어."

나는 그녀의 팔을 잡았다. 가볍게. 하지만 확실하게.

"제발. 한 마디만. 제발."

유미경이 멈췄다. 그녀의 어깨가 떨렸다. 그리고 그녀가 말했다. 아주 작은 목소리로.

"당신이 기억하면... 모든 게 끝나요. 당신뿐만 아니라. 다 끝나요."

"뭐가 끝나요? 뭐가 끝난다고요?"

"그 남자. 그 남자가... 당신을 찾을 거예요. 당신이 기억하는 순간, 그 남자가 올 거고..."

유미경의 목소리가 끊겼다. 그녀는 나를 밀어냈다. 도망치듯 나가갔다.

그 남자. 그 검은 차 안의 남자. 그 남자가 누구라는 건가?

---

정오. 준호가 들어왔다.

그의 손가락에는 여전히 밴드가 붙어있었다. 그 밴드가 뭐지? 그 밴드 아래 뭐가 있지?

"지현. 잘 있었어?"

거짓 목소리. 거짓 미소. 하지만 그 거짓 속에 진실이 숨어있다는 걸 나는 알았다.

"준호. 우리가 정말 5년을 함께 있었어?"

준호의 미소가 경직되었다.

"그렇지. 왜?"

"당신을 기억할 수가 없어. 우리의 결혼식을 기억할 수가 없어. 그리고 그 밴드. 손가락의 그 밴드는 뭐야? 왜 계속 붙어있어?"

준호의 손이 주머니로 들어갔다. 밴드를 숨기려는 듯.

"그건..."

"그 결혼식의 신랑은 당신이 아니었어. 그 결혼식에서 신랑이 당신이 아니었다는 걸 나는 기억해. 그리고 그 밤 그 검은 차 안에서 뭔가가 일어났어. 준호, 그 밤 뭐가 일어났어?"

준호가 가까워졌다. 그의 손이 내 머리를 만졌다. 다정한 척. 하지만 그 손은 차가웠다. 얼음처럼.

"지현. 그건 뇌손상 때문이야. 의사가 말했잖아."

"아니야. 그게 아니야. 당신이 내 남편이 아니야."

준호의 목소리가 변했다. 부드러움이 사라졌다. 남은 것은 냉정함뿐이었다.

"당신이 기억하면... 우리 모두가 죽어."

그 말. 그 말이 뭐지?

"누구? 누가 죽어?"

"당신. 나. 엄마. 모두. 당신이 기억하는 순간, 모두가 끝나."

나는 그의 손을 밀어냈다. 그의 얼굴을 봤다. 그 얼굴 뒤에 숨어있는 진짜 얼굴을.

"그날 밤. 그 검은 차. 당신이 했어? 아니면 다른 누군가가? 그 남자는 누구야? 내 남편은 누구야?"

준호의 눈이 흔들렸다. 그리고 그는 말했다.

"당신의 남편은 죽었어. 2년 전에."

침묵이 세상을 삼켰다.

"그 검은 차 안에서. 당신도 죽을 뻔했어. 하지만 당신은 살아났어. 그리고 우리는... 우리는 당신을 잊히게 하기로 했어. 그 기억을 없애기로 했어. 당신과 그 남자의 모든 것을."

준호가 내 팔을 잡았다. 힘이 들어갔다.

"당신이 기억할수록, 당신은 더 위험해져. 그 남자가 알게 되면, 그 남자가 당신을 찾으면 끝이야. 우리 모두가."

"그 남자가 뭐 하는 사람이야? 왜 그렇게 위험해?"

"그건... 당신이 기억해야 할 것이 아니야. 제발. 당신을 위해서. 우리를 위해서. 잊어줘."

준호가 문을 향해 걸어갔다. 문 앞에서 멈췄다.

"약을 다시 복용해. 한석준이 더 강한 약을 가져올 거야. 그 약을 먹어. 제발."

그리고 나갔다.

---

밤. 침대에 누워있었다.

천장의 금을 본다. 그 금들이 패턴을 이루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마치 지도처럼. 또는 회로처럼.

내 기억 복원 능력이 더 강해지고 있다. 약 없이. 방해 없이. 더 강해지고 있다.

그리고 이제 나는 알았다.

내 남편은 죽었다. 2년 전에. 그 검은 차 안에서. 그리고 나도 죽을 뻔했다. 하지만 살아났다. 이곳에서. 이 투명한 감옥에서. 나를 잊히게 하기 위해.

그런데 나는 기억하고 있다.

조각조각이지만. 흐릿하지만. 나는 기억하고 있다.

그 남자의 얼굴. 그 남자의 이름. 그 밤의 모든 것을.

그리고 내가 기억할 때마다, 현재의 기억이 사라진다. 아침에 먹은 음식. 유미경의 얼굴. 준호의 목소리. 모두 사라진다.

하지만 나는 멈출 수 없다.

그날 밤의 진실에 더 가까워지고 있으니까.

그 남자가 올 거라고 했다. 내가 기억하면. 그 남자가 나를 찾을 거라고.

그 남자는 누구인가? 내 남편을 죽인 자인가? 아니면 내 남편을 살리려던 자인가?

그 진실을 알았을 때, 나는 누가 될 것인가?

내가 존재할 것인가? 아니면 내가 완전히 사라질 것인가?

창문 너머 밤하늘에는 별이 떠 있었다. 모두 희미했다. 마치 내 기억처럼. 하지만 내 능력은 점점 더 밝아지고 있었다. 별들이 하나둘 꺼져가는 것처럼.

나는 손을 떨며 깨달았다.

진실과 나는 동시에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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