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억 복원을 시도할 때마다
기억 복원을 시도할 때마다 현재의 기억이 사라진다. 그것을 깨달은 지금, 나는 어제를 기억하지 못한다. 어제 무엇을 먹었는지, 누가 방문했는지, 천장의 금이 어디서 시작되는지. 대신 내 손에는 메모장이 있다. 글씨는 낯선데 분명 내 글씨다. '준호 손가락 밴드. 최근. 밀어낸 힘. 의도적.'
유미경이 아침 검사를 하며 들어온다. 그녀의 얼굴은 조심스럽다. 마치 달걀껍질을 밟는 사람처럼.
"오늘은 어떠세요?"
"의료 기록을 보고 싶어."
유미경의 손이 멈춘다. 혈압계 벨크로 밴드가 내 팔에서 떨어지고, 그녀는 천천히 돌아본다.
"환자분은 의료 기록 열람 권한이 없습니다."
"왜?"
"규정이니까요."
그 답변은 거짓이다. 더 중요한 것은 유미경이 나를 마주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의료진은 거짓을 말할 때 눈을 피한다. 이 센터에서 배운 유일한 진실이다.
"당신도 뭔가 알고 있는 거 아닌가?"
유미경의 어깨가 움찔한다. 그녀의 입이 열렸다가 닫힌다. 침묵이 길어진다. 그 침묵 속에서 나는 모든 것을 본다. 그녀의 동정심. 그녀의 두려움. 그녀가 뭔가 말하고 싶지만 말할 수 없다는 것.
"규정이니까요."
그녀가 다시 말한다. 같은 말을. 하지만 목소리가 떨린다. 그녀는 혈압계를 다시 내 팔에 감싼다. 손이 조금 떨린다.
"검사를 마치겠습니다."
유미경은 나를 떠난다. 내 혈압은 정상이지만, 심박수는 정상이 아니다. 기계가 삐삐 소리를 낸다. 그 소리는 거짓이다. 나는 정상이 아니거든.
점심 시간에 준호가 온다.
그 남자가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나는 그가 누구인지 다시 한 번 확인한다. 검은 머리. 다정한 눈. 입가의 미소. 모두가 거짓이다. 그 남자가 나를 밀어냈다.
준호의 오른손에는 밴드가 붙어있다. 검은 테이프로 감싼 밴드. 손가락의 제2관절 부근.
"무슨 일 있었어?"
준호가 웃는다. 그 웃음은 자연스럽지 않다. 치아가 너무 많이 보인다.
"아무것도 아니야. 일하다 긁혔어. 자잘한 거."
"언제?"
"어제."
어제. 나는 어제를 기억하지 못한다. 어제는 내가 기억 복원을 시도한 날이다. 어제는 내가 현재의 기억을 포기한 날이다. 그래서 어제가 없다.
하지만 그 밴드는 있다.
나는 준호의 손을 잡는다. 그의 손가락을 조심스럽게 들어올린다. 밴드 아래에서 나오는 냄새는 소독약과 피의 냄새다.
"정말 자잘한 거야?"
준호의 얼굴이 경직된다. 그의 눈이 커진다. 공포. 그것은 거짓이 아니다.
"지현, 놔. 괜찮아."
그의 손을 놓는다. 준호가 한 발 뒤로 물러난다. 마치 내가 위험한 것처럼.
나는 그의 밴드를 본다. 그리고 기억을 거슬러 올라간다.
검은 어둠. 차 안. 손. 큰 손이 나를 밀어낸다. 의도적인 힘으로. 그 손가락이 내 팔을 긁는다. 또는 내가 그 손가락을 긁는다. 누가 누구를 밀어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 접촉이 계획된 것이었다는 것이다.
두통이 밀려온다. 뇌가 찢어지는 듯한 통증. 동시에 무언가가 사라진다.
아침에 먹은 죽의 맛이 혀에서 지워진다. 따뜻했던 그 감각이 순간 차갑게 변하고, 곧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유미경이 내 팔에 감겼던 혈압계의 무게도 사라진다. 그녀의 손가락이 벨크로를 푸르던 소리도. 준호가 방금 나를 봤던 그 표정도. 모두가 동시에 흐릿해지고 지워진다.
"지현, 괜찮아?"
준호의 목소리가 멀어진다. 마치 물 속에서 듣는 목소리처럼.
"당신이... 나를... 밀어냈어."
"뭐라고?"
"그날 밤. 당신이 나를 밀어냈어. 의도적으로."
준호의 얼굴이 창백해진다. 그의 입술이 떨린다. 그가 뭔가 말하려고 하지만, 나는 그 말을 듣고 싶지 않다. 거짓말이니까.
준호가 병실을 나간다. 빠르게. 마치 도망치듯이. 그의 발걸음은 패닉이다. 문을 닫을 때 손이 떨린다.
그 떨림이 바로 진실이다.
밤이 온다. 병실의 불이 꺼진다. 천장의 금이 보인다. 어디서 시작되는지 모르지만, 그 금은 자꾸 늘어난다.
나는 침대에서 일어난다. 슬리퍼를 신는다. 복도를 걷는다. 간호사 스테이션은 유미경이 혼자 있다. 야간 근무. 그 시간에는 누구도 나를 감시하지 않는다.
"화장실 다녀올게요."
유미경이 고개를 끄덕인다.
화장실을 지나 기록실에 도착한다. 문이 잠겨있다. 하지만 문은 오래됐고, 내 손은 아직 강하다. 잠금장치가 열린다.
의료 기록 파일들이 줄지어 있다. 내 이름을 찾는다. '이지현'. 파일을 꺼낸다. 손이 떨린다.
'교통사고로 인한 뇌손상. 입원일 2024년 11월 15일. 진단: 외상성 뇌손상, 기억 장애, 환각 증상.'
그리고 그 아래.
'초기 신원 불확인. 나중에 확인됨.'
나중에. 누가. 언제. 어떻게.
내 신원이 불확인되었다는 게 무슨 말인가. 나는 이지현이다. 나는 항상 이지현이었다.
파일의 다음 장을 넘긴다. 초기 기록에는 '신원 확인 보류' 메모가 있다. 그 옆에는 손글씨로 '2024.11.16. 가족 확인 완료. 준호 아내 맞음.'
준호 아내 맞음.
그 문장을 읽을 때 뭔가 깨진다. 내 뇌가 깨지는 게 아니라, 뭔가 더 깊은 곳이 깨진다.
나는 정말 이지현인가.
내가 정말 준호의 아내인가.
내 기억이 내 기억인가.
파일을 넘기면서 또 다른 것들이 사라진다. 복도의 형광등 불빛. 유미경의 목소리. 방금 읽은 문장의 의미까지도 슬금슬금 흐릿해진다. 마치 누군가 내 기억의 뒤에서 지우개로 문지르는 것처럼. 나는 손가락으로 글씨를 따라가며 다시 읽는다. 하지만 읽을수록 더 많은 것이 사라진다.
기록실의 불이 꺼진다. 누군가 접근하는 발걸음 소리가 들린다. 나는 빠르게 파일을 제자리에 돌려놓는다. 기록실을 빠져나간다.
복도를 걸을 때, 거울을 본다. 새벽 불빛에 비친 내 얼굴. 그 얼굴이 나의 얼굴인지 확실하지 않다. 그 여자의 눈이 나를 본다. 그 여자의 입이 움직인다. 하지만 내 입은 닫혀있다.
거울 속 여자가 입술을 움직인다. 아주 천천히. 마치 내게 뭔가 말하고 싶어 하듯이.
그 여자의 입술이 만드는 모양은 하나의 문장이다.
'당신은 누구세요?'
나는 이지현이다. 나는 남편이 있다. 나는 교통사고를 당했다. 나는 뇌손상을 입었다.
하지만 모두가 거짓말을 한다면, 나는 무엇인가.
거울 속 여자는 여전히 나를 본다. 그리고 웃는다. 그 웃음은 친절하지 않다.
나는 침대로 돌아간다. 유미경은 여전히 스테이션에 앉아 있고, 화면의 빛만 그녀의 얼굴을 비춘다. 나는 병실 문을 조용히 닫는다.
침대에 누우면 천장의 금이 여전히 보인다. 그 금이 나의 뇌 같다.
밤이 길다. 나는 눈을 감지 않는다. 눈을 감으면 기억이 떠오르고, 기억이 떠오르면 현재가 사라진다. 그래서 깨어있어야 한다.
새벽 4시경, 복도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린다. 무거운 발걸음. 의료용 신발의 소리. 누군가 빠르게 움직인다. 그 발걸음이 내 병실 앞에서 멈춘다.
문이 조용히 열린다. 어두운 실루엣이 들어온다. 나는 눈을 감는다. 숨을 멈춘다.
발걸음이 침대 옆으로 온다. 누군가 나를 본다. 오래도록. 그 침묵 속에서 나는 심장이 터질 것 같다.
"약을 먹지 않았네."
유미경의 목소리다. 작고 조심스럽다. 그녀는 내 침대 옆 약잔을 본다. 어제 저녁에 놓은 약들이 그대로 있다.
유미경은 약잔을 집어들었다가, 다시 내려놓는다. 그리고 내 얼굴을 본다. 오래도록. 그 시선 속에는 무언가가 있다. 동정인지 경고인지 알 수 없는 무언가.
침묵이 길어진다. 그녀의 입이 몇 번 열렸다가 다시 닫힌다. 마치 말할 것을 찾고 있는 것처럼. 아니면 말하면 안 될 것을 참고 있는 것처럼.
"당신이... 옳을 수도 있어."
그녀가 거의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속삭인다. 그 말은 마치 자신에게 하는 말처럼 들린다. 아니면 내가 듣지 않기를 바라는 말처럼.
"하지만 여기서는 말할 수 없어. 아무도."
그녀의 손가락이 내 팔에 닿는다. 아주 가볍게. 마치 실수로 스치는 것처럼. 하지만 그 접촉 속에는 경고가 있다. 동시에 공모의 신호도 있다.
"당신이 옳다면... 당신은 위험해. 그리고 나도."
그 말이 끝나고, 그녀는 떠난다. 발걸음은 빠르다. 하지만 발걸음이 멀어질수록 그녀의 몸이 자꾸 뒤를 돌아본다. 마치 내가 사라질까봐 확인하는 것처럼. 문을 닫을 때 손가락이 몸을 감싼다. 마치 자신을 보호하듯이. 또는 누군가로부터 숨듯이.
나는 눈을 뜬다. 병실은 다시 조용해진다. 하지만 그 조용함은 전과 다르다. 그것은 침묵이 아니라 음모의 소리다.
유미경도 알고 있다. 그렇다면 왜 말하지 않는가.
두려움이다. 모두가 두려워한다. 그 두려움의 대상이 무엇인가. 준호인가. 의사 한석준인가. 아니면 더 위에 있는 누군가인가.
나는 침대에서 나온다. 다시 기록실로 간다. 이번에는 더 깊이 들어간다. 내 파일뿐 아니라, 다른 파일들도 본다. 다른 환자들의 기록. 모두가 같은 진단을 받았다. '환각 증상. 기억 장애. 약물 치료 중.' 그리고 모두의 가족이 같은 증언을 했다. '그들의 기억이 틀렸습니다.'
패턴이다. 명확한 패턴이다.
그리고 그 패턴의 중심에는 한석준의 서명이 있다. 모든 기록에. 모든 진단에. 모든 약물 처방에.
나는 한석준의 이름을 따라간다. 처방 기록. 치료 계획. 의료 회의록. 모든 것이 그의 손에서 나온다. 이 센터는 한석준의 왕국이다.
그리고 그 왕국의 규칙은 간단하다. 의심하는 자를 '환각 증상'으로 진단한다. 저항하는 자를 '약물'로 통제한다. 말하려는 자를 '정신질환'으로 침묵시킨다.
파일을 읽으면서 또 다시 것들이 사라진다. 이번에는 더 빠르다. 내 이름. 내 생년월일. 내가 언제 이곳에 들어왔는지. 내 손가락이 파일 위에서 멈춘다. 글씨가 흐릿해진다. 의미가 사라진다. 마치 내가 그것을 읽은 적이 없는 것처럼.
나는 한석준의 기록을 더 깊이 본다. 그의 노트. 손글씨 메모들. 그 중 하나에는 '이지현 케이스 - 높은 위험도. 지속적 약물 투여 필요. 가족과 협조 강화.'라고 적혀있다.
위험도.
나는 위험한가. 내가 뭘 했길래 위험한가.
메모의 날짜를 본다. 2024년 11월 16일. 입원 다음 날이다. 내가 의심을 표현하기도 전에, 이미 나는 '위험도 높음'으로 분류되었다. 그렇다면 누가. 누가 한석준에게 말했는가.
내 손이 파일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간다. 입원 당일의 기록. 초기 검진 노트. 그 안에 있다.
'신원 불확인 상태로 입원. 의식 회복 후 불안정한 진술. 의료진에 대한 불신 표현. 준호 보호자 진술: "아내가 최근 이상한 행동을 보였습니다. 제 말을 믿지 않습니다. 저를 의심합니다."'
준호가 말했다. 내가 그를 의심한다고. 내가 이상하다고.
그리고 그 다음 줄.
'초기 인상: 피해 망상 가능성. 가족 관계 악화로 인한 심리적 갈등. 약물 치료 권장.'
나는 처음부터 거짓으로 진단되었다.
파일을 더 넘긴다. 다른 환자들의 기록도 마찬가지다. 모두 가족의 진술로 시작된다. '이상한 행동.' '불신.' '의심.' 그리고 그 진술들이 의료 기록으로 변환된다. 의료 진단으로. 약물 처방으로.
이것은 의료가 아니다. 이것은 공모다.
기록실의 불이 갑자기 켜진다. 나는 깜짝 놀란다. 손에 들고 있던 파일을 떨어뜨린다.
"뭐 하는 거야?"
한석준이 문 앞에 서 있다. 그의 얼굴에는 놀라움이 없다. 마치 나를 여기서 만날 줄 알고 있었던 것처럼. 그의 의료용 장갑은 새것이다. 방금 낀 것처럼 하얀색이 선명하다.
"기록을 보고 싶었어요."
나는 거짓말을 한다. 하지만 내 목소리가 떨린다. 내 심장이 빠르게 뛴다. 그 떨림을 그는 본다.
"환자는 의료 기록 열람 권한이 없습니다. 규정입니다."
한석준이 말한다. 그의 목소리는 의료인의 목소리다. 따뜻하고 단호하다. 그 따뜻함 때문에 더 위협적이다. 그는 한 발 더 가까워진다. 내 몸이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난다.
"나는 제 기록을 볼 권리가 있어요."
"당신은 정신과 환자입니다. 당신의 판단 능력은 손상되었습니다. 그래서 보호자가 필요한 거고요."
"내 판단 능력은 손상되지 않았어요."
"그렇게 생각하시는 것도 증상의 일부입니다."
그 말이 끝나고, 그가 웃는다. 친절한 웃음이다. 그 웃음은 모든 것을 무효화한다. 내 저항을. 내 의심을. 내 존재를. 그의 손가락이 내 팔을 가리킨다. 의료용 장갑을 낀 손가락. 그 손가락이 내 팔을 스친다. 그 접촉은 가볍지만, 내 피부는 그것을 감지한다. 그것이 얼마나 의도적인 접촉인지를.
"다시 병실로 돌아가세요. 약을 드시고 주무세요. 내일 진찰이 있습니다."
한석준이 나를 밀어낸다.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내 팔에 그의 손가락이 닿는 순간, 나는 그것을 본다.
그 손가락의 각도. 그 손가락의 강도.
그것은 준호의 손과 같은 각도다. 같은 강도다.
하지만 기억이 흐릿하다. 차 안의 어둠도. 밀어낸 손도. 모두가 마치 다른 사람의 꿈처럼 느껴진다. 이것이 정말 그 손인가. 아니면 내가 두 가지를 억지로 연결하는 건가. 내 뇌가 패턴을 만들어내는 건가.
"당신이... 나를..."
"뭐라고요?"
한석준의 눈이 변한다. 친절함이 사라진다. 그 눈은 내가 위험하다고 판단하는 눈이다. 내가 말해서는 안 되는 것을 말하려고 한다고 판단하는 눈이다. 그 눈 속에는 무언가 다른 것도 있다. 확신. 승리감. 마치 내가 정확히 예상대로 움직이고 있다는 만족감.
"병실로 가세요."
그의 목소리에는 더 이상 따뜻함이 없다. 그것은 명령이다. 내 몸은 그 명령에 저항할 수 없다. 내 다리가 움직인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나는 병실로 돌아간다. 그의 뒤에서 한석준은 기록실의 불을 끈다. 그리고 문을 잠근다. 이전보다 더 단단하게. 이제 그 문은 열리지 않을 것 같다. 마치 내가 본 것들을 다시는 볼 수 없게 하려는 것처럼.
병실에서 나는 침대에 누운다. 하지만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다. 한석준의 목소리가 내 머릿속에 남아있다. '당신은 정신과 환자입니다.' '당신의 판단 능력은 손상되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시는 것도 증상의 일부입니다.'
그 말들이 반복된다. 끊임없이. 마치 약처럼. 마치 독처럼.
그리고 새로운 질문이 생긴다.
내가 정말 이지현인가.
내가 정말 준호의 아내인가.
내 기억이 내 기억인가.
내 판단이 내 판단인가.
내가 본 것이 진실인가.
나는 누구인가.
천장의 금이 계속 벌어진다.
밤이 계속된다. 내 뇌가 계속 갈라진다. 그리고 나는 갈라진 틈 사이로 무언가를 본다.
그것이 진실인지 환각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나는 이미 깨어났기 때문이다. 약물의 영향에서. 아니면 약물 속에서. 진실을 본 것인지, 아니면 더 깊은 거짓 속으로 빠져든 것인지. 그 구분이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