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 밤 열두 시 삼십 분

병실의 형광등을 끈 지 오래였다. 창밖 서울의 야경만이 희미한 빛을 뿌렸다. 나는 천장을 노려봤다. 어둠 속에서 뭔가 꿈틀거렸다.

어제 밤의 그것.

검은 차.

손가락을 깨물었다. 피가 났다. 통증은 생각을 명확하게 만든다. 의식적으로 그 순간을 역으로 따라가기 시작했다. 첫 번째 밤에 우연히 그랬던 것처럼, 이번엔 의도적으로.

검은 차. 언제 봤지?

머릿속이 타들어가는 듯했다. 두통이 밀려왔다. 약한 것부터 시작했다가 점점 강해졌다. 뇌 전체를 누군가 손가락으로 누르는 느낌. 나는 침대에 몸을 굴렸다.

그 검은 차. 어디서 왔는가.

어둠 속에서 헤드라이트 두 점이 떠올랐다. 창백한 노란색. 나는 차 안에 있었다. 운전석이 아니라 조수석. 옆 사람의 얼굴은 희미했다. 손만 보였다. 흰색 와이셔츠를 입은 손. 핸들을 잡고 있는 손.

그 손이 움직였다. 핸들을 꺾었다. 의도적으로.

"아."

목에서 신음이 나왔다.

검은 차가 우리 차선을 침범했다. 정면으로 들어왔다. 천천히가 아니라 빠르게. 매우 빠르게. 이건 사고가 아니었다. 충돌이었다. 누군가의 선택이었다.

나는 눈을 떴다.

천장이 보였다. 현재로 돌아왔다. 심장이 미친 듯 뛰었다. 손에 땀이 맺혔다. 그리고 동시에.

공백.

아침에 뭘 했더라?

침대 옆 탁자 위의 물잔. 그 물잔이 언제 놓여진 거였지? 간호사가 가져다줬나? 어떤 간호사? 이름이... 이름이...

유미경. 맞다.

하지만 그 얼굴이 흐릿했다. 아침의 기억이 마치 물에 잠긴 사진처럼 번져 있었다. 내가 뭘 먹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어제는 분명히 기억했는데.

나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정신을 차려야 했다. 현재가 빠져나가고 있었다. 마치 모래주머니에서 모래가 새어나가는 것처럼.

병실의 문을 열었다.

복도는 고요했다. 야간 조명만 켜져 있었다. 시계는 새벽 한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나는 화장실로 향했다.

거울 앞에 섰다.

내 얼굴이 보였다. 창백했다. 눈 주변이 멍이 들어 있었다. 교통사고의 흔적이었다. 이마에도 작은 상처가 있었고, 광대뼈 아래에도 자국이 있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왼쪽 뺨의 작은 흉터. 턱 아래의 또 다른 자국. 이건... 이건 언제 생긴 거지?

기억이 없었다.

손가락으로 자국을 눌렀다. 아프지 않았다. 오래된 상처였다. 몇 주 된 상처 같았다. 하지만 내 기억엔 없었다. 상처의 윤곽을 자세히 봤다. 손가락이 누른 자국처럼 보였다. 누군가가 나를 꽉 잡았을 때 생기는 자국. 교통사고로는 절대 생기지 않는 패턴이었다.

"뭐 해?"

등 뒤에서 목소리가 났다.

나는 깜짝 놀라 뒤돌아봤다. 유미경이 서 있었다. 야간 간호사복을 입고 있었다.

"잠을 못 주무셨어요?"

유미경의 목소리는 낮았다. 우려가 섞여 있었다. 나는 거울을 등지고 그녀를 바라봤다.

"거울을 봤어. 내 얼굴에... 이 상처들이 있어."

"네, 교통사고 때 생긴 거예요."

"이 상처도?"

나는 턱 아래를 가리켰다.

유미경이 잠깐 침묵했다. 그녀의 눈이 움직였다. 뭔가 생각하는 듯했다.

"그건... 재활 치료 중에 넘어지면서 생길 수도 있어요."

"넘어졌나?"

"기억 안 나세요?"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기억이 없었기 때문이다. 유미경은 내 표정을 읽은 듯했다. 그녀가 한 발 더 가까이 다가왔다.

"지현 씨, 혹시..."

그 순간, 복도 끝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카메라의 적외선 불빛이 어둠 속에서 깜빡였다.

유미경은 재빨리 물러섰다. 마치 뭔가 금지된 일을 하다가 들켰을 때의 반사 반응처럼. 그녀의 입이 다물어졌다. 눈빛이 변했다. 따뜻함이 사라지고 기계적인 표정이 남았다.

"밤중에 돌아다니시면 안 돼요. 병실로 돌아가세요."

발자국은 점점 가까워졌다. 의사 한석준이었다. 밤중에 병원을 도는 습관이 있는 남자였다. 그는 나를 보자 눈썹을 살짝 올렸다.

"이지현 씨. 밤중에 밖에 나오시면 안 됩니다. 신체 리듬이 무너집니다."

"화장실에 다녀왔어요."

"그렇다면 바로 병실로 돌아가세요. 수면이 매우 중요합니다."

한석준이 나를 병실로 안내했다. 유미경은 벽을 보고만 있었다. 나는 뒤돌아봤지만, 그녀는 더 이상 나를 바라보지 않았다.

병실 침대로 누웠다. 한석준이 내 맥박을 확인했다.

"심박 수가 높네요. 불안이 있으신가요?"

"아니요."

"그렇다면 밤중의 움직임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약을 한 번 더 복용하시겠어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약. 그 약이 정말 나를 돕는 건가? 아니면 나를 더 흐릿하게 만드는 건가?

"약을 거부하시면 기억이 더 흐릿해질 수 있습니다."

한석준의 목소리는 차갑고 명확했다.

"약이 나를 돕는다면, 왜 약을 먹을수록 기억이 사라지는 것 같아?"

"뇌손상으로 인한 착각입니다. 약은 당신을 안정시킵니다."

"안정시킨다는 건 기억을 흐릿하게 만든다는 뜻 아닌가?"

한석준이 침묵했다. 그 침묵이 대답이었다. 그는 내 팔에 주사를 꽂았다. 나는 저항하지 않았다.

"좋은 밤 되세요."

한석준이 나갔다.

나는 천장을 봤다. 정신이 점점 흐릿해졌다. 약이 스며드는 느낌이었다. 시야가 흐려지고 귀에서 윙윙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내가 추적하던 것들은 더욱 명확해졌다.

검은 차.

운전석의 손.

그리고 의도적인 충돌.

그리고 나의 얼굴에 있는 설명 불가능한 상처들.

그리고 유미경이 시작한 말:

"만약 당신 말이 맞다면..."

그 말이 끝나지 않았다.

아침이 왔다.

나는 침대에서 깨어났다. 창밖은 밝았다. 햇빛이 병실 바닥에 흰 사각형을 그리고 있었다. 나는 누가 들어올 때까지 기다렸다.

준호가 들어왔다.

그는 커피 두 잔을 들고 있었다. 미소가 있었다. 다정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미소를 본다고 해서 자신을 느끼지 못했다. 대신 무언가 다른 것을 봤다. 그의 손가락에 붙은 밴드. 어제보다 더 돋보였다.

"아침이야. 좀 나아졌어?"

"준호."

"응?"

"우리 차 색깔이 뭐였어?"

준호가 멈췄다. 커피잔이 흔들렸다. 그의 얼굴이 잠깐 경직되었다가 다시 부드러워졌다.

"흰색 제네시스. 왜?"

"흰색?"

"응. 뭐?"

내 심장이 철렁했다.

"내가 기억하는 건 검은 차야."

준호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지현, 그건..."

"그건 뭐야?"

"환각이야. 의사님이 말씀하셨잖아."

"내가 본 게 환각이면, 당신 손가락의 밴드는 뭐야?"

준호가 자신의 손을 봤다. 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

"이건... 어제 일할 때..."

"거짓이야."

내가 말했다.

준호의 입이 움직였다. 하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대신 그는 커피를 내려놨다. 그리고 내 손을 잡으려 했다.

나는 손을 빼냈다.

"당신도 거짓말하는 거야. 모두가 거짓말하는 거야."

"지현..."

"내가 미쳤다고 생각해?"

"아니야."

"그럼 왜 모두 같은 거짓을 반복해?"

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눈이 흔들렸다. 그 눈 속에서 나는 처음 본 것—두려움을 읽었다. 그것은 내 두려움이 아니라 그의 두려움이었다. 그는 나가 뭔가를 알아채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것이 진실이었다.

"나 혼자 있고 싶어."

내가 말했다.

준호는 나가는 문을 바라봤다. 그리고 떠났다. 커피는 탁자에 남겨졌다. 따뜻한 김이 피어올랐다. 나는 그것을 보지 않았다. 대신 거울을 봤다.

얼굴에 있는 상처들.

내가 이것들을 어떻게 얻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뭔가 확실했다.

내 기억이 더 이상 신뢰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모두가 나를 속이고 있다는 것.

밤이 다시 왔다.

나는 침대 위에 앉아 있었다. 이번엔 더욱 집중했다. 파편들을 모으는 것이 아니라, 한 조각씩 역으로 추적했다.

그 목소리.

검은 차 안의 목소리. 운전석에서 들려온 목소리.

"준호가 아닌 다른 남자."

내가 중얼거렸다.

두통이 밀려왔다. 이번엔 더 강했다. 뇌 전체가 타들어갔다. 하지만 나는 멈추지 않았다. 계속 따라갔다. 그 목소리가 뭐라고 말했는지.

"잊어야 한다."

그 목소리가 말했다. 낮고 차분했다. 위협적이지는 않지만 절대적이었다.

"잊어야 한다. 이 모든 걸."

통증이 절정에 다다랐다. 나는 침대에서 내려앉았다.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었다. 하지만 그 속에서 뭔가를 붙잡았다.

그 목소리의 주인.

얼굴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목소리가 더 명확해졌다. 그리고 그 목소리는—

갑자기 침묵이 찾아왔다.

통증이 사라졌다. 마치 수도꼭지를 잠그듯이. 나는 천천히 손을 내렸다. 숨을 쉬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아침의 기억이 없다.

오늘 아침에 뭘 했더라?

준호가 왔다. 맞다. 그리고... 그 다음에?

뭐였지?

생각을 해봐도 흐릿했다. 마치 누군가 그날의 비디오테이프를 지운 것처럼. 나는 침대에 누웠다. 천장을 봤다. 손이 떨렸다.

이 떨림이 뭐지?

두려움인가? 아니면 각성인가?

나는 모르겠다.

내 기억이 더 이상 신뢰할 수 없다는 것만 확실하다.

밤새 뭔가를 복원했다는 사실만 남고, 그 복원이 뭐였는지는 사라졌다. 역설적이게도 내가 가장 절박하게 알고 싶은 것일수록 그렇게 사라진다. 기억 복원 능력이라는 게 결국 이런 건가. 과거의 조각을 얻기 위해 현재의 나 자신을 포기하는 거.

내가 일어났을 때 한석준이 이미 병실에 있었다.

"수면이 좋으셨나요?"

그의 목소리는 늘 부드러웠다. 그것이 가장 위험했다.

"네."

나는 거짓말했다. 수면이 아니라 악몽이었다. 아니, 악몽도 아니었다. 악몽이라도 기억이 남는데, 이건 기억이 없었다. 내가 뭔가를 했다는 것만 알고, 그게 뭐였는지는 모르는 상태. 더 무서운 게 뭔지 알아?

내가 그걸 잊기를 원했을 수도 있다는 것.

"어제 불안감을 느끼셨다고 들었어요."

한석준이 차트를 들었다. 유미경이 뭔가 보고했나 보다.

"그렇습니다."

"그것이 환각의 신호입니다. 뇌손상 후 불안감과 환각은 매우 흔한 증상이거든요. 특히 당신은 일부 기억 왜곡을 경험하고 있으니까요."

그가 웃음을 지었다. 의료진의 그 웃음. 환자를 진정시키기 위한 그 웃음. 나는 그 웃음이 증오했다.

"약을 더 복용하세요. 그러면 안정될 것입니다."

"약이 저를 도울까요? 아니면 더 흐릿하게 만들까요?"

한석준이 멈췄다. 펜이 차트 위에서 멈춘 채로.

"당신이 약에 대해 의심하고 있군요."

"의심이 아니라 관찰입니다."

"그 관찰도 증상의 일부입니다. 편집증적 사고는 뇌손상 환자에게서 흔하게 나타나는 현상이에요."

그가 말했다. 마치 내가 불평하는 아이를 대하듯이. 내 손이 주먹으로 쥐어졌다.

"환각은 약으로 치료된다는 말씀이군요. 그럼 약을 안 먹으면 환각이 계속되고, 약을 먹으면 흐릿해지는데, 결국 둘 다 진실을 모르게 되는 거 아닙니까?"

"당신은 진실을 찾는 게 아니라 증상을 악화시키고 있습니다."

한석준이 펜을 내려놨다. 차트를 닫았다. 그의 눈이 이번엔 따뜻하지 않았다.

"환자의 자존감과 현실 검증력을 회복하는 게 치료입니다. 당신이 지금 하는 건 그 반대예요. 자신의 기억을 절대화하고, 의료진을 의심하고, 가족을 거부하고 있다. 이건 악순환입니다."

"그럼 제 기억이 틀렸다는 증거가 뭡니까?"

"기억이 틀렸다는 증거를 요구하는 것 자체가 편집증입니다."

나는 그의 말에 답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게 말이 되기 때문이었다. 악마 같은 논리였다. 나를 의심하면 편집증. 의료진을 신뢰하면 치료. 그 사이에는 진실을 찾을 공간이 없었다.

"오늘 약의 용량을 늘리겠습니다. 저녁에 수면제도 처방하겠습니다."

"수면제는..."

"당신은 충분한 수면이 필요합니다."

한석준이 일어났다. 문을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당신의 친모와 남편의 방문 시간을 늘리겠습니다. 가족의 지지가 치료에 매우 중요하니까요."

"아니, 잠깐..."

"네?"

"제 핸드폰은?"

한석준이 돌아봤다.

"핸드폰?"

"네. 제 핸드폰이 어디 있는지 모르겠어요."

"당신의 어머니가 보관 중입니다. 회복 과정에서 자극적인 정보 노출은 피해야 하거든요. 괜찮으신가요?"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생각했다. 엄마가 내 핸드폰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나는 그걸 까먹고 있었다. 아니, 까먹은 게 아니라 없었다. 그 기억이 애초부터 없었다.

복원 때문인가?

한석준이 떠났다. 병실에 침묵이 남겨졌다. 나는 침대에 누워 천장을 봤다. 뇌가 돌아가고 있었다. 끔찍한 속도로.

오후였다.

유미경이 활력 징후를 확인하러 들어왔다. 혈압계, 산소포화도 측정기. 늘 하던 일들. 하지만 이번엔 뭔가 다른 게 보였다. 그녀의 눈이 나를 마주쳤을 때, 그 눈에 있던 것.

미안함?

"유미경."

내가 불렀다.

"네?"

"당신은 제 기억이 환각이라고 생각해요?"

유미경이 혈압계를 내렸다. 손이 잠깐 떨렸다.

"의사님의 진단을..."

"의사님 말고 당신 생각을 묻는 거예요."

유미경이 나를 봤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만약 당신 말이 맞다면... 그럼 당신이 본 게 진짜라는 뜻이고, 그렇다면 누군가가 센터 내 감시 카메라 사각지대에서..."

그 순간, 복도 끝에서 알람음이 울렸다. 카메라의 적외선 불빛이 어둠 속에서 깜빡였다. 복도 조명이 일순간 밝아졌다.

유미경은 입을 다물었다. 마치 처음부터 말을 할 생각이 없었던 것처럼. 그녀는 빠르게 기계들을 정리했다.

"활력 징후는 정상입니다."

유미경이 차트에 기록했다.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한석준이 들어왔다.

"활력 징후는 정상입니다."

유미경이 반복했다.

"알겠습니다."

한석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유미경은 나를 바라봤다. 그 눈 속에는 뭔가가 있었다. 말하고 싶은데 말할 수 없는 것. 내가 그걸 읽었는지 확인하려는 것. 그리고 그 다음엔—

두려움.

유미경이 떠났다. 한석준은 차트를 들었다.

"약물 투여 기록을 보니 순응도가 높으신 편이네요."

"네."

나는 거짓말했다.

"그럼 계속 이 정도를 유지해주세요. 곧 회복이 보일 겁니다."

한석준도 떠났다. 병실에는 다시 침묵만 남겨졌다. 하지만 이번 침묵은 다를 수 있다. 유미경이 뭔가를 말하려 했다. 그리고 그것은—

내가 옳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

밤이 왔다.

나는 침대 위에 앉아 있었다. 약 때문에 몸이 무거웠다. 한석준이 용량을 늘렸다고 했다. 시야가 흐릿했다. 청각이 왜곡되었다. 마치 수중에 있는 것 같은 감각. 하지만 그 속에서 뭔가가 움직이고 있었다. 파편들이 다시 모이려고 했다.

이번엔 차를 더 명확히 하지 말고, 운전자를 더 명확히 하자.

그 목소리의 주인.

준호가 아닌 남자.

내 눈을 감았다. 약의 무거움을 밀어내고 집중했다. 그 순간의 감각들로 돌아갔다. 차 안의 냄새. 가죽 시트. 엔진음. 그리고—

"잊어야 한다."

그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통증이 왔다. 약해진 몸에도 통증이 왔다. 하지만 계속했다. 그 목소리가 뭐라고 말했는지. 왜 그렇게 말했는지. 그리고—

얼굴.

얼굴이 보이려 했다.

검은 그림자 속에서 뭔가가 떠올랐다. 눈. 코. 입. 얼굴의 윤곽이 만들어지려 했다. 그 얼굴이 누구인지 거의 다 왔다. 아주 조금만 더.

통증이 극에 달했다.

나는 침대에서 떨어져 나왔다. 손으로 머리를 누르고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뇌 전체가 타들어갔다. 마치 누군가 불을 질렀다는 듯이. 경련이 몸을 휩쓸었다. 팔다리가 내 의지와 무관하게 움직였다. 침대 모서리에 몸이 부딪혔다. 손가락이 시트를 할퀴었다.

그 순간—

병실 문이 열렸다.

한석준이 들어왔다. 그의 표정은 침착했다. 마치 이 상황을 예상했다는 듯이. 그는 주사기를 들고 있었다.

"진정하세요."

그가 말했다.

나는 경련하는 몸으로 그를 바라봤다. 입을 열려 했다. 뭔가를 말하려고. 하지만 나오는 건 신음뿐이었다.

한석준이 내 팔을 잡았다. 주사를 꽂았다. 액체가 혈관을 타고 올라왔다. 순간 모든 게 멈췄다. 경련이 멈추고, 통증도 멈추고, 심지어 생각도 멈췄다.

나는 바닥에 누웠다. 움직일 수 없었다. 눈만 뜨고 있었다. 한석준이 내 위에 서 있었다. 그의 얼굴이 천천히 선명해졌다.

"뭔가 기억나세요?"

그가 물었다.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입이 움직이지 않았다.

"당신은 기억 복원 능력이 있어요. 매우 드문 능력이죠. 하지만 그 능력은 위험합니다. 당신이 기억해선 안 되는 것들이 있거든요."

한석준이 내 얼굴에 손을 얹었다. 그의 손. 흰색 와이셔츠를 입은 손.

그 손.

검은 차 안에서 본 그 손이었다.

"당신은 잊어야 해요. 이 모든 걸. 그게 당신을 위한 거예요."

그의 목소리. 검은 차 안에서 들었던 그 목소리.

"누가... 누구세요..."

겨우 나온 말이었다.

한석준이 미소 지었다. 그 미소는 따뜻했다. 그래서 더 끔찍했다.

"당신이 가장 신뢰하는 사람이에요."

그가 말했다.

"의료 기록을 보면 당신의 외상 후 기억상실은 심각해요. 하지만 그건 거짓이에요. 당신은 기억하고 있어요. 당신이 본 것들을 . 당신이 당했던 것들을."

한석준이 내 팔을 들었다. 그 팔에 있는 자국들을 보여줬다.

"이건 교통사고가 아니에요. 이건 제약이에요. 당신이 저항할 때 생긴 자국들."

"왜... 왜..."

"왜냐하면 당신이 알면 안 되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에요. 당신의 남편이 관여된 것들. 당신의 어머니가 동의한 것들."

한석준이 일어났다. 주사기를 다시 들었다.

"이번엔 더 강한 약이에요. 당신의 기억 복원 능력을 억제할 거예요. 영구적으로."

"잠깐... 제발..."

"좋은 밤 되세요, 지현 씨."

주사가 팔에 꽂혔다. 이번엔 다른 느낌이었다. 뜨거웠다. 마치 불이 혈관을 타고 올라가는 것 같았다. 나는 비명을 지르려 했지만, 목에서 나오는 건 신음뿐이었다.

시야가 흐릿해졌다. 검은색이 가장자리에서 밀려왔다. 하지만 그 속에서 한 가지는 명확했다.

한석준의 얼굴.

검은 차 안에서 본 그 얼굴.

운전석에서 핸들을 꺾던 그 손.

그리고 그의 목소리:

"잊어야 한다. 이 모든 걸."

나는 그 말을 이제 이해했다.

그건 충고가 아니라 명령이었다.

그리고 나는—

검은색이 모든 걸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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