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창문의 커튼을 밀어낸 햇빛이 카를라의 얼굴을 비추는 순간, 그녀는 눈을 떴다. 천장의 조각상들이 희미하게 흔들렸다. 또 다시 아침이었다.

손가락의 반지를 바라봤다. 여섯 개의 빛나는 숫자가 남아있었다. 지난밤의 모든 것이 되돌려졌다. 아버지의 비밀 서재도, 루시앙 저택도, 그 마차 위의 절망도. 카를라는 침대에서 천천히 일어나 앉았다.

어제—아니, 지난번의 회귀에서 보았던 레오닐의 얼굴이 자꾸만 떠올랐다. 그의 눈빛이 단순한 죄책감만은 아니었다. 그 속에는 깊은 비극이 숨어있었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 하지만 나는 너를 구할 수 없다.' 그 말이 자꾸만 반복되었다.

카를라는 거울 앞에 섰다. 자신의 얼굴이 창백했다. 복수를 위해 세운 계획들이 떠올랐다. 아멜리아의 비밀을 폭로하고, 루시앙 가문의 야망을 드러내고, 레오닐의 배신을 공개적으로 응징하기. 그 모든 것이 여전히 필요해 보였다. 그런데 왜 가슴이 무거웠는가.

손이 떨렸다. 반지의 숫자를 다시 확인했다. 여섯 개월. 그나마 남은 시간이 이렇게 빠르게 줄어들었다. 그렇다면 이 여섯 번의 기회를 어떻게 써야 할까.

침실의 문이 조용히 열렸다. 카를라는 몸을 날렸다. 그것은 하인이 아니었다.

레오닐이었다.

"침입을 하는가," 카를라가 말했다. 목소리를 차갑게 다듬었다. "이것도 제1회귀의 일부인가. 왕실의 제1공작이 미혼녀의 침실에 들어오다니."

레오닐은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카를라를 바라봤다. 그의 표정은 지난밤의 그것과 달랐다. 더 차갑고, 더 절망적이었다.

"이 시간에 올 리가 없다," 카를라가 다시 말했다. 그녀는 반지를 숨기려고 손을 주머니에 밀어 넣었다. "무슨 일인가."

"너는 어제 밤 루시앙 저택에 다녀왔다."

진술이었다. 질문이 아니었다. 카를라의 심장이 내려앉았다. 그는 어떻게 알았을까.

레오닐은 그녀의 표정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내가 너를 미행했다. 너는 위험한 곳에 갔다. 그곳이 얼마나 위험한지 몰랐을 테지만, 나는 안다." 그가 한 발 앞으로 나왔다. "카를라, 제발. 더 이상 그런 일을 하지 말아다오."

"당신은 내게 명령할 위치에 없습니다, 공작님."

"알고 있다."

레오닐은 창가에 다가갔다. 아침 햇빛이 그의 옆얼굴을 비추었다. 카를라는 처음 보는 표정을 마주했다. 그것은 권력자의 냉정함이 아니었다. 그것은 고뇌였다.

"내가 너를 버린 이유를 알고 싶은가."

카를라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침묵 자체가 답이었다.

레오닐은 돌아섰다. 햇빛 속에서 그의 얼굴이 더욱 창백해 보였다. 오랫동안 입을 열지 않다가 창밖을 응시하는 동안, 그의 어깨가 미묘하게 떨렸다. 마침내 말을 이었을 때,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낮았다.

"나와의 결혼은 너의 가문을 살리기 위한 것이었다."

카를라의 눈이 커졌다. 그녀는 이미 알고 있었던 사실이었지만, 그의 입에서 직접 나오는 말은 달랐다.

"하지만 왕실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가 말을 잇지 못하고 침묵했다. 그의 손이 창틀을 움켜잡았다. "루시앙과의 결혼만이—오직 그것만이 왕실의 안정을 보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카를라의 손이 떨렸다. 그것은 지난번의 회귀에서 우연히 목격했던 장면과 일치했다. 왕실의 사신이 레오닐에게 말했던 것. 그 말이 단순한 정치적 제안이 아니라 명령이었다는 뜻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왜 이 모든 것을 겪고 있습니까," 카를라가 물었다. 목소리가 떨렸다. "당신의 결정이 불가피했다면, 나는 왜 제단에서 죽어야 했습니까."

"그것은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다."

레오닐이 돌아섰다. 그의 눈이 진짜 절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입을 열려 했다가 닫았다. 다시 열었다.

"마르쿠스 루시앙은 결혼식 아침에 나에게 최후통첩을 내렸다. 만약 너를 막으려 한다면 벨리앙 가문은 완전히 몰락할 것이라고." 그의 목소리가 더욱 낮아졌다. "나는 너를 버림으로써 그것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너는 살 것이고, 가문은 살 것이고, 나는 아멜리아와의 결혼으로 루시앙을 제어할 것이라고."

침묵이 흘렀다.

"하지만 넌 죽었다."

카를라는 숨을 쉴 수 없었다. 모든 것이 뒤섞이고 있었다. 지금까지 자신이 세운 복수의 계획, 그 모든 것의 기초가 흔들리고 있었다. 레오닐은 배신자가 아니었다. 그는 단지 더 강한 힘에 눌린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강한 힘은 루시앙이었다.

"나는 너를 구하고 싶었다," 레오닐이 말했다. "그것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모두 실패했다."

침실이 조용했다. 레오닐은 창가에 기대어 서 있었고, 햇빛은 그의 얼굴을 반으로 나누고 있었다. 밝은 쪽과 어두운 쪽.

"그래서 이제 나는 다시 한 번 제안한다," 그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만약 내가 너를 선택한다면—지금 이 아침에, 다시 한 번 너를 선택한다면, 너의 가문은 왕실의 완전한 신뢰를 잃을 것이다. 루시앙은 보복할 것이고, 벨리앙은 파멸할 것이다. 너는 그것을 감수할 수 있는가."

카를라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것은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니었다. 가문의 멸망을 의미했다. 아버지를, 어머니를, 모두를 파멸시키는 선택이었다.

"그래서 나는 너를 다시 버린다," 레오닐이 말했다. "이것이 진정한 사랑이다. 너의 가문을 살리기 위해 너를 버리는 것.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다."

카를라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그것은 분노의 눈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절망의 눈물이었다. 왜냐하면 그 순간, 그녀는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레오닐이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사랑이 그녀를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을.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카를라가 물었다. 목소리가 아주 작았다.

"살아라. 그저 살아라. 그것만이 나를 구원할 수 있다."

레오닐은 침실을 나갔다. 카를라는 혼자 남겨졌다.

시간이 흘렀다. 카를라는 거울 앞에서 자신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 얼굴에는 복수의 분노가 남아있지 않았다. 대신 그곳에는 깊은 혼란이 자리 잡고 있었다. 만약 레오닐이 진정으로 자신을 사랑했다면, 그렇다면 자신이 증오해야 할 대상은 누구인가. 아멜리아인가. 루시앙인가. 아니면 왕실인가.

손가락의 반지를 바라봤다. 여섯 개의 숫자가 다섯 개로 줄어들어 있었다.

침실의 문이 다시 열렸다. 이번에는 이사벨이었다. 그녀의 얼굴은 심각했다.

"당신의 어머니가 남긴 것을 찾았습니다," 이사벨이 말했다. 그녀는 낡은 가죽 표지의 일기장을 카를라에게 내밀었다. "이것을 읽어보시길."

카를라는 일기장을 받았다. 손이 떨렸다. 첫 페이지를 펼쳤다.

'내 딸이 나처럼 되지 않기를. 내 딸이 침묵 속에서 살지 않기를. 내 딸이 자신의 인생을 되찾기를.'

카를라는 더 이상 읽을 수 없었다. 목이 메었다.

이사벨은 창가에 서 있었다. 아침빛이 그녀의 은빛 머리카락을 타고 흐르고 있었다. 돌아서지 않은 채 그녀가 말했다.

"당신의 어머니는 스물여덟 살에 이 집으로 들어왔습니다. 나는 그 당시 그녀를 알았습니다. 그녀는... 밝은 사람이었습니다."

카를라의 목이 더욱 메었다. 밝은 사람. 자신은 어머니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었는가. 침묵하는 여인. 아버지의 그림자. 자신의 배경으로만 존재하는 누군가. 하지만 이 일기장 속의 어머니는 다른 사람이었다.

"그녀가 당신을 낳았을 때, 그 기쁨을 나누던 모습을 잊을 수 없습니다. 그녀는 당신이 자유로운 인생을 살기를 원했습니다. 자신이 하지 못한 모든 것을 당신이 하기를."

이사벨이 천천히 돌아섰다. 그녀의 눈은 축축해 보였다.

"하지만 벨리앙 가문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처음부터 도구로 취급받았고, 당신의 어머니는 그것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이 일기장을 남겼습니다. 당신이 언젠가 깨어날 것을 믿으며."

카를라의 손에 들린 일기장이 무거워졌다. 그것은 더 이상 종이와 가죽으로 만든 물건이 아니었다. 그것은 어머니의 절망이었다. 그리고 그 절망 속에서도 남겨진 희망이었다.

"당신의 어머니는 자신을 저버린 남자를 파멸시키지 않았습니다," 이사벨이 계속했다. "당신이 반지를 손가락에 끼웠을 때, 그녀가 그 빛을 본 것 같습니다. 그녀는 당신이 다른 길을 걸을 것을 믿었습니다."

카를라는 일기장의 다음 페이지를 넘겼다. 어머니의 필체가 가득했다.

'레오닐과의 결혼이 정해졌을 때, 나는 매일 밤 기도했다. 내 딸이 나의 길을 따르지 않기를. 내 딸이 침묵하는 아내가 되지 않기를. 내 딸이 자신의 목소리를 가지기를.'

손가락이 떨렸다. 카를라는 그 페이지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어머니는 자신의 미래를 알고 있었던 것인가. 아니, 어머니도 같은 길을 걸었던 것이었다. 정략결혼. 침묵. 절망. 그리고 그 절망 속에서 딸을 위한 기도.

이사벨은 카를라에게 다가왔다. 그녀는 일기장 위에 손을 얹었다.

"당신의 어머니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을 들으시겠습니까."

카를라는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이사벨은 이미 입을 열고 있었다.

"'만약 내 딸이 이 일기장을 읽는다면, 그것은 내가 더 이상 당신을 지킬 수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나는 당신이 나보다 강하다는 것을 안다. 나는 당신이 침묵하지 않을 것을 안다. 그러므로 나는 당신에게 말한다. 복수하지 마라. 대신 살아라. 당신의 삶을 살아라. 그것이 가장 위대한 승리다.'"

침실이 조용했다. 시계의 초침 소리만 들렸다. 카를라는 일기장을 가슴에 안았다. 손가락이 떨렸다.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이사벨이 말했다. "당신은 다섯 번 더 이 날을 반복할 수 있습니다. 당신은 선택해야 합니다. 복수로 당신의 남은 시간을 쓸 것인가, 아니면 다른 무엇으로 쓸 것인가."

카를라가 고개를 들었다.

"이사벨, 당신은 어머니를 왜 도왔습니까."

"당신의 어머니가 나의 친구였기 때문입니다."

그 말이 전부였다. 이사벨은 침실을 나갔다. 문이 닫혔다. 그리고 카를라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일기장의 페이지를 넘겼다. 한 페이지, 또 한 페이지. 어머니의 필체가 채워나간 수십 년의 시간이 펼쳐졌다. 처음에는 절망으로 가득했다. 아버지의 무관심, 가문의 기대, 자신이 해야 할 것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 일기장의 톤이 변했다.

'오늘 카를라가 웃었다. 나는 그 웃음을 위해 모든 것을 견딜 수 있다.'

'내 딸은 나보다 용감하다. 나는 그것을 본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 자랑스럽다.'

카를라는 마지막 페이지에 도달했다. 그것은 최근의 것이었다. 필체가 흔들렸다.

'내 딸의 결혼식이 다가오고 있다. 나는 그녀가 행복하기를 기도한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이 세상은 여인의 행복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그녀에게 말해주고 싶다. 만약 모든 것이 무너진다면, 당신은 다시 시작할 수 있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그리고 당신의 삶은 다른 누군가를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 다음 문장이 카를라의 눈을 멈추게 했다.

'내 딸이 만약 내가 줄 수 없는 기회를 받는다면, 나는 그것이 그녀의 것이기를 간절히 원한다. 나는 그녀가 자신의 선택으로 자신의 삶을 다시 쓰기를 원한다.'

기회. 반지. 시간을 돌릴 수 있는 기회.

카를라는 반지를 바라봤다. 다섯 개의 숫자가 남아있었다. 다섯 번. 다섯 번의 아침.

그 순간, 무언가가 카를라의 마음 속에서 부러졌다. 그것은 복수의 고리였다.

지금까지 그녀는 반지를 복수의 도구로 생각했다. 레오닐을 파멸시키고, 아멜리아를 무너뜨리고, 루시앙을 전복시킬 수 있는 기회. 하지만 어머니는 다르게 생각했다. 어머니는 이 기회를 그녀의 해방으로 봤다.

카를라는 일기장을 책장에 조심스럽게 놓았다. 그리고 거울 앞에 섰다.

거울 속의 얼굴은 누구인가. 벨리앙 가문의 외동딸인가. 레오닐에게 버림받은 여인인가. 아니면 다른 누군가인가.

카를라는 거울을 응시했다. 그 안의 여인이 천천히 변해 보였다. 분노가 걷혀나갔다. 절망이 물러났다. 그 자리에는 무언가 다른 것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것이 무엇인지 이름을 붙일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무거웠고, 단단했다.

시계가 여덟 시를 쳤다. 결혼식은 오후 두 시였다.

카를라는 침대에 누웠다. 천장을 바라봤다. 만약 자신이 제단에 서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만약 자신이 아멜리아의 비밀을 폭로하지 않는다면. 만약 자신이 루시앙을 파멸시키려 하지 않는다면.

그렇다면 자신은 누가 될까.

그 질문이 모든 것을 바꿨다.

오후가 되었다. 카를라의 침실 문이 열렸다. 시녀들이 들어섰다. 하얀 드레스. 진주 목걸이. 신부의 치장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른 무언가가 느껴졌다. 그것은 무장이 아니라 준비였다. 전투가 아니라 선택을 위한 준비.

거울 앞에 앉은 카를라. 시녀가 그녀의 머리를 빗었다.

"아가씨, 긴장되십니까," 시녀가 물었다.

카를라는 대답하지 않았다. 긴장. 그것은 무엇인가. 자신은 긴장하고 있는가. 아니면 다른 감정을 느끼고 있는가.

시녀가 카를라의 머리에 작은 보석 장식을 꽂았다. 그것은 빛났다.

"아가씨는 정말 아름답습니다," 시녀가 중얼거렸다.

카를라는 거울 속의 자신을 봤다. 하얀 드레스에 싸인 그 여인. 그녀는 정말로 아름다웠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레오닐을 위한가. 벨리앙 가문을 위한가. 아니면 자신 자신을 위한가.

침실을 나갔다. 복도를 걸었다. 계단을 내려갔다. 마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아버지가 나타났다. 그의 얼굴은 긴장으로 가득했다.

"카를라," 아버지가 말했다. 목소리가 떨렸다. "모든 것이 잘될 것이다. 나를 믿어라."

카를라는 아버지를 바라봤다. 그 남자는 자신을 담보로 팔았다. 그리고 그것이 가문을 구하는 길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지금 카를라의 눈에는 다른 것이 보였다. 그것은 절망이었다. 가문의 몰락을 막으려는 절망.

"아버지," 카를라가 말했다. "저는 당신을 믿습니다."

그 말이 진실이었는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은 다른 진실이었다. 그녀는 아버지를 미워하지 않기로 선택하고 있었다.

마차에 올랐다. 대성당으로 향했다. 거리가 흘러갔다. 귀족들의 얼굴들이 창문 밖으로 지나갔다. 모두가 카를라를 보고 있었다. 벨리앙 가문의 외동딸. 공작의 신부.

대성당에 도착했다. 카를라는 마차에서 내렸다. 사람들의 시선이 그녀를 관통했다. 하얀 드레스. 진주. 아름다움. 모든 것이 완벽했다.

복도를 걸었다. 음악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제단이 보였다. 레오닐이 서 있었다. 그의 얼굴은 창백했다.

카를라는 천천히 걸어갔다. 한 발, 또 한 발. 모든 눈이 그녀를 따랐다. 이것이 그녀의 마지막 걸음인가. 아니면 새로운 시작인가.

레오닐과의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무언가가 흔들렸다. 그의 표정에는 절망이 있었다. 그리고 그 절망 너머에는 사랑이 있었다.

카를라는 제단 앞에 섰다. 신랑의 자리가 그곳에 있었다. 하지만 카를라는 한 발도 더 나아가지 않았다.

모두가 숨을 멈췄다.

카를라는 고개를 들었다. 대성당의 천장을 바라봤다. 그리고 천천히, 매우 천천히 입을 열었다. 호흡이 가빴다. 손가락이 떨렸다. 목소리가 나오려 할 때마다 가슴이 철렁했다. 이것이 정말로 자신이 원하는 선택인지, 이 말을 뱉는 순간 무너져 내릴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는지.

"나는 이 결혼을 거절합니다."

목소리가 떨렸다. 하지만 분명했다.

침묵. 완벽한 침묵이 대성당을 감쌌다.

"저는 누군가의 신부가 되기 위해 여기 있지 않습니다. 저는 제 자신이 누구인지 알기 위해 여기 있습니다."

카를라의 목소리가 대성당의 돌벽을 타고 울려 퍼졌다. 그 순간, 후유증이 밀려왔다. 숨이 끊겼다. 다리가 흔들렸다. 시야가 희미해졌다. 하지만 카를라는 제단에서 내려갔다.

아버지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귀족들 사이에서 소란이 일기 시작했다. 루시앙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의 얼굴이 분노로 붉어졌다.

"이것이 무슨 짓인가!" 루시앙이 소리쳤다.

왕실 사신이 앞으로 나섰다. 그의 얼굴은 돌처럼 굳어있었다. 이것은 단순한 파혼이 아니었다. 이것은 왕실에 대한 모욕이었다. 벨리앙 가문에 대한 신뢰의 배반이었다.

카를라의 아버지가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그의 입에서 소리가 나왔지만 말이 아니었다. 그것은 절망의 울음이었다.

"카를라!" 그가 외쳤다. "넌 가문을 파멸시키는 건가!"

그 말이 카를라의 가슴을 찔렀다. 하지만 그녀는 돌아서지 않았다.

레오닐의 얼굴이 변했다. 그의 입이 벌어졌다. 그리고 그 순간, 무언가가 그의 눈 속에서 타올랐다. 그것은 절망이 아니었다. 그것은 희망이었다.

"카를라—" 레오닐이 한 발을 내딛었다.

하지만 카를라는 돌아섰다. 그녀는 제단을 내려갔다. 사람들 사이를 헤쳐 나갔다. 모두가 그녀를 바라봤다. 누군가는 소리를 질렀다. 누군가는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왕실 사신은 그녀를 붙잡으려 했지만, 카를라는 이미 대성당의 문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햇빛이 그녀의 얼굴을 비췄다. 그리고 그 순간, 손가락의 반지가 빛났다.

시간이 거꾸로 흐르기 시작했다. 모래시계가 뒤집혀지는 소리가 들렸다. 카를라의 신체가 천천히 해체되는 듯했다. 기억들이 역주행했다. 제단 위의 순간, 복도를 걷던 발걸음, 마차 안의 침묵. 모든 것이 빠르게 거슬러 올라갔다.

검은 하늘이 점점 밝아졌다. 창문이 나타났다. 침실의 천장이 보였다. 그리고 카를라는 깨어났다.

아침이었다. 결혼식 아침.

반지를 바라봤다. 네 개의 숫자가 남아있었다.

문이 열렸다. 이사벨이 들어섰다. 그녀의 손에는 낡은 편지가 들려있었다.

"당신의 어머니가 한 가지 더 남겼습니다," 이사벨이 말했다. "이것은 당신이 마지막 선택을 할 때 읽어야 할 편지입니다."

카를라는 그 편지를 받았다. 봉투에는 손글씨로 쓰여있었다.

'내 딸에게. 만약 당신이 이것을 읽는다면, 당신은 이미 자신의 길을 찾았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당신이 자랑스럽다.'

카를라는 편지를 펼치려 했으나 멈췄다. 손가락이 떨렸다. 아직 읽을 준비가 되지 않은 듯했다. 봉투를 가슴에 안았다.

남은 네 번의 기회. 그것을 어떻게 써야 할까. 그 질문이 모든 것을 결정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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