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거울 앞에서 손가락의 반지를 바라보던 카를라의 눈이 갑자기 떨렸다. 손등에 나타난 금빛 숫자들이 점점 희미해지고 있었다.

18 → 17 → 16...

"이미?"

음성은 차갑게 떨어졌지만, 손가락이 덜덜 떨렸다. 시간 회귀 직후의 신체 회복 과정에서 수명이 깎이기 시작했다는 뜻이었다. 반지의 규칙이 정확했다. 매 회귀마다 1개월. 18번의 기회는 곧 18개월의 남은 인생이었다.

카를라는 숨을 고르고 침대 밑 서랍을 열었다. 아버지의 방에서 몰래 가져온 파기된 문서들이 그 안에 있었다. 손떨림이 심해졌다. 계약서의 글씨가 흔들렸다.

'루시앙 백작가와의 혼인 계약에 따라 벨리앙 가문의 채무 5만 골드를 전액 탕감함. 단, 상기 혼인이 성사되지 않을 경우...'

뒷장의 글씨는 더 진했다. 지워지지 않도록 여러 번 눌렀을 필압의 흔적이 있었다.

'...상기 가문의 명예와 자산은 왕실에 압수됨.'

카를라는 문서를 집어던졌다. 종이가 침대 위에 흩어졌다. 자신은 신부가 아니었다. 담보였다. 아버지의 빚을 갚기 위한 살아 있는 담보. 그리고 레오닐은 그것을 알고도 제단에서 자신을 버렸다.

---

저택의 정원은 이른 오후의 햇빛에 반짝였다. 카를라는 흰 레이스 드레스를 차려입고 조각상 옆에 서 있었다. 레오닐이 올 것을 알았다. 항상 이 시간에 말을 타고 정원을 지나갔다.

검은 말이 나타났다. 레오닐은 천천히 내려왔다. 그의 얼굴은 창백했다. 어젯밤을 꼬박 새웠을 것 같았다. 눈 아래 검은 그림자, 입가의 경직된 선. 죄책감과 두려움이 피부에 새겨져 있었다.

"카를라."

목소리가 떨렸다. 그는 카를라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마치 고통스러운 것처럼 보였다. 전 회귀에서도 그랬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이번에는 카를라가 알았다. 그가 무엇을 알고 있는지.

"공작님."

카를라는 우아하게 고개를 숙였다. 예의 바른 신부의 몸짓이었다. 하지만 눈빛은 날카로웠다.

레오닐이 한 발 더 다가왔다. 거리는 2미터 정도였다. 만질 수 없는 거리. 그가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두 번. 세 번.

"나는 너와 결혼할 수 없다."

차가운 말이었다. 마치 사형선고처럼. 하지만 그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카를라는 미소를 지었다. 춤을 추듯이 우아한 미소였다. 그리고 한 발 다가섰다.

"그 이유를 듣고 싶은데요, 공작님."

"이유는 없다."

"거짓이군요."

카를라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가시처럼 날카로워졌다. "당신의 눈, 당신의 손가락, 당신의 숨소리가 모두 다른 말을 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나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다른 이유로 나를 버리려고 하는 거죠."

레오닐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마치 그가 방금 죽은 것처럼. 그 창백함 속에서 무언가가 깨져나가는 것이 보였다. 카를라는 그 순간을 포착했다. 망설임. 고뇌. 거의 항복에 가까운 표정.

"당신의 가문이 문제인가요? 루시앙 백작가의 정치적 압력? 아니면 왕실?"

각 단어마다 카를라는 한 발씩 더 다가섰다. 레오닐은 물러나지 않았다. 그저 눈을 감았다.

"내가 당신을 구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레오닐의 눈이 떨어졌다. 그 눈빛 속에는 사랑과 절망이 섞여 있었다. 정말로.

"구한다는 것이 무슨 뜻입니까?"

카를라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그녀는 레오닐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당신이 루시앙 백작과 맺은 혼인 계약. 내가 담보라는 것을 당신은 알고 있었어요. 그렇다면 당신이 나를 버린 이유도 명확합니다. 루시앙이 당신을 압박했거나, 아니면 당신이 스스로 그 압박을 받아들였거나."

레오닐의 몸이 경직되었다.

"어느 쪽입니까?"

"카를라, 나는..."

"어느 쪽입니까?"

카를라의 목소리가 얼음처럼 차가워졌다. 레오닐은 입을 다물었다. 그 침묵 자체가 대답이었다.

손가락이 차가워졌다.

17 → 16 → 15...

카를라의 심장이 철렁거렸다. 감정이 수명을 깎아먹고 있었다. 사랑은 죽음이었다.

카를라는 손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분노를 다시 불태웠다. 차라리 그 쪽이 편했다. 분노는 거짓이 아니었다.

"당신이 나를 버린 이유는 결국 약함이군요. 루시앙의 압박에 못 이긴 약함."

카를라는 돌아섰다. 드레스의 자락이 우아하게 휘날렸다. 그리고 정원의 분수 쪽으로 걸어갔다. 레오닐이 뒤에서 손을 뻗었다. 거의 잡을 듯이.

"카를라, 나는..."

"공작님은 내일 아멜리아 양과 결혼하실 거죠."

카를라는 걷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러니 지금 이런 말씀은 하지 마십시오. 창피합니다."

그의 침묵이 등 뒤에서 떨어졌다. 무거운 침묵. 항복의 침묵.

---

사교계의 파티는 루시앙 백작가의 저택에서 열렸다. 내일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한 전야제였다. 샹들리에가 천장에서 수백 개의 빛을 흩어냈고, 귀족 부인들의 목걸이는 그 빛을 다시 반사시켰다.

카를라는 모서리에 서 있었다. 회색 실크 드레스를 입고,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서. 여기 온 사람들 대부분은 어제 제단에서 그녀가 버림받은 것을 목격했다. 그리고 오늘 그녀가 여기 있다는 사실을 신기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정말 대담하네."

"벨리앙 가문의 딸이라고 해서 특별한 줄 알았는데, 이 정도면..."

"아이고, 들어봤어? 루시앙 백작가의 딸이 사실은 입양아래. 그 여자의 진짜 정체를 아는 사람이 있을까?"

카를라의 귀가 곤두섰다. 마지막 말. 입양아. 그것은 아멜리아에 대한 새로운 정보였다. 카를라는 천천히 돌아섰다. 말하고 있는 두 귀족 부인의 얼굴을 기억했다. 나중에 필요할 것 같았다.

그 순간, 흰 드레스의 그림자가 카를라의 시야를 가로막았다. 아멜리아였다. 그녀는 카를라를 보자 미소를 지었다. 완벽한 미소. 진주 같은 이빨이 드러났다.

"어머, 카를라 양. 여기 있으셨군요."

목소리는 꿀처럼 부드러웠다. 하지만 그 아래에는 독이 있었다. 카를라는 이제 알았다. 아멜리아는 신부 후보가 아니었다. 플레이어였다. 카를라와 같은 수준의 플레이어.

"안녕하세요, 루시앙 양."

"내일은 정말 큰 날이 되겠네요. 공작님과의 결혼. 축하해 주시지 않으실 건가요?"

카를라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같은 종류의 미소. 독을 독으로 마주하는 것처럼.

"축하합니다."

"감사해요. 하지만 정말 미안한 건..." 아멜리아가 한 발 다가섰다. 가까워진 거리에서 속삭였다. "당신을 버린 남자를 위해 당신의 인생을 낭비하지 말았으면 좋겠네요. 너무 슬프잖아요."

표면적으로는 동정이었다. 정말 그렇게 들렸다. 하지만 카를라의 눈이 아멜리아를 뚫어지게 바라보자, 아멜리아의 미소가 더 선명해졌다. 순수한 악의였다. 그리고 그것은 카를라를 향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우월함을 증명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카를라도 속삭였다. "하지만 당신은 아직 모르는 것 같은데요. 당신이 누구인지를."

아멜리아의 눈빛이 흔들렸다. 처음으로. 그 순간의 동요는 매우 짧았지만, 카를라는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아멜리아도 불확실했다. 아멜리아도 모든 것을 통제할 수는 없었다.

"무슨 말씀을..."

"입양아라는 것 말입니다."

카를라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선명했다. "루시앙 백작가의 진정한 딸이 아니라, 고아원에서 주워온 딸이라는 것. 당신의 혈통, 당신의 정체성, 모든 것이 거짓이라는 것을."

아멜리아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 창백함은 연기가 아니었다. 진정한 공포였다.

"당신이 내일 공작부인이 되더라도, 이 비밀은 언제든 터질 수 있습니다. 사교계는 그런 것들을 매우 좋아하거든요."

카를라는 아멜리아를 지나쳤다. 우아하게. 마치 그녀는 공기보다 가벼운 존재인 것처럼.

파티의 음악이 더 빨라졌다. 샹들리에의 빛이 더 강해졌다. 그리고 카를라는 아멜리아를 뒤에 남겨두었다. 그녀의 공포와 함께.

---

파티장을 빠져나온 카를라는 복도의 어둠 속에서 숨을 고르고 있었다. 손가락이 떨렸다.

15 → 14 → 13...

분노와 두려움. 감정의 소모가 심했다. 카를라는 벽에 손을 짚었다.

"당신의 표정이 아주 재미있네요."

카를라의 몸이 경직되었다.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 레오닐이었다.

돌아서니 그는 저녁 정장에 몸을 감싼 채 파티장의 샹들리에 빛을 등에 두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어둠에 싸여 있었다.

"뭔가를 감추려는 얼굴이었어요. 마치 자신이 뭔가 중대한 것을 해낸 사람처럼."

카를라는 말하지 않았다. 호흡을 가다듬고 그를 바라봤다.

"아멜리아와 무슨 말을 나누셨나요?"

"친절한 인사를 나눴을 뿐입니다."

레오닐이 한 발 다가섰다. 복도의 촛불이 그의 얼굴을 희미하게 비추기 시작했다. 카를라는 그 얼굴을 본 순간, 무언가가 틀어졌음을 느꼈다.

그의 눈이 절박했다.

"카를라."

그가 자신의 이름을 불렀다. 제단에서도, 정원에서도 그는 자신을 마주하지 않았다. 그저 거리를 두고, 차갑게 등을 돌렸을 뿐이었다.

레오닐이 한 발 더 다가섰다. 그의 손가락이 떨렸다. 마치 무언가를 잡으려다 놓친 사람처럼. 그의 숨소리가 가빠졌다.

"만약 내가 당신을 다시 선택할 수 있다면..."

그의 목소리는 부서질 듯했다.

"당신은 나를 용서할 수 있을까요?"

카를라의 입술이 경직되었다. 이 질문은 예상 밖이었다. 그의 얼굴에 흐르는 것은 절망이었다. 진정한 절망. 연기가 아닌 것 같았다.

그러나 카를라는 자신을 보호해야 했다. 진실을 알고 싶지 않은 자신을 지켜야 했다. 그 진실이 자신을 무너뜨릴까봐.

"알 수 없습니다."

카를라가 대답했다. 목소리가 차갑게 떨어졌다.

"당신이 나를 선택하지 않았으니까요."

"내가 할 수 없었던 이유를..."

카를라는 그의 말을 끊었다.

"알고 싶지 않습니다."

카를라는 그를 지나쳤다. 그의 팔이 뻗어져 자신을 잡으려는 것을 느꼈지만, 그녀는 그를 피했다. 손가락도 닿지 않게.

복도를 벗어나면서 카를라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뒤돌아본다면, 자신이 무너질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

저택의 도서관에 도착했을 때, 카를라의 마음은 여전히 정렬되지 않고 있었다. 아멜리아의 동요했던 얼굴, 레오닐의 절박한 목소리. 그것들이 자꾸만 떠올랐다. 알면 자신이 흔들릴 것 같았다.

카를라는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달빛 아래 서 있었다. 증거가 필요했다. 증거 없는 말은 루머일 뿐이었다.

카를라는 책장을 훑어내렸다. 루시앙 백작가의 역사, 가족 계보, 사교계 기록들. 어디선가 단서가 있을 것이었다.

밤이 깊어갈 때쯤, 카를라의 손에는 낡은 신문 기사가 들려 있었다. 10년 전 것이었다. 헤드라인은 다음과 같았다.

'루시앙 백작가, 고아원에서 딸을 입양받다. 마르쿠스 백작 "가문의 사랑과 책임을 증명하는 선행"'

기사의 날짜 옆에는 작은 사진이 있었다. 어린 아멜리아의 모습. 그녀의 눈빛은 이미 계산적이었다. 심지어 그때도.

카를라의 가슴이 철렁했다. 입양아라는 것은 단순한 비밀이 아니었다. 그것은 아멜리아의 정체성 자체가 거짓이라는 뜻이었다. 귀족 혈통, 명문 가문의 자녀로서의 모든 것이.

카를라는 신문을 들었다 놨다를 반복했다. 이것은 폭탄이었다. 이것으로 아멜리아를 무너뜨릴 수 있었다. 결혼식을 중단시킬 수 있었다. 그러면 레오닐도...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카를라는 신문을 재빨리 넣고 일어섰다. 문이 열렸다. 이사벨이었다.

"밤중에 뭐 하고 계세요?"

이사벨의 목소리는 여전히 단호했다. 하지만 그 속에는 깊은 걱정이 묻어났다.

"역사를 배우고 있었습니다."

"역사요?"

카를라가 이사벨을 마주봤다. 그 노인의 눈은 깊었다. 마치 카를라가 무엇을 하는지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당신의 어머니도 그렇게 시작했어요. 작은 진실을 찾으려다, 더 큰 진실에 빠져들었지요.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을 잃었습니다."

카를라의 입술이 경직되었다.

"당신이 지금 하는 일이 그 길이 아니길 바랍니다. 당신이 복수로 인생을 끝내고 싶지 않다면 말이에요."

이사벨이 카를라의 손을 잡았다. 그 손은 따뜻했다. 그리고 매우 강했다.

"진실을 파헤치는 것과 파멸시키는 것은 다릅니다. 당신은 어느 쪽을 원하세요?"

카를라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수 없었다. 이사벨의 말이 정확했기 때문이었다. 자신도 모르고 있었다. 자신이 정말로 무엇을 원하는지.

이사벨이 카를라의 손에서 손을 놓았다.

"당신의 어머니는 자신을 저버린 남자를 파멸시키지 않았어요. 대신 자신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것이 진정한 복수였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나가갔다. 도서관의 문을 조용히 닫으며.

카를라는 남겨진 어둠 속에서 혼자 섰다. 손가락이 차가워졌다.

13 → 12 → 11...

불안이 수명을 깎아먹고 있었다. 신문 기사는 여전히 주머니 속에 있었다. 아멜리아의 비밀. 그것을 폭로하면 모든 것이 끝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사벨의 말이 자꾸만 떠올랐다. 진정한 복수란 무엇인가. 파멸인가, 아니면 삶인가.

카를라는 창문을 통해 밤하늘을 바라봤다. 새벽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몇 시간 뒤, 아멜리아는 공작부인이 될 것이었다. 그리고 카를라는...

손가락의 반지를 들었다.

11 → 10 → 9...

시간이 도망치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도 도망치고 있는 것 같았다. 뭔가로부터. 자신의 욕망으로부터. 자신의 약함으로부터.

카를라는 신문을 꺼냈다. 다시 한 번 읽었다. 아멜리아의 사진을 봤다. 그 계산적인 눈빛을 봤다.

결혼식 직전. 신문을 사교계에 흘릴 것이다. 증거로. 그렇게 되면 아멜리아는 공작부인이 될 수 없을 것이고, 레오닐도...

손가락이 다시 차가워지기 시작했다.

9 → 8 → 7...

카를라의 호흡이 가빠졌다. 선택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신문을 들고 나가는 순간, 모든 것이 끝날 것이었다. 아멜리아의 파멸. 레오닐의 후회. 그리고 자신의...

도서관의 문이 다시 열렸다. 이사벨이 돌아왔다. 그녀의 얼굴은 심각했다.

"당신의 어머니가 마지막으로 한 말을 아세요?"

카를라는 대답하지 않았다.

"'내가 그를 파멸시킨 날, 나도 함께 죽었다'고요."

이사벨의 눈이 카를라를 관통했다.

"당신이 그 신문을 들고 나간다면, 당신의 어머니와 같은 길을 가게 될 겁니다. 그리고 당신에게는 18개월밖에 남지 않았어요."

카를라의 손이 떨렸다. 신문을 쥔 손이.

"당신은 어느 쪽을 선택하시겠어요? 복수인가, 아니면 삶인가?"

이사벨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그저 카를라를 바라봤다. 깊은 동정과 깊은 기대를 담아.

카를라의 손가락이 계속 차가워지고 있었다. 7 → 6 → 5...

신문이 손에서 미끄러지고 있었다. 바닥에 떨어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직 떨어지지는 않았지만, 떨어질 것 같았다.

그리고 카를라는 결정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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