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성당의 제단 위에서
대성당의 제단 위에서 카를라는 죽어가고 있었다.
신랑이 나타나지 않았다. 수천 명의 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제단 위의 신부는 버려진 신부가 되었다. 장미향과 향초의 냄새가 목을 조이는 듯했다. 성직자의 목소리는 점점 희미해졌고, 카를라의 귀에는 오직 자신의 심장이 터질 듯 고동치는 소리만 들렸다.
누군가가 소곤거렸다. 웃음소리도 섞여 있었다.
제단 아래, 벨리앙 가문의 어머니 엘리아는 창백한 얼굴로 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표정에는 놀라움이 아닌 다른 것이 있었다. 마치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한, 그리고 그것이 현실이 되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는 듯한 절망.
카를라는 그 순간을 잊을 수 없었다. 어머니의 눈빛이 자신의 눈빛과 만났을 때, 카를라는 이해했다. 엘리아도 한 번은 제단 위에 있었을 것이다. 엘리아도 한 번은 이 절망을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생각은 오래가지 않았다. 카를라의 몸이 무너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신체는 서늘해졌다. 숨이 나오지 않았다. 시야가 검어졌다.
죽음이 다가왔다.
그 순간, 손가락에 차고 있던 반지에서 빛이 터져 나왔다.
금색의 빛이었다. 신성한 빛이 아니라, 냉정한 기계음처럼 들리는 빛. 카를라의 의식은 그 빛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
눈을 떴다.
천장이 보였다. 자신의 침실 천장. 카를라는 숨을 크게 내쉬었다. 가슴이 철렁했다. 몸이 차가웠다. 손가락에서 차디찬 감각이 느껴졌다.
반지.
카를라는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렸다. 손가락에 감긴 것은 낡은 금색 반지였다. 불규칙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고, 중앙의 보석은 어두운 자주색이었다. 카를라는 그것을 본 적이 없었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르는 반지가 자신의 손가락을 감싸고 있었다.
그리고 모든 기억이 생생했다.
제단 위의 광경. 신랑의 부재. 귀족들의 소곤거림. 어머니의 절망한 얼굴. 그리고 죽음. 모든 것이 마치 어제의 일처럼 명확했다.
카를라는 일어나 앉았다. 몸은 여전히 힘이 없었지만, 정신은 각성되어 있었다. 침실의 창을 통해 보이는 것은 아침 햇살이었다. 그 날 아침이었다. 결혼식 전날 밤이 아니라, 결혼식을 하는 그 날 아침.
회귀했다. 죽음에서 돌아왔다.
카를라는 손에서 반지를 벗으려 했다. 하지만 반지는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자신의 몸의 일부인 듯, 단단히 박혀 있었다. 다시 시도했을 때, 반지에서 다시 한 번 미약한 빛이 흘렀다.
그 순간, 정보가 머릿속으로 밀려 들어왔다.
—18번. 18번까지 회귀할 수 있다. —매번 회귀할 때마다 수명이 1개월씩 단축된다. —다른 사람들은 회귀를 알지 못한다. —반지는 절대로 미래로 나아갈 수 없다.
카를라는 그 정보를 받아들였다. 의심하지 않았다. 자신은 죽었고, 돌아왔기 때문이다. 그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었다.
카를라는 반지를 바라봤다. 누군가의 의지가 이 정보를 전달했다. 반지 자체인지, 아니면 반지 너머의 다른 존재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이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이 기회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였다.
18번.
카를라의 입가에 미세한 미소가 떠올랐다. 18번의 기회. 18번 동안 자신을 버린 레오닐의 행동을 추적할 수 있다. 18번 동안 그의 새 신부가 될 여자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다. 18번 동안 완벽한 전략을 구성할 수 있다.
18개월의 남은 인생이라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어차피 제단에서 버려진 자신에게 남은 인생이란 무엇인가. 사회적 죽음은 이미 확정되었다. 이제 남은 것은 그들을 따라 무너지게 만드는 것뿐이었다.
카를라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거울 앞에 섰다.
거울 속의 자신은 창백했다. 하지만 눈은 살아있었다. 그 눈 속에는 불이 타오르고 있었다. 복수의 불.
"이번엔 다르게 끝낼 것이다."
카를라는 자신에게 중얼거렸다. 목소리는 차갑고 명확했다.
거울 속에서 자신의 얼굴을 정리하며, 카를라는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먼저 확인해야 할 것들이 있었다. 레오닐이 왜 자신을 버렸는지. 그 여자—아멜리아가 정확히 누구인지. 루시앙 백작가와의 연결고리가 무엇인지. 그리고 벨리앙 가문에 무엇이 숨어 있는지.
"아멜리아 루시앙..."
카를라가 중얼거렸다. 그 이름을 혀 위에 올렸을 때, 침실의 문이 갑자기 열렸다.
하인이 급하게 들어왔다. 얼굴이 발갛고 호흡이 가빴다.
"신부님! 죄송합니다만, 공작님께서 신부님을 뵙고 싶다고 하십니다. 지금 바로."
카를라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본다. 눈 속의 불은 여전히 타오르고 있었다. 하지만 표정은 우아하게 정돈되었다. 귀족 신부의 표정으로.
"말씀하기를, 지금은 준비 중이라고 하세요. 신랑이 신부를 보기 전에 준비를 끝내야 한다고."
하인이 물러났다. 카를라는 다시 거울을 마주했다.
레오닐이 자신을 보고 싶어 한다. 첫 번째 회귀에서는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첫 번째 삶에서 레오닐은 나타나지 않았다. 신랑이 없었고, 신부만 제단 위에서 버려졌다.
하지만 이제 모든 것이 다를 것이다.
카를라는 거울에서 눈을 돌렸다. 침실의 한쪽 벽에 붙어 있는 초상화를 바라봤다. 자신의 아버지 벨리앙 공작의 초상화였다. 초상화 속의 얼굴은 자랑스러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카를라는 그 얼굴 뒤에 무엇이 숨어 있는지 궁금했다.
첫 번째 삶에서는 알 수 없었던 것들. 두 번째 삶에서는 반드시 알아내야 할 것들.
카를라는 손가락의 반지를 다시 한 번 바라봤다. 자주색 보석이 햇살에 반짝였다. 그것은 마치 자신의 결심이 구체화된 것 같았다.
첫 번째 회귀는 끝났다. 이제 두 번째 삶이 시작되고 있었다.
카를라는 드레스를 입기 위해 옷장으로 향했다. 결혼식 드레스가 아닌, 일상의 드레스. 레오닐을 만나기 위한 드레스. 그 남자의 눈을 마주하기 위한 드레스.
결혼식은 여전히 몇 시간 남아 있었다. 충분히 많은 시간이었다.
***
침실을 나선 카를라는 거실로 내려갔다. 어머니 엘리아가 창가에 서 있었다. 햇살이 그녀의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엘리아의 얼굴은 창백했다. 마치 밤새 잠을 자지 못한 것처럼. 아니, 마치 평생을 잠 못 이루고 살아온 것처럼.
"어머니."
카를라가 인사했다. 목소리는 자연스러웠다. 평소처럼.
엘리아가 돌아섰다. 딸을 보는 그 순간, 어머니의 눈빛이 흔들렸다. 마치 딸의 얼굴을 보면서 자신의 어린 날을 마주하는 것처럼.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를 깨닫는 것처럼.
"카를라. 넌..."
엘리아가 입을 열었다. 하지만 말을 잇지 못했다. 무엇을 말해야 할지 모르는 것 같았다.
카를라는 어머니에게 다가갔다. 엘리아의 표정을 자세히 관찰했다. 불안함. 두려움. 그리고 무언가 더 깊은 것—죄책감.
"어머니는 아셨나요?"
카를라가 물었다.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질문은 날카로웠다.
엘리아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무엇을?"
"레오닐이 저를 버릴 것이라는 사실을요."
엘리아는 답하지 않았다. 그 침묵 자체가 답이었다.
카를라는 어머니의 손을 잡았다. 엘리아의 손은 차갑고 떨리고 있었다. 손가락이 경련하듯 움직였고, 손등의 맥박이 불규칙하게 뛰었다.
"어머니도 한 번은 제단 위에 있었죠?"
"카를라, 그건..."
엘리아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그렇다면 어머니는 왜 저를 그곳으로 보냈습니까?"
카를라의 질문이 떨어지자, 엘리아의 눈에서 눈물이 맺혔다. 그녀는 딸의 손을 놓고 몸을 돌렸다. 창밖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어깨가 가늘게 떨렸다.
"때로는... 피할 수 없는 일도 있다."
엘리아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았다.
"그것이 설명입니까?"
카를라는 어머니의 옆얼굴을 바라봤다. 그 얼굴에 새겨진 주름들. 시간이 아니라 절망이 만든 주름들.
"어머니, 저는 알고 싶습니다. 레오닐이 왜 저를 버렸는지. 그리고 어머니가 왜 그것을 알고 있었는지."
엘리아는 여전히 답하지 않았다. 창밖의 정원을 바라보기만 했다. 붉은 장미들이 햇살 아래 피어 있었다. 아름답고 동시에 가시로 무장한 꽃들.
엘리아의 침묵은 깊어졌다. 카를라는 그 침묵 속에서 어머니가 무언가를 알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말할 수 없는 것이 있었다. 또는 말하면 안 되는 것이 있었다.
"오늘 날씨가 좋네요. 결혼식에는 완벽한 날씨입니다."
카를라가 말했다. 어머니의 비밀을 추궁하는 것은 아직 때가 아니었다. 지금은 정보를 수집할 때였다.
"네, 그렇군요."
엘리아가 조용히 대답했다.
모녀는 나란히 서서 그 정원을 바라봤다. 하지만 같은 것을 보면서도 다른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딸의 절망을 염려하고 있었고, 딸은 어머니의 침묵 속에 숨겨진 비밀을 캐내려 하고 있었다.
카를라의 손가락에 찬 반지는 여전히 햇살에 반짝였다.
***
레오닐을 만난 것은 결혼식 두 시간 전이었다.
카를라는 신부실에서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시녀들이 그녀의 머리를 정리하고 있었다. 높게 솟아오른 머리에 진주 장식을 박고 있었다. 각각의 움직임이 정확했고, 우아했고, 차갑게 계산된 것처럼 보였다.
"공작님이 신부님을 뵙고 싶다고 하십니다."
시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카를라는 거울을 통해 자신의 얼굴을 봤다. 완벽했다. 신부로서 완벽했다. 아무도 그 얼굴 뒤의 의도를 알 수 없을 것이다.
"들여보내세요."
카를라가 대답했다.
레오닐이 들어왔다. 그의 얼굴은 카를라가 기억하는 그 얼굴이었다. 아름답고 냉정한 얼굴. 그리고 그 얼굴에는 무언가 결여되어 있었다. 무언가 진심 어린 것이.
"카를라."
레오닐이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그 목소리에는 미안함이 없었다. 단지 의무감만 있었다.
카를라는 천천히 돌아섰다. 드레스의 자락이 바닥을 쓸었다. 그녀의 눈은 그의 눈을 마주했다.
"공작님이 신부를 뵙다니, 이는 관례를 어기는 것 아닙니까?"
카를라의 목소리는 차갑고 정중했다. 신부의 목소리라기보다는, 귀족 여성의 목소리였다. 누군가를 판단하는 목소리.
레오닐의 얼굴이 일순 흔들렸다. 마치 그 목소리에서 무언가 낯선 것을 감지한 것처럼.
"나는... 일이 있었다."
레오닐이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어색했다. 문장의 끝이 불완전하게 흐릿해졌다. 마치 혀가 거부하는 것처럼.
카를라는 그를 바라봤다. 그의 얼굴, 그의 눈, 그의 입술의 움직임까지 모두. 첫 번째 삶에서는 절망 속에서 보지 못했던 것들을 이제는 명확히 보고 있었다. 그의 목소리가 떨리는 방식. 말을 완성하지 못하는 리듬. 무언가 감추고 있다는 신호들.
그는 거짓을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의도적인 거짓이었다.
카를라의 맥박이 빨라졌다. 하지만 호흡은 의도적으로 조절했다. 이 순간을 낭비할 수 없었다.
"그렇군요. 공작님께서 할 일이 있으셨다니, 다행입니다."
카를라가 미소 지었다. 그 미소는 마치 얼음처럼 차가웠다.
"나는 네게..."
레오닐이 입을 열었다. 하지만 다시 닫았다. 말할 수 없는 것이 있었다. 또는 말하면 안 되는 것이 있었다.
카를라는 한 발 더 가까워졌다.
"제단에서 뵙겠습니다. 공작님."
카를라가 말했다. 그리고 다시 거울로 돌아섰다. 시녀들이 다시 그녀의 머리를 손질하기 시작했다. 레오닐은 여전히 그곳에 서 있었다. 움직이지 않고, 말하지 않고, 단지 서 있었다.
몇 초가 지났다. 아니, 영원처럼 느껴지는 몇 초가 지났다.
그리고 레오닐은 침묵 속에서 나갔다.
카를라는 거울에서 자신의 얼굴을 봤다. 완벽한 미소가 그곳에 있었다. 하지만 눈은 다르게 말하고 있었다. 그 눈 속에는 여전히 불이 타오르고 있었다. 복수의 불. 하지만 이제 그것은 더욱 냉정해졌다. 더욱 명확해졌다.
첫 번째 회귀에서 카를라는 절망으로 죽었다.
두 번째 삶에서 카를라는 결심으로 제단에 올랐다.
그리고 그 제단에서 일어날 일들을 바꾸기 위해, 카를라는 자신이 모르는 모든 것을 알아야 했다.
레오닐이 왜 자신을 버렸는지.
그 여자—아멜리아가 누구인지.
그리고 벨리앙 가문에 무엇이 숨어 있는지.
18번의 기회는 충분했다. 아니, 충분하지 않았다. 충분하지 않지만, 반드시 이루어야 할 것이었다.
카를라는 손가락의 반지를 다시 한 번 바라봤다. 자주색 보석이 여전히 반짝였다. 그것은 이제 자신의 무기였다. 자신의 칼이었다. 자신의 진실이었다.
결혼식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
레오닐이 나간 뒤, 카를라는 거울 앞에서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자신을 정리했다. 시녀들의 손가락이 진주 장식을 다시 한 번 조정했고, 드레스의 주름을 펴냈다. 카를라는 그들의 움직임을 허락했다. 완벽함은 무기였고, 무기는 날카로워야 했다.
거울 속 얼굴은 여전히 신부였다. 하지만 그 신부의 눈은 이미 다른 시간을 살고 있었다.
"신부님, 준비 시간입니다."
시녀장이 조심스레 속삭였다. 카를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어서며 드레스의 자락을 정리했다. 무게감 있는 화이트 실크가 그녀의 몸을 감쌌다. 벨리앙 가문의 문장이 수놓인 그 드레스는 누군가의 축복이 아니라, 이제 그녀의 갑옷이었다.
복도를 내려가며 카를라는 대성당 쪽에서 울려 퍼지는 종소리를 들었다. 낮고 우아한 음색. 제국의 심장에서 울리는 그 소리는 축제를 알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어떤 것의 끝을 알리는 것이었다.
"신부님."
복도의 끝에서 아버지가 기다리고 있었다. 벨리앙 공작 카일. 그의 얼굴은 긴장으로 경직되어 있었다. 아니, 그것은 긴장이 아니었다. 절박함이었다.
카를라는 그를 바라봤다. 처음으로 그의 얼굴을 제대로 보는 것 같았다. 주름이 많았다. 그 주름들은 시간이 아니라 무언가 다른 것으로 인해 생긴 것처럼 보였다. 공포. 또는 죄책감.
"가자."
카를라가 말했다. 아버지의 팔에 손을 얹었다. 그의 팔은 떨리고 있었다.
대성당으로 향하는 길은 길었다. 한 발, 한 발씩. 드레스의 자락이 돌바닥을 쓸었다. 카를라는 그 소리를 들었다. 첫 번째 삶에서도 같은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는 희망이 그 소리를 덮어냈었다. 이제는 다르다. 이제는 그 소리 아래의 모든 것이 명확하게 보인다.
대성당의 문이 열렸다.
수천 명의 귀족이 그녀를 바라봤다. 귀족 사회의 최고층. 그들의 눈빛은 호기심과 판단과 욕망으로 가득했다. 카를라는 그것을 느꼈다. 그들은 그녀를 보는 것이 아니라, 벨리앙 가문의 마지막 카드를 보고 있었다. 그 카드가 성공하는지 실패하는지에 따라 가문의 운명이 결정될 것이라고 모두가 알고 있었다.
제단으로 향하는 동안, 카를라는 얼굴들을 기억했다. 좌석에 앉은 사람들의 표정을 세밀하게 기록했다. 미소 뒤의 악의. 축하 뒤의 경멸. 모두가 그녀의 성공을 원하면서도, 동시에 그녀의 실패를 기대하고 있었다. 귀족 사회란 그런 곳이었다.
아버지가 그녀를 제단 위에 남겨두고 내려갔다.
카를라는 제단 위에 서 있었다. 혼자. 하얀 드레스를 입은 신부로서, 수천 명의 시선을 받으며.
음악이 울렸다. 신랑을 맞이하는 음악.
카를라는 복도 끝을 바라봤다. 레오닐이 나타나야 할 시간이었다. 검은 정장을 입은 신랑이 나타나 그녀의 손을 잡아야 할 시간이었다.
시간이 흘렀다.
1분. 2분.
음악이 계속 울렸다. 지휘자의 얼굴이 경직되었다.
5분.
대성당의 공기가 변했다. 호기심이 불안으로 바뀌었다. 귀족들의 시선이 흔들렸고, 속삭임이 시작되었다. 첫 번째는 호기심 섞인 목소리였다. 두 번째는 불안감이 묻어나는 수근거림이었다. 세 번째는 노골적인 경멸과 기대감이 뒤섞인 소문이었다.
카를라의 심장은 여전히 고요했다. 첫 번째 삶에서 이미 이 장면을 겪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번은 다르다. 이번은 그저 당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관찰하는 것이었다.
대성당의 문이 열렸다.
레오닐이 나타나지 않았다. 대신 벨리앙 가문의 서기관이 나타났다. 그의 얼굴은 창백했다. 공작님께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나온 것이 명확했다.
대성당을 가득 채운 속삭임이 파도처럼 일었다.
"공작님이 나타나시지 않으신다고?"
"무슨 일이 있는 건가?"
"벨리앙 가문이..."
카를라는 그 소리들을 들었다. 첫 번째 삶에서는 그것이 자신의 치욕을 알리는 소리였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이제 그것은 단지 정보였다.
레오닐이 자신을 버린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충동이 아니라, 어떤 계획된 결정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대성당에 나타나지 않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신부 대기실의 문이 열렸다.
레오닐의 어머니, 공작 부인이 들어왔다. 그녀의 얼굴은 암석처럼 딱딱했다.
"카를라."
그녀가 카를라의 손을 잡았다. 그 손은 차가웠다.
"공작님께서 이 결혼식을 진행하실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죄송합니다."
그 말 속에는 죄송함이 없었다. 단지 사실만 있었다.
카를라는 그 말을 들었다. 첫 번째 삶에서도 같은 말을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는 절망 속에서 정확히 무엇이 말해지고 있었는지 듣지 못했다.
이제 듣는다.
"왜입니까?"
카를라가 물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차갑고 명확했다.
공작 부인의 얼굴이 흔들렸다.
"그것은... 공작님께서 판단하신 일입니다."
"답이 아닙니다."
카를라가 말했다.
공작 부인은 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녀는 돌아갔다. 침묵 속에서, 죄책감 속에서.
카를라는 신부실에 남겨졌다.
대성당의 속삭임은 점점 커졌다. 신부는 버림받았다. 벨리앙 가문은 무너졌다. 이것은 단순한 연애 스캔들이 아니었다. 이것은 가문의 멸망을 알리는 신호였다.
카를라는 그것을 느꼈다. 한 순간에 자신의 가치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신부에서 버림받은 여인으로. 축복받은 여성에서 결함 있는 상품으로.
그리고 그 감정이 그녀를 짓누르기 시작했다. 가슴 깊숙한 곳에서 뭔가 터져 나올 듯한 감각. 눈앞이 흐릿해지는 느낌. 하지만 카를라는 그것을 밀어냈다. 지금은 무너질 때가 아니었다.
제단 위에서 내려가는 길은 길었다. 수천 명의 눈이 그녀를 따랐다. 그 눈빛 속에는 동정이 있었다. 그리고 그 동정이 카를라를 가장 깊이 상처 입혔다. 증오보다 깊이.
벨리앙 가문의 저택으로 돌아간 카를라는 자신의 방에 들어갔다. 드레스를 벗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드레스가 찢어졌다. 그녀는 신경 쓰지 않았다.
거울 앞에 섰다.
자신의 얼굴을 봤다.
그리고 그 순간, 어머니의 얼굴이 겹쳐 보였다.
어머니도 한 번은 이렇게 서 있었을 것이다. 거울 앞에서, 버림받은 신부로서. 아니, 그보다 더 오래전부터. 어머니도 이렇게 계산되고 버려지는 인생을 살았을 것이다.
카를라는 그 생각을 밀어냈다. 자신은 어머니가 아니었다. 자신은 다르게 끝낼 것이었다.
반지를 바라봤다.
자주색 보석이 여전히 빛나고 있었다.
18번.
18번의 기회가 있다.
카를라는 손을 깥쪽으로 펼쳤다. 반지에 빛이 모였다. 그리고 그 빛이 점점 커졌다.
마지막 순간, 카를라의 손가락이 저렸다. 숨이 얕아졌다. 가슴 깊숙한 곳에서 무언가 터져 나올 듯한 감각이 밀려왔다. 그것이 깨달음이었는지, 공포였는지, 아니면 결의였는지 구분할 수 없었다.
침대에 깨어났을 때, 태양이 창문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아침이었다. 그 아침. 결혼식 당일의 아침.
카를라는 일어났다. 손가락에 반지가 여전히 있었다. 모든 것이 꿈이 아니었다는 증거였다.
거울로 갔다.
자신의 얼굴을 봤다.
완벽한 신부의 얼굴이었다. 하지만 그 눈 뒤에는 이제 전혀 다른 것이 타오르고 있었다.
진실을 알고 싶은 욕망.
아멜리아 루시앙이 누구인지 알아야 한다는 집념.
레오닐이 왜 자신을 버렸는지 파악해야 한다는 필연성.
카를라는 입술을 깨물었다. 피가 맺혔다. 그 맛은 쇠 같았다.
거울에서 물러나며, 카를라는 중얼거렸다.
"아멜리아 루시앙... 그 여자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바로 그 순간, 침실의 문이 급하게 열렸다.
시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신부님, 죄송합니다. 공작님께서 신부님을 뵙고 싶다고 하십니다."
카를라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봤다. 미소가 그곳에 있었다. 완벽한 미소. 하지만 그 미소 뒤에 숨겨진 것은 첫 번째 삶의 절망과는 완전히 다른 무언가였다.
반지의 차가운 온도가 손가락을 타고 흘렀다. 드레스의 주름을 정렬하는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렸다. 거울 속 눈동자가 한 번 깜빡였다.
"들여보내세요."
카를라가 대답했다.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신부의 목소리였다. 하지만 그 부드러움 아래는 강철이 숨어 있었다.
레오닐이 들어왔을 때, 카를라는 이미 모든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첫 번째 삶에서는 그저 당하기만 했던 모든 순간들을 이제는 주도하기로.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필요한 모든 정보를 수집하기로.
18번의 회귀.
매번 한 달씩 단축되는 수명.
하지만 그것은 충분했다.
충분하지 않을지라도, 반드시 이루어야 할 것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카를라는 레오닐을 바라봤다. 그의 얼굴, 그의 눈, 그의 모든 움직임을. 그리고 그 순간, 그녀는 깨달았다.
첫 번째 삶에서는 보지 못했던 것들이 이제 명확하게 보인다는 것을.
레오닐의 눈 속에 있는 죄책감.
그의 입술이 떨리는 방식.
그의 손가락이 주머니 안에서 움직이는 리듬.
모두가 거짓을 말하고 있다는 신호였다.
"공작님."
카를라가 말했다. 목소리는 여전히 부드러웠다. 하지만 이제 그 부드러움은 무기였다.
"제단에서 뵙겠습니다."
그 말과 동시에, 카를라는 레오닐의 얼굴이 어떻게 변하는지 정확히 관찰했다. 죄책감이 더 깊어졌다. 그것은 그녀가 원하는 정보였다. 그녀가 필요로 하는 증거였다.
레오닐이 나간 뒤, 카를라는 거울 앞으로 돌아갔다.
자신의 얼굴을 봤다.
그리고 중얼거렸다.
"아멜리아 루시앙... 누구냐, 넌?"
그 질문이 카를라의 18번 여정의 시작이었다.
첫 번째 죽음에서 깨어난 여인이 이제 시작하는 것은 복수가 아니었다.
아직은.
아직은 단지 진실을 향한 갈증이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 갈증이 얼마나 깊고, 얼마나 위험한 것이 될 것인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