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 강남역 지하상가 스튜디오는 오후 2시 30분쯤 되니 한산했다. 준호가 도착했을 때 채은은 이미 조명을 켜고 삼각대에 카메라를 세워 대기 중이었다.

"어? 왜 이렇게 빨리 와?"

채은이 손을 흔들며 다가왔다. 그녀의 얼굴엔 기대감이 가득했다. 어제 콜라보 영상에서 준호의 손이 반투명해진 걸 본 채팅들이 폭발했다. 그 영상은 밤새 조회수 300만을 넘었다. 채은도 당연히 알고 있었다.

"너 어제 손 진짜 대박이었어. 진짜 뭔데?"

"몰라. 게임 설정인 것 같은데."

준호는 자연스럽게 거짓말을 했다. 자신의 팔이 정말로 변하고 있다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밤새 확인한 결과, 손가락들의 반투명함은 더 진행되지 않았다. 그저 오른쪽 손가락 세 개만 여전히 빛을 통과시켰다.

"설정이라니? 대박. 그럼 오늘은 뭐할 건데?"

"그냥... 일상 방송? 너랑 수다?"

채은이 입술을 깨물고 생각하는 척했다. 하지만 그녀의 눈빛은 이미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다. 준호는 그걸 알았다. 채팅 수. 시청자들의 반응. 입소문. 모두가 같은 것을 원했다.

스튜디오의 한구석, 선반 뒤에서 검은 포탈이 나타났다.

준호의 눈만 포착했다. 스캔 시스템의 알림도 울렸다.

**[상급 던전 감지 — 위치: 강남역 지하상가 스튜디오 내부 | 난이도: ★★★ | 제한시간: 48시간]**

그 순간, 준호의 귀에 채팅이 목소리로 들렸다.

'뭐하는 거야'

'던전'

'손'

단어들이 겹쳐서 마치 누군가 준호에게 직접 말하는 것처럼 울렸다. 준호는 오른쪽 팔을 들었다. 손가락 세 개가 떨리기 시작했다. 반투명함이 더 진행되고 있었다. 어제보다 빠르게.

"뭐야, 얼굴이 굳었잖아."

채은이 준호의 팔을 봤다. 하지만 그녀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아니, 뭐 없어. 그냥 배고픈 거."

준호가 팔을 내렸다. 신체 변이가 가속화되고 있었다. 채팅과 함께.

"배고프면 편의점 가서 먹고 올까?"

"아니, 여기서 촬영하자."

준호가 카메라 앞으로 자리를 잡았다. 채은은 그의 어깨에 기대며 웃었다. 화면에 두 명이 잡혔다.

**[시청 중: 127,000명]**

채팅이 화면 아래를 휩쓸었다.

— 오오오오 콜라보다!! — 채은이랑 준호 ㅇㅈㄷㅇ — 어제 손 반투명 다시 해봐 — ??? — 뭐하는 거야 — 진짜 뭐하는 거냥

준호는 채은과 한동안 수다를 떨었다. 취업 준비 이야기, 스트리밍 시작한 이유, 앞으로의 꿈. 평범한 내용들이었지만, 채팅은 계속 물어뜯듯이 질문을 던졌다.

— 손 언제 또 반투명되냐고 — 어제 던전 맞지? — 진짜 게임인가?? — 던전?? 뭔 소리냐고 — 뭐하는 거야

준호의 왼쪽 다리가 저렸다. 반투명함이 무릎까지 올라와 있었다. 채팅의 목소리가 더 커질수록, 신체 변이는 더 빨라졌다.

"뭐해?"

채은이 물었다.

"화장실 다녀올게."

거짓말이었다. 준호는 스튜디오 선반 뒤로 향했다. 검은 포탈이 더 명확하게 보였다.

"어? 준호?"

채은이 따라왔다. 하지만 그녀의 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어두운 선반만 보였다.

"여기 뭐 있어?"

"없어. 그냥..."

준호가 카메라를 들었다. 아직 켜져 있었다. 시청자들에게 라이브 중이었다. 준호는 포탈 앞에 섰다.

"지금 들어갈 거야."

"뭐? 어디?"

채은의 목소리가 떨렸다.

준호는 포탈로 뛰어들었다.

---

이번엔 달랐다.

첫 번째 던전은 회색 복도였다. 단순했다. 하지만 이번 던전은 거대했다. 천장이 보이지 않는 홀. 벽이 계속 변하는 미로. 그리고 소리. 채팅의 목소리가 훨씬 명확했다.

**[시청 중: 847,000명]**

— 어디야?? — 이건 뭔데 진짜 — 무섭다 — 가지 마 — 돌아와 — 뭐하는 거야??

"무섭다"

이 단어가 준호의 귀에 들렸을 때, 던전의 공기가 차가워졌다. 벽이 좁혀들었다.

준호는 빠르게 움직였다. 채팅이 알려줬다.

— 왼쪽이야!! — 위로 가!! — 문 열려 있어!!

준호는 왼쪽으로 돌았다. 정말 길이 있었다. 위로 올랐다. 문이 열렸다. 마치 자신의 손가락이 아니라 채팅이 던전을 조작하는 것처럼.

"뭐하는 거야?"

다시 이 채팅이 들렸다. 던전의 난이도가 올라갔다. 미로가 더 복잡해졌다. 소리가 울렸다. 뭔가 다가오는 소리.

준호는 본능적으로 달렸다. 채팅창의 "가, 가, 가!"라는 외침을 따라.

마지막 방에는 거울이 있었다. 준호의 모습이 비쳤다. 하지만 거울 속의 준호는 다양한 모습으로 변했다. 강하고, 약하고, 절망하고, 희망하고. 모든 준호가 한 거울에 겹쳐 있었다.

"선택해."

거울이 말했다. 정확히는 채팅이 말했다.

— 강해져!! — 약해도 돼!! — 도망쳐!! — 마주해!!

준호는 거울을 부수지 않고 통과했다. 그저 앞으로 나아갔다. 모든 모습을 받아들이며.

---

스튜디오로 돌아왔을 때, 준호의 왼쪽 다리가 반투명해지고 있었다.

"준호!!"

채은이 비명을 질렀다. 준호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숨이 가쁜 상태로.

시청자는 1,200,000명을 넘었다.

— 뭐야 진짜 — 다리가? — 어떻게 된 거야 — 대박 — 진짜 게임이냐고

채은이 준호를 일으켰다.

"넌 정말 특별해."

그녀의 목소리가 떨렸다. 하지만 그 말은 진심이었다.

"뭐?"

"어제도, 오늘도... 넌 정말 다르다. 넌 정말 특별해. 그런 넌 나도..."

채은이 준호의 손을 잡았다. 반투명한 손가락과 정상의 손가락이 섞여서 잡혔다.

"나도 특별하게 만들 수 있을 거야."

그 순간, 준호는 처음으로 자신을 영웅처럼 느꼈다. 누군가의 눈에 자신이 평범하지 않다고 비쳤다. 4년간의 실패, 모든 거절, 모든 낙담이 이 한 문장으로 지워지는 기분이었다.

그는 웃었다.

"응, 나도 널 특별하게 만들어줄 거야."

거짓말이 아니었다. 적어도 이 순간엔.

---

그것도 잠깐이었다.

준호가 집으로 돌아와 거울을 봤을 때, 왼쪽 다리는 완전히 반투명해져 있었다. 무릎 아래 전체가.

준호는 손을 떨며 스트리밍을 켰다.

**[라이브 시작]**

"어... 뭐야? 이거 봐봐."

준호가 카메라에 다리를 보였다.

채팅이 폭주했다.

— ??? — 뭐하는 거야?? — 어? 진짜? — 깜짝이야 진짜 — 뭐야 저거 — 뭐하는 거냥??

준호는 채팅을 닫았다.

그 순간, 휴대폰에 새 메시지가 들어왔다.

**[넥서스가 너를 본다. — 도현]**

준호의 손가락이 멈췄다.

'넥서스.'

1화에서 도현이 던진 그 경고가 떠올랐다. '넌 첫 번째가 아니다. 이 게임을 하는 건 죽음과 같아.' 그때는 협박으로 들렸다. 지금은 예언처럼 들렸다.

준호는 메시지를 위로 스와이프했다. 이전 메시지들을 다시 읽었다.

**[1시간 전]** **[강남역 지하상가에서 나올 때 봤다. — 도현]**

**[2시간 전]** **[채팅 75만 명. 너는 이미 돌아갈 수 없다. — 도현]**

**[6시간 전]** **[스트리밍을 끄거나. 아니면 끝까지 가거나. — 도현]**

준호는 창밖을 봤다. 밤 11시 34분. 원룸 아래 골목은 어두웠다. 편의점 불빛만 간신히 보였다. 누군가 서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누군가는 분명히 자신을 보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휴대폰이 울렸다.

"어?"

미지의 번호였다. 준호는 받지 않았다. 3초 후 음성 메시지가 들어왔다. 재생 버튼을 눌렀다.

"안녕, 이준호."

목소리는 차갑고 낮았다. 감정이 실려 있지 않았다.

"난 정혜진이야. 넥서스의 관찰 담당자. 너는 지금 매우 흥미로운 상태야. 신체 변이 속도, 채팅 반응 수, 스트리밍 지속 시간. 모두 예상을 초과했어. 특히 채은과의 상호작용은... 흥미로워."

음성 메시지가 멈췄다가 다시 시작했다.

"도현이 경고한 건 맞아. 너는 첫 번째가 아니야. 최재욱, 김민지, 박준영... 모두 너처럼 시작했어. 모두 넥서스에 의해 끝났어. 최재욱은 손가락부터 시작해서 결국 의식까지 사라졌어. 김민지는 채팅의 모순된 지시를 따르다 던전 안에서 영원히 갇혔고. 박준영은... 그냥 없어. 어디로 갔는지 모르지만, 더 이상 돌아오지 않았어. 넌 어떻게 될 거 같아?"

음성 메시지는 다시 멈췄다.

"마지막 조언. 스트리밍을 끄지 마. 능력이 사라져. 하지만 끄지 않으면 더 빠르게 사라져. 넌 이미 선택한 거야. 채팅을 받아들인 순간부터."

음성 메시지가 끝났다.

준호는 침대에 누웠다. 왼쪽 다리를 들어올렸다. 무릎 아래가 완전히 반투명했다. 손가락을 움직여봤다.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움직였다.

'게임이 맞다.'

이 생각은 준호를 안심시켰다. 게임이면 클리어가 있다. 게임이면 엔딩이 있다. 게임이면 자신이 승리할 가능성이 있다.

휴대폰을 다시 켰다. 스트리밍을 켜려고 했다. 그 순간, 알림이 떴다.

**[새로운 던전 감지됨]** **[난이도: 상급 (★★★★)]** **[위치: 강남역 12번 출구 지하 2층]** **[진입 제한: 24시간]**

준호는 시간을 확인했다. 자정까지 45분 남았다.

그는 일어나 앉았다. 왼쪽 다리가 로딩 상태였지만 일어설 수 있었다.

'강남역... 또 강남역이네.'

준호는 옷을 입었다. 후드티와 검은 바지. 스트리밍 카메라를 들었다. 지난번에 구독자들의 후원금으로 산 소형 캠코더였다.

스트리밍을 켰다.

**[라이브 시작]**

**[시청 중: 1,847,000명]**

채팅이 폭주했다.

— 오!! — 밤에? — 또 던전이야?? — 대박 대박 — 뭐하는 거야?? — 다리 괜찮아?? — 가봐!! — 가지 마!! — 위험해!!

준호는 스튜디오로 향했다. 밤 11시 50분, 강남역은 여전히 붐볐다. 술 취한 직장인들, 늦은 밤 약속을 잡은 젊은이들. 누구도 준호를 주목하지 않았다.

12번 출구. 지하 2층 계단을 내려갔다.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평범한 지하 통로. 간판, 편의점, 화장실 표지판. 하지만 준호의 휴대폰 앱에는 명확히 표시되어 있었다.

**[던전 입구 — 5m 좌측]**

준호는 걸었다. 채팅을 따라.

— 거기 거기!! — 왼쪽!! — 문이 있어!!

그곳에 문이 있었다. 누구도 볼 수 없는 문. 준호의 눈에만 검은 포탈로 보이는 문.

시간은 자정 2분 전이었다.

준호는 포탈 앞에 섰다. 카메라를 정면으로 향했다. 왼쪽 다리는 여전히 반투명했다. 수백만 명이 자신의 절름거리는 다리를 봤을 것이었다.

"들어갈까?"

준호가 물었다. 채팅이 울었다.

— 가!! — 가!! — 가!! — 가!!

준호는 웃었다. 그 웃음은 자신의 것이었을까, 아니면 채팅의 것이었을까.

그는 포탈로 뛰어들었다.

---

포탈을 통과한 순간, 세상이 바뀌었다.

지하 2층은 사라졌다. 대신 거대한 도서관이 펼쳐졌다. 천장은 보이지 않았다. 책장은 무한히 뻗어 있었다. 그리고 그 책장들 사이로 뭔가 움직이는 게 있었다.

그림자들. 수십 개의 그림자들이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뭐야 이거?"

준호가 중얼거렸다. 채팅은 침묵했다. 처음으로.

— ... — ? — 뭐야 진짜 — 무서워 — 가지 마 — 돌아와

"괜찮아. 이전처럼 하면 되지."

준호가 말했다.

그 순간, 가장 가까운 그림자가 움직였다. 빠르게. 준호를 향해 달려오는 것처럼.

준호는 본능적으로 왼쪽으로 몸을 날렸다. 반투명한 다리가 땅을 밀었다.

— 왼쪽!! — 위로!! — 달려!!

채팅이 다시 울렸다. 그리고 준호는 따랐다.

그림자를 피해 달렸다. 책장 사이를 헤쳐 나갔다. 채팅이 지시하는 대로.

하지만 지시가 일관되지 않았다.

— 왼쪽!! — 아니 오른쪽!! — 왼쪽이라니까!! — 오른쪽 오른쪽!!

채팅들이 서로 모순된 지시를 내렸다. 준호는 혼란스러워했다. 왼쪽으로 몸을 날리다가 오른쪽으로 몸을 틀었다. 그림자가 그의 왼쪽 팔을 스쳤다.

팔이 더 반투명해졌다. 어깨까지. 오른쪽 팔의 근육이 뒤틀렸다. 왼쪽 지시를 따르려던 몸이 오른쪽으로 강제되면서 생긴 역설적 변형이었다.

준호의 오른쪽 팔이 비틀려 올라갔다.

— 오른쪽!! — 위로!! — 점프!!

준호는 책장을 밀고 올랐다. 채팅을 따르려다 다시 그림자에 걸렸다. 오른쪽 다리가 긁혔다.

신체 변이가 가속화되고 있었다. 채팅을 따를수록. 모순된 지시를 받을수록. 준호의 몸은 점점 더 로딩 상태로 변해갔다. 근육이 뒤틀리고, 뼈가 휘어지고, 피부가 갈라졌다.

'이게... 이게 뭐야?'

준호는 깨달았다.

이것이 바로 '공명'의 끝이었다. 채팅과 자신이 하나가 되려는 순간. 채팅의 모순이 자신의 몸을 파괴하는 순간.

---

도서관의 끝에 도달했을 때, 준호는 숨을 고르고 있었다. 오른쪽 팔 전체가 반투명해졌고, 목도 변이가 올라와 있었다. 얼굴까지 밀려오는 중이었다.

**[시청 중: 2,300,000명]**

채팅은 여전히 울고 있었다.

— 대박 — 무섭다 — 계속 가!! — 가지 마!! — 뭐야 진짜

준호는 이제 채팅을 듣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대신 귀를 기울였다.

발소리가 들렸다. 뒤에서.

준호가 돌아봤을 때, 그림자가 아니라 사람의 형태가 보였다. 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 얼굴은 어두워서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손이 보였다. 완전히 반투명한 손.

"반갑네."

목소리가 들렸다. 차갑고, 낮고, 감정이 없었다.

"누... 누구야?"

"도현이라고 했잖아. 넥서스의 추적 담당자."

남자가 한 발 다가섰다.

"이제 충분히 봤어. 넌 정말 흥미로워. 하지만 여기까지야. 더 이상 나가면 안 돼."

"뭐?"

"넌 이미 이전 사용자들의 길을 따라가고 있어."

도현이 손을 들었다. 반투명한 손가락들이 떨리고 있었다.

"최재욱은 손가락부터 시작했어. 손, 팔, 다리. 차례대로 사라졌지. 마지막엔 의식까지. 지금 그는 던전 어딘가에 있어. 하지만 자신이 누구인지는 모르지."

도현이 또 한 발 다가섰다.

"김민지는 달랐어. 채팅의 모순된 지시를 받다가 던전 안에서 영원히 갇혔어. 지금도 그곳을 헤매고 있을 거야."

도현의 목소리가 더 낮아졌다.

"박준영은... 그냥 없어. 어디로 갔는지 모르지만, 더 이상 돌아오지 않았어. 그의 스트리밍은 갑자기 끊겼어. 채팅도, 화면도, 아무것도 남지 않았어."

도현이 손을 펼쳤다. 손바닥에는 세 개의 물체가 있었다.

첫 번째는 손가락 뼈였다. 최재욱의 것이었을 것이다. 반투명하고 부서질 듯 약해 보였다. 뼈 표면에는 깊은 흠집들이 패여 있었다.

두 번째는 신분증이었다. 김민지. 사진 속의 얼굴은 웃고 있었다. 하지만 신분증은 낡아 있었다. 플라스틱이 갈라져 있고, 글씨가 희미해져 있었다. 마치 수십 년을 던전 안에서 헤맨 것처럼.

세 번째는 스트리밍 카메라였다. 박준영의 것이었을 것이다. 렌즈는 검게 타버려 있었고, 몸체는 녹슬어 있었다. 마치 불에 탄 것처럼.

준호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돌아가. 스트리밍을 꺼. 채팅을 무시해. 그럼 아직 돌아갈 수 있어."

도현이 말했다.

"뭐... 뭐야? 돌아간다는 게?"

"평범함으로. 그 4년의 실패로. 모든 게 사라지는 거야. 너의 특별함도, 너의 영웅도, 모든 게."

도현이 또 한 발 다가섰다.

"하지만 그게 최선이야. 계속 가면? 넌 소멸해. 완전히. 너는 채팅의 일부가 되고, 채팅은 너를 조종하고, 끝내 넌 사라져. 이전 사용자들처럼."

도현이 손을 펼쳤다. 최재욱, 김민지, 박준영의 흔적들이 준호의 눈에 들어왔다.

"선택해."

도현이 말했다.

"평범함으로 돌아갈래? 아니면 끝까지 갈래?"

그 순간, 스튜디오의 모니터에서 채팅이 폭주하고 있었다.

— 뭐야 누구야?? — 누가 있어?? — 가져!! — 싸워!! — 이겨!!

채은은 모니터를 봤다. 화면에는 준호와 정체 모를 남자가 서 있었다. 그리고 준호의 신체는 점점 더 반투명해지고 있었다. 목과 얼굴까지.

"준호!!"

채은이 외쳤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던전에 닿지 않았다.

채은은 준호의 변화를 본 순간부터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알았다. 어제의 준호와 오늘의 준호는 달랐다. 눈빛이 다르고, 말투가 다르고, 행동이 다르다. 그리고 지금 화면 속의 준호는 자신이 알던 준호가 아니었다.

채은은 채팅을 읽었다. 그들은 준호를 응원하고 있었다. 계속 가라고, 싸우라고, 이기라고. 그들의 목소리는 커지고 있었고, 그 목소리가 준호를 움직이고 있었다.

"넌 나를 버리는 거야?"

채은이 중얼거렸다. 자신도 모르게. 그 말이 나오는 순간, 모니터 화면이 흔들렸다. 도서관이 요동쳤다. 마치 누군가의 절망이 던전 자체에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채은은 자신이 응원했던 준호가 이제 자신을 버리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 깨달음은 단순한 배신감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도 모르게 채팅이라는 집단 무의식의 일부가 되어가고 있다는 공포였다. 준호를 응원하는 수백만 명의 목소리 속에서, 자신의 목소리는 사라지고 있었다. 자신의 감정도, 자신의 의지도, 모두 그 거대한 목소리에 잠식되고 있었다.

준호는 도현을 봤다. 그리고 결정했다.

"가."

준호가 중얼거렸다.

"뭐?"

"나 계속 간다."

준호의 눈이 빛났다. 두려움이 아니라 뭔가 다른 감정으로. 아니, 더 이상 자신의 감정이 아니었다. 채팅의 감정이었다. 수백만 명의 욕망이 하나로 응축된 감정.

"내가 평범해질 수 없어. 이미... 이미 봤으니까."

준호가 손을 들었다. 반투명한 손가락들이 떨리고 있었다.

"봤어. 수백만 명이 나를 보는 거. 나를 필요로 하는 거. 나를 응원하는 거. 그걸 어떻게 포기해?"

도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마치 준호의 선택이 예상을 벗어났다는 듯.

"넌 미쳤어."

"아마 그럴 거야."

준호가 웃었다. 하지만 그 웃음은 준호의 것이 아니었다. 채팅의 웃음이었다.

"하지만 미친 게 낫지. 평범한 것보다."

그 순간, 채팅이 울었다.

— 그래!! — 가!! — 미쳐!!

수백만 개의 목소리가 준호를 조종했다. 그의 입을 움직이게 하고, 그의 발을 움직이게 하고, 그의 의지 자체를 조종했다. 준호는 더 이상 자신의 선택을 하고 있지 않았다. 그저 채팅의 명령을 따르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 순간, 도서관이 흔들렸다. 책장들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준호 뒤에 새로운 포탈이 나타났다.

"가거나 죽거나. 선택해."

도현이 말했다.

준호는 포탈로 뛰어들었다.

---

준호가 스튜디오로 돌아왔을 때, 채은이 그를 받아냈다.

"넌 미쳤어!!"

채은이 외쳤다.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

"뭐?"

"저 남자가 누구야? 뭐 한 거야??"

"모르겠어. 그냥... 게임이야."

준호가 숨을 고르며 말했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평탄했다. 감정이 없었다.

**[시청 중: 3,100,000명]**

채팅은 여전히 울고 있었다.

— 뭐야 진짜 — 누가 그거야 — 대박 — 무섭다 — 가지 마 — 계속 가!!

준호는 카메라를 켜진 채로 채은을 봤다. 하지만 그의 눈은 채은을 보지 않았다. 화면 너머의 수백만 명을 보고 있었다.

"계속할 거야."

준호가 말했다.

"끝까지."

채은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준호... 제발..."

하지만 준호는 이미 듣지 않고 있었다. 채팅의 목소리만 들리고 있었다. 수백만 개의 목소리가 그의 뇌를 점유하고 있었다.

그 순간, 새로운 메시지가 들어왔다.

**[다음 던전이 열렸다. 위치: 강남역 지하 3층. 난이도: 상급 (★★★★★). 진입 제한: 48시간.]**

그리고 그 아래에 또 다른 메시지.

**[그 아래 또 다른 위치가 있다. 강남역 지하 5층. 난이도: ???. 진입 제한: 시간 제한 없음. 이 던전은 모든 것의 끝이다. 또는 시작이다. — 관찰자]**

준호는 메시지를 읽었다. 그리고 웃었다.

지하 5층.

그곳이 이 모든 게임의 끝인가.

아니면 시작인가.

채은은 준호를 봤다. 하지만 그 눈에는 자신이 알던 준호가 없었다. 대신 누군가 다른 존재가 준호의 몸을 조종하고 있다는 걸 느꼈다.

"넌 나를 버렸어."

채은이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 말이 나오는 순간, 모니터 화면이 다시 흔들렸다.

준호는 그 말을 듣지 않았다. 아니, 이미 들을 수 없었다. 채팅의 목소리가 너무 크기 때문이었다. 수백만 개의 목소리가 그의 의식을 완전히 덮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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